마술(magic)
1. 성경의 관점.
마술과 술법은 초자연적이거나 신비한 방법으로 사람과 사건에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 이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점과 연결될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점 자체는 사건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측하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방법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마술은 우주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두운 세계의 것일 수도 있고, 밝은 세계의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것은 악령들과 연결하여 저주, 주술, 대적의 형상 파괴 등의 방법들을 통하여 악한 결과를 일으키려고 한다. 이것은 흔히 마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후자는 저주와 주술을 풀려고 노력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신비로운 힘을 사용한다. 술사는 어떤 신이나 악마로 하여금 자기를 위하여 일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어떤 형태의 신비한 의식을 행하여 심령력을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려 한다. 마술과 술법은 언제나 단순히 미신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들의 배후에는 어떤 실체가 존재한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저항하고 정복할 수 있다.
(1) 마술에 대한 성경의 정죄
이 글의 서두에서도 나타나듯이 성경에서 마술과 술법은 언제나 정죄되고 있다. 마술은 비록 그것이 종교 사상과 결합되어 행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참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경쟁자이다. 참 종교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신자들은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기도하고, 삶의 상황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반면에 마술은 그 하층의 초자연적 존재들과 관계하거나 그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심령력을 이용하여 일의 결과를 역으려고 한다.
- 장식의 착용. 이사야 3:18-23의 여성들의 장식들 중에 20절의 '호신부'(공동번역, 새번역 '부적')로 번역된 단어(라하쉬)의 어원을 일부 학자들은 뱀을 의미하는 것(나하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 부적은 뱀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같은 문단인 18절에는 반달 장식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달의 모습이었으며 이 단어(사하로님)가 단 한번 나오는 곳은 사사기 8:21,26로 미디안의 왕들과 그 약대들이 착용했었다. 머리의 망사로 번역된, 이사야 3:18의 단어(쉐비심)는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타나며, 라스 샤므라(Ras Shamra) 서판에 있는 이와 유사한 단어는 태양의 장식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35:2-4에서 야곱의 권속은 '이방 신상'과 '귀에 있는 고리'를 땅에 묻었다. 이것은 '귀고리'에 대한 일반적은 단어이지만, 여기에서는 이방 신상과 함께 사용되어서 일종의 호신부였음을 암시힌다.
- 마술사, 마법사, 마녀.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애굽의 마술사를, 디모데후서 3:8은 얀네와 얌브레를 언급하고 있다. 출애굽기의 기록을 보면 애굽 술객들은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7:11), 물을 피로(7:22), 개구리를 올라오게 함으로써(8:7) 모세를 모방하였으나 이를 내려는 것은 실패하였고(8:18-19), 그들 스스로가 독종으로 인하여 무능하게 되었다(9:11). 이들이 유능한 술법사들이었는지 아니면 비밀스러운 방법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는 술사와 마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삼상28장)은 성경에서 영매(medium)로 묘사되기 때문에 술사로 언급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이세벨이 술법을 행한 것은 의미있는 것이며(왕하9:22) 미가 5:12은 그것이 이스라엘에서 드물었음을 암시한다. 므낫세는 개인적으로 다른 악과 함께 사술을 장려하였다(왕하21:6).
이사야 28:15은 사술적 의식이 행해졌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믿은 모종의 마술적인 언약을 맺기도 하였다.
히브리 마녀에 대한 가장 놀라운 언급은 에스겔 13:17-23이다. 여기서 히브리의 예언하는 부녀들 또한 개인을 죽이고 살리는 마술을 행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미가 3:5에서 지불되는 금액에 따라 평강 또는 전쟁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여기에서 마술의 세부적인 의식들을 탐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팔뚝에 매는 방석(새번역 '부적', 공동번역 '토시')과 수건(너울)은 희생자(겔13:18)와 술수를 행하는 여자(20-21절) 둘 다 착용하였다. 이 마술 의식은 악한(경우에 따라서, 선한) 주문을 외우면서 양자의 물건을 상호 교환함으로써 술수를 행하는 여자와 손님 사이에 일종의 심령적인 교감이 있음을 암시 한다.
수건의 크기는 키에 맞게 하든지(18절), 아니면 마녀가 손님의 원수를 나타내는 일정한 크기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술수를 행하는 여자는 잠시 그것을 쓰고 악한 주문을 외워 그것에 가득하게 한다(참고. 인형을 사용할 수도 있음).
(2) 성경은 마술을 묵인하는가?
이제 성경이 마술과 미신을 묵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을 다루고자 한다.
- 합환채(mandrakes)의 사용. 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동양의 여인들은 임신을 분명하게 하고자 합환체를 사용하였다(창30:14-18). 현대의 연구들은 원시적 약품들이 자주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밝혀내었다. 따라서 이 예를 마술로만 여기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 야곱의 껍질 벗긴 가지. 창세기 30:37-41에서 야곱은 어미가 보는 물건이 태어나지 않은 양과 염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원시적인 사상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40절은 그 결과가 실제로 선택된 새끼를 낳게 한 것을 보여준다.
- 사무엘과 물. 흔히, 이 사건은(삼상7:6) 큰 비가 내리게 하려고 엄숙하게 물을 쏟아 붓는 좋은 의미의 마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맥상 이것을 나타내는 근거는 조금도 없다. 사무엘하 14:14에 따르면 땅에 쏟아진 물은 인간의 연약함과 일시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사무엘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과 겸손의 표시로서 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 삼손의 머리카락. 프래이저(Frazer)와 다른 학자들은 전 세계로부터 영혼 또는 사람의 힘이 그의 머리카락이나 다른 신체 외부에 거한다는 내용의 설화들을 모았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삿16장)은 삼손의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나실인의 서약에 대한 그의 신실함을 표시하며, 하나님의 영은 그가 이 서약에 신실한 동안에는 그를 힘있게 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삿13:25;14:19). 자연적인 차원에서 삼손이 힘을 잃게 된 것은 그가 죄책감을 느꼈을 때의 심리적 상태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히스테리성 장님이나 마비 등이 있다.
- 큰 악어(leviathan)를 격동시킴. 욥은 날을 저주하는 자, 곧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새번역 '리워야단도 길들일 수 있는 마력을 가진 자들)가 그의 생일을 저주하였기를 요구하였다(욥3:8). 일부 학자들은 이것은 일식 때 해를 삼키도록 용을 격동시킨다고 여겨졌던 마법사들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이 말은 욥의 과장된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진짜든지 가짜든지 간에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 축복과 저주의 능력. 구약은 이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믿음의 족장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였고, 이삭은 야곱에게 언약한 축복을 바꿀 수 없었다(창27:33,37).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받았다(민22장이하).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에 대한 빈번한 언급이 있다. 주의할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효력있는 축복과 저주를 말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의 족장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후손들의 미래를 보여주신 것을 믿었고 그들의 축복은 이것을 선언한 것이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민23:8,20) 자들에게 능력있는 저주를 할 수 없었다. 다윗이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한 바에 대하여 그를 통하여 저주하시는 것일 수 있다고 하는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에(삼하16:10),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는 합당치 않은 저주를 복으로 바꾸실 수 있따는 것을 알고 있다(시109:28).
- 기적들. 이방 세계는 분명히 '개인적인' 기적을 마술로 여겼으나(행8:9-11), 성경은 하나님의 기적을 결코 일반적인 마술보다 한 단계 초월한 또 하나의 마술로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면, 주문을 외우거나 영을 불러오는 일이 없다. 모세는 더 뛰어난 마술사가 되어 바로의 마술사를 침묵시킨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때와 방법에 따라 처신함으로써 오직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행동하였다. 그의 지팡이는 마술사의 마술 지팡이가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하는 상징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였다(출4:20).
축귀와 병고침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 복음서들의 기록과 이방의 마술 사이에 언어의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마신학과 질병에 대한 용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마술적 의식을 활용한 기록이 없다.
2. 이집트 및 앗시리아 - 바빌로니아
(1) 고대의 마술
마술이란 분명한 인과 관계의 법칙을 잘 관찰하여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일상적인 관계와 과정을 쉽게 규칙화시킬 수 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분야에 대한 지식 내지 기술이 조금밖에 없어서 이러한 것을 잘 듣게 될 때에 그 효력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정작 마술은 신비로움이 그 인과 관계를 덮어 싸고 통상적ㅇ니 수단으로는 얻고 싶은 결과를 충분히 획득하지 못하였을 때에야 나타났었다. 마술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술사들이 이제껏 실제의 경험들을 통하여 주의 깊게 기록해 놓은 술법들을 통해서 기적적이거나 신비로운 능력으로 개발해 놓은 것이다.
한편, '사회'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종교'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는 반면 마술의 힘은 이 두 영역간에서 그 효력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마술과 종교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 성경에 나타난 이집트의 마술
신성한 문헌이나 의식 문서 및 주문들에 통달하고 '생명의 집'(이러한 문헌과 여타 문헌들을 작성하고 복사하고 가르치는 신전 '학교')에서 훈련받은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술사들은 독송 대사제(the chief lector-priests)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창41:8과 출7:11에 '박사들'(wise men)과 '박수들'(술객들, magicians)이 함께 나타나는 표현은 정말 확실한 이집트의 전통을 나타내는 것이다.
- 요셉 때의 바로의 꿈과 술객들. 창41:8에서 요셉 때의 바로는 자신의 꿈을 풀기 위하여 그의 술객들과 박사들을 불러 모았다. 이러한 일은 고대 이집트와 동부 지역에서 꿈이 중요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꿈과 그 풀이는 편람 즉 틀림없는 꿈풀이를 모아 놓은 소책자에 수집되었다. 그러한 편람들의 원조인 체스터 비티(Chester Beatty) 3 파피루스(제19왕조, B.C.13세기)는 중왕조 때까지 그 연대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며, 반면 A.D.2세기의 칼스버그 13 및 14 파피루스들은 고대의 자료들을 더 많이 수집해 놓고 있다. 이러한 문헌에 나타나는 것 중에 일반적인 양상 한 가지는 만일 어떤 사람이 꿈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길하거나 흉하고 그런 저런 일이 그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라는 것이다.
- 요셉과 점. 창 44:4-5,15에서 요셉은 그의 형제들 앞에서 점치는 기술에 통달한 이집트의 술사인 것처럼 연극을 꾸몄다. 이 사건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5절의 통상적인 번역에 따르면 요셉은 그의 은잔으로 점을 친다고 자신의 청지기에게 이르도록 시켰는데 이것은 B.C.1700년경 힉소스족이 이집트를 다스리던 시대의 잔점(잔점술, lecanomancy)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술법으로써 꿈풀이를 위한 징조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술법은 잔에 담겨져 있는 물 위에 기름 방울을 떨어뜨려서 그 움직이는 모습이나 형상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 술법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언하였으며 수메르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술법들을 모아놓은 소책자가 B.C.19-17세기 때, 즉 일반적으로 요셉이 살던 시기와 동시대로 그 연대를 잡는 두 개의 설형문자 토판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잔점술이 단 두 번 포착될 뿐이며, 그나마도 한 번은 불분명한 상태이다. 분명하게 중 왕국 시대(B.C.1900-17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작은 신상이 각기 양손에 잡은 잔 위에 턱을 대고 무릎 꿇은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 모습은 분명히 잔점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A.D.2세기의 파피루스에 이 술법이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점술을 포함하여 바빌로니아의 영향을 이미 B.C.2000년기의 팔레스타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빌로니아의 점 보는 행위들이 하조르에서 포착되었는데 B.C.15세기의 제 2신전에서는 설형문자로 새겨진 진흙으로 된 간의 모형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거가 메소포타미아의 점술이 요셉 시대의 팔레스타인이나 바로 인접한 이집트에서의 잔점술(lecanomancy)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였던 다른 형태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전제하는데 어떠한 어려움도 없다. 그 뒤로 동부 델타 지역은 힉소스족(셈족)이 지배하였다.
반면에 요셉의 청지기가 했던 말은 '이것은 우리 주인께서 마실 때 쓰는 잔이 아니냐? 그리고 그가 확실하게 점을 쳐 내실 줄 몰랐느냐?' - 즉 도둑을 가려내기 위하여 - 처럼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번역에 근거하면 요셉의 잔은 단지 마시는 도구일 뿐이고, 잔점술에 관한 언급은 없으며 그가 어떤 종류의 점을 친 것으로 가장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15절과 맞아떨어지는데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라고 말하였다. 즉, 그가 자신의 잔을 찾기 위하여 점을 쳐서 그들을 도둑질한 죄목으로 체포하는 체한 것이다.
- 모세와 술사들. 출 7:8-13에서는 아론이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바로 앞에서 그 지팡이를 집어 던져 뱀으로 만들었을 때, 바로의 박사들과 박수들도 '그 마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11절). 이러한 종류의 요술에 대해서는 이집트의 코브라(아랍어로는 najahaye)의 경우 목덜미 주위에 압력을 가하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강경증, catalepsy)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뱀은 반드시 먼저 주문에 걸렸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여러 고대 이집트의 스카라베 부적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목을 쥐고 있어야 했고, 따라서 일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지팡이로 변한 아론의 뱀은 오로지 다른 이는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3) 앗시리아-바빌로니아 마술
- 역할. "재앙을 막거나 병을 치료하는 마술"은 병이나 귀신들린 상태 등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받고자 할 때 주로 의지하는 수단ㅇ이었는데 이 고통은 그 당사자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졌다. 축귀자들은 그럴 때에 자주 의식을 행하고 '불태움'(즉 정결 의식)이라는 의미의 '슈르푸'라는 표제가 붙은 '소책자'에 있는 주문을 외웠는데, 이 소책자에는 고통받는 자가 저질렀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는 잘못들이 모두 열거되어 있다. 이와는 달리 어떤 경우에는 고통이 외부로부터 즉 어떤 박수들의 악한 주문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한 경우를 설명하기 위하여 토판으로 된 다른 한 짝의 '소책자'(마크루)가 있었는데 이 책 이름의 뜻 또한(밀랍이나 나무로 된 박수 인형을) '불태움'이라는 의미이다. 다음과 같은 주문이 있었다: '이 형상이 떨거나 녹거나 녹아 없어져 버릴 때 해당 박수와 여자 박수가 그렇게 떨거나 녹거나 녹아 없어져 버리기를!' 또한 석방이나 사면을 위한 기도문들을 수집해 놓은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점과 같은 '예고하는 마술'은 선악간에 어느 사건이든지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그 사건을 예고하거나 이끌어 올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통달한 사제들이 굉장히 긴 이러한 징조들을 해석을 달아 조직적으로 편찬해서 책-편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한 징조들은 자연에 나타나는 징후들을 통해 포착하거나 아니면 특정한 술법으로 찾아내기도 하였다.
자연의 조짐들은 인간이 관찰해 놓은 전반적인 범위 중에서 얻게 되었다. 예로 햇무리나 달무리, 일식과 월식, 천체의 근접 현상 등(점성굴)과 주류의 이동, 동물과 곤충의 행동이나 상태, 특별히 비상한 경우의 동물이나 인간의 출생 등이 모두 일련의 긴 징조-토판(omen-tablets)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조짐들을 통해서 볼 때, 예를 들어 병든 자들에게는 선악간에 그 징조가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효력을 미쳤다. 사47:9-13은 그러한 절차들을 비판하고 있는 본문이다.
반면, 자연의 조짐들을 관찰하는 술법들과는 달리 어떤 특정한 점술법은 양의 간의 형태나 그 간 위에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여 행하기도 하며(간관찰술(hepatoscopy), 내장점술(extispicy), 잔에 담은 물 위에 띄운 기름(또는 그 반대로)의 양상을 관찰하는 것이었다(잔점술(lecanomancy)). 이렇게 유명한 대부분의 바빌로니아 점술의 형태는 헷 족속(소아시아의 힛타이트 족속)과 북시리아의 가나안 족속, 그리고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이에 파고들었다(참고. 겔21:21-22).
- 그 수행자들.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술은 신전에 소속된 사제학자들이 행하였다. 축귀는 사제('술객', 단1:20)가 술객들의 주인 에아(Ea) 신과 마르둑 신의 힘으로 수행하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공들여 만들어 놓은 점술 장치는 사제의 지역에 있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완전해야 했으며 장기간 학문을 공부해야 했고 비법을 전수 받아야 했다. 또한 왕궁에 부속된 자들은 어느 때에든지 세상 만사를 풀이해 주도록 요청 받았다.
(4) 성경에 나타난 앗시리아-바빌로니아의 마술
- 발람. 민22-24장의 발람은 분명히 신의 강요에 못 이겨 예언을 바꾼 점쟁이(diviner)였다. 발락은 사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손에 들리운 복술의 예물'로 발람을 고용하였고(민22:7. 비교. 18절), 처음에 발람은 '징조를 보기 위하여' 갔는데 그 징조의 성격은 특별히 지정되지 않은 것이었다(민24:1). 발락은 분명히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할 만한 악한 징조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점성술 본문이 카트나(Qatna)에서 발견되었고 또한 점쟁이들이 B.C.18세기와 14세기의 알랄라흐(Alalah)에 있는 본문에 나타나는데, 이 두 지역은 모두 북시리아에 위치한다. 더욱이 B.C.2000년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점쟁이들의 마력(Manum of Diviner)의 인장(seal)이 B.C.13세기 이스르엘의 벳-샨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때는 발람이 살던 시기로, 그의 신탁이 언어학적으로 이때의 것으로 판명된 바로 그 기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압 왕이 아마우 자손들의 땅에서 북시리아로부터(유프라테스 강변 브돌) 점쟁이를 고용해야 했다는 잘 알려진 사실과 전적으로 부합한다.
- 율법과 가나안의 마술. 다른 민족들이 행하던 마술과 사술을 금하는 모세의 율법은(예. 레19:26;20:27;신18:10-14) 가나안의 상황과 매울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곳에 있었던 바빌로니아의 영향에 대해서는 상기 항목 참조. 우가릿/라스 샤므라(B.C.14/13세기 토판)의 북 가나안 서사시 본문들에 다닐(Danil)이 아카트(Aqhat)에게 신탁의 축복을 빌면서 자라나는 식물과 곡식에게 입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더구나 푸가트(Pugat)의 활동은 사술과 확실히 연결되어 있다. 출22:18에 여자 무당을 특별히 정죄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 다니엘. 단1:4에서 느부갓네살의 지시에 따라서 잘 생긴 히브리 청년들에게 바벨론의 학문을 교육하는 절차는 그것이 학자-술사들을 위하여 일상적으로 교육하는 절차이었음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의문을 파하는'(단5:12,16)것, 즉 (아직 풀리지 않은) 꿈이거나 징조(비교. 단4:5) 때문에 생긴 번민을 사라지게 해 주는 것이 꿈을 해석하거나 '푸는' 목적이었다. 그런 후에 길몽의 유익은 받아들일 수 있었고 흉몽의 위협적인 요소는 주술로서 피할 수 있었다. 꿈이 이렇게 중요시 되었던 것은 신바벨론의 왕들, 특히 벨사살의 부왕 나보니두스(Nabonidus)의 특성이었다. 나보니두스와 그의 존경받을 만한 어머니에 대해 새로 발견된 본문과 그들이 꾼 꿈에 관한 내용이 하르란(Harran)에 있는 이 왕의 석비들에 새겨져 있다. 또한 사해 두루마리에 있는 '나보니두스의 기도'는 다니엘서 4장에 밀접하게 대응되는데, 그 내용은 포로된 유대인 현자(이름은 보존되어 있지 않다)가 그 왕의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여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마술사
<보라>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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