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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바벨 / 바벨론 / 바보 / 바사 / 바사바

바벨 Babel

성경에서 처음으로 영걸이라고 불리운 니므롯이 시날 땅에 세운 것으로 보여지는 성읍이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탑을 쌓기도 하였다(창 10:10).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결국 인간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창11:1-9).

바벨론 Babylon

바벨론 제국의 수도. 성경에서 니므롯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이 도시(창10:10)는 바벨론 제1왕조의 함무라비 왕에 의한 재건과 정비로 발전되었고 그의 치세하에서 수도로 정해졌다. 그 후 수 차례의 함락과 재건을 되풀이하다가 B. C. 689년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러나 신 앗수르 제국이 멸망당하자 다시 신 바벨론의 수도가 되었고,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건축물을 축조하고 도시를 정비하였다. 그는 유대인 포로들을 이곳에 거하게 했으며 (단4:28-30) 이때에 바벨론은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며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바벨론은 바사 왕 다리오에 의해 멸망되었으며(사21:9), 알렉산더 대제의 후계자 니카터가 바벨론 대신 다른 곳에 새 수도를 건설함으로 바벨론의 세력은 점차로 약화되었다.
유적 발굴에 의하면 이 도시는 2중으로 된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고, 큰 성문들과 도로 등 상당히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이스라엘과 정치적 교류도 있었지만(왕하20:12), 유다를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가기도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숙곳브놋이라는 우상을 섬겼으며(왕하17:30), 사치와 허영에 들떠 있는 바벨론의 모습은 처녀에 비유되기도 했다(사47:1).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바벨론을 환락가였고 윤락가였으며 근친상간이 자연스럽게 자행되던 곳이었다고 묘사할 정도로 종교나 윤리면에서 타락이 극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약에서는 이 도시가 로마를 상징하는 말로 또는 그리스도와 성도를 대적하는 대적자나 악한 세력의 본거지로 묘사되었다(계14:8;16:19;17:5;18:2,10, 21).

바보 Paphos

지중해 동북방에 위치한 구브로 섬의 수도로 이 섬의 남서부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비롯한 여러 조형물이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구브로의 수도였던 이곳은 콘스탄틴이 구브로의 수도가 되면서 그 중요성이 사라져 갔다. 성경에서 이곳은 바울이 1차전도여행 때 방문한 곳으로, 이 지방의 총독 서기오 바울을 구원시키기도 한 곳이다(행13:6-13).

바사 Persia

현재의 이란에 해당되는 바사 제국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고, 가장 강대했던 국가 중의 하나이다. 전성기 당시 이들의 영토는 동으로는 인도에까지 이르며, 서로는 애굽, 남으로는 페르시아 만, 북으로는 카스피 해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바사인은 아리아 인종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 자신들의 제국을 아리아나라고 부르기도 했다. 바사 제국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높은 평원에 건설되었으며, 기후적으로 강우량이 아주 적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관개수로 시설이 발달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사는 고레스 2세(B. C. 559-530) 때부터인데 그는 바사 제국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메대와 리디아는 물론 바벨론이 정복했던 모든 영토까지 자기의 통치 아래 두었고, 행정개편을 통해 각 구역을 나누어 통치하였다. 그는 또한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며 타민족과의 유화 정책에도 능통하여 바벨론으로 잡혀왔던 모든 포로들을 귀환시키는 칙령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이때 유대인의 귀환도 이루어졌다(대하31:23;스1:1-4). 그는 인사 행정에도 능통하여 정복지에 총독을 세울 때도 정복 지역민과의 충돌이 없게끔 세심히 살폈다. 그는 B. C. 530년에 전쟁에서 전사하기까지 바사 제국의 기틀을 잡으며 제국의 면모를 갖추는 데 공헌한 위대한 통치자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왕으로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던 다리오 1세는 반역자 가마우라를 처형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그의 재위 기간에 동쪽 인도에서 북쪽 다뉴브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재물도 풍성히모아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또한 성경에서 아하수에로로 기록된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는 총독으로 있다가 왕이 되었으며, 그는 그의 재위 기간에 많은 영토를 잃었다. 결국 그는 암살당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통치권은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 1세가 계승하였다. 방백 르훔의 고소에 의해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기도 했던 아닥사스다는 느헤미야의 간청으로 공사를 다시 허락하였고 이로써 성벽 재건 공사가 재개되기도 했다(느2:1-9). 당시 바사인의 종교는 여러 우상을 섬기는 다신교적 성향이 강했으나, 그 중에서도 선과 악, 빛과 어둠 등과 같이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 강한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자리를 잡았다.

 

바사바 Barsabbas

1.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인하여 비워진 사도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추천된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별명이 유스도인 요셉을 가리킨다(행1:23).
2.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을 글로 적어 안디옥 교회에 보낼 때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실라와 함께 파송되었던 선지자 유다의 별명이다(행15: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