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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아그나스 / 아스글론 / 아스다롯1 / 아스다롯2 / 아스돗

아그나스 Ashkenaz

1. 노아의 아들인 야벳의 손자이며, 고멜의 세 아들 중 장자이다(창10:3;대상 1:6).
2. 아라랏, 민니와 동맹을 맺어 바벨론에 대항했던 왕국으로, 고대 우라루트(아라랏) 왕국과 앗시리아 왕국을 멸망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렘51:27),

아스글론 Ashkelon

가사에서 북방으로 약 19km, 아스돗에서 남방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 블레셋의 5대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수13:3). 지중해에 접해 있고 토지가 비옥하여 포도와 파를 많이 생산하였다. B. C. 1200년경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주해 왔으며,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가 점령했다가(삿1:18) 삼손 때부터 다윗의 시대까지 계속해서 블레셋의 영토가 되었다(14:19;삼상 6:17), 아스글론은 선지자들의 예언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아모스는 아스글론의 왕에 대한 징계를 예언했으며 (암1:8), 예레미야와 스바냐도 역시 파멸을 예고했다(렘 25:20;47:5-7;습2:3,7). 이곳은 B. C. 734년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정복되어 조공을 드렸고, B. C. 604년 바벨론에 의해 침략당했다가(렘47:5-6) B. C. 104년에 자유를 되찾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정복한 이후 아스글론은 헬레니즘화되어 헬레니즘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헤롯 대왕이 이곳 출신이라는 전승이 있으며, 신약시대에는 '아스칼론' (Ascalon)으로 불렸다.

아스다롯1 Ashtaroth

바산의 한 성읍으로, 바산 왕 옥의 고향인 에드레이와 연합한 트랜스요르단 북부의 한 마을 이름이다(신1:4;3:10;수12:4). 이곳은 이스라엘에 의해 멸망 당한 후,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에게 주어졌으며(13:12,31), 후에 레위 사람 게르손 자손에게 주어졌고, 이스라엘의 도피성들 중 하나였다(대상6:71), 역대상 11:44에는 '아스드랏'으로 명기되어 있는데, 다윗의 용사 웃시야의 고향이기도 하다(11:44). 현재 갈릴리 호수의 동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텔 아쉬타라' 로 추정된다.

아스다롯2 Ashtaroth

베니게와 가나안 종교의 여신으로 풍요와 사랑, 전쟁의 모신으로 알려져 있다.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인 '아쉬토레트' (ㄱ)의 복수형인데, 개역성경에는 별 구별없이 '아스다롯'으로 번역했다. 로마에서는 '비너스'로 알려진 사랑과 미(美), 풍작의 신으로 간주되었고, 시돈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었다(왕상11:5,33), 구약에서는 아스다롯과 바알의 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며(삿2:13;10:6),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과 아스다롯을 없애라고 명령하였다(삼상7:3-4).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하솔, 모압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위협을 느끼자 그들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긴 배교 행위를 고백하였다(12:10). 솔로몬은 노년에 두로와 시돈과의 친화 정책에서 예루살렘에 그 산당을 세웠으며(왕상11:5-7), 요시야에 의해 파괴되었다(왕하 23:13), 그 후 바벨론의 압력과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이 여신은 바벨론식 이름인 '이쉬타르'로 숭배되었고 (렘7:18:44:17-19), 개역성경은 이를 '하늘 황후', '하늘여신'으로 번역하였다.

아스돗 Ashdod 

블레셋의 5대 주요 성읍 중 하나로 가사와 욥바 중간, 에스글론 북방 약 1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다른 네 성읍처럼 아스돗은 매우 오래된 성으로 고대의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수11:22).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15:46) 여호수아시대에 점령되지 못하였고, 계속 블레셋의 수중에 있었다(13:1-3), 블레셋 사람은 이스라엘과 전쟁하다가 법궤를 빼앗아 그 성물을 이곳에 있는 다곤의 신전에 안치했으나 불길한 재앙으로 인해 가드로 옮겼다(삼상5:1-8).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아스돗과 그 주변 지역이 잠시 정복되었으나(대하26:6) 곧바로 독립을 회복하여 B. C. 712년경에는 사르곤 2세에게 반기를 들 정도였다. 사르곤 2세는 이 반역을 평정시키고 아스돗을 되찾았으며(사20:1), 아스돗은 앗수르의 강력한 식민지가 되었다. 아울러 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그 대가로 유다의 일부 영토를 받았으며, 페르시아 시대에는 상당한 영토를 장악하여 유대인들에게는 위협적이 되었다. 포로기 이후에는 유대인과 아스돗 부녀들이 결혼함으로써 느헤미야의 책망을 받았다(느 13:23). 헬라 시대에는 '아소도'로 불리었고, B. C. 163년 유다 마카비에 의해, B. C. 147년 요나단과 시몬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B. C. 30년 헤롯 대왕에게 속했다. 신약성경에서 아스돗은 '아소도'로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만난 후 가이사랴로 가는 도중에 지나갔던 곳으로 언급되었다(행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