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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언약 / 언약궤 / 언어

언약 covenant

'언약'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명사 '베리트'를 번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 명사를 파생시킨동사의 어근은 '족쇄를 채우다' 또는 '함께 먹다' 라는뜻을 지니고 있어서 쌍방의 의무를 나타내거나, 아니면 '할당하다' (삼상17:8, 개역성경에는 '택하다' 라는뜻이 있어서 은혜로이 처분해 주는 의미를 나타낸다.이러한 내용은 힛타이트 족속의 종주권 계약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그 계약은 어떤 봉신(奉臣)이 그 봉건군주로부터 일종의 시혜를 얻고 나서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약에서 '베리트' 는 다음과 같은 각기 다른 세 가지 형태의 법적인 관계들을 구별해서 보여주고 있다.(1) 계약 당사자의 양측 모두 자발적으로 합의 사항을수용하는 인간 당사자들 사이의 쌍방 계약(우정의 경우, 삼상18:34 결혼의 경우, 말2:14; 또는 정치적 동맹의 경우, 수9:15;옵7절).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 맺는그러한 평등 계약에는 결코 '참여하시지' 않는다. 그나마 이러한 형태의 계약에 가장 근접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간의 '구속의 언약' 시편 일부에서 언급된 바, 시 2:7-8;40:6-8)으로서, 이 계약하에 그 아들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떠맡는다는 데 합의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베리트' 라는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2) 우월한 위치에 있는 계약 상대에 의해서 부과된 일방적인 처분(겔 17:1314), 주되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종된 인간이 '순종해야만 할 '베리트' 를 명하신다(수23:16. 최초에 맺었던 '행함의 언약' (호6:7)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그로 하여금 신실함을 입증하도록 시험에 처하게 하셨다(창2:17). 인간은 그 언약을 지키는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고전15:45)는 그 모든 의를 성취하셨고(마3:15; 갈4:4), 그것으로써 그의 소유된 모든 자들에게 회복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다. (3)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나님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하신 의무(신7:6-8;시89:3-4),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창17:7), 70인역은 계약이라는 말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헬라어 '쉰테케' (상호간에 '함께 둔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냄)를 사용하기를 꺼렸는데,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주권적인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70인역은 '디아테케' 문자적으로, '뚫어 둔' 어떤 것)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뜻대로 하는 소유물의 처분' 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나타내려 하였다. 70인역은 심지어 '베리트'에 대하여 인간이 동의하는 형태를 나타낼 때에조차 이 '디아테케' 즉 '유지' (遺旨, KJV '유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에 비하여 신약의 계시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을 나타내 주는 도구로 이 언약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에 '디아테케' 곧 '유언' 이라는 단어의 고유한 뜻이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사용되고 있다(참고, 히9:16-18). 실로 '유지' 또는 '유언'이라는 의미는 유산이라는 언약의 특정한 형태를 나타내 주고 있으며, 또한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맺어 주신 '베리트' 를 잘 묘사하는 바 이것은 구약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언약이다(히11:40).
한편, 언약은 하나님의 모든 특별 계시의 핵심을 이룬다. 그런데 언약이 글로 쓰여지자 이러한 '언약서'는 인간의 종교적인 희망을 위한 객관적인 자료가 되었다(출24:7). 성경은 '옛 언약'과 '새 언약’ 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한 번 뿐이므로 그에 따라서 유언으로서의) 언약도 단 하나만 있을 수 있다(더 나은 중세 필사본에 따라서 마26:28을 읽는다면, “나의 피 곧 '그' 언약의 피" 라는 표현 속에서 언약이 단 하나 뿐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계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기하는 상징들을 통하여 옛 언약하에서 구성되었고(렘31:32;고후3:14), 또한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속을 기념하는 것으로 새로운 언약하에서도 구성된다(렘31:31;고후3:6).
다음에 열거되는 양상들이 이러한 유언을 순차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항목들이다. 먼저 유언자이신 성자 하나님, 곧 '중보자' (히9:15)와 '부르심을 입은' 상속자들(9:15), 상속을 실행하는 객관적인 방법 곧 은혜로 베푸는 유산(9:16), 상속자가 그 은사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주관적인 조건, 즉 수용(9:28, 그것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허용된다), 그리고 화해의 상속 곧 영원한 구원 등이다(9:15,28). 또한 이러한 언약에는 어떤 특별한 성격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앞의 두번째 항목인 언약의 객관적인 실행은 늘 1인사역('한 일꾼')으로 특징지어지는데, 그 사역자는 순전한 은총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으로(비교. 창15:18;출 19:4) 결코 인간의 노력에 힘입지 않는 분이다(엡2:89), 또 다른 특징적인 모습들은 다음과 같다. 유언자의 죽음(출24:8;히9:18-22)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지라"는 약속(창17:7), 그리고 상속의 영원성(레2:13;민18:19;시105:8-10), 즉 노아에게 보이신 무지개(창9:12-13) 나 모세에게 지시하신 출애굽(출20:2), 우리에게 보이신 그리스도의 부활(롬1:4) 등과 같은 확증적인 표징이나, 유언의 세 번째 항목인 언약의 주관적인 전용 또한 똑같이 다음과 같은 인간의 응답에 대한 불변적인 모습들로 특징지어진다. 그것은 믿음(창15:6;신6:5;히11:6)과 도덕적이며(창17:1;마7:24;엡2:10), 예배 의식적인 순종(창17:10-14;행22:16;고전11:24)으로, 이 특징이 포함되는 이유는 진정한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약2:1426).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나타내시는 계시는 또한 역사적으로 진척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데(롬9:4에 쓰인 “언약들" 이라는 복수 형태의 표현을 주목할 것) 옛 언약하에서 다음과 같은 언약들이 나타난다. (1) 비록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대가로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속에 대한 최초의 약속인 에덴의 언약(창3:15). (2) 그 후손을 보존시키신 노아와의 언약(9:9). (3)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복을 수여하시겠다는 아브라함과의 언약(15:18). (4)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지명하시는 시내산 언약(출19:5-6. (5) 제사장의 속죄를 통하여 화해를 이루게 하시는 레위족의 언약(민25:1213). (6) 다윗 왕가를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야적인 구원을 나타내는 다윗 언약(삼하23:5) 등. 이러한 언약들은 각기 똑같은 구속적인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가운데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특별히 그 언약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예배 의식적인 응답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어떤 '섭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예배 의식적인 순종이라는 독특한 형태로서 입증되는 언약의 기간 동안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새로운 언약조차 두 가지 양태로 나타난다. (7)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재의 새 언약으로, 이것은 내면적으로는 "그들의 마음에" 화해를 허락하시고(항상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표현된다), “그들 모두가 나를 알리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있으며, “내 들의 죄악을 이므로”로 끝나 언약이다. 그러나 이 언약의 의식인 주의 만찬은 "'그가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기리는 섭리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전11:26. (8) 이번 경우의 언약에 대해서는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바, 그것은 화평에 대한 미래의 언약으로, 우리의 내면적인 구원이 외부적인 자연계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데 이르는 그 때에(겔 34:25), 직접적인 영적 교통이 '대면하여' 이루어질 그때에(20:35;37:27),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가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화평의 목적을 이루어 낼 그 때에 (34:28) 이루어질 것이다.

언약궤 

<보라> 여호와의 궤

언어 speech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수단과 체계 또는 기호나 문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보면 언어의 기원을 바벨탑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모든 인간에게 하나의 언어가 있었다(창 11:1). 그 언어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언어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벨탑을 쌓는 인본주의적인 죄로 인하여 언어의 혼잡이 초래되었는데(11:7-9), 그 언어에 따라 민족들이 나뉘기도 하였다. 인간의 죄로 인한 언어의 혼잡은 언어로 인한 통일성의 파괴를 뜻했고, 이러한 파괴된 언어의 혼잡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로 통일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방언 사건이 다(행2:5-13).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시대에는 주로 히브리어를 사용하였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아람어와 당시 널리 통용되던 헬라어를 혼용하였다. 성경에서 언어는 한 민족을 규정짓는 도구이기도 하며 (행18:15), 기호나 문자 외에도 말하는 행동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는데(잠29:20) 유다 백성들의 범죄 가운데 하나가 이런 말로 짓는 죄였다(사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