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Jordan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하게 흐르는 큰 물의 집합체로서 그것은 초기 예수의 사역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요단'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래로 흐름' 또는 '내려가는 자'를 뜻하는 '야라드' (ㄱㄱ?)로부터 파생되었다. 그것의 과정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이름의 적절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시리아에 있는 네 강은 요단강의 원천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바레이그힛, 40km 길이이며 헬몬산 서쪽 기슭에 있는 하스바니, 단, 9km 정도로 비록 길이는 짧지만 이것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바니아스가 그것이다. 이 마지막 이름의 강 위에 한때 파네아스시가 서 있었다.
이곳에는 그리스 신 판의 잘 알려진 동굴이 위치해 있었다. 뒤에 이곳은 시몬 베드로가 대신앙고백(마16:16) 을 했던 가이사랴 빌립보로 불리워졌다. 이 네강은 길이 33km, 넓이 8km, 해수 표면보다 2m 높이인훌레호로 합해져 흘러 들어간다. 최근 이 호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에 의해 농토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요단은 17km정도 아름다운 호수인 갈릴리 바다에서 내려간다. 갈릴리 바다에서 출발하여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단강의 직선거리는 약 117km에 이른다. 그러나 그 강 자체는 뱀처럼 굽어 있기 때문에 333km 정도의 길이가 된다. 사해의 표면은 해수면보다 404m 낮다. 요단강의 넓이는 28-31m로 다양하고, 깊이는 1-3m정도로 다양하게 변한다. 또한 강이 만든 골짜기는 북쪽에서는 7km에서 여리고 근처에서는 23km의 넓이로 변한다. 비록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강이지만 요단강은 크기에 있어서 다른 큰 나라의 강들과는 다르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 사이에서 급류로 흐르기 때문에 그강에서는 어떤 교통 수단도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이계곡의 상태가 습지이기 때문에 여러 장소에서 굉장한열기가 생긴다.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특히 이스라엘 역사 동안에 요단강 주변에는 큰 도시가 세워지지 않았다.
성경에서 요단강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지만 '아라바 시내' (황량한 평야, the river of thewildemess, 암6:14 KJV) 그리고 '요단의 자랑’ (the prideof the Jordan, 슥11:3 KJV)으로 한때 불려졌다. 요단 계곡에서 발견되는 자연 생태계는 주의깊게 연구되어왔다. 그것들 중에 어떤 것은 아주 독특하다. 이 강에서 발견되는 30종의 물고기 중에 16종은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보고되었다. 이 지옥같은 골짜기에서 관찰되는 45종의 새 중에 23종은 이 지역에서만 독특하게 산다. 약 162종의 초목이 확인되었는데,그 중 135종은 아프리카가 원산지이다. 그것들은 피마자유 식물, 위성류속(渭城柳屬) 식물, 버드나무, 포플러, 그리고 여리고 근처에서 발견되는 서양 유도화 등이다. 실제적으로 요단강 제방 위에 큰 도시는 세워지지 않았더라도 이 지역에 속한 몇몇 지질학적 용어들이 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시기에 북쪽에는 열 개의그리스 도시 연맹인 데가볼리라는 지역이 있었고 요단강 동쪽에는 아홉 개의 도시가 있었다. 그리고 그은 예수의 사역 초기에 언급되었다(마4:25). 성경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이런 부류의 펠라(Pella)라는 다른 도시가 있었는데 전승에 따르면 A. D. 70년 예루살렘 멸망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피했던 도시이다.
요단에서 흐르고 있는 중요한 강들은 모두 동쪽에있다(구약성경에서는 요단 서편으로 흘러가는 강은언급하지 않았다). 첫번째로 갈릴리 바다 남쪽으로7km 지점에 있는 야르묵(Yamuk) 강인데, 성경에는나오지 않았다. 여기에는 가장 큰 현대식 전기 발전소가 있다. 이 강의 아래쪽에는 여호수아 17:16에 나오는 벧스안(Beth- shean)이란 도시가 있었는데 그것의 발굴작업은 문명화가 B. C. 3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드러냈다. 후에 그것은 사이도폴리스(Scythopolis)로 불렸다. 이 장소의 남쪽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사람들에게 베풀던 애논(Aenon)이다(요3:23). 왕상 17:2-7에 나오는 그릿 시냇가(TheBrook Kerith)는 여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강은 갈릴리 바다와 사해 중간쯤 위치해 있는 얍복(the Jabbok) 강이다. 그런데 이 강은야곱이 천사와 씨름했던 유명한 장소이며(창32:22),그 후에 국경선으로 그어졌다(민21:24;수12:2), 요단강과 이 강의 합류지점에 아담(Adam)으로 알려진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도하 시기에 큰 물이 진행을 가로막고 있었다(수3:16). 그 강의 서편으로 사해 가까이 그리고 여리고에서 동쪽으로 1-1, 5km지점에 길갈이라는 도시가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열두 돌을 세웠었다(수4:19-20). 이 장소는 그 후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삼상7:16;10:8).
이스라엘 전역사에서 요단강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지파의 도하(渡河) 사건이다. 그런데 요단 도하는 신명기 3:20,25,27에서 모세에 의해 예고되었었다. 가끔 요단강이 국경선으로 언급될지라도 그것은 이스라엘이나 또는 특별한부족에 대한 경계선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므낫세 지파가 강 양쪽의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강을 건너 서편 땅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민35:10;신3:20;11:31;31:13;수1:2). 약속된 땅이란 일반적으로 오요단강 서쪽 영토를 말한다. 요단강을 건너는 기사는 여호수아 3장과 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경에서 요단강은 단지 하나의 특별한 면에서 중요하다. 세례 요한이 그의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던 곳이 여기이며(마3:6; 막1:5; 요1:28:3:260, 이 강에서예수 자신이 세례를 받았다(마3:13: 막1:9, 눅4:1). 신약성경에서 나온 다른 사건은 직접적으로 요단강과 관계가 없다(요단강 이 편에서 행했던 주의 사역에 대한언급들은 마 19:1과 막 10:1에서 주님께서 단지 그 강을건너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하루 일을 마무리하는 것에 관한 내용에서도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삼으려는 것을 피하실 때 예수는 요한이 처음에 세례주던 곳으로 가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셨다(요10:40), 빌립이 가사(Gaza) 근처에서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한 것으로부터 초대교회가 선교 사역을 시작했을 때, 신약성경에 따르면 사도들과 초대 제자들의 모든 선교활동은 시리아 북쪽과 소아시아, 그리스와 이탈리아 서쪽 그리고 아마도 스페인까지 나아갔다. 예수의 세례 이후 요단강에서는 실제로 어떤 크고중요한 역사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갈릴리 바다에서 여리고까지의 요단 계곡은 19세기까지 미탐험지였다.
요단강에 대한 주제는 빈번하게 교회의 의식에서그리고 교회의 찬송과 시에서 등장한다. 이스라엘이요단강을 건넌 사건과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비교하는것은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아주 정확한해석으로는 여겨질 수 없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넜을 때 평화로운 시절을 맞이하지 못했고, 잠시 동안의 승리 이후 수많은 전쟁과 압제와 패배를 겪었으며,궁극적으로는 재앙과 그 땅으로부터 추방되는 종말을맞았기 때문이다.
요단 저편 Beyond the Jordan
요단 저편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따라 주로 요단 강 서쪽(신3:20,25;수5:1;17:2)이나, 동쪽(창50:10;신1:15;12:1;13:8,32;14:3;18:7;24:8)을 가리킨다.
요담 Jotham
1. 기드온의 막내 아들로, 기드온의 서자인 아비멜렉이 70명이나 되는 기드온의 아들들을 대량 학살했을 때, 요담만이 숨어서 살아 남았다(삿9:5). 그는 아비멜렉이 세겜에서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겜이 내리다 보이는 그리심 산에 올라가 성경에서최초로 나오는 비유인 '가시나무 우화' (삿9:8-15)를 통하여 아비멜렉의 잘못을 책망하고 세겜 사람들은 그로부터 돌아올 것을 경고한 후(16-20절) 두려워 브엘로도망가서 지냈다(21절). 결국 3년후에 요담의 저주가성취되어 (57절) 세 사람들이 '진실과 의로움'이 없었음이 증명되었다(16,19절). 이렇듯 요담은 당시 이스라엘 부족연합체 내부의 보수적인 무리들 사이에퍼져있던 반(反)정체제의 정서를 밝히 보여준다고할 수 있다.
2. 유다의 11번째 왕으로서 어머니는 사독의 딸 여루사였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아마도 아사랴에 대한왕명이었을 것임. 왕하15:32;대상3:12)가 문둥병에 걸리자 B. C. 750년경부터 섭정으로써 통치하기 시작하였으며(왕하15:5-6;대하26:21, 16세 등극) 단독으로는25세에 등극하여 B. C. 740-732년에 걸쳐서 통치하였다. 때때로 여로보암 2세(B. C. 786-746) 통치하의 이스라엘의 강대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웃시야와 요담은 유다의 번영기를 이루었다. 예루살렘의 방벽을 수리하고 군대를 재편했으며 에돔땅엘랏(에시온게벨?)을 유다의 항구도시로 복원하고나서(왕하14:22) 웃시야는 요담에게 확고한 왕의 지위를 물려주었다.
요담은 여호와 보시기에 옳게 행하였으나 산당을제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왕하15:33-34), 백성들은계속 종교적으로 변절하였다(참고, 14:4;15:4). 요담의통치 기간중에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으로 인식된(왕하15:35) 반(反) 앗시리아 연합세력인 이스라엘 왕베가와 아람왕 르신의 침입이 시작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위기를 맞는 것은 아들 아하스 왕 때에 와서이다(참고, 사7:1-8:15). 역대기에서(대하27:1-9) 그는 신실하며 대 건축가이고 전쟁에서 승리한 지도자로서묘사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의 부패한 종교의식에 대하여서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곳을 들어갔던 아버지 웃시야의 잘못된 교훈 등에 대하여 의롭게 행동하였다(27:2. 참고, 26:16-20), 남쪽으로 오벨성을 쌓아서 일찍이 예루살렘 방벽을 강화하려 했던부왕 웃시야의 업적을 보강했으며(참고, 훗날 히스기야왕 32:5, 므낫세왕 33:14) 산중에 성채들과 망대들을세워서 유다의 입지를 향상시켰다(27:4). 또한 암몬 족속과 싸워서 이겨 조공을 받기도 했다.
요동하다 move
흔들리어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극심하게 불안정한 상태를 나타낸다. 견고한 땅이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엄청나게 진동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우주적 혼란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60:2), 의인들은 반석이요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때문에 요동치 않고 안전하다(시15:5:16:8;62:2; 112:6). 이 단어는 또한 땅의 흔들림, 바다의 날뜀(시65:7), 사람들의 동요나 흔들림(렘51:55),유혹과 아첨에 속아 넘어가는 것(행2:25살전3:3) 등을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요라 Jorah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한 가문의 족장이다(스2:18). '하립' (느7:24;10:19)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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