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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유의 / 유익(하다) / 유인하다 / 유일 / 유전

유의 

<보라> 유심

유익/-하다 profit

이로움이나 이득이 있다. 개역성경에서 유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가운데서도 부당이득이나 이익을 의미하는‘베차' 와 이익을 주다, 도움을 주다는 의미의 ‘야알'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야알' 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사48:17) 제외하고는 두 단어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베차' 의 경우에는 어떤 욕구를 채우기 위한활동으로부터 얻어지는 개인적인 이득(창37:26;시30:9;말3:14)을 가리키는 말로 부당한 이득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이 외에도 ‘토브’의 경우에는 ‘좋은 것’, ‘선한 것' 이란 의미를 지닌 말로 이스라엘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이나(렘18:10),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는 유익(시119:71)을 가리키기도 한다. '야타브'의 경우에는 '훌륭하다, 만족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예레미야 409에서는 상대적인 훌륭함이나 만족을 가리킨다. 전도자는 전도서에서 이땅에서 얻어지는 유익의 한계성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참된 유익을 찾을 것을 교훈한다(1:35:11).
유익에 해당하는 헬라어로는 '케르도스', '티베' 등이 사용되지만 상대적으로 '쉼페로'가 더 많이 나타난다. 신약에서는 유익이 구약에서와는 달리 보이는 현상은 유익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익이 내포되어 있는 현상들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마태복음 5:29-30에서는 죄로 유인하는 지체 하나를 잃는 편이 온 몸의 파멸보다 유익하다고 한다. 비록 지체 하나를 잃는 손해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유익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50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주는 유익에대해 언급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현실적으로는 손해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를 찾게 되며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어지는 유익이내포되어 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도 현재의 고난을가리켜 우리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 역시 고난이라는 손해에는 온전케 되는, 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는 유익이 내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히12:10). 바울은 이 단어를 대부분 영적 생활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고전7:35;12:7;딤전4:8;딛3:8).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은유익으로 규정하지만(빌1:21) 반면에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예전의 모든 유익을 해로 여겼다(3:7).

 

유인하다 lead away

남을 꾀어냄. 성경에서는 전쟁에서 적을 꾀어내는 전술의 하나(수8:6,16)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함정을 파서 빠지게 하는 것, 좋지 않은 길로 꾀는 것에 대한 표현(잠28:10;딤후3:6)으로도 사용되었다.

유일 only

일반적으로 오직 그 하나밖에 없음을 뜻하는 말로 시편에서는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나 영혼을 의미하는말로 사용되었다(시35:17). 하지만 성경에서는 대부분 오직 하나밖에 없는 여호와 하나님, 즉 유일신 사상을가리키는데 사용되며 이 사상은 하나님의 절대 자존성을 의미한다(막 12:29;요5:44). 바울서신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한 하나님(고전8:6, 한 분(롬3:30;고전8:4)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전 tradition

전수되어진 것, 특별히 한 교사에 의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전수되어진 것. 유전은 공동번역과 개정판에서는 '전통'으로, 새번역은'관습' (마15:2,3,6)으로 번역되었다. 복음서들 중에서주된 언급은 마태복음 15장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유대인의 유전과 관련된다.
1. 유대인의 유전. '유전' 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참고, 창7:3), 그러나 신·구약중간시대에 구약에 관한 많은 가르침이 랍비들에 의해서 덧붙여졌다. 유전은 교사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되어졌고 예수의 시대에 와서는 성경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유전을 동등하게 여기는 것을 정죄했다. 이와같은 유전에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겨지고', ‘효력을 잃고’,'팽개쳐지고' 그리고 거절되었다(마15:3,6;막7:8-9). 유전에 의해서 가르쳐진 교리들은 '인간의 명령들' 이었다(마15:9;막7:6-7).
2. 그리스도인의 유전. 예수는 그 자신의 가르침을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에 놓았고 그것을 그의사도들에게 전수했다. 그러므로 산상설교에서 예수는율법을 인용하시면서 …으나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가르침을 분명히하셨다(마5:22,28,32,34,39,44;6:25), 이와같은 그의 행위의 정당성은 그의 위격 안에서 발견되어진다. 성령의기름부음을 받은 자이자 육신을 입은 말씀인 예수만이 홀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정당하고 권위있게 주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서신서들도 유전과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위격을 강조하고 있다. 골로새서 2: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아닌사람의 유전을 따른 철학과 헛된 속임수의 제물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1:14,16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안에 그리스도를 계시하셨을 때에 장로들의 유전을 버렸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는 참된 유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참된유전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유전은 세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첫째,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눅1:2;고전11:23;15:3),둘째, 그 사실들에 관한 신학적 해석(고전15장), 셋째,그 사실들로부터 나오는 삶의 양식(고전11:2;살후2:15:3:6-7)이다. 그러므로 유다서 3절에 있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은 이 세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다(참고, 롬6:17).
그리스도는 그에 대한 사도적 증거에 의해서 알려졌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들의 유전이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전11:2;살후2:15;3:6). 에베소서 4:20-21 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들은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들었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그를 증거하라고 명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들을 모든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성령의 선물을 약속했다(요15:26-27;16:13). 이와같은 목격자적인 증거와 성령의인도를 받는 증거의 결합은 구약에 대한 타당하고 참된 보충이 되는 유전을 생산했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5:18과 베드로후서 3:16은 사도적 증거를 성경과 동등한 지위에 놓고 그와같이 묘사한다.
영향력있는 한 양식비평 학파는 신약의 유전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지, 역사적 사실들을 전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주장은 이어서 신약의 내용이 그들의 신념에 의해서 채색될 수있다고 진전된다. 그러므로 성서 학자의 임무는 원래그리스도에 속한 것과 초대 신자들에 의해서 덧붙여진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게르하르츠존(B. Gerhardsson)은 이들 양식비평적 전제의 타당성을 공격한다. 그는 후대 랍비들의 철저한 유전 전수의 방법이 신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지적한다.암기, 교사의 말을 암송하기, 내용을 짧은 본문으로 축약하기, 그리고 공책 사용 등의 방법들이 그리스도의시대에 일반적인 것이었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도 설교를 통한 희석된 유전을 무의식적으로 전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의식적으로 전수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의 독특성이 고려될 때에 사실에 대한 인위적 첨가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게르하르츠존의 주장은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 반응은 후대 랍비들의 방법을 읽어서 초대교회 시대로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당시 유대인의 가르침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은 두드러진특징이 있음을 지적했다. 게르하르츠존이 그의 주장을지나치게 말했을지는 몰라도 그는 복음서들이 쓰여질때의 상황이 어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상상에 의해서사실을 보충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 가르침의 올바른 전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유전' 에 관한 바울의 권고는 이같은 상황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도의 임무는 목격자적 증거에 제한되었고 오직 목격자적 증거만이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관해 충실한 증거를 할 수 있듯이 참된 유전또한 사도적이어야만 했다. 이것은 후에 교회에 의해인정되었다. 그때에 신약의 정경은 그 책이 갖는 사도성에 근거해 선택되었다. 사도적 유전이 한때는 구어적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증거를 포함한사도적 글들 안에 정체화되었다. 이제 다른 가르침들은 그것들이 아무리 교훈적이고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정죄를 받은 유대인의 유전이 갖고 있는 결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신·구약 성경과같은 권위를 지닌 동등한 지위에 놓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