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약게드 아흐압 레이제벨 엩 콜 아쉘 아사 엘리야후 웨엩 콜 아쉘 하라그 엩 콜 한네비임 베하렙
개역개정,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새번역,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말성경,1 아합은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엘리야가 모든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가톨릭성경,1 아합은 엘리야가 한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를 죽인 일을 낱낱이 이제벨에게 이야기하였다.
영어NIV,1 Now Ahab told Jezebel everything Elijah had done and how he had killed all the prophets with the sword.
영어NASB,1 Now Ahab told Jezebel all that Elijah had done, and how he had killed all the prophets with the sword.
영어MSG,1 Ahab reported to Jezebel everything that Elijah had done, including the massacre of the prophets.
영어NRSV,1 Ahab told Jezebel all that Elijah had done, and how he had killed all the prophets with the sword.
헬라어구약Septuagint,1 και ανηγγειλεν αχααβ τη ιεζαβελ γυναικι αυτου παντα α εποιησεν ηλιου και ως απεκτεινεν τους προφητας εν ρομφαια
라틴어Vulgate,1 nuntiavit autem Ahab Hiezabel omnia quae fecerat Helias et quomodo occidisset universos prophetas gladio
히브리어구약BHS,1 וַיַּגֵּד אַחְאָב לְאִיזֶבֶל אֵת כָּל־אֲשֶׁר עָשָׂה אֵלִיָּהוּ וְאֵת כָּל־אֲשֶׁר הָרַג אֶת־כָּל־הַנְּבִיאִים בֶּחָרֶב׃
성 경: [왕상19:1]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셉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고하니 - 이에 해당하는 '나가드'(*)는 '알게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말에는 '넌지시 알리다'는 뜻의 어감(語感)이 들어 있다. 때문에 보통 이 동사로 설명되는 관계란 마치 공범자(共犯者)들끼리 갖는 동료의식처럼 친밀한 관계이다. 따라서 아합이 어느 정도로 이세벨과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한편 본절은 아합이 앞장에서 목도한 이적과 바알 선지자 모두를 칼로 죽인 엘리야의 위업(18:30-467)에 질려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국(一國)의 통치자인 아합은 줏대없이 그 모든 사실을 왕후 이세벨(Jezebel)에게 고하고 만다. 이러한 아합의 유약한 면은 본서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이세벨의 과단성(果斷性)과 극명하게 대조된다(21:7).
와티쉬라흐 이제벨 말앜 엘 엘리야후 레모르 코 야아순 엘로힘 웨코 요시푼 키 카에트 마하르 아심 엩 나페쉬카 케네페쉬 아하드 메헴
개역개정,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새번역,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우리말성경,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만약 내일 이맘때까지 내가 네 목숨을 죽은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의 목숨처럼 되게 하지 못하면 내가 우리 신들에게서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가톨릭성경,2 이제벨은 심부름꾼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그대의 목숨을 그들의 목숨과 한가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들이 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오."
영어NIV,2 So Jezebel sent a messenger to Elijah to say, "May the gods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by this time tomorrow I do not make your life like that of one of them."
영어NASB,2 Then Jezebel sent a messenger to Elijah, saying, "So may the gods do to me and even more, if I do not make your life as the life of one of them by tomorrow about this time."
영어MSG,2 Jezebel immediately sent a messenger to Elijah with her threat: "The gods will get you for this and I'll get even with you! By this time tomorrow you'll be as dead as any one of those prophets."
영어NRSV,2 Then Jezebel sent a messenger to Elijah, saying, "So may the gods do to me, and more also, if I do not make your life like the life of one of them by this time tomorrow."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ιεζαβελ προς ηλιου και ειπεν ει συ ει ηλιου και εγω ιεζαβελ ταδε ποιησαι μοι ο θεος και ταδε προσθειη οτι ταυτην την ωραν αυριον θησομαι την ψυχην σου καθως ψυχην ενος εξ αυτων
라틴어Vulgate,2 misitque Hiezabel nuntium ad Heliam dicens haec mihi faciant dii et haec addant nisi hac hora cras posuero animam tuam sicut animam unius ex illis
히브리어구약BHS,2 וַתִּשְׁלַח אִיזֶבֶל מַלְאָךְ אֶל־אֵלִיָּהוּ לֵאמֹר כֹּה־יַעֲשׂוּן אֱלֹהִים וְכֹה יֹוסִפוּן כִּי־כָעֵת מָחָר אָשִׂים אֶת־נַפְשְׁךָ כְּנֶפֶשׁ אַחַד מֵהֶם׃
성 경: [왕상19:2]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내일 이맘때에는 - 본절은 우리들에게 의문점을 갖게 해준다. 즉 진노한 이세벨은 왜 오늘 당장 엘리야를 처단하려 들지 않았을까? 이에 대하여 많은 주석가들은 이세벨이 엘리야를 위협하여 멀리 쫓아내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으로 설명한다(B hr, Keil& Delitzschk, Matthew Henry, Wordsworth). 왜냐하면 갈멜 산상의 승리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환호에 싸인 엘리야(18:30-40)를 직접적으로 처단하기는 어렵다고 이세벨이 판단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세벨의 잔인하고 과감한 성격을 감안할때 그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적어 보인다. 도리어 이세벨은 엘리야를 공개 처형할 의사를 전했다고 봐야 한다. 즉 이세벨은 다음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엘리야를 처형함으로써 전날 백성들이 받은 충격을 무효화하려 한 것이다. 아무튼 본장은 적어도 이세벨의 위협이 실제적인 생명의 위협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3, 10, 14절).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성명 같게 하리라 - 여기서 '저 사람들'이란 앞서 엘리야가 처단한 450인의 바알 선지자들을 가리킨다(18:22, 40). 따라서 이 말에는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이세밸의 극심한 증오와 비장한 각오가 들어 있다. 그녀가 아합으로부터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처럼 더욱 강퍅해진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신들이...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 이세벨의 맹세 속에 담긴 이 말은 의미 심장하다. 특히 엘리야가 한 분 하나님를 두고 맹세한 것과 비교하면 그 부정적이고 잡다한 인상은 두드러진다(18:15). 그런데 참신이신 한 분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이처럼 주위의 모든 것, 특히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것들을 신격화하게 마련이다. 어쨌든 인간은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 따라서 한 분 하나님께 굳건히 헌신하든가 아니면 다른 모든 것에 굴복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할 것이다.
와야르 와야콤 와예렠 엘 나프쇼 와야보 베엘 쉐바 아쉘 리후다 와야나흐 엩 나아로 솸
개역개정,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새번역,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 ㉠또는 '보고서'
우리말성경,3 엘리야는 이 상황을 보고 목숨을 지키려고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그는 유다의 브엘세바에 이르자 자기 종을 거기에 남겨 두고
가톨릭성경,3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유다의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 두고,
영어NIV,3 Elijah was afraid and ran for his life. When he came to Beersheba in Judah, he left his servant there,
영어NASB,3 And he was afraid and arose and ran for his life and came to Beersheba, which belongs to Judah, and left his servant there.
영어MSG,3 When Elijah saw how things were, he ran for dear life to Beersheba, far in the south of Judah. He left his young servant there
영어NRSV,3 Then he was afraid; he got up and fled for his life, and came to Beer-sheba, which belongs to Judah; he left his servant there.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εφοβηθη ηλιου και ανεστη και απηλθεν κατα την ψυχην εαυτου και ερχεται εις βηρσαβεε την ιουδα και αφηκεν το παιδαριον αυτου εκει
라틴어Vulgate,3 timuit ergo Helias et surgens abiit quocumque eum ferebat voluntas venitque in Bersabee Iuda et dimisit ibi puerum suum
히브리어구약BHS,3 וַיַּרְא וַיָּקָם וַיֵּלֶךְ אֶל־נַפְשֹׁו וַיָּבֹא בְּאֵר שֶׁבַע אֲשֶׁר לִיהוּדָה וַיַּנַּח אֶת־נַעֲרֹו שָׁם׃
성 경: [왕상19:3]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이 형편(形便)을 보고 - 본절에 해당하는 원어 '라아'(*)는 단순히 '바라보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문맥상 본절과 같이 번역했을 따름이다. 한편 어떤 영역본들은 당시의 상황에서 엘리야가 띠었을 정서적 반응에 주목하여 이를 '두려워했다'(he was afraid)로 번역하였다(Modern Language, RSV). 한글 공동 번역도 같은 경우로써 이와 비슷하게 '두려워 떨며'로 번역하고 있다.
그 생명을 위하여...브엘세바에 이르러 - 이세벨의 단호한 경고에 부딪친 엘리야는 할 수 없이도 도피길에 오른다. 이적과 능력의 종으로서의 모습을 온 백성들에게 떨쳐보였던 엘리야(18:30-46)가 불과 하루 만에 이처럼 황망히 도피길에 오르는 모습은 실로 아이로니칼(ironical)하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와 동일하게 연약한 성정(性情)을 지닌 엘리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엘리야가 행한 이적적 권능이란 오직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한편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네rpq(Negeb) 지방의 한 성읍이다. 이곳은 팔레스틴 최남단 지역으로서 곧 헤브론 서남쪽 55km 지점이다. 삼상 3:20 주석 참조. 따라서 엘리야는 이세벨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는 남왕국 유다의 남쪽 국경 지대로 피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환을...머물게 하고 - 엘리야가 행한 이 조치에서 당시 그가 얼마나 큰 좌절감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가장 큰 승리 뒤에 찾아온 위협은 극도의 무력감과 허탈감을 낳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야기되기 쉬운 극도의 고립감을 엘리야는 자신의 사환조차 동행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Lange). 한편 이와 관련하여 엘리야의 피신 경로를 지도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웨후 하랔 밤미드발 데렠 욤 와야보 와예쉡 타하트 로템 에하트 에하드 와이쉬알 엩 나프쇼 라무트 와요멜 랍 앝타 아도나이 카흐 나프쉬 키 로 토브 아노키 메아보타이
개역개정,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새번역,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말성경,4 혼자서 하룻길을 가서 광야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가져가 주십시오. 저는 저의 조상들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4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영어NIV,4 while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desert. He came to a broom tree, sat down under it and prayed that he might die. "I have had enough, LORD," he said. "Take my life; I am no better than my ancestors."
영어NASB,4 But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came and sat down under a juniper tree; and he requested for himself that he might die, and said, "It is enough; now, O LORD, take my life, for I am not better than my fathers."
영어MSG,4 and then went on into the desert another day's journey. He came to a lone broom bush and collapsed in its shade, wanting in the worst way to be done with it all--to just die: "Enough of this, GOD! Take my life--I'm ready to join my ancestors in the grave!"
영어NRSV,4 But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wilderness, and came and sat down under a solitary broom tree. He asked that he might die: "It is enough; now, O LORD, take away my life, for I am no better than my ancestor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αυτος επορευθη εν τη ερημω οδον ημερας και ηλθεν και εκαθισεν υπο ραθμ εν και ητησατο την ψυχην αυτου αποθανειν και ειπεν ικανουσθω νυν λαβε δη την ψυχην μου απ' εμου κυριε οτι ου κρεισσων εγω ειμι υπερ τους πατερας μου
라틴어Vulgate,4 et perrexit in desertum via unius diei cumque venisset et sederet subter unam iuniperum petivit animae suae ut moreretur et ait sufficit mihi Domine tolle animam meam neque enim melior sum quam patres mei
히브리어구약BHS,4 וְהוּא־הָלַךְ בַּמִּדְבָּר דֶּרֶךְ יֹום וַיָּבֹא וַיֵּשֶׁב תַּחַת רֹתֶם [כ= אֶחָת] [ק= אֶחָד] וַיִּשְׁאַל אֶת־נַפְשֹׁו לָמוּת וַיֹּאמֶר רַב עַתָּה יְהוָה קַח נַפְשִׁי כִּי־לֹא־טֹוב אָנֹכִי מֵאֲבֹתָי׃
성 경: [왕상19:4]
주제1: [호셉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 이스라엘 역사상 '광야'는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이교도의 우상 숭배 영향을 받아야했던 가나안 정착 시기와 달리, 과거 이스라엘의 광야 유랑 시절(민 33가1-49)은 그들 역사에 있어 가장 순수한 신앙을 보존했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언자들에게는 흔히 도시 문화에 대한 협오와 함께 광야에 대한 동경이 발견된다고 한다(Talmon). 더구나 엘리야가 들어간 광야는 '하나님의 산 호롑'으로 나아가는 첫 문턱이다. 즉 처음부터 엘리야는 호렙 산을 목적으로 하고 여정을 출발하였던 것이다(Hammond).
하룻길 - 구약 시대 당시 히브리인들이 거리를 나타내던 관용적 표현이다. 정확한 수치로 환산하기는 어려우나 '하룻길'(Day's Joumey)은 약 32-40km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로뎀나무 - 로뎀나무(broom tree,NIV, RSV)는 사막의 메마른 골짜기나 하상(河床)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이다. 콩과의 식물로서 흰 꽃이나 연보라색 꽃을 피우는데 대개 1-2㎞의 높이이다. 오늘날 아랍인들은 이 나무를 '금작화'(genista Retem 또는genista Monoserma)라고 부른다. 이 나무는 광야에서 바람과 햇볕을 잘 막아 주기 때문에 대상(隊商)들에게 매우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사막에 거주하는 족속들은 이를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Lange, Robinson,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p. 254).
여호와여...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 불과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18:30-46)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실상 선지자 요나도 이와 비슷한 탄원을 하나님께 드린 적이 있지 않은가(욘 4:8)!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큰 기적과 역사를 이룬다고 할지라도 항상 우리는 인간의 연약성을 생각하며 늘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넉넉하오니 - 이에 해당하는 '라브'(*)는 '충분하다'(enough)는 뜻이다. 그러나 본절은 문자대로의 뜻과는 달리 희망을 상실한 사람의 체념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그러한 뜻을 보다 직접적으로 "이제 다 끝났습니다"로 표현하고 있다.
내 열조(列祖)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 '낫다'에 해당하는 '토브'(*)는 보통 '선하다',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질이나 가치에 있어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우를 가리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야가 자신이 선조들에 비해 나을 바가 없다고 한 말은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가? 우선 본절은 엘리야가 자신을 '못난 놈'으로 자조하는 비애 섞인 말임을 명확히 하자. 그 다음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하는 일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았던 사람임을 기억하자. 그런데 그 사명이 성공한듯 보이는 순간에 닥친 위기(1, 2절)는 그로 하여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의 좌절과 허탈감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러한 비탄속에서 이제 엘리야는 지금까지 선조들이 겪은 이스라엘 역사의 성공과 실패에서 자신 역시 한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는 실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와이쉬캅 와이솬 타하트 로템 에하드 웨힌네 제 말앜 노게아 보 와요멜 로 쿰 에콜
개역개정,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새번역,5 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우리말성경,5 그리고는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그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일어나서 뭘 좀 먹어라.”
가톨릭성경,5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5 Then he lay down under the tree and fell asleep. All at once an angel touched him and said, "Get up and eat."
영어NASB,5 And he lay down and slept under a juniper tree; and behold, there was an angel touching him, and he said to him, "Arise, eat."
영어MSG,5 Exhausted, he fell asleep under the lone broom bush. Suddenly an angel shook him awake and said, "Get up and eat!"
영어NRSV,5 Then he lay down under the broom tree and fell asleep. Suddenly an angel touched him and said to him, "Get up and eat."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εκοιμηθη και υπνωσεν εκει υπο φυτον και ιδου τις ηψατο αυτου και ειπεν αυτω αναστηθι και φαγε
라틴어Vulgate,5 proiecitque se et obdormivit in umbra iuniperi et ecce angelus tetigit eum et dixit illi surge comede
히브리어구약BHS,5 וַיִּשְׁכַּב וַיִּישַׁן תַּחַת רֹתֶם אֶחָד וְהִנֵּה־זֶה מַלְאָךְ נֹגֵעַ בֹּו וַיֹּאמֶר לֹו קוּם אֱכֹול׃
성 경: [왕상19:5]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천사가...먹으라 하는지라 - 70인역(LXX)에는 '천사'가 '어떤 이'로 나와 있다. 그러나 7절에서 다시 언급된 바와 같이 여기 언급된 '천사'는 '여호와의 사자' 곧 구약시대 당시 이 땅에 현현(顯現)하신 그리스도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창 16: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앞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4절)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땅 위에서 더 살도록 격려하며 기적적으로 음식물을 공급해 주셨다(6절). 이는 곧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긍휼과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어루만지며 - 이에 해당하는 '나가'(*)는 특별히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단 8:18;10:16).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만지심은 상황을 변하게 하며 새 힘을 주는 능력으로 작용한다. 또한 하나님의 만지심은 그 대상이 자신에게 속한 존재라는 의미를 주기도 한다(7절).
와야베트 웨힌네 메라아쇼타우 우가트 레차핌 웨차파하트 마임 와요칼 와예쉐트 와야솹 와이쉬캅
개역개정,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새번역,6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우리말성경,6 엘리야가 둘러보니 머리맡에 뜨거운 숯으로 구워 낸 빵 한 덩이와 물 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고 마시고 난 뒤 다시 누웠습니다.
가톨릭성경,6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영어NIV,6 He looked around, and there by his head was a cake of bread baked over hot coals, and a jar of water. He ate and drank and then lay down again.
영어NASB,6 Then he looked and behold, there was at his head a bread cake baked on hot stones, and a jar of water. So he ate and drank and lay down again.
영어MSG,6 He looked around and, to his surprise, right by his head were a loaf of bread baked on some coals and a jug of water. He ate the meal and went back to sleep.
영어NRSV,6 He looked, and there at his head was a cake baked on hot stones, and a jar of water. He ate and drank, and lay down again.
헬라어구약Septuagint,6 και επεβλεψεν ηλιου και ιδου προς κεφαλης αυτου εγκρυφιας ολυριτης και καψακης υδατος και ανεστη και εφαγεν και επιεν και επιστρεψας εκοιμηθη
라틴어Vulgate,6 respexit et ecce ad caput suum subcinericius panis et vas aquae comedit ergo et bibit et rursum obdormivit
히브리어구약BHS,6 וַיַּבֵּט וְהִנֵּה מְרַאֲשֹׁתָיו עֻגַת רְצָפִים וְצַפַּחַת מָיִם וַיֹּאכַל וַיֵּשְׁתְּ וַיָּשָׁב וַיִּשְׁכָּב׃
성 경: [왕상19:6]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숯불에 구운 떡 - 이에 해당하는 '우가트 레차핌'(*)은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는 달리 '뜨거운 돌 위에 놓인 떡'이란 뜻이다. 당시 초장(草場)을찾아 이리저리 유랑 생활을 하던 사막의 유목민들은 돌을 달구어 그 위에서 떡을 구워내었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떡이 엘리야에게 제공된 것이다.
와야솹 말앜 아도나이 쉐니트 와익가 보 와요멜 쿰 에콜 키 랍 밈메카 핟다렠
개역개정,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새번역,7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우리말성경,7 여호와의 천사가 다시 와서 그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일어나 뭘 좀 먹어라. 네 갈 길이 아직 멀었다.”
가톨릭성경,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7 The angel of the LORD came back a second time and touched him and said, "Get up and eat, for the journey is too much for you."
영어NASB,7 And the angel of the LORD came again a second time and touched him and said, "Arise, eat, because the journey is too great for you."
영어MSG,7 The angel of GOD came back, shook him awake again, and said, "Get up and eat some more--you've got a long journey ahead of you."
영어NRSV,7 The angel of the LORD came a second time, touched him, and said, "Get up and eat, otherwise the journey will be too much for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7 και επεστρεψεν ο αγγελος κυριου εκ δευτερου και ηψατο αυτου και ειπεν αυτω αναστα φαγε οτι πολλη απο σου η οδος
라틴어Vulgate,7 reversusque est angelus Domini secundo et tetigit eum dixitque illi surge comede grandis enim tibi restat via
히브리어구약BHS,7 וַיָּשָׁב מַלְאַךְ יְהוָה שֵׁנִית וַיִּגַּע־בֹּו וַיֹּאמֶר קוּם אֱכֹל כִּי רַב מִמְּךָ הַדָּרֶךְ׃
성 경: [왕상19:7]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 원문상으로는 '네가 가야할 길이 너무도 크다'는 말이다. 이는 곧 엘리야가 여행해야 할 거리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에서 엘리야의 광야행은 처음부터 행선지가 정해진 것이었음이 다시금 암시된다. 4절 주석 참조. 아마도 엘리야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의 전개에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께 매달리는 심정으로 길을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호렙 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과 비탄에 지친 엘리야는 여행을 지속할 여력도 의욕도 없었다. 천사의 도움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엘리야가 침체를 이겨내도록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5절 주석 참조.
와야콤 와요칼 와이쉬테 와예렠 베코아흐 하아키라 하히 알바임 욤 웨아르바임 라일라 아드 할 하엘로힘 호렙
개역개정,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새번역,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우리말성경,8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먹고 마셨습니다. 그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뒤 엘리야는 밤낮으로 40일 동안을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가톨릭성경,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영어NIV,8 So he got up and ate and drank. Strengthened by that food, he traveled forty days and forty nights until he reached Horeb, the mountain of God.
영어NASB,8 So he arose and ate and drank, and went in the strength of that food forty days and forty nights to Horeb, the mountain of God.
영어MSG,8 He got up, ate and drank his fill, and set out. Nourished by that meal, he walked forty days and nights, all the way to the mountain of God, to Horeb.
영어NRSV,8 He got up, and ate and drank; then he went in the strength of that food forty days and forty nights to Horeb the mount of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ι ανεστη και εφαγεν και επιεν και επορευθη εν τη ισχυι της βρωσεως εκεινης τεσσαρακοντα ημερας και τεσσαρακοντα νυκτας εως ορους χωρηβ
라틴어Vulgate,8 qui cum surrexisset comedit et bibit et ambulavit in fortitudine cibi illius quadraginta diebus et quadraginta noctibus usque ad montem Dei Horeb
히브리어구약BHS,8 וַיָּקָם וַיֹּאכַל וַיִּשְׁתֶּה וַיֵּלֶךְ בְּכֹחַ הָאֲכִילָה הַהִיא אַרְבָּעִים יֹום וְאַרְבָּעִים לַיְלָה עַד הַר הָאֱלֹהִים חֹרֵב׃
성 경: [왕상19:8]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호렙 산으로 피신하는 엘리야]
사십 주(晝) 사십 야(夜) - 브엘세바에서 호렙 산까지는 대략 350km으로서 정상적으로 꾸준히 걸을 경우 십여일 정도면 당도할 가능한 거리이다. 따라서 엘리야의 광야 40일은 행진만을 위한 기간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엘리야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때로는 금식도 하며 때로는 기도에 침익(沈溺)하기도 하면서 호렙 산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40일이었다는 것은 곧장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를 연상시켜 준다(신 9:9;마4:2). 특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40일 동안 바로 호렙 산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여호와앞에 엎드려 있었다(신9:18). 그러므로 엘리야의 광야 40일도 모세의 경우에 비추어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즉 이때 40은 인내의 한계를 채우는 수로서 그 이후엔 상황의 변화를 초래케 하는 수이다. 사실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 받아야 마땅할 백성들이 계속 보존케 된 것은 모세의 40일간 중보 기도 덕분이다(신 9:18, 19).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더이상 손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의 배교(왜냐하면 갈멜 산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변화가 없었으므로)에 대해 엘리야가 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짐을 지고 하나님을 찾은 기간이 바로 본절의 사십 주야인 것이다.
하나님의 산 호렙 - 호렙산(Mount Horeb)은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그 밑에서 장막을 쳤으며 모세가 여호와와 대화를 나누었던 신성한 산 시내(Mount Sinai)와 동일시된다(출 19장).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으며 단지 오늘날의 예벨 무사(Jebel Musa)가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3:1주석을 참조하라. 여하튼 이제 엘리야는 일찍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던 바로 그 장소로 실의에 빠진 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와야보 솸 엘 함메아라 와야렌 솸 웨힌네 데발 아도나이 엘라우 와요멜 로 마 레카 포 엘리야후
개역개정,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새번역,9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우리말성경,9 그때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가톨릭성경,9 그가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영어NIV,9 There he went into a cave and spent the night. An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영어NASB,9 Then he came there to a cave, and lodged there; and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and He said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영어MSG,9 When he got there, he crawled into a cave and went to sleep. Then the word of GOD came to him: "So Elijah, what are you doing here?"
영어NRSV,9 At that place he came to a cave, and spent the night there.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헬라어구약Septuagint,9 και εισηλθεν εκει εις το σπηλαιον και κατελυσεν εκει και ιδου ρημα κυριου προς αυτον και ειπεν τι συ ενταυθα ηλιου
라틴어Vulgate,9 cumque venisset illuc mansit in spelunca et ecce sermo Domini ad eum dixitque illi quid hic agis Helia
히브리어구약BHS,9 וַיָּבֹא־שָׁם אֶל־הַמְּעָרָה וַיָּלֶן שָׁם וְהִנֵּה דְבַר־יְהוָה אֵלָיו וַיֹּאמֶר לֹו מַה־לְּךָ פֹה אֵלִיָּהוּ׃
성 경: [왕상19:9]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의 탄식]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 굴에 해당하는 원어 '메아라'(*)앞에는 정관사 '하'(*)가 붙어 있으므로 '그 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엘리야가 들어가 유(留)한 굴은 호렙산에서 흔히 발견되어지는 일반적인 굴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지날때에 모세가 피해 있었던 반석 틈(출 33:22)일 가능성도 있다(Matthew Henry'sCommentary, Vol. , p.682).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이 말(*, 마 렉카 포)은 '무엇이 너를 여기 있게 하느냐'는 뜻이다. 공동 번역은 이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도 그러하다(What are you doing here?NIV, RSV, Living Bible). 그런데 이 질문은 새로운 사실을 묻는 물음이 아니고 도리어 질문받는 자를 일깨우는 물음이다. 즉 하나님은 엘리야의 실망과 체념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 물으신 것이다. 바로 이 질문은 엘리야 자신을 냉정히 성찰케 하는 도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종의 전환과 갱신의 계기를 마련하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또한 자신에게도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발견케 되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와요멜 칸노 킨네티 아도나이 엘로헤 체바오트 키 아제부 베리테카 베네이 이스라엘 엩 미즈베호테카 하라수 웨엩 네비에카 하레구 베하렙 와이와텔 아니 레받디 와예바케슈 엩 나프쉬 레카흐타흐
개역개정,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새번역,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0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매우 열심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서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제는 제 목숨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가톨릭성경,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영어NIV,10 He repli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The Israelites have rejected your covenant, broken down your altars, and put your prophets to death with the sword.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영어NASB,10 And he sai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the God of hosts; for the sons of Israel have forsaken Your covenant,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And I alone am left; and they seek my life, to take it away."
영어MSG,10 "I've been working my heart out for the GOD-of-the-Angel-Armies," said Elijah. "The people of Israel have abandoned your covenant, destroyed the places of worship, and murdered your prophets. I'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re trying to kill me."
영어NRSV,10 He answer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the God of hosts; for the Israelites have forsaken your covenant, throw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I alone am left, and they are seeking my life, to take it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και ειπεν ηλιου ζηλων εζηλωκα τω κυριω παντοκρατορι οτι εγκατελιπον σε οι υιοι ισραηλ τα θυσιαστηρια σου κατεσκαψαν και τους προφητας σου απεκτειναν εν ρομφαια και υπολελειμμαι εγω μονωτατος και ζητουσι την ψυχην μου λαβει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10 at ille respondit zelo zelatus sum pro Domino Deo exercituum quia dereliquerunt pactum Domini filii Israhel altaria tua destruxerunt et prophetas tuos occiderunt gladio et derelictus sum ego solus et quaerunt animam meam ut auferant eam
히브리어구약BHS,10 וַיֹּאמֶר קַנֹּא קִנֵּאתִי לַיהוָה אֱלֹהֵי צְבָאֹות כִּי־עָזְבוּ בְרִיתְךָ בְּנֵי יִשְׂרָאֵל אֶת־מִזְבְּחֹתֶיךָ הָרָסוּ וְאֶת־נְבִיאֶיךָ הָרְגוּ בֶחָרֶב וָאִוָּתֵר אֲנִי לְבַדִּי וַיְבַקְשׁוּ אֶת־נַפְשִׁי לְקַחְתָּהּ׃
성 경: [왕상19:10]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의 탄식]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 18:15 주석참조.
열심(熱心)이 특심(特甚)하오니 - 이 말(*, 칸느 키느티)은 '질투하다'는 뜻의 '카나'(*)가 두번 반복된 말이다. 즉 이는 '질투하고 질투하더니'라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신들을 숭배하는 작태에 엘리야가 심히 분노한 것을 가리킨다. 이때 그의 질투는 바로 질투하시는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는 데서 나온 열정이다(출 20:5).
오직 나만 남았거늘 - 원문은 '나, 나만 남았다'는 식의 표현이다. 이는 곧 엘리야의 탄식과 하소연이 그 호흡까지 느껴질 정도의 표현이다. 더군다나 '나만'에 해당하는 원어인 '바드'(*,alone)는 '분리되어 고립되다'는 개념이 강조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서 우리는 당시 엘리야가 얼마만한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알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는 엘리야의 잘못된 생각이다. 그 당사 이세벨의 박해 가운데서도 오바댜가 숨겨 놓은 100명의 선지자(18:4))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7천 명의 순결한 자가 남아 있었다(18절).
와요멜 체 웨아마드타 바할 리페네 아도나이 웨힌네 아도나이 오벨 웨루아흐 게도라 웨하자크 메파레크 하림 우므솨베르 셀라임 리페네 아도나이 로 바루아흐 아도나이 웨아하르 하루아흐 라아쉬 로 바라아쉬 아도나이
개역개정,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새번역,11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우리말성경,11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으로 가서 여호와 앞에 서 있어라. 이제 곧 내가 지나가겠다.” 그러고는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 여호와 앞에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지진 속에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영어NIV,11 The LORD said, "Go out and stand on the mountain in the presence of the LORD, for the LORD is about to pass by." Then a great and powerful wind tore the mountains apart and shattered the rock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fter the wind there was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영어NASB,11 So He said, "Go forth, and stand on the mountain before the LORD." And behold, the LORD was passing by! And a great and strong wind was rending the mountains and breaking in pieces the rock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nd after the wind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영어MSG,11 Then he was told, "Go, stand on the mountain at attention before GOD. GOD will pass by." A hurricane wind ripped through the mountains and shattered the rocks before GOD, but GOD wasn't to be found in the wind; after the wind an earthquake, but GOD wasn't in the earthquake;
영어NRSV,11 He said, "Go out and stand on the mountain before the LORD, for the LORD is about to pass by." Now there was a great wind, so strong that it was splitting mountains and breaking rocks in pieces before the LORD, but the LORD was not in the wind; and after the wind an earthquak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earthquake;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ειπεν εξελευση αυριον και στηση ενωπιον κυριου εν τω ορει ιδου παρελευσεται κυριος και πνευμα μεγα κραταιον διαλυον ορη και συντριβον πετρας ενωπιον κυριου ουκ εν τω πνευματι κυριος και μετα το πνευμα συσσεισμος ουκ εν τω συσσεισμω κυριος
라틴어Vulgate,11 et ait ei egredere et sta in monte coram Domino et ecce Dominus transit et spiritus grandis et fortis subvertens montes et conterens petras ante Dominum non in spiritu Dominus et post spiritum commotio non in commotione Dominus
히브리어구약BHS,11 וַיֹּאמֶר צֵא וְעָמַדְתָּ בָהָר לִפְנֵי יְהוָה וְהִנֵּה יְהוָה עֹבֵר וְרוּחַ גְּדֹולָה וְחָזָק מְפָרֵק הָרִים וּמְשַׁבֵּר סְלָעִים לִפְנֵי יְהוָה לֹא בָרוּחַ יְהוָה וְאַחַר הָרוּחַ רַעַשׁ לֹא בָרַעַשׁ יְהוָה׃
성 경: [왕상19:11]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에리야의 탄식]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 본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공동 번역의 경우 이를 "야훼(여호와)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문장의 전후 관계상 "여호와의 앞에서"는 나가서 산 위에 서는 행동 전체를 받는다. 즉 엘리야가 산 위에 서는 행동이 곧 여호와 앞에 서는 행동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과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셨듯이(출 33:17-23) 이번에는 엘리야에게도 당신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엘리야의 주목(主目)을 촉구하는 말임에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한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출 33:19). 즉 이는 여호와께서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한 방편인 것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점은 '지나가다'는 뜻의 '아바르'(*)는 움직임의 개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고정된 사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관찰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바람은 그 움직임을 볼수 있으되 형상을 볼 수는 없는 것과도 같다(요 3:8).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을 알리시는 방식에서도 인간의 수중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선포하신다.
강한 바람...지진 - 비단 이것들 뿐 아니라 다음절에 나오는 '불' 등은 여호와께서 현현(顯現)하실때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현상이다(출 19:16-20). 그러나 정작 본절에선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셨다. 그러기에 바람, 지진, 불 따위는 표적을 구하는 종교가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굉장한 증거임에 틀림없었지만 선지자 엘리야의 마음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엘리야의 마음을 압도한 것은 그러한 현상들 다음에 들려온 '세미한 소리'(12절)였다. 즉 이것이야말로 엘리야에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분명한 증거였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을 통해 들려 주시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시 119:105).
웨아하르 하라아쉬 에쉬 로 바에쉬 아도나이 웨아하르 하에쉬 콜 데마마 닼카
개역개정,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새번역,12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말성경,12 지진이 물러간 뒤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불 속에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이 지나간 뒤에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톨릭성경,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영어NIV,12 After the earthquake came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came a gentle whisper.
영어NASB,12 And after the earthquake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a sound of a gentle blowing.
영어MSG,12 and after the earthquake fire, but GOD wasn'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a gentle and quiet whisper.
영어NRSV,12 and after the earthquake a fire, but the LORD was not in the fire; and after the fire a sound of sheer silenc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μετα τον συσσεισμον πυρ ουκ εν τω πυρι κυριος και μετα το πυρ φωνη αυρας λεπτης κακει κυριος
라틴어Vulgate,12 et post commotionem ignis non in igne Dominus et post ignem sibilus aurae tenuis
히브리어구약BHS,12 וְאַחַר הָרַעַשׁ אֵשׁ לֹא בָאֵשׁ יְהוָה וְאַחַר הָאֵשׁ קֹול דְּמָמָה דַקָּה׃
성 경: [왕상19:12]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의 탄식]
세미(細微)한 소리 - '세미한'에 해당하는 '데마마 다카'(*)는 '고요하다'(*, 다맘)와 '곱다'(*, 다크)의 결합어이다. 즉 섬세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 둘이 동원되어 이는 대단히 미세함을 강조하고 있다. 더군다나 강한 바람과 지진, 불이 있은 후의 '세미함'이란 뚜렷한 대조를 보여 준다. 한편 '소리'(*,콜)는 신약에서의 '포네'(*)와 마찬가지로 '음성'이라 함이 더욱 적절하다(계1:10;4:1 등). 그런데 '하나님의 소리'로서 사용되는 경우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뜻한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란 외적인 것이기보다 성령에 의해 듣는 자의 의식에 각인(刻印)되는 내적 감화(感化)이다(고전 2:10-14).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영적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Pope).
와예히 키쉐모아 엘리야후 와얄레트 파나우 베아다르토 와예체 와야아모드 페타흐 함메아라 웨힌네 엘라우 콜 와요멜 마 레카 포 엘리야후
개역개정,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새번역,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우리말성경,13 엘리야가 그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나가 동굴 입구에 섰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엘리야야,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가톨릭성경,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영어NIV,13 When Elijah heard it, he pulled his cloak over his face and went out and stood at the mouth of the cave. Then a voice said to him,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영어NASB,13 And it came about when Elijah heard it, that he wrapped his face in his mantle, and went out and stood in the entrance of the cave. And behold, a voice came to him and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영어MSG,13 When Elijah heard the quiet voice, he muffled his face with his great cloak, went to the mouth of the cave, and stood there. A quiet voice asked, "So Elijah, now tell me, what are you doing here?"
영어NRSV,13 When Elijah heard it, he wrapped his face in his mantle and went out and stood at the entrance of the cave. Then there came a voice to him that said,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γενετο ως ηκουσεν ηλιου και επεκαλυψεν το προσωπον αυτου εν τη μηλωτη εαυτου και εξηλθεν και εστη υπο το σπηλαιον και ιδου προς αυτον φωνη και ειπεν τι συ ενταυθα ηλιου
라틴어Vulgate,13 quod cum audisset Helias operuit vultum suum pallio et egressus stetit in ostio speluncae et ecce vox ad eum dicens quid agis hic Helia
히브리어구약BHS,13 וַיְהִי כִּשְׁמֹעַ אֵלִיָּהוּ וַיָּלֶט פָּנָיו בְּאַדַּרְתֹּו וַיֵּצֵא וַיַּעֲמֹד פֶּתַח הַמְּעָרָה וְהִנֵּה אֵלָיו קֹול וַיֹּאמֶר מַה־לְּךָ פֹה אֵלִיָּהוּ׃
성 경: [왕상19:13]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의 탄식]
겉옷으로 엎굴을 가리우고 - 이것은 엘리야가 마침내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음을 식별하고 취하는 행동이다. 즉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경우 살 수 없기 때문에 엘리야는 겉옷으로나마 자신의 얼굴을 가리운 것이다. 출 33:20 주석 참조. 한편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지나가심을 경험할 때는 여호와께서 친히 손으로 모세를 가리우셨다(출 33:22, 23).
와요멜 칸노 킨네티 아도나이 엘로헤 체바오트 키 아제부 베리테카 베네이 이스라엘 엩 미즈베호테카 하라수 웨엩 네비에카 하레구 베하렙 와이와텔 아니 레받디 와예바케슈 엩 나프쉬 레카흐타흐
개역개정,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새번역,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4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큰 열심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부수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 이제 저만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이제는 제 목숨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가톨릭성경,14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열정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저들은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저를 찾고 있습니다."
영어NIV,14 He repli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God Almighty. The Israelites have rejected your covenant, broken down your altars, and put your prophets to death with the sword. I a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 are trying to kill me too."
영어NASB,14 Then he sai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the God of hosts; for the sons of Israel have forsaken Your covenant, tor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And I alone am left; and they seek my life, to take it away."
영어MSG,14 Elijah said it again, "I've been working my heart out for GOD, the GOD-of-the-Angel-Armies, because the people of Israel have abandoned your covenant, destroyed your places of worship, and murdered your prophets. I'm the only one left, and now they're trying to kill me."
영어NRSV,14 He answered, "I have been very zealous for the LORD, the God of hosts; for the Israelites have forsaken your covenant, thrown down your altars, and killed your prophets with the sword. I alone am left, and they are seeking my life, to take it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και ειπεν ηλιου ζηλων εζηλωκα τω κυριω παντοκρατορι οτι εγκατελιπον την διαθηκην σου οι υιοι ισραηλ τα θυσιαστηρια σου καθειλαν και τους προφητας σου απεκτειναν εν ρομφαια και υπολελειμμαι εγω μονωτατος και ζητουσι την ψυχην μου λαβει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14 et ille respondit zelo zelatus sum pro Domino Deo exercituum quia dereliquerunt pactum tuum filii Israhel altaria tua destruxerunt et prophetas tuos occiderunt gladio et derelictus sum ego solus et quaerunt animam meam ut auferant eam
히브리어구약BHS,14 וַיֹּאמֶר קַנֹּא קִנֵּאתִי לַיהוָה אֱלֹהֵי צְבָאֹות כִּי־עָזְבוּ בְרִיתְךָ בְּנֵי יִשְׂרָאֵל אֶת־מִזְבְּחֹתֶיךָ הָרָסוּ וְאֶת־נְבִיאֶיךָ הָרְגוּ בֶחָרֶב וָאִוָּתֵר אֲנִי לְבַדִּי וַיְבַקְשׁוּ אֶת־נַפְשִׁי לְקַחְתָּהּ׃ ס
성 경: [왕상19:14]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의 탄식]
하나님의 물으심에 대한 엘리야의 답변은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두려움과 절망의 심경을 역력히 반영하고 있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엄과 임재를 체험하고서도(11,12절) 여전히 부정적인 심경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를 위로하며 앞으로의 구체적 사명에 대하여 일러주셨다(15-18절). 그러자 비로소 엘리야는 용기를 회복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는데(19-21절) 인간은 연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시다는 사례를 보여 주는 한 표본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와요멜 아도나이 엘라우 레크 슈브 레다르케카 미드바라 담마세크 우바타 우마솨흐타 엩 하자엘 레메렠 알 아람
개역개정,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새번역,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우리말성경,15 그러자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왔던 길로 돌아가 다메섹 광야로 가거라. 너는 그곳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여라.
가톨릭성경,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돌려 다마스쿠스 광야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거든 하자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임금으로 세우고,
영어NIV,15 The LORD said to him, "Go back the way you came, and go to the Desert of Damascus. When you get there, anoint Hazael king over Aram.
영어NASB,15 And the LORD said to him, "Go, return on your way to the wilderness of Damascus, and when you have arrived, you shall anoint Hazael king over Aram;
영어MSG,15 GOD said, "Go back the way you came through the desert to Damascus. When you get there anoint Hazael; make him king over Aram.
영어NRSV,15 Then the LORD said to him, "Go, return on your way to the wilderness of Damascus; when you arrive, you shall anoint Hazael as king over Aram.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προς αυτον πορευου αναστρεφε εις την οδον σου και ηξεις εις την οδον ερημου δαμασκου και χρισεις τον αζαηλ εις βασιλεα της συριας
라틴어Vulgate,15 et ait Dominus ad eum vade et revertere in viam tuam per desertum in Damascum cumque perveneris ungues Azahel regem super Syriam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אמֶר יְהוָה אֵלָיו לֵךְ שׁוּב לְדַרְךְּךָ מִדְבַּרָה דַמָּשֶׂק וּבָאתָ וּמָשַׁחְתָּ אֶת־חֲזָאֵל לְמֶלֶךְ עַל־אֲרָם׃
성 경: [왕상19:15]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남은 자 칠천]
네 길을 돌이켜 - 이 말은 단순히 왔던 경로를 되밟아 돌아가라는 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실제로 엘리야가 명령받은 행로는 다메섹으로 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돌이키라'는 말은 보다 내적인 태도와 의식의 전환을 지시하는데 그의미가 있다. 즉 이는 실망과 낙담을 안고 왔던 길을 새로운 사명과 과제를 받아 들고 돌아가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인생에 할 일이 남아있다는 의식이야말로 낙담과 무의미를 극복케 하는 첩경이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 하사엘(Hazael)자는 본래 아람 왕 벤하닷(Benhadad)의 군대장관이다. 그러나 그는 벤하닷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이후 줄곧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괴롭혔다(왕하 8:13-29;13:1-3).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하사엘을 이스라엘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실 계획을 알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문제는 엘리야가 언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었는가이다. 실상 16절까지에서 언급되는 하사엘, 예후, 엘리사 중 그 누구도 엘리야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왕하8:12-15;9:1-10). 그러나 이 난점은 '기름부음'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폭넓게 해석할 때 해결된다. 즉 여기서 '기름 붓다'라는 말은 꼭 문자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사명을 부여하는 것(시105:15;사 45:1)이나 따로 구별하는 것(출 30:26)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견해이다.
웨엩 예후 벤 니메쉬 티므솨흐 레메렠 알 이스라엘 웨엩 엘리솨 벤 솨파트 메아벨 메홀라 티므솨흐 레나비 타흐테카
개역개정,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새번역,16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우리말성경,16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네 뒤를 이어 예언자가 되게 하여라.
가톨릭성경,16 님시의 손자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영어NIV,16 Also, anoint Jehu son of Nimshi king over Israel, and anoint Elisha son of Shaphat from Abel Meholah to succeed you as prophet.
영어NASB,16 and Jehu the son of Nimshi you shall anoint king over Israel; and Elisha the son of Shaphat of Abel-meholah you shall anoint as prophet in your place.
영어MSG,16 Then anoint Jehu son of Nimshi; make him king over Israel. Finally, anoint Elisha son of Shaphat from Abel Meholah to succeed you as prophet.
영어NRSV,16 Also you shall anoint Jehu son of Nimshi as king over Israel; and you shall anoint Elisha son of Shaphat of Abel-meholah as prophet in your plac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τον ιου υιον ναμεσσι χρισεις εις βασιλεα επι ισραηλ και τον ελισαιε υιον σαφατ απο αβελμαουλα χρισεις εις προφητην αντι σου
라틴어Vulgate,16 et Hieu filium Namsi ungues regem super Israhel Heliseum autem filium Saphat qui est de Abelmaula ungues prophetam pro te
히브리어구약BHS,16 וְאֵת יֵהוּא בֶן־נִמְשִׁי תִּמְשַׁח לְמֶלֶךְ עַל־יִשְׂרָאֵל וְאֶת־אֱלִישָׁע בֶּן־שָׁפָט מֵאָבֵל מְחֹולָה תִּמְשַׁח לְנָבִיא תַּחְתֶּיךָ׃
성 경: [왕상19:16]
주제1: [호셉 산상의 엘리야]
주제2: [남은 자 칠천]
님시의 아들 예후 - 사실 예후(jehu)는 님시의 손자이고 여호사밧의 아들이다(왕하9:2). 본절과 같은 오역(誤譯)은 히브리어의 '아들'(*, 벤)이 '자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서 온 실수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님시의 자손 예후'가 옳다. 한편 본래 이스라엘 군대장관 중 하나였던 예후는 훗날 라못 길르앗 출정시 반란을 일으켜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린다(왕하 9:1-10"17), 이때 예후는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으로 아합 가문을 진멸(盡滅)하였으니 이로써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은 성취되었다.
아벨므홀라 - 이 지명의 뜻은 '춤추는 초장'이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벧산 남쪽 16km 지점의 한 유적지를 아벨므홀라(Abel-meholah)로 추정하고 있다. 삿7:22주석 참조.
엘리사 - '엘리사'(*)란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농부긴 해도 상당한 재산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열 두 겨리 소를 부릴 수 있었던 그는 엘리야의 부름에 즉각 호응하여 예언자가 되었다(19-21절). 그리하여 엘리야가 승천한 이후(왕하 2장) 엘리사는 약50년간(B.C. 848-797년경) 북왕국에서 활약하게 된다. 한편 학자들은 엘리야->엘리사의 계승이 모세->여호수아의 계승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본다(Stek). 특히 한 사역이 대를 이어 성취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웨하야 한니믈라트 메헤렙 하자엘 야미트 예후 웨한니믈라트 메헤렙 예후 야미트 엘라솨
개역개정,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새번역,17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우리말성경,17 하사엘의 칼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가톨릭성경,17 하자엘의 칼에서 빠져나간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의 칼에서 빠져나간 자는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영어NIV,17 Jehu will put to death any who escape the sword of Hazael, and Elisha will put to death any who escape the sword of Jehu.
영어NASB,17 "And it shall come about, the one who escapes from the sword of Hazael, Jehu shall put to death, and the one who escapes from the sword of Jehu, Elisha shall put to death.
영어MSG,17 Anyone who escapes death by Hazael will be killed by Jehu; and anyone who escapes death by Jehu will be killed by Elisha.
영어NRSV,17 Whoever escapes from the sword of Hazael, Jehu shall kill; and whoever escapes from the sword of Jehu, Elisha shall kill.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εσται τον σωζομενον εκ ρομφαιας αζαηλ θανατωσει ιου και τον σωζομενον εκ ρομφαιας ιου θανατωσει ελισαιε
라틴어Vulgate,17 et erit quicumque fugerit gladium Azahel occidet eum Hieu et qui fugerit gladium Hieu interficiet eum Heliseus
히브리어구약BHS,17 וְהָיָה הַנִּמְלָט מֵחֶרֶב חֲזָאֵל יָמִית יֵהוּא וְהַנִּמְלָט מֵחֶרֶב יֵהוּא יָמִית אֱלִישָׁע׃
성 경: [왕상19:17]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남은 자 칠천]
본절에 보이는 하사엘-예후-엘리사의 연결은 일견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르고 입장이 상충되는 세사람이 마치 같은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처럼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로 대립하는 국가의 왕들인 하사엘과 예후가 의식적으로 같은 목적을 품고 활동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북왕국에 재난과 죽음을 가져다 준 인물들이다. 15, 16절 주석 참조. 따라서 그러한 그들의 활동이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과 연결될때, 본절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한편 본절에서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죽이리라'는 표현은 앞서 '기름부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자적으로 취할 바가 못된다. 15절 주석 참조. 즉 이는 엘리사가 직접 죽인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사역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에 많은 심판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다.
웨히쉬아르티 베이스라엘 쉬브아트 알라핌 콜 합비르카임 아쉘 로 카르우 랍바알 웨콜 핲페 아쉘 로 나솨크 로
개역개정,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새번역,18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우리말성경,18 그러나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은 사람들 7,000명을 이스라엘에 남겨 두었다.”
가톨릭성경,18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은 칠천 명을 모두 남겨 두겠다."
영어NIV,18 Yet I reserve seven thousand in Israel--all whose knees have not bowed down to Baal and all whose mouths have not kissed him."
영어NASB,18 "Yet I will leave 70000 in Israel, all the knees that have not bowed to Baal and every mouth that has not kissed him."
영어MSG,18 Meanwhile, I'm preserving for myself seven thousand souls: the knees that haven't bowed to the god Baal, the mouths that haven't kissed his image."
영어NRSV,18 Yet I will leave seven thousand in Israel, all the knees that have not bowed to Baal, and every mouth that has not kissed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καταλειψεις εν ισραηλ επτα χιλιαδας ανδρων παντα γονατα α ουκ ωκλασαν γονυ τω βααλ και παν στομα ο ου προσεκυνησ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18 et derelinquam mihi in Israhel septem milia universorum genua quae non sunt incurvata Baal et omne os quod non adoravit eum osculans manum
히브리어구약BHS,18 וְהִשְׁאַרְתִּי בְיִשְׂרָאֵל שִׁבְעַת אֲלָפִים כָּל־הַבִּרְכַּיִם אֲשֶׁר לֹא־כָרְעוּ לַבַּעַל וְכָל־הַפֶּה אֲשֶׁר לֹא־נָשַׁק לֹו׃
성 경: [왕상19:18]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남은 자 칠천]
칠천 인을 남기리니 - '남기리니'에 해당하는 '솨알'(*)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말이다. 원래 신정 국가(神政國家)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운명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신앙에 좌우되기 마련이다(출 19:5,6). 따라서 극도로 타락하고 혼미한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을 불러 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그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지속케 할 소수의 무리를 항상 남겨 놓으신다. 이때 남은 자들(remnants)은 하나님의 주권적 택정(擇定)하심 안에서 유지되고 보존된다는 은총적 의미가 있다. 즉 이경우 심판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자를 남기셔서 역사를 지속케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Stark, Jenni). 한편 본절에서 '칠천 인'은 실제의 수가 아니라 상징적인 수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다(Keil등). 즉 이는 완전수인 7의 배수로서 미래의 역사를 담당하기에 충분한 숫자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와예렠 미솸 와임차 엩 엘리솨 벤 솨파트 웨후 호레쉬 쉬넴 아사르 체마딤 레파나우 웨후 비쉬넴 헤아살 와야아보르 엘리야후 엘라우 와야쉬레크 아다르토 엘라우
개역개정,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새번역,19 엘리야가 그 곳을 떠나서, 길을 가다가, 사밧의 아들 엘리사와 마주쳤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열한 겨리를 앞세우고, 그는 열두째 겨리를 끌고서, 밭을 갈고 있었다. 엘리야가 엘리사의 곁으로 지나가면서, 자기의 외투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우리말성경,19 그러자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찾았습니다. 엘리사는 12쌍의 황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마침 열두째 황소 두 마리를 몰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밭 가는 옆으로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졌습니다.
가톨릭성경,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영어NIV,19 So Elijah went from there and found Elisha son of Shaphat. He was 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and he himself was driving the twelfth pair. Elijah went up to him and threw his cloak around him.
영어NASB,19 So he departed from there and found Elisha the son of Shaphat, while he was plowing with twelve pairs of oxen before him, and he with the twelfth. And Elijah passed over to him and threw his mantle on him.
영어MSG,19 Elijah went straight out and found Elisha son of Shaphat in a field where there were twelve pairs of yoked oxen at work plowing; Elisha was in charge of the twelfth pair. Elijah went up to him and threw his cloak over him.
영어NRSV,19 So he set out from there, and found Elisha son of Shaphat, who was plowing. There were twelve yoke of oxen ahead of him, and he was with the twelfth. Elijah passed by him and threw his mantle over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και απηλθεν εκειθεν και ευρισκει τον ελισαιε υιον σαφατ και αυτος ηροτρια εν βουσιν δωδεκα ζευγη βοων ενωπιον αυτου και αυτος εν τοις δωδεκα και επηλθεν επ' αυτον και επερριψε την μηλωτην αυτου επ' αυτον
라틴어Vulgate,19 profectus ergo inde repperit Heliseum filium Saphat arantem duodecim iugis boum et ipse in duodecim arantibus unus erat cumque venisset Helias ad eum misit pallium suum super illum
히브리어구약BHS,19 וַיֵּלֶךְ מִשָּׁם וַיִּמְצָא אֶת־אֱלִישָׁע בֶּן־שָׁפָט וְהוּא חֹרֵשׁ שְׁנֵים־עָשָׂר צְמָדִים לְפָנָיו וְהוּא בִּשְׁנֵים הֶעָשָׂר וַיַּעֲבֹר אֵלִיָּהוּ אֵלָיו וַיַּשְׁלֵךְ אַדַּרְתֹּו אֵלָיו׃
성 경: [왕상19:19]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남은 자 칠천]
열 두 겨리 소 - 한 '겨리'(*, 체메드)는 한 명에를 나란히 말하기도 하고, 그 한 쌍의 소가 하루 종일 갈만한 토지 단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자의 뜻을 취할 경우 엘리사는 24마리의 소를 앞세워 밭을 간 셈이다.그렇다면 아마도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일꾼들이 그와 함께 일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한편 토지 단위로서의 한 겨리는 8분의 5에이커, 즉 약 2,520m2에 해당한다고 한다(Sellers).
열 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 이 말 역시 열 둘째 쌍의 소를 부린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열 둘째 밭을 맡아 간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절 초반을 참고 할 때 열 두번째 쌍의 소를 맡아 부렸다는 뜻이 옳다.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 보통 겉옷은 그 사람의 직무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엘리야의 경우 그의 외모와 함께 특이한 복장은 항간(巷間)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엘리야가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져준 것은 자신의 직무를 대신하라는 매우 상징적이고 효과적인 전달 방식이다(Hammond, Keil & Delitzsch). 그러기에 엘리사 역시 이 동작에 담긴 의미를 즉각 알아 차렸다(20, 21절).
와야아좁 엩 하바카르 와야라츠 아하레 엘리야후 와요멜 에쉬카 나 레아비 우레임미 웨엘카 아하레카 와요멜 로 레크 슈브 키 메 아시티 라크
개역개정,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새번역,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버려 두고, 엘리야에게로 달려와서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뒤에,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돌아가거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그러느냐?"
우리말성경,20 그러자 엘리사가 자기 소들을 버려두고 엘리야를 따라가서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드리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돌아가거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가톨릭성경,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영어NIV,20 Elisha then left his oxen and ran after Elijah.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 he said, "and then I will come with you." "Go back," Elijah replied. "What have I done to you?"
영어NASB,20 And he left the oxen and ran after Elijah and said, "Please let me kiss my father and my mother, then I will follow you." And he said to him, "Go back again, for what have I done to you?"
영어MSG,20 Elisha deserted the oxen, ran after Elijah, and said, "Please!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e--then I'll follow you." "Go ahead," said Elijah, "but, mind you, don't forget what I've just done to you."
영어NRSV,20 He left the oxen, ran after Elijah, and said, "Let me kiss my father and my mother, and then I will follow you." Then Elijah said to him, "Go back again; for what have I done to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κατελιπεν ελισαιε τας βοας και κατεδραμεν οπισω ηλιου και ειπεν καταφιλησω τον πατερα μου και ακολουθησω οπισω σου και ειπεν ηλιου αναστρεφε οτι πεποιηκα σοι
라틴어Vulgate,20 qui statim relictis bubus cucurrit post Heliam et ait osculer oro te patrem meum et matrem meam et sic sequar te dixitque ei vade et revertere quod enim meum erat feci tibi
히브리어구약BHS,20 וַיַּעֲזֹב אֶת־הַבָּקָר וַיָּרָץ אַחֲרֵי אֵלִיָּהוּ וַיֹּאמֶר אֶשְּׁקָה־נָּא לְאָבִי וּלְאִמִּי וְאֵלְכָה אַחֲרֶיךָ וַיֹּאמֶר לֹו לֵךְ שׁוּב כִּי מֶה־עָשִׂיתִי לָךְ׃
성 경: [왕상19:20]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를 좇는 엘리사]
저가 소를 버리고...달려가서 -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소명자들의 비교적 공통된 특징이다(마4:18-22;눅 5:27-29). 아마도 엘리사는 민족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깊이 탄식해 왔던 인물로서 평소부터 엘리야의 활약에 마음깊이 동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그는 엘리야의 부름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 '입맞춤'은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적 인사법이다. 창 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 참조. 한편 본절에서의 엘리사의 청원은 눅 9:59의 경우와는 다르다. 즉 눅 9:59에 나오는 사람은, 부친의 생존 기간 동안은 예수를 따를 수 없다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반면에 엘리사는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응당 드려야 할 인사를 드리려 한 것이다.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 혹자는 이 말을 약간 힐난조의 말로 본다(Rawlinson, Wordsworth). 그러나 앞뒤 문맥으로 볼 때 이 말은 긍정의 뜻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는 '안 될 이유가 뭐 있겠느냐'는 뜻이다. 사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행한 것은 선지자적 직무에의 초대이다. 그런데 이 초대는 곧 부모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에게 입맞추고 오겠다는 엘리사의 요청은 어떤 주저함도 아니다. 도리어 이는 부모와의 영원한 이별을 감지하고 그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단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엘리야 역시 기꺼운 수락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Lange).
와야솹 메아하라우 와잌카흐 엩 체메드 하바카르 와이즈바헤후 우비클리 하바카르 밧쉴람 하바사르 와잍텐 라암 와요켈루 와야콤 와예렠 아하레 엘리야후 와예솨르테후
개역개정,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새번역,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고, 그것을 백성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엘리사는 곧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우리말성경,21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 곁을 떠나 돌아가 소 한 쌍을 가져다 죽이고 밭 가는 기구로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먹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그를 섬겼습니다.
가톨릭성경,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영어NIV,21 So Elisha left him and went back. He took his yoke of oxen and slaughtered them. He burned the plowing equipment to cook the meat and gave i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set out to follow Elijah and became his attendant.
영어NASB,21 So he returned from following him, and took the pair of oxen and sacrificed them and boiled their flesh with the implements of the oxen, and gave i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arose and followed Elijah and ministered to him.
영어MSG,21 So Elisha left; he took his yoke of oxen and butchered them. He made a fire with the plow and tackle and then boiled the meat--a true farewell meal for the family. Then he left and followed Elijah, becoming his right-hand man.
영어NRSV,21 He returned from following him, took the yoke of oxen, and slaughtered them; using the equipment from the oxen, he boiled their flesh, and gave it to the people, and they ate. Then he set out and followed Elijah, and became his servant.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και ανεστρεψεν εξοπισθεν αυτου και ελαβεν τα ζευγη των βοων και εθυσεν και ηψησεν αυτα εν τοις σκευεσι των βοων και εδωκεν τω λαω και εφαγον και ανεστη και επορευθη οπισω ηλιου και ελειτουργει αυτω
라틴어Vulgate,21 reversus autem ab eo tulit par boum et mactavit illud et in aratro boum coxit carnes et dedit populo et comederunt consurgensque abiit et secutus est Heliam et ministrabat ei
히브리어구약BHS,21 וַיָּשָׁב מֵאַחֲרָיו וַיִּקַּח אֶת־צֶמֶד הַבָּקָר וַיִּזְבָּחֵהוּ וּבִכְלִי הַבָּקָר בִּשְּׁלָם הַבָּשָׂר וַיִּתֵּן לָעָם וַיֹּאכֵלוּ וַיָּקָם וַיֵּלֶךְ אַחֲרֵי אֵלִיָּהוּ וַיְשָׁרְתֵהוּ׃ ף
성 경: [왕상19:21]
주제1: [호렙 산상의 엘리야]
주제2: [엘리야를 좇는 엘리사]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 이 경우는 당연히 '한 쌍의 소'를 도축(屠畜)하였다는 뜻이다. 19절 주석 참조.
소의 기구(器具)를 불살라 - 이제까지 농부였던 엘리사가 농기를 불사른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결단의 상징적 표시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의식(儀式)이라 할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엘리사가 구태여 농기구를 불사를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먹게 하고 - 여기서 '백성'이란 당시 엘리사와 함께 밭을 갈았던 일꾼들 뿐 아니라 그의 친척과 친구, 이읏 모두를 의미한다. 즉 엘리사는 이제 이들과 헤어지는 마당에서 마지막 석별(惜別)의 잔치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Pulpit Xommentary).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 열왕기에서는 엘리야->여호수아의 계승과 대비하려는 의도가 있다 한다(Stek). 그렇다면 본절은 바로 그에 해당하는 요소라 하겠다. 즉 여호수야가 모세의 수종을 든 것처럼 엘리사도 엘리야의 수종을 든 것이다.(출24:13;수 1:1). 한편 왕하 3:11에 의하면, 엘리사를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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