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문 모음/이찬수목사님

십자가로 가까이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이찬수 목사님 | 분당우리교회 | 2024.3.24 설교문 녹취록

본문 :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신앙이 성숙해져 가면은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많은 변화 중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면 항상 그 문제의 초점을 외부에서 찾던 사람이 이제 내면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메모해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무명의 분이 쓴 글이라고 하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나는 젊을 때 세계를 바꾸려 했지만 그러지 못해 나의 조국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라도 바꾸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중년을 지나는 나이가 되자 마지막으로 가정을 바꾸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결국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이 어른으로 추정되는 이분이 깨달은 것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만약 처음부터 나 자신을 바꾸는 일을 했다면 나의 가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가정의 변화는 마을의 변화로 또 마을의 변화는 나의 조국까지 변화시켜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좀 연세가 있으신, 그 세월을 오래 사시고 자기를 돌아보니까 모든 변화의 출발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걸 깨닫고 그렇게 남긴 글이기 때문에 제가 참 이것이 굉장히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트라 간디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나 자신을 바꾸어라"

 

사실 이게 영적인 면에서도 똑같은데요.

여러분이 아시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는 항상 문제를 외부에서 찾았습니다.

저것들이 문제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끊임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니고 심지어는 그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공모를 하고 이런 짓을 한게 사도 바울인데요.

그랬든 그가 예수 믿은 이후에는 자기가 싸워야 할 적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아 가는 거거든요.

그게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수 알기 전의 모습은 문제를 바깥에서 타인에서 거기서 찾으려고 한다면 믿음이 깊어지는 사람들은 항상 내 싸워야 될 적은 내 내면의 문제, 내 옛 자아의 문제 그것에서부터 찾아나가는 것, 이런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거든요.

여러분 지난 한 주 동안 누구랑 그렇게 열심히 싸우셨습니까?

뭐 부부랑 제일 많이 싸우실 거고요.

왜냐하면 이제 같이 지내는 시간이 그만큼 많을수록 많이 싸우니까.

회사 사람들하고 또 많이 또 논쟁하고 그랬을 거고요.

뭐 이런저런 외부의 사람들하고 그런 논쟁과 싸움이 있었겠지만, 그런데 여러분 지난 한주간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옛 자아의 본능과는 어느 정도 열심히 싸우셨습니까?

내 옛 자아의 본능은 끊임없이 나를 충동의 자리로 만들고 욕구의 자리로 만들고 욕심의 자리로 끌고 가는데 거기에 저항력이 없어지면 그거는 믿음이 지금 굉장히 위기를 만났다고 말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

 

우리 성령님은 항상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우리 내면에 있는 옛 자아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거든요.

저도 돌아보면 그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많이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개척 초기에 40대 초반에 저를 돌아보면 참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했는데요.

그중에서 두드러지는게 뭐냐면은 설교가 그렇게 사나웠어요.

그리고 그냥 뭐 성도들 탓이 많았습니다.

아 왜 그렇게밖에 못 삽니까? 막 그러면서 그렇게 추궁하고 책망하고 그런 설교를 많이 했는데요.

막 그렇게 막 열심히 책망하면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거룩한 음성으로 저에게 메시지를 주셨어요.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음성을 들려 주셨는데 이거였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 주인공을 통해서 들려주신 메시지인데요 저에게 그게 성령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니까 정말 저만 잘하면 되겠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요 여기 저보다 믿음 좋은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분 대단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왜 저에게 목사를 시킨지 아십니까?

저 인간은 목사 안시키면 교회 안 나갈 놈이야, 저는 설교를 맡았기 때문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설교를 빠질 수가 없잖아요.

여러분 지금 설교도 안 맡았는데 이렇게 와 계시는 거 보면 믿음이 대단한 겁니다.

그래서 '너나 잘하세요'

요즘도 한번씩 '너만 잘하면 돼, 분당우리 교회는, 항상 네가 문제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개척 초기를 떠올리거든요.

 

이거와 똑같은 맥락으로 요즘에 자주 되뇌어지는 유행가 제목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 노래인데요, 최백호씨가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이게 사실 그 내용은요 뭐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인데요, 가사는 지금 기억을 못해요.

그런데 이게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목사로서 저 스스로에게 어떤 자괴감이 느껴질 때 제 스스로에 대해서 참 마음이 좀 뭐할 때 그때 제가 독백하는게 이거에요.

'내 마음 갈 곳을 잃었다'

아니 지금 내가 목사가 된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고집이 센, 그리고 맨날 뭐 거룩한 척 설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기적인 내 모습, 그렇게 변화돼야 된다고 소리를 지르면서 알고 보면요 이 중에 제일 안 바뀌는게 저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제 문득문득 떠 올려질 때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그 영화 대사 하나 하고요, 그 유행가 제목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데 중요한 건요 이렇게 목사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내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고 이런 생각이 들 때는 그렇게 내 마음 갈곳을 잃어 나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게 자책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요 저는 그것을 가지고 그 영적 침체로 빠지고 자책의 자리로 몰고 가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연약함이 떠올려서 탄식이 되면 저는 그것을 재료로 해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요 그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그걸 제가 입으로 선포를 합니다.

성경 구절이에요.

왜 입으로 선포할까요? 그게 내 귀에 들리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오늘 본문이 갈라디아 2장 20절이거든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거 왜 제가 독백하고 제게 들려 주겠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너의 옛 자아는 죽었다 그렇게 선포해라.

그리고 그다음에 또 갈라디아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언제 제가 이 말씀을 대뇌이고 선포할까요?

정욕과 탐심이 내 안에 스물스물 기어오를 때.

여기서 정욕은 꼭 뭐 성적인 충동 이런 것만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중한 것 외에는 다 정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 말고는 다 탐심이에요.

 

내가 이렇게 큰 교회 담임 목사인데, 이 교회를 이용해 가지고 내가 더 유명해지고, 내가 이 교회 제정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이런 것들이 기어 올라오면 그건 어떻게 해야 돼요?

눌러야 되잖아요 싸워야 되잖아요.

그 못된 옛 자아가 꿈틀꿈틀 거리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도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건 큰 액자로 해서 제 사무실에 붙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 제가 너나 잘하세요! 또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목사가 뭐가 이래? 이런 자괴감이 들 때 그것을 가지고 영적 침체로 몰고 가지 않고 제가 십자가로 간다 그랬잖아요.

십자가를 묵상하는 재료로 쓴다 그러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이상하게 세상 사람들은 자꾸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 그러는데 알고 보면요 이 십자가는 우리 인생의, 우리 삶의 지혜에요.

그리고 우리 삶의 능력이에요.

그래서 십자가를 묵상하는 거죠.

그리고 입으로 그걸 자꾸 되뇌이는 거거든요.

 

여러분 우리가요, 이제 부활주일을 앞에 놓고 정말 부활의 가슴벅찬 기쁨을 맛보고 싶다면 십자가를 붙들어야 돼요.

십자가를 묵상해야 돼요.

이 십자가가 우리 삶에 부활의 기쁨과 연결하는 너무나 소중한 구원의 재료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삶의 지혜가 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삶에 이 십자가 원리는 우리 삶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계속 이 십자가를 묵상하고, 또 묵상한 십자가를 입으로 선포하고.

자기 혼자 있을 때 선포하는 건 자기 귀에다가 들려주는 거고요.

둘이 대화할 때 들려주면 그 상대방을 위해서 들려주는 거예요.

이렇게 십자가를 묵상하고 선포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제가 오늘은요 이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지라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질문.

그중에 첫 번째가 이겁니다.

이 질문 하셔야 됩니다.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믿고 선언하고 있는가?

나는 옛 자아가 죽었음을 믿는다, 나는 이 옛 자아가 죽었음을 내 삶 속에서 선언한다, 이 질문을 자꾸 하셔야 되는 거거든요.

그 김도현 교수님이 쓴 '복음의 진리 갈라디아서'는 최근에 나온 책인데요.

그 책에 보면은 오늘 본문 갈라디아 2장 20절을 의역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다음이요, "새로운 차원의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은 내 옛 자아를 주님이 못 박아 주셨다 그리고 그다음 나오는 이제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 바울의 선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문제인데요, 이건 이론이 아니에요.

 

그리고는 이 교수님이 번역하면서 여기다가 이런 일련의 일들이, 변화가, 새로운 차원의 삶이라는 거예요.

옛 자아가 자기를 끌고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이 어두운 이 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삶,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분이 인도하는 삶, 그분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쥐고 계시는 삶, 여러분 이런 삶을 한번 꿈꾸고 싶지 않으세요?

이 옛 자아를 죽이고 내 인생의 운전대를 주님께 맡기는 일이 얼마나 이것이 놀라운 일인가를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 잔치를 보면 알아요.

이 가나 혼인 잔치가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첫 번째 사건인데요, 그 흐름을 한번 보십시오.

요한복음 2장 1절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의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그리고는 3절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지금 예수님이 그 현장에 계셨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그리고 마리아가 너무나 당황스러운 포도주가 떨어지는, 이건 잔치 집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일인데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일하셨어요.

 

마리아가 왜 예수님께 청했을까요?

그날 만약에 마리아가요 아 내가 이때를 위해서 항상 비상금을 갖고 다니지, 이 마을에 있는 포도주 싹 쓸어와라 내가 돈 갖고 왔다, 그랬으면 그날 기적의 사건 없습니다.

마리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음을 자기가 알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 청했어요.

그 어려운 상황에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의 운전대를 마리아는 예수님께 맡긴 거예요.

그래서 그 운전대를 잡으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거든요.

많은 크리스찬들이요 이미 여러분 내면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여러분의 옛 자아를 못 박으셨어요, 죽이셨어요.

그런데 왜 오늘도 여러분 내면에 역사가 안 일어납니까?

 

어떤 분이 집을 한 채 샀다고요, 좋은 집을 한채 샀는데.

도대체 이사갈 날짜가 지났는데 주인이 집을 안 비워 줘요, 못 들어가시는 거잖아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운전대를 지금 누가 쥐고 있느냐고요.

예수 믿기 전에는 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냥 주인이 딱 한 사람, 옛 자아밖에 없었습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뭐 들키지만 않으면 마음껏 그냥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이 옛 자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뭐 별 갈등 없이 살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갈등이 많아요.

주인이 둘이 됐어요.

엄밀히 말하면 한 분이신데, 우리가 지금 현실적으로 보시자구요.

그래서 이 운전대를 주님에게 내어 맡기는 이것, 이게 이제 잘 안 되니까 자꾸 우리가 여기서 선포하는 거죠.

내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내 인생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되신다.

그래서 저는 요한복음 15장 5절이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게 우리가 마음속에 담아야 되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게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는가 하면요, 분당 우리교회 출신 목사님 중에 참 제가 후배지만 또 나이가 저보다 많이 젊고 어리지만 제가 너무나 참 배우고 싶은 그런, 이 부분은 내가 목사님한테 배우고 싶어 그런 분들이 사실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 그 양주성 목사님이라고요, 일만성도 파송운동 직전에 우리 교회에서 분립한 하늘꿈교회 담임 목사인데요, 용인 수지에 있는 페이스턴 국제 학교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지만 제가 설교할 때 특정 인을 안 드러내요.

그래서 내가 참 귀하게 생각하는 목사가 있는데 모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는데 제가 지금 양주성 목사님, 또 하늘꿈 교회, 용인 페이스턴 국제학교, 이거를 지금 자꾸 되뇌이고 있는 건 이유가 있는 거죠.

오늘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가나한 성도님이 계시면 이 교회로 가시라고 제가 의도를 가지고 지금 소개를 해 드리는 거예요.

 

이쯤 되면은 제가 이 양주성 목사님에 대하여 굉장히 신뢰하고 또 크게 보는 부분이 있다는 걸 여러분 아실 텐데요.

저는 이 양주성 목사가 참 귀해요.

왜냐하면 이분이 생각하는 목회는 사람 끌어모으는데 혈안이 되는 그런데 초점이 있지 않아요.

먼저 제가 놀랐던 게요, 이제 일만성도 파송운동하기 바로 전에 제가 이제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이제 추천할 수 있는 분이니까.

그래서 이제 일만성도파송운동이 이제 곧 시작이 될 텐데 내가 당신을 내가 추천하겠다.

이게 제가 뽑는게 아니니까, 외부의 팀이 이거를 했으니까요.

내가 당신을 내가 추천하겠다, 제가 추천을 하면은 그래도 가산 점수가 좀 있을 거 아닙니까.

근데 놀랍게도 이분이 망설임 없이 그걸 사양하더라구요.

그리고는 성도 조금하고 페이스튼 국제학교에서 개척을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가끔씩 만나면 항상 이 목사님이 갖고 있는 마음의 중심이 제가 도전이 되는 거예요.

 

요 근래에도 만났거든요.

지금 일만성도파송운동은 어떤 교회는 출석이 한 1500명씩 모이고요, 뭐 8-900명 모이고요, 또 뭐 1000명이 넘고요.

제가 알기로 가장 숫자가 많지 않은 교회가 한 2-300명 모이고 이러는데요.

이 양주성 목사는 지금 개척한지가 한 10년 가까이 되나요.

근데 지금 한 100여명 모여요.

한 100여 명 모이는데, 제가 왜 이 분을 내가 이번에 소개해야 되겠다 했냐면요 이분이 저한테 와서 그 100명 모이는 성도 중에 너무나 이번에 변화가 일어나서 가정의 변화가 일어나서 그 기쁨을 저한테 막 막 얼마나 기쁨으로 소개를 하는 거를 보면서 야 정말 귀하다는 생각을 했죠.

그 내용이 이래요.

이게 오늘 본문과 연결되는, 지금부터가 이제 연결되는 이야기인데요.

자기 교회에 권사님이 계시는데요, 이 권사님이 이제 큰 기도 제목이 있는 거죠.

그 권사님의 남편은 어떤 분인가 하면은 여러분 그 TV 프로그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 거기에 출연하실 수 있는 분이에요.

그래서 이분은 집을 나와서 시골에서 풍산개를 키우고 농사를 짓고 그렇게 살고 계시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이제 집으로 다시 들어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모릅니다.

간절히 기도했더니 너무나 감사하게도 작년 12월 달에 그 기도가 응답이 된겁니다.

그래서 이제 자연인 생활을 다 정리하고 이 집으로 들어오셨어요.

근데 그것이 너무 기뻤는데 진짜 기쁜 건 지금부터입니다.

 

이 남편이 너무나 변해서 온 거예요.

그 이전에 아들하고 좀 갈등도 있고요 다툼도 있고 그랬는데 이 아버지가 너무나 성숙해지시니까 이제는 뭐 그 아들하고 뭐 다툴 일이 없잖아요.

관계가 너무 좋아졌대요.

그리고 무슨 잔소리를 해도 그거 뭐 허허 그러면서 이제 다 용납이 되는 거죠.

그 제가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요 추측컨대 그 권사님 아내 권사님이 물었죠, 아니 당신 뭐 어떻게 이렇게 변했냐고 뭐 그렇게 물었죠.

그랬더니 그 남편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요.

자기가 변한 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죽었는데 죽은 사람 뭔 반응을 하냐?" 그런 이야기를 했대요.

이게 지금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그 내 옛 자아는 못박혀 죽었다 그 얘긴데요 이걸 저처럼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라 이분은 삶으로 긍정을 받고 왜 그러냐고 질문하니까 이 답을 주는 거거든요.

 

이걸 우리 양주성 목사님이, 페이스튼 학교에서 목회를 하는 용인에 있는 이 양주성 목사님이 그 사실을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저랑 비교하면서 저 자신을 참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이 뭐 어떻게 변하는지 뭐 자연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뭐 하나도 몰라요.

목회가 재미가 없죠.

그냥 뭐 학원 강사 같아요 저는.

근데 이 양 목사님이 그 한 성도와 한 가정의 변화에 대하여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이런 교회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뭐 교회의 내막은 또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참 건강한 교회다.

여러분 분당 우리교회 안에서도 정말 이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 옛 자아는 죽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맡고 계신다.

아까 그 남편분 말씀이요, 아니 죽었는데 뭔 말을 내가 하겠어, 죽었는데 뭔 말을 하겠어.

옛 자아가 죽은 사람이 갖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이번 고난 주간 동안에 우리가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계속 이 질문을 던지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의 옛 자아가 죽었음을 믿고 선언하는가?

 

그런가하면 두 번째 질문이 있는데요 우리가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이 질문을 하셔야 돼요.

내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근데 제가 강조하려고 거기다 괄호를 앞에다가 뒀지 않습니까?

내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되 그것이 누구의 영향으로요? 그리스도의 영향으로.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의 영향으로 내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계속해야 된다는 거죠.

갈라디아 2장 20절 하반절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가 아까 김도영 교수님의 2장 20절 앞부분만 제가 읽어 드렸는데요, 이분 의역을 전체로 한번 읽으면서 요점을 한번 찾아보세요.

2장 20절 이렇게 의역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입니다 삶의 근원과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분은 학자거든요.

내 믿음을 그리스도의 신실함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내 믿음이 내가 열심을 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지신 그분의 신실함으로 만들어진게 내 믿음이에요.

나 까짓게 그 신실하신 주님이 아니고는 제가 뭐 목사 노릇을 제대로 하겠냐고요.

맨날 뭐 그 유행가 제목이나 떠올리고 살고 이런 나 같은게 말이죠.

이런 나 같은 것도 손색없이 목회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그 동력은 내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그러면서 이분이 너무나 탁월하게 번역하면서 이런 것이 새로운 차원의 삶이라는 거죠.

 

여러분 이 교수님의 이 풀이와 연결되는 말씀이 있는데요.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늘 여러분 뭐 우리 시대는 제가 요즘에 가끔씩 말씀드리잖아요.

그야말로 오늘 우리 시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자아 팽창 시대, 지나친 자기 사랑으로 온통 나 중심, 오로지 내 생각이 옳고 오로지 내 감정이 중요하고 오로지 내 마음의 중심.

그래서 이 시대는 진리가 중요하지 않아요.

내 감정이 중요하고 내 판단이 중요하고 내 기준이 중요해요.

그래서 지금 미국 같은 이런 선진국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잖아요.

지금 진리가 중요하지 않아요.

객관적으로 나는 남자로 태어났어, 여자로 태어났어, 이거 중요하지 않고 내 감정이 아 나는 여자야, 아 나는 여자기 원해 그러면 맞아 어 네가 여자로 원하는데 네 인생을 누가 건드리니? 여자해, 이거 아닙니까?

그래 지금 막 계속 미국발 유럽발 코미디가 지금 벌어지잖아요.

 

여성들 그 스포츠 게임에 남자가 와가지고 자기는 여자라고 그래서 막 기록 다 깨고 막 신기록 내고 또 그걸 허용하고.

이게 지금 정신 나간 이 시대의 풍조란 말이죠.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기준은 "다시는 너희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는 거거든요.

요즘 제가 계속 제가 증명해 드리잖아요.

교회에서 하는 말이 아니고 세상의 하바드 대학교, 또 뭐 무슨 대학입니다, 하여튼 미국에 막 엄청 좋은 대학교 교수들이 연구해 발표한 거를 계속 가르쳐 드리잖아요.

이 세상이 지금 끌고 가는 막 너무 좋잖아요.

막 네 맘대로 하라 그러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니까, 네 감정대로 하라 그러니까.

근데 그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지금 수많은 불면증을 만들어 내고 우울증을 만들어 내고 가정은 파탄에 이르고 그렇게 간다는 것이 지금 나오고 있는 자료들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게 계속 제가 말씀을 드리는 핵심이 이건 실패한 모델이거든요.

그래서 새 모델이 뭐예요?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게 사실은 오리지널 모델인데 이 시대 사람에게는 이게 획기적인 새 모델이에요.

우리의 책임이 뭘까요?

이게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걸 검증해 낼 책임이 있는 거죠.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이 실험에 흥미롭게 참여하시기를 저는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 속에서 두 가지 숙제가 있는데요.

여러분 개인적으로 이제는 다시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이 어 이게 해 보니까 훨씬 안정적이네, 아니 이게 우리 가정이 막 살아나네, 내 마누라를 이용하고 막 내 아내를 이용해서라도 나는 내가 이 가정에서 서비스를 받는, 그런데 결혼을 왜 했겠어? 내가 혼자 안 살고.

어 내가 그 여자를 이용하고 남자를 이용해서 내가 그 왕 대접받고 왕비 대접받으려고 결혼하는 거 아니냐.

요새도 젊은이들이 결혼을 왜 안 하느냐고요.

쓱 보니까 결혼해 갖고 대접을 잘 못 받는 거 같거든요.

근데 그 가정에서 새로운 모델로 한번 해보자고요.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 삶.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까이는 자기 아내와 남편, 부모님을 자녀를.

뭐 자녀를 위해서는 거의 뭐 본능적으로 지금도 하고 계시지만.

이게 참 기쁜 일이구나, 이게 행복하네, 이거를 만들어내는 숙제가 있고요.

 

두 번째 숙제는 교회적으로에요.

교회가 이제 새로운 차원의 삶을 목표로 하는 섬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게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가를 우리는 이것을 입증해 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저는 중요한 발표 하나를 하려고 하는데요.

이게 큰 기도 제목입니다.

사실 분당 우리 교회에 큰 숙제가 세 개 있었는데요.

일만도성도 파송운동, 가평 우리마을 그리고 이제 숙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드림센터 사회 환원.

 

이걸 이제 저희가 꿈꿨던 것은 저희 교회가 소유 이 드림센터를 가지고 강도 만난 이웃 같은 연약한 이웃을 섬기는 일에, 그리고 또 다음 세대를 살리는 일에 그렇게 잘 사용하면 좋겠다, 그런 취지로 이제 드림센터를 사회에 환원하겠다 그랬는데요 이게 소유권을 내어놓는 방식을 가지고 제가 10년 넘게 외부의 전문가들하고 이것을 같이 나누어 갔는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미궁에 빠지는 거예요.

큰 두 가지 문제점에 봉착을 했는데요.

이제 이 재단을 기증을 한다고 했을 때 이게 1층부터 12층까지를 이게 건물 준다고 그게 우리가 꿈꾸는 강도 만난 자들이 막 살아나고 막 젊은이들이 살아나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 건물은 뭘로 채우느냐고요.

 

물론 저희가 한 4개층 정도를 임대료 조로 상당한 금액을 후원할 계획도 했거든요.

근데 그걸로 그게 되느냐고요.

이게 보통 딜레마가 아닌 거죠.

그래서 제가 오죽 하면요 우리나라 대기업 두 군데나 찾아갔어요.

이거 그냥 갖다 쓰라고.

여기에 좋은 일로 좀 채우시면 이 건물을 우리가 기증하겠다고.

그럼 당신들이 양심껏 1층부터 12층에 진짜 필요한 복지를 하시라고 했는데요.

 

한분은 총수를 만났습니다.

근데 신중 하신거죠.

이게 그렇게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거죠.

이게 그러면 이제 이 건물을 내드렸는데 이게 한 3년 4년 그냥 거미줄만 늘 쳐지고 이러면 이제 하나님께 죄짓는 결과가 되잖아요.

그게 막 보통 딜레마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 두려움이 이제 이걸 재단으로 만들어 가지고 소유권을 이전에 드린다 할 때 세월이 많이 흐르면 이 정신이 계속 살아갈까?

제가 있을 때는 뭐 시퍼렇게 눈떠 갖고 감시를 하겠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는데 이거를 인수받은 그 재단에서 엉뚱한데 써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닌 것으로 쓰면 어떡합니까.

이런 두려움이 이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래 고심을 했는데요.

우리 당회 장로님들이 참 지혜로운, 기도 많이 하는 분은 달라요.

 

우리 당회 장로님들하고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는데,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이걸 제가 기도 제목으로 제가 이제 여러분께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요.

획기적으로 우리 발상에 전환 일어났는데요.

이제 이렇습니다.

드림센터를 매입한 가격이 650억원인데요.

이 650억원을 매년 30억씩 상환해 가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매년 30억씩 우리가 꿈꾸고 있는 일들을 이미 하고 있는 기관, 건강한 재단에다가 우리가 이제 매년 뭐 한 기관에 30억을 뭐 다 주는 일도 있을 거고 열개로 나누어 주는 일도 있을 거고, 이런 일들을 하는데요.

어쨌든 매년 30억 원씩 분당 우리 교회는 이제 사회에 환원을 해 나갈 것이다.

650억이 되려니까 대략 한 22년이 걸리더라고요.

 

한 22년을 저희들이 이제 매년 30억 원씩 그렇게 해나갈 텐데요.

그 일만성도파송운동을 할 때 29개 교회가 세워질 때 들어간 비용이 한 250억 정도가 돼요.

근데 이제 교회가 1500명씩 모이고 이러니까 이제 그거 다 갚아라, 들어간 돈 다 갚아라.

그래서 이제 이 비용은 분당 우리 교회가 쓰지 않고요 이거는 따로 모아서 이것은 또 다른 한국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것으로 쓸 거예요.

분당 우리교회 쓸 거면은 갚으라 소리 합니다.

그래서 대략 보니까요, 그 250억 가까운 돈하고 650억 합하니 한 900억이 돼요.

이 900억을 가지고 여러분 22년의 세월 동안에 장애인들을 위해서, 우리 청년들을 위해, 하나 더 붙였어요.

이 고령화 사회를 맞아 참 도움이 필요한 우리 어른들을 위해서, 노년 충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제 전국 권별로 시행하는 미자립 교회나 작은 교회를 위한 꿈 넘어 꿈 프로젝트.

이제 올해부터 시작이에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일만성도파송운동으로 여덟 교회를 더 추가했고 올해부터 이제 권별입니다.

경상도 지역 전라도 지역 충청도 지역 강원도 지역 제주도 지역에 매년 열 교회씩, 한 30억 내지 40억의 후원을 그들에게 해 드린다 할 때 전국에서 교회가 살아나는 이런 일이 22년 동안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부담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 저는요, 정말 이 드림센터 현 시가가 많이 올랐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현 시가로 환원하고 싶은데요.

일만성도파송운동 이후로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안 됩니다.

인원이 줄어 가지고.

그래서 우리가 매입한 가격으로.

그리고요 이렇게하고 이제 우리 할 일 끝났다 손 씻지 않습니다.

장애인들 부모님 만나면 모든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아이 그 직장.

이 장애인들의 고용 창출이에요.

여러분 어떤 해는 이 30억을 가지고 그 장애인들 고용 창출하는 이런 것들을 만들고.

얼마든지 만들지 그 금액이면.

이게 여러분의 부담이 아니라 분당 우리 교회와 여러분이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서 이것이 22년 동안 저와 여러분의 벅찬 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김도영 교수님 의역 했던 그 글을 읽어 드리고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갈라디아 2장 20절을 이렇게 의역한 거 화면으로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입니다 삶의 근원과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의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따가 기도하는데 계속 30억이 묵상이 돼 가지고 '아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900억은 뭐 말이 이게 뭐야' 그거 묵상하지 말고 십자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난 22년 동안에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는 일을 다 이루어주신 우리 하나님이세요.

그것도 혼란 없이, 한 번의 갈등도 없이.

이제 앞으로 우리가 또 다른 22년 동안 추구해 갈 이 일이 저와 여러분의 꿈이 되고 기쁨이 되고 활력이 되고 그래서 이것이 오히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자들이 누리는 오 이게 행복이구나 이게.

 

제 꿈이 하나 있는데요, 여러분 저는 제가 은퇴하는 날 분당 우리 교회의 재정이 바닥 나기를 원합니다.

공개적으로 말하면 2대 목사님이 안 올려 그럴 텐데요, 기업은 통장에 돈이 많이 모이는 그 오너가 성공한 거고요, 교회는 돈이 하나도 없는게 성공한 거예요.

다 퍼주고 다 나누어 주고 다 쓰고.

그리고 2대 목사님과 함께 새로 부어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 교회에 계속될 줄로 저는 믿습니다.

 

설교 영상을 보기 원하시는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