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두 주 전 월요일에 제 마음이 너무나 벅찬 감격으로 막 격동이 돼서 하루 온종일 마음에 뜨거움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최근에 스티브 잡스의 몰입에 대한 그런 내용을 다룬 TV 프로그램이 방영됐는데요 제가 그날 그 프로를 본 겁니다.
그 프로에 보니까 이 스티브 잡스가 자기 꿈을 위하여 얼마나 몰입하는지 막 모든 에너지를 거기다 다 쏟아붓는 그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어린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서 이분이 이제 암으로 인생이 마감되는 그 순간까지 거침없이 꿈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 내용을 제가 티브이로 보는데, 아 이분이 이제 자기가 세운 애플이라는 회사에서 쫓겨나는 일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런 수모를 당하는데도 열정은 없어지지 않는 겁니다.
자기 집 창고에서 꿈꾸는 일들을 계속 하고요.
심지어는 암을 만난 이후로 이제 그 프로에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만약에 이 스티브 잡스가 암 발병 이후로 그동안 자기가 추진하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암치료에 몰두했다면 아마 오늘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스티브잡스는 자기가 꿈꾸며 달려갔던 그 일을 위하여 암 치료받는 것보다 그걸 더 우선에 두고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가는 내용이 그 프로그램에서 나왔는데요.
뭐 그걸 지혜롭다,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렇게 말하기 어렵지만요, 그런데 저는 그 프로를 보면서 굉장히 제 마음에 격동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나는 지금 무엇에 내 인생을 한번 이렇게 올인하고 있는가?
그 프로 맨 마지막에 이분이 죽기 전에 했던 그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 했던 유명한 연설, 여러분 다 아시는 그 연설을 이제 자막으로 올려주고 프로가 끝나는데요.
뭐 다 아시는 이 내용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이걸 의역해서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게 나아가라.
이게 제 마음에서 굉장한 마음의 뜨거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날 하루 온종일 제 마음에 하나님, 제 남은 생애에 한번 시시하게 살지 않도록, 한번 하나님 주신 꿈을 향하여 모든 걸 걸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역자들한테 그 마음을 전했는데요.
사실 월요일 날에는 제가 교역자들 쉬는 날이라서 뭐 불러 내지도 않고 또 어지간 하면은 뭐 메일 보내고 그렇게 하지 않은데요.
그날은 제가 이 뜨거움을 꼭 전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최근에 나온 스티브 잡스의 몰입과 관련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금 제 마음에 강력한 도전이 있습니다. 나의 생애에도 어딘가에 한번 몰입하고 하나님께 그 몰입의 열매를 드리고 싶다는 열망이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후배 동역자들과 함께 그것을 꼭 만들어 내기를 갈망하며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그리고는 성경 한 구절을 보냈는데요, 빌립보서 3장 12절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고 맨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덧붙여서 보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쉼과 충전의 시간, 그러면서도 동시에 영감을 얻는 월요일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담임 목사가 저렇게 아침에 막 계속 문자 보내는데 무슨 쉼을 얻겠냐고 그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저도 그걸 좀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못참겠더라구요.
꿈을 같이 나눈 거거든요.
저는 두 주 전 그 월요일 날 이사야 32장 8절이요,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새번역이요, "그러나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삽니다"
사람이요, 그저 일도 없고 편하고 맨날 누워자고 뭐 놀러나 다니고 이래서 행복한게 아니고요, 한번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나는 거, 이게 행복이거든요.
저는 일만성도 파송 운동 이후에 그걸 새삼 경험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일만성도 파송 운동이 벌어지고 나서 놀랍게도 많은 봉사자들과 우리 교회 평신도 지도자 4분의 3이 이 분리 교회를 향해 떠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요.
사실 저는 그 이후로 너무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기존 신자 등록을 받지 않다 보니까 그 섬겨야 할 대상은 넘쳐나는데 그들을 섬겨야 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한 7-80%가 다 나가고 부제가 되다 보니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만약에 분당 우리 교회가 일만성도 파송 운동을 하지 않고 그 너무나 놀랍게 섬기던 성숙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다 지금 안 떠나시고 여기 계시다 그러면요 제 목회에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근데 그런 분들이 만 명이 넘게 다 떠나고 나니까 어 이게 교회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뭐 마음 고생도 엄청 많이 했고요, 그리고 막 괴로움이 참 많았습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그렇게 예전의 그 모습이 잘 찾아지지 않는 그런 가슴 아픈 일을 보냈는데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최근에 저에게 지난 2년의 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그런 시간을 주셨는데요, 7-80% 가까운 평신도 지도자들이 사라져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목회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런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거기에 모든 걸 다 걸어야만 했고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입하면서 눈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과정이 저에게 너무나 복 되더라는 거예요.
요즘은 제가 막 노래를 부르고 다닙니다.
이 일만성도 파송 운동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축복이라고요.
제 개인에게도 이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도 다시 한번 열정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꿈을 꾸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정말 작년 가을에는요 눈물로 하나님께 정말 때를 썼습니다.
종은 쓰임새인데, 종에게 하나님 한번 쓰임새를 허락해 주셔서 분당 우리 교회가 예전에 일만성도 파송 운동 이전의 그 모습으로 하나님 다시 한번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는데 여러분 저는 오늘요 감히 놀라운 선포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2년 동안 너무나 수고해 주시고 우리 교역자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그렇게 꿈꾸며 달려갔 때문에요, 여러분 이제 오늘부로 분당 우리 교회의 모든 기능이 정상화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지난 3월 1일 공휴일 날 우리 모든 교역자들이 함께 모여서 같이 꿈을 꾸며 눈물로 같이 예배를 드리고 그런 시간을 보냈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지난 3월 1일 날 분당 우리 교회가 일만성도 파송 운동 이전의 그 역동을 먼저 순장님들고 경험했거든요.
그리고 이제 모든 부서마다 또 모든 예배마다 다시 그런 역동이 되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우리 삶에 어떤 결핍이 있고 그 결핍 때문에 괴로운 일이 찾아온다 할 때 그것 때문에 주저앉고 포기하고 이제는 더 이상 옛날의 역동이 없어 이게 참 그게 사단이 주는 악한 생각일뿐만 아니라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무슨 일로 지금 좀 마음이 힘드세요?
예전에 젊은 시절에 꿈꾸며 달려갔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그런 일이 내게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성령님께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오늘 깨우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다시 한번 꿈을 꾸면서 하나님 내 생애에 한번 주님을 향하여 꿈꾸며 달려가는 나를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그런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작년 가을부터 이제 이 교회의 회복을 꿈꾸며 제 2의 부흥을 갈망한다고 그렇게 선포를 하면요, 어떤 분들은 이걸 자꾸 그 숫자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 오해입니다.
설마 일만성도 파송 운동 이전의 그 숫자로 복귀하는 걸 부흥이라고 하겠냐고요.
숫자 느는 걸 부흥이라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뚱뚱해졌다고 건강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꿈꾸는 부흥은요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거예요.
간단합니다.
제가 꿈꾸는 부흥은 교회의 건강을 회복하는 거예요.
제가 꿈꾸는 부흥은 교회의 본질을 고민하며 그 본질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교회, 이게 부흥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그 우리교회 수요 예배에 청년부를 담당하는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요, 그 설교 서두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 부서의 청년이 이런 질문을 던지더래요.
"목사님, 오늘날에도 정말 하나님이 최선의 대안입니까?"
이 청년이 보기에 너무나 시대가 혼미하고 그리고 교회는 너무나 힘이 없고 무기력해 보이니까 이 청년이 그 답답한 마음으로 이렇게 질문한 거 같아요.
이렇게 혼란한 이 시대에 여전히 하나님이 대안이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최선의 대안이십니까?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굉장한 도전을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 청년들이 참 교회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할 때, 우리 어른들이 자신있게 그렇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만난 바로는 여전히 하나님이 대안이다! 대안 맞다! 이렇게 말해 주는 어른들이 모인 교회가,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는거죠.
여러분,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요 그 구성원들인 저와 여러분이 건강해지기를 원하는데요, 건강한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두 가지를 꿈꾸는 사람이 건강한 성도에요.
첫 번째는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되겠다, 이런 목마름이 있는 분이 건강한 신자에요.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내 목마름을 가지고 주님 내 이 부족한 인격을 주님 교정해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으려고 하는 그분이 건강한 신자고요, 또 그런가 하면은 성격만 좋아지고 인격만 좋아져서 되는게 아니구요 예수그리스도가 이 어두운 시대에 행하고자 하셨던 사역이요, 주님이 행하셨던 그 사역을 우리 교회가 이어받기 원합니다.
분당 우리 교회는 주님이 행하셨던 그 사역을 계승 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꿈을 꾸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그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거든요.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본문 말씀을 많이 묵상을 했습니다.
필사를 하고요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하면서 제 마음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이 사역 세 가지를 담고 있는 오늘 본문 말씀을 굉장히 마음에 오래 담고 있었는데, 자 오늘 본문 마태복음 4장 23절이 왜 중요하냐?
이 본문에는요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 세 가지를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세 가지로 요약이 되는데요, 자 23절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첫째 가르치시며"
이 주님이 하신 일의 첫 번째 요약이에요.
그런가하면 두 번째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세 번째로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에요.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
이게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요약해 놓은 겁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게 '가르치시며'
예수님이 유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는데요 뭘 가르쳤을까요?
구약 성경을 가르쳤죠.
새 시대를 열기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성경을 가르치시면서 이제 주님이 이루어 가실 새로운 시대에 그 성경이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되는가? 그걸 가르치신 거죠.
그다음에 주님이 하신 두 번째 일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이거거든요.
여러분 이 23절에 나오는 천국 복음을 헬라의 원어 그대로 직역을 하면 이 천국 복음은 '그 나라의 복음'이에요.
'그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여러분 우리는요 몸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소속은 우리의 가치관은 그 나라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성으로 말미암아 그저 눈에 보이는 것밖에는 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 바로 그다음 나오는 마태복음 5장에 산상 수훈이 나오는데요.
이 산상수훈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그 내용이 산상수훈입니다.
이번 주간에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나오는 산상 수훈을 한번 묵상해 보세요.
전도가 뭡니까?
그저 눈에 보이는 세상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신 그 나라를 소개하는게 그게 전도 아닙니까?
근데 그걸 말로만 전하는게 아니라 교회 안의 공동체에서 삶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전도 받아 오면은 저 같은 사람을 통해서 귀로, 말씀으로도 듣지만 여러분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죠.
'어 이 사람들 뭐지? 아니 무슨 용서가 이렇게 강같이 흐르지?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헌신하지? 서로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도대체 나는 이게 적응이 안 된다' 그게 전도에요.
이게 잘 안이루어지면 그 교회는 굉장히 가라앉은 교회죠.
이번 주간에 시작되는 다락방에서 여러분들이 보여 줘야 되는게 그겁니다.
니 잘났네 내 잘났네 하는게 다락방이 아니고요 그 산상 수훈을 포함하여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그 나라의 삶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다락방이 제대로 굴러 가면은요 그 안에 놀라운 용서와 사랑과 섬김과 헌신 그래서 정말 그 안에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나오는게 고치시니입니다.
사실 이거는요 좀 어떻게 보면 좀 생뚱 맞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마태복음 4장 17절에 보면은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이런 목적을 가지고 지금 가르치시는 거, 또 그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거는 당연히 이루어지는 일인데요 아니 어떻게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시는 일은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뭐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전부 그저 눈에 보이는 이런 것밖에는 못 보기 때문에 어떤 현상에만 더 주목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니까요, 그 놀라운 천국 복음이 선포되고 주님이 말씀 가르치시는데는 관심이 별로 없고 전부 병 고치는데만 집중해 가지고 부작용이 24절에서 일어납니다.
그다음 24절 보십시오.
"그의 소문-예수님입니다-그의 소문이 온 수리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아니, 지금 예수님은 가르쳐야 되는데, 아니, 예수님은 지금 천국복음을 선포해야 되는데 막 병자들만 계속 데리고 오는 거 아닙니까.
아 제가 이 병 고치는 은사가 없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조용히 말씀 듣는 거잖아요.
아이, 저 사람은 병은 못 고쳐, 그래 가지고 말씀이나 들어야 돼,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잘 전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지금 막 휠체어 타고 막 들것에 실려 가지고 막 여기도 올라오고 막 설교하는데 여기로 와가지고 막 병 고쳐 달라 그러고.
이런 일이 22년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지금 이 말씀을 가르쳐야 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해야 되는데 온 동네 병자들 지금 다 몰려와 가지고 이 말씀이 잘 안 전해질 정도예요.
예수님이 왜 이러셨나구요.
제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이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가요 아주 흥미로운 성경 구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마태복 9장 35절인데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4장과 똑같은 내용이 한 번더 반복이 되더라고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첫째 가르치시며 둘째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셋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이게 지금 오늘 본문 마태복음 4장과 똑같은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런데 9장에서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한 부연설명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그다음 나오는 36절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나?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이 왜 이 세 가지 사역에 전념하셨다고요?
그들이 불쌍했어요.
왜 불쌍합니까?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왜 불쌍하냐? 36절을 다시 보십시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왜 그렇게 기진하고 지치고 힘들다구요? 목자 없는 양 같아요.
이 오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시대가 이렇게 혼미한 거, 지도자 부재에요.
얼마 전에 축구 경기가 있었지 않습니까, 아시안 게임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클린스만 감독이 이제 잘렸어요, 쫓겨났습니다.
저는 뭐 그분을 잘 모르고요 축구를 또 그만큼 분석해서 보지 않기 때문에 뭐 그게 왜 그런지 모르는데 한가지 알아요.
4강전이었던가요?
우리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요르단에게 패하고 나니까 그 선수들이 얼마나 충격이 컸겠냐고요.
그래서 저는 새벽이라서 그 축구를 직접 안 봤는데 들리는 얘기를 들어보니까요, 선수들이 너무 실망해 가지고 어떤 선수는 울면서 나갔대요.
그런데 지도자라는 사람이, 감독이 웃으면서 멀뚱멀뚱 그걸 쳐다봤대요.
제가 그거를 보니까 이 본문 생각이 나는 거죠.
공감하지 못하는 지도자.
그리고 또 한참 있다가 그 전날에 축구 선수들끼리 막 그냥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고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는데요, 여러분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있으니까 뭐 손흥민 선수부터 해가지고 막 굉장히 예민해지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막 싸우는데 그 감독이라는 사람이 멀뚱멀뚱 보고 있었대요.
저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요, 목회자인 제가 혹시 그런 거 아닌가?
마음이 실리지 않는 거죠.
그 상대방 선수들이 울면서 올 때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거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거.
정치가들 위해 기도해야 돼요.
왜 그렇게 국회의원 되려고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리는지 모르겠는데요.
여러분 정말 우리 국회의원들 중에 정말 우리 국민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그렇게 온 마음을 다 쏟는 그런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뭐 그냥 뭐 이 시간에 여러분 제가 설교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주석 보고 베끼고 여기저기 참고하고 그래가지고 기승전결 그럴 듯하게 설교하고 그렇게하고 뭐 내 할 일 다 했다 이렇게 하는 목사라면 거기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요.
지금 참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목자 없는 양 같은 긍휼한 마음을 그들을 보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그 설교자가 어떤 마음으로 설교해야 되겠냐고요?
한주 내내 고생하는 그 성도님들을 아픈 마음으로, 하나님 오늘 부족한 저를 통해서 많은 성도님들이 우리 주님의 긍휼이 여기시는 불쌍 여기시는 그 마음이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이 마음이 간절해야만 그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구약에 보면요 이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은 상태가 될 것을 경고하는 말씀들이 몇군데나 나오는데요.
그게 에스겔 34장 5절 6절입니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고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여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될 것을 경고하는 그런 내용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그런데 저는요 이게 너무나 의미가 있는게이 말씀이 이렇게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 방황할 것이라는 그 내용만 나오는게 아니고, 여기에 지금 에스겔 선지자가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거거든요.
그게 에스겔 37장 24절입니다.
그렇게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지고 들짐승의 밥이 되는 것처럼 고난을 당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을 향한 복이 뭐냐?
24절을 보십시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 방황하겠지만 그러나 거기에 지금 에스겔 선지자가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신다, 거기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참 목자로서이 땅에 오실 것이다.
여러분, 구약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소망을 가지고 바라본다면요 신약의 우리는 그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떤 마음으로 백성들을 섬겼는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라구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요, 긍휼 여기기는 마음.
그래서 이제 그 주님이 다시 오심에 대하여 마라나타, 참 목마름을 가지고 그분을 소망하는게 이 건강한 신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런 차원에서 저는요 이제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서 이제 우리가 꿈꾸는 교회 우리가 회복해야 되는 교회 당연히 이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참 목자가 되셔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긍휼히 여겨 주시는 그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 생활이라면 이제 이 교회가 회복해야 될 두 가지를, 한 가지를 오늘 말씀드리고 또 한 가지를 다음 주일날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첫번째 회복해야 될 교회의 모습이 뭐냐?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회복하는 교회예요.
한번 따라 선포해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긍휼하심(예수님의 긍휼하심) 예수님의 긍휼하심(예수님의 긍휼하심)
이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사복음서를 보면은요 그 주님의 사역 밑바닥에 늘 이 긍휼하심이 그 바닥에 흐르고 있다는 거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느냐?
마태복음 14장에 보면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옵니다.
남자 장정만 한 5천명 모였으니까요 여성하고 아이들까지 합치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든 거예요.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천국복음, 그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게 주님의 역할인데, 사실 밥 먹이는 것까지는 예수님 책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 과정에서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5절인데 번역입니다.
"저녁 때가 되니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헤쳐 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교 좀 짧게 하라는 얘기죠.
이 밥 먹을 시간이 되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이제 빨리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생뚱맞은 말씀을 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러갈 필요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래서 너무 당황해 가지고 제자들이 한 말이 이겁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그러는 거거든요.
이게 어른한테 쓰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예수님의 오지랍이 넓으신 거 아닙니까?
아니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면 되는데 뭐 그 많은 사람들이 밥을 못 먹으면 얘들 배고플 텐데, 아 뭐 배고픈 사람은 말씀 듣다가 먼저 가면 되고, 뭐 막 너무나 주님 말씀에 매료가 된 사람은 뭐 한끼 굶는다고 뭐 안 죽는다, 나는 오늘 밥 안 먹고 말씀 들을꺼요, 그러면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을 먹이시는 것까지 이렇게 신경을 쓰시냐고요.
마태복음 14장에 보면은요 그 오병이어의 기적의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다음에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그리고 그 '불쌍히 여기사'가 주님의 오지랍이 발동이 된 거 아닙니까.
그들에게 밥한끼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은.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을 하면서요 야 이게 목회적으로 섬세하지 못한 것도 이게 목사들의 죄가 될 수 있겠구나, 이 둔한 것도 이게 하나님 앞에서는 이게 부끄러움이 될 수 있겠구나, 주님이 왜 이렇게 섬세하셨어요?
왜 이렇게 섬세하셨냐 하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니까요.
그들이 너무 안쓰러우시니까요.
그래서 여러분,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요, 우리교회가 다시 한번 부흥을 꿈꾸고 싶으시다면 이 주님의이 성품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기억하셔야 됩니다.
교회는요 바로 이 예수님의 긍휼을 경험하는 곳이에요.
매 예배 때마다 참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클린스만 감독 같은 지도자 밖에 없는 참 이런 가슴 아픈 세상에서 누가 나에게 귀를 기울여 줍니까?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집니까?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보시는 거예요.
20대 초반에 제가 저를 불쌍하게 보시는 그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궤도가 바뀌고 진로가 바뀌고 이 자리에 서게 된 거거든요.
매 예배 때마다 교회에서의 모임 모임마다 우리 예수님의 긍휼이 여겨 주심을 맛보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가면 또 하나, 내가 그 긍휼을 받았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 긍휼을 베푸는 거예요.
사랑의 선순환.
건강한 교회는요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많이 경험이 되어지고 그리고 그 경험으로 서로서로 사랑하는 교회예요.
이제 다락방이 이번 주에 시작이 되는데 여러분 다락방 다녀와 가지고 농담으로라도 이런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아 이거 다락방 갔더니 실망했다, 순장을 보니까 뭐 별 거 아니더라.
아 그거 뭐 별 건 줄 알았습니까.
다 우리 같은 사람이죠.
교회에서 하면 안 되는 말이요, '나 실망했어'.
몰랐습니까? 교회가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걸.
어떤 분은요 받아주는데도 없고 실패하고 낙오하고, 그래서 늘 자기는 늘 소외를 당하는 그런 사람인데, 교회마저 그런 사람을 오지 마라 그러면 되느냐고요.
교회는 그런 사람이 오는데에요.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와서 활기치는 데에요.
다락방 가가지고 보니까 그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 뭐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 거 보면은 '아 내가 실망했어' 그러지 말고 '아 교회가 이런 데구나, 저런 사람도 기죽지 않고 막 활기를 치도록 배려해 주는 곳이구나'.
아 그리고 여러분 다락방 가서 보니까 막 전부 시시해 보이면 똑똑한 여러분이 갔잖아요.
그 똑똑한 여러분이 어떻게 해 보시라고요.
교회는 불쌍 여기는 데에요.
담임목사는 부교역자가 불쌍하고,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불쌍하고.
우리 부목사님들 그렇게 제가 불쌍하다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을 보면은 진짜 불쌍하대요.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제가 감당도 못 하겠고.
그래서 늘 그것 갖고 버벅버벅 거리니까 그 젊은 목사님들이 불쌍하게 보이나 봐요.
저는 또 우리 부목사가 불쌍해요.
아고 그때 그 수련회에 가서 은혜 받을 때 한번 꿀꺽 삼켰으면 목사 안 돼도 되는데 괜히 그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래가지고 목사가 돼 가지고 저 죽을 고생을 하는 거 보니까 내가 너나 내나 참 못 참는게 문제다.
여러분, 이 젊은 목사님이 실수하면 목사가 어쩌고 저쩌고, 여러분 아들이라 생각하세요.
잘하려고 하는데 참 안쓰럽다 우리 목사님, 젊으니까 점점 좋아지겠죠, 우리 기도합시다, 이게 교회 아닙니까.
제가 아까 신혼부부 우리 결혼학교 광고를 드렸는데요 뭐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알아요.
가정 회복은 혼수품에 이것만 장만하면 돼요.
뭐 비싼 혼수 명품백 필요 없고요.
여러분 그 혼수품에요 '긍휼이 여기심' 이걸 혼수품으로 갖고가면 끝이에요.
남편이 불쌍해 보이면 끝나는 거예요.
그 아내가 불쌍한데 거기다 대고 뭐 그렇게 막 화내고 그러겠냐고요.
우리 연로하신 부모님, 자녀들이 긍휼히 여겨야 돼요.
난 우리 애들 보고 맨날 너희들은 아빠를 좀 불쌍하게 봐라, 안 불쌍하니?
연로해 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요 우리가 어릴 때 저렇게 담력 있게 우리를 키우신 부모님이 점점 힘이 빠져 가시는 거, 그 불쌍히 봐야 돼요.
부모가 자식을.
지난 3월 1일에 순장 수련회 공휴일 날 고맙게 거의 대부분의 순장님들이 오셔 가지고 축제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제가 첫 번째 설교 서론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지금 개강을 앞두고 있으니까 많은 순장님들이 불안해하고 또 오래 순장 하신 분들은 지금 지쳐 계시고, 그래서 신임 순장님들은 막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 그런 이야기를 제가 듣는데 사랑하는 순장님들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내가 우리 순장님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 드리기 위하여 내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어드렸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제가 읽어 드릴게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뭐 어떤 일을 하는게 순장이라구요?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순원들이 찾아올 때 바람처럼 그걸 용납해 주고 그거를 이해해 주고 그래서 필경 환대해 주는 거예요.
저희 교회에서요 목사님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은 아 그 분당 우리 교회에 유명한 이런 분이 계시다면서요?
근데 처음들어요 그분을.
뭐 유명한 연예인이 이 교회 다닌다던데요? 그럼 제가 그 목사님께 물어요.
그 연예인이 우리 교회 다닌데요?
제가 왜 모를까요?
왜 유명한, 사회에 이름 대면 아는 유명한 분이 우리 교회 다니는걸 왜 내가 모르고 있을까요?
안 찾았으니까요.
그런 유명한 사람만 찾아가지고 내 특별 관리하고, 그분들 만나가 맨날 식사하고, 안 그랬으니까요.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요.
교회는 그런 유명한 사람이고 무명한 사람이고 이런 걸 구분 짓지 않는 곳이니까요.
저는 우리 교회의 장로님 어느 대학 나왔는지 열 명에 한 명 두 명 알까요, 우연히 이야기하다가 튀어나와서 아는 거 말고는 우리 장로님들이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무슨 과 나왔는지 진짜 모릅니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되느냐고요?
무슨 대학 나온 그게 교회에 필요하냐고요?
그저 긍휼한 거죠.
나도 불쌍하고, 저분도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오늘의 말씀을 저는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우리 여러분 한번 꿈 꾸시고요.
베드로전서 4장 7절 8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어느 정도 뜨겁게 사랑합니까?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다락방이 오픈이 되고 교회에 역동이 일어나고 이제 저희가 일만성도 파송 운동 이전보다도 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면서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나면 참 나 같은 죄인도 용서받을 수 없는 나 같은 것도 회복이 가능한 거구나, 그 감격을 가지고 나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면서 이 사랑의 선순환이 흘러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요 이 찬양 제목이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예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나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후렴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그다음 가사를 보세요 '성령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기 나오는 성령의 능력이 파워가 아니에요.
상대방을 제압하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그런 성령님의 능력을 구하는게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저에게 예수님의 그 긍휼로 덧입기를 원합니다, 그 능력을 허락해 주시기 원합니다, 우리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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