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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이찬수목사님

뜨겁게 사랑할 때 나타나는 회복 | 베드로전서 4장 7-8절 | 이찬수 목사님 | 분당우리교회 | 2024.2.18 설교문 녹취록

본문: 벧전 4:7-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2013년도에 개봉된 영화인데요.

그 영화 제목이 'HER' 우리말로 하면은 '그녀' 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대필 대신 써 주는 그 대필 작가인데요.

자기는 남들을 위해서 온갖 사랑의 언어를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편지를 써주는 이런 일을 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지금 아내와 별거 중이고 또 이 외로움과 또 공허함 막 이런 것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예요.

그렇게 외로운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인격형 인공지능이라고요,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또 느낄 줄도 아는 이런 발달된 인공지능이 이제 만들어졌는데, 주인공이 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기 시작해요.

퇴근 하면은 집에 가서 어 이제 기계인데요 이게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하게 그리고 굉장히 따뜻한 그 여성의 목소리로 이 남자 주인공을 그렇게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래서 이 인공지능하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 주인공 내면에 있던 그 마음의 상처가 회복이 되어가는 이런 걸 경험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남자 주인공이 인공지능에게 이 이성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해요.

계속 이제 여자 목소리랑 그렇게 상상하면서 대화를 하다가 보니까 거기에 이제 사랑에 빠지고 또 사랑을 고백하고 그리고 그 인공지능도 이 남자 주인공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또 사랑을 고백하고 그렇게 이제 이야기가 쭉 전개가 되는 거거든요.

그 실체도 없는 그 기계 앞에서 그렇게 사랑을 느끼고 이런게 저는 막 굉장히 좀 그 표현하기가 어려운 그런 역겨움이 좀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입에 담지도 못하는 이런 감정들을 기계하고 같이 막 느끼고 이러는데.

제가 그 영화에서 섬뜩했던게요, 우리로 치면 이제 뭐 강남역 앞이라고 할까요 서현역 앞이라고 할까요, 굉장히 번화한 그런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전부 다 인공지능하고 대화하는데 허공에다 대고 각자가 지금 몰입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저를 섬뜩하게 하더라고요.

이 인격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점점 어려워지고 그런 실체도 없는 기계하고 사랑을 느끼고 또 사랑의 미래를 속삭이고.

어느 전문가가 이번 설날에 추천하는 영화라고 해가지고 제가 이거를 TV 봤는데요 보다가 중간에 껐습니다.

뭐 별로 흥미도 안 갈 뿐더러 그 자체가 이 구도가 굉장히 저를 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이 영화가 2013년도에 개봉이 됐으니까 딱 10년 전에 개봉이 됐는데 이 영화의 극중의 배경이요 2025년도에요.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내년입니다.

이런 가상 기계가 나오고 또 막 감정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사랑에 빠지고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들 삶에는 이게 점점 이제 실제가 돼 가고 있는 그런 거예요.

제가 이걸 끄고 난 이후에도 굉장히 많은 복잡한 생각에 제가 빠지게 됐는데요.

그 영화가 그런 마음에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그 걱정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러고 있는데 미국에서 메일이 한통이 왔습니다.

미국에서 이제 이런 상황에서 귀한 자녀 교육을 하고 있는 이진하 전도사님이라고, 지금 분당 우리교회 하고도 굉장히 밀접하게 협력을 해서 올 3월에 또 저희 교회 와서 자녀교육 집회를 할 계획입니다.

이 분이 자기가 받은 어느 학부모 편지를 저한테 토스해 준 거예요.

아까 영화는 그건 허구고요 제가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려고 하는 이거는 지금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자 한번 내용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5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몇 년 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급진적인 성교육이 통과되어 저희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정체성을 배울 수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동성애자가 되도록 격려하고 있는 상황들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너무나 급진적인 성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먼저 기독교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독교 교육 자료들을 가지고 시기에 맞게 성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딸은 크게 문제없이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학년 딸아이가 저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자기는 동성애자인 것 같다며 여자 친구들이 좋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며 스스로가 너무 죄책감이 들고 괴롭다고 엉엉 우는데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지 않고 딸이 제가 가르친 대로 잘 커가고 있다고 착각한 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희 딸의 말은 자신이 즐겨보는 케이팝, 이게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상이에요, 자신이 즐겨보는 케이팝 커버 댄스 유튜브 쇼츠를 보는데 춤추는 영상 및 자막으로 너 동성친구랑 키스하고 싶어? 그럼 너는 동성애자야라는 문장이 나와서 자기가 주변 동성 친구들과 키스해 보는 상상을 했더니 좋을 것 같더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정의해 버리고 며칠 동안 그 친구들과 키스하는 상상을 할수록 더욱 감정이 커졌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이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우선 그 동영상을 보고 커버 댄스에 맞지도 않는 자막을 넣은 것부터가 너 같은 어린아이들을 현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상상을 스스로 하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후 네가 그런 상상을 하고 좋았다면 너는 동성애자야라고 정의내려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딸은 자기가 그런 상상을 한 자신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너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유튜브 자막 그런 질문을 보면 누구나 상상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뭐 이런 내용의 편지인데요, 이 어머니의 고민이 뭐냐면은 아무리 그 딸에게 설명을 해줘도 그 딸의 우울함이 나아지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어린 5학년 아이에게 이게 뿌리깊게 이게 상처가 된 거거든요.

 

게다가 이 어머니 고민이 뭐냐면요 제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8세 미만의 자녀가 학교나 상담소에서 동성애 관련해서 상담을 이제 한단 말이죠, 그러면 내가 지금 성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가지고 상담하러 가면 상담사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 탈동성애, 그 동성애로부터 자유하도록 돕는 그것이 법으로 금지가 돼 있다는 거예요.

이걸 어길 경우에는 그 상담사가 벌금과 함께 라이센스를 박탈하는 이게 법으로 지금 재정이 돼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상담을 들어보고 어이 넌 동성애 아니야 이러면은 라이센스가 박탈이 된다는게 믿어지세요?

이 엄마가 이 아이를 상담사한테 보낼 수가 없는 거죠.

보내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어 네가 그렇게 느꼈으면 그 즐기면서 한번 해 봐, 이런 류의 상담이 나올 것 같으니까.

게다가 법이 진짜 이상합니다.

이런 상담을 받을 때요 부모가 같이 못 들어간대요.

그 5학년짜리 애를 혼자 보내 가지고 무슨 상담을 할지 뭐 어떻게 알고 그 아이를 상담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겠느냐? 이게 이제 고민이 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제가 이 편지를 읽은 후에 그 성경구절 하나가 떠 올랐는데요, 베드로전서 5장 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오늘 이 시대는 정말 우는 사자와 같이 어린 5학년 아이에게 왜 이런 영상을 보여 주다가 이런 자막을 왜 거기다 넣느냐구요? 뭘 노리는 거냐고요.

최근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님 강의를 제가 들었는데요.

이분이 강조하는게 뭐냐 오늘 우리 시대는 중독의 시대인데 그 어떤 문제냐 하니까 과거에는 이 물질 중독이라고 뭐 알콜 중독 마약 중독 니코틴 중독 이런 물질 중독이 이슈였죠.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은 마약 안 하면 되잖아요.

저는 뭐 술 안 마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스마트폰 SNS 그리고 인터넷 숏폼 이런것에 영향을 받아 중독되어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늘 뭐 초등학교 어린애나 저 같은 나이에 있는 사람이나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아요.

인터넷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요.

근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포함한 우리 청소년들이 어린 초등학생들이 지금 인터넷 숏품 같은 그러니까 굉장히 강렬한 자극이 노출되는 이 짧은 짧은 이런 영상, 제가 그 얘기를 들어 보니까요 이런 영상을 처음에 잠깐만 보고 자야지 하는데 밤을 샌대요.

끊을 수가 없는 거죠.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러면서 강렬한 이런 중독에 지금 노출이 돼 있는데, 이게 왜 이 디지털 중독이 왜 무서운가 하면은 이게 인간의 뇌 구조를 변형시킨대요.

그래서 이 전두엽을 변형시키는 거예요.

인내력이 짧아지고 그냥 막 지금 이제 뭐 이거 해야 돼 그러면 해야 되는 거죠.

 

여러분 그 신조어 중에서 팝콘 브레인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이 팝콘 브레인이 무슨 뜻인가하면 이 첨단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그런 사람의 뇌가 현실에 무감각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상태가 팝콘 브레인인데 왜 이름이 팝콘 브레인입니?
여러분 그 팝콘이 팍팍팍팍 터지잖아요, 이 팝콘이 터질 때처럼 강렬한 자극에만 이 뇌가 반응한다고 팝콘 브레인이래요.

저는 이제 제가 글쎄요 이제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 제가 정말 80대가 되고 90대가 되면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이게 지금 뇌 구조가 바뀌고 전두엽이 바뀌고 그래서 욱 하면은 지금 내가 뭔 욕구가 올라 오면은 지금 바로 해야 되는 거죠.

이 못 견디는 거죠, 안 하면.

이런 세상으로 지금 점점점점 변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제가 지난 주에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말씀의 의미를 그 미국과 유럽에서 이게 실패한 모델이다, 이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 성경이 지금 그걸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제가 이 세상 방식을 따르지 말라라는 걸 제가 풀이해 드렸는데요, 설교 한편으로 '오 이거 내가 이제 끊어야 되겠다' 이거는 기대가 난망하옵니다.

뇌 구조가 바뀌어져 가고 있는데 한번 깨달았다고 이게 끊어지는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두려움이 많은 거죠.

 

그럼 대안이 뭐냐고요.

요즘 저는요 이 대안이 뭐지, 이 고민을 가지고 성경의 여러 대안들을 제가 찾고 묵상하고 그러면서 요즘에 설교를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도 제가 발견한 대안 중에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 8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죄를 덮느니라"

지금 여기 나오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이 시대에요.

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대안이 이거 수식을 다 빼고 나니까 두 가지네요.

하나는 기도하라,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기도하라에요.

오늘 이 대안을 좀 살펴보고 싶은데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첫 번째 대안이 기도하라요.

베드로전서 4장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기도가요 이 무서운 유혹의 시대를 극복하는 도구라는 거죠.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어떤 차원의 기도인지를 느끼게 하는데요 여기 보면은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두 가지 주의해야 될게 있다는 겁니다.

두 가지 주의해야 되는 것 중에 첫 번째가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

여기 나오는 정신을 차리고 이게 헬라어로 '소프로네오'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원래 뜻이 이런 겁니다.

'차분한 마음' 또 '제어가 가능한 상태의 마음' 이런 뜻을 가진 단어거든요.

이게 마가복음 5장에도 이 단어가 나옵니다.

마가복음 5장 15절입니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여기 나오는 정신이 온전하여 이게 '소프로네오'에요.

이 말씀 바로 앞에 보면은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어떤 상태였는가를 묘사하는게 나옵니다.

그 앞에 3절 4절입니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멜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여러분 뭐가 귀신들린 상태인지 아십니까?

아무도 나를 또 나 자신도 나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 이게 귀신들린 상태예요.

제가 가끔씩 얘기하잖아요.

가끔씩 신문에 비극적인 기사가 나잖아요.

어느 목사가 어느 여성도랑 무슨 성적인 스캔들 일으켰다, 그 목사님이, 아니 정치가로 할게요.

어느 정치가가 자기 여비서와 성적인 스캔들을 만들었다, 그 똑똑한 정치가가요 이 여성 비서와 이런 성적인 짓을 하면은 내 인생을 끝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뭐가 귀신 들린 거라고요?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이게 귀신 들린 거예요.

저는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요.

그리고 하나님이 참 외모적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배려를 해주셔가지고 어지간한 여성은 저를 뭐 남성적인 매력을 못 느끼도록 만들어 주셔서 이거 참 이쪽에 제가 유혹을 이기는 일은 좀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참 그게 힘들었는데요.

여기 좀 잘생기고 뭐 이런 분은 목회하시는 거 그 자체가 거의 순교를 방불케 하는 일이에요.

그 참 감사해요.

오늘 왠지 좀 씁쓸하긴 합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구하고 또 구하는게 뭐죠?

하나님 제가 우리 성도님 중에 어떤 예쁜, 어떤 성격이 좋은, 어떤 친절한 여성도를 제가 여성으로 보지 않도록, 여성으로 보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 이 귀신 들린 상태예요 제가.

다행히 정말 34년 동안 한번도 이런 시험의 자리에 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적인 보호하심이라고 저는 믿거든요.

지금 여러분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이 말세의 두 가지 대안으로 주신 것 중에 하나가 기도에요.

이 기도가 어떤 차원의 기도입니까?

이 악한 시대가 노리는 목표는 딱 하나예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상태, 그 어린 5학년 아이에게 뜬금없이 너 동성애자야 이런걸로 이 아이를 혼미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사탄의 목표는 그래서 그 아이 마음에서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만드는 이게 목표거든요.

이런 차원에서 말세에 정신을 차리고 하는 기도라는 것은요 나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 제어가 된 상태라는 것을 드러내는 차원에서의 기도에요.

 

그런가하면 여기 두 번째로 또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세에 드리는 기도가 제대로 된 기도가 되려면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겁니다.

4장 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기 나오는 근신하여는 헬라어로 '네포'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자제력인데요 자제력.

근데 정확한 판단력에 근거한 자제력, 이게 네포에요.

말세에 왜 기도가 대안이 되느냐,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어떤 차원이냐 할 때, 여러분이 아까 그 팝콘 브레인 그 자제력을 빼앗아 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 내가 어떤 충동이 일어나요, 내가 지금 성적인 충동이 일어나면은 뭐 저 사람이 뭐 남의 부인이건 길가는 여자건 막 이게 충동이 일어나면은 제어가 안 되게 만드는게 지금 이 시대가 지금 젊은이들을 향하여 하는 공격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자제력이에요 자제력.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자제력이에요.

내가 짐승도 아닌데 아무리 내가 그런 충동이 일어난다고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면 할 수 있으랴? 난 그런 짓 하면 안 돼! 이게 근신하여에요 근신하여.

 

우리가 기도할 때요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뭐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뭐 왜 안 주세요 뭐 이것도 주세요 이런 기도만 하시는게 아니라요 오늘 하나님 제가 기도할 때 근신하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내게 지금 욕구가 올라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이게 정확한 판단력을 근거로한 자제란 말이죠.

아무리 건축을 하고 싶어도, 이제 막 큰 교회 만들고 싶어도 하나님이 저에게 자제력을 주시기를 원하는 거죠.

그렇게 졸속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급하게 서둘고 이러는 것은 위험해, 이게 근신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깨달음이거든요.

악한 세상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표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게, 하나님 부제의 상태, 내 내키는대로 하는 거죠.

팝콘 브레인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막 팍팍팍팍 팝콘이 막 튀는 것처럼 즉흥적이고 막 충동적이고 그리고 강렬하고.

이 시대가 지금 그렇게 흘러간다고 할 때 저와 여러분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도구, 기도라는 도구를 통해서 자제력이 나를 억제하고 억누르게 하는 힘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은요 제가 지난 3주 내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오늘이 완결 편이에요.

다니엘이요 이제 포로로 끌려 갔더니 이름도 뺏아 버리고, 그 악한 그 우상의 신들 이런 이름으로 바꿔버리고 그리고 막 음식도 통제하고, 그랬을 때 다니엘이 했던 건 뜻을 정하는 거예요.

난 더 이상이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랬더니 자기를 담당하는 관리가 이제 막 걱정을 많이 하니까 엄청난 도전을 던지잖아요.

그게 다니엘 1장 12절 13절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우리를 10일 동안 시험에 보십시오 우리에게 채소와 물만 주어 먹게 하고 그 후에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과 비교하여 우리의 얼굴 모습을 보고 우리를 처분하십시오"

이런 도전장을 던져요.

그랬더니 완결편, 중요한 건 그다음 17절입니다.

17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하나님은 이 네 젊은이들이 지식을 얻게 하시고 문학과 학문에 능통하게 하셨다 그밖에도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온갖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주셨다"

뭘 강조하는 거죠?

다니엘이 이런 결단을 하니까 그 친구들과 함께 그랬더니 그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 다니엘의 결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일하시는 거란 말이죠.

 

제가 뭐 어떤 일이 있어도 뭐 미국 집회를 가고 유럽 집회를 가고 혹은 다른 목사님하고 지금 2인 1실로 지금 강사들끼리 한 방에 호텔을 써도 어떤 경우라도 새벽은 내가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 잠 깰까 봐 자기 전에 그 변소 그 냄새나는 화장실 옆에다가 의자 갖다 놓고 노트북 갖다 놓고 성경책 갖다 놓고 그렇게 하고는 새벽에 3시 이렇게 일어나 가지고 새벽에 가서 제가 묵상을 하는 이유는요 이 때문이에요.

뭐 여러분이 다 뭐 이미 알고 계시지만 능력과 지혜는 저에게 나오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늘 비는거죠, 지혜를 달라고.

목회를 하는데 내가 판단 한 번만 잘못해 버리면 수천 명의 성도들이 혼란에 빠지는데 하나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은혜 주시기 원합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 해야 되는게 기도에요 기도.

왜 이 말세에, 마지막 때에 기도하라 이게 하나님의 대안이 되느냐?

제 힘으로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 성적인 타락 이 성적인 유혹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저에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거죠.

이 기도를 통해서 저 같은 사람도 참 부족하지만 이 정도라도 목회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은혜를 구하는 거, 이게 말세에 모든 분들이 구해야 되는 거죠.

저는 그래서 다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다락방 모임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래요.

이런 거죠, 이제 다락방애서 어떤 순원이 아 나 우리 남편하고 나 도저히 못 살겠어요 성격도 안 맞고 처음부터 우리 잘못 만났어요, 내가 이 남편 때문에 내가 죽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다고요, A순원이.

그러고 나서 이제 그다음에 B순원이 이렇게 말해요, 아 우리 이 집사님 못지 않게 우리 가정도 문제가 많습니다, 부부간에 대화도 안 되고요 정말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순장님하고 우리 순원분들께 부탁하는데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이 같은 내용 아닙니까.

같은 내용인데 A순원은 푸념을 늘어 놓았고요 B순원은 그것을 기도 제목으로 승화시켰어요.

다락방은요 푸념을 늘어놓는 곳이 아닙니다.

다락방은 영적인 복음의 언어가, 그래서 주님 이름으로 복음의 언어를 사용하면은 다니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개입을 하세요.

이걸 맛보는게 그게 다락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의 언어가 사용이 되는 거. 기도하라.

우리 다락방은 문제들이 막 계속 푸념으로 늘어놓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 응답을 위하여 서로서로 축복하며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하나님에 대안 첫 번째 대안 기도하라에요.

 

그런가하면 말세 해야 될 두 번째 대안이 뭐냐? 사랑하라에요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지금 사람들이 교회를 자꾸 떠난대요. 그 가나안 성도.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가나안' 교회는 안 나가.

왜 안 나갑니까?

지금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곳인데 이게 안 되니까 자꾸 교회만 가면 상처를 받는다는 거예요.

목사님 한테도 상처받고 장로님 한테도 상처받고 권사님 한테도 상처받고, 안 나가 안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29 교회가 일만성도 파송 운동한 이후로, 저희 교회에서 나간 분들이 만명 좀 더 넘는데요, 지금 29교회를 다 합하면 엄청난 숫자가 됐어요.

최근에 제가 아끼는 목사님 만나 대화하다 보니까 지금 출석이 1500명씩 모여요.

가나안 성도들이 막 몰려온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느냐고.

그 비결을 나한테 좀 보내 달라 그래서 이만큼 제가 받아 놨는데 언젠가 한번 인용할 때가 있겠죠.

교회는 사랑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사랑받는 곳입니다.

이게 안 되는 순간 교회는 100% 변질이죠.

상처밖에 나올게 없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은요 십자가를 통한 용서와 사랑 이게 전부예요.

그 외에 나머지는 이 십자가를 통한 용서와 사랑을 근거한 파생되는 별책 부록이에요.

우리가 뭐 잘 살아보자 정직 이게 살자 뭐 이 모든 거 다 별책 부록이에요.

근본적으로 교회는 십자가에요 십자가.

 

그래서 이제 그 사랑하라 이게 이제 말세의 대안이라 그러는데 근데 여기 보니까 그 사랑에 지침이 하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사랑하는데요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러분 허다한 죄를 덮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은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밖에 안 나옵니다.

여러분 되던가요? 저는 안 되던데요.

그 상대방의 허물을 완전히 용납하고 용서하고 덮을만큼 그 사랑은요 우리에게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왜 말세의 대안이 사랑하라인가 하면은 그 사랑을 추구하다가 보면은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거든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게 복음이라 그랬죠.

지난주 기억하시죠?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에요.

그 소년은 둥지까지 다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나무에게 되갚을게 사랑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뭘로 되갚습니까?

근데 그 나무는 그 사랑을 알아 주고 수용해 주고 그걸로 감사하며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게 그게 나무거든요.

이게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저는 분당 우리 교회가 이 말세에 여기가 피난처가 되기를 원해요.

어떤 악한 것들이 유혹을 하고 우리를 무섭게 공격을 해도 분당 우리교회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안전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첫째 주님 앞에 기도해야 돼요.

기도를 통해 뭘 선포한다고요?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려고 하는 이 악한 시대에 동조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한다고요?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시라고. 하나님은 내 삶의 왕이시라고 이걸 의지적으로 선포하는 거죠.

그리고 사랑하는 거예요,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의 허물이 다 덮힐 때까지.

저는 이번 소그룹 다락방에서 위대한 용서와 위대한 사랑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넘치게 될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이 다락방은 대접 받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실습하러 가요.

 

이번 설날 연휴에 아 굉장히 제가 이 참 재밌는 일을 많이 겪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예요.

그 어느 순장 부부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저한테 세배하러 왔어요.

나이 차도 얼마 안나요.

갑자기 세배 하러 왔다고 그래서 제가 엄청 당황했죠.

절대 그러지 말라고 무슨 세배냐고 그냥 놀다 가라고 그래서 이제 그 부부하고 차를 마시고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이 분이 신혼부부 다락방을 순장 두 부부가 맡고 있는데요 아홉 쌍이에요, 그러면 18명을 섬겨요.

정성을 다해서 섬기는데요.

이 순장님 부부가 가시고 나니까 우리 교회 직원 한 사람이 그 다락방의 순원이래요.

그래서 이제 그 직원이 그 순장 부부가 딱 나가시고 나니까 하는 말이 와 정말 지극 정성으로 순원들을 섬긴대요.

이건 뭐 과하다 할 정도로.

자기가 알기로 이 순장님 사업도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지나치도록 섬기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제가요 그 심방 교육자가 기도제목 올려준 걸 제가 확인을 해봤어요.

깜짝 놀랐죠, 이런 기도제목을 교역자가 올렸더라고요.

작년 1월입니다.

현재 사업장도 어려운 상황이심, 수입이 있으나 나가는 금액이 많아서 감당하기 쉽지 않으심, 이게 작년 1월에 쓴 기도 제목이에요.

그리고 올 1월에 쓴 것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매월 빚을 갚아 나가며 사업이 진행되기에 꾸준히 매출이 이어지고 올해는 모든 빚이 청산되기를 기도합니다.

뭡니까 지금? 이 순장 부부가 매달 갚아 나가야 되는 그 빚, 이거가 지금 진행이 되고 있는데 아니 왜 아홉 쌍, 그 언제 만났다고 그 18명을 위하여 지극 정성으로 퍼주는 거예요?

사실 이제 이분들고 대화할 때 그런 얘기를 나눴거든요.

인간인지라 어떤 때는 버겁대요.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하고 있지?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래요.

이번에도요 연말에 이제 좀 버겁다 그러는데 바로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회복을 시켜 주셨대요.

 

여러분 작년 12월 24일 주일에 저희 어머니 장례 때문에 제가 한 주를 비웠잖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 곽규호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1부 예배 때 사진 하나를 올렸대요.

제가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우리 교역자들이 참 안쓰러웠는지 갑자기 기습 예배를 드리러 왔어요.

우르르르르 몰려오더니 다 서서 그 자리에서 막 얼떨떨한데 막 이제 눈물로 기도도 해 주고 그렇게 예배를 같이 드렸는데요.

그때 누가 사진을 한 장 찍었나봐요.

그 곽규호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그 사진을 이제 화면에 올렸대요.

이 사진입니다. 한번 화면으로 띄워 주세요. 저 사진이에요.

그 까만옷 입은 저를 쳐다보지 말고 그 위에를 보세요.

그 액자가 큰게 하나 제 기둥에 붙어 있거든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성경 말씀을 그 순장 부부가 예배 가운데 저 성경 구절에 있는 액자를 보고는 마음이 힐링이 됐대요.

내가 우리 순원들을 섬기는 이 일이 이게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이 눈물의 고백을 실천하는 거라고, 다시 내가 힘을 내야 되겠다고.

그래서 제가 이제 우리 순원 분들께 제가 부탁합니다.

이제 새학기부터는요 그 순장이 리어카를 막 땀을 흘리며 끌고 나머지 모든 순원들이 리어카에 타고 가는 이 구도가 아니라 이제는 모든 순원들이 리어카에서 내려서 같이 끌고 가기를 바래요.

이 순장님 부부에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는 건 옳지 않아요.

같이 짐을 같이 끌고 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리어카에 누가 타야 되느냐.

새 가족이 타야 돼요.

교회를 경험해 보지 못한 초신자들이이 리어카에 올라타서 회복이 되면 그분도 내리고 또 새 가족이 올라타고.

이게 다락방입니다.

 

결론을 제가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아까 그 사진에 그 왼편에 보면은요 제 책장 위에 액자 하나를 제가 붙여 놓은 거 여러분이 다 아는 이야기예요.

이렇게 제가 액자를 넣어놨습니다.

'덜 논리적이면서 더 사랑하라'

이걸 제가 액자에다 놓고 들어가면서 보고 나가면서 보고 그러거든요.

왜 그럴까요.

저는 논리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몇 마디 해보면 아 이게 이런 사람이네, 아이 참 약점이 많네, 저는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 약점을 알기 때문에 맨날 외쳐요 덜 논리적이면서 더 사랑하라.

왜 이걸 애써야 될까요?

주님이 논리적이셨으면 저나 여러분은 구원을 못 받았을 거예요.

덜 논리적이면서 더 사랑하는게 그게 십자가거든요.

 

말세에 어마어마한 지금 유혹과 공격이 감당하기 어렵게 폭포수처럼 퍼부어지는 이 시대에 우리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두 가지에요.

하나는 기도에요 기도.

중심을 잡아주게 만드는 기도, 기도하라.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하라.

어디까지? 상대방의 허물이 덮혀질 때까지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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