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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이찬수목사님

세상에 역행할 때 얻는 행복 | 로마서 12장 1-2절 | 이찬수 목사님 | 분당우리교회 | 2024.2.11 설교문 녹취록

본문 :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 중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이제 인터뷰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그 지난 주에 우연히 제가 그 프로를 봤는데 이혼 전문 변호사를 초대해서 인터뷰를 하는 겁니다.

이 변호사님은 진짜 뭐 지금까지 진행했던 이혼 소송건수가 2천여건이나 된다 그러고요.

그리고 보통 이혼 소송이 한 1년 이상 그 시간을 끄는 이런 경우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동시에 진행되는 건수가 보통 한 300여건, 그리고 많을 때는 한 500여건이 동시에 이 소송이 진행이 된다 그러니까 뭐 진짜 그 전문 변호사가 맞는 거 같습니다.

이 변호사 대화를 들어 보면은 이미 그 부분에 많은 이혼과 관련한 통계 자료를 갖고 있는 거죠.

 

이분이 뭐라 얘기하는가 하니까 예전에는 결혼하면 뭐 당연히 부부 재산이 하나되는 거 아닙니까.

부부는 모든 걸 다 하나로 이루어져 가는 거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뭐 그런데 대한 갈등이 전혀 없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부부가 돈 관리를 따로 하는게 대세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은 이제 맞벌이 부부가 돈을 벌면 각자 통장을 관리한대요.

되게 또 그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각자 통장을 관리하고 이제 공동 생활비를 이거를 이제 공동 통장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생활비들은 또 거기에 넣어 갖고 이제 쓴다고 그러는데요.

그러다가 이제 그 공동 통장에 왜 입금 안했냐 막 이런 것 갖고 또 막 싸우고 뭐 그러기도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가지고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이제 집안 살림을 위해 가지고는 공동 통장에 입금된 그 돈을 가지고 써야 되는데 사람이 이제 장을 보다가 보면은 예를 들어 이제 여자분이 이제 그 시장을 보면은 아 갑자기 이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상식적으로 그거 하나 더 얹어서 계산하는 건 굉장히 당연한 거 같은데 이게 이제 문제가 된다는 거죠.

왜 여성용품을 왜 공동 통장에서 썼느냐 이래서 이제 싸움이 나고 이게 다툼이 되고 이혼으로 가고 막 이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죠.

이건 제가 믿겨지지가 않는데요.

이제 명절이 되거나 이러면은 이제 양가 부모님에게 이제 선물을 드리잖아요.

이 선물을 구입하러 갔는데 예를 들어서 이제 뭐 남편 부모님의 선물이 아내 거보다 더 비싸다! 왜 공동 그거로 왜 당신 부모님에게 더 비싼 거 했느냐 뭐 이런게 이제 뭐 문제가 된다 뭐 그런 얘기도 막 하는 거죠.

 

이건 진짜 안 믿어지는데요, 이제 양가 부모님에게 명절에 인사하러 갈 거 아닙니까.

인사하러 가는데 지금 이제 예를 들어서 처갓집으로 간단 말이죠.

그 이렇게 말한대요.

당신 집에 가는 거니까 당신이 기름값 내라.

이런 것 때문에 이제 뭐 다투고 뭐 이런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이 변호사님이 한참을 하는데 뭐 이게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물론 이제 이혼의 과정이니까 이제 감정이 개입되고 뭐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는 그렇게 뭐 애써 믿고 싶은데요.

어쨌든 이런 내용을 쭉 이제 인터뷰에서 설명하더니 변호사가 자기가 볼 때 체감상 부부간의 이혼율이 한 35% 정도는 되는 거 같다, 그러니까 100쌍이 결혼을 하면 한 35쌍이 이혼을 하는 거 같다, 그러면서 이분이 덧붙이는 말이 뭐냐면 근데 이 숫자의 오류가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까요, 그 통계에 안 잡히는게 있대요.

요즘에 결혼을 했는데 혼인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 안 하고 사는데 심지어는 그 아기를 낳았는데도 혼인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그분들이 이혼을 하면 이 통계에 안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마 35% 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그런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여러분 결혼했는데 왜 혼인 신고를 안 할까요?

왜 결혼식을 안 할까요?

물론 뭐 경제적인 이유나 부득이한 어떤 사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 그걸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사실은 이게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에서 건너온 그 문화 아닙니까.

동거. 그 왜 동거가 이렇게 많아지느냐?

내가 저 사람 어떻게 믿고 내가 혼인신고를 하느냐?

살아보고 여러가지 면에서 내 마음에 합하면 그때 가서 혼인 신고해도 늦지 않는 거 아니냐 이게 유럽의 문화의 핵심 아닙니까?

그리고 뭐 이 가정이 지금 막 파괴가 되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뭐 혼인신고 이런 거에 대한 의미도 별로 두지를 않는 거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 프로에서 참 놀랐던게요.

결혼 하면은 그 참 결혼의 꽃은 신혼 아닙니까.

그 콩깍지가 씌여 가지고 막 그냥 막 그냥 막 죽고 못 사는 그게 신혼인데요.

그런데 그 변호사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결혼 4년차 이하, 이 결혼 4년차 이하 신혼의 이혼율이 27%인데요, 이게 전체 이제 뭐 예를 들어 결혼 10년차 결혼 20년차 결혼 30년 차 이 모든 통계에서 결혼 4년차 이하 이혼이 가장 높다는 겁니다.

뭘 의미하는 거죠? 참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이분이 하는 이야기가 이 가정 마저 결혼 마저도 이해 관계를 따지고 실리를 따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저는 이 변호사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가 머릿속에 막 떠올랐는데요.

하나가 이겁니다.

제가 그 기독교 교육 전문가 교수님인데요, 그 이동열 교수라고 우리 교회에서도 함께 사역했던 분이에요.

이 전문가 강의를 제가 듣던 중에 그 '자아 팽창 시대' 이런 용어를 강의 시간에 이분이 하더라고요.

자아 팽창 시대가 뭐냐 하니까 이게 '에고 익스펜션' 이라고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마음속의 자아가 그러니까 이 '나'라는 존재가 이 풍선처럼 부풀러 올라가지고 이게 터지기 직전이에요.

이게 자아 팽창입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내 생각이 다 옳은거다 이게 자아 팽창이거든요.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내 기쁨! 이게 내게 유익한가? 이게 내게 행복한 일인가? 이게 살아가는 기준의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기 때문에 이걸 자아 팽창 시대라고 그렇게 설명을 하더라고요.

 

성경에 보면은요 디모데후서 3장 1절 2절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 뒤에도 쭉 나옵니다.

이 모든 이 시대의 말세에 일어나는 양상의 견인차가, 견인차 아시죠, 그 차가 그 불법 주차 하면은 그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가요.

그러면 시동 안 거는데도 그 차는 따라가게 돼 있는 거죠.

그 견인차가 자기 사랑 돈 사랑이라는 겁니다.

극단적인 자기 중심의 삶을 부추기는 이 시대, 이게 자아 팽창 시대인데 놀랍게도 2천년도 더 전에 성경이 이걸 예언하고 있는 거죠.

마지막 때에는 바로 이것이 뭘 가져다 준다고요? 행복을 가져다 주는게 아니라 뭘 가져다 준다 그럽니까?

1절을 다시 보세요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의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말세의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 결정적인 견인차는 극단적인 자기 사랑이에요.

부부? 그 다 필요 없고 내게 유익하냐?

이 남자가 이 여자가 내게 유익하냐는거죠.

부모? 무능한데 그게 무슨 부모야, 내게 유익한게 그게 부모라는 거.

이게 극단적인 이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이 자 팽창 시대 이 용어가 그 떠올려졌고 그런가하면 또 하나가 떠올려졌는데, 예전에도 한번 인용해 드린 적이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책이 떠올랐습니다.

전에 제가 이 말씀드렸죠.

이 동화책에 나오는, 그 저는 나이가 이렇게 많아도 그 그림책이 그렇게 아주 많지는 않아도, 제 서제에 또 교회 서제에 그림책이 꽤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우선 뭐 복잡하지 않아요.

막 굉장히 전하고자는 메시지가 선명 선명해요.

가평 우리 마을에 가면 지금 인기 있는 코너가 그 그림책 도서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제 이 그림책 도서관이니까 이제 애들 데리고 이 보여 주려고 갔다가 엄마가 거기에 빠져 가지고.

엄마 방에 들어가자, 있어 봐라 그러고 지금 엄마들이 다 보는 거예요.

그니까 이 그림책을 갖고 잘 설명해 놓은 이런게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는데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뭐 다 아시잖아요.

그 소년에게 모든 걸 내어줘요.

맹목적이에요.

그리고 나중에는 더 이상 줄게 없으니까 둥지를 잘라 가지고 의자로 앉아라.

이게 이제 아낌을 주는 나무 내용인데,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맨 마지막에 한 장을 저는 인식을 못 했거든요.

다 그냥 읽고 내려갔기 때문에.

어느날 이걸 다시 읽으면서 이 탁 넘기는데 짧은 이 한 마디가 저를 그냥 막 그날 이렇게 무장을 해제시켜 버리더라고요.

그 짧은 한마디가 이거예요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라는 접속사는 그 앞에 모든 것을 다내어 주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는 악한 사단이 마지막 장을 지워버린 시대예요.

이게 뭔가 뭐 이게 내가 손해 보는 거 같고, 내가 내 부인한테 이만큼 주는데 자기는 나한테 주는게 뭐야? 이 싸우는게 다 이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답니다.

이게 성경의 원리거든요.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단은 성경을 읽어도 이런 거는 그냥 통과, 너한테 별로 유익하지 않으니까 이거 그냥 넘어가, 이게 참 이게 뭉클한게요, 이게 이론이 아니고 사도 바울이 그 에베소 교회에 참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던 그 에베소 교회를 이제 떠나는 겁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정들었던 그 장로님들을 다 청해 가지고 한 말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정말 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는데 이게 내게 행복이더라.

당신들도 그렇게 살면 좋겠다 이 권면이거든요.

그래서 바울이 이런 권면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뭐 저는 뭐 은퇴식 안 할 거니까요, 은퇴 예배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항상 내 마지막 예배를 떠 올려요.

그래서 예전에 일만성도파송운동하기 전에 5부까지 예배를 드릴 때도 종종 이 5부 예배를 마치면 제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이 내 마지막 예배라면 나는 이렇게 설교하면 좋겠는데, '사랑하는 여러분 부족하지만 제가 분당 우리교회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 모든 것을 다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원리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설교하고 제가 은퇴를 할 수만 있다면 이게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거든요.

 

여러분 이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데 이런 극단적인 자기 사랑을 부추기는 시대, 이혼해 버려라 너 그러고 왜 왜 참고 사니 그 남자가 그 여자가 너한테 이것밖에 안 해 주는 시대에 그냥 헤어져, 혼자 사는게 훨씬 나아, 이런 것들을 부추기는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그래서 항상 내 생각만이 옳은거죠, 항상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러 온 거 영어로 예배가 'service'라는건 아시죠?

이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뭐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그 저 목사가 얼마나 내 기분에 잘 맞는 설교를 하느냐 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닙니까.

아 여러분 은혜받았습니다 이 다른 말로 오늘 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거 아닙니까.

진짜 그거 아닙니까.

이게 오늘 우리 시대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지난주 설교를 통해서 로마서 12장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래서 이런 그 것들을 부추기는 이 시대는 이거는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이 실패한 모델이라 그랬잖아요.

유럽이 미국이 가져다 준 이 문화가 이혼을 걱정하게 만들고 부모 자식도 없게 만들고 거래 관계로 만들고 원래부터 우리 예수 믿기 전에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안 그랬습니다.

모든 걸 희생하고 다 내어주고 이게 부모의 모습 아니었냐고요.

그리고 자녀들은 그 부모의 사랑을 사랑으로 알아 눈물로 효도하던 그런 시대, 이 다 어디로가 버렸습니까.

그래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건 그 실패한 모델인 이 세상 방식을 따르지 말고 그런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자 그렇다면은 대안이 뭐냐는 거예요.

그럼 그냥 뭐 따르지 말고 이런 소리만 하지 말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로 그 대안이 1절에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드리라예요.

뭐 그 수식어 다 빼고 그 대안이 뭐냐? 극단적인 이기적인 시대에 대안은 드리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비슷한 용이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이 극단적인 자기 사랑으로 몰고 가는 이 시대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런 권면은 손톱도 안 들어가요.

내가 이래서 내가 교회 가는게 싫단 말이야.

드리기는 뭘 드려, 받아오기도 지금 부족한데 .

아니 뭐 다시는 너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뭐 저 같은 목사들이 워낙 교회를 뭐 그냥 깽판을 쳐 갖고도 문제가 많지만요, 그런 일 없다고 해도 이 시대에 기독교는 공공의 적입니다.

이게 자리 잡기가 어려운 종교에요.

 

그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요.

그럼 기독교 이렇게 끝입니까?

여기에 진짜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가 아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 그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게 전인격적인 표현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게 오늘도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있다는 거죠.

언제 이 권면을 우리는 이행할 수 있는가?

그것도 1절에 답이 있습니다.

1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무엇으로 권합니까?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걸 새번역으로 보니까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뭘 힘입어 권합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공동 번역에 이렇게 돼 있더라고요.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 이토록 크시니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그러니까요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 너 행복을 위해 살아라, 결혼? 상대방이고 뭐고 상대방이 너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으면 그건 꽝이야! 이런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인격적으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이 감격을 회복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셨는가?

그럼 여기서 중요한게 뭐냐면은 지금 바울이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 이렇게 권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비하심이 뭐냐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자비하심이 뭐냐고요? 이게 십자가입니다.

 

제가 두 주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이 1절에서 가장 중요한게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라고요.

이 그러므로는요 그 앞에 나오는 로마서 1장 시작부터 그 앞 직전까지 나오는 11장까지의 모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어울러서 그러므로 너희도 하나님께 드리라 이렇게 나가는데, 이 1장부터 11장에 엑기스가 핵심이 뭐라 그랬죠?

자격 없는, 내버려뒀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어떤 사랑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던가? 그 자비하심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그 바울이 지금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이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십자가라고 하는 걸 바울은 너무 감격으로 뜨거운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고 로마서 5장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요.

여러분,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또 바뀌고 타락하고 또 타락해도 절대로 그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나와요.

분당 우리교회 개척 이후로 우리는 기존 신자 등록을 안 받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눈에 더 뜨여요.

여전히 여전히 그 마음의 뜨거움으로 주님 앞에 돌아오는 분들은 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진 놀라운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 돌아와요.

그리고 아까 성가대 보셨잖아요.

이 명절에 자기들대로 스케줄이 있을 텐데 여전히 아름다운 찬양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헌신하고 쓰이는 거거든요.

 

제가 앞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 그림책 이야기를 말씀해 드렸는데요.

이번에 이제 그 이혼 전문 변호사 강의를 듣다가 제가 이 책이 생각이나 꺼냈어요 다시.

이게 다시 제가 보다가 보니까 이게 그림책이 좋은 게요 여러 번 읽었는데도 놓친 단어들이 계속 떠올려지거든요.

이번에 새로 발견한게 이겁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콤마)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어요.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이 소년이 한 건 딱 하나예요.

그 나무가 자기에게 한 걸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년도 팔 하나 잘라 가지고 나무에게 되갚은게 아니고요.

그 나무가 자기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준 걸 알았기 때문에 소년이 한건 간단해요.

사랑한 거예요.

이게 복음이에요.

 

오늘 설날 우리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정도 사정도 없는 그런 분이라서 그깟 제사 필요 없다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예수 믿는 사랑하는 아들 딸 여러분, 하나님은요 돌아가시고 눈물 콧물 쏟은 온 정성을 다해 드리는 그 제사를 받을 수 없을 때 그러지 말고 느낄 때, 그것을 그 부모가 그것을 받을 수 있을 때 그때 효도해라.

그래서 설날은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 주변의 어른들께 마음을 다해서 어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날이에요.

그리고 우리 하나님도 똑같으세요.

너 봤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내가 한 일 봤지? 그러니까 너도 팔 하나 자르라 말이야 나를 위해서, 이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행복하신 조건은 하나예요.

우리가 그것을 알아 줄 때예요.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할 때예요.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하나님하고 인간 부모가 거의 유일하게 닮은 공통점이 이거예요.

모든 부모도 자식에게 바라는게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리고 알아주는 거.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이게 복음이라니까요.

지금 바울의 감격을 한번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5장 13절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무 벅차 가지고 과장법을 구사해요.

"우리가 만일 미쳤어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여기서 강권하시는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새번역은 더 와닿게 번역했더라고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감격이 바울의 모든 것을 휘어잡아 버렸어요.

다매섹 도상에서 자격 없는 나, 예수님을 핍박했던 나, 교회를 핍박했던 나, 이런 나같은 것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 내가 어떻게해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휘어 잡았습니다.

이거 없이는요 맨정신으로 이 시대에 누군가를 섬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독특하신 분이에요.

저 어머니는 저를요 교회에 내어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저희 집안일에 저는 예외에요, 열외.

뭐 이런 거죠.

제 형이 혹은 누나가 이제 한국을 방문하잖아요.

그럼 저는 몰랐어요.

어머니가 부르신대요.

그 전화로 말씀하신대요.

너 이거 이목사한테 연락하지 마라, 너 한국 간다는 얘기 이 목사한테 절대 하지 마라, 그리고 분당 우리에 근처도 가지 마라.

우리 형제도 대단해요, 그것도 다 순종을 해요.

그래서 몰랐어요 다녀간지.

더 놀라운게 뭔지 아십니까?

저에게 제가 가장 힘들 때 참 눈물나게 제게 힘이 되어 준 모든 형제가 다 그렇지만 더 유난히 힘이 되어 준 누나가 있거든요. 제게.

근데 그 누나가 쓰러지셨어요.

그리고 이게요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살 수가 없는 상황이였어요.

뇌종양도 아니고 하여튼 이 뇌가 터졌어요.

그래서 이 그냥 이건 돌아가시는 일이에요, 그 죽는 일이에요.

기적같이 살아났는데요 놀라운게 어머니가 그때도 말씀하셨어요, 이거 이 목사한테 연락하지 마라.

그래 갖고요 전 저희 누나가 사경을 헤매고 수술하고 기적같이 살아나는 과정 하나도 몰랐습니다.

이해가 되세요?

모든 형제들이 상처 없이 그 말씀에 순종을 했어요.

어머니 마음을 아시거든요.

저를 분당 우리 교회를 위하여 내어주신 거예요.

 

심지어는 제가 이제 신학교를 들어간 이후로 방학때 이제 미국으로 안 간 적도 많고요, 그 어쩌다가 방학때 이제 미국에 가서 한 2-3주 혹은 3-4주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때는 뭐 결혼도 하기 전이고 어리고 또 막내고 이러니까 그렇게 그 시간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미국 가기 전날 막 분위기를 잡죠, 막 이제 어머니 손을 잡고 하 또 헤어지는데 아 그러고 그러면 어머니는 그 뭐 로봇 수준이에요.

손을 탁 빼시면서 얘가 또 왜 이래 그냥 가면 되는 거지 뭘 왜 그래 너는 뭐 야단을 치세요.

그리고 이제 오해오 공항이라고 시카고의 공항에서 이제 짐 다 붙이고 비행기표 손에 들고 이제 들어가기 직전에 또 이제 분위기를 잡으면 어머니는 또 로봇이에요.

그냥 들어가라, 그냥 가라, 그 이제 그 손에 들고 있는 가방 여행용 가방 끌고 몇 걸음 가다가 보면 벌써 없어졌어요.

가 버리셨어요.

상처가 되죠.

아 우리 어머니는 이건 뭐 나 이거 줏어왔나?

요즘 애들 말로 얼굴이 빼박인데.

진짜 섭섭하죠.

근데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듣는 거예요.

그렇게하고 우시는 거예요.

안 보이는데서 우시는 거죠.

 

왜 그러셔야 돼요?

제가 약해질까 봐.

이렇게 헤어진게 34년이에요.

그리고 작년에 임종도 못 보고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첫 번째 설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저의 냉정한 거 다 보셨잖아요.

무슨 놈의 자식이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이번 주일 예배 인도하고 가야 되니까 형제들한테 장례 한 주만 좀 연기해 달라고 이런 소리나 하고.

그리고 여러분 비행기 타고 가면서 송구영신예배 설교 준비하고, 돌아오면서 주일 설교 준비, 순장반 강의 준비하고.

제가 참 이게 내가 이게 온전한 자식인가?

그러나 여러분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요 저는 알거든요.

우리 어머니가 이걸 원하신다는 걸.

어머니가 이걸 원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로봇처럼 저를 그렇게 내어 놓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이번 설날에 저는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이번 설날에 만약에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아까 읽어 드렸던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목사, 너 이 감격의 힘으로 목회해야 된다, 이 목사, 이 감격의 힘으로 살도록 해라, 이게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야, 어머니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요.

 

결론을 여러분, 똑같은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제가 권합니다.

저는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에게 해로운 거 권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 극단적인 이기적인 시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돌아가는 시대, 나 자신을 위해서 남편도 이용하고 아내도 이용하고 부모도 이용하고 자식도 이용하라고 권하는 이 어둡고 악한 시대에 오늘 설교 제목 그대로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역행할 때 얻는 행복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얻는 그 행복, 오늘 하나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어 드리기까지 하는 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던 십자가를 마음에 담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 저는 오늘 이제 하나님께서 한 달 전인가 제게 이 마음을 주셨어요.

이제 매 설날 매 추석 찬양 예배로 드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제사를 지내고 몰라서 각각 신에게 우상을 숭배한다 할 때에 우리는 알잖아요.

매 설날에 매 추석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것입니다.

오늘 그 첫날이에요.

여러분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희로애락의 그 기쁨 그 우리의 슬픔 우리의 부담감 우리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런 설날 예배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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