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설교문
그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 어른 연습 이런 제목에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그 경력 25년에 베테랑 아나운서 오유경 아나운서가 쓴 책인데요.
이분이 갖고 있는 꿈이 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자기가 그 성공하고 막 목표가 그렇게 성공 지향적이고 그런 거였다면 지금의 목표는 성장하는게 목표다.
그래서 어 죽는 그날까지 점점 더 멋있어지는 어른이 되고 싶은 꿈 이런 꿈을 이 저자가 갖고 있어서 그런 마음을 이제 나눈 그런 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 프롤로그에 보면은 참 멋진 글이 하나 눈에 띄는데요.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어른은 저절로 될 수 없습니다.
어른이란 마음의 성장을 통해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참 이런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아마 이분은 갈수록 점점 참 멋진 그런 어른으로 그 성장에 갈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제 이런 꿈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책 추천 사에서도 참 멋진 문장을 제가 발견을 했는데요.
그 김지수 작가라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쓴 작가인데요.
이분이 쓴 추천사에서 그 멋진 문장 하나를 제가 발견했습니다.
'내 손 잡고 일어나 볼래? 성취했으되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어른.'
아 이게 그 참 멋진 어른을 굉장히 함축적으로 표현한 거 같아요.
누가 멋진 어른입니까? 참 힘들어하는 우리 다음 세대 자녀 세대들을 향해서 내 손 잡고 일어나 볼래?
하 이 멋지잖아요.
또 성취했으되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어른.
그 이런 꿈을 꾸자 거거든요.
그 손민아 작가의 추천 글에도 또 멋진 문장이 나오는데 이렇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세월과 함께 점점 더 빛나는 사람이 있다'
우리 교회도 보면 이런 분이 계세요.
그 젊을 때는 뭐 그렇게 두드러지는 외모도 아니고 그저 평범했는데 참 그 내면이 주님 닮아가고자 하는 이런 애씀이 있어서 점점 내면이 아름답게 성숙해져 가니까 얼굴이 너무 변하는 겁니다.
막 막 굉장히 막 화려하게 그런 막 멋지고 예쁜 얼굴로 변한다는게 아니라 그 얼굴에서 풍기는 그 여유로움, 그리고 표정 하나, 그 미소를 뛰는 그런 것에서 야 참 저분은 멋지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많으세요.
예수 믿는 분들은 사실 그런 분이 뭐 대부분 아니겠습니까.
제가 성가대도 보면은 그런 분이 계세요.
그 뭐 이쪽 줄 이쪽 줄 여기 여기 다 계세요.
제가 이 싹 봐도 다 계세요.
모두가 다 자기를 언제 봤나 이런 생각을 하시겠지만 또 그게 맞아요.
그 우리가 이런 꿈을 좀 꾸자 이거죠.
우리 예수 믿는데 좀 멋지게 사는 거 좋잖아요.
제가 지난 순장 모임에서 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아내가 그 대학교 그 친한 친구들 그룹이 좀 있거든요.
대부분이 다 또 예수 믿는 그런 친구들인데요.
그중에 한 친구가 제 아내만 만나면 밥 사라는 친구가 있어요.
너 밥 사야 된다.
그 그 부부 싸움 하고 오면 더 크게 말해요 밥 사야 된다.
그러면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네 남편은 도를 닦는 사람 아니냐.
전 목사를 그렇게 표현하는 거 처음 들어봤습니다.
네 남편은 도를 닦는 사람인데 그 큐티하고 묵상하는 그거를 이제 재밌게 표현한 거예요.
부부 싸움도 안 하고 얼마나 네가 잘 지내고 있느냐? 이렇게 이제 추측해서 밥을 사라는 건데.
한 번도 안 샀으리라 생각해요.
속으로 '아이고 너도 살아봐라' 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안 믿는 분들이 우리에 대해 진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요.
예수 믿는 여러분을 향하여, 어 너는 남편 예수 믿잖아, 너 아내가 예수 믿잖아 너 밥 사야 돼.
그 이런 어떤 그 멋짐을 안 믿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거거든요.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막 예수 믿어 가지고 뭐 기도라는게 전부 해주시옵소서 뭐 출세시켜 주시고 돈 벌게 해 주시고 이런 어떤 가시적인 거 이런 것을 구하는게 아니라 이 작가가 아나운서로 엄청 성공한 분이거든요.
뭐 6시 내고향, 아침마당 뭐 이런 굵직굵직한 또 뉴스 프로그램 뭐 앵커 우먼 이런 일을 한 성공한 그 커리어 여성인데 이제는 나는 그런 어떤 가시적인 성공을 나 꿈꾸지 않는다, 내면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내면이 성숙하기 원한다, 나는 어른으로 그렇게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 그 이런 꿈을 꾸고 있는게 저는 너무 보기가 좋은 거거든요.
이 책 표지에 보면은요 어른이란 삶의 마지막까지 더 나아지려는 사람이다.
아 저는 여기에 어른을 지우고 크리스천으로 놓고 싶은 거예요.
크리스천이란 삶의 마지막까지 더 나아지려는 사람이다.
여러분 동의 되십니까?
이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그래서 갈수록 성경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잖아요.
그 겉사람은 후패해져 가지만 사람은 늙어가고 흰머리가 나고 피부가 옛날 같지 않아도 그 속사람은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 닮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져 가는 것, 이런 꿈을 우리가 꾸자는 거죠.
사실 그런 의미에서 제 주변이나 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제가 책을 통해서나 글을 통해서 보면서 제 마음으로 롤 모델처럼 그렇게 떠올리는 분이 여러분 계시는데요.
그중에 한분이 언젠가 한번 소개해 드렸던 이희대 박사라는 분이에요.
이분은 세브란스 병원 의사였는데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 살아계실 때 유방암 분야에서 그 완전 실력자로 인정받던 분이에요.
1년에 암환자 수술을 뭐 600명씩 하시던 그런 분인데요.
불행하게도 이 암 전문가에게 암이 찾아온 겁니다.
너무 분주하게 환자들을 돌보느라고 자기는 건강 검진을 못 받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분이 이제 암을 발견할 때는 대장암 4기.
뭐 요즘에는 뭐 의술이 막 워낙 좋아지고 약이 좋아지고 그래서 뭐 4기라고 해서 옛날 같지가 않은데 이 당시로는 4기를 말기라고 표현할 때예요.
그리고는 너무 이제 제가 가슴 아픈 글을 읽었는데요.
이런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지난 7년간 모두 11번 재발했지요. 간은 세 번 절제했고 대장과 직장 한 번씩, 골반 뼈 제거 수술도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약도 계속 했답니다."
이게 뭐 뼈까지 전의가 돼 가지고 골반 뼈 제거 수술을 했다니까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제가 놀라는 건요 그렇게 11번 재발이 되고 그렇게 수술을 했던 이 분인데요 조금만 나아지면 위축되지 않고 늘 이제 자기 일상 생활, 이분의 사명이 뭔가 하니까 이것도 너무 감동이에요.
이분은 단 한 명의 암 환자라도 더 치료해 주고 세상을 뜨는 것이 내 목표다, 암 4기 때 한 이야기예요.
이게 너무 그 모습이 경이롭잖아요.
그 제가 맨 처음이 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인터뷰 기사였고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지만, 무슨 생각이 드는가하니까, 이분은 분명히 이분은 크리스천이다, 100% 이분 예수 믿는 사람이다.
이 확신이 들더라고요 .
그랬는데 제가 검색하고 알아 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내 추측이 맞았습니다.
그냥 크리스천이 아니고요 진짜 예수 잘 믿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그 현실에 대하여 위축되지 않고 그 크리스천으로서 그 쓴 글들을 이번에 새로 제가 또 검색하면서 제가 참 감동을 많이 받았는데요.
어느 글에 보니까 이렇게 말해요.
11번 재발한 암 4기, 콤마 하고 그래도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신다" 그리고는 이런 말도 합니다. "흔히 4기를 암 말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기 암은 없다고 봅니다. 4기 다음은 5기입니다. 암을 이겨낸 단계지요. 암을 이기겠다는 오기만 있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오기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4기 밖에 없으니까 4기를 말기라 그러는데 이 전문가 암 전문가 교수님이 난 그거 동의할 수가 없다는 거죠.
오기가 있다는 거예요 막 오기를 내서라도 이제 워드 플레이까지 하시잖아요.
막 오기를 가지고 나는 이거 이겨낼 수 있다고 하면은 암 극복하는게 그게 낳는게 4기다 이런 멋진 말들을 막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말도 했습니다.
"암은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이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감사함과 기쁨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너무 멋지잖아요.
성경 읽고 묵상하고 매주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이 되는.
그 제 아내 친구 농담을 하는 말처럼 어 네 남편이 목사인데 아네 남편이 맨날 도 닦잖아, 너는 뭐 걱정할게 있어? 그 너 맨날 밥 사야 돼.
그 이런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라 실제가 되기를 원하는 거죠.
오늘 예배드리는 모든 크리스천 여러분, 그 책에서 제가 그 어른 연습이라 그러잖아요.
그리스도를 닮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참 그에게서 향기가 나타나고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이런 크리스천이 되는 꿈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도 제가 참 이분은 내가 진짜 롤 모델로 그렇게 오래전부터 닮아가고자 하는 분들이 뭐 얼마나 많습니까.
막 구약에도 많고 신약에도 많고 그런데요.
그중에서 저는 이제 목사다 보니까 이 사도 바울.
그 사도 바울을 제가 묵상하고 그분에 대한 글을 읽고 할 때마다 야 정말 이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막 일 많이 하고 그게 아니라요.
우선 그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 변화가 느껴지잖아요.
소탐대실하지 않아요.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누가 자기를 공격해도 그 빌립보서 1장을 신학교 다닐 때 읽다가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데 바울 시대도 그랬나 봐요.
그 바울을 라이벌로 생각해 가지고, 막 바울을 이겨내려고 꺾으려고 뭐 심지어는 그를 괴롭히려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예요.
그 바울이 얼마나 괴롭겠냐구요.
그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말해요.
이런 괴로운 걸 다 피력하고는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이 어떤 동기로 복음을 전했던지간에 날 괴롭히려고 날 라이벌로 생각하고 어떤 동기로 복음을 전했던지간에 전해지는 것이 복음이라면 나는 그것으로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제 신학교 때 그 구절을 발견하고 문득문득 제 마음에서 참 이 좁은 저, 참 도량이 넓지 못한 저, 이런 저 연약한 모습을 볼 때마다 아 꿈을 꾸는 거죠 야 이럴 수 있다면요.
누가 날 괴롭히려고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라이벌로 생각해서 막 늘 그렇게 막 저를 험담을 하고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그 동기로 열심을 내갖고 교회를 잘 섬긴다면 아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리라.
아 이게 사도 바울의 모습 아닙니까.
그걸 좀 닮자는 거죠.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진짜 멋진 선포를 뭐 애들 말로 날립니다.
한번 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 54절 55절입니다.
새번역입니다.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지금 바울은 이 죽음을 의인화해 가지고 너무너무 멋진 선포를 하는데요, 여러분 사실 모든 인간에게 이 죽음이 가진 이지는 두려움 아닙니까.
여러분이 죽음이 가진 이미지는 공포 아닙니까.
젊은데도 한 번씩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워지는게 인간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은 바울이요 죽음을 삼고서 승리를 얻었다.
어떤 번역에 보니까 이걸 너무 멋지게 더 잘 번역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생명이 죽음을 무기력화시켰다, 이 너무 멋진거 아닙니까?
여러분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 어떤 도구가 죽음을 무력화시킬 수 있냐고요.
세상에 어느 종교가 어느 종교 어느 그 종교를 만든 창시자가 죽음을 무기력화 시키는 일이 있느냐고요.
아 저는 이런 부활 주일 고난 주간을 거치면서 이 부활주일을 준비하면서 아 제 마음이 이 사도 바울이 이런 선포를 묵상하는데 막 이렇게 담대해지는 걸 느끼는 거예요.
죽음을 삼키고 승리를 얻었다.
야 이거 벌 생각하면은 벌에게 그 꽁지에 붙어 있는 독침만 제거하면 그 벌이 뭔 재주로 우리를 공격합니까.
똑같은 이치로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생명이 그 독침을 제거해 버린 거예요.
그 중요한 건 그 바울은 이런 담대함이 그 어디서 나온 거냐는 거예요.
이 죽음으로부터 뭐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죽음의 공포와 독침이 제거되고 나니까 언제든지 자기는 죽어도 뭐 그 뭐 그 빌립보서에 또 그런 내용이 나오잖아요.
난 둘 사이에 끼었다, 지금 당장 죽어서 주님 앞에 가는 그게 내게는 유익하지만 할 일이 있어요.
그 바울이 이렇게 두 사이에, 지금 빨리 주님께 가고 싶은 욕구, 그리고 또 이 사역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욕구.
그 두 사이에 끼어 있는데 바울이 무슨 결정을 합니까.
지금 당장 죽어서 천국 가는게 나를 위해서는 유익하지만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더 살기로 했다.
그 멋진 거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이런 멋짐은 어디에서 나왔느냐?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답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새번역으로 보십시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다음 보세요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여러분 그 그리스도를 안다고 부활 신앙으로 무장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닙니다.
현실을 보세요.
나 분명히 예수 믿는데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경우는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이 두 개를 구분하잖아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 죽음의 독침을 제거하고 나니까.
그러고 보면은 오늘 본문 57절의 고백도 여상하지 않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승리는 뭐 나 승진해서 취직해서 뭐 내가 이 땅에서 원하는 거 얻었어 뭐 나 괴롭히는 저것을 내가 납작코를 만들었어 이런게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승리는 죽음의 권세를 극복한 걸 표현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되는게 뭐냐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되지만요 죽는 과정에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됩니다.
그가 그 죽음의 독침을 어떻게 빼냈냐고? 57절 말하잖아요.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예요.
오늘 부활 주일 예배를 왜 따로 구분해서 우리가 드립니까?
왜 그분께 우리가 감사 헌금을 드립니까?
그분의 부활하심의 능력이 그 부활하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도래한 사망의 독침 제거되었다는 것을 믿는 신앙, 이게 부활 신앙입니다.
이런 부활 신앙으로 장착한 사람은 다 멋져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데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냐구요.
그 부활 신앙으로 장착한 이후에 너무나 놀랍게 변한 또 매력적으로 변한 인물들이 성경에 많은데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에요.
그 완전 오합지졸 아니었습니까.
십자가지는 과정에서 다 도망갔어요.
그렇게 두려움이 많고 나약하고 참 초라하고 비겁하고 그랬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중에 하나같이 사도행전을 보면은 용사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 아시죠 다 순교했어요.
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독침이 제거가 됐는데 막 하고 싶은 일 막 다 하고 산 거 아닙니까.
바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베드로도 마찬가지예요.
베드로는요 예수님 십자가 지시던 현장에서 뭐 초등학고 1학년도 다 알아요 세 번 부인한 사람 닭 하면 베드로가 떠오르잖아요.
이 베드로 그 비겁한 사람 비굴한 사람 그 큰 소리만 뻥뻥 치지 속이 비어 있는 사람이 베드로 아닙니까.
그런데 나중에 베드로가 얼마나 담대한 사람이 됐는지 초대 교회에 우뚝선 지도자가 됐거든요.
그가 쓴 베드로전서 후서를 읽어 보면은 여러분이 베드로 전서는 네로 황제 치하에서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던 때 쓰여진 거예요.
그래서 여기 보면은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지금 이 극심한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거거든요.
또 베드로전서 4장 12절입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이 여기지 말고"
이게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쓴 편지라는 걸 금방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지금 고난에 빠져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한 베드로의 담대한 권면을 한번 보십시오.
베드로전서 4장 12절 13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네로 황제의 극심한 박해에 일차적인 타겟이 자기 자신이에요.
베드로가 그 전설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그런 말이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자기는 고통이 없고 뭐 이런 거죠.
뭐 암 4기 환자인데 심방 가가지고 아 이럴수록 힘내셔야 됩니다 뭐 이럴수록 힘 내셔야 된다고 이런 소리 해대는 목사가 있다면요 그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이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 하나도 모르니까 그런 이야기 너무 쉽게 하는 거거든요.
아 이렇게 뭐 암 걸렸다고 뭐 그렇게 얼굴찌 풀리지 마시라고 막 이런 얘기 하면은요 물정을 모르는 얘기예요.
그러나 자기가 그 일을 겪는 분이 그렇게 말한다면 거기에는 힘이 있는 거거든요.
이번에 제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까요, 어떤 분이 진짜 위로가 되는지 다 고마운데요.
어떤 분은 참 이분이 그래도 예를 갖추어서 애 쓰시는구나 이렇게 느껴지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진짜 위로가 되더라고요.
어 내가 겪어 보니까 이게 이런 거였구나.
지금 베드로가 지금 자기는 그런 고난이 하나도 없고 이론으로 하는 그 얄밉게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가장 극심한 고난이 지금 자기에게 있는 일인데 너무너무 담대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이런 시련을 겪을 때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이게 여러분 그 계집 종이 그 예수 믿는 사람 예수 따른 사람 아니냐 그러는데 막 부들부들 떨면서 주님을 막 부인해 버리는 그 나약한 베드로가 어디 갔냐고요.
그러면 똑같은 질문이에요.
아니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멋지고 담대한 변화 인생 그런 변화가 있었나?
저는 그 질문에대 답을 베드로전서 1장 3절에서 찾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베드로가 그 주님을 십자가지는 과정에 배신해 버렸는데 주님은 그 베드로를 부활하신 이후에 그를 만나 주세요.
제가 전에 농담했던 기억나시죠. 나 같으면 쟤는 빼고 만나자 쟤는 나 안 만나고 싶다.
근데 그 베드로를 만나 그를 용서해 주시고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시면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랬더니 지금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고 나서 완전히 인생이 달라진 거예요.
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뜨거운 가슴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저와 여러분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날마다 현실 앞에 두려워하고 부들부들 떨고 소탐대실하고 날마다 일희일비하고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부활 신앙으로 우리를 무장시켜 주시는 그분을 만나게 된다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멋지게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쓴 "부활을 입다" 이번에도 이제 부활절을 앞두고 이 책을 다시 꺼내 가지고 제가 보다가요, 어 그 부활이 가진 기능에 대한 설명 중에 멋진 표현이 하나 있더라고요.
부활이 가진 기능이 뭔지 아십니까? 이거예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이다.
예수 믿는 우리 최악이 죽는 거 아닙니까.
인생이 아 나 이렇다 죽겠다 그 말은 나는 정말 절망이다 그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죽음의 독침을 제거하고 나니까 우리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이 죽는 건데 죽으면 천국 가는데요.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 이 부활주일을 맞아 가지고 팀 켈러가 언급했던 그걸 일부 한번 보십시오.
불안이 익숙해진 시대 불안이 익숙해진 시대 그래서 우리는 더 희망을 갈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한다.
여러분 이렇게 불안이 익숙해진 이 두려움의 시대에 희망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그다음 보세요.
"예수 부활의 권능을 입어 다시 사는 것, 이보다 더 장엄하고 강력한 희망은 없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여겨 주셔서, 베드로가 만난 부활하신 주님,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만났던 부활하신 주님, 바울이 뭐 그 십자가지는 현장에 있었냐고요.
우리랑 똑같이 그 바울을 만나 주시는 주님이시라면, 그 포악한 바울도 만나 주시는 주님이시라면, 오늘 예배 가운데 저와 여러분 사모하는 자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까 이희대 박사가 그런 말했잖아요.
암 4기 고난 중에도 나 웃을 수 있다 왜? 이 고난을 통해서 자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아픈 일 갖고 맨날 아프다고만 그러지 마시고요.
여러분의 아픔을 하나님의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두 가지로 이 부활 신앙과 관련한 적용을 한 두 가지를 나누어 보고 싶은데.
첫 번째 여러분 부활 신앙의 영향력을 누리셔야 돼요.
부활 신앙이 있다면 그건 죽을 때 뭐 나 이제 죽을 때 편안하게 죽겠구나가 아니라 이 부활 신앙으로 장착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오늘 현재 삶 속에서 그 부활 신앙의 영향력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 부활 신앙으로 장착한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에요 이게.
57절 다시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그분의 임재가 필요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그 죽어가는 이 과정에서도 연세가 드셔 가시는 그 과정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개입을 해야 돼요.
그래야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이런 바울의 담대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나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연세가 많이 드셨는데요, 그분 입에서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있느냐 그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그냥 죽음을 갖고 놓으실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 어른이 얼마나 아름다우시겠나구요.
사실 제가 이제 이제 우리 어머니 간증 내가 이제 아껴서 내 잘 안 해야 되겠다 결심을 좀 해갖고 요새 안 했는데요 지난 금요일 성금요일 날 또 못참고 했어요.
아 이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어머니 간증을 이게 설교가 이게 메시지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막 여러분이 식상할 봐 이제 내가 제가 또 정말 안 할 거예요.
그러나 이제 오늘은 또 해야 돼요.
이 부활절이기 때문에.
제가 지난 성금요일 날 어머니에 대해서 제가 상처가 좀 많다 그랬잖아요.
왜 어릴 때부터 싸우고 오면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자기 아들 편 드는데 우리 어머니는 진짜 이상한 분이에요 들어보지도 않고 네가 사과해라.
아니 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이런 얘기를 하시느냐고.
그러면 아 일단 네가 사과해라.
그리고는 막 집에 가면 때굴때굴 뒹굴지요.
엄마는 뭐냐고 이게.
그러면 너무너무 미안한 표정으로 하시는 말씀이 이거예요.
"우리는 예수 믿잖아"
아 어머니 생각은요 예수 믿으면 무조건 손해보고 무조건 양보하고.
막 그냥 막 그 성금요일에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또 뭐 돌아가실 것 같으니까 갑자기 저한테 전화와 가지고 "그 며느리한테 내 너무 미안 사과할게 없는지 그 좀 물어봐 주라" 또 숫기가 없어가지고 직접 묻지도 못하시고.
아 그 며느리가 제 아내잖아요.
아 우리 시어머니 그런 적 없다고 맨날 얘기하는데 아 우리 시어머니는 진짜 점잖은 분이라 가지고 단 한 번도 그렇게 무리하게 한적 없다는데.
아니 이게 뭐 이 하나님이 나 불러 가시려나 그러면 막 막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또 그 잘못한 사람이 없나 막 자꾸 미안하다 그러고.
아 그게 저는 그 싫죠 아 좀 당당하게 사 사시지 왜.
근데 이번 고난 주간을 제가 묵상을 하면서 그게요 이 영적으로 참 무지한 저 같은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그게 어머니의 당당함이 더라고요.
그게 어머니의 자신감이 더라고요.
"우리 예수 믿는데" 이 말은 그 그분의 자신감인 거에요.
아 우리 죽으면 천국 가잖아 우리 죽으면 이 다 보상 받잖아 너 저 사람도 어떻게 생각하니.
아 이렇게 설명을 뭐 매끄럽게 막 신학 교수처럼 해주신 적이 없으니까 내가 오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새로 분석을 한 겁니다.
이게 어머니 부활 신앙이구나.
실제로요 저희 어머니가 작년 12월달에 돌아가셨는데 7월말에 또 한번 이제 고비가 오셨어요.
그래서 이제 폐에 물이 막 차는데 이게 뭐 어떤 기술을 동원해도 물이 안 빠진다는 거예요.
너무너무 이제 점점 괴로워 하시니까 이제 어른을 이렇게 자꾸 괴롭히는게 그 미국 의사가 그런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누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너 이제 준비해야 되겠다.
그래서 새벽에 그 전화 받고 또 제 아내는 또 한판 울고.
그리고 이제 비행기 막 해가지고 급하게 이제 비행기표를 끊었는데 기적같이 폐에 물이 빠졌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신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미국 집회가 있어서 제가 미국을 갔을 때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의 3층은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데에요.
그래서 전 직원이 다 특별한 경우 빼고는 다 한국 분인데 놀랍게도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그분들이 다 제 설교를 듣는 분들이에요. 직원들이.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정말 VIP 대접을 받으셨죠.
그렇게 제가 미국에 갔더니 7월 말에 있었던 일을 그 책임자 분께서 이제 우스개 삼아 들려줬어요.
저한테 그때 이제 어머니가 폐에 물이 차고 막 이제 혼수 상태가 오고 그랬던 거 같아요 .
그래서 이제 911을 불러 가지고 이제 응급실로 가야 되니까 911을 불렀다는 거죠.
그 미국에 또 911이 호들갑스럽잖아요 막막 불빛나고 막 소리도 나고.
여러 사람이 이제 들이닥쳐 가지고 어머니를 이제 그 911이 그 응급차에 모시고 이제 응급실로 가야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깨신 거예요.
굉장히 그때 심각한 상태였다가 그때 깨신 거예요 두 마디를 하셨대요.
이게 막 막 막 이상해졌어요.
막 막 불이 착착 그고 막 막 사람들이 막 미국 사람들이 들락 날라 그러고 가니까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여기가 어디고 천국이가?"
그 이게 첫마디 였어요. 그리고 두번째 마디가 이거였습니다. 응급대원을 보고요 "누굽니까 천사입니까" 그 얘기를 하셨대요.
그래 저도 웃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그런데요 이번 고난주간에 그 어머니 모습이 저미는 거예요.
어머니 머리에 죽음의 독침을 빼내신 분이 갖고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 이제 곧 천국 간다, 이걸 너무너무 소망을 하신 거 아닙니까.
그 상황이 오니까 너무 막 그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어 여기가 천국인가" "천사입니까"
그리고요 저희 어머니가 너무너무 소원하던 오랜 기도 기도 제목.
주무시다가 그렇게 주님 앞으로 가는 그 일을 하나님 허락하셨거든요.
어머니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에요 참 그 저희 누나 셋이 참 효녀에요.
그 번갈아가면서 매일매일 이제 어머니 찾아뵙고 또 드실 거 준비하고 또 이런 갈아입을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하고 그렇게 이제 방문을 하시는데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이에요.
제 바로 위에 누나가 이제 어머니를 찾아뵜어요.
어머니는 또 좀 그 좀 뭐라 그러나요 체면이 많으셔서 가면 바로 가라 그래요.
여기 있으면 뭐하노 빨리 가라 가라.
그 뭐 저도 방문해 갖고 아 3일 연속으로 가는데 막 야단을 치시는 목회를 엉터리로 하지 말고 가라고.
그거 우리 어머니요.
어 그런데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요 저희 누나보고 가지 말라는 거예요.
야 아 이게 뭐 모르겠습니다 영적으로 뭐 그거를 뭐 아셔서 그런지 그냥 그러신지 몰라도 자꾸 가지 말라는 거예요.
너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그래서 오후까지 있었대요.
그 뭐 할 말도 없고 그러니까 저희 누나가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그 질문을 했대요.
엄마 지금 누가 제일 보고 싶으세요 뭐 이제 뭐 추측할 수 있잖아요.
한국에 있는 그 막내 아들 목회하는 그 이 목사 보고 싶으세요 뭐 큰 아들이 보고 싶으세요 뭐 손자 중에 누가 보고 싶으세요 그 질문 했겠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보고 싶다.
그리고요 큰 아들이 보고 싶습니까 막내아들이 보고 싶습니까 그 질문에 보면 뭐 하노?
그게 뭐 하찮다는 뜻이 아니고요 그 인간적인 거 잠깐보고 또 가면은 그만인데? 이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그 보면 뭐하노. 그리고 그다음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아 우리 어머니가 사실 외모적으로는 뭐 키도 조금만 하시고 뭐 이렇게 하면 이해가 확 될 거예요.
제가 어머니 제일 많이 닮았습니다.
농담으로 내가 우리 아버지는 그 상대방 인격만 보고 외모를 안 보셔 가지고 내가 좀 그렇다고 이렇게 놀리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한테 꿈이 생겼어요.
독침을 제거한 죽음의 독침을 제거한 어머니처럼 나도 저렇게 죽으면 좋겠다.
그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 아버지가 목사인데 저의 마지막을 멋지게 보겠냐고요.
제 머릿속에 어머니는 너무 멋져요.
너무 아름다워요.
안달복달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고난 주간에 성 금요일날 고백했던 어릴 때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맨날 네가 잘못했다 그러라 그러니까 그게 요즘 제 마음에 보석이 됐습니다.
상처가 영어로 '스카' 아닙니까.
상처가 십자가를 통과하니까 스타가 되더라고요.
다니엘서에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그 사람이 스타래요.
두 번째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말씀을 마무리할까 하는데요.
부활 신앙과 관련한 두 번째 적용이 뭐냐? 부활 신앙으로 다시 꿈꾸자는 거예요.
우리 다시 꿈꾸 자는 거예요 부활 신앙으로 안착하고 다시 꿈꾸 자는 겁니다.
그 58절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그러므로는 고린도전서 15장이 부활에 대한 설명으로 꽉찬 장이거든요, 다 설명하고 바울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말씀이 맨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아시겠죠?
부활 신앙으로 장착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러므로 부활 신앙으로 네가 장착했다면 이제는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고 더 나이가 들어간다 할지라도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왠지 아느냐?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이라.
세상 사람들의 수고는 그거 다 헛것이요.
마지막에 죽음의 권세가 다 빼앗아 가잖아요.
그래서 다 허무하게 죽잖아요.
사망의 권세가 그 이 땅에서 했던 그 모든 열정 열망을 다 빼앗아가 버리잖아요.
그 죽음의 권세인데 죽음의 독침을 제거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일들이 너무너무 가치 있는 거, 영원한 거기 때문에 더 주의 일에 힘쓰라.
요즘 저는요 옛날부터 이 찬양을 가끔씩 불렀지만 요즘 저는 고난 주간에 특히 이 찬양을 더 많히 마음으로 되뇌었습니다.
"어둠 밤 쉬되리니 내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어나 해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제가 이제 60대가 되고 보니까요 지금 저요 50대 때보다 더 열심히해요.
50대 보다 설교 준비 훨씬 더 열심히 합니다.
왜? 이제 제가 이제 점점점점 제 마음에 깨달아지는게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는 거예요.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이제 뭐 그냥 막 막 좀 쉬고 싶을 때도 있고 아 이제는 정말 한 석 달이라도 내가 안식년을 좀 갖고 싶다는 이런 지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이 바울이 맨 마지막에 부활에 대한 설명을 다 한 다음에 그 바울이 권면하는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아까 그 이희대 박사가 암 4기 투병하면서도 자기가 죽기까지 한 명이라도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자기가 죽기를 원한다고 그런 꿈을 꿨다면 저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제가 다시 약속합니다.
은퇴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여러분 실망시키는 짓 하지 않을 거예요.
소탐대실하지 않을 거예요.
은퇴 이후에도 우리 젊은이들이 정말 젊은이들이 실망하는 이런 일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이희대 박사처럼 부족하지만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고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추해지지 않으려고 더 많이 기도하고 몸부림 칠 겁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 젊은 청년은 젊은이대로 연세가 들어가시는 분은 연세가 들어가시는 분들 대로 이 꿈을 꾸게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비록 외모는 뭐 부모님의 외모를 따라 다 다르게 태어났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거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갈수록 멋진 거예요.
야 참 저 목사님 참 멋지다 뭐 목회 잘한다 이런게 아니고요 참 멋지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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