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17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22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뒤쫓는 자들이 돌아가기까지 사흘을 거기 머물매 뒤쫓는 자들이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찾지 못하니라
23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24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설교
그 최근에 그 북한에서 그 군인들이 공수 강하 훈련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는데 그 강풍에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하다가 생긴 일이라고 하는 그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 일부 내용이 이렇습니다.
사고 당시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김정은 위원장 참관이 예정되 있어 훈련을 강행했고 강풍으로 낙산이 안펴지고 서로 엉키면서 20대 초반에 어린 병사를 포함한 다수의 군인들이 추락하거나 심한 부상을 입어 후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니까 이 공수 강화 훈련은 그 바람 같은 이런 기상의 영향을 당연히 많이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그 기상 상황으로는 훈련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이제 김정은 위원장과 그 어린 딸 김주애가 훈련을 참가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그 훈련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 이런 요지의 기사였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면서 분당 우리교의 개척 초기에 그러니까 오래 전이죠 그때 제가 북한을 방문했던 기억이 또 올랐습니다.
그 당시로는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때여서 이 민간인들이 북한 방문이 뭐 요즘처럼 그렇게 어지 않던 그런 때였는데요.
그 제가 북한을 방문하게 된 것은 그 당시 기아 상태에 빠진 북한 어린이들을 도울 일이 없을까 이제 그런 마음으로 제가 이제 방문을 하게 됐는데 요즘에도 그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등에서 북한 어린이 발달 지원 사역을 하고 있거든요.
그 자료를 보면은 이 북한 5세 미만 어린이의 1/3이 영양실조라는 겁니다.
그래서 발육 부진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제가 북한을 방문해서 어린이 빵 공장 등을 견학하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혹시 분당 우리 교회도 이런 일에 좀 참여할 수 없을까 고민을 했는데요.
그 빵이 정말 그 북한 어린이들 손에 들려질까? 그 이거에 대한 그 믿음이 잘 가지 않아서 저희는 이제 그 일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제가 북한을 방문하던 한 3일 정도 있었던 거 같은데요 북한을 방문하던 그 기간 동안에 마음에 굉장한 분노가 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그 북한을 방문하던 그 기간에 보았던 북한의 이미지는 그대한 사이비 종교 집단 딱 그거였습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하고 북한의 공통점을 말하라면 뭐 공통점이 이거 아닙니까.
사람을 위하는 태도가 없는 거예요.
그저 사람을 자기들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이것밖에 안 되는게 이게 지금 공통점이라 생각하거든요.
제가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그 기사와 오래전에 그 북한 방문했던 그때가 떠올랐던 이유는요, 이제 오늘 살펴보게 될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전체 흐름을 보면은 여호수아 2장은 그 통로 다 삭제해도 괜찮은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장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1장이고요 그리고 3장에서는 그 약속을 의지해 가지고 그들이 이제 그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는 그게 3장이에요.
그 중간에 2장 말씀은 이제 두 정탐꾼을 가나안 현지로 보내는 내용인데 근데 이게 왜 필요 없는 내용인가 하면은요 그 가나안 정탐꾼의 그 작전은 완전한 실패예요.
있으나 마나한 일입니다.
몰래 가나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들통이 가지고요 그래서 그 여인 내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겨우 도망나온게 2장 전부 내용입니다.
자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인 여호수아 2장 1절과 2절 한번 보십시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바로 그 다음 2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몇 사람이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몰래 들어간 초기에 들통이 난겁니다. 집에 숨어가지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고는 몰래 도로 빠져나온게 2장의 전부인데 이거를 여기다가 왜 넣어났냐고요.
실제로요 작년부터 제가 이 여호수아를 살필 때 1장을 전하고 그리고 제가 3장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거든요. 모르셨죠.
그랬나? 아무도 인식도 못할 정도로 2장은 큰 그림으로 생각하면 필요 없는 내용입니다.
근데 이걸 여기다 왜 넣어 놨을까.
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이게 우리 하나님의 시선이다 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은요.
큰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은 이 2장은 전체를 다 드러내도 이 삭제해도 하나도 그게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 그 두 정탐꾼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기생 라합이라는 무명의 여인이 구원받게 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구원 사건만으로도 그 두 정탐꾼의 수고는 실패가 아니다 이게 우리 하나님의 시선이에요.
이걸 드러내면 안 된다는 거죠.
제가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북한과 또 사이비 교주들 그들의 그 실상이 참 마음 아프게 떠 올려졌는지 아시겠지요.
우리 하나님은요 이렇게 사람을 위하지 않는 혹은 그저 사람을 자기들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이런 악한 지도자와 너무나 대조가 되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 보이기 때문에 제가 그때 일이 떠 올려졌다는 거죠.
북한을 가서 제가 굉장히 분노했던게요 북한에는 차가 안 다니거나 벤츠가 다니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고속도로를 가다가 중간에 내려 가지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차가 한대도 안 다녀요.
그 일반 그 주민들이 뭐 차를 몰고 다닌다 이런 거는 뭐 상상하기 어렵고 그리고 이제 차에 다니는 길거리에 다니는 차는 다 벤츠에요.
그 공산당 간부들은 다 그렇게 호의호식하는 그게 제 마음에 굉장한 분노를 이제 자아내는 거죠 .
그리고는 한국에 딱 돌아 남한에 돌아와 가지고요.
인천공항에서 막 딱 내리니까 며칠 안 맡던 매연 냄새가 막 확 코를 찌르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매연이 이렇게 좋은 거 처음 느껴봤습니다.
저는요 제 인생이 거리 얼마 되지도 않는 이 남쪽으로 하나님이 나게 하셨던 그거 하나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감사해야 된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된 거죠.
참 악한 이런 뭐 아주 극단적인 이런 사례는 뭐 이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 인류 역사를 한번 보세요.
또 교회들 한번 보세요.
인간 지도자들은 악해서 그런 거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잘 그렇게 그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리고 저는 지금 이제 그 국회의원 선거를 하고 있는 이 기간 동안에 만약에 그 그 사람의 속을 요렇게 스캔할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그 후보들 한번 쫙 스캔해 보고 싶어요.
진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그 마음으로 출마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뭐 아무도 없진 않겠죠.
그러나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아요.
그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참 이 시대와 이 때부터 뭐 앞으로도 쭉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그 어릴 때 교회를 다니면서 좋았던 게요 어린 시절에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여러 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다.
이 잘 믿어지지도 않으면서 아니 무슨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시나 그러면서도 참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참 가난하게 자라고 학교 가면 그저 평범하게 묻혀 버렸던 그게 전데요 하나님이 나 같은 것도 굉장히 또 소중히 신다고 하시니까 그게 참 좋았습니다.
그 이게 교회인 거 같아요.
예전에 나온 중에 쉰들러 리스트라고 기억하실 텐데요.
저는 청소년 사역할 때 우리 교사들 전부 그 영화를 이제 단체 관람을 했는데요.
2차대전 당시에 그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되고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독일의 사업가였던 주인공이 자기 재산 공장 전부를 다 바쳐 가지고 무려 1200여명의 유대인들을 구하는 그런 내용인데 제가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도 그 영화 끝부분에 그 장면을 잊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전재산을 바쳐서 구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몰려오는데 이 주인공이 절규를 하는 거죠.
내가 이 차를 팔았더라면 열명은 더 구했을 텐데, 이 금지를 팔았더라면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막 흐느껴 우는 그 장면이 뭐 기억에 오류가 있어 가지고 또 너무 제가 이거를 또 크게 지금 느끼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는 그때 청소년 사역을 같이 시작하던 때기 때문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나요.
그 전쟁이 끝나고 자기가 구해줬던 수많은 유대인들이요 그 유대인들이 눈물 겨워요.
그 금 이를 다 뽑아 가지고 그걸 녹여서 반지를 만들어 선물하는데 그 반지에 탈무드의 글귀를 새겨서 줬답니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은 세상을 구하는 자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뭐 제가 국회의원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고 여러분이 그런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거고요.
우리는요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담기에 는 너무 많은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이런 가슴 아픈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인간 목사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순간 그게 다 상처에요.
기대를 하지 않는 거죠.
인간 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서 이제 내 인생의 참 통치자는 정치가도 아니고 교회 목사도 아니고 내 인생의 참 통치자는 예수 그리스도, 나 위하여 십자가 그 자리까지 가신 희생의 리더십 그분이 내 인생에 주인이 되신다 이것을 늘 마음으로 우리가 담고 또 상기해야 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런 은혜를 받고 변화된 사람답게 우리도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해 달라 기도해야합니다.
저 같은 그 담임 목사는 사실 이게 뭐 목숨 걸고 해야 되는 기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안에는 그런 성품이 없으니까 주님 마음 내 안에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해야 목회가 겨우겨우 이제 그 뭐 시늉이라도 그렇게 하게 되니까요.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훈을 가지고 질문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요 예수님 믿는 우리는이 두 질문을 자꾸 되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질문 중에 첫 번째 질문이 이겁니다.
나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있는가?
왜이 질문을 해야 됩니까.
이게 우리가 닮아야 될 주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상처많은 수가성 여인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내용인 유명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사실 뭐 그 내용만으로는 감동이 되지만요 그건 뭐 꼭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우리 같은 이런 타락한 사람들도 너무나 어려운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하면 막 그냥 막 그날 마음이 뜨거워져 가지고 지갑에 있는 현금을 다 내서 주고 이런 일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이 요한복음 4장은 그런 차원에 우연히 누구를 보고 적극적으로 지갑에 돈 꺼내 주는 이런 사건이 아니고요 내용을 가만히 한번 들여다 보시면요 거기에 지금 굉장히 깊은 주님의 의도가 담겨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루고 있는 요한복음 4장 중에서 3절부터 한번 보십시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세" 지금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세" 그다음 보세요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여기 보면은요 사마리아에 있는 수라는 동네에 가정이 산선 조각이 나버리고 그 깨진 그 가정으로 인한 상처가 그 한 여인으로 하여금 대인 기피증을 가져오게 만들고 요즘으로 말하면 굉장히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여인으로 추측이 되는 그 한 여인이 수가에 있는데 지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그분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거거든요.
이게 왜 왜 차이가 나느냐면요 누가 좀 불쌍한 거 보고 지갑에 있는 돈 다 꺼내 주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 예수님의 행위의 결정적인 차이는요 그 한 초라한 여인을 만나 치료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하셔야 되는은 어마어마한 대가 지불인 겁니다 대가지불.
왜 그렇습니까 요한복음 4장 6절입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이 예수님 상태를 보세요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6시쯤 되었더라"
이 6시는 요즘 시간으로 말하면 정오에요.
낮 12시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 뜨거운 햇살이 내리지는 정오에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그 열사병으로 죽어요.
근데 왜 이 여자는 아무도 물길러 오지 않는 너무 뜨거운 그 날씨에 왜 물을 기르러 갑니까. 대인 기피증.
거기가 옛날 우리 여자분들도 그랬잖아요.
그 우물이나 빨래터는 커뮤니티 장소예요.
온갖 소문 이런 거 거기서 다 만들어내고 자기의 상한 마음 거기서 다 토해내고 그게 그 마을 커뮤니티 아니냐고요.
이 여인은 너무나 상처가 많기 때문에 그곳에 갈 수가 없는 거죠.
수근거림이 너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너무 뜨거워 가지고 절대로 사람들이 물길러 나오지 않는 그 시간에만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지역을 통과해야만 하는지는 그 정신으로 보시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이게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예수님의 근본정신 아닙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은요 이 요한복음 4장은 신약판 여호수아 2장이라고 말해도 되고요.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피고 있는 그 여호수아서 2장은 구약판 요한복음 4장입니다.
제가 왜 자꾸 북한의 통치자 또 사이비 종교 그 자기의 이게 엄연히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걸 본인은 알잖냐구요.
그러면서도 그런 사이비 그런 종파를 만들어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착취하는 그런 지도자들고 확인이 다른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희생하는 하나님이 헌신하는 하나님이내어 주시는 지도자세요.
오늘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자꾸 그 교회의 뭐 어느 그 인간 지도자 또 그 교회 뭐뭐가 좋더라 뭐가 좋더라 전부 다 헛거예요.
인간에게 뭐가 좋다는 거 그게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도토리 키재기에요.
그래서 여러분 그 큰 교회 다녀가지고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하게 좋은게 하나 있는데 설교하는 담님 목사를 잘 만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거 하나님이 여러분에 주 선물이에요. 이 축복으로 받으셔야 돼요. 농담이 아닌데.
만나가지고 뭐가 좋겠습니까.
아 뭐 그 멀리서 설교할 때는 그럴듯 하더니 뭐 이 사람도 그냥 뭐 인간이구나.
아이 뭐 그냥 말만 잘하는 사람이네 뭐.
그거 말고 나올게 더 있겠냐고요.
그거 말고 더 나오는게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지 몸부림을 치지만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다쳐요.
제가 우리 장로님들을 피택하잖아요.
피택을 하면은 저는 진짜 기도합니다.
그렇게 헌신했던 집사님이 장로가 되셔 갖고 이제 매주마다 만나고 당회에서 만나고 회의할 때 만나고 저의 가치관 저의 생각 저의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모든 걸 다 아시게 될 텐데 이제 장로가 되면서 아 난 이제 시험에 들었다 이찬수 목사를 가까이서 보고 내가 너무너무 내가 시험에 빠졌다 난 신앙생활 회의가 온다 이렇게 되면 안 되니까 기도해야 되는 거죠.
하나님 우리 장로님들이 멀리서 저를 볼 때나 코 앞에서 저를 볼 때나 진짜 한결 같기를 원합니다.
이게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해 주셔야 돼요. 저를 위해서.
뭘 지금 제가 강조하는지 아시겠죠.
인간에게서 선한게 나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 우리 이찬수 목사한테 실망해서 아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누가 기대하라 그랬나요.
누가 가까이서 보면은 실망할 거밖에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사실은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무지 좋아하는 성격이 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대학교 다닐 때는 내가 내 친구 집에 가서 자거나 내 친구를 집에 데려다 재우거나 그 둘 중에 하나가 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목회하는 거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아요.
이 좀 내성적이고 이런 사람들은 이제 사람을 대하는게 에너지가 굉장히 들어간다 그러는데요 아 저도 조 그 내성적인 면이 또 없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은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저는 사람 만나는게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제가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제 목회에서 저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목회하는데 여러 구호가 있는 건 여러분 아시죠 막 노래도 막 제가 부르고 그게 제 목회 구호 중에 여러분 다 아시는 그 구호같은데요.
이게 제 목회 구호 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끝 이게 다해요 이게 내 목회관 다에요.
뭐 성도들에게 뭐 조그만한 거 해주고 뭐 또 우리 부 목사님들한테 뭐 조그만한 거 해주고 뭐 일만 선도 파성 운동 목사님들 테 뭐 내가 조금 도움 주고 이제 내가 이만큼 줬으니까 이제 저쪽도 나한테 뭐 줘야 된다는 기대를 하는 그 모든게 다 죄예요.
왜 그게 다 내 상처를 주니까요.
바람은 죄가 될테니까.
그 자식들한테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 집 아이들이 20대 중후반이 되니까요.
가끔씩 그런 얘기를 해요.
일대일로 만나서도 하고 밥 먹으면서도 하고 이제 앞으로 점점 더 많이 할 거예요.
우리 피차 기대하지 말자.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만원 하나 유산 받은 거 없다.
그리고 너희들도 대학 공부다 시키고 했으니까 이제 빨리 독립해라.
그리고 더 이상 기대지 마라.
그리고 또 저도 또 그런 얘기를 해요,
아빠도 너희들한테 아무 부담 안 줄 거니까 아빠도 너희들한테 어떤 기대도 안 한다.
그 오늘 저녁에 다 소집을 했는데 이제 이 노래로 모임을 끝낼까 합니다.
바람은 죄가 될테니까, 에브리바디.
그리고 이제 합창하고 끝낼 생각이에요.
이게 약간 이제 제가 좀 그 유머를 담아 갖고 한 얘기긴 하지만 제 근본적인 생각이에요.
과하게 아이들에게 해 주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부모든 그게 자식이든 그게 부부건 바라는 그 모든 건 우리에게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올해 들어서 지금 소그룹 다락방이 이제 막 살아나고 있거든요.
여기저기서 다락방에 대한 좋은 소문이 막 소식이 저한테 보고가 돼서 너무 감사한데 근데 여러분 어 그래 그럼 나도 다락방 한번 가 볼까라고 생각하시는 여러분 이 사실을 기억하고 참여하셔요.
다락방에 갔더니 어이 내 상처가 많고 아픔이 많은데 어 다락방에 가면 막 상처도 막 싸며 준다 그러네 좋은 사람이 많다 그러네 나도 가서 혜택을 좀 받아 볼까라는 분은 절대 가시면 안 돼요.
돌아오는 거 상처밖에 없습니다.
다락방은 어떤 준비가 된 사람이 가는 사람인 가면요 나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생 라합과 같은 존재다 아 나는 정말 쓰임새가 없었는데 주님이 십자가로 나를 가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상처가 많지만 나는 다락방에 가서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 눈물을 닦아 줄 거야 이런 마음으로 가시지 않으면 안 가시는게 좋아요.
여러분 그 다락방에 한 일곱 명이 모였는데 일곱명 모두가 다 상대방 눈을 닦아주러 간다고 하면 그때 비로서 그 다락방이 눈물을 닦아주는 다락방이 되거든요.
순장님 너무 짐 지우지 마세요.
그 순장님이 무슨 죄예요 그분이 뭐 신학을 했습니까 뭐 우리 교회에서 뭐 월급을 받습니까.
여러분하고 똑같은 그냥 일반 신자일 뿐이에요.
순장님게 너무 짐 지우지 마세요.
서로서로.
그래서 교회는 위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은혜받고 받은 은혜를 나누는 곳이에요 베푸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번 주부터 모든 다락방이 이 10월에 어느 날인데 10월이 만 4월이라이 노래를 부르고 시작을 하세요.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순장님 바라지 않겠습니다 순원님 바라지 않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은요 기라성 같은 믿음의 영웅들 이름이 쭉 열거가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 그러는데요 제가 놀란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기라성 같은 영웅의 이름이 열거되는 믿음에서 놀랍게도 거기에 기생 라합이 그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 그다음 영웅들을 보세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모든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 어마어마한 믿음의 영웅들 반열에 이 기생 라합의 이름이 들어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가 놀랐던 게요 여호수아의 이름이 없습니다.
어 이게 막 그냥 분당 우리에서 설치고 다니는 건 다 담임 목사인데 믿음 장에 담임 목사 이름은 없고 오늘 지금 처음 예수 믿는 초신자가 이름이가 있다 뭐 그렇게 비교를 하면 좀 비슷할까요.
이게 여러분 여호수아보다 라합의 믿음이 더 좋다 이렇게 받으시면 안 되고요 여기에서 제가 감동을 받는 건 여러분 그 기생 라의 믿음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냐고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의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그가 보인 그 태도를 절대로 이게 시시한 거 라고 별거 아니라고 담임목사가 막 수만 명 앞에서 설교하는 이것만 귀하고 아무도 보는 일이 없는 데서 그 초신자 한 사람이 그 복도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 하나 줍는 이 이런 하찮은 거라고 판단하는 분이 아니라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각자의 그 위치에서 너무나 미미하고 너무나 보잘 넘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하나에도 주목하시는 분이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통치자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분당 우리 교회가 절대로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요.
한 영혼 한 영혼을 집중할 수 없는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우리 부 목사님들 종종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그 컴퓨터를 상대하는 집사님이 컴퓨터를 그 대하는 태도 또 어떤 기계를 만지는 집사님이 그 기계를 하는 태도로 성도들을 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컴퓨터가 아니고 기계가 아니고 하나님 형성을 닮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뭐 한 열 가정 심방하고 아 오늘 내가 열권 해치웠다 농담으로도 그런 말하면 안 된다.
한 인격 한 인격을 하나님 앞에서 섬겨야 된다 그런 이야기들을 가끔씩 제가 부탁을 하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자꾸 하셔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한 사람의 소중함을 나는 인식하고 있는가. 이게 첫 번째 질문이고요.
두 번째 질문이 이겁니다.
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여러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나? 자기를 점검해야 돼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은요 여호수아 2장 12절을 보니까 기생 라합을 한번 보세요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를 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고 내게 맹세하고 내게 정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제가 왜 이 말씀을 주목하는가 하면은요 이 라합이요 우리 말로는 좀 순화시켜 가지고 점잖게 표현해서 기생 라합이라 했는데요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면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됩니다.
창녀에요 창녀.
몸을 파는 여자예요.
창녀 라합이에요.
그러니까 이 라합은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손가락질 받는 그 딸이고 또 누이고 형제 있기 때문에 이 라합은 자기 부모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던 사람 아닙니까.
그랬던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 처음일 거예요.
자기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거예요.
이 라합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냐면 저 또 놀란 겁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장에 보면은 거기에 메시아의 계보 족보가 쭉 열거 되는데 놀랍게도 이 라합이 메시아의 족보의 그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몸을 팔아 살아가던 무가치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던 라합이 하나님의 큰 구속사에 그 일에 동참하는 여인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가슴 아픈 문제가 뭡니까.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먼저 은혜받는 거잖아요 자격 없는 나 같은 걸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감격은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는데 그 가치 있는 존재가 된 우리 삶에서 그 흘러가지를 않잖아요.
제가 이번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 병행에서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여러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이사야 60장 21절 22절에 보면은 이사야가 이제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면서 이런 예언을 합니다.
"내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자가 천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무슨 지금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이 땅에 오셔서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고 변화받고 그 인생이 가치가 있는 인생으로 바뀐 사람들은 어떻게 변한다고요?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아무리 작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 가장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가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다.
한국 교회가 지금 여기서 지금 빨리 회복해야 될 가슴 아픈 실패가 이거 아니냐고요.
상가에 한 열명 모이는 참 겉으로 보기에 작고 초라한 교회라 할지라도 거기에 십자가가 그 중심이 있다고 한다면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라는 이런 긍지가 교회 안에 묻어나지 않는게 현실이라는 거 아니냐고요.
그래서 우리가이 질문을 꺼내는 거죠.
합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나는 어떤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제가 또 묵상했던 성경 구질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예레미야 5장 1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내가 이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지금 이제 이 대한민국이 타락해서 지금 망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급히 지금 예레미야 5장 1절처럼이 천사를 지금 보냈습니다.
어디로 가야 됩니까.
그 한 사람 찾으려면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그 한 사람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고요.
교회로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천사가 아무 교회 라도 들어가도 그리고 지금 여기 왔다고 치자고요, 여기 왔는데 보자 정의를 행하고 또 공의를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누군가 보자 그 이러면 안 되잖아요.
그냥 아무나 쿡 지르면 어 이 사람이 그 한 사람이다 어 여기도 있네 아 저기도 있네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진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이게 지금 현실입니까.
여러분 지금 마음으로 어 정말 천사가 지금 정말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그 한 사람을 지금 찾고 있다면 어 하나님이 나 찾으시겠네. 이런 긍지가 있으세요?
흘려보내는게 없잖아요.
여러분, 고이는 모든게 썩는데요.
영양가 있는게 썩을수록 냄새가 진동해요.
물, 잘 썩지도 않을 뿐더러 냄새도 많이 안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유, 한번 썩어 보세요. 냄새가 감당이 안되는 겁니다.
고이면 다 썩어요 흘려 보내야 돼요 선한 영향력을 흘려 보내야 돼요.
예전에는 내가 기생 라합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부모에게 내 형제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선한 영향력을 흘러 보내야 돼요.
다락방은 상처 치유 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약한 그 누구를 위하여 그 눈물 닦아주러 내 선한 영향력을 흘려 보내러 가는 곳이 다락방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두 주전 설교를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 그 두 주전 설교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혜의 선물이에요.
드림센터 사회 환원은 이거 10년 전에 해놓고는 지금까지 저는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게 뭐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 되고 이러려면 이게 문제고 또 이게 뭐 기증하려고 보니까 이게 또 무슨 그 그 무슨 뭐 세금 문제가 또 이렇게 복잡하네요.
이 큰 거를 누구에게 정리하면 또 막 세금이 또 막 엄청 나온다 그러고.
그럼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내 마지막 정말 골칫거리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걸 꿈으로 바꾸셨어요.
이제 분당 우리 교회가 1년에 30억씩 22년 동안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이미 하고 있는 그런 재단에 그래서 우리가 참 장애인들을 위하여 장애인들의 고용 창출을 위하여 우리 고민이 많은 청년들을 위하여 그리고 지금 고령화 사회를 맞아 수많은 노년의 어른들을 섬겨야 되는데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꿈 넘어 꿈 프로젝트.
이제 올해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이제 각 권별로 지금 이제 1차로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을 이제 열 교회를 지금 선정해서 이미 지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 4억 정도 후원을 할 것 같은데요.
이제 그다음에 뭐 전라도로 그다음에 경기도는 작년에 했고 그다음에 강원도로 그다음에 제주도로 그다음에 충청도로 이 순서들 하는 건 아니고 막 생각나는 대로 막 얘기한 겁니다.
전 너무 기뻐요.
이제 우리가 22년 동안 토탈 900억원.
이 상상하게 여러분이 프로젝트를 주셨는데 장로님들은 지금 머리가 터질 거예요.
저걸 어디서 구하지.
그러나 저는 하나님앞에 꿈을 꾸어요.
여러분 같이 꿈을 꾸자고요.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이 교회라고 한다면.
저도 사실 우리 교회가 잔고가 별로 없는 교회이기 때문에 한번씩 자다가 제정신이 들면 어떡하나 어떡하나 걱정도 되지만 지금까지 이 선한 일을 추구했을 때 단 한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일이 없거든요.
결론을 저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두 가지 질문이요.
예수 믿는다면 해야되는 우리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각하고 있는가.
또 사람의 영향력이 여러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는가.
이 두 질문에 예스 예스 이렇게 답하고 싶다면 이게 십자가로 돌아가야 돼요.
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요즘에 그 제 설교를 잘 정리해서 이렇게 홈페이지 올려 주시는 고마운 분이 있는데요.
제가 오늘 그분께 부탁 혹은 조금 더 강하게 경고하고 싶은데요.
여러분 제 설교를 만약에 올리기 원한다면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지적하고 이런 식으로 제목을 더 이상 뽑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 심판자가 아니에요.
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한국 교회같이 꿈을 꾸기 원하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제목을 뽑는 것은 앞으로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같이 하나님 앞에 꿈꾸면서 마음에 뜨거움을 가지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