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안 엘리파즈 핱테마니 와요말
개역개정,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새번역,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였다.
우리말성경,1 그러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1 테만 사람 엘리파즈가 말을 받았다.
영어NIV,1 Then Eliphaz the Temanite replied:
영어NASB,1 Then Eliphaz the Temanite answered,
영어MSG,1 Then Eliphaz from Teman spoke up:
영어NRSV,1 Then Eliphaz the Temanite answered:
헬라어구약Septuagint,1 υπολαβων δε ελιφας ο θαιμανιτης λεγει
라틴어Vulgate,1 respondens autem Eliphaz Themanites dixit
히브리어구약BHS,1 וַיַּעַן אֱלִיפַז הַתֵּימָנִי וַיֹּאמַר׃
성 경: [욥4:1]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전장(3장)에서 전개된 욥의 저주와 한탄은 특정한 대상(object)을 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즉 그것은 하나님, 또는 욥의 친구를 직접적 대화 수신자(受信者)로 설정하지 않은, 소위 자기 독백적 언설(言說)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는 자신의 현상태에 대한 절망적인 한탄이 내포되어 있었으므로, 욥의 친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에 대해 응답하고자 했다. 욥의 세 친구들 중에 엘리바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그가 그들 가운데 최연장자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Pope, 박윤선). 한편 엘리바스의 변론은 방법상에 있어서 매우 세련되어 있으며 내용상에 있어서는 보편 타당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또한 그는 5:27에까지 진행되는 긴변론 중에서 욥을 정면으로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편 타당한 진리(악=징벌, 선=보응)를 너무 도식적으로 고집한 나머지 욥의 특수한 상황(의인=징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이미 욥의 주장을 정중히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한편 이하 전개되는 엘리바스의 변론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서언(2절)->(2) 훈계(exhotation;3-6절)->(3)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7-11절)->(4) 하나님의 계시(진리의 계시, 12-21절)->(3) 인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5:1-16)->(2) 훈계(exhortation;5:17-26)->(1) 결어(5:27). 이렇게 볼때 (4)를 축으로 하여 4장과 5장은 동일 주제를 반복하는 대칭 구조를 보여준다.
하닛사 다발 엘레카 틸에 와초르 베밀린 미 유칼
개역개정,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싫증을 내겠느냐,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새번역,2 누가 네게 말을 걸면 너는 짜증스럽겠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다.
우리말성경,2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걸면 자넨 짜증이 나겠지? 그렇지만 누가 말하지 않고 물러서 있겠는가?
가톨릭성경,2 한마디 하면 자네는 언짢아하겠지? 그러나 누가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영어NIV,2 "If someone ventures a word with you, will you be impatient? But who can keep from speaking?
영어NASB,2 "If one ventures a word with you, will you become impatient? But who can refrain from speaking?
영어MSG,2 "Would you mind if I said something to you? Under the circumstances it's hard to keep quiet.
영어NRSV,2 "If one ventures a word with you, will you be offended? But who can keep from speak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 μη πολλακις σοι λελαληται εν κοπω ισχυν δε ρηματων σου τις υποισει
라틴어Vulgate,2 si coeperimus loqui tibi forsitan moleste accipias sed conceptum sermonem tenere quis possit
히브리어구약BHS,2 הֲנִסָּה דָבָר אֵלֶיךָ תִּלְאֶה וַעְצֹר בְּמִלִּין מִי יוּכָל׃
성 경: [욥4:2]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에 조건을 나타내는 'if'(만일 ...한다면)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if'를 첨가하여 본절을 '조건절'로 해석한다. 즉, '만일 ...한다면 ...하지 않겠느냐'(KJV, NIV, RSV). 개역 성경 역시 이러한 번역을 따르고 있는데 전후 문맥상 이 표현이 자연스럽다 하겠다. 한편 본문 전체를 알기 쉽게 번역하면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건네려 한다면 자네는 귀찮게 여기겠지.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일세'(공동 번역)로 된다. 즉, 친구의 불행을 보고 권면, 위로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1)욥이 자신의 말을 불쾌히 여기지 말 것과, (2) 욥에 대한 자신의 우정을 확인하여 이하 전개될 내용을 부드럽게 해준다.
인네 잇사르타 랍빔 웨야다임 라포트 테핮제크
개역개정,3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새번역,3 생각해 보아라. 너도 전에 많은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힘없는 자들의 두 팔을 굳세게 붙들어 주기도 했으며,
우리말성경,3 생각해 보게. 자네가 많은 사람을 가르쳤고 약한 손을 가진 사람에게 힘을 주지 않았는가!
가톨릭성경,3 여보게, 자네는 많은 이를 타이르고 맥 풀린 손들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영어NIV,3 Think how you have instructed many, how you have strengthened feeble hands.
영어NASB,3 "Behold you have admonished many, And you have strengthened weak hands.
영어MSG,3 You yourself have done this plenty of times, spoken words that clarify, encouraged those who were about to quit.
영어NRSV,3 See, you have instructed many; you have strengthened the weak hands.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ι γαρ συ ενουθετησας πολλους και χειρας ασθενους παρεκαλεσας
라틴어Vulgate,3 ecce docuisti multos et manus lassas roborasti
히브리어구약BHS,3 הִנֵּה יִסַּרְתָּ רַבִּים וְיָדַיִם רָפֹות תְּחַזֵּק׃
성 경: [욥4:3]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과거에 욥이 행한 선행과 업적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의 변론의 서두를 시작한다. 특히 이 인정 속에는 욥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 빠진 사람들을 보살피고 가르친 것에 대한 칭찬이 주조를 이룬다. 이처럼 엘리바스가 욥의 긍정적 측면을 먼저 부각시킨 것은 현재 고난에 빠진 욥을 위로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욥에게 닥친 재난이 범죄의 결과임을 은근히 암시하려는 의도에서이기도 하다. 한편 3절 전반절과 4절 전반절 그리고 3절 후반절과 4절 후반절은 각각 대칭을 이룬다(Hartley).
교훈하였고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사르타'(*)는 완료형으로서 욥이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육(訓育)하여 왔음을 가리킨다. 특히 이 단어의 원형 '아사르'(*)는 회초리를 들거나 벌을 주어 올바른 길로 인도한 행위를 묘사할 때 쓰였는 바(신 4:36;시 2:10;16:7;94:12). 이는 욥이 죄인된 이웃을 경책하여 선한 길로 강하게 이끌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욥은 이웃에 대해 무관심과 자기 위주의 독단적 신앙생활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 성경에서 '손'은 종종 '능력'(수 4:24), '보호'(시 89:13), '도움'(수 7:9;8:18)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손이 늘어진 자'는 용기를 잃고 낙담한 자를 비유한다. 영역 성경은 이를 '연약한 손'(KJV, NIV, RSV,weak(feeble) hands)으로 번역했다. 이는 또 정신적 육체적으로 허약한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히 12:12). 이렇듯 신체의 일부분의 특징을 예로 들어 그 사람의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으로는 '간담이 녹았다'(두려워하다', '절망하다'의 뜻, 수 2:9,24;14:8), '얼굴을 돌리다'('싫어하다'의 뜻. 신 31:17;대하 30:9;시10:11;13:1;88:14), '목이 곧다'('거만하다'의 뜻, 대하 36:13;렘 17:23;19:15;잠29:1)등이 있는데 이는 히브리 시문학의 특징적인 기교중의 하나이다.
코쉘 예키문 밀레카 우비르카임 코르오트 테암메츠
개역개정,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새번역,4 쓰러지는 이들을 격려하여 일어나게도 하고, 힘이 빠진 이들의 무릎을 굳게 붙들어 주기도 했다.
우리말성경,4 넘어지는 사람을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연약한 사람에게 힘을 주지 않았는가.
가톨릭성경,4 자네의 말은 비틀거리는 이를 일으켜 세웠고 또 자네는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 주기도 하였지.
영어NIV,4 Your words have supported those who stumbled; you have strengthened faltering knees.
영어NASB,4 "Your words have helped the tottering to stand, And you have strengthened feeble knees.
영어MSG,4 Your words have put stumbling people on their feet, put fresh hope in people about to collapse.
영어NRSV,4 Your words have supported those who were stumbling, and you have made firm the feeble knee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σθενουντας τε εξανεστησας ρημασιν γονασιν τε αδυνατουσιν θαρσος περιεθηκας
라틴어Vulgate,4 vacillantes confirmaverunt sermones tui et genua trementia confortasti
히브리어구약BHS,4 כֹּושֵׁל יְקִימוּן מִלֶּיךָ וּבִרְכַּיִם כֹּרְעֹות תְּאַמֵּץ׃
성 경: [욥4:4]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넘어져 가는 자 - '넘어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가솰'(*)은 '비틀거리다', '빼앗기다', '쇠하다', '파멸되다' 등의 뜻을 가진다. 그런데 성경상에서 이용어는 주로 (1)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해 가는 사람(레 26:37; 시 9:3;잠 16:18; 단11:14), (2) 발을 잘못 디뎌 엎어지는 사람(사 28:13)등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1)의 뜻으로 쓰였다. 이는 결국 욥이 죄를 짓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권고하여 생명의 길로 돌이켰다는 뜻이다.
무릎이 약한 자 - '무릎'은 신체 구조상 몸의 중심을 지탱하는 주요 부분이다. 따라서 '무릎이 약한 자'는 자기 스스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자, 즉 신체 허약한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정신적 허약자, 곧 힘이나 담력을 상실한 자를 스스로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극빈자와 소외계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시 109:24('약한 무릎'), 사 35:3('떨리는 무릎'), 겔 7:17('물과 같은 무릎')에도 나타난다. 결국 3절을 포함하여 본절은 욥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대(對)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의로운 자였음을 입증해 준다. 참고로 욥의 대(對) 사회적 선행에 대한 자증(自證)적 변론은 29장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키 앝타 타보 엘레카 와텔레 틱가 아데카 와팁바헬
개역개정,5 이제 이 일이 네게 이르매 네가 힘들어 하고 이 일이 네게 닥치매 네가 놀라는구나
새번역,5 이제 이 일을 정작 네가 당하니까 너는 짜증스러워하고, 이 일이 정작 네게 닥치니까 낙담하는구나!
우리말성경,5 그런데 자네가 이 지경이 됐다고 힘이 빠지고 문제가 생겼다고 힘들어 하다니
가톨릭성경,5 그런데 불행이 들이닥치자 자네가 기운을 잃고 불운과 맞부닥치자 질겁을 하는군.
영어NIV,5 But now trouble comes to you, and you are discouraged; it strikes you, and you are dismayed.
영어NASB,5 "But now it has come to you, and you are impatient; It touches you, and you are dismayed.
영어MSG,5 But now you're the one in trouble--you're hurting! You've been hit hard and you're reeling from the blow.
영어NRSV,5 But now it has come to you, and you are impatient; it touches you, and you are dismayed.
헬라어구약Septuagint,5 νυν δε ηκει επι σε πονος και ηψατο σου συ δε εσπουδασας
라틴어Vulgate,5 nunc autem venit super te plaga et defecisti tetigit te et conturbatus es
히브리어구약BHS,5 כִּי עַתָּה תָּבֹוא אֵלֶיךָ וַתֵּלֶא תִּגַּע עָדֶיךָ וַתִּבָּהֵל׃
성 경: [욥4:5]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본절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1) 욥의 나약함에 대한 비난 :즉, 욥이 자신의 현재 처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타인들에게는 격려와 용기를 주었으나(4,5절)이제 자신에게 재앙이 임하자 낙담과 불신앙에 빠졌다는 뜻이다. 다시말하면 욥이 타인의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자신의 문제에 해결하지 못하는 모순되 처지에 빠졌다고 은근히 비난하는 것이다. (2) 욥에 대한 격려와 권면:즉, 엘리바스가 욥의 지난날의 의로운 행적(3,4절)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로 하여금 현재의 불행에서 일어나도록 권면, 위로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거에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격려하고 교훈했듯이 너 자신도 현재의 고난에서 좌절하지 말고 일어서라는 의미이다.
하로 이르아테카 키슬라테카 티크와테카 웨톰 데라케카
개역개정,6 네 경외함이 네 자랑이 아니냐 네 소망이 네 온전한 길이 아니냐
새번역,6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네 믿음이고, 온전한 길을 걷는 것이 네 희망이 아니냐?
우리말성경,6 자네의 경외함이 자네의 자신감이었고 자네가 올바르게 산 것이 자네의 소망이 아니었나?
가톨릭성경,6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자네가 믿는 바 아닌가? 흠 없는 삶이야말로 자네가 바라는 바 아닌가?
영어NIV,6 Should not your piety be your confidence and your blameless ways your hope?
영어NASB,6 "Is not your fear of God your confidence, And the integrity of your ways your hope?
영어MSG,6 But shouldn't your devout life give you confidence now? Shouldn't your exemplary life give you hope?
영어NRSV,6 Is not your fear of God your confidence, and the integrity of your ways your hope?
헬라어구약Septuagint,6 ποτερον ουχ ο φοβος σου εστιν εν αφροσυνη και η ελπις σου και η ακακια της οδου σου
라틴어Vulgate,6 timor tuus fortitudo tua patientia tua et perfectio viarum tuarum
히브리어구약BHS,6 הֲלֹא יִרְאָתְךָ כִּסְלָתֶךָ תִּקְוָתְךָ וְתֹם דְּרָכֶיךָ׃
성 경: [욥4:6]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질책으로 시작하는 엘리바스의 충고]
욥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뢰)과 소망이 그의 행위의 선함에 기초해 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선행을 강조하는 히브리인들의 초기 신앙 관념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엘리바스가 본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는 축복을 주시되 악인에게는 징벌을 주신다는 것(권선 징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욥의 나머지 친구들 역시 이와 동일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욥 자신도 이런 생각을 지녔기 때문에 자신의 고난에 대해 너무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제카르 나 미 후 나키 아바드 웨에포 예솨림 니크하두
개역개정,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새번역,7 잘 생각해 보아라.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 정직한 사람이 멸망한 일이 있더냐?
우리말성경,7 잘 생각해 보게. 누가 죄 없이 망하겠나? 정직한 사람이 끊어지는 일이 어디 있나?
가톨릭성경,7 생각해 보게나, 죄 없는 이 누가 멸망하였는가? 올곧은 이들이 근절된 적이 어디 있는가?
영어NIV,7 "Consider now: Who, being innocent, has ever perished? Where were the upright ever destroyed?
영어NASB,7 "Remember now, who ever perished being innocent? Or where were the upright destroyed?
영어MSG,7 "Think! Has a truly innocent person ever ended up on the scrap heap? Do genuinely upright people ever lose out in the end?
영어NRSV,7 "Think now, who that was innocent ever perished? Or where were the upright cut off?
헬라어구약Septuagint,7 μνησθητι ουν τις καθαρος ων απωλετο η ποτε αληθινοι ολορριζοι απωλοντο
라틴어Vulgate,7 recordare obsecro te quis umquam innocens perierit aut quando recti deleti sint
히브리어구약BHS,7 זְכָר־נָא מִי הוּא נָקִי אָבָד וְאֵיפֹה יְשָׁרִים נִכְחָדוּ׃
성 경: [욥4:7]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
본문은 이하 전개될 엘리바스의 변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으로서 '권선 징악'의 원리를 표출하고 있다. 엘리바스의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죄의 삯은 사망'(롬6:23),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26)등 다양한 표현을 통해 그 행위에 상응하는 보응 원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3:8). 그러나 엘리바스의 변론은 선악의 보응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욥의 고난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적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즉, 악이 징계받고 선이 보응받는 것이 일반적 원리이나 아벨의 예에서 보듯(창 4:8; 마 23:35) 종종 악이 득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민의 회개와(롬 2:4), 의인의 신앙적 유익을 위해(시 119:71) 악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고 유보하시기도 하신다. 엘리바스는 바로 이런 측면을 고려함 없이 욥의 고난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고로 그의 신앙은 선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다분히 현상적 차원에서 단순하게 이해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5:17-26에서 보듯 선악에 대한 엘리바스의 도식적 사고는 다소 유연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카아쉘 라이티 호르쉐 아웬 웨조르에 아말 이크체루후
개역개정,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새번역,8 내가 본 대로는, 악을 갈아 재난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라.
우리말성경,8 내가 본 바로는 죄악을 경작하는 사람, 고난의 씨를 뿌리는 사람은 그대로 거두더군.
가톨릭성경,8 내가 본 바로는 밭을 갈아 불의를 심은 자와 재앙을 뿌린 자는 그것을 거두기 마련이라네.
영어NIV,8 As I have observed, those who plow evil and those who sow trouble reap it.
영어NASB,8 "According to what I have seen, those who plow iniquity And those who sow trouble harvest it.
영어MSG,8 It's my observation that those who plow evil and sow trouble reap evil and trouble.
영어NRSV,8 As I have seen, those who plow iniquity and sow trouble reap the same.
헬라어구약Septuagint,8 καθ' ον τροπον ειδον τους αροτριωντας τα ατοπα οι δε σπειροντες αυτα οδυνας θεριουσιν εαυτοις
라틴어Vulgate,8 quin potius vidi eos qui operantur iniquitatem et seminant dolores et metunt eos
히브리어구약BHS,8 כַּאֲשֶׁר רָאִיתִי חֹרְשֵׁי אָוֶן וְזֹרְעֵי עָמָל יִקְצְרֻהוּ׃
성 경: [욥4:8]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
본절 역시 7절과 동일한 논지(論旨)로 일관하고 있다. 즉, 심은대로 거둔다고 하는(갈 6:7) 자연의 보편 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 원리에 대해서 반박할 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문제는 욥에게 닥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현상이었다.
민니쉬마트 엘로아흐 요베두 우메루아흐 아포 이켈루
개역개정,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새번역,9 모두 하나님의 입김에 쓸려 가고, 그의 콧김에 날려 갈 것들이다.
우리말성경,9 하나님의 입김에 그들은 망하고 그분의 콧김에 끝장나는 것이네.
가톨릭성경,9 그들은 하느님의 입김으로 스러지고 그분 분노의 바람으로 끝장난다네.
영어NIV,9 At the breath of God they are destroyed; at the blast of his anger they perish.
영어NASB,9 "By the breath of God they perish, And by the blast of His anger they come to an end.
영어MSG,9 One breath from God and they fall apart, one blast of his anger and there's nothing left of them.
영어NRSV,9 By the breath of God they perish, and by the blast of his anger they are consumed.
헬라어구약Septuagint,9 απο προσταγματος κυριου απολουνται απο δε πνευματος οργης αυτου αφανισ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9 flante Deo perisse et spiritu irae eius esse consumptos
히브리어구약BHS,9 מִנִּשְׁמַת אֱלֹוהַ יֹאבֵדוּ וּמֵרוּחַ אַפֹּו יִכְלוּ׃
성 경: [욥4:9]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
입 기운 - 직역하면 '숨'(NIV, RSV, breath)이다. KJV는 '돌풍'(blast)으로 보다 생생히 번역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말씀'을 가리킨다고도 이해할 수 있겠다(박윤선).
콧김 - 성경에서 '콧김'은 종종 극심한 진노를 가리킨다. 이는 어떤 사람이 노했을 때 코를 벌름거리며 그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코를 통해 나오는 것에 연유한 비유적 표현이다. 따라서 많은 영역 성경들은 이를 의역하여 '분노의 돌풍'(NIV,RSV, theblast of his anger)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본문은 신인 동형 동성론적(anthropomorphic) 표현을 사용하여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솨아가트 아르예 웨콜 솨할 웨쉰네 케피림 닡타우
개역개정,10 사자의 우는 소리와 젊은 사자의 소리가 그치고 어린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새번역,10 사자의 울부짖음도 잠잠해지고, 사나운 사자의 울부짖음도 그치는 날이 있다. 힘센 사자도 이빨이 부러진다.
우리말성경,10 사자의 포효 소리, 사나운 사자의 으르렁대는 소리는 사라지고 젊은 사자의 이빨은 부러지고
가톨릭성경,10 사자의 포효, 새끼 사자의 울부짖음도 그치고 힘센 사자의 이빨도 부러진다네.
영어NIV,10 The lions may roar and growl, yet the teeth of the great lions are broken.
영어NASB,10 "The roaring of the lion and the voice of the fierce lion, And the teeth of the young lions are broken.
영어MSG,10 The mighty lion, king of the beasts, roars mightily, but when he's toothless he's useless--
영어NRSV,10 The roar of the lion, the voice of the fierce lion, and the teeth of the young lions are broken.
헬라어구약Septuagint,10 σθενος λεοντος φωνη δε λεαινης γαυριαμα δε δρακοντων εσβεσθη
라틴어Vulgate,10 rugitus leonis et vox leaenae et dentes catulorum leonum contriti sunt
히브리어구약BHS,10 שַׁאֲגַת אַרְיֵה וְקֹול שָׁחַל וְשִׁנֵּי כְפִירִים נִתָּעוּ׃
성 경: [욥4:10]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
히브리 시가 문학(詩歌文學)에서 사자는 그 위용과 용맹성으로 인해 담대한 의인(잠 28:1), 권위(잠 30:29, 30)를 상징하기도 했으나 그 파괴적 성향으로 인해 '악인'(시 91:13), '죄인'(시 7:2;17:12;22:13;35:17;58:6) 등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사냥감을 입에 물고 목을 빳빳이 세운 사자의 모습은 회개할 줄 모르는 악인을 상징한다(시 17:12). 본절에 나타나는 사자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한편 본절의 '젊은 사자'와 11절에 나오는 '늙은 사자', '새끼 사자'는 모든 악인을 통칭한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본절에서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을 불문하고 악인은 그 누구도 공히 심판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라이쉬 오베드 밉벨리 타레프 우베네 라비 이트파라두
개역개정,11 사자는 사냥한 것이 없어 죽어 가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새번역,11 사자도, 늙어서 먹이를 잡지 못하면, 어미를 따르던 새끼 사자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말성경,11 늙은 사자가 먹이가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들이 다 흩어져 버린다네.
가톨릭성경,11 수사자는 사냥 거리 없어 스러져 가고 암사자의 새끼들은 흩어져 버린다네.
영어NIV,11 The lion perishes for lack of prey, and the cubs of the lioness are scattered.
영어NASB,11 "The lion perishes for lack of prey, And the whelps of the lioness are scattered.
영어MSG,11 No teeth, no prey--and the cubs wander off to fend for themselves.
영어NRSV,11 The strong lion perishes for lack of prey, and the whelps of the lioness are scattered.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μυρμηκολεων ωλετο παρα το μη εχειν βοραν σκυμνοι δε λεοντων ελιπον αλληλους
라틴어Vulgate,11 tigris periit eo quod non haberet praedam et catuli leonis dissipati sunt
히브리어구약BHS,11 לַיִשׁ אֹבֵד מִבְּלִי־טָרֶף וּבְנֵי לָבִיא יִתְפָּרָדוּ׃
성 경: [욥4:11]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악인에게만 임하는 심판]
움킨 것이 없어 - 사자가 그 먹이를 얻지 못한 상태(KJV,RSV,NIV,for lack ofprey)를 가리킨다. 본절에서 엘리바스는 악인이 결국 그 소득(열매)이 없으므로 인해 멸망할 것을 나타내고자 한다.
웨엘라이 다발 예군나브 와티카흐 오즈니 쉐메츠 메느후
개역개정,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새번역,12 한번은 조용한 가운데 어떤 소리가 들려 오는데, 너무도 조용하여 겨우 알아들었다.
우리말성경,12 한 마디 말이 내게 살짝 들려 오길래 내 귀가 좀 들어보았네.
가톨릭성경,12 한마디 말이 내게 남몰래 다다르고 그 속삭임이 내 귓가에 들렸네.
영어NIV,12 "A word was secretly brought to me, my ears caught a whisper of it.
영어NASB,12 "Now a word was brought to me stealthily, And my ear received a whisper of it.
영어MSG,12 "A word came to me in secret-- a mere whisper of a word, but I heard it clearly.
영어NRSV,12 "Now a word came stealing to me, my ear received the whisper of it.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ι δε τι ρημα αληθινον εγεγονει εν λογοις σου ουθεν αν σοι τουτων κακον απηντησεν ποτερον ου δεξεται μου το ους εξαισια παρ' αυτου
라틴어Vulgate,12 porro ad me dictum est verbum absconditum et quasi furtive suscepit auris mea venas susurri eius
히브리어구약BHS,12 וְאֵלַי דָּבָר יְגֻנָּב וַתִּקַּח אָזְנִי שֵׁמֶץ מֶנְהוּ׃
성 경: [욥4:12]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가는 소리 - '세미한 음성' 또는 '속삭임'(NIV,RSV,whisper)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처럼 신탁이 주어지는 전초 단계에 사람의 청각이 감지할 듯 말 듯한 세미한 음성이 주어지는 것은 '엘리야'(왕상 19:11,12), '사무엘'(삼상 3:3-9)등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비스잎핌 메헤즈요노트 라일라 비네폴 타르데마 알 아나쉼
개역개정,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새번역,13 그 소리가 악몽처럼 나를 괴롭혔다.
우리말성경,13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드는 그 밤의 불안한 꿈속에서
가톨릭성경,13 밤의 환시 때문에 생각에 잠겼을 때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영어NIV,13 Amid disquieting dreams in the night, when deep sleep falls on men,
영어NASB,13 "Amid disquieting Youghts from the visions of the night, When deep sleep falls on men,
영어MSG,13 It came in a scary dream one night, after I had fallen into a deep, deep sleep.
영어NRSV,13 Amid thoughts from visions of the night, when deep sleep falls on mortals,
헬라어구약Septuagint,13 φοβοι δε και ηχω νυκτερινη επιπιπτων φοβος επ' ανθρωπους
라틴어Vulgate,13 in horrore visionis nocturnae quando solet sopor occupare homines
히브리어구약BHS,13 בִּשְׂעִפִּים מֵחֶזְיֹנֹות לָיְלָה בִּנְפֹל תַּרְדֵּמָה עַל־אֲנָשִׁים׃
성 경: [욥4:13]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깊이 잠들 때 - 여기서 '깊은 잠'(KJV,NIV,RSV,deep sleep)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창 2:21), 어떤 것에 압도되어 정신(얼)이 빠진 상태(사 29:10), 아브라함의 잠(창 15:12), 사울 일행의 잠(삼상26:12)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무의식 상태가 인간의 의도적 능력이나 방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 간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간섭)에 의해 무의식 상태에 빠짐으로써 계시를 받을 준비를 위했던 것이다. 한편, 어떤 학자는 대부분의 구약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중에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 있었다는 실례(호 1:2; 욜 1:1; 말 1:1 등)를 들어 엘리바스의 계시받는 행위가 이방 선지자 발람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 선지자 중 엘리바스와 흡사한 상태에서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이 여럿 있으며(단 7:1 등), 이러한 실례가 신약에서도 발견된다(사도 바울:행 16:9, 사도 요한:계 1:17)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이 주장은 별 신빙성이 없다고 하겠다.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 단순히 '생각 중에'(KJV, Inthoughts)로 번역하는 것보다 '동요하는 중에', 또는 '불안해 하는 중에'(NIV, Amid disquieting)로 번역하는 것이 14,15절과 조화를 이룬다. 이 말은 본서에서도 이곳과 20:2등 단 두번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초급함이니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초월적 존재(하나님 또는 그의 사자)의 임재로 인해 인간의 심령이 크게 동요(당혹)된 상태를 의미하는데, 다니엘(단8:27;10:15-17), 느부갓네살(단 2:1) 등에게도 이와 흡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파하드 케라아니 우르아다 웨로브 아츠모타이 히프히드
개역개정,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새번역,14 두려움과 떨림이 나를 엄습하여, 뼈들이 막 흔들렸다.
우리말성경,14 두려움과 떨림이 나를 사로잡아 내 모든 뼈를 흔들었다네.
가톨릭성경,14 공포와 전율이 나를 덮쳐 내 뼈마디가 온통 떨리는데
영어NIV,14 fear and trembling seized me and made all my bones shake.
영어NASB,14 Dread came upon me, and trembling, And made all my bones shake.
영어MSG,14 Dread stared me in the face, and Terror. I was scared to death--I shook from head to foot.
영어NRSV,14 dread came upon me, and trembling, which made all my bones shake.
헬라어구약Septuagint,14 φρικη δε μοι συνηντησεν και τρομος και μεγαλως μου τα οστα συνεσεισεν
라틴어Vulgate,14 pavor tenuit me et tremor et omnia ossa mea perterrita sunt
히브리어구약BHS,14 פַּחַד קְרָאַנִי וּרְעָדָה וְרֹב עַצְמֹותַי הִפְחִיד׃
성 경: [욥4:14]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 '골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쳄'(*)은'뼈'(bone), '생명', '몸'을 의미한다. 이 용어가 잠 3:8에서는 '골수'로 번역되었다. 성경, 특히 시가 문학에서 보면 '뼈'는 심령의 처소 또는 그 사람의 인격과 동일시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죄로 인하여 내 뼈로 평안함이 없나이다'(시 38:3), '저주가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 109:18),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하느니라'(잠 17:22) 등이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이 뼈를 인격의 실체(實體)와 동일시한것은 그것이 인간 신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마음'과 마찬가지로 지.정.의의 깊은 처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에 접한 엘리바스가 그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인해 온몸(전존재)에 전율을 느꼈음을 가리킨다(렘 23:9; 합 3:16).
웨루아흐 알 파나이 야하로프 테삼메르 사아라트 베사리
개역개정,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새번역,15 어떤 영이 내 앞을 지나가니,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우리말성경,15 그러고 나서 한 영이 내 얼굴 앞으로 지나갔네. 내 몸의 털이 다 쭈뼛 서 버렸지.
가톨릭성경,15 어떤 입김이 내 얼굴을 스치자 내 몸의 털이 곤두섰다네.
영어NIV,15 A spirit glided past my face, and the hair on my body stood on end.
영어NASB,15 "Then a spirit passed by my face; The hair of my flesh bristled up.
영어MSG,15 A spirit glided right in front of me-- the hair on my head stood on end.
영어NRSV,15 A spirit glided past my face; the hair of my flesh bristled.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και πνευμα επι προσωπον μου επηλθεν εφριξαν δε μου τριχες και σαρκες
라틴어Vulgate,15 et cum spiritus me praesente transiret inhorruerunt pili carnis meae
히브리어구약BHS,15 וְרוּחַ עַל־פָּנַי יַחֲלֹף תְּסַמֵּר שַׂעֲרַת בְּשָׂרִי׃
성 경: [욥4:15]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영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바람'(41:16; 창 8:1; 사7:2;41:16), '광풍'(1:19;30:15; 사 27:8;32:2), '생명'(전 3:21;8:8;12:7),'의지'(대상 5:26;대하 21:16;36:22;학 1:14), '기질'(전10:4)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나 하나님과 관련하여서는 주로 그분의 '영'(26:13;33:4;민 11:7,25;느 9:20; 시104:30;사 48:16;겔 11:19;36:26,27),사물을 소생시키거나 진멸하는 그분의 '능력'(4:9;시 18:15;33:6;겔 10:17;슥 5:9등)을 뜻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영'에 대해서는 단순한 '바람'(wind), '천사'(angel), '초자연적인 숨결'(uncanny breath) 등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본절 하반절에 근거하여 이것은 인간의 몸을 오싹떨게 만드는 '찬 바람'(a cold breath of air)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owley).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Anderson, 삼하 5:24).
야아모드 웨로 아키르 마르에후 테무나 레네게드 에나이 데마마 와콜 에쉬마
개역개정,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새번역,16 영이 멈추어 서기는 했으나 그 모습은 알아볼 수 없고, 형체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는데,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서 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우리말성경,16 그 영이 가만히 서 있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네. 내 눈앞에 한 형상이 서 있고 적막이 흐르는데 내가 어떤 음성을 듣게 됐지.
가톨릭성경,16 누군가 서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지. 그러나 그 형상은 내 눈앞에 있었고 나는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네.
영어NIV,16 It stopped, but I could not tell what it was. A form stood before my eyes, and I heard a hushed voice:
영어NASB,16 "It stood still, but I could not discern its appearance; A form was before my eyes; There was silence, then I heard a voice:
영어MSG,16 I couldn't tell what it was that appeared there-- a blur . . . and then I heard a muffled voice:
영어NRSV,16 It stood still, but I could not discern its appearance. A form was before my eyes; there was silence, then I heard a voic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ανεστην και ουκ επεγνων ειδον και ουκ ην μορφη προ οφθαλμων μου αλλ' η αυραν και φωνην ηκουον
라틴어Vulgate,16 stetit quidam cuius non agnoscebam vultum imago coram oculis meis et vocem quasi aurae lenis audivi
히브리어구약BHS,16 יַעֲמֹד וְלֹא־אַכִּיר מַרְאֵהוּ תְּמוּנָה לְנֶגֶד עֵינָי דְּמָמָה וָקֹול אֶשְׁמָע׃
성 경: [욥4:16]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 '형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무나'(*)는 하나님의 얼굴, 영광(민 12:8; 시 17:15)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독특한 용어이다. 따라서 본절은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얼굴(형상)을 보기는 보았으나 그것을 분변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느냐 하는 질문에는 많은 난점이 따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신 까닭에 결코 물질적 형상을 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민 12:8), 다윗(시 17:14,15)등이 직접 대면(對面)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엄스럽고 영광에 찬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와 동일하게 칼빈도 '하나님의 본질적 형상은 인간에게 결코 보여지지 않는다'(Bavink, Gereformeerde Dogmatier, p.179)고 하였다. 따라서 본절에 뒤이어 나오는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으니라'는 말은 엘리바스가 직접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종용한 중에 목소리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조용함 그리고 한 목소리'(astill,small voice; 개역 성경. '세미한 소리')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NIV 번역처럼 '한 조용한 목소리'(a hushed voice)로 옮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명사와 그것을 형용하는 형용사 대신에 두 명사를 접속사 and로 연결하여 표현하는 것. 예를 들면 '아름다운 소녀'(beautiful girl)를 '아름다움 그리고 소녀'(beauty and girl)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문학 기법상 이사 일의(二詞一意)라고 한다. 한편 엘리바스가 본환상은 목소리(음성)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을 맺는다(21절), 이는 엘리야가 받은 환상과 흡사하다(왕상 19:9-14).
하에노쉬 메엘로하 이츠다크 임 메오세후 이트할 가벨
개역개정,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새번역,17 "인간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있겠으며, 사람이 창조주보다 깨끗할 수 있겠느냐?
우리말성경,17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의로울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 창조자보다 더 깨끗할 수 있겠느냐?
가톨릭성경,17 " 인간이 하느님보다 의로울 수 있으랴? 사람이 제 창조주보다 결백할 수 있으랴?
영어NIV,17 'Can a mortal be more righteous than God? Can a man be more pure than his Maker?
영어NASB,17 'Can mankind be just before God? Can a man be pure before his Maker?
영어MSG,17 "'How can mere mortals be more righteous than God? How can humans be purer than their Creator?
영어NRSV,17 'Can mortals be righteous before God? Can human beings be pure before their Maker?
헬라어구약Septuagint,17 τι γαρ μη καθαρος εσται βροτος εναντιον κυριου η απο των εργων αυτου αμεμπτος ανηρ
라틴어Vulgate,17 numquid homo Dei conparatione iustificabitur aut factore suo purior erit vir
히브리어구약BHS,17 הַאֱנֹושׁ מֵאֱלֹוהַ יִצְדָּק אִמ* מֵעֹשֵׂהוּ יִטְהַר־גָּבֶר׃
성 경: [욥4:17]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 '하나님보다'에 쓰인 전치사 '민'(*)은 비교급인 '...보다', '...더'의 뜻으로 보기보다 '...로부터', '...앞에서'(before)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river, Gray, Delitzsch). 한편 '인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노쉬'(*)는 '깨어지기 쉽다', '약하다', '병들다' 등을 뜻하는 동사 '아나쉬'(*)에서 유래하여 연약한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성을 지닌 인간(KJV, NIV, RSV, mortal man)을 가리킨다(창 6:4; 삿 9:28;16:27; 삼하 2:29; 대하 24:24; 스 2:2 등). 따라서 본절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분(시90:2;102:26)이신 하나님 앞에서 절대 의로울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 그 창조하신 이 앞에 성결하겠는가'로 옮겨질 수 있다. 앞에 나온 절이 시간의 카테고리(즉, 인간=유일;하나님=무한(영원))에 견주어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음을 설파한 것이라면, 본절은 존재성(存在性)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의가 하나님 수준에 이를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의 주체요 동력인(動力因)인 하나님 앞에서 결코 성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로 본문 전체는 인간의 유한성과 부패성(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이 죄성은 단순히 윤리가 도덕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파악되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요컨대 인간은 특정한 죄악을 범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있어 초월성을 지닌 하나님과 비견될 수 없고, 또한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의(義)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엡 4:13; 벧후 1:4). 한편 욥은 본문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절대적 의(義)의 수준에 이를 수 없다든지, 아니면 인간이 전적으로 죄성을 지닌 부패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회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그 자신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차후에 욥이 스스로 인정한 진리이기도 하다(9:2). 고로 본문의 계시는 명확한 진리이기는 하나 그 당시 욥에게 있어서는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욥의 머리속에는 왜 하필 자신에게 그토록 엄청난 환난이 닥쳤는지에 관한 의문과 탄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헨 바아바다우 로 야아민 우베말르아카우 야심 토홀라
개역개정,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새번역,18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당신의 종들까지도 믿지 않으시고, 천사들에게마저도 허물이 있다고 하시는데,
우리말성경,18 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조차 믿지 않으시고 당신의 천사들조차 허물이 있다 하시는데
가톨릭성경,18 그분께서는 당신 종들도 믿지 않으시고 당신 천사들의 잘못조차 꾸짖으시는데
영어NIV,18 If God places no trust in his servants, if he charges his angels with error,
영어NASB,18 'He puts no trust even in His servants; And against His angels He charges error.
영어MSG,18 Why, God doesn't even trust his own servants, doesn't even cheer his angels,
영어NRSV,18 Even in his servants he puts no trust, and his angels he charges with error;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ει κατα παιδων αυτου ου πιστευει κατα δε αγγελων αυτου σκολιον τι επενοησεν
라틴어Vulgate,18 ecce qui serviunt ei non sunt stabiles et in angelis suis repperit pravitatem
히브리어구약BHS,18 הֵן בַּעֲבָדָיו לֹא יַאֲמִין וּבְמַלְאָכָיו יָשִׂים תָּהֳלָה׃
성 경: [욥4:18]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그 종 - 하늘에서 하난님을 수종드는 (his heavenly attendants)를 가리킨다.
그 사자 - 이것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의 무리를 가리킨다(KJV, NIV, angels) 천사들은 인간보다 성결하여 하나님 가까이에서 수종드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믿지 않고 미련하다고 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나타내 준다. 한편 어떤 학자는 본문의 천사를 타락한 천사로 보기도 하나 그 타당성 여부는 아직도 논란 중에 있다.
아프 쇼케네 밭테 호멜 아쉘 베아파르 예소담 예다케움 리페네 아쉬
개역개정,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새번역,19 하물며, 흙으로 만든 몸을 입고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사람이겠느냐?
우리말성경,19 하물며 진흙집에서 살면서 흙먼지 속에 그 기초를 두며 하루살이처럼 눌려 죽을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가톨릭성경,19 하물며 토담집에 사는 자들 먼지에 그 바탕을 둔 자들이야! 그들은 좀 벌레처럼 으스러져 버린다.
영어NIV,19 how much more those who live in houses of clay, whose foundations are in the dust, who are crushed more readily than a moth!
영어NASB,19 'How much more those who dwell in houses of clay, Whose foundation is in the dust, Who are crushed before the moth!
영어MSG,19 So how much less these bodies composed of mud, fragile as moths?
영어NRSV,19 how much more those who live in houses of clay, whose foundation is in the dust, who are crushed like a moth.
헬라어구약Septuagint,19 τους δε κατοικουντας οικιας πηλινας εξ ων και αυτοι εκ του αυτου πηλου εσμεν επαισεν αυτους σητος τροπον
라틴어Vulgate,19 quanto magis hii qui habitant domos luteas qui terrenum habent fundamentum consumentur velut a tinea
히브리어구약BHS,19 אַף שֹׁכְנֵי בָתֵּי־חֹמֶר אֲשֶׁר־בֶּעָפָר יְסֹודָם יְדַכְּאוּם לִפְנֵי־עָשׁ׃
성 경: [욥4:19]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흙 집에 살며 - 이는 흙으로 만든 집에 사는 인간의 거주 상태(KJV, RSV,dwell(live)in (the) house of clay)를 묘사한 것이라기 보다는 흙처럼 연약하여 부숴지기 쉬운 인간의 육체를 가리킨다(LB, men made of dust).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10:9),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33:6) 등이 있다. 인간은 원래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사후(死後)에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성경적 사상에 비추어 볼 때(창 2:7;3:19; 고전 15:47) 이는 인간의 기원과 그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탁월한 표현이다.
티끌로 터를 삼고 - 인간은 흙에서 왔으며(창 2:7) 그 흙(땅)에 삶의 기반을 두고 살아간다. 이는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 3:19)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 입증된다. 본문은 이처럼 인간의 생존 터전인 땅을 '티끌'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의지하는 대상(물질, 명예 등)의 허무성과 유한함을 피력하고 있다. 나아가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없다면 불안과 허무의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해 준다(22:16; 잠 10:25).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 '하루살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좀)와 '켄'(*,각다귀)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가 쓰였다. KJV는 본 구절을 이끄는 관계 대명사로 which를 사용함으로써 선행사 houses(집)를 수식하게 했다. 원래 좀은 의복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캄(Hakam) 같은 학자는, 여기서'이쉬'가 좀벌레와 유사하게 생긴 벌레로서 블록의 짚을 갉아 먹어 진흙 집을 무너지게만드는 것이라고 본다(Hartley). 하지만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이쉬'를 '하루살이'로 옮겨도 무방하겠다. 성경에서 하루살이는 그 생명의 짧음과 연약성(하루살이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죽는다)으로 알려졌다(사 51:6). 이것에 근거하여 본문은(하루살이처럼 쉽게 멸망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을 설파하고 있다.
밉보케르 라에레브 윸캍투 밉베리 메심 라네차흐 요베두
개역개정,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새번역,20 사람은, 아침에는 살아 있다가도, 저녁이 오기 전에 예고도 없이 죽는 것, 별수 없이 모두들 영원히 망하고 만다.
우리말성경,20 그들은 아침에 살았다가 저녁이 되면 멸망하고 아무도 생각해 주는 사람 없이 영원히 멸망하는 법이네.
가톨릭성경,20 하루해를 넘기지 못하고 부스러져 눈길을 끌 새도 없이 영원히 스러진다.
영어NIV,20 Between dawn and dusk they are broken to pieces; unnoticed, they perish forever.
영어NASB,20 'Between morning and evening they are broken in pieces; Unobserved, they perish forever.
영어MSG,20 These bodies of ours are here today and gone tomorrow, and no one even notices--gone without a trace.
영어NRSV,20 Between morning and evening they are destroyed; they perish forever without any regarding it.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απο πρωιθεν εως εσπερας ουκετι εισιν παρα το μη δυνασθαι αυτους εαυτοις βοηθησαι απωλοντο
라틴어Vulgate,20 de mane usque ad vesperum succidentur et quia nullus intellegit in aeternum peribunt
히브리어구약BHS,20 מִבֹּקֶר לָעֶרֶב יֻכַּתּוּ מִבְּלִי מֵשִׂים לָנֶצַח יֹאבֵדוּ׃
성 경: [욥4:20]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19절에서 인간의 연약성을 논증한 엘리바스는 여기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논증하고 있다. 특히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라는 표현은 마치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 것같은 인간 생명의 덧없음과 짧음을 과장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일생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 순간만을 사는 찰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짧은 인생이 어떻게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하는 반문이 본문 속에 내포되어 있다.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 이는 인간의 존재가 너무나 하찮은 고로 아무도 그의 운명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이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을 정도로 짧은 인생을 사는 까닭에 자신의 장래 운명이가 처지를 인식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맛본다(KJV, RSV, they perish for ever without any regarding it)는 뜻도 된다.
하로 닛사 이트람 밤 야무투 웨로 베호크마
개역개정,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새번역,21 생명 줄만 끊기면 사람은 그냥 죽고, 그 줄이 끊기면 지혜를 찾지 못하고 죽어간다."
우리말성경,21 그들의 장막줄이 뽑히지 않겠는가? 그들은 죽어도 참 지혜 없이 죽는다네.’”
가톨릭성경,21 그들의 천막 끈이 이미 끊어지지 않았느냐? 이렇게 그들은 지혜도 없이 죽어 간다."
영어NIV,21 Are not the cords of their tent pulled up, so that they die without wisdom?'
영어NASB,21 'Is not their tent-cord plucked up within them? They die, yet wiYout wisdom.'
영어MSG,21 When the tent stakes are ripped up, the tent collapses-- we die and are never the wiser for having lived.'
영어NRSV,21 Their tent-cord is plucked up within them, and they die devoid of wisdom.'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ενεφυσησεν γαρ αυτοις και εξηρανθησαν απωλοντο παρα το μη εχειν αυτους σοφιαν
라틴어Vulgate,21 qui autem reliqui fuerint auferentur ex eis morientur et non in sapientia
히브리어구약BHS,21 הֲלֹא־נִסַּע יִתְרָם בָּם יָמוּתוּ וְלֹא בְחָכְמָה׃
성 경: [욥4:21]
주제1: [엘리바스의 첫 변론(1)]
주제2: [환상으로 깨달은 진리]
장막줄 - 여기서 '장막'은 인간의 육체를 상징하며(고후 5:1,4; 벧후 1:13), 줄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생명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장막을 지탱하고 있는 줄을 뽑을 때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6:9;사38:12).
지혜가 없느니라 - 17-19절에서 엘리바스는 인간 육체의 유한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한 바 있으며 여기서는 인간의 지적 도덕적 불완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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