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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 BIBLE

히브리어 욥기 6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와야안 이욥 와요말

 

개역개정,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새번역,1 욥이 대답하였다.
우리말성경,1 그러나 욥이 대답했습니다. 
가톨릭성경,1 욥이 말을 받았다. 
영어NIV,1 Then Job replied:
영어NASB,1 Then Job answered,
영어MSG,1  Job answered:
영어NRSV,1 Then Job answered:
헬라어구약Septuagint,1 υπολαβων δε ιωβ λεγει
라틴어Vulgate,1 respondens autem Iob dixit
히브리어구약BHS,1 וַיַּעַן אִיֹּוב וַיֹּאמַר׃



성 경: [욥6:1]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본문에서부터 7장까지는 엘리바스의 변론(4,5장)에 대한 욥의 첫번째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루 솨콜 잇솨켈 카시 웨하야티 웨하와티 베모제나임 이스우 야하드 

 

개역개정,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새번역,2 아, 내가 겪은 고난을 모두 저울에 달아 볼 수 있고, 내가 당하는 고통을 모두 저울에 올릴 수 있다면,
우리말성경,2 “내 고뇌를 달아 볼 수만 있다면, 내 이 비참함을 저울에 올려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톨릭성경,2 아, 누가 제발 나의 원통함을 저울질해 보고 나의 불행도 함께 저울판에 달아 보았으면! 
영어NIV,2 "If only my anguish could be weighed and all my misery be placed on the scales!
영어NASB,2 "Oh that my vexation were actually weighed, And laid in the balances together with my iniquity!
영어MSG,2  "If my misery could be weighed, if you could pile the whole bitter load on the scales,
영어NRSV,2 "O that my vexation were weighed, and all my calamity laid in the balances!
헬라어구약Septuagint,2 ει γαρ τις ιστων στησαι μου την οργην τας δε οδυνας μου αραι εν ζυγω ομοθυμαδον
라틴어Vulgate,2 utinam adpenderentur peccata mea quibus iram merui et calamitas quam patior in statera
히브리어구약BHS,2 לוּ שָׁקֹול יִשָּׁקֵל כַּעְשִׂי [כ= וְהַיָּתִי] [ק= וְהַוָּתִי] בְּמֹאזְנַיִם יִשְׂאוּ־יָחַד׃



성 경: [욥6:2]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5:2에서 엘리바스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인다'고 함으로써 욥을 은근히 질책한바 있는데, 본문은 그것에 대한 욥의 반박이다. 즉 고통에 처한 자가 그 고통을 토로한다고 무조건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참작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인과 응보적인 변론만을 전개한 엘리바스의 태도에 대한 욥의 반박이라 하겠다. 나아가 이 말속에는 욥의 자기 변호의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 즉, 그가 당하는 고통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며, 다라서 죽음을 갈망하는 자신의 행위와 말(3장)이 자연스럽게 나올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키 앝타 메홀 얌밈 이크바드 알 켄 데바라이 라우 

 

개역개정,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새번역,3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니, 내 말이 거칠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말성경,3 틀림없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 때문에 내 말이 경솔했구나. 
가톨릭성경,3 그것이 이제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우니 내 말이 갈피를 못 잡는구려. 
영어NIV,3 It would surely outweigh the sand of the seas--no wonder my words have been impetuous.
영어NASB,3 "For then it would be heavier than the sand of the seas, Therefore my words have been rash.
영어MSG,3  It would be heavier than all the sand of the sea! Is it any wonder that I'm screaming like a caged cat?
영어NRSV,3 For then it would be heavier than the sand of the sea; therefore my words have been rash.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δη αμμου παραλιας βαρυτερα εσται αλλ' ως εοικεν τα ρηματα μου εστιν φαυλα
라틴어Vulgate,3 quasi harena maris haec gravior appareret unde et verba mea dolore sunt plena
히브리어구약BHS,3 כִּי־עַתָּה מֵחֹול יַמִּים יִכְבָּד עַל־כֵּן דְּבָרַי לָעוּ׃



성 경: [욥6:3]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 `바다 모래'는 성경에서 대부분 셀 수 없는 많은 수를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창 22:1; 32:12; 41:49; 수 11:4; 삿 7:12; 삼상 13:5). 그런데 여기서는 잠 27:3과 마찬가지로 `무거움'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H-artley). 고대 히브리인들은 `돌'(잠 27:3)과 마찬가지로 허다한 모래 또한 무거움의 대명사 격으로 표현하였다.

󰃨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죄의 시인: 욥은 3장에서 자신의 잉태와 탄생을 저주(3:1, 3-11)하며 죽음을 갈망하였다. 따라서 본절에서 욥은 그것이 비신앙적 행위였음을 시인하고 그 죄를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별 타당성이 없다. 왜냐하면 본장에서도 욥은 3장에서와동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죽음을 갈구하고 있다(9-11절). 만일 욥이 3장에서 나타난 자신의 행위를 부당한 것으로 여기고 회개했다면 여기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할 이유가 전혀 없다. (2) 자기 변호:욥의 고난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2절). 그것은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우며(본절 상반절), 따라서 그의 현재의 말과 행동이 정당하다는 뜻이다. 즉, 3장에 나타난 그의 말이 그의 고난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다는 의미이다. 도리어 그를 은연중 `미련한 자'(5:2)로 매도하려 한 엘리바스가 경솔한 자였다고 본다. 이 해석은 전후 구절들을 참고해 볼 때 타당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2절에서 자기 고통의 심각성을 토로한 욥이 4-6절에서는 그 고통으로 인한 자신의 토로가 정당한 행위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 힟체 솨다이 임마디 아쉘 함마탐 쇼타 루히 비우테 엘로하 야아르쿠니 

 

개역개정,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새번역,4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고 화살을 쏘시니, 내 영혼이 그 독을 빤다. 하나님이 나를 몰아치셔서 나를 두렵게 하신다. / ㉠히, '샤다이'
우리말성경,4 전능하신 분의 화살이 내 속에 박혀서 내 영이 그 독을 마셨으니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향해 줄지어 서 있구나. 
가톨릭성경,4 전능하신 분의 화살이 내 몸에 박혀 내 영이 그 독을 마시고 하느님에 대한 공포가 나를 덮치는구려. 
영어NIV,4 The arrows of the Almighty are in me, my spirit drinks in their poison; God's terrors are marshaled against me.
영어NASB,4 "For the arrows of the Almighty are within me; Their poison my spirit drinks; The terrors of God are arrayed against me.
영어MSG,4  The arrows of God Almighty are in me, poison arrows--and I'm poisoned all through! God has dumped the whole works on me.
영어NRSV,4 For the arrows of the Almighty are in me; my spirit drinks their poison; the terrors of God are arrayed against me.
헬라어구약Septuagint,4 βελη γαρ κυριου εν τω σωματι μου εστιν ων ο θυμος αυτων εκπινει μου το αιμα οταν αρξωμαι λαλειν κεντουσι με
라틴어Vulgate,4 quia sagittae Domini in me sunt quarum indignatio ebibit spiritum meum et terrores Domini militant contra me
히브리어구약BHS,4 כִּי חִצֵּי שַׁדַּי עִמָּדִי אֲשֶׁר חֲמָתָם שֹׁתָה רוּחִי בִּעוּתֵי אֱלֹוהַּ יַעַרְכוּנִי׃



성 경: [욥6:4]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 여기서는 하나님의 징계, 보다 직접적으로는 욥에게 주어진 일련의 재앙을 가리킨다(1:13-19; 2:7,8). 이처럼 하나님을 `용사'(勇士) 또는 `궁수'(弓手)로, 그의 진노(징계)를 그분이 쏘는 화살로 각각 비유하는 것은 성경에서 흔하게 발견된다(신 32:23, 42; 시 7:13; 21:12; 45:5; 애 3:13, 14 등). 여기에서 보듯 일단 욥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앙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왜'(why) 그것을 주셨는가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한고로 그의 갈등은 지속된다.(7:20; 16:12, 13 등).

󰃨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 이 말은 `그 독이 내 영혼을 삼켰다'(KJV, thepoi-son whereof drinketh up my spirit)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된다. 여기서 `그 독'이라 함은 앞절에 나온 `화살의 독'(NIV, RSV, their poison)을 가리킨다(pope,Dahood). 고대인들은 사냥을 할 때 화살의 끝에 독을 묻혀 쏘곤 했는데, 욥은 이러한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독화살을 맞은 짐승이 그 독성이 온몸에 퍼짐으로 인해 차츰 죽어가듯, 하나님의 진노(화살)를 받은 자신이 점점 더 깊은 절망과 회의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본절 상 반절에서는 `화살'이 `몸'에 박혔다고 했으나 하반절에서는 그 `화살의 독'이 `그의 영'을 삼킨다고 표현함으로써 `신체'에서 `영혼'으로까지 이행(移行)되어 가는 그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 욥이 당하는 고뇌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구절이다. 욥은 자기에게 연속적으로 주어진 일련의 재앙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다(4a절). 그런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재앙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대상(형벌의 대상)으로 여겨졌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재산, 자손, 건강을 상실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그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참을 수 없는 형벌이었다. 점점 가중되는 하나님의 재앙 속에서 그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전조(前兆)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하이느하크 페레 아레이 데쉐 임 이그에 숄 알 벨리로 

 

개역개정,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새번역,5 풀이 있는데 나귀가 울겠느냐? 꼴이 있는데 소가 울겠느냐?
우리말성경,5 풀이 있는데 들나귀가 울겠는가? 꼴이 있는데 소가 울겠는가? 
가톨릭성경,5 풀이 있는데 들나귀가 울겠는가? 꼴이 있는데 소가 부르짖겠는가? 
영어NIV,5 Does a wild donkey bray when it has grass, or an ox bellow when it has fodder?
영어NASB,5 "Does the wild donkey bray over his grass, Or does the ox low over his fodder?
영어MSG,5  Donkeys bray and cows moo when they run out of pasture-- so don't expect me to keep quiet in this.
영어NRSV,5 Does the wild ass bray over its grass, or the ox low over its fodder?
헬라어구약Septuagint,5 τι γαρ μη δια κενης κεκραξεται ονος αγριος αλλ' η τα σιτα ζητων ει δε και ρηξει φωνην βους επι φατνης εχων τα βρωματα
라틴어Vulgate,5 numquid rugiet onager cum habuerit herbam aut mugiet bos cum ante praesepe plenum steterit
히브리어구약BHS,5 הֲיִנְהַק־פֶּרֶא עֲלֵי־דֶשֶׁא אִם יִגְעֶה־שֹּׁור עַל־בְּלִילֹו׃



성 경: [욥6:5]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본절에서 욥은 팔레스틴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일상적 소재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수사 의문문'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귀'(KJV, RSV, wild ass)와 소는 먹을 풀이 풍족히 있으면 결코 울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욥 자신도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결코 비탄과 불평(3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욥이 불평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자기 변호의 말인 것이다. 특히 `나귀'와 `소'의 울음에 자신의 비탄(불평)을 비유한 것은 마치 먹을 것이 없을 때 그것들이 우는 것이 자연적이며 본능적이듯, 그의 현재의 불평도 그와 같은 성질의 것임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욥의 불평을 미련한 것이요 시기하는 것(5:2)이라고 은근히 꼬집은 엘리바스에 대한 책망도 숨어 있다.

 

 

하예아켈 타펠 밉벨리 멜라흐 임 예쉬 타암 베리르 할라무트 

 

개역개정,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새번역,6 싱거운 음식을 양념도 치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느냐? 달걀 흰자위를 무슨 맛으로 먹겠느냐?
우리말성경,6 소금 없이 맛없는 음식이 넘어가겠는가? 달걀 흰자에 무슨 맛이 있겠는가? 
가톨릭성경,6 간이 맞지 않은 것을 소금 없이 어찌 먹겠으며 달걀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는가? 
영어NIV,6 Is tasteless food eaten without salt, or is there flavor in the white of an egg?
영어NASB,6 "Can something tasteless be eaten wiYout salt, Or is there any taste in the white of an egg?
영어MSG,6  Do you see what God has dished out for me? It's enough to turn anyone's stomach!
영어NRSV,6 Can that which is tasteless be eaten without salt, or is there any flavor in the juice of mallows?
헬라어구약Septuagint,6 ει βρωθησεται αρτος ανευ αλος ει δε και εστιν γευμα εν ρημασιν κενοις
라틴어Vulgate,6 aut poterit comedi insulsum quod non est sale conditum aut potest aliquis gustare quod gustatum adfert mortem
히브리어구약BHS,6 הֲיֵאָכֵל תָּפֵל מִבְּלִי־מֶלַח אִם־יֶשׁ־טַעַם בְּרִיר חַלָּמוּת׃



성 경: [욥6:6]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본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1) 엘리바스에 책망 : 엘리바스의 변론(4, 5장)은 욥의 고난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욥이 `왜' 고난받는가 하는 질문에도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도리어 엘리바스는 자기 변증적인 일반론으로 변론을 일관함으로써 욥의 심중에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의 변론은 마치 소금을 치지 않아 간이 맞지 않은 음식, 그래서 사람의 입맛에 구역질을 일으키게 하는 음식처럼 욥에게 무미 건조하고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달걀의 흰자위처럼 핵심에서 이탈해 있었다(Anderson, Habel).(2) 욥의 자기 변호 : 일반적으로 간이 맞지 않는 음식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것을 먹는 것은 고역스런 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달걀의 흰자위를 그 노른자 위에 비해 맛없는(영양가 없는)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싱거운 음식, 달걀의 흰자위)을 싫어한다. 욥에게 있어서 그의 고난이 바로 이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즉, 그것은 지극히 싫어하는 음식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먹어야만 하는, 즉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을 인내해야만 하는 데에 그의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겠으나 전자의 해석이 좀더 타당하므로 여기서는 그것을 취하기로 한다.

󰃨 닭의 알 흰자위 - 이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한데 그 대표적인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멀건 흰죽(공동 번역) : 일반적으로 죽에는 소금을 넣지 않아 그 맛이 없다. 마찬가지로 엘리바스의 변론도 그것처럼 아무런 맛과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해석은 `닭의 알 흰자위'를 앞절에 나온 `싱거운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2) 쇠비름의 즙액(Anderson, Harthey, Keil and Delitzsch) : 쇠비름(purslane)은 팔레스틴의 길가나 밭 같은 데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1년생 풀로서 그 즙액에서 아무 맛도 없다. 엘리바스의 변론도 이와 대동 소이(大同小異)했다. 따라서 이 해석 역시 (1) 과 마찬가지로 상반절의 내용을 반복,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셈이다. (3) 꿈결에 흘린 침(Tur Sinai) : 이는 `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무드 (*)를 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렘'(*)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아, `꿈'으로 번역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달걀의 `흰자위'를 `침'으로 보는 이유는 삶지 않은 달걀의 흰자위가 끈적끈적한 것처럼 잠결에 흘린 침 역시 그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해석법을 따를 경우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욥의 반응은 더욱 신랄한 것으로 된다. 즉, 꿈결에 흘리는 침이 그 끈적거림과 악취로 인해 구역질 나게 하듯, 엘리바스의 변론 역시 욥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4) 닭 알의 흰자위(개역 성경 탈굼역). 이중 어떤 해석법을 취하든 본문이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질책, 또는 욥의 현재 고난에 대한 자기 변호를 담고 있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메아나 리느고아 나프쉬 헴마 키드웨 라흐미 

 

개역개정,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새번역,7 그런 것들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냄새조차도 맡기가 싫다.
우리말성경,7 나는 그것을 건드리기도 싫다. 그런 것을 먹으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가톨릭성경,7 내 목구멍은 그것들이 닿는 것조차 마다하니 나에게 구역질 나는 음식이라네. 
영어NIV,7 I refuse to touch it; such food makes me ill.
영어NASB,7 "My soul refuses to touch them; They are like loathsome food to me.
영어MSG,7  Everything in me is repulsed by it-- it makes me sick.
영어NRSV,7 My appetite refuses to touch them; they are like food that is loathsome to me.
헬라어구약Septuagint,7 ου δυναται γαρ παυσασθαι μου η ψυχη βρομον γαρ ορω τα σιτα μου ωσπερ οσμην λεοντος
라틴어Vulgate,7 quae prius tangere nolebat anima mea nunc prae angustia cibi mei sunt
히브리어구약BHS,7 מֵאֲנָה לִנְגֹּועַ נַפְשִׁי הֵמָּה כִּדְוֵי לַחְמִי׃



성 경: [욥6:7]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결백을 주장하는 욥]

욥은 엘리바스의 변론을 먹기 싫어하는 음식에 비유한 데 이어(6절), 여기서는 그것을 만지기 조차 싫어하는 음식에 비유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 이는 욥이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 못된 식물 - `나를 아프게 하는 음식'(NIV, food makes me ill), `나를 짜증나게 하는 음식'(RSV, food that is loathsome to me)' `몸이 아플 때에나 먹는 것'(공동번역), `나의 슬픈 음식'(KJV, my sorrowful meat)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이러한 번역들이 가능한 것은 개역 성경에서 `못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데와이'(*)가`(병이 들어)쇠약해지는', `혐오하는', `슬퍼하는'등의 다양한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 이텐 타보 쉐엘라티 웨티크와티 이텐 엘로아흐 

 

개역개정,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새번역,8 누가 내 소망을 이루어 줄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우리말성경,8 내가 구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셨으면 
가톨릭성경,8 아, 내 소원이 이루어지고 하느님께서 내 소망을 채워 주신다면! 
영어NIV,8 "Oh, that I might have my request, that God would grant what I hope for,
영어NASB,8 "Oh that my request might come to pass, And that God would grant my longing!
영어MSG,8  "All I want is an answer to one prayer, a last request to be honored:
영어NRSV,8 "O that I might have my request, and that God would grant my desire;
헬라어구약Septuagint,8 ει γαρ δωη και ελθοι μου η αιτησις και την ελπιδα μου δωη ο κυριος
라틴어Vulgate,8 quis det ut veniat petitio mea et quod expecto tribuat mihi Deus
히브리어구약BHS,8 מִי־יִתֵּן תָּבֹוא שֶׁאֱלָתִי וְתִקְוָתִי יִתֵּן אֱלֹוהַּ׃



성 경: [욥6:8,9]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본문은 3장에 이미 나타난 욥의 간구를 재확인하고 있다. 즉 3장에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갈구하였던 바, 여기서 그것을 다시 반복하여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죽음에 대한 욥의 갈구 : 3장에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강하게 나타낸 바 있다. 즉, 그는 (가) 차라리 잉태되지 말았으면(3:3-10), (나) 탄생하지 말았으면(3:3-10), (다) 탄생하였으되 일찍 죽었음다(3:11-19)하고 소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소망의 연장선상에서 (라) 지금이라도 죽었으면 하고 갈구한다. 이처럼 욥은 죽음의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들이 한 가지씩 실패로 돌아가자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렇듯 집요하게 죽음에 집착하는 1차적 이유는 욥이 당한 고난의 심각성에 있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풀길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욥이 신앙적 혼란에 빠졌으며, 더 이상 현생(現生)에대한 소망을 둘 여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정면 거부 :엘리바스는 그의 변론에서 죽음은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최종적 형벌이요 심판임을 강하게 설파하였었다(4:9). 그리고 욥에게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다(5:1,8). 그러나 여기서 욥은 도리어 죽음을 강하게 염원함으로써 이 같은 엘리바스의 권면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향후 전개될 욥과 그의 친구들간의 변론에서 긴장과반목이 야기되는바, 이 같은 욥의 태도도 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3) 욥의 신앙 :욥은 여전히 죽음을 갈망하는 가운데에서 그 죽음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고백하고 있다. 즉, 인간의 생사(生死)를 좌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그는 철저히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인내의 한계에 봉착하여 자살을 도모했을런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도 그 고난의 조성자가 하나님이시며(4절), 자신은 그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 죽음을 갈구할 수는있을지언정 그것을 도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욥의 믿음이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욥은 세속적 염세주의자(pessimisti), 또는 현실의 한계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자살을 정당시한 후기 스토아주의자(Later Stoic)들과 명백히 대조된다.

 

 

웨요엘 엘로하 위다크에니 얕테르 야도 위밫체에니 

개역개정,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새번역,9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우리말성경,9 하나님께서 선뜻 나를 죽여 주셨으면, 그 손을 놓아 나를 끊어 버리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네! 
가톨릭성경,9 하느님께서 결심하시어 나를 으스러뜨리시고 당신 손을 내뻗으시어 나를 자르신다면! 
영어NIV,9 that God would be willing to crush me, to let loose his hand and cut me off!
영어NASB,9 "Would that God were willing to crush me; That He would loose His hand and cut me off!
영어MSG,9  Let God step on me--squash me like a bug, and be done with me for good.
영어NRSV,9 that it would please God to crush me, that he would let loose his hand and cut me off!
헬라어구약Septuagint,9 αρξαμενος ο κυριος τρωσατω με εις τελος δε μη με ανελετω
라틴어Vulgate,9 et qui coepit ipse me conterat solvat manum suam et succidat me
히브리어구약BHS,9 וְיֹאֵל אֱלֹוהַּ וִידַכְּאֵנִי יַתֵּר יָדֹו וִיבַצְּעֵנִי׃

 

 

우테히 오드 네하마티 와아살레다 베힐라 로 야흐몰 키 로 키하드티 이메레 카도쉬 

 

개역개정,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새번역,10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우리말성경,10 그러면 내가 편안해질 텐데. 그래, 고통 속에서도 기뻐 뛸 텐데. 내가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으니까. 
가톨릭성경,10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어기지 않았으니 이것이 내게 위로가 되어 모진 고통 속에서도 기뻐 뛰련마는. 
영어NIV,10 Then I would still have this consolation--my joy in unrelenting pain--that I had not denied the words of the Holy One.
영어NASB,10 "But it is still my consolation, And I rejoice in unsparing pain, That I have not denied the words of the Holy One.
영어MSG,10  I'd at least have the satisfaction of not having blasphemed the Holy God, before being pressed past the limits.
영어NRSV,10 This would be my consolation; I would even exult in unrelenting pain; for I have not denied the words of the Holy One.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ειη δε μου πολις ταφος εφ' ης επι τειχεων ηλλομην επ' αυτης ου μη φεισωμαι ου γαρ εψευσαμην ρηματα αγια θεου μου
라틴어Vulgate,10 et haec mihi sit consolatio ut adfligens me dolore non parcat nec contradicam sermonibus Sancti
히브리어구약BHS,10 וּתְהִי* עֹוד נֶחָמָתִי וַאֲסַלְּדָה בְחִילָה לֹא יַחְמֹול כִּי־לֹא כִחַדְתִּי אִמְרֵי קָדֹושׁ׃



성 경: [욥6:10]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본문은 한편으로,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신앙 절개를 지켜 왔노라고 하는 욥의 신앙 고백이기도 할. 그러나 이고백 속에는 자신의 허물을 책망하려 들었던 엘리바스에 대한 반발과 변호의 심리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인정을 받은(1:1, 8; 2:3) 거룩한 자였다. 그러나 엘리바스로부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그 자신의 의를 의심받고, 죄를 추궁당했다(4:6-11; 5:2-7). 아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욥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있는 듯하며 29절에 가서는 그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마 코히 키 아야헬 우마 킻치 키 아아리크 나프쉬 

 

개역개정,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새번역,11 그러나 내게 무슨 기력이 있어서 더 견뎌 내겠으며, 얼마나 더 살겠다고, 더 버텨 내겠는가?
우리말성경,11 내게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소망이 있겠는가? 내가 결국 어떻게 되길래 살아야 하는가? 
가톨릭성경,11 내게 무슨 힘이 있어 더 견디어 내고 내가 얼마나 산다고 더 참으란 말인가? 
영어NIV,11 "What strength do I have, that I should still hope? What prospects, that I should be patient?
영어NASB,11 "What is my strength, that I should wait? And what is my end, that I should endure?
영어MSG,11  Where's the strength to keep my hopes up? What future do I have to keep me going?
영어NRSV,11 What is my strength, that I should wait? And what is my end, that I should be patient?
헬라어구약Septuagint,11 τις γαρ μου η ισχυς οτι υπομενω η τις μου ο χρονος οτι ανεχεται μου η ψυχη
라틴어Vulgate,11 quae est enim fortitudo mea ut sustineam aut quis finis meus ut patienter agam
히브리어구약BHS,11 מַה־כֹּחִי כִי־אֲיַחֵל וּמַה־קִּצִּי כִּי־אַאֲרִיךְ נַפְשִׁי׃



성 경: [욥6:11]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 약속한 바 있다(5:17-27). 그러나 욥의 현재 상황은 그 같은 약속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즉, 엘리바스는 소유(5:24)와 자손(5:25)의 축복을 약속했으나 욥에게 있어서 그것은 한낱 공허한 언설(言說)에 불과했다. 더욱이 잃어버린 건강(2:8, 9)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5:18, 19)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욥의 현 상황은 절망의 연속이며, 어떤 측면에서 절망 그 자체였다. 따라서 그는 참고 인내하여 회복될 미래를 소망하기 보다는 차라리 현재에서 죽음을 요청했다.

 

 

임 코아흐 아바님 코히 임 베사리 나후쉬 

 

개역개정,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새번역,12 내 기력이 돌의 기력이라도 되느냐? 내 몸이 놋쇠라도 되느냐?
우리말성경,12 내가 무슨 돌 같은 힘이라도 있단 말인가? 내 몸이 청동이라도 된단 말인가? 
가톨릭성경,12 내 힘이 바위의 힘이고 내 살이 놋쇠란 말인가? 
영어NIV,12 Do I have the strength of stone? Is my flesh bronze?
영어NASB,12 "Is my strength the strength of stones, Or is my flesh bronze?
영어MSG,12  Do you think I have nerves of steel? Do you think I'm made of iron?
영어NRSV,12 Is my strength the strength of stones, or is my flesh bronz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μη ισχυς λιθων η ισχυς μου η αι σαρκες μου εισιν χαλκειαι
라틴어Vulgate,12 nec fortitudo lapidum fortitudo mea nec caro mea aerea est
히브리어구약BHS,12 אִם־כֹּחַ אֲבָנִים כֹּחִי אִם־בְּשָׂרִי נָחוּשׁ׃



성 경: [욥6:12]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본문은 신앙의 위인인 욥 자신도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토로되어 있다. 즉, 상반절은 정신력(기력)의 한계를 후반절은 육체(살)의 한계를 나타낸다 하겠다. 여기서 정신력이라함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상실하지 않는 신앙 의지를, 그리고 육체라 함은 고난, 특히 전신에 퍼진 피부병(2:8, 9)을 인내하는 육체적 능력을 각각 가리킨다. 요컨대 욥은 그 정신력과 육체에 있어서 한계 상황에 다다랐던 것이다.

 

 

하임 엔 에즈라티 비 웨투쉬야 니드하 밈멘니 

 

개역개정,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새번역,13 나를 도와줄 이도 없지 않으냐? 도움을 구하러 갈 곳도 없지 않으냐?
우리말성경,13 나 스스로를 도울 힘이 내게 없지 않느냐? 지혜가 내게서 사라지지 않았느냐? 
가톨릭성경,13 진정 나는 의지할 데 없고 도움은 내게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네. 
영어NIV,13 Do I have any power to help myself, now that success has been driven from me?
영어NASB,13 "Is it that my help is not within me, And that deliverance is driven from me?
영어MSG,13  Do you think I can pull myself up by my bootstraps? Why, I don't even have any boots!
영어NRSV,13 In truth I have no help in me, and any resource is driven from me.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η ουκ επ' αυτω επεποιθειν βοηθεια δε απ' εμου απεστιν
라틴어Vulgate,13 ecce non est auxilium mihi in me et necessarii quoque mei recesserunt a me
히브리어구약BHS,13 הַאִם אֵין עֶזְרָתִי בִי וְתֻשִׁיָּה נִדְּחָה מִמֶּנִּי׃

 

성 경: [욥6:13]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죽음을 원하는 욥]

󰃨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 나지 아니하였느냐 - 불의의 재난을 당한 욥은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재난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따라서 본절은 욥이 삶의 위기를 해소할 능력(RSV, any resource)이 전혀 없음을 토로한 것이다. 한편, 본문의 `지혜'는 `생명의실제'(Lange), `구원'(Noyes), `회복'(Conat)등으로도 해석된다. 만약 이 해석법을 따를 경우 본절은 구원과 회복(건강 회복, 자손과 소유의 번성 등)의 가능성이 전무(全無)한 욥의 절망감을 토로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람마스 메레에후 하세드 웨이르아트 솨다이 야아좁

 

개역개정,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새번역,14 내가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든 말든, 내가 이러한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야말로, 친구가 필요한데,
우리말성경,14 친구라면 고난받은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여야 하지만 그 친구는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저버리는구나. 
가톨릭성경,14 절망에 빠진 이는 친구에게서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네. 그가 전능하신 분에 대한 경외심을 저버린다 하여도 말일세. 
영어NIV,14 "A despairing man should have the devotion of his friends, even though he forsakes the fear of the Almighty.
영어NASB,14 "For the despairing man there should be kindness from his friend; So that he does not forsake the fear of the Almighty.
영어MSG,14  "When desperate people give up on God Almighty, their friends, at least, should stick with them.
영어NRSV,14 "Those who withhold kindness from a friend forsake the fear of the Almighty.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απειπατο με ελεος επισκοπη δε κυριου υπερειδεν με
라틴어Vulgate,14 qui tollit ab amico suo misericordiam timorem Domini derelinquit
히브리어구약BHS,14 לַמָּס מֵרֵעֵהוּ חָסֶד וְיִרְאַת שַׁדַּי יַעֲזֹוב׃



성 경: [욥6:14]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 전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야 그 뜻이 통한다. `절망한 자는 그의 친구들의 헌신(동정)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포기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하여야 한다'(NIV, A despairing man should have the devotion of his friends,even thougth he forsakes the fear of the Almighty). 여기서 욥은 엘리바스의 태도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신에게 진정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온후한 동정과 사랑의 말이었으되, 엘리바스의 변론에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더욱이 엘리바스가 이미 은연중 지적한 것처럼 욥이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4:7, 8) 엘리바스는 욥을 권고하고 동정하는 참다운 우정을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17:5; 19:21, 22). 실로 엘리바스를 비롯하여 욥의 친구들에게서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진정한 사랑에서 출발한 이해였다. 우리는 여기서 타인에 대한 권고의 말을 할때는 그 말이 지니는 논리성이나 말의 유창함이 아닌, 그 사람의 정황에 대한 전적인 이해와 사랑으로 하여야 함을 교훈 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타인, 심지어 범죄한 자를 권고할 때라도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으로(갈 6:1)고 했다.

 

 

아하이 바게두 케모 나할 카아피크 네할림 야아보루 

 

 

개역개정,15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새번역,15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
우리말성경,15 내 형제들은 시내처럼,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그냥 지나가 버릴 뿐이구나. 
가톨릭성경,15 그러나 내 형제들은 개울처럼 나를 배신하였다네, 물이 넘쳐흐르던 개울 바닥처럼. 
영어NIV,15 But my brothers are as undependable as intermittent streams, as the streams that overflow
영어NASB,15 "My brothers have acted deceitfully like a wadi, Like the torrents of wadis which vanish,
영어MSG,15  But my brothers are fickle as a gulch in the desert-- one day they're gushing with water
영어NRSV,15 My companions are treacherous like a torrent-bed, like freshets that pass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ου προσειδον με οι εγγυτατοι μου ωσπερ χειμαρρους εκλειπων η ωσπερ κυμα παρηλθον με
라틴어Vulgate,15 fratres mei praeterierunt me sicut torrens qui raptim transit in convallibus
히브리어구약BHS,15 אַחַי בָּגְדוּ כְמֹו־נָחַל כַּאֲפִיק נְחָלִים יַעֲבֹרוּ׃



성 경: [욥6:15]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나의 형제 - 원문상으로는 복수형(KJV, RSV, My brethren)이다. 4,5장의 변론이 엘리바스 단독으로 선포되었음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복수형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 비록 엘리바스가 4,5장의 변론을 독자적으로 설파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실제적으로 엘리바스, 빌닷, 소발 등 세 친구의 공동 변론과 다름 없었다. 왜냐하면 5:27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변론을 `우리의 연구한 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욥과 그의 친구들과의 변론은 매우 자유스러운 대화(discussion or dialogue)의 형식이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긴주제를 변론(또는 강연)하는 식이라기 보다는 짤막한 대화로써 구성되었을 것이다.그런것을 본서 저자가 극시(劇詩) 형태에 맞게 각 사람의 대화를 일목요연하게 재조정내지 편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엘리바스와 함께 그의 다른 친구들이 욥에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욥은 그들을 염두에 두고 `나의형제들'이라고 지칭했을 듯 싶다.

󰃨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 - 팔레스틴 지역의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와디(wadi)의 특성을 들어 욥은 친구의 변덕스러움과 불성실을 비난하고 있다.여기서 `시냇물'과 `개울'은 공히 `와디'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비가 오면 금방 물이 불어나다가도 비가 그치고 조금만 지나면 그 강바닥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메말라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팔레스틴 지방의 지층(地層)이 물을 오래 가두어 둘 수 없는 모래와 자갈 들로 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와디는 농부와 행인(行人)에게있어서 전혀 쓸모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과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물이 절실히 필요한 건기(乾期,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에는 메말라 있으며, 그 반대로 물이 필요없는 우기(雨期, 11월부터 다음해 5월 초순까지)에는 비로 인해 와디가 넘쳐 흘러 버리기 때문이다. 욥에게 있어서 그의 친구들도 이와 같았다. 즉, 그들은 욥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따뜻한 동정과 위로는 주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변론과 주장으로 욥의 심화(心化)를 자극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욥은 그들에게 일종의 배신감(RSV, My bre-thren are treacherous)과 속았다는 느낌(KJV, my brethren have dealt deceitfully)을 갖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NIV, my brothers are asundependable)로 여기게 되었다.

 

 

핰코뎀림 민니 카라흐 알레모 이트알렘 솰레그

 

개역개정,16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추어질지라도 
새번역,16 얼음이 녹으면 흙탕물이 흐르고, 눈이 녹으면 물이 넘쳐흐르다가도,
우리말성경,16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시커멓게 되고 물속에서 눈이 녹아 넘치게 흘러도 
가톨릭성경,16 그 물은 얼음 조각으로 더럽혀져 있고 그 위로 눈이 내리며 자취를 감춘다네. 
영어NIV,16 when darkened by thawing ice and swollen with melting snow,
영어NASB,16 Which are turbid because of ice, And into which the snow melts.
영어MSG,16  From melting ice and snow cascading out of the mountains,
영어NRSV,16 that run dark with ice, turbid with melting snow.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οιτινες με διευλαβουντο νυν επιπεπτωκασιν μοι ωσπερ χιων η κρυσταλλος πεπηγως
라틴어Vulgate,16 qui timent pruinam inruet super eos nix
히브리어구약BHS,16 הַקֹּדְרִים מִנִּי־קָרַח עָלֵימֹו יִתְעַלֶּם־שָׁלֶג׃

 

성 경: [욥6:16,17]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절에서는 15절에서 토로된 친구에 대한 욥의 책망이 더 신랄해진다. 일반적으로 팔레스틴 고지대, 특히 길르앗(Gilead)이나 바산(Bashan)지역에는 겨우내 눈이 내린다. 기온이 더 하강하면 산의 협곡의 물들이 얼게 되며, 종종 그 얼음 위에 또다시 눈이 내려 겹겹으로 얼게 되기도 한다(16b절). 그런데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이들의 녹아 흘러내리게 되는데 대개 이때에는 주변의 흙과 먼지, 얼음 조각, 자갈, 암석, 잡초덩이 등이 함께 휩쓸려 내려온다. 따라서 자연히 그 물빛은 검은 색을 띠게 된다(1 6a절). 여러 지류(支流)가 합쳐진 본류(本流)에서 그 물은 넘쳐 흐르게 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양은 급격히 줄어들며 정작 물이 절실히 필요한 여름철에는 아예 강바닥이 마른다(17절). 욥의 친구들도 그가 절실히 필요했던 때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존재들이었다. 한편 본절의 내용을 기초로 볼 때 욥의 고향은 레바논 인근 지역이었을 것이다.

 

 

베에트 예조레부 니츠마투 베훔모 니드아쿠 밈메코맘 

개역개정,17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새번역,17 날이 더워지면 쉬 마르고, 날이 뜨거워지면 흔적조차 없어지고 마는 개울.
우리말성경,17 날이 따뜻해지면 물이 없어지고 더워지면 그 자리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구나. 
가톨릭성경,17 그러다가 더운 철이 오면 물은 없어지고 날이 뜨거워지면 그 자리에서 스러져 버리지. 
영어NIV,17 but that cease to flow in the dry season, and in the heat vanish from their channels.
영어NASB,17 "When they become waterless, they are silent, When it is hot, they vanish from their place.
영어MSG,17  But by midsummer they're dry, gullies baked dry in the sun.
영어NRSV,17 In time of heat they disappear; when it is hot, they vanish from their plac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θως τακεισα θερμης γενομενης ουκ επεγνωσθη οπερ ην
라틴어Vulgate,17 tempore quo fuerint dissipati peribunt et ut incaluerit solventur de loco suo
히브리어구약BHS,17 בְּעֵת יְזֹרְבוּ נִצְמָתוּ בְּחֻמֹּו נִדְעֲכוּ מִמְּקֹוםָם׃

 

 

일라페투 오르호트 다르캄 야아루 밭토후 웨요베두 

 

 

개역개정,18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새번역,18 물이 줄기를 따라서 굽이쳐 흐르다가도, 메마른 땅에 이르면 곧 끊어지고 마는 개울.
우리말성경,18 물길에서 벗어나면 갈 곳 없어 사라지는구나. 
가톨릭성경,18 대상들이 제 길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섰다가 사라져 버린다네. 
영어NIV,18 Caravans turn aside from their routes; they go up into the wasteland and perish.
영어NASB,18 "The paths of their course wind along, They go up into nothing and perish.
영어MSG,18  Travelers who spot them and go out of their way for a drink, end up in a waterless gulch and die of thirst.
영어NRSV,18 The caravans turn aside from their course; they go up into the waste, and perish.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ουτως καγω κατελειφθην υπο παντων απωλομην δε και εξοικος εγενομην
라틴어Vulgate,18 involutae sunt semitae gressuum eorum ambulabunt in vacuum et peribunt
히브리어구약BHS,18 יִלָּפְתוּ אָרְחֹות דַּרְכָּם יַעֲלוּ בַתֹּהוּ וְיֹאבֵדוּ׃



성 경: [욥6:18]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은 그 주어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1) 와디(wadi)의 수로(水路)로 볼 경우 : 와디의 수로는 그 발원지(發源地)에서는 넓고 크며, 또 거의 한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하류로 내려올수록 그것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支流)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흐르게 된다. 따라서 자연히 그 물의 양이 격감하게 되며 어떤 것은 사막으로 흘러들어 수로의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본문은 이것을 `광야로가서 죽고'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법은 델리취(Delitzsch), 데이빗슨(A. B.Davidson), 부드(K. Budde), 히찌히(F. Hitzig)등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떼를 지은 객'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아르호트'(*)가 19절에서도 `떼'(대상)를 분명히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해석은 무리가 따른다. (2) 떼를 지은 객(NIV, Caravans)을 주어로 볼 경우 : 일반적으로 여행객, 특히 장거리 여행자들은 수통(水桶)을 준비하여 그곳에 물을 채운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더욱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도중 그 수통에 물이 떨어지면 그들은 시냇가를 찾는다. 이때 만약 시냇가가 말라 있으면(17절) 그들은 물을 찾아 상류로 이동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수원지(水源池)인 협곡이나 산지까지 다다르게 된다(Driver & Gray). 그래도 찾지 못하면 그들은 광야로 나와 방황하다가 결국 갈증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이 같은 해석은 쉴로트만(Schlottman), 히르첼(Hirzel), 에발트(Ewald), 랑게(Lange)등에 의해 주장되며 본장의 전후 문맥상 타당하다. 욥은 자신의 고난의 해결책을 찾아 방황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비애감만을 맛본 자신의 심경을 물을 찾는 여행자에 비유하고 있다.

 

 

힙비투 오르호트 테마 할리코트 쉐바 키우 라모 

 

개역개정,19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새번역,19 데마의 대상들도 물을 찾으려 했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 개울에 희망을 걸었지만,
우리말성경,19 데마의 대상들이 그 물을 찾고 스바의 상인들도 기다렸다. 
가톨릭성경,19 테마의 대상들이 살피고 스바의 상인들이 고대하건만 
영어NIV,19 The caravans of Tema look for water, the traveling merchants of Sheba look in hope.
영어NASB,19 "The caravans of Tema looked, The travelers of Sheba hoped for them.
영어MSG,19  Merchant caravans from Tema see them and expect water, tourists from Sheba hope for a cool drink.
영어NRSV,19 The caravans of Tema look, the travelers of Sheba hope.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ιδετε οδους θαιμανων ατραπους σαβων οι διορωντες
라틴어Vulgate,19 considerate semitas Theman itinera Saba et expectate paulisper
히브리어구약BHS,19 הִבִּיטוּ אָרְחֹות תֵּמָא הֲלִיכֹת שְׁבָא קִוּוּ־לָמֹו׃



성 경: [욥6:19]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데마 - 이스마엘의 후손으로서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창 25:15). 그리고 이들의 거주지는 에돔 근방의 아라비아 지역으로 알려진다(사 21:4; 렘 25:23) 따라서 본문의 `떼'라는 말은 `대상' (隊商, RSV, NIV, caravans)을 가리키는 것으로보아야 한다.

 

 

보슈 키 바타흐 바우 아데하 와예흐파루 

 

개역개정,20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새번역,20 그들이 거기에 이르러서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 개울에 물이 흐를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하였다.
우리말성경,20 그들이 바랐기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고 거기에 가서는 실망뿐이었던 것일세. 
가톨릭성경,20 그들은 믿었기 때문에 좌절하고 개울까지 갔다가 낙담한다네. 
영어NIV,20 They are distressed, because they had been confident; they arrive there, only to be disappointed.
영어NASB,20 "They were disappointed for they had trusted, They came there and were confounded.
영어MSG,20  They arrive so confident--but what a disappointment! They get there, and their faces fall!
영어NRSV,20 They are disappointed because they were confident; they come there and are confounde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και αισχυνην οφειλησουσιν οι επι πολεσιν και χρημασιν πεποιθοτες
라틴어Vulgate,20 confusi sunt quia speravi venerunt quoque usque ad me et pudore cooperti sunt
히브리어구약BHS,20 בֹּשׁוּ כִּי־בָטָח בָּאוּ עָדֶיהָ וַיֶּחְפָּרוּ׃



성 경: [욥6:20]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자들이 시냇물을 찾았으나 그것이 메말라 있음을 발견한 직후의 허망한 심정을 묘사함으로써 현재 욥의 심경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즉, 그들은 사막의 폭염(暴炎)아래서 갈증에 허덕이다 먼 발치에서 시내가 있음을 발견한다. 기뻐 뛰어가지만 그물이 메말라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은 깊은 절망감과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으나 다가가 보자 그것이 신기루였음을 알아챈 직후의 심경에 비견된다 하겠다. 따라서 본문은 고난에 빠진 욥이 친구들로부터 인말의 도움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냉담한 질책만 당한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시 6:1).

 

 

키 앝타 헤이템 로 로 티레우 하타트 와티라우

 

개역개정,21 이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새번역,21 너희가 이 개울과 무엇이 다르냐? 너희도 내 몰골을 보고서, 두려워서 떨고 있지 않느냐?
우리말성경,21 이제 자네들도 아무 도움이 안 되네. 내가 무너진 것을 보고는 더럭 겁이 나나 보네. 
가톨릭성경,21 자, 이렇듯 자네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네. 무서운 모습을 보더니 두려워 떠는구려. 
영어NIV,21 Now you too have proved to be of no help; you see something dreadful and are afraid.
영어NASB,21 "Indeed, you have now become such, You see a terror and are afraid.
영어MSG,21  And you, my so-called friends, are no better-- there's nothing to you! One look at a hard scene and you shrink in fear.
영어NRSV,21 Such you have now become to me; you see my calamity, and are afraid.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αταρ δε και υμεις επεβητε μοι ανελεημονως ωστε ιδοντες το εμον τραυμα φοβηθητε
라틴어Vulgate,21 nunc venistis et modo videntes plagam meam timetis
히브리어구약BHS,21 כִּי־עַתָּה הֱיִיתֶם [כ= לֹא] [ק= לֹו] תִּרְאוּ חֲתַת וַתִּירָאוּ׃

 

성 경: [욥6:21]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 여기서 욥은 자신을 위로하려 온 친구들의 이기적인 성향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즉, 그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을 동정하려는 진정 어린 충정심(衷情心)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욥의 고난에 동참하는 행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2:12, 13). 그러나 욥에게 내려진 재앙의 참혹함과 그것이 조만간 회복되어질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두려워하며 넌지시 발뺌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욥의 재앙을 하나님의 형벌로 생각했을 것이다. 즉 욥은죄인이요, 그 죄값으로 지금의 재앙을 겪고 있는 것으로 그들은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본래의 태도에서(2:12, 13) 후퇴하여 욥에게 온후한 사랑과 동정의 행동( 말)을 나타내 주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죄인(욥)과 연합했다는 이유로 그들 자신들도 형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들의 신앙은 구약 초기의 `동태(同態)보복법'(talion)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출21:23-25; 레 24:17-21; 신 19:21). 그러나 14절에서 욥이 밝힌 것처럼 그 친구들이보여야 할 의당한 행위는 고난에 처한 자, 심지어 욥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었다는 할지라도 그에게 온정과 위로를 보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의인뿐 아니라 창가와 세리 등을 사랑하시고(마 9:10; 21:31), 눌린 자에게 위로를 주심으로(눅 4:18 ; 행10:38) 이러한 모범을 몸소 보이셨다.

 

 

하키 아말티 하부 리 우밐코하켐 쉬하두 바아디 

 

개역개정,22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새번역,22 내가 너희더러 이거 내놓아라 저거 내놓아라 한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재산을 떼어서라도, 내 목숨 살려 달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우리말성경,22 내가 언제 ‘무엇을 좀 달라. 네 재산에서 얼마를 떼어 달라. 
가톨릭성경,22 내가 이렇게 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 내게 좀 주게나. 나를 위해 자네들 재산에서 좀 갚아 주게나. 
영어NIV,22 Have I ever said, 'Give something on my behalf, pay a ransom for me from your wealth,
영어NASB,22 "Have I said, 'Give me something,' Or, 'Offer a bribe for me from your wealth,'
영어MSG,22  It's not as though I asked you for anything-- I didn't ask you for one red cent--
영어NRSV,22 Have I said, 'Make me a gift'? Or, 'From your wealth offer a bribe for me'?
헬라어구약Septuagint,22 τι γαρ μη τι υμας ητησα η της παρ' υμων ισχυος επιδεομαι
라틴어Vulgate,22 numquid dixi adferte mihi et de substantia vestra donate mihi
히브리어구약BHS,22 הֲכִי־אָמַרְתִּי הָבוּ לִי וּמִכֹּחֲכֶם שִׁחֲדוּ בַעֲדִי׃



성 경: [욥6:22,23]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친구를 질책하는 욥]

본문에 나타난 4가지 질문을 통해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기대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예물이나 용맹스런 행위(23절)가 아니라 14절에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듯, 진퇴양난의 고통 중에 처한 욥에 대한 사랑(*, 헤세드)이었다. 한편 23절에 나타난 `대적', `포악한 자'는 욥의 소유물을 약탈하고 종들을 죽인 스바인(1:15)과 갈대아인(1:17)으로 볼 수도 있다.

 

 

우말레투니 미야드 차르 우미야드 아리침 티프두니 

개역개정,23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새번역,23 아니면,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져 달라고 하길 했느냐, 폭군의 세력으로부터 나를 속량해 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했느냐?
우리말성경,23 적의 손에서 나를 구해 달라. 극악무도한 자의 손아귀에서 돈 주고 나를 빼 달라’고 하던가? 
가톨릭성경,23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해 주고 난폭한 자들의 손에서 나를 빼내 주게!" 하고 말일세. 
영어NIV,23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e enemy, ransom me from the clutches of the ruthless'?
영어NASB,23 Or,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e adversary,' Or, 'Redeem me from the hand of the tyrants'?
영어MSG,23  Nor did I beg you to go out on a limb for me. So why all this dodging and shuffling?
영어NRSV,23 Or, 'Save me from an opponent's hand'? Or, 'Ransom me from the hand of oppressors'?
헬라어구약Septuagint,23 ωστε σωσαι με εξ εχθρων η εκ χειρος δυναστων ρυσασθαι με
라틴어Vulgate,23 vel liberate me de manu hostis et de manu robustorum eruite me
히브리어구약BHS,23 וּמַלְּטוּנִי מִיַּד־צָר וּמִיַּד עָרִיצִים תִּפְדּוּנִי׃

 

 

호루니 와아니 아하리쉬 우마 솨기티 하비누 리

 

개역개정,24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새번역,24 어디, 알아듣게 말 좀 해 보아라. 내가 귀기울여 듣겠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우리말성경,24 나를 가르쳐 보시게나. 내가 입 다물고 있겠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가르쳐 보란 말이네. 
가톨릭성경,24 나를 가르쳐 보게나, 내가 입을 다물겠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깨우쳐 보게나. 
영어NIV,24 "Teach me, and I will be quiet; show me where I have been wrong.
영어NASB,24 "Teach me, and I will be silent; And show me how I have erred.
영어MSG,24  "Confront me with the truth and I'll shut up, show me where I've gone off the track.
영어NRSV,24 "Teach me, and I will be silent; make me understand how I have gone wrong.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διδαξατε με εγω δε κωφευσω ει τι πεπλανημαι φρασατε μοι
라틴어Vulgate,24 docete me et ego tacebo et si quid forte ignoravi instruite me
히브리어구약BHS,24 הֹורוּנִי וַאֲנִי אַחֲרִישׁ וּמַה־שָּׁגִיתִי הָבִינוּ לִי׃



성 경: [욥6:24]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지금까지 욥은 직유법과 반어법을 사용하여 그의 친구들의 무정(無情)한 행위를 비난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같은 문학적 기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질책을 가한다. 따라서 본문의 전체적 분위기는 다분히 공격적이며 격앙(激昻)되어 있다. 즉, 욥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지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이 말 속에는 (1) 은연중 자신을 죄인의 동류(同流)로 취급한 엘리바스에 대한 강한 불쾌감과, (2) 자신은 그러한 비난을 받을 만한 범죄를 결코 자행하지 않았다는, 소위 자기 의에 대한 항변(10절, 29절), 그리고 (3) 만일 엘리바스가 욥의 범죄를 확신하고 있다면 암시적으로 언급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마 니므레추 이메레 요쉐르 우마 요키아흐 호케아흐 미켐

 

개역개정,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새번역,25 바른 말은 힘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희는 정말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
우리말성경,25 바른 말은 실로 힘이 있는 법이지. 그러나 자네들은 도대체 뭘 나무라고 싶은 건가? 
가톨릭성경,25 바른말이 어떻게 속을 상하게 할 수 있나? 자네들은 무엇을 탓하고 있나? 
영어NIV,25 How painful are honest words! But what do your arguments prove?
영어NASB,25 "How painful are honest words! But what does your argument prove?
영어MSG,25  Honest words never hurt anyone, but what's the point of all this pious bluster?
영어NRSV,25 How forceful are honest words! But your reproof, what does it reprove?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αλλ' ως εοικεν φαυλα αληθινου ρηματα ου γαρ παρ' υμων ισχυν αιτουμαι
라틴어Vulgate,25 quare detraxistis sermonibus veritatis cum e vobis nullus sit qui possit arguere
히브리어구약BHS,25 מַה־נִּמְרְצוּ אִמְרֵי־יֹשֶׁר וּמַה־יֹּוכִיחַ הֹוכֵחַ םִכֶּם׃



성 경: [욥6:25]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정직한 말은 어찌 그리 힘이있는지'(KJV, RSV, How forcible are right words)이다. 그런데 NIV 와 포우프(M.H. Pope)는 `정직한 말은 어찌 그리 고역(비탄)스러운지'(NIV, How painful are honest words)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 원어상 이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하다. 왜냐하면 개역 성경에서 `유력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라츠'(*)가 `힘있는', `효과적인', `설득력있는', `기분좋은'등의 뜻을 가질 뿐 아니라(시 119;103), `비탄에 젖은', `고역스러운'등의 뜻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왕상 2:8; 렘 14:17 등).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의 뜻은 변함이 없다. 즉 욥은 엘리바스의 변론이 부정직하며, 따라서 그 자신은 그 변론에 순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할르호카흐 밀림 타흐쇼부 우레루아흐 이메레 노아쉬 

 

개역개정,26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새번역,26 너희는 남의 말 꼬투리나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이란, 바람과 같을 뿐이 아니냐?
우리말성경,26 자네들이 말을 책잡으려는 것 같은데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은 그저 바람 같은 것 아닌가? 
가톨릭성경,26 자네들은 남의 말을 탓할 생각만 하는가? 절망에 빠진 이의 이야기는 바람에 날려도 좋단 말인가? 
영어NIV,26 Do you mean to correct what I say, and treat the words of a despairing man as wind?
영어NASB,26 "Do you intend to reprove my words, When the words of one in despair belong to the wind?
영어MSG,26  You pretend to tell me what's wrong with my life, but treat my words of anguish as so much hot air.
영어NRSV,26 Do you think that you can reprove words, as if the speech of the desperate were wind?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ουδε ο ελεγχος υμων ρημασιν με παυσει ουδε γαρ υμων φθεγμα ρηματος ανεξομαι
라틴어Vulgate,26 ad increpandum tantum eloquia concinnatis et in ventum verba profertis
히브리어구약BHS,26 הַלְהֹוכַח מִלִּים תַּחְשֹׁבוּ וּלְרוּחַ אִמְרֵי נֹאָשׁ׃



성 경: [욥6:26]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1) 욥의 자기 변호 : 일반적으로 격심한 고난에 처한 자는 이성과 논리를 떠나 자기 감정을 무자비하게 토해낸다. 마치 그것은 바람처럼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일 수 있다. 3장에 나타난 욥의 변론 역시 이러한 성향이 없지 않다. 즉, 그는 가중되는 고난의 압박감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의혹에 못이겨 가히 이성적으로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일들을 소원하는 말을 토해내었던 바, 이러한 것은 그의 고난의 와중에서 나온 것이므로 결코 이성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고난으로 모든 소망이 상실된 상태에서 발설된 욥의 말을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은아무 필요도, 소용도 없다는 의미이다. (2) 친구들에 대한 비난 : 욥은 고난 중에 발설된 자신의 말이 그 친구들에 의해 정당히 받아들여 평가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것을 마치 지나가는 바람처럼 별 가치없이 받아들였다. 아마 욥은 자신의 정황과 내적 고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주어진 자기 변증적인 엘리바스의 변론 속에서 이러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자신의 말을 사려깊고 분별력있게 받아주지 못한 그의 친구들에 대한 욥의 실망과 질책의 뜻이다. 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너는 절망한 자의 말을 바람처럼 취급하려는가?'(NIV, KJV, RS V,Do you treat the words of a despairing man as wind?)로 번역함으로써 이 같은 해석을 지지한다.

 

 

아프 알 야톰 타피루 웨티크루 알 레아켐 

 

개역개정,27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새번역,27 너희는, 고아라도 제비를 뽑아 노예로 넘기고, 이익을 챙길 일이라면 친구라도 서슴지 않고 팔아 넘길 자들이다.
우리말성경,27 자네들은 고아를 놓고 제비뽑기하고 친구들조차 팔아넘기겠군. 
가톨릭성경,27 자네들은 심지어 고아를 놓고서 제비를 뽑고 친구를 놓고서 흥정하는구려. 
영어NIV,27 You would even cast lots for the fatherless and barter away your friend.
영어NASB,27 "You would even cast lots for the orphans, And barter over your friend.
영어MSG,27  Are people mere things to you? Are friends just items of profit and loss?
영어NRSV,27 You would even cast lots over the orphan, and bargain over your friend.
헬라어구약Septuagint,27 πλην οτι επ' ορφανω επιπιπτετε εναλλεσθε δε επι φιλω υμων
라틴어Vulgate,27 super pupillum inruitis et subvertere nitimini amicum vestrum
히브리어구약BHS,27 אַף־עַל־יָתֹום תַּפִּילוּ וְתִכְרוּ עַל־רֵיעֲכֶם׃



성 경: [욥6:27]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고아를 제비뽑으며 - 앞에서 친구들의 부정직과 이기심을 비난(21, 25절)한 욥은 여기서 그들의 무자비함을 책망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 관습에 비추어 볼 때 고아와 과부는 사회의 최하류 계층으로서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었다(출 22:22; 신 14:29; 16:14; 27:19; 사 1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악한 자들은 채무 능력이 없는 과부의 자녀(개역 성경은 이것을 `고아'로 번역하고 있으나 원어상 `아버지가 없는 자'가정확함)를 놓고 제비뽑기를 하였다. 즉, 돈을 지불받지 못한 데 대한 대가로 과부의자녀들을 제비뽑아 노예로 삼거나 노예 시장에 팔았다(왕하 4:1; 느 5:5; 욜 3:3; 욥1절; 나 3:10). 이러한 무자비한 행위를 예로 들어서 욥은 친구들의 동정없음을 질책한다.

󰃨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번역된다. (1) KJV의번역 : `너희 벗을 위해 구덩이를 팔 자로구나'(ye dig a pit for your friend). 이들은 개역 성경에서 `매매하다'로 번역된 히브리 동사 `카라'(*)를 `파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 원문에 나타나지 않는 `솨하트'(*, 구덩이)를 보충하고 있다. 전후 문맥상 충분히 이 같은 번역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요셉의 예에서 보듯(창 37:24, 28) 고대인들은 자신의 대적자를 처치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를버렸기 때문이다. (2) NIV, LB, ICC(Driver & Gray), 공동 번역, 랑게(Lange)번역 :이들은 개역 성경의 번역과 비슷하게 `너희의 친구들을 팔아넘길 자들이로다'(barteraway your friend)로 옮긴다. 절친한 친구를 상품으로 팔아넘긴다는 이러한 표현속에서 이미 욥과 그의 친구들간의 불신과 갈등의 벽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감지할 수있다.

 

 

웨앝타 호일루 페누 비 웨알 페네켐 임 아캊제브 

 

개역개정,28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새번역,28 내 얼굴 좀 보아라. 내가 얼굴을 맞대고 거짓말이야 하겠느냐?
우리말성경,28 그러니 자네들은 조용히 하고 나를 잘 보게나. 내가 자네들의 얼굴에 대고 거짓말이라도 하겠는가? 
가톨릭성경,28 자, 이제 제발 나를 좀 돌아보게나. 자네들 얼굴에 대고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겠네. 
영어NIV,28 "But now be so kind as to look at me. Would I lie to your face?
영어NASB,28 "And now please look at me, And see if I lie to your face.
영어MSG,28  "Look me in the eyes! Do you think I'd lie to your face?
영어NRSV,28 "But now, be pleased to look at me; for I will not lie to your face.
헬라어구약Septuagint,28 νυνι δε εισβλεψας εις προσωπα υμων ου ψευσομαι
라틴어Vulgate,28 verumtamen quod coepistis explete praebete aurem et videte an mentiar
히브리어구약BHS,28 וְעַתָּה הֹואִילוּ פְנוּ־בִי וְעַל־פְּנֵיכֶם אִם־אֲכַזֵּב׃



성 경: [욥6:28]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이제 너희가...원하노라 - 이 구절 앞에 반대 접속사인 `그러나'(NIV, RSV, But)를 첨가하면 뜻이 더욱 잘 살아난다. 지금까지의 경직된 질책의 어투가 변하여 온화한 간청조로 전환됨을 알 수 있다.

 

 

슈부 나 알 테히 아웰라 웨슈비 웨슈부 오드 치드키 바흐 

 

개역개정,29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새번역,29 너희는 잘 생각해 보아라.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더 돌이켜라. 내 정직이 의심받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말성경,29 부탁하는데 잘 돌아보고 불의한 일을 하지 말도록 하게나. 내 의가 아직 여기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나. 
가톨릭성경,29 생각을 돌리게나. 불의가 있어서는 안 되지! 생각을 돌리게. 나는 아직도 정당하다네. 
영어NIV,29 Relent, do not be unjust; reconsider, for my integrity is at stake.
영어NASB,29 "Desist now, let there be no injustice; Even desist, my righteousness is yet in it.
영어MSG,29  Think it over--no double-talk! Think carefully--my integrity is on the line!
영어NRSV,29 Turn, I pray, let no wrong be done. Turn now, my vindication is at stake.
헬라어구약Septuagint,29 καθισατε δη και μη ειη αδικον και παλιν τω δικαιω συνερχεσθε
라틴어Vulgate,29 respondete obsecro absque contentione et loquentes id quod iustum est iudicate
히브리어구약BHS,29 שֻׁבוּ־נָא אַל־תְּהִי עַוְלָה [כ= וְשֻׁבִי] [ק= וְשׁוּבוּ*] עֹוד צִדְקִי־בָהּ׃



성 경: [욥6:29]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너희는 돌이키라 - 이 말 속에는 두가지 요청이 함축되어 있다. (1) 나를 죄인으로 가정하는 일을 즉시 중단하라. (2) 나의 입장에서 보라. 욥의 현재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채 주어진 친구들의 변론은 욥의 감정만 자극시켰다. 따라서 욥은 여기서 그들에게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하여 욥 자신의 위치에 서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예쉬 빌르쇼니 아웰라 임 힠키 로 야빈 하우오트

 

개역개정,30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새번역,30 내가 혀를 놀려서, 옳지 않은 말을 한 일이라도 있느냐? 내가 입을 벌려서, 분별없이 떠든 일이라도 있느냐?
우리말성경,30 내 혀에 불의가 있던가? 내 입이 악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겠는가?” 
가톨릭성경,30 내 입술에 불의가 묻어 있다는 말인가? 내 입속이 파멸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인가? 
영어NIV,30 Is there any wickedness on my lips? Can my mouth not discern malice?
영어NASB,30 "Is there injustice on my tongue? Cannot my palate discern calamities?
영어MSG,30  Can you detect anything false in what I say? Don't you trust me to discern good from evil?
영어NRSV,30 Is there any wrong on my tongue? Cannot my taste discern calamity?
헬라어구약Septuagint,30 ου γαρ εστιν εν γλωσση μου αδικον η ο λαρυγξ μου ουχι συνεσιν μελετα
라틴어Vulgate,30 et non invenietis in lingua mea iniquitatem nec in faucibus meis stultitia personabit
히브리어구약BHS,30 הֲיֵשׁ־בִּלְשֹׁונִי עַוְלָה אִם־חִכִּי לֹא־יָבִין הַוֹּות׃

 

성 경: [욥6:30]

주제1: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1)]

주제2: [권면의 헛점을 지적하는 욥]

󰃨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 여기서 다시 한번 욥은 지금까지 한 말 속에 잘못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3절 주석 참조).

󰃨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 `궤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본절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해석된다. (1) `재난'(RSV, calamity)으로 볼 경우 : 이는 욥이 자신에게 임한 재난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욥의 재난의 성격을 규명함에 있어서 욥의 친구들은 은연중 그것을 욥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보았다. 그러나 적어도 욥은 그 재난이 자신의 범죄에서 기인하지 않은 것만은 확신하고 있다. 요컨대 욥은 자신이 재난을 받을 만한 인물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과 이해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궤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와'(*)가 2절; 30:13에서 `재앙'으로 번역되어있음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한 시도이다(Schlottmann, Dillmann). (2) `악'(KJV,perverse things ; NIV, malice)으로 볼 경우 : 이는 욥이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자신은 아직까지 도덕적. 지적 능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문제가 논란이 될 때 그것을 충분히 분별할 수 있다는뜻이다(12:2, 3). 위의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것을 취하든간에 본문은 공히 욥의 도덕적 판단 능력(또는 이해력)에 대한 자기 변호의 뜻을 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