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EBREW BIBLE

히브리어 욥기 5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케라 나 하예쉬 오네카 웨엘 미 밐케도쉼 티페네

 

개역개정,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새번역,1 어서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하는 이가 있겠느냐? 하늘에 있는 거룩한 이들 가운데서, 그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겠느냐?
우리말성경,1 “자네에게 대답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불러 보게. 거룩한 이들 가운데 누가 자네를 돌아보겠나? 
가톨릭성경,1 자, 불러 보게나. 자네에게 대답할 이 누가 있는지? 거룩한 이들 가운데 누구에게 하소연하려나? 
영어NIV,1 "Call if you will, but who will answer you? To which of the holy ones will you turn?
영어NASB,1 "Call now, is there anyone who will answer you? And to which of the holy ones will you turn?
영어MSG,1  "Call for help, Job, if you think anyone will answer! To which of the holy angels will you turn?
영어NRSV,1 "Call now; is there anyone who will answer you? To which of the holy ones will you turn?
헬라어구약Septuagint,1 επικαλεσαι δε ει τις σοι υπακουσεται η ει τινα αγγελων αγιων οψη
라틴어Vulgate,1 voca ergo si est qui tibi respondeat et ad aliquem sanctorum convertere
히브리어구약BHS,1 קְרָא־נָא הֲיֵשׁ עֹונֶךָּ וְאֶל־מִי מִקְּדֹשִׁימ* תִּפְנֶה׃



성 경: [욥5:1]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미련한 자가 당하는 멸망]

󰃨 거룩한 자 - 본서 서두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아들'(1:6;2:1), 곧 '천사'(angel)를 가리킨다(15:15;시 89:5,7 ;단 4:13,17,23:8:13;슥 14:5). 그러나 KJV는 '성인들'(thesaints), LB는 '그들의 신들'(their gods)로 각각 옮기고 있다. 여기서 LB의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번역을 따를 경우 욥 또는 엘리바스가 이방의 다신교적 관념(the conception of poly theism)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 욥이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줄 대상으로 이방 신을 찾고 있다고 은연 중 엘리바스가 힐책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한 히브리적 유일신론을 소지한 욥이 실제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엘리바스 또한 욥과 동일한 믿음을 소유했던 고로 욥에게 그 같은 일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키 레에윌 야하로그 카아스 우포테 타미트 키느아 

 

개역개정,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새번역,2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
우리말성경,2 분노는 어리석은 사람을 죽이고 질투는 바보 같은 사람을 죽인단 말이지. 
가톨릭성경,2 정녕 미련한 자는 역정 내다가 죽고 우둔한 자는 흥분하다가 숨진다네. 
영어NIV,2 Resentment kills a fool, and envy slays the simple.
영어NASB,2 "For vexation slays the foolish man, And anger kills the simple.
영어MSG,2  The hot temper of a fool eventually kills him, the jealous anger of a simpleton does her in.
영어NRSV,2 Surely vexation kills the fool, and jealousy slays the simple.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γαρ αφρονα αναιρει οργη πεπλανημενον δε θανατοι ζηλος
라틴어Vulgate,2 vere stultum interficit iracundia et parvulum occidit invidia
히브리어구약BHS,2 כִּי־לֶאֱוִיל יַהֲרָג־כָּעַשׂ וּפֹתֶה תָּמִית קִנְאָה׃



성 경: [욥5:2]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미련한 자가 당하는 멸망]

본절에서 엘리바스는 구체적으로 욥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하 전개되는(3-7절) 내용에 근거해 볼 때 본문은 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문 전체는 욥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대해 분노와 시기를 터뜨렸으며, 이로 말미암아 결국 여느 악인과 마찬가지로 멸망하게 되리라는 내용이다. 지금껏 엘리바스는 욥을 직접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나 이 시점에 이르러 욥이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욥이 고난 중에 다소 불신앙적인 것처럼 보이는 저주와 한탄(3장)을 토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믿음을 아예 상시하지는 아니했으므로 그를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로 매도한 엘리바스의 처사는 분명 지나친 감이 있다.

 

 

아니 라이티 에윌 마쉬리쉬 와엨코브 나웨후 피트옴 

 

개역개정,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새번역,3 어리석은 사람의 뿌리가 뽑히고, 어리석은 자의 집이 순식간에 망하는 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우리말성경,3 어리석은 사람이 뿌리박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집이 갑자기 저주를 받더군. 
가톨릭성경,3 나도 미련한 자가 뿌리내리는 것을 보았네만 그의 집안은 삽시간에 뿌리가 뽑히더군. 
영어NIV,3 I myself have seen a fool taking root, but suddenly his house was cursed.
영어NASB,3 "I have seen the foolish taking root, And I cursed his abode immediately.
영어MSG,3  I've seen it myself--seen fools putting down roots, and then, suddenly, their houses are cursed.
영어NRSV,3 I have seen fools taking root, but suddenly I cursed their dwelling.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γω δε εωρακα αφρονας ριζαν βαλλοντας αλλ' ευθεως εβρωθη αυτων η διαιτα
라틴어Vulgate,3 ego vidi stultum firma radice et maledixi pulchritudini eius statim
히브리어구약BHS,3 אֲנִי־רָאִיתִי אֱוִיל מַשְׁרִישׁ וָאֶקֹּוב נָוֵהוּ פִתְאֹם׃



성 경: [욥5:3]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악인의 비참한 운명]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을 언급함으로써 2절의 논증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실례는 4:8에도 나타나는 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논증이 직접적 체험에 토대한 무오(無誤)한 진리임을 은연중 내비치고 있다.

󰃨 뿌리 박는 것 - 앞에 나오는 '미련한 자'를 '나무'(tree)로 보면 본절이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즉, 나무가 튼튼히 뿌리를 박고 무성해 가는 것처럼 종종 악인이 현세에서 번성한다는 뜻이다(LB, Those who turn from God may be successful). 이처럼 사람을 특정 사물, 특히 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히브리시가 문학에서 흔히 발견된다(8:16-22;14:7-9;15:32; 18:16;19:10; 24:20; 29:19; 시 1:3;52:8;92:12, 13;잠 12:3, 12등).

󰃨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그러나 내가 당장에 저주하였다'(KJV, but suddenly I cursed his habitation)이다. 이 번역을 따를 경우 본절전체는 (1) '내가 미련한 자(악인)의 번성을 보아왔다. 그러나 내가 그 집을 저주하였다(그래서 그 집이 멸망당하였다)'. (2) '내가 미련한 자의 번성을 보아왔다. 그러나내가 그집을 저주하였다(그래서 그 집이 멸망당하였다)'. (2)'내가 미련한 자의 번성을 보아왔다(그러나 그 집이 멸망하였다). 그래서 내가 당장 그 멸망한 집을 보고 저주를 하였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전자는 악인이 멸망을 미리 예견하고 엘리바스가 저주한 것이며, 후자는 악인이 멸망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저주인 줄 알고 엘리바스도 저주했다는 것이다. 로린슨(G. Rawlinson), 에발트(Ewald), 쉴로트만(Schlottmann)등은 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델리취(Delitzsch), 랑게(Lange), 드라이버(Driver), 그레이(Gray) 등은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 양쪽 다 일리가 있으나 전후 문맥상 후자 쪽이 보다 자연스럽다 하겠다(NIV, but suddenly his house was cursed). 한편 본절에서 시작하여 7절에서 끝나는 미련한 자의 받을 재앙과 17-2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가 받을 복이 서로 대조되어 나타난다.

 

 

이르하쿠 바나이우 미예솨 웨이다케우 밧솨아르 웨엔 마칠 

 

개역개정,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새번역,4 그런 자의 자식들은 도움을 받을 데가 없어서, 재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구해 주는 이가 없었고,
우리말성경,4 그 자식들은 무사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성문 앞에서 짓눌리고 있는데도 구해 주는 사람이 없더군. 
가톨릭성경,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리 떨어진 채 성문에서 짓밟혀도 도와줄 이 없었다네. 
영어NIV,4 His children are far from safety, crushed in court without a defender.
영어NASB,4 "His sons are far from safety, They are even oppressed in the gate, Neither is there a deliverer.
영어MSG,4  Their children out in the cold, abused and exploited, with no one to stick up for them.
영어NRSV,4 Their children are far from safety, they are crushed in the gate, and there is no one to deliver them.
헬라어구약Septuagint,4 πορρω γενοιντο οι υιοι αυτων απο σωτηριας κολαβρισθειησαν δε επι θυραις ησσονων και ουκ εσται ο εξαιρουμενος
라틴어Vulgate,4 longe fient filii eius a salute et conterentur in porta et non erit qui eruat
히브리어구약BHS,4 יִרְחֲקוּ בָנָיו מִיֶּשַׁע וְיִדַּכְּאוּ בַשַּׁעַר וְאֵין מַצִּיל׃



성 경: [욥5:4]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악인의 비참한 운명]전절(3절)

이 미련한 자(악인)에 대한 저주를 선포한 것이라면 본절에서부터 7절까지는 그가 받을 재난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본절은 가족에게 임할 재앙을 첫 번째로 묘사하고 있다.

󰃨 그 자식들은 평안한 데서 멀리 떠나고 - 우리는 이를 죄가 그 자식에게까지 미친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엘리바스는 이러한 의도를 가졌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후에 욥이 본인의 죄는 본인 스스로에게 갚아져야 한다고 반박하기 때문이다(21:19,29). 성경은 '아비의 죄가 삼사대까지' 간다(출 20:5; 신 5:9 등)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표현은 죄에 대한 강한 경계심과 경종을 주기 위해서 사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처럼 아비의 범죄가 그 자손에게 악 영향을 미쳐 그 역시 아비와 동일한 범죄를 자행하여 심판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실제로 성경은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20;13절)고 말함으로써 죄와 의에 대한 보응이 각 개인 주체에 한정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성문에서 눌리나 - '성문'은 '법정'(court)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고대 히브리인들이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적(公的) 장소의 하나인 성문에서 재판을 한 실례에 비추어 볼 때(신 25:7; 시 127:5; 사 29:21; 암 5:10)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만일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본절은 미련한 자(3절)의 자녀가 재판에서 불의한 판결을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욥 당시는 족장 시대였던 고로 성문에서 재판이 실시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실제 족장 시대를 다루고 있는 창세기에는 재판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성문'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KJV, RSV, gate). 따라서 본문은 악인의 자녀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성문(城門) 또는 대로(大路)에서 부당한 처사(공동 번역, '몰매를 맞아도')를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때 '구하는 자가 없다'는 말은 악인은 그 쌓은 죄로 인해 위경(危境)시에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 앤더슨(F.I.Anderson)은, 본절의 '성문'이 이례적으로 '광풍', '대풍'(1:19)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문'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광풍'과 철자가 똑같기 때문이다(두 단어 모두 '사아르'(*)임). 만일 이 주장을 취하게 될 경우에 본절의 '성문'은 1:19에 나오는 '대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고 본절은 대풍에 의해 그 자녀를 잃은(1:19) 욥의 재앙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절에서 욥을 은근히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로 간주하려 한 엘리바스의 의도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해석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하겠다.

 

 

아쉘 케치로 라엡 요켈 웨엘 및친님 이카헤후 웨솨아프 참밈 헬람 

 

개역개정,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새번역,5 그런 자들이 거두어들인 것은, 굶주린 사람이 먹어 치운다. 가시나무 밭에서 자란 것까지 먹어 치운다. 목마른 사람이 그의 재산을 삼켜 버린다.
우리말성경,5 그들이 추수한 것은 배고픈 사람이 먹어 치우되 가시나무에서 난 것까지도 먹고 그 재산은 목마른 사람들이 집어삼킨다네. 
가톨릭성경,5 그가 거둔 것은 배고픈 자가 먹어 치우고 심지어 가시나무 울타리 친 것조차 빼앗기며 그들의 재산은 덫이 채어 가 버렸다네. 
영어NIV,5 The hungry consume his harvest, taking it even from among thorns, and the thirsty pant after his wealth.
영어NASB,5 "His harvest the hungry devour, And take it to a place of thorns; And the schemer is eager for their wealth.
영어MSG,5  Hungry people off the street plunder their harvests, cleaning them out completely, taking thorns and all, insatiable for everything they have.
영어NRSV,5 The hungry eat their harvest, and they take it even out of the thorns; and the thirsty pant after their wealth.
헬라어구약Septuagint,5 α γαρ εκεινοι συνηγαγον δικαιοι εδονται αυτοι δε εκ κακων ουκ εξαιρετοι εσονται εκσιφωνισθειη αυτων η ισχυς
라틴어Vulgate,5 cuius messem famelicus comedet et ipsum rapiet armatus et ebibent sitientes divitias eius
히브리어구약BHS,5 אֲשֶׁר קְצִירֹו רָעֵב יֹאכֵל וְאֶל־מִצִּנִּים יִקָּחֵהוּ וְשָׁאַף צַמִּים חֵילָם׃



성 경: [욥5:5]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악인의 비참한 운명]

4절에서 악인의 가족이 받는 재앙을 묘사한 엘리바스가 본절에서는 그가 받을 재산상의 손해를 언급하고 있다. 즉, 악인은 그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획득하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또한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 아무리 공교(工巧)한 계책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잃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빼앗으며 - 족장 시대의 근동인들은 추수한 뒤 곡식단을 가시나무로 가려 보관하거나그 낱알을 왕겨로 덮어 보관하였었다. 이는 짐승이 물고 가거나 먹는 것을 방비하기 위한 목적 이외에 종종 출몰하여 식량을 약탈하는 침입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따라서 본절은 악인이 그 곡식(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하나 결국 그것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임을 나타내 준다.

󰃨 올무 - 매우 난해한 단어로서 대략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1) 침탈자:이러한 번역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는 KJV, LB, ICC, 랑게 주석, 풀핏 주석이 이 번역을 따르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뒤에 나오는 '입을 벌리느니라'는 '마셔버리다'(swallowethup)로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본절 상반부에 나오는 '주린 자'(the thirsty)='먹다'(eat up)와 본절의 '목마른 자'(the hungry)='마시다'(swalloweth up)가 자연스런 대구가 되기 때문이다. (3)'올무' 또는 올무를 만드는 사람:이러한 번역은 시리아 벌게이트(Aqulla Symmacus Syr Ug), 카알 델리취 주석(Keil & Delitzsch Commentary)등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견해는 모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올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밈'(*)이 단순히 '올가미'(18:9)를 의미할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 '도둑', '약탈자', '음모자'도 뜻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올무'는 악인의 재산을 빼앗는 침입자(약탈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결론 짓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한편 본문의 사건은 욥이 불의의 약탈자, 즉 스바 사람(1:15)과 갈대아인(1:17)에 의해 그 재산과 자녀를 잃은 사건을 연상시킨다. 아마 엘리바스는 이러한 암시적인 사건을 예로 제시하며 욥의 은밀한 죄를 추궁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키 로 예체 메아파르 아웬 우메아다마 로 이츠마흐 아말

 

 

개역개정,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새번역,6 재앙이 흙에서 일어나는 법도 없고, 고난이 땅에서 솟아나는 법도 없다.
우리말성경,6 어려움은 흙먼지에서 나는 게 아니고 고난은 땅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지. 
가톨릭성경,6 환난이 흙에서 나올 리 없고 재앙이 땅에서 솟을 리 없다네. 
영어NIV,6 For hardship does not spring from the soil, nor does trouble sprout from the ground.
영어NASB,6 "For affliction does not come from the dust, Neither does trouble sprout from the ground,
영어MSG,6  Don't blame fate when things go wrong-- trouble doesn't come from nowhere.
영어NRSV,6 For misery does not come from the earth, nor does trouble sprout from the groun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ου γαρ μη εξελθη εκ της γης κοπος ουδε εξ ορεων αναβλαστησει πονος
라틴어Vulgate,6 nihil in terra sine causa fit et de humo non orietur dolor
히브리어구약BHS,6 כִּי לֹא־יֵצֵא מֵעָפָר אָוֶן וּמֵאֲדָמָה לֹא־יִצְמַח עָמָל׃



성 경: [욥5:6,7]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고난 그 자체인 인생]

여기에서 주장하는 엘리바스의 논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고난의 원인(thecause of sufferings): 엘리바스는 인간의 고난이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인간 내부의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것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나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문제(죄성, 부패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철저히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창 3:17, 19에서 분명히 보듯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적대적인 자연 환경과 부단히 투쟁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2)고난의 범위(the extension of sufferings) :엘리바스는 7절 상반부에서 '인생은 곧 고난이다'라는 논리를 통해 고난이 모든 인간들에게 임함을 역설하고 있다. 즉, 인간 모두는 이 고난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7절 하반절의 표현 역시 인생의 고난이 변개될 수 없는 자명한 이치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엘리바스의 논리는 다분히 일반론적 측면에 기울어진 감이 농후하다. 즉, 4:17-21에서 인간의 보편적 유한성과 부패성을 주장한 그는 본문에서도 인생의 고난을 보편적 원리에 의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론은 원칙론적 측면에서 지극히 타당하다. 따라서 욥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도식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만 현실 상황(욥의 고난도 포함)을 파악하여 그것을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즉, 그는 욥(의인, 1:1;2:3)이라는 특수한 한 개인을 인생 일반(죄인)의 범주에 포함기켜 그의 고난을 정당화시키고 따라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난에 아무런 불평없이 무조건 순응하기만을 요구했던 것이다.

󰃨 불티 -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르쉬프의 아들들'(sons of Resheph)이다. 고대 가나안 신화에 의하면 르쉬프는 역병과 파괴의 신이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이것(또는 '르쉬프의 아들들')이 '불', '역병'(신 32:24; 합 3:5), '번갯불'(시 78:48)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도 '르쉬프의 아들들'로 직역하는 것보다는 '불티'(LB,flames)로 옮기는 것이 좋다(Hahn, Barnes, Delitzsch, Dillmann등), 본절은 불이 탈 때 그 재가 항상 위로 치솟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이 피할 수 없는 자명한 것임을 나타내 주는 비유이다.

 

 

키 아담 레아말 율라드 우베네 레쉐프 야그비후 우프 

개역개정,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새번역,7 인간이 고난을 타고 태어나는 것은, 불티가 위로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말성경,7 그러나 불꽃이 위로만 솟듯이 사람은 고난받기 위해 태어나는 것일세. 
가톨릭성경,7 무릇 사람이란 재앙을 위해 태어나니 불꽃이 위로 치솟는 것과 같다네. 
영어NIV,7 Yet man is born to trouble as surely as sparks fly upward.
영어NASB,7 For man is born for trouble, As sparks fly upward.
영어MSG,7  It's human! Mortals are born and bred for trouble, as certainly as sparks fly upward.
영어NRSV,7 but human beings are born to trouble just as sparks fly upward.
헬라어구약Septuagint,7 αλλα ανθρωπος γενναται κοπω νεοσσοι δε γυπος τα υψηλα πετονται
라틴어Vulgate,7 homo ad laborem nascitur et avis ad volatum
히브리어구약BHS,7 כִּי־אָדָם לְעָמָל יוּלָּד וּבְנֵי־רֶשֶׁף יַגְבִּיהוּ עוּף׃

 

 

울람 아니 에드로쉬 엘 엘 웨엘 엘로힘 아심 디브라티 

 

개역개정,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새번역,8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내 사정을 하나님께 털어놓겠다.
우리말성경,8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에게 내 사정을 맡겼을 텐데. 
가톨릭성경,8 그렇지만 나라면 하느님께 호소하고 내 일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겠네. 
영어NIV,8 "But if it were I, I would appeal to God; I would lay my cause before him.
영어NASB,8 "But as for me, I would seek God, And I would place my cause before God;
영어MSG,8  "If I were in your shoes, I'd go straight to God, I'd throw myself on the mercy of God.
영어NRSV,8 "As for me, I would seek God, and to God I would commit my cause.
헬라어구약Septuagint,8 ου μην δε αλλα εγω δεηθησομαι κυριου κυριον δε τον παντων δεσποτην επικαλεσομαι
라틴어Vulgate,8 quam ob rem ego deprecabor Dominum et ad Deum ponam eloquium meum
히브리어구약BHS,8 אוּלָם אֲנִי אֶדְרֹשׁ אֶל־אֵל וְאֶל־אֱלֹהִים אָשִׂים דִּבְרָתִי׃



성 경: [욥5:8]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본절 앞에 강한 반대 접속사인 '그러나'를 첨가시켜 '그러나 만일 내가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NIV, But if it were I...)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그러나'는 1,2절에 나타난 엘리바스의 욥에 대한 강한 질책의 태도가 어느 정도 완화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즉, 여기에서 에리바스는 지금껏 전개된 교조적(敎條的;dogmatic)태도에서 다소 물러나서 욥에게 권면을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17-27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한편 본절의 권면 속에는 욥에 대한 은근한 질책이 내포되어 있다. 즉, '자네는 쓸모없는 불평을 터뜨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네. 만일 나 같으면 그러한 일을 집어 치우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에서 보듯 엘리바스는 욥의 한탄과 변론(3장)을 무익한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도에 지나친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성 경: [욥5:9]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이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9:10;37:5;시 145:3등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바스가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소위 '신적 섭리의 불가해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굳이 볼 필요는 없다(시 40:5;72:18;77:14;136:4;롬 11:33). 다만 그는 10-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공의)를 문학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한편 본문의 동사('행하시며', '행하시나니')가 현재형으로 표현된 것(KJV, doeth; NIV,performs)은 엘리바스가 목도한 하나님의 섭리가(10-16절) 시종여일(始終如一)함을 암시해 준다.

 

 

오세 게돌로트 웨엔 헤케르 니플라오트 아드 엔 미스파르

 

개역개정,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새번역,9 그분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하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하신다.
우리말성경,9 그분은 크고도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하시고 기적을 셀 수 없이 보이시며 
가톨릭성경,9 그분은 헤아릴 수 없는 위업을, 셀 수 없는 기적을 이루시는 분. 
영어NIV,9 He performs wonders that cannot be fathomed, miracles that cannot be counted.
영어NASB,9 Who does great and unsearchable things, Wonders wiYout number.
영어MSG,9  After all, he's famous for great and unexpected acts; there's no end to his surprises.
영어NRSV,9 He does great things and unsearchable, marvelous things without number.
헬라어구약Septuagint,9 τον ποιουντα μεγαλα και ανεξιχνιαστα ενδοξα τε και εξαισια ων ουκ εστιν αριθμος
라틴어Vulgate,9 qui facit magna et inscrutabilia et mirabilia absque numero
히브리어구약BHS,9 עֹשֶׂה גְדֹלֹות וְאֵין חֵקֶר נִפְלָאֹות עַד־אֵין מִסְפָּר׃

 

 

하노텐 마탈 알 페네 아레츠 웨숄레아흐 마임 알 페네이 후초트 

 

개역개정,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새번역,10 땅에 비를 내리시며, 밭에 물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말성경,10 땅에 비를 내리시고 밭에 물을 대시며 
가톨릭성경,10 땅에 비를 내리시고 들에 물을 보내시는 분. 
영어NIV,10 He bestows rain on the earth; he sends water upon the countryside.
영어NASB,10 "He gives rain on the earth, And sends water on the fields,
영어MSG,10  He gives rain, for instance, across the wide earth, sends water to irrigate the fields.
영어NRSV,10 He gives rain on the earth and sends waters on the fields;
헬라어구약Septuagint,10 τον διδοντα υετον επι την γην αποστελλοντα υδωρ επι την υπ' ουρανον
라틴어Vulgate,10 qui dat pluviam super faciem terrae et inrigat aquis universa
히브리어구약BHS,10 הַנֹּתֵן מָטָר עַל־פְּנֵי־אָרֶץ וְשֹׁלֵחַ מַיִם עַל־פְּנֵי חוּצֹות׃



성 경: [욥5:10]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대부분 건조한 사막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방에 있어서 비는 식수(食水)로(창 24:11; 대하 26:10), 농부의 식물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창 2:5; 레 26:4),그리고 초장의 풀을 자라게 하여 육축을 기르게 하는 것(삼하 23:4)으로서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기후는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뚜렷이 구분되며, 건기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으며,우기라고 해서 다량의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창 27:28; 신 33:28). 따라서 팔레스틴인들에게 있어서 비는 간절한 희구의 대상이었다. 성경이 비를 하나님의 축복(신 28:12; 시 68:9; 겔 34:26), 또는 은총(욜 2:23;마 5:45)으로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여기서도 엘리바스는 '비'('물')를 하나님의 축복(섭리)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메마른 땅과 밭이 비를 받아 소성하듯. 인간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살아간다는뜻이다(시 104:11;147:8).

 

 

라숨 쉐팔림 레마롬 웨코데림 사게부 예솨

 

개역개정,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새번역,11 낮은 사람을 높이시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시며,
우리말성경,11 낮은 사람들을 높은 곳에 세우시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들어 올리신다네. 
가톨릭성경,11 비천한 이들을 높은 곳에 올려놓으시니 슬퍼하는 이들이 큰 행복을 얻는다네. 
영어NIV,11 The lowly he sets on high, and those who mourn are lifted to safety.
영어NASB,11 So that He sets on high those who are lowly, And those who mourn are lifted to safety.
영어MSG,11  He raises up the down-and-out, gives firm footing to those sinking in grief.
영어NRSV,11 he sets on high those who are lowly, and those who mourn are lifted to safety.
헬라어구약Septuagint,11 τον ποιουντα ταπεινους εις υψος και απολωλοτας εξεγειροντα
라틴어Vulgate,11 qui ponit humiles in sublimi et maerentes erigit sospitate
히브리어구약BHS,11 לָשׂוּם שְׁפָלִים לְמָרֹום וְקֹדְרִים שָׂגְבוּ יֶשַׁע׃



성 경: [욥5:11]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 슬퍼하는 자 - '슬퍼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르'(*)는 단순히 슬퍼하거나 애통해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말은 '재투성이가 되다', '(상심으로 얼굴 표정이) 어두운 색깔이 되다','(삼베 옷, 또는 더러운 옷을 입고) 극심히 애도하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앉아 극심한 슬픔을 나타내는 자를 가리킨다(삼하 13:19;에 4:1 등).

 

 

메페르 마흐쉐보트 아루밈 웨로 타아세나 예데헴 투쉬야 

 

개역개정,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새번역,12 간교한 사람의 계획을 꺾으시어 그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신다.
우리말성경,12 또 교활한 사람의 계략을 좌절시켜 그 손이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신다네. 
가톨릭성경,12 그분께서 교활한 자들의 계획을 꺾으시니 그들의 손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영어NIV,12 He thwarts the plans of the crafty, so that their hands achieve no success.
영어NASB,12 "He frustrates the plotting of the shrewd, So that their hands cannot attain success.
영어MSG,12  He aborts the schemes of conniving crooks, so that none of their plots come to term.
영어NRSV,12 He frustrates the devices of the crafty, so that their hands achieve no succes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διαλλασσοντα βουλας πανουργων και ου μη ποιησουσιν αι χειρες αυτων αληθες
라틴어Vulgate,12 qui dissipat cogitationes malignorum ne possint implere manus eorum quod coeperant
히브리어구약BHS,12 מֵפֵר מַחְשְׁבֹות עֲרוּמִים וְלֹא־תַעֲשֶׂינָה יְדֵיהֶם תּוּשִׁיָּה׃



성 경: [욥5:12]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 궤휼한 자 - 정직한 자를 억압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악인을 가리킨다(사32:7; 미 3:1-5).

 

 

로케드 하카밈 베오르맘 와아차트 니프탈림 니므하라

 

개역개정,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새번역,13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제 꾀에 속게 하시고, 교활한 자들의 꾀를 금방 실패로 돌아가게 하시니,
우리말성경,13 지혜로운 사람들을 자기 꾀에 빠뜨리시고 간교한 사람의 계획이 뒤틀리게 하시네. 
가톨릭성경,13 그분께서 슬기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시니 간사한 자들의 의도가 좌절된다네. 
영어NIV,13 He catches the wise in their craftiness, and the schemes of the wily are swept away.
영어NASB,13 "He captures the wise by their own shrewdness And the advice of the cunning is quickly thwarted.
영어MSG,13  He catches the know-it-alls in their conspiracies-- all that intricate intrigue swept out with the trash!
영어NRSV,13 He takes the wise in their own craftiness; and the schemes of the wily are brought to a quick end.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ο καταλαμβανων σοφους εν τη φρονησει βουλην δε πολυπλοκων εξεστησεν
라틴어Vulgate,13 qui adprehendit sapientes in astutia eorum et consilium pravorum dissipat
히브리어구약BHS,13 לֹכֵד חֲכָמִים בְּעָרְםָם וַעֲצַת נִפְתָּלִים נִמְהָרָה׃



성 경: [욥5:13]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는 말과 비슷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악인은 자신의 지혜로 어떤 일을 공교(工巧)히 도모하나 결국그 동기의 사악함으로 인해 패망하게 된다는 교훈이다(시 57:6,7; 잠 26:27;28:10).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시 9:16), '저(악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시 7:15,16),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신다'(고전 3:19) 등이 있다.

 

 

요맘 예팍게슈 호쉐크 웨칼라일라 예마쉬슈 밫초호라임 

 

개역개정,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새번역,14 대낮에도 어둠을 만날 것이고, 한낮에도 밤중처럼 더듬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4 대낮에도 그들이 어둠을 맞닥뜨리니 정오에도 밤에 하듯이 더듬고 다닌다네. 
가톨릭성경,14 그들은 낮에도 어둠에 부딪히고 한낮에도 밤중인 양 더듬거린다네. 
영어NIV,14 Darkness comes upon them in the daytime; at noon they grope as in the night.
영어NASB,14 "By day they meet with darkness, And grope at noon as in the night.
영어MSG,14  Suddenly they're disoriented, plunged into darkness; they can't see to put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영어NRSV,14 They meet with darkness in the daytime, and grope at noonday as in the night.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ημερας συναντησεται αυτοις σκοτος το δε μεσημβρινον ψηλαφησαισαν ισα νυκτι
라틴어Vulgate,14 per diem incurrent tenebras et quasi in nocte sic palpabunt in meridie
히브리어구약BHS,14 יֹוםָם יְפַגְּשׁוּ־חֹשֶׁךְ וְכַלַּיְלָה יְמַשְׁשׁוּ בַצָּהֳרָיִם׃



성 경: [욥5:14]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본절은 12, 13절에 대한 결론부라 할 수 있다. 즉, 12,13절이 악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술한 것이라면 본절은 그 심판의 결과(형국)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엘리바스는 빛의 대조(낮:밝음, 밤:어두움)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악인이 당하게 될 당혹감과 좌절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12:24,25; 신 28:29; 사19:13-25;59:10). 이렇듯 악인은 늘 불안한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잠 28:1; 사48:22;57:20) 종국에는 주의 진노로 그 존재의 근거 마저 상실되고 만다(창 11:8; 사37:27;40:23;40:23;41:11;44:25;45:16; 렘 20:11).

 

 

와이솨 메헤렙 미피헴 우미야드 하자크 에브욘 

 

개역개정,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새번역,15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의 칼날 같은 입과 억센 손아귀로부터 구출하신다.
우리말성경,15 그러나 그분은 궁핍한 사람들을 칼날과 같은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시고 힘 있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신다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그분께서는 칼에서, 저들의 입에서, 강한 자의 손에서 가난한 이를 구하신다네. 
영어NIV,15 He saves the needy from the sword in their mouth; he saves them from the clutches of the powerful.
영어NASB,15 "But He saves from the sword of their mouth, And the poor from the hand of the mighty.
영어MSG,15  But the downtrodden are saved by God, saved from the murderous plots, saved from the iron fist.
영어NRSV,15 But he saves the needy from the sword of their mouth, from the hand of the mighty.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απολοιντο δε εν πολεμω αδυνατος δε εξελθοι εκ χειρος δυναστου
라틴어Vulgate,15 porro salvum faciet a gladio oris eorum et de manu violenti pauperem
히브리어구약BHS,15 וַיֹּשַׁע מֵחֶרֶב מִפִּיהֶם וּמִיַּד חָזָק אֶבְיֹון׃



성 경: [욥5:15]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 곤비한 자 - 영역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된다. (1) '고아'(LB,RSV,the fatherless), (2) '가난한 자'(KJV,the poor; NIV,the needy), (3) '곤궁한 자'(NEB,the destitute)등이다. 그러나 맛소라 사본(MT)에는 이말이 나타나 있지 않다.

󰃨 그들의 입의 칼에서 - 이것 역시 매우 난해한 구절로서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1)'칼에서 곧 저들의 입에서부터'(KJV,from the sword, from their mouth). 즉, '칼'과 '입'을 동격으로 보는 것이다. (2) '그들의 입 안에 있는 칼에서부터'(NIV, from thesword in their mouth).즉, 본절의 후반구(句)를 전반구(句)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다(Zockler). 어떤 견해를 취하든 간에 본절 상반절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칼, 곧 그들로부터 악한 훼방(시 55:21;57:4; 59:7;64:3)과 핍박을 당하는 연약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뜻만은 확실하다(삼상 2:6-8;고전 1:27-29).

󰃨 강한 자의 손 - '그들의 입의 칼'과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보면 '압제자의 손'(LB,the grasp of these oppressors)또는 12절의 '궤휼한 자의 계교'나 13절의 '간교한 자의 궤휼','사특한 자의 계교'로 해석된다. 공동 번역도 이러한 해석을 취한다. 그러나 '강한'(powerful)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묘사하는 데 주로 쓰였다는 사실에 근거해 볼 때(출 32:11;렘32:21). 본문의 '강한 자'를 '사악한 자' 또는 '압제자'로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님으로 해석함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Anderson). 그렇다면 본절 후반부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 약한 자(의인)를 그 심판에서 제외시켜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가 된다.

 

 

와테히 랃달 티크와 웨올라타 카페차 피하 

 

개역개정,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새번역,16 그러니까, 비천한 사람은 희망을 가지지만, 불의한 사람은 스스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우리말성경,16 그렇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고 불의가 자기 입을 막는 것 아니겠나. 
가톨릭성경,16 그래서 약한 이에게 희망이 주어지고 불의는 제 입을 다물게 된다네. 
영어NIV,16 So the poor have hope, and injustice shuts its mouth.
영어NASB,16 "So the helpless has hope, And unrighteousness must shut its mouth.
영어MSG,16  And so the poor continue to hope, while injustice is bound and gagged.
영어NRSV,16 So the poor have hope, and injustice shuts its mouth.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ειη δε αδυνατω ελπις αδικου δε στομα εμφραχθειη
라틴어Vulgate,16 et erit egeno spes iniquitas autem contrahet os suum
히브리어구약BHS,16 וַתְּהִי לַדַּל תִּקְוָה וְעֹלָתָה קָפְצָה פִּיהָ׃



성 경: [욥5:16]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 가난한 자 - 히브리어 '달'(*)은 '늘어지다', '헐겁게 되다', '허약하게 되다', '흔들리다'를 뜻하는 동사 '달랄'(*)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15절에 나타난 '곤비한 자'와 동일한 의미이다(KJV, NIV, RSV, LB, the poor).

󰃨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 -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11-15절)으로 악인의 횡포와 압제가 종식되는 것을 의인법적 표현을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침탈당하는 약한 자를 구원하신다(11, 15절). 그리고 압제자와 강포자를 징계하신다(12-14절). 이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증표이다. 바로 이 같은 신적 통치 질서에 근거하여 의인은 새로운 존재의 소망을 가지게 되며, 악인은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하게 된다. 한편 본절은 '하나님의 길을 의심하는 자들은 그분의 공의가 행사되는 것을 보고 넘어지게 된다'로 해석하기도 한다(Rawlinson). 만일 이 해석을 따른다면 본절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한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간접적 비난이라하겠다.

 

 

힌네 아쉬레 에노쉬 요키헨누 엘로하 우무사르 솯다이 알 티므아스 

 

개역개정,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새번역,17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래도 복된 사람이다. 그러니 ㉠전능하신 분의 훈계를 거절하지 말아라. / ㉠히, '샤다이'
우리말성경,17 이보게,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사람은 복이 있다네. 그러니 전능하신 분의 훈계를 거절하지 말게. 
가톨릭성경,17 여보게, 하느님께서 꾸짖으시는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전능하신 분의 훈계를 물리치지 말게나. 
영어NIV,17 "Blessed is the man whom God corrects; so do not despise the discipline of the Almighty.
영어NASB,17 "Behold, how happy is the man whom God reproves, So do not despise the discipline of the Almighty.
영어MSG,17  "So, what a blessing when God steps in and corrects you! Mind you, don't despise the discipline of Almighty God!
영어NRSV,17 "How happy is the one whom God reproves; therefore do not despise the discipline of the Almighty.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μακαριος δε ανθρωπος ον ηλεγξεν ο κυριος νουθετημα δε παντοκρατορος μη απαναινου
라틴어Vulgate,17 beatus homo qui corripitur a Domino increpationem ergo Domini ne reprobes
히브리어구약BHS,17 הִנֵּה אַשְׁרֵי אֱנֹושׁ יֹוכִחֶנּוּ אֱלֹוהַּ וּמוּסַר שַׁדַּי אַל־תִּמְאָס׃



성 경: [욥5:17]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본절은 욥의 고난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보는 엘리바스의 견해가 피력된 구절이다. 즉, 그는 욥의 고난을 죄에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연단(시험)'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단을 영구적인 것이 아닌 일시적인(temporary) 것으로 생각했다. 즉 질병(18절), 환난(19절), 기근과 전쟁(20절), 비방과 조롱(21절), 멸망과 기근(22절)모두가 하나님의 연단으로서 일시적인 것이니 욥이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인내하여야 한다는 권고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본문의 내용과 형식은 잠 3:11,12과 거의 일치한다(히 12:5, 6).

 

 

키 후 야크이브 웨예흐바쉬 이므하츠 웨야도 웨야다우 티르페나

 

개역개정,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새번역,18 하나님은 찌르기도 하시지만 싸매어 주기도 하시며, 상하게도 하시지만 손수 낫게도 해주신다.
우리말성경,18 그분은 상처를 주기도 하시지만 또 싸매 주기도 하시고, 다치게도 하시지만 그 손길이 또 치료도 하신다네. 
가톨릭성경,18 그분께서는 아프게 하시지만 상처를 싸매 주시고 때리시지만 손수 치유해 주신다네. 
영어NIV,18 For he wounds, but he also binds up; he injures, but his hands also heal.
영어NASB,18 "For He inflicts pain, and gives relief; He wounds, and His hands  also heal.
영어MSG,18  True, he wounds, but he also dresses the wound; the same hand that hurts you, heals you.
영어NRSV,18 For he wounds, but he binds up; he strikes, but his hands heal.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αυτος γαρ αλγειν ποιει και παλιν αποκαθιστησιν επαισεν και αι χειρες αυτου ιασαντο
라틴어Vulgate,18 quia ipse vulnerat et medetur percutit et manus eius sanabunt
히브리어구약BHS,18 כִּי הוּא יַכְאִיב וְיֶחְבָּשׁ יִמְחַץ [כ= וְיָדֹו] [ק= וְיָדָיו] תִּרְפֶּינָה׃



성 경: [욥5:18]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에 대한 권면]

본문은 욥의 질병('피부병',2:7,8)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즉, 욥의 질병이 하나님의 징계의 일환이나 욥이 그것을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다는 것이다(신 32:39; 삼상 2:6). 한편 본문은 앞절과 뒷절이 동의(同意)대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아프게 하시다가'- '상하게 하시다가', '싸매시며'-'고치시나니'는 각각 동일한 의미이다. 이렇듯 하나님을 치료자로 그 백성을 병자(病者)로 묘사하는 것은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사 30:26; 호 6:1), 예수께서 죄인을 '병든 자', 당신을 '의원'으로 비유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막 2:17; 눅 4:23).

 

 

베쉐쉬 차로트 야칠레카 우브쉐바 로 익가 베카 라 

 

개역개정,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새번역,19 그는 여섯 가지 환난에서도 너를 구원하여 주시며, 일곱 가지 환난에서도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해주시며,
우리말성경,19 그분이 여섯 재앙에서도 자네를 구해 내시고 아니, 일곱 재앙에서도 자네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게 하실 걸세. 
가톨릭성경,19 그분께서 여섯 가지 곤경에서 자네를 건져 내시니 일곱 번째에는 악이 자네를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네. 
영어NIV,19 From six calamities he will rescue you; in seven no harm will befall you.
영어NASB,19 "From six troubles He will deliver you, Even in seven evil will not touch you.
영어MSG,19  From one disaster after another he delivers you; no matter what the calamity, the evil can't touch you--
영어NRSV,19 He will deliver you from six troubles; in seven no harm shall touch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εξακις εξ αναγκων σε εξελειται εν δε τω εβδομω ου μη αψηται σου κακον
라틴어Vulgate,19 in sex tribulationibus liberabit te et in septima non tanget te malum
히브리어구약BHS,19 בְּשֵׁשׁ צָרֹות יַצִּילֶךָּ וּבְשֶׁבַע לֹא־יִגַּע בְּךָ רָע׃



성 경: [욥5:19]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여섯 가지...일곱 가지 - 일종의 관용적 표현으로 여기서는 '모든'(all), '어떠한'(whatever)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숫자를 반복하여 그 뜻을 강조하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학('우가릿 신화')과 히브리 문학의 대표적 특징 중의 하나로 꼽힌다(창 4:24; 잠 6:16;30:15,18,29; 전 11:2;암 1:3-13; 미 5:5; 집회서25:7; 마 18:22). 한편 본절은 욥이 징계를 달게 받는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것임을 나타낸다.

 

 

베라압 파드카 밈마웨트 우베밀하마 미데 하레브

 

개역개정,20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새번역,20 기근 가운데서도 너를 굶어 죽지 않게 하시며, 전쟁이 벌어져도 너를 칼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우리말성경,20 기근 속에서도 그분은 자네를 죽음에서 구속하시고 전쟁에서도 칼의 권세로부터 자네를 구속하실 걸세. 
가톨릭성경,20 기근 때 죽음에서, 전쟁 때 칼에서 자네를 구하실 것이네. 
영어NIV,20 In famine he will ransom you from death, and in battle from the stroke of the sword.
영어NASB,20 "In famine He will redeem you from death, And in war from the power of the sword.
영어MSG,20  "In famine, he'll keep you from starving, in war, from being gutted by the sword.
영어NRSV,20 In famine he will redeem you from death, and in war from the power of the swor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εν λιμω ρυσεται σε εκ θανατου εν πολεμω δε εκ χειρος σιδηρου λυσει σε
라틴어Vulgate,20 in fame eruet te de morte et in bello de manu gladii
히브리어구약BHS,20 בְּרָעָב פָּדְךָ מִמָּוֶת וּבְמִלְחָמָה מִידֵי חָרֶב׃



성 경: [욥5:20]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기근 - 수렵과 목축과 거의 의존하던 고대 족장 시대에서 기근은 가장 큰 두려움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성경은 족장 시대의 기근의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창41:29-36). 그리고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의 가혹한 형벌의 하나로 간주한다(레 26:19,20; 신 28:22-24;왕하 8:1; 시 105:16; 사 14:30; 렘 24:10).

󰃨 전쟁 - 이것 역시 고대 근동 지역에 있어서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대부분 유목민으로 이루어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종종 무리를 지어 다른 부락을 약탈함으로 그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욥의 재산과 육축을 빼앗은 '스바인'(1:15)과 '갈대아인'(1:17)의 침입도 작은 전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고대인들이 겪었던 가장 곤혹스러운 위협에서부터 욥을 지켜 주실 것이라는 엘리바스의 권고이다.

 

 

베쇼트 라숀 테하베 웨로 티라 밋쇼드 키 야보 

 

개역개정,21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새번역,21 너는 혀의 저주를 피할 수 있어, 파멸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1 자네는 혀의 채찍에서 보호받을 것이고 멸망이 닥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걸세. 
가톨릭성경,21 자네는 혀의 채찍에서 보호를 받고 멸망이 닥친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네. 
영어NIV,21 You will be protected from the lash of the tongue, and need not fear when destruction comes.
영어NASB,21 "You will be hidden from the scourge of the tongue, Neither will you be afraid of violence when it comes.
영어MSG,21  You'll be protected from vicious gossip and live fearless through any catastrophe.
영어NRSV,21 You shall be hidden from the scourge of the tongue, and shall not fear destruction when it come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απο μαστιγος γλωσσης σε κρυψει και ου μη φοβηθης απο κακων ερχομενων
라틴어Vulgate,21 a flagello linguae absconderis et non timebis calamitatem cum venerit
히브리어구약BHS,21 בְּשֹׁוט לָשֹׁון תֵּחָבֵא וְלֹא־תִירָא מִשֹּׁד כִּי יָבֹוא׃



성 경: [욥5:21]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혀의 채찍 - '불의 혀'(tongue of fire,Gordis), '쏟아지는 저주'(공동 번역), '채찍의 혀'(Hebrew Sermon on the O.T. p. 147)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어떤 것을 취하든 간에 '중상'(LB, slander), '비방'을 의미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결국 이러한 표현은 채찍이 공중에서 휘도는 것처럼 사람의 입 안에서 날름거려 파괴적 위력을 동반하는 혀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라 하겠다(시 31:18; 렘 18:18). 이처럼 인체(人體)의 일부분을 사물로 형상화(形象化)하거나, 또는 사물의 일부분을 의인화하는 것을 히브리문학의 수사학적 기교이다(예를 들면 15절의 '입의 칼', 20절의 '칼 권세'(이를 문자적으로 옮기면 '칼의 손'이 됨)).

 

 

레쇼드 우레카판 티스하크 우메하야트 하아레츠 알 티라 

 

개역개정,22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새번역,22 약탈과 굶주림쯤은 비웃어 넘길 수 있고, 들짐승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2 자네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을 것이고 땅의 짐승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걸세. 
가톨릭성경,22 또 멸망과 굶주림을 비웃고 야수도 두렵지 않을 것이네. 
영어NIV,22 You will laugh at destruction and famine, and need not fear the beasts of the earth.
영어NASB,22 "You will laugh at violence and famine, Neither will you be afraid of wild beasts.
영어MSG,22  You'll shrug off disaster and famine, and stroll fearlessly among wild animals.
영어NRSV,22 At destruction and famine you shall laugh, and shall not fear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αδικων και ανομων καταγελαση απο δε θηριων αγριων ου μη φοβηθης
라틴어Vulgate,22 in vastitate et fame ridebis et bestiam terrae non formidabis
히브리어구약BHS,22 לְשֹׁד וּלְכָפָן תִּשְׂחָק וּמֵחַיַּת הָאָרֶץ אַל־תִּירָא׃



성 경: [욥5:22]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들짐승 - (*, 하야트 하아레츠).직역하면 땅의 짐승'(KJV,NIV,RSV,the beasts of the earth)이며 육축을 해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맹수(LB,wildanimals)를 가리킨다. 고대 팔레스틴 지역에 있어서 맹수를 매우 위험스런 존재였으며, 특히 성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적한 민가(民家)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왕하 17:25). 한편, 20-23절에 나타나는 재앙(20절-기근, 전쟁'21절-중상;22절-참화,들짐승)을 에스겔 14:21에 나타나는 재앙과 동일시 하려는 견해도 있다(Rawlinson).

 

 

키 임 아베네 핫사데 베리테카 웨하야트 핫사데 호쉴레마 라크 

 

개역개정,23 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새번역,23 너는 들에 흩어진 돌과도 계약을 맺으며, 들짐승과도 평화롭게 지내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23 자네가 밭의 돌들과 언약을 맺고 들짐승들이 자네와 잘 어울려 지낼 테니 말이네. 
가톨릭성경,23 자네는 들판의 돌멩이들과 계약을 맺고 들짐승은 자네와 화평을 이룰 것이네. 
영어NIV,23 For you will have a covenant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will be at peace with you.
영어NASB,23 "For you will be in league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beasts of the field will be at peace with you.
영어MSG,23  You'll be on good terms with rocks and mountains; wild animals will become your good friends.
영어NRSV,23 For you shall be in league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shall be at peace with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θηρες γαρ αγριοι ειρηνευσουσιν σοι
라틴어Vulgate,23 sed cum lapidibus regionum pactum tuum et bestiae terrae pacificae erunt tibi
히브리어구약BHS,23 כִּי עִם־אַבְנֵי הַשָּׂדֶה בְרִיתֶךָ וְחַיַּת הַשָּׂדֶה הָשְׁלְמָה־לָךְ׃



성 경: [욥5:23]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밭에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 본절은 '밭에 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1) '들판의 요정'(M.H. Poge), '들판의 주들'(K. Kohler), '들판의 아들들'(G.Beer) 등으로 볼 경우;즉, 본절은 하나님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않는 어둠의 영적 세력들로부터 음해(陰害)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대인들, 특히 팔레스틴인들은 땅 속에 영(地神)들이 거하며, 인간이 이들을 노하게 할 경우 흉년과 기타 재앙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2) '들판의 돌'로 볼 경우(KJV,RSV,NIV,the stones of thefield); 즉, 밭 농사가 잘되어 풍족한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표현이다(Hartley,Habel).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 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방에 있어서 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밭 곡식이 잘 성장하여 풍년을 맞는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팔레스틴지역에서는 돌 때문에 밭 곡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러한 견해 중 후자를 따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 - 본절은 앞절과 동의(同意) 대구를 이루고 있다. 특히 앞절의 '밭의 돌'이 인간의 생존에 적대적인 무생물(無生物)을 상징한다면 여기서의 '짐승'은 공히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생물(生物)을 총제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므로 본절은 인간(의인)이 맹수(생물)의 위협없이 평온하고 안온한 삶을 영위함을 의미한다. 엘리바스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당시 팔레스틴에 육축과 인명에 대한 맹수의 위협이 흔했던 사례에 연유한 것 같다(22절). 한편 본문은 인간의 타락으로 와해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새롭게 회복될 것임을 나타내는 바, 이는 메시야의 도래로 완성될 새로운 창조 질서(사 11:6-8; 호 2:18)를 시사해 준다.

 

 

웨야다타 키 솰롬 오홀레카 우파카드타 나웨카 웨로 테헤타 

 

개역개정,24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 
새번역,24 그래서 너는 집안이 두루 평안한 것을 볼 것이며, 가축 우리를 두루 살필 때마다 잃은 것이 없는 것을 볼 것이다.
우리말성경,24 자네의 장막에 아무 탈이 없을 것을 알게 되고 자네의 거처에 가더라도 죄짓지 않을 걸세. 
가톨릭성경,24 그러면 자네 천막이 평화로움을 알게 되고 자네 목장을 살펴보아도 탈이 없을 것이네. 
영어NIV,24 You will know that your tent is secure; you will take stock of your property and find nothing missing.
영어NASB,24 "And you will know that your tent is secure, For you will visit your abode and fear no loss.
영어MSG,24  You'll know that your place on earth is safe, you'll look over your goods and find nothing amiss.
영어NRSV,24 You shall know that your tent is safe, you shall inspect your fold and miss nothing.
헬라어구약Septuagint,24 ειτα γνωση οτι ειρηνευσει σου ο οικος η δε διαιτα της σκηνης σου ου μη αμαρτη
라틴어Vulgate,24 et scies quod pacem habeat tabernaculum tuum et visitans speciem tuam non peccabis
히브리어구약BHS,24 וְיָדַעְתָּ כִּי־שָׁלֹום אָהֳלֶךָ וּפָקַדְתָּ נָוְךָ וְלֹא תֶחֱטָא׃



성 경: [욥5:24]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23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장막', '우리' 등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상이 분명히 지적된 점이 다를 뿐이다.

󰃨 장막 - 오늘날의 '텐트'(RSV,tent)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는 욥이 성읍(town)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유목민(당시 유목민들은 대부분 성읍에서 떨어져 유랑하면서 육축을 했다)이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29장에서 보듯 욥은 성읍에서 유력한 현자(賢者)중의 하나였으며, 또한 농부요, 목축업자였다(1:3, 15, 17). 그러므로 '장막'은 오히려 '집'(LB, home)으로 옮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웨야다타 키 랍 잘에카 웨체에차에카 케에세브 하아레츠 

 

개역개정,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새번역,25 또 자손도 많이 늘어나서, 땅에 풀같이 많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25 자네의 자손이 많아지고 자네의 후손이 땅의 풀처럼 될 것을 자네가 알게 될 걸세. 
가톨릭성경,25 또한 알게 될 것이네, 자네 자녀들이 많음을, 자네 후손들이 땅의 풀과 같음을. 
영어NIV,25 You will know that your children will be many, and your descendants like the grass of the earth.
영어NASB,25 "You will know also that your descendants will be many, And your offspring as the grass of the earth.
영어MSG,25  You'll see your children grow up, your family lovely and lissome as orchard grass.
영어NRSV,25 You shall know that your descendants will be many, and your offspring like the grass of the earth.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γνωση δε οτι πολυ το σπερμα σου τα δε τεκνα σου εσται ωσπερ το παμβοτανον του αγρου
라틴어Vulgate,25 scies quoque quoniam multiplex erit semen tuum et progenies tua quasi herba terrae
히브리어구약BHS,25 וְיָדַעְתָּ כִּי־רַב זַרְעֶךָ וְצֶאֱצָאֶיךָ כְּעֵשֶׂב הָאָרֶץ׃



성 경: [욥5:25]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본문 역시 23절과 마찬가지로 동의(同意)대구법이 사용되어 의인의 후예가 번성할 것을 강조해 준다.

󰃨 네 후예가 땅에 풀 같을 줄 - 과장법과 직유법이 쓰인 문학적 표현이다. 시 72:16을 고려해 볼 때 이 '풀'은 성읍 밖에 도처에 널려 있는 야생화(野生花) 또는 잡초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라니'(창 22:17)라고 약속하셨던 것을 들 수 있다.

 

 

타보 베켈라흐 엘레 카벨 카아로트 가디쉬 베잍토

 

개역개정,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올림 같으니라 
새번역,26 때가 되면, 곡식단이 타작 마당으로 가듯이, 너도 장수를 누리다가 수명이 다 차면,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말성경,26 곡식 단이 때가 되면 모아지듯이 자네가 수명이 다해서야 무덤으로 갈 것이네. 
가톨릭성경,26 그런 다음 자네는 제철이 되어 곡식 단이 쌓이듯 수명을 다하고 무덤에 들어갈 것이네. 
영어NIV,26 You will come to the grave in full vigor, like sheaves gathered in season.
영어NASB,26 "You will come to the grave in full vigor, Like the stacking of grain in its season.
영어MSG,26  You'll arrive at your grave ripe with many good years, like sheaves of golden grain at harvest.
영어NRSV,26 You shall come to your grave in ripe old age, as a shock of grain comes up to the threshing floor in its season.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ελευση δε εν ταφω ωσπερ σιτος ωριμος κατα καιρον θεριζομενος η ωσπερ θιμωνια αλωνος καθ' ωραν συγκομισθεισα
라틴어Vulgate,26 ingredieris in abundantia sepulchrum sicut infertur acervus in tempore suo
히브리어구약BHS,26 תָּבֹוא בְכֶלַח אֱלֵי־קָבֶר כַּעֲלֹות גָּדִישׁ בְּעִתֹּו׃



성 경: [욥5:26]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본절에 나타난 장수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상기시킨다(레 26:3-13; 신 28:1-14). 실제 고대 히브리인들은 '장수'를 '자손의 번성'(25절)과 더불어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왕상 3:14; 시 91:6; 잠3:2;9:11;10:27; 사 65:22;슥 8:4 등). 한편,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전개된 엘리바스의 변론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업을 거쳐야만 6장부터 전개될 욥의 반론(反論)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고난의 일반화(一般化):거듭 확인하거니와 욥의 고난은 그의 특별한 죄악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단의 궤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으로 주어진 것이었다(1:9-12;2:4-6). 하나님은 1차적으로 사단의 참소(1:9-11;2:4,5)의 허구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욥에게 시련을 내릴 것을 허용하셨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 의미에서 그것은 욥에게 신앙의 연단(演壇)과 보다 새로운 차원의 계시 신앙을 주기 위해서였다. 즉, 자기 의(self-righteousness)와 선행(善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만족감을 느낀 욥에게 초월자 앞에서 그것은 절대적 구원의 근거가 아닌 단지 상대적 가치밖에 지니지 못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측면에서 욥의 고난은 죄악에 대한 형벌이라기 보다는 의인의 신앙 건덕(建德)을 위한 일종의 '시련'이었다(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이,신 8:2,16; 잠 17:3; 약 1:12; 벧전 1:6;4:19 등). 그러나 엘리바스는 이러한 욥의 고난의 특수성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일반적 고난의 범주에 넣어 해석했다. 그 결과 그는 욥이 범죄로 인해 고난받고 있음을 심증적으로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5:3,4).(2) 경험 철학: 엘리바스는 자신의 논증을 확신시키기 위해 자신이 목도한 몇가지 사례를 들었다(4:8-11;5:3). 그런데 이 같은 것들은 원론적인 측면에서는 진리이나 현실의 개별적 부분에 있어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힘든 측면을 내포하였다. 결국 그는 부분적 경험에 근거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고 그것을 모든 부분에 적용시키는 잘못을 범했다.(3) 위로자로서의 자격 결여: 그의 논증은 거의가 딱딱한 교리 체계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으며 실로 냉정하기조차 하다. 그는 '위로자'(comforter)라기 보다는 '훈계자' 내지는 '교사'로는 욥 앞에 섰던 것이다. 물론 엘리바스의 고압적이고 냉정한 자세가 5:17-27에서 약간 완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27절에서 보듯 그는 자신을'지혜자'(wiser)요, 욥을 그 지혜에 복종해야 하는 '학생' 정도로 취급함으로써 욥의 심경을 격발시켰다(6:24-29). 요컨대 엘리바스는 친구에 대한 참된 우정에서 자신의 변론을 시작했으나(4:1,2)욥의 특수한 상황을 적절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투적인 논리만을 나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욥을 정죄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힌네 조트 하카르누하 켄 히 쉐마엔나 웨앝타 다 라크

 

개역개정,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새번역,27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디 잘 듣고, 너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말성경,27 아, 그렇군. 우리가 고찰해 본 것이니 이 말이 맞을 걸세. 그러니 자네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네.” 
가톨릭성경,27 여보게, 이것이 우리가 밝혀낸 것으로 사실이 그러하니 자네도 귀담아듣고 알아 두게나. 
영어NIV,27 "We have examined this, and it is true. So hear it and apply it to yourself."
영어NASB,27 "Behold this, we have investigated it, thus it is; Hear it, and know for yourself."
영어MSG,27  "Yes, this is the way things are--my word of honor! Take it to heart and you won't go wrong."
영어NRSV,27 See, we have searched this out; it is true. Hear, and know it for yourself."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ιδου ταυτα ουτως εξιχνιασαμεν ταυτα εστιν α ακηκοαμεν συ δε γνωθι σεαυτω ει τι επραξας
라틴어Vulgate,27 ecce hoc ut investigavimus ita est quod auditum mente pertracta
히브리어구약BHS,27 הִנֵּה־זֹאת חֲקַרְנוּהָ כֶּן־הִיא שְׁמָעֶנָּה וְאַתָּה דַע־לָךְ׃ ף

 

성 경: [욥5:27]

주제1: [계속되는 엘리바스의 충고(2)]

주제2: [주의 징계를 인정하는 자의 복]

󰃨 우리의 연구한 바 - 이는 엘리바스의 지금까지의 언설(言說)이 자신의 경험 체계에 근거해 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물론 그의 변론이 하나님의 계시(4:12-21)에 의존한 면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이 계시 역시 그의 경험의 일부였다. 특히 그는 4:8과 5:3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의 사고 체계가 경험에서 실증된 진실임을 강조하였다. 한편 기독교 신앙이 경험, 곧 역사적 산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경험을 초월한 세계를 믿음으로 신뢰하는 데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히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