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데 타우타 아네데잌센 호 퀴리오스 헤테루스 헵도메콘타 뒤오 카이 아페스테일렌 아우투스 아나 뒤오 뒤오 프로 프로소푸 아우투 에이스 파산 폴린 카이 토폰 후 에멜렌 아우토스 에르케스다이
개역개정,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새번역,1 이 일이 있은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모든 고을과 모든 곳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시며
우리말성경,1 그 후 주께서 다른 70명도 세우시고 예수께서 친히 가려고 하신 각 마을과 장소에 둘씩 짝지어 먼저 보내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영어NIV,1 After this the Lord appointed seventy-two others and sent them two by two ahead of him to every town and place where he was about to go.
영어NASB,1 Now after this the Lord appointed seventy others, and sent them in pairs ahead of Him to every city and place where He Himself was going to come.
영어MSG,1 Later the Master selected seventy and sent them ahead of him in pairs to every town and place where he intended to go.
영어NRSV,1 After this the Lord appointed seventy others and sent them on ahead of him in pairs to every town and place where he himself intended to go.
헬라어신약Stephanos,1 μετα δε ταυτα ανεδειξεν ο κυριος και ετερους εβδομηκοντα και απεστειλεν αυτους ανα δυο προ προσωπου αυτου εις πασαν πολιν και τοπον ου εμελλεν αυτος ερχεσθαι
라틴어Vulgate,1 post haec autem designavit Dominus et alios septuaginta duos et misit illos binos ante faciem suam in omnem civitatem et locum quo erat ipse venturus
히브리어Modern,1 ואחרי כן הבדיל האדון עוד שבעים אחרים וישלחם לפניו שנים שנים אל כל עיר ומקום אשר בקש לבוא שמה׃
성 경: [눅10:1]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이후에 - 이 표현은 단락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주께서 - '주'의 헬라어 '호 퀴리오스'(*)로 7:13 이후 처음 사용되며 제자들을 세워 사명을 부여하는 경우에도 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9:1). 리펠트(Liefeld)같은 학자에 의하면 이 칭호는 이하의 교훈이 바로 예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헨드릭슨(Hendriksen)같은 학자는 이명칭이 구세주의 소유권, 권위,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의미 외에도 여기서 주어지는 예수의 제자 파송이 전세계의 열국에 대한 처음의 전파를 의미한다고할 때 이 중요한 사역을 지시하시는 예수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칭호가 사용된 듯하다.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 여기서 '달리'(*, 헤테루스)는 앞에 있었던 열 두 제자의 파송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된 듯하며 '70인'은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이것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사본에 따라 어떤 것에는 72인으로, 어떤 것에는 70인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70인을 뒷받침해 주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1)이스라엘의 장로가 모두 합하여 70인이었다(출 24:1;민 11:16-17;24-25). (2)산헤드린의 구성원이 70인이었다. (3)세계에는 70개의 민족들이 있다고 여겨졌다(창 10장). 다음으로 72인을 주장하는 근거는 (1)이스라엘의 장로는 70인 뿐 아니라 72인으로 보는 견해도있다(민 11:26의 엘닷과 메닷을 포함하여) (2)창세기 10장에 대한 70인역(LXX)은 세계의 민족을 72민족으로 서술하고 있다. (3)70인역을 준비한 장로들은 모두 72명이었다. (4)세계에는 72명의 왕자들과 72개의 언어가 있다고 여겨졌다(위경 에녹 3서 17:8;18:2-3;30:2). 이러한 논거(論據)들 중 앞의 (3)과 뒤의 (2)가 본문의 맥락에 가장 잘 적용된다고 본다. 즉 창세기 10장에 대한 해석에서 히브리 원문을 택하느냐, 70인역을 택하느냐에 따라 70인도 될 수 있고 72인도 될 수 있으나 그것들이 세계의 모든 민족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뜻을 갖는다고 보아 예수께서 70(72)인을 선택한 것은 후대 교회가 세계 모든 나라들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것을 예견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세우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데이크센'(*)은 '공식적으로 임명하고 선포하사'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이번에 파송하는 70(72)인의 제자들 역시 지난번의 12제자와 동일한 권위로 보내어졌음을 의미한다.
둘씩 - 열 두 제자를 파송할 때처럼(막 6:7) 이번에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떠나게 하신다. 제자들을 둘씩 파송한 것은 서로 돕고 격려하며 유효한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민 35:30;신 19:15;전 4:9;마 18:16;딤전 5:19). 이것은 후에 제자들의 설교나 초대교회 선교의 모델(model)이 되기도 하였다(행 3:1;4:1,13,19;13:1-3;15:40;15:27,39,40;7:14-22).
엘레겐 데 프로스 아우투스 호 멘 데리스모스 폴뤼스 호이 데 에르가타이 올리고이 데에데테 운 투 퀴리우 투 데기스무 호포스 에르가타스 엨발레 에이스 톤 데리스몬 아우투
개역개정,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새번역,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우리말성경,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께 추수할 밭으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
가톨릭성경,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영어NIV,2 He told them,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workers are few.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herefore, to send out workers into his harvest field.
영어NASB,2 And He was saying to them,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beseech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영어MSG,2 He gave them this charge: "What a huge harvest! And how few the harvest hands. So on your knees; ask the God of the Harvest to send harvest hands.
영어NRSV,2 He said to them, "The harvest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ask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헬라어신약Stephanos,2 ελεγεν ουν προς αυτους ο μεν θερισμος πολυς οι δε εργαται ολιγοι δεηθητε ουν του κυριου του θερισμου οπως εκβαλλη εργατας εις τον θερισμ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2 et dicebat illis messis quidem multa operarii autem pauci rogate ergo Dominum messis ut mittat operarios in messem
히브리어Modern,2 ויאמר להם הן הקציר רב והפעלים מעטים לכן התחננו אל אדון הקציר וישלח פעלים לקצירו׃
성 경: [눅10:2]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추수할 것은...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 본절은 마 9:37,38과 평행을 이루는 말씀으로 마태복음에서는 12제자들을 파송하기전에 하신 말씀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70인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틈나는 대로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시급함을 말씀하셨을 것으로 보인다. 구약적 이미지에서 볼 때 흔히 추수는 하나님의 심판에 적용되며 이런 경우 추수를 하는 자는 주로 천사들로 묘사된다(욜3:13;계 14:15-20). 그러나 여기서는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측면에서 복음의 전파를 말하며 그 임무가 제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또한 본절은 일꾼이 부족한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그나마 있는 일꾼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일꾼들은 자기의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주인에게 일꾼을 증원(增員)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며 일꾼들은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임의대로 일꾼을 부를 수 없다. 다만 일꾼을 보내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으며 그분이 보내주는 일꾼만이 진정으로 그분의 추수를 돕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휘파게테 이두 아포스텔로 휘마스 호스 아르나스 엔 메소 뤼콘
개역개정,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새번역,3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우리말성경,3 이제 가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 떼에게로 보내는 것 같구나.
가톨릭성경,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영어NIV,3 Go! I am sending you out like lambs among wolves.
영어NASB,3 "Go; behold, I send you out as lambs in the midst of wolves.
영어MSG,3 "On your way! But be careful--this is hazardous work. You're like lambs in a wolf pack.
영어NRSV,3 Go on your way. See, I am sending you out like lambs into the midst of wolves.
헬라어신약Stephanos,3 υπαγετε ιδου εγω αποστελλω υμας ως αρνας εν μεσω λυκων
라틴어Vulgate,3 ite ecce ego mitto vos sicut agnos inter lupos
히브리어Modern,3 לכו נא הנני שלח אתכם ככבשים בין הזאבים׃
성 경: [눅10:3]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 마 10:16에는 '양'(*, 프로바톤)이라고 되어있는데 본문에서는 '어린 양'(*, 아렌)이라고 하여 제자들의 연약함이 지적된다. 양은 용감하고 능력있는 목자의 보호가 없으면 이리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짐승이다. 또한 '양'은 선한 것의 상징이라면 '이리'는 악한 것의 상징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제자들이 세상의 악한 세력과 영적인 싸움을 수행해야 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서 영적인 선한 싸움을 할때 절대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방심해서는 안되며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도 전혀없다. 왜냐하면 강하고 능력있는 목자이신 예수께서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자들은 자기들의 연약함을 늘 확인하여 겸손해져야 하며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엡 6:10-17). 한편 마샬(Marshall)은 '보내다'(*, 아포스텔로)라는 동사가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점을 주목하여 사도직의 기원(起原)이 '선교'의 개념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고 보았다.
메 바스타제테 발란티온 메 페란 메 휘포데마타 카이 메데나 카타 텐 호돈 아스파세스데
개역개정,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새번역,4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우리말성경,4 지갑도 가방도 신발도 가져가지 말고 가는 길에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가톨릭성경,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영어NIV,4 Do not take a purse or bag or sandals; and do not greet anyone on the road.
영어NASB,4 "Carry no money belt, no bag, no shoes; and greet no one on the way.
영어MSG,4 "Travel light. Comb and toothbrush and no extra luggage. "Don't loiter and make small talk with everyone you meet along the way.
영어NRSV,4 Carry no purse, no bag, no sandals; and greet no one on the road.
헬라어신약Stephanos,4 μη βασταζετε βαλαντιον μη πηραν μηδε υποδηματα και μηδενα κατα την οδον ασπασησθε
라틴어Vulgate,4 nolite portare sacculum neque peram neque calciamenta et neminem per viam salutaveritis
히브리어Modern,4 אל תשאו כיס ולא תרמיל ולא נעלים ואל תשאלו לשלום איש בדרך׃
성 경: [눅10:4]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전대(纏帶)나 주머니나 신 - 마태는 금이나 은 또는 돈을 넣어다니는 '허리띠'(*, 조네)로 표현하는데 누가는 '지갑'의 의미인 '발란티온'(*)을 사용하고 있다. 허리띠에 돈을 넣어 묶는 관습 보다는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더 후대의 관습이라고 볼 때 누가는 도시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단어를 바꾼 것이라 하겠다. 주머니(*, 페라)는 일용품을 넣는 가방이며(9:3) 신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맨발로 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여분의 신을 지참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9:3에서 처럼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 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전적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문안하지 말며 - 동양에서는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하더라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의 인사를 금한 것은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강조한 것이다(Marshall).
에이스 헨 드 안 에이셀데테 오이키안 프로톤 레게테 에이레네 토 오이코 투토
개역개정,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새번역,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우리말성경,5 어느 집에라도 들어가면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라.
가톨릭성경,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영어NIV,5 "When you enter a house, first say, 'Peace to this house.'
영어NASB,5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be to this house.'
영어MSG,5 "When you enter a home, greet the family, 'Peace.'
영어NRSV,5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to this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5 εις ην δ αν οικιαν εισερχησθε πρωτον λεγετε ειρηνη τω οικω τουτω
라틴어Vulgate,5 in quamcumque domum intraveritis primum dicite pax huic domui
히브리어Modern,5 ולכל בית אשר תבאו שם אמרו בראשונה שלום לבית הזה׃
성 경: [눅10:5]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먼저 말하되...평안할지어다 - 지금까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는 행해야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여기서 '평안' 혹은 '평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이 이웃의 안부를 물을때(삼하 8:10;11:7;왕하 4:26),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 5:21), 헤어질 때(삼상 1:17;삼하 15:9) 하던 '샬롬'(*)에 상응하는 인사말로 샬롬의 의미가 '평강을 빕니다'(스 4:17), '평안하냐'(왕하 4:26;5:21), '평안히 가시오'(삼상 1:17)인 만큼 '에이레네'도 같은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인사 내용 자체는 당시의 일반적인 인사법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제자들에게 '먼저'(*, 프로톤) 인사의 말을 하라고 하여 그들이 친절하고 공손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인데 아마 이것은 예수의 권위를 부여받은 제자들이 그 권위에 도취되어 교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절의 인사가 일반적인 인사말이라 해서 일반적인 의미의 단순한 바램이나 기원을 뜻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주시해야 한다. 앞으로 제자들이 흩어져 선교(mission) 활동을 할 때 하게 될 '평안'이라는 인사는, 하나님의 구원이 도래함을 뜻하는 차원에서의 '평안'을 의미하며(요 14:27;행 10:26), 하나님께 기원을 둔 하나의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카이 에안 에케이 에 휘오스 에이레네스 에파나파에세타이 엪 아우톤 헤 에이레네 휘몬 에이 데 메 게 엪 휘마스 아나캄프세이
개역개정,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새번역,6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말성경,6 그곳에 평화의 사람이 있으면 네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물 것이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가톨릭성경,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영어NIV,6 If a man of peace is there, your peace will rest on him;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영어NASB,6 "If a man of peace is there, your peace will rest on him; but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영어MSG,6 If your greeting is received, then it's a good place to stay. But if it's not received, take it back and get out. Don't impose yourself.
영어NRSV,6 And if anyone is there who shares in peace, your peace will rest on that person; but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6 και εαν μεν η εκει υιος ειρηνης επαναπαυσεται επ αυτον η ειρηνη υμων ει δε μηγε εφ υμας ανακαμψει
라틴어Vulgate,6 et si ibi fuerit filius pacis requiescet super illam pax vestra sin autem ad vos revertetur
히브리어Modern,6 והיה כי יהיה שם בן שלום ונח עליו שלומכם ואם לא אליכם ישוב׃
성 경: [눅10:6]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평안을 받을 사람 - 헬라어 '휘오스 에이레네스'(*) 즉 '평안의 아들'(Son of Peace, R S V)은 히브리식 용법으로 '부활의 아들'(눅 20:36), '빛의 아들'(눅 16:8), '지옥의 아들'(마 23:15), '멸망의 아들'(요 17:12) 등과 같은유형의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어떤 사람의 성품과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는 태도에 따라서 겪게될 응분의 운명을 말해주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평안의 아들'은 '평화에 합당한 사람',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의 의미로 볼 수 있으며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마 5:9). 이런 사람들에게는 제자들의 인사가 단순한 기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선물로 주어지게 된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말이 지니는 힘에 대한 히브리식 믿음이 깃들어 있는 바, 구약에서 족장들의 축복은 취소할 수 없는 유산(遺産)으로 여겨졌었다(창 27:37). 그러나 제자들의 축복은 수용자의 태도 여하에 따라 머물기도 하고 되돌아 오기도 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책임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엔 아우테 데 테 오이키아 메네테 에스디온테스 카이 피논테스 타 파르 아우톤 앜시오스 가르 호 에르가테스 투 미스두 아우투 메 메타바이네테 엨스 오이키아스 에이스 오이키안
개역개정,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새번역,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우리말성경,7 그 집에 머물면서 그들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은 자기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
가톨릭성경,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영어NIV,7 Stay in that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ever they give you, for the worker deserves his wages. Do not move around from house to house.
영어NASB,7 "Stay in that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 they give you; for the laborer is worthy of his wages. Do not keep moving from house to house.
영어MSG,7 "Stay at one home, taking your meals there, for a worker deserves three square meals. Don't move from house to house, looking for the best cook in town.
영어NRSV,7 Remain in the same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ever they provide, for the laborer deserves to be paid. Do not move about from house to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7 εν αυτη δε τη οικια μενετε εσθιοντες και πινοντες τα παρ αυτων αξιος γαρ ο εργατης του μισθου αυτου εστιν μη μεταβαινετε εξ οικιας εις οικιαν
라틴어Vulgate,7 in eadem autem domo manete edentes et bibentes quae apud illos sunt dignus enim est operarius mercede sua nolite transire de domo in domum
히브리어Modern,7 ובבית ההוא תשבו ותאכלו ותשתו משלהם כי שוה הפועל בשכרו אל תסעו מבית לבית׃
성 경: [눅10:7]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그 집에...옮기지 말라 - 여기서 '그 집'이란 물론 '평안의 아들'이 있어 제자들을 영접해 주는 집을 뜻한다. 여기서 '그 집에'(*, 엔 아우테 테 오이키아)는 강조적 표현으로 직역하면 '그 집 자체에서'(in the houseitself)이며, '바로 그 집에'(in that very house)란 뜻이다. 제자들은 대충 아무 집에서나 유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의 아들'이 있는 바로 그 집에 머물러야 했다. 열 두제자들도 그랬던 것처럼(9:4) 70(72)인의 제자들도 여러 집을 옮겨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열 두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 옮겨다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한편 제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보답으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 받을 권리가 있다(갈 6:6). 말씀의 사역자들이 그들이 섬기는 성도들로부터 물질적인 도움을 받는 것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딤전 5:18;고전 9:3-18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물질적 제공을 받는것이 '상전'으로서가 아니라 '일꾼'으로서의 삯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제자들이 겸손해야 함과 그들이 받는 물질적 대가는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카이 에이스 헨 안 폴린 에이세르케스데 카이 데콘타이 휘마스 에스디에테 타 파라티데메나 휘민
개역개정,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새번역,8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우리말성경,8 어느 마을에 들어가서 너희를 받아들이면 너희 앞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라.
가톨릭성경,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영어NIV,8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welcomed, eat what is set before you.
영어NASB,8 "Whatever city you enter and they receive you, eat what is set before you;
영어MSG,8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received, eat what they set before you,
영어NRSV,8 Whenever you enter a town and its people welcome you, eat what is set before you;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εις ην δ αν πολιν εισερχησθε και δεχωνται υμας εσθιετε τα παρατιθεμενα υμιν
라틴어Vulgate,8 et in quamcumque civitatem intraveritis et susceperint vos manducate quae adponuntur vobis
히브리어Modern,8 וכל עיר אשר תבאו בה וקבלו אתכם אכלו שם את אשר ישימו לפניכם׃
성 경: [눅10:8]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차려 놓는 것을 먹고 - 본문의 말씀은 단지 앞절에 대한 동의어적 반복으로 보기보다는 고전 10:27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유력하다(Marshall,Hendriksen). 즉 제자들 중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으며 따라서 이들은 전통적으로 지켜내려오던 음식에 대한 종교적 관습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라도 이방인의 동네에 복음을 전파하러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때 그들 앞에는 유대적인 음식 규정에 의하지 않은 음식상이 차려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상황에서 음식물에 대한 유대적 관습에 매여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주어졌다고 보아야한다는 것이다(행 10:9-16). 그렇다고 할때 이 말씀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막 7:15,16) 예수의 사상과 일맥 상통한다.
카이 데라퓨에테 투스 엔 아우테 아스데네이스 카이 레게테 아우토이스 엥기켄 엪 휘마스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개역개정,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새번역,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우리말성경,9 그리고 그곳에 사는 병자들을 고쳐 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하라.
가톨릭성경,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영어NIV,9 Heal the sick who are there and tell them, 'The kingdom of God is near you.'
영어NASB,9 and heal those in it who are sick, and say to them,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to you.'
영어MSG,9 heal anyone who is sick, and tell them, 'God's kingdom is right on your doorstep!'
영어NRSV,9 cure the sick who are there, and say to them,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θεραπευετε τους εν αυτη ασθενεις και λεγετε αυτοις ηγγικεν εφ υμας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9 et curate infirmos qui in illa sunt et dicite illis adpropinquavit in vos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9 ורפאו את החולים אשר בקרבה ואמרו להם קרבה אליכם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10:9]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병자들을 고치고...하나님의 나라...가까이 왔다 - 여기서도 열 두 제자들에게처럼 병을 고치는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대한 사명이 주어지고 있다(9:2). 예수에게 있어서 각종 질병을 고치는 일은 자신의 메시야됨을 증거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를 통해 임재(臨在)하는 것에 대한 표상(表象)이었다(마11:5;눅 7:21-22). 그런데 본문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가까이 왔다'로 번역된 헬라어'엥기켄'(*)에 대한 해석이 '가까이 다가오다'로도 '당도하다' '이르다'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막 1:15에서는 아직 당도하지 않고 가까이 이른 상태를 묘사하는 한편 눅 11:20(마 12:28과 평행)에서는 이미 당도한 것으로 쓰여진다. 눅 11:20에서는 귀신 축사(逐邪)가 곧 하나님 나라의 임재에 대한 표시로 제시된다. 그리고 귀신들림에서 해방되고 병으로부터 온전해진다는 것은 인간이죄로 말미암아 왜곡된 상태로부터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됨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현상들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요소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와졌다고 선포할때 그 말의 의미는 시.공간 속에 도래하는 완성된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는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효력들이 발생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가시화(可視化)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엥기켄 에프 휘마스)는 구문이 문법상 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아직'(not yet) 완성된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already) 하나님 나라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에이스 헨 드 안 폴린 에이셀데테 카이 메 데콘타이 휘마스 엨셀돈테스 에이스 타스 플라테이아스 아우테스 에이파테
개역개정,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새번역,10 그러나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고을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우리말성경,10 그러나 어떤 마을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환영하지 않으면 거리로 나가 이렇게 말하라.
가톨릭성경,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영어NIV,10 But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not welcomed, go into its streets and say,
영어NASB,10 "But whatever city you enter and they do not receive you, go out into its streets and say,
영어MSG,10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not received, go out in the street and say,
영어NRSV,10 But whenever you enter a town and they do not welcome you, go out into its streets and say,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ις ην δ αν πολιν εισερχησθε και μη δεχωνται υμας εξελθοντες εις τας πλατειας αυτης ειπατε
라틴어Vulgate,10 in quamcumque civitatem intraveritis et non receperint vos exeuntes in plateas eius dicite
히브리어Modern,10 וכל עיר אשר תבאו בה ולא יקבלו אתכם צאו לכם אל רחובותיה ואמרו׃
성 경: [눅10:10]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 이번에는 영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의 행동 지침을 일러주고 있다. 여기서 '영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코마이'(*)는 사신들(ambassadors)을 환영하거나 그들이 전달해 주는 통지문을 환영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제자들 개인의 자격이나 권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또한 '거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라테이아'(*)는 '넓은 길' 또는 '노천의 넓은 거리'를 뜻하는데 이것은 거절하는 사람 또는 동네에 대한 제자들의 행동이 공개적이어야 함을 뜻한다.
카이 톤 코니오르톤 톤 콜레덴타 헤민 에크 테스 폴레오스 휘몬 에이스 투스 포다스 아포마쏘메다 휘민 플렌 투토 기노스케테 호티 엥기켄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
개역개정,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새번역,11 '우리 발에 묻은 너희 고을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 하여라.
우리말성경,11 ‘우리 발에 붙은 너희 마을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고 간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톨릭성경,11 ‘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영어NIV,11 'Even the dust of your town that sticks to our feet we wipe off against you. Yet be sure of this: The kingdom of God is near.'
영어NASB,11 'Even the dust of your city which clings to our feet we wipe off in protest against you; yet be sure of this, that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영어MSG,11 'The only thing we got from you is the dirt on our feet, and we're giving it back. Did you have any idea that God's kingdom was right on your doorstep?'
영어NRSV,11 'Even the dust of your town that clings to our feet, we wipe off in protest against you. Yet know this: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τον κονιορτον τον κολληθεντα ημιν εκ της πολεως υμων απομασσομεθα υμιν πλην τουτο γινωσκετε οτι ηγγικεν εφ υμας η 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1 etiam pulverem qui adhesit nobis de civitate vestra extergimus in vos tamen hoc scitote quia adpropinquavit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11 אף את עפר עירכם הנדבק ברגלינו ננערהו לכם אך ידע תדעו כי קרבה אליכם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눅10:11]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 복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하는 행위로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이다(9:5 주석 참조). 결국 이런 행위는 복음을 거부한 사람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한 행위로 인해 필연적으로 결과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경고성 행위는 반대나 불이익을 뜻하는 여격이 사용된 '너희에게'(*, 휘민)로써 더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 이 말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마지막까지 회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2)복음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한 사실로서 다가오며 어떤 악한 세력에 의해서도 지연되거나 저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레고 휘민 호티 소도모이스 엔 테 헤메라 에케이네 아넼토테론 에스타이 에 테 폴레이 에케이네
개역개정,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새번역,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우리말성경,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 소돔이 그 마을보다 견디기 더 쉬울 것이다.
가톨릭성경,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영어NIV,12 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town.
영어NASB,12 "I say to you, it will be more tolerable i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city.
영어MSG,12 Sodom will have it better on Judgment Day than the town that rejects you.
영어NRSV,12 I tell you, on that day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Sodom than for that town.
헬라어신약Stephanos,12 λεγω δε υμιν οτι σοδομοις εν τη ημερα εκεινη ανεκτοτερον εσται η τη πολει εκεινη
라틴어Vulgate,12 dico vobis quia Sodomis in die illa remissius erit quam illi civitati
히브리어Modern,12 אני אמר אלכים כי לסדום יקל ביום ההוא מן העיר ההיא׃
성 경: [눅10:12]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의 파송]
저 날에 소돔이...쉬우리라 - '저날'은 마태복음의 병행 본문에 기록된대로(마10:15) '심판의 날'을 뜻함이 분명하다(21:34;마 7:22;살후 1:10;딤후 1:12,18). 또한마태는 구약적 표현에 일치되게 '소돔과 고모라'로 기록하고 있는데 비해 누가는 고모라를 생략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악의 상징이며(사 1:9;렘50:40) 본래 이 두 성읍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심판을 받아 멸망한 도시였다(창 19:24-28). 한편 '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는 표현은 심판의 강약을 뜻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심판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정지우며 그 심판의 준엄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아이 소이 코라진 우아이 소이 베드사이다 호티 에이 엔 튀로 카이 시도니 에게네데산 하이 뒤나메이스 하이 게노메나이 엔 휘민 팔라이 안 엔 샄코 카이 스포도 카데메노이 메테노에산
개역개정,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새번역,13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3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을 것이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이 두로와 시돈에서 나타났다면 그들은 벌써 오래전에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3 “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영어NIV,13 "Woe to you, K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racles that were performed in you had been performed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sitting in sackcloth and ashes.
영어NASB,13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miracles had been performed in Tyre and Sidon which occurred in you,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sitting in sackcloth and ashes.
영어MSG,13 "Doom, Chorazin! Doom, Bethsaida! If Tyre and Sidon had been given half the chances given you, they'd have been on their knees long ago, repenting and crying for mercy.
영어NRSV,13 "Woe to you, Chorazin! Woe to you, Bethsaida! For if the deeds of power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sitting in sackcloth and ashes.
헬라어신약Stephanos,13 ουαι σοι χωραζιν ουαι σοι βηθσαιδα οτι ει εν τυρω και σιδωνι εγενοντο αι δυναμεις αι γενομεναι εν υμιν παλαι αν εν σακκω και σποδω καθημεναι μετενοησαν
라틴어Vulgate,13 vae tibi Corazain vae tibi Bethsaida quia si in Tyro et Sidone factae fuissent virtutes quae in vobis factae sunt olim in cilicio et cinere sedentes paeniterent
히브리어Modern,13 אוי לך כורזין אוי לך בית צידה כי הגבורות אשר נעשו בקרבכן אלו נעשו בצור ובצידון הלא כבר ישבו בשק ואפר ושבו׃
성 경: [눅10:13]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 여기서 '화 있을 진저'는 반대자들에 대한 보복 보다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될 대상에 대한 슬픔과 유감을 표시한다(6:24). 고라신은 마태복음의 병행본문(마 11:21)과 이곳을 제외하고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지명이다. 고라신은 당시의 가버나움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인데 현재는 텔 흄(Tel Hum)으로부터 동부쪽으로 5km정도 거리에 있는 '케라제'(Kerazeh)일 것으로 추측한다. 예수께서 이 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두로'와 '시돈'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관심과애정을 기울이셨으리라 추측된다.
벳새다 - 이 곳에 대해서는 9:10의 주석을 참조. 예수께서 이곳에서 사역을 하신 기록은 9:10-17에 나와 있다.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 - 이 문구는 앞에서 언급한 두 장소에서 행하신 사역들이 성경의 기록보다 훨씬 많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권능'(*, 뒤나미스)은 4:14과 9:1에도 나오는 데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이 곳에서 두로와 시돈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두로와 시돈 - 이 두 도시는 갈릴리 북방에 있는 베니게의 항구도시로 두로는 B.C.2750년 경에, 시돈은 B.C. 1400년 이전에 건설되었다. 이 두 도시는 번영과 쾌락과 이교도의 도시로 유명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한 결과(암1:9;욜 3:6)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다(사 23장;겔 26-28장).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 베옷(*, 삭코스)은 염소털로 만든 거친 옷으로 회개나 애도의 표시로 입었다(왕상 21:27). 재(*, 스포도스) 역시 애도의 표시였고(욥 2:8;욘 3:6;마 6:16) '삼베'와 연결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에4:2,3).
플렌 튀로 카이 시도니 아넼토테론 에스타이 엔 테 크리세이 에 휘민
개역개정,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새번역,14 그러나 심판 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우리말성경,14 그러나 심판 날이 되면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더 쉬울 것이다.
가톨릭성경,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영어NIV,14 But it will be more bearable for Tyre and Sidon at the judgment than for you.
영어NASB,14 "But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in the judgment than for you.
영어MSG,14 Tyre and Sidon will have it easy on Judgment Day compared to you.
영어NRSV,14 But at the judgment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than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4 πλην τυρω και σιδωνι ανεκτοτερον εσται εν τη κρισει η υμιν
라틴어Vulgate,14 verumtamen Tyro et Sidoni remissius erit in iudicio quam vobis
히브리어Modern,14 אכן לצור וצידון יקל בדין מכם׃
성 경: [눅10:14]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
심판 때에...쉬우리라 - 12절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두로와 시돈이라는 두 패역한 도시에 비유하여 고라신과 벳새다의 심판이 얼마나 중할 것인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도 심판을 면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에 대해서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카이 쉬 카파르나움 메 헤오스 우라누 휲소데세 헤오스 투 하두 카타베세
개역개정,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새번역,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 ㉠그, '하데스'
우리말성경,15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아니다. 너는 저 음부에까지 내려갈 것이다!
가톨릭성경,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영어NIV,15 And you, Capernaum, will you be lifted up to the skies? No, you will go down to the depths.
영어NASB,15 "And you, Capernaum, will not be exalted to heaven, will you? You will be brought down to Hades!
영어MSG,15 "And you, Capernaum! Do you think you're about to be promoted to heaven? Think again. You're on a mud slide to hell.
영어NRSV,15 And you, Capernaum, will you be exalted to heaven? No, you will be brought down to Hade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συ καπερναουμ η εως του ουρανου υψωθεισα εως αδου καταβιβασθηση
라틴어Vulgate,15 et tu Capharnaum usque in caelum exaltata usque ad infernum demergeris
히브리어Modern,15 ואת כפר נחום אשר עד השמים התרוממת אל שאול תורדי׃
성 경: [눅10:15]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
가버나움 - 문자적으로 '나훔의 마을'이며 '나훔'은 '자비로운'이라는 뜻으로 이 마을 이름은 결국 '자비의 마을'이 되는 셈인데(Hendriksen) 예수의 심판의 말씀에 비추어 볼때 이 마을의 이름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완악한 마을'이라고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튼 가버나움은 예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지였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중심적 제자들이 그곳에서 선택되었고(5:10), 많은 이적과 교훈이 그곳에서 베풀어졌다(4:23,31-37;7:1-10). 그리하여 마태는 가버나움을 예수의 '본 동네'라고 하였다(마 9:1). 그러나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그렇게 주어진 기회를 저버리고 말았는데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떻게 예수를 거역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는 표현에 의해 그들이 매우 교만하였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늘에까지...낮아지리라 - 이는 이사야가 포로후기 시대에 오만불손했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말씀(사 14:13,15)을 가버나움에 적용한 것이다. '네가...높아 지겠느냐'(*, 메 휩소데세)에서 '메'(*)는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하는 조사로서 결코 하늘에까지 높아질 수 없음을 반어법적으로 강조해 준다. 하늘의 영광과 음부의 파멸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교만한 가버나움이 당할 파국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음부'(*, 하데스)는 구약에서 죽은 사람들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며, 신약 시대에는 그 의미가 조금 변하여 무신론자들이 벌을 받는 장소로 여겨졌다(Marshall).
호 아쿠온 휘몬 에무 아쿠에이 카이 호 아데톤 휘마스 에메 아데테이 호 데 에메 아데톤 아데테이 톤 아포스테일란타 메
개역개정,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새번역,16 누구든지 너희의 말을 들으면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누구든지 너희를 배척하면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배척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6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또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그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영어NIV,16 "He who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he who rejects you rejects me; but he who rejects me rejects him who sent me."
영어NASB,16 "The one who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and the one who rejects you rejects Me; and he who rejects Me rejects the One who sent Me."
영어MSG,16 "The one who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The one who rejects you, rejects me. And rejecting me is the same as rejecting God, who sent me."
영어NRSV,16 "Whoever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and whoever rejects you rejects me, and whoever rejects me rejects the one who sent m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 ακουων υμων εμου ακουει και ο αθετων υμας εμε αθετει ο δε εμε αθετων αθετει τον αποστειλαντα με
라틴어Vulgate,16 qui vos audit me audit et qui vos spernit me spernit qui autem me spernit spernit eum qui me misit
히브리어Modern,16 השומע אליכם אלי הוא שומע והבוזה אתכם אותי הוא בוזה והבוזה אותי הוא בוזה את אשר שלחני׃
성 경: [눅10:16]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주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의 운명]
너희 말을...것이라 - 제자들의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에 의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제자들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함을 보증해 주시는 말씀이다. 제자들의 권위를 존중해주지 않고 거역할 때 그 행위는 예수를 거역하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반면에 제자들로서는 자신들의 권위가 자생적(自生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임을 인식해야 하며 따라서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한다는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했다.
휘페스트렢산 데 호이 헵도메콘타 뒤오 메타 카라스 레곤테스 퀴리에 카이 타 다이모니아 휘포타쎄타이 헤민 엔 토 오노마티 수
개역개정,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새번역,17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차서, 돌아와 보고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우리말성경,17 70명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을 대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가톨릭성경,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영어NIV,17 The seventy-two returned with joy and said, "Lord, even the demons submit to us in your name."
영어NASB,17 The seventy returned with joy, saying, "Lord, even the demons are subject to us in Your name."
영어MSG,17 The seventy came back triumphant. "Master, even the demons danced to your tune!"
영어NRSV,17 The seventy returned with joy, saying, "Lord, in your name even the demons submit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17 υπεστρεψαν δε οι εβδομηκοντα μετα χαρας λεγοντες κυριε και τα δαιμονια υποτασσεται ημιν εν τω ονοματι σου
라틴어Vulgate,17 reversi sunt autem septuaginta duo cum gaudio dicentes Domine etiam daemonia subiciuntur nobis in nomine tuo
히브리어Modern,17 וישובו השבעים בשמחה ויאמרו אדנינו גם השדים נכנעים לנו בשמך׃
성 경: [눅10:17]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이 돌아옴]
기뻐 돌아와 - 제자들의 사역이 성공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아마 이들은 예수께서 하셨던 일들을 자기들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항복하더이다 - 제자들의 이 보고는 귀신을 쫓아낸 일이 예상 외의 놀라운 경험이었음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며, 그 결과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원하고 이와 더불어 예수에게 그러했듯이 자기들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던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구할 때 놀라운 이적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마 21:21).
에이펜 데 아우토이스 에데오룬 톤 사타난 호스 아스트라펜 에크 투 우라누 페손타
개역개정,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새번역,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우리말성경,1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가톨릭성경,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영어NIV,18 He replied, "I saw Satan fall like lightning from heaven.
영어NASB,18 And He said to them, "I was watching Satan fall from heaven like lightning.
영어MSG,18 Jesus said, "I know. I saw Satan fall, a bolt of lightning out of the sky.
영어NRSV,18 He said to them, "I watched Satan fall from heaven like a flash of lightning.
헬라어신약Stephanos,18 ειπεν δε αυτοις εθεωρουν τον σαταναν ως αστραπην εκ του ουρανου πεσοντα
라틴어Vulgate,18 et ait illis videbam Satanan sicut fulgur de caelo cadentem
히브리어Modern,18 ויאמר אליהם ראיתי את השטן נפל כברק מן השמים׃
성 경: [눅10:18]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이 돌아옴]
사단이 하늘로서...떨어지는 것 - 본절의 의미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있다. (1)70인의 제자들이 사역할 때 사단이 추방당했다는 견해. (2)사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제자들로 하여금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신 말씀이라는 견해. (3)예수께서 광야 시험을 이겨내셨을 때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되었다는 견해. (4)70제자 뿐만 아니라향후 전도자들의 복음 전도를 통해 결국 사단의 세력이 완전히 패배하게 될 것을 뜻한다는 견해 등이다. 어쨌든 70제자들의 귀신 축사(逐邪)는 악의 세력의 패배를 보여주는 명백한 표라 할 수 있다.
이두 데도카 휘민 텐 엨수시안 투 파테인 에파노 오페온 카이 스코르피온 카이 에피 파산 텐 뒤나민 투 에크드루 카이 우덴 휘마스 우 메 아디케세
개역개정,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새번역,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말성경,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길 권세를 주었으니 그 어떤 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가톨릭성경,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영어NIV,19 I have given you authority to trample on snakes and scorpions and to overcome all the power of the enemy; nothing will harm you.
영어NASB,19 "Behold, I have given you authority to tread on serpents and scorpions, and over all the power of the enemy, and nothing will injure you.
영어MSG,19 See what I've given you? Safe passage as you walk on snakes and scorpions, and protection from every assault of the Enemy. No one can put a hand on you.
영어NRSV,19 See, I have given you authority to tread on snakes and scorpions, and over all the power of the enemy; and nothing will hurt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9 ιδου διδωμι υμιν την εξουσιαν του πατειν επανω οφεων και σκορπιων και επι πασαν την δυναμιν του εχθρου και ουδεν υμας ου μη αδικηση
라틴어Vulgate,19 ecce dedi vobis potestatem calcandi supra serpentes et scorpiones et supra omnem virtutem inimici et nihil vobis nocebit
히브리어Modern,19 הנה השלטתי אתכם לדרך על נחשים ועקרבים ועל כל גבורת האיב וכל דבר לא יזיק לכם׃
성 경: [눅10:19]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이 돌아옴]
뱀과 전갈 -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제자들이 뱀과 전갈을 밟아 죽였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바울이 뱀에 물렸으나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인데(행28:3-6) 그것은 본문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성경에서 뱀과 전갈은 주로 사단의 세력을 상징한다(창 3:1-15;고후 11:3;계 9:3,5,10). 본문의 출처라고 보여지는 시91:13의 맥락에서도 갈은 의미를 갖는다. 결국 이 말씀은 앞절(18)과 같은 맥락에서 사단의 세력이 제자들에 의해 짓밟힌다는 의미이나 다만 여기서는 사단의 실체가 더구체화되며 제자들에게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보다 강조된다. 창 13:15에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 처음 나온다. 이제 이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며 그 제자들 또한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케 된 것이다.
플렌 엔 투토 메 카이레테 호티 타 프뉴마타 휘민 휘포타쎄타이 카이레테 데 호티 타 오노마타 휘몬 엥게그랖타이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
개역개정,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새번역,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우리말성경,20 그러나 귀신들이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가톨릭성경,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영어NIV,20 However, do not rejoice that the spirits submi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영어NASB,20 "Nevertheless do not rejoice in this, that the spirits are subjec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recorded in heaven."
영어MSG,20 All the same, the great triumph is not in your authority over evil, but in God's authority over you and presence with you. Not what you do for God but what God does for you--that's the agenda for rejoicing."
영어NRSV,20 Nevertheless, do not rejoice at this, that the spirits submi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20 πλην εν τουτω μη χαιρετε οτι τα πνευματα υμιν υποτασσεται χαιρετε δε μαλλον οτι τα ονοματα υμων εγραφη εν τοις ουρανοις
라틴어Vulgate,20 verumtamen in hoc nolite gaudere quia spiritus vobis subiciuntur gaudete autem quod nomina vestra scripta sunt in caelis
히브리어Modern,20 אך בזאת אל תשמחו כי נכנעים לכם הרוחות כי אם שמחו על אשר נכתבו שמותיכם בשמים׃
성 경: [눅10:20]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칠십 인이 돌아옴]
귀신들이...기뻐하라 - '...때문에 기뻐하지 말고 ...때문에 기뻐하라'는 전형적인 히브리어 격언구 형식이다. 이 말씀은 귀신들을 제어하는 권세를 기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름이 생명서에 기록된 것에 비하면 귀신 축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이는 제자들의 사역의 목적이나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보증수표가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마 7:22,23). 만약에 주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는 자가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거나 성취한 업적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기록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게그랖타이'(*)는 '등록하다', '기록하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엥그라포'(*)의 완료 수동태로 하늘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유대교의 문헌에는 하늘의 책에 대한 사상이 많이 발견되는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기록되는생명의 책을 가리킨다(출 32:32,33;시 69:28;단 12:1;히 12:23;계 13:8;20:12).
엔 아우테 테 호라 에갈리아사토 엔 토 프뉴마티 토 하기오 카이 에이펜 엨소몰로구마이 소이 파테르 퀴리에 투 우라누 카이 테스 게스 호티 아페크륖사스 타우타 아포 소폰 카이 쉬네톤 카이 아페칼륖사스 아우타 네피오이스 나이 호 파테르 호티 후토스 유도키아 에게네토 엠프로스덴 수
개역개정,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새번역,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영' ㉢또는 '찬양합니다'
우리말성경,21 그때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넘쳐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이 모든 것을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셨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가톨릭성경,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영어NIV,21 At that time Jesus, full of joy through the Holy Spirit, said, "I praise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because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learned, and revealed them to little children. Yes, Father, for this was your good pleasure.
영어NASB,21 At that very time He rejoiced greatly in the Holy Spirit, and said, "I praise You,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intelligent and have revealed them to infants. Yes, Father, for this way was well-pleasing in Your sight.
영어MSG,21 At that, Jesus rejoiced, exuberant in the Holy Spirit. "I thank you, Father, Master of heaven and earth, that you hid these things from the know-it-alls and showed them to these innocent newcomers. Yes, Father, it pleased you to do it this way.
영어NRSV,21 At that same hour Jesus rejoiced in the Holy Spirit and said, "I thank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because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the intelligent and have revealed them to infants; yes, Father, for such was your gracious will.
헬라어신약Stephanos,21 εν αυτη τη ωρα ηγαλλιασατο τω πνευματι ο ιησους και ειπεν εξομολογουμαι σοι πατερ κυριε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της γης οτι απεκρυψας ταυτα απο σοφων και συνετων και απεκαλυψας αυτα νηπιοις ναι ο πατηρ οτι ουτως εγενετο ευδοκια εμπροσθεν σου
라틴어Vulgate,21 in ipsa hora exultavit Spiritu Sancto et dixit confiteor tibi Pater Domine caeli et terrae quod abscondisti haec a sapientibus et prudentibus et revelasti ea parvulis etiam Pater quia sic placuit ante te
히브리어Modern,21 בשעה ההיא עלץ ישוע ברוח ויאמר אודך האב אדון השמים והארץ כי הסתרת את אלה מן החכמים והנבונים וגליתם לעללים הן אבי כי כן היה רצון מלפניך׃
성 경: [눅10:21]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예수께서 기뻐하심]
이 때에 - 예수께서 제자들의 성공적 사역을 치하하신 바로 '그 때'(at thattime,NIV)를 가리킨다. 또한 이 표현은 누가가 즐겨쓰는 것으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발견된다(2:38;7:21;12:12;13:31;24:33;행 16:18;22:13).
성령으로 기뻐하사 - 마태의 병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마 11:25) 누가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기뻐하사'(*, 에갈리아사토)는 '기뻐하다'는 뜻의 동사 '아갈리아오'(*)의 과거형으로 1:47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에서도 사용된 동사이다. 지금 예수께서 느끼는 기쁨임을 뜻하며 계속 이어지는 감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감동에 의한 일종의 계시임을 암시한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 '천지의 주재'라는 호칭은 다분히 구약적인 표현으로(창14:19,22) 전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전권적 위엄을 나타내며 '아버지'(*, 파테르)라는 호칭은 아람어의 '압바'(abba)에 해당하며 따뜻한 부자 관계를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온 천하 만물의 주관자이신 창조주께서 바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타낸다.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영적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다(롬 8:16).
이것을 지혜롭고...나타내심 - '이것'이란 아마 예수의 사역 즉 그가 베푼 이적들과 말씀의 선포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리고 방금 70(72)인의 제자들이 체험적으로 터득한 것들일 것이다. 여기서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과 '어린아이들'이 대조되고 있는 데, 전자는 율법에 대한 지식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후자는 세상적 지혜나 율법적 지식이 부족하지만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사상 즉 지혜로운 현자(賢者)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생각을(위경제 4에스라 12:35-38) 뒤엎는 역설적인 말씀으로서 바울에게서도 발견되는 사상이다(고전 1:18-31). 또한 본절은 소위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 그리하여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자들에 대한 예수의 각별한 애정을 암시하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판타 모이 파레도데 휘포 투 파트로스 무 카이 우데이스 기노스케이 티스 에스틴 호 휘오스 에이 메 호 파테르 카이 티스 에스틴 호 파테르 에이 메 호 휘오스 카이 호 에안 불레타이 호 휘오스 아포칼륖사이
개역개정,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새번역,22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말성경,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들과 또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22 “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영어NIV,22 "All things have been committed to me by my Father. No one knows who the Son is except the Father, and no one knows who the Father is except the Son and thos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영어NASB,22 "All things have been handed over to Me by My Father, and no one knows who the Son is except the Father, and who the Father is except the Son, and anyone to whom the Son wills to reveal Him."
영어MSG,22 "I've been given it all by my Father! Only the Father knows who the Son is and only the Son knows who the Father is. The Son can introduce the Father to anyone he wants to."
영어NRSV,22 All things have been handed over to me by my Father; and no one knows who the Son is except the Father, or who the Father is except the Son and anyon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στραφεις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ειπεν παντα παρεδοθη μοι υπο του πατρος μου και ουδεις γινωσκει τις εστιν ο υιος ει μη ο πατηρ και τις εστιν ο πατηρ ει μη ο υιος και ω εαν βουληται ο υιος αποκαλυψαι
라틴어Vulgate,22 omnia mihi tradita sunt a Patre meo et nemo scit qui sit Filius nisi Pater et qui sit Pater nisi Filius et cui voluerit Filius revelare
히브리어Modern,22 הכל נמסר לי מאת אבי ואין יודע מי הוא הבן בלתי האב ומי הוא האב בלתי הבן ואשר יחפץ הבן לגלותו לו׃
성 경: [눅10:22]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예수께서 기뻐하심]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 여기서 '모든 것'(*, 판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계시(Jeremias), (2)(본문이 단 7:13,14;마 28:18과 평행을 이룬다고 보았을 때) 예수께서 위임(委任)받은 하나님의 권한(Lagrange, Schniewind), (3)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Weiss), (4)모든 사람(Bengel), (5)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필요한 모든것(Holtzmann), (6)그 하나님의 뜻(Plummer), (7)모든 교리(Harnack) 등. 그런데 본문에서 '모든 것'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주셨다'(*, 파라디도미)의 의미와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주셨다'는 동사는 스승이 제자에게 지식, 교리, 전통과 같은 것을 물려주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하며(막 7:13;고전 11:2,23), 권력이나 권위를 위임하는 데도 사용된다(4:6). 이렇게 볼 때 앞에 열거한 제 견해들은어느 것이 틀리거나 어느 것이 정확하게 맞다기 보다는 종합적으로 취해질 세상의 것이라 하겠다. 결국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외에는...아는 자가 없나이다 - 여기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상호 인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한 본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론적(存在論的)인 관계 즉 복음서들이 한결 같이 증거해 주는 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증거한다. 물론 성도들도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능력에 의해 아버지를 안 것이 아니라 아들이신 예수의 중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지식이 너무도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예수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카이 스트라페이스 프로스 투스 마데타스 캍 이디안 에이펜 마카리오이 호이 옾달모이 호이 블레폰테스 하 블레페테
개역개정,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새번역,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우리말성경,23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뒤돌아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가톨릭성경,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영어NIV,23 Then he turned to his disciples and said privately, "Blessed are the eyes that see what you see.
영어NASB,23 Turning to the disciples, He said privately, "Blessed are the eyes which see the things you see,
영어MSG,23 He then turned in a private aside to his disciples. "Fortunate the eyes that see what you're seeing!
영어NRSV,23 Then turning to the disciples, Jesus said to them privately, "Blessed are the eyes that see what you see!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στραφεις προς τους μαθητας κατ ιδιαν ειπεν μακαριοι οι οφθαλμοι οι βλεποντες α βλεπετε
라틴어Vulgate,23 et conversus ad discipulos suos dixit beati oculi qui vident quae videtis
히브리어Modern,23 ויפן אל תלמידיו לבדם ויאמר אשרי העינים הראות את אשר אתם ראים׃
성 경: [눅10:23]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예수께서 기뻐하심]
너희는 보는...복이 있도다 - 그런데 제자들이 '보는 것'(what you see, NIV)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다음의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넓은 의미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그리고 행하실 이적들과 가르침들을 통해서(4:6)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식하며 하나님과 아들 사이의 비밀을 보는것을 의미한다(22절). (2)좁은 의미에서,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굴복시킬 때 경험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언급한 마태복음의 문맥에서는(13:16) 전자에 가깝고, '듣는 것'을 생략한 누가복음의 문맥에서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레고 가르 휘민 호티 폴로이 프로페타이 카이 바실레이스 에델레산 이데인 하 휘메이스 블레페테 카이 우크 에이단 카이 아쿠사이 하 아쿠에테 카이 우크 에쿠산
개역개정,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새번역,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왕들이 지금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했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듣고자 했으나 듣지 못했다.”
가톨릭성경,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영어NIV,24 For I tell you that many prophets and kings wanted to see what you see but did not see it, and to hear what you hear but did not hear it."
영어NASB,24 for I say to you, that many prophets and kings wished to see the things which you see, and did not see them, and to hear the things which you hear, and did not hear them."
영어MSG,24 There are plenty of prophets and kings who would have given their right arm to see what you are seeing but never got so much as a glimpse, to hear what you are hearing but never got so much as a whisper."
영어NRSV,24 For I tell you that many prophets and kings desired to see what you see, but did not see it, and to hear what you hear, but did not hear it."
헬라어신약Stephanos,24 λεγω γαρ υμιν οτι πολλοι προφηται και βασιλεις ηθελησαν ιδειν α υμεις βλεπετε και ουκ ειδον και ακουσαι α ακουετε και ουκ ηκουσαν
라틴어Vulgate,24 dico enim vobis quod multi prophetae et reges voluerunt videre quae vos videtis et non viderunt et audire quae auditis et non audierunt
히브리어Modern,24 כי אני אמר לכם נביאים ומלכים רבים חפצו לראות את אשר אתם ראים ולא ראו ולשמע את אשר אתם שמעים ולא שמעו׃
성 경: [눅10:24]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예수께서 기뻐하심]
많은 선지자와 임금 - 제자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옛 선지자와 임금들을 제자들과 대조시키고 있다. 본절의말씀에는 과거에 가장 종교적이었던 사람들(선지자)과 가장 높은 신분의 사람들(왕)조차 보지 못한 것을 지금에 평범한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사상을 말하려는 누가의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되기를 대망한 사람들이고(사 52:15) 왕들 가운데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왕들은 옛계약을 신뢰한 자들로서 선지자들의 계시를 받아들여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기를 열망했었다(시 110:1).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를 보지 못했고 구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복음의 선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보고 들었으니 복된 자들이 아닐수 없다(2:30;히 11:13;벧전 1:10,11).
카이 이두 노미코스 티스 아네스테 에크페이라존 아우톤 레곤 디다스칼레 티 포이에사스 조엔 아이오니온 클레로노메소
개역개정,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새번역,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우리말성경,25 한 율법학자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가톨릭성경,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어NIV,25 On one occasion an expert in the law stood up to test Jesus. "Teacher," he asked,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영어NASB,25 And a lawyer stood up and put Him to the test, saying, "Teacher, what shall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영어MSG,25 Just then a religion scholar stood up with a question to test Jesus. "Teacher, what do I need to do to get eternal life?"
영어NRSV,25 Just then a lawyer stood up to test Jesus. "Teacher," he said, "what must I do to inherit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ιδου νομικος τις ανεστη εκπειραζων αυτον και λεγων διδασκαλε τι ποιησας ζωην αιωνιον κληρονομησω
라틴어Vulgate,25 et ecce quidam legis peritus surrexit temptans illum et dicens magister quid faciendo vitam aeternam possidebo
히브리어Modern,25 והנה אחד מבעלי התורה קם לנסותו ויאמר מורה מה אעשה ואירש חיי עולם׃
성 경: [눅10:25]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율법사가 일어나 - 마가는 '서기관'으로 기록한(막 12:28) 반면 마태와(마 22:35) 누가는 '율법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직분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보면 될 것이다. 율법사는 유대 율법의 전문가를 말한다(9:22 주석 참조). 이 율법사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한편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어느 장소, 어느 시점에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 마가복음이나(막12:28-34) 마태복음과(마 22:35-40)과 연결지어 생각할 때 이 이야기가 24절에 바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막 11:27을 고려하여 이 이야기가 예루살렘이나 그 근처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보는 그룬트만(Grundmann)의 견해는 일리가 있다.
시험하여...영생을 얻으리이까 - 마가복음에서는(막 12:28) 율법사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 감탄한 나머지 진지한 물음의 자세로 질문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구절에서의 '시험'(test, NIV)은 강한 악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라기 보다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종교 지도자가 공식적 직함을 받지 않은 예수께서 올바른 대답을 줄 수 있는가를 보려고 물어본 것으로 이해된다. 계속되는 질문 가운데 '영생'(eternal life, NIV)은 '내세에 적합한 생명'(Tyndale) 또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리킨다(18:18,24,25,29;요 3:3,5,15,16,36). 한편 여기 율법사의 질문은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선행을 물은 어떤 부자 관원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18:18).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신 하나님의 신령한 뜻을 깨닫지 못한 채 율법의 자구적(字句的) 해석과 적용에만 몰두했던 사람으로서는 본절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러울 따름이었다.
호 데 에이펜 프로스 아우톤 엔 토 노모 티 게그랖타이 포스 아나기노스케이스
개역개정,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새번역,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우리말성경,2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돼 있느냐?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가톨릭성경,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영어NIV,26 "What is written in the Law?" he replied. "How do you read it?"
영어NASB,26 And He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How does it read to you?"
영어MSG,26 He answered, "What's written in God's Law? How do you interpret it?"
영어NRSV,26 He said to him, "What is written in the law? What do you read there?"
헬라어신약Stephanos,26 ο δε ειπεν προς αυτον εν τω νομω τι γεγραπται πως αναγινωσκεις
라틴어Vulgate,26 at ille dixit ad eum in lege quid scriptum est quomodo legis
히브리어Modern,26 ויאמר אליו מה כתוב בתורה ואיך אתה קורא׃
성 경: [눅10:26]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율법에...어떻게 읽느냐 - 결국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은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마 22:36;막 12:28)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태복음(마 22:37-40), 마가복음(막 12:30-31)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비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반문에 대한 율법사의 대답 형태로 전개된다. 아무튼 예수께서는 율법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율법으로 인도하고 있는데 이는 율법사의 이해의 범주에 맞도록 설명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율법사들은 모세 오경의 핵심 내용을 담은 경문을 손목이나 이마에 붙이고 다녔는데, 아마 예수는 이 경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을 것이다.
호 데 아포크리데이스 에이펜 아가페세이스 퀴리온 톤 데온 수 엨스 홀레스 테스 카르디아스 수 카이 엔 홀레 테 프쉬케 수 카이 엔 홀레 테 이스퀴이 수 카이 엔 홀레 테 디아노이아 수 카이 톤 플레시온 수 호스 세아우톤
개역개정,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새번역,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 ㉣신 6:5 ㉤레 19:18
우리말성경,27 율법학자가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레19:18;신6:5
가톨릭성경,27 그가 “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영어NIV,27 He answer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영어NASB,27 And he answere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영어MSG,27 He said, "That you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passion and prayer and muscle and intelligence--and that you love your neighbor as well as you do yourself."
영어NRSV,27 He answere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헬라어신약Stephanos,27 ο δε αποκριθεις ειπεν αγαπησεις κυριον τον θεον σου εξ ολης της καρδιας σου και εξ ολης της ψυχης σου και εξ ολης της ισχυος σου και εξ ολης της διανοιας σου και τον πλησιον σου ως σεαυτον
라틴어Vulgate,27 ille respondens dixit diliges Dominum Deum tuum ex toto corde tuo et ex tota anima tua et ex omnibus viribus tuis et ex omni mente tua et proximum tuum sicut te ipsum
히브리어Modern,27 ויען ויאמר ואהבת את יהוה אלהיך בכל לבבך ובכל נפשך ובכל מאדך ובכל מדעך ואת רעך כמוך׃
성 경: [눅10:27]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네 마음을 다하며...사랑하고 - 이 말씀은 신 6:5의 인용으로 십계명의 전반부 즉 대신(對神) 관계에 관한 내용을 주석적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유대교의 중심을 형성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일편 단심의 충성과 사랑을 요약한 것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 관계에 의해 피차간에 충성과 사랑의 관계를 지켜야함을 주장하는 신명기 학파의 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율법사들은 신 6:7-9에 의거하여 이 중요한 말씀을 소가죽에 기록하여 호부(護符)처럼 늘 지니고 다녔다.
네 이웃을...사랑하라 - 이 말씀은 레 19:18의 인용으로 십계명의 후반부 즉 대인(對人) 관계에 관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이웃'(*, 플레시온)이라는 단어는 유대적 어법상 집단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동족, 같은 종교권에 있는 사람, 혹은 같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배타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이 단어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뒤에 이어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에 대한 유대교적 관점을 파기하는 의미가 있다.
애이펜 데 아우토 오르도스 아페크리데스 투토 포이에이 카이 제세
개역개정,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새번역,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우리말성경,2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면 네가 살 것이다.”
가톨릭성경,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영어NIV,28 "You have answered correctly," Jesus replied. "Do this and you will live."
영어NASB,28 And He sai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DO THIS AND YOU WILL LIVE."
영어MSG,28 "Good answer!" said Jesus. "Do it and you'll live."
영어NRSV,28 And he said to him, "You have given the right answer; do this, and you will live."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ιπεν δε αυτω ορθως απεκριθης τουτο ποιει και ζηση
라틴어Vulgate,28 dixitque illi recte respondisti hoc fac et vives
히브리어Modern,28 ויאמר אליו כן השיבות עשה זאת וחיה׃
성 경: [눅10:28]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이를 행하라"(*, 투토 포이에이)는 현재 명령법으로서 행위의 계속성을 강조한다. 행함에 대한 결과는 '살리라'는 것인데 이러한 표현은 레 18:5;갈 3:12에도 있다. 혹자는 여기서 율법과 복음, 행함과 믿음을 구분하는 차원에서 예수의 인정(認定)과 행하라는 명령이 행위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기도 하는데(Tyndale) 본문의 문맥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한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이 율법사가 요약한 율법의 핵심은 옳다고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으며(마 22:37-39;막 12:30,31)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바 있기 때문이다(마7:21,24;25:31-46).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이 율법사의 율법 지식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가 물음을 묻는 저의(底意)와 그의 위선을 아셨다. 그렇기때문에 예수의 대답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율법의 요구를 온전한 의미에서 충족시키기란 불가하며 따라서 율법 준수를 위해서는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교훈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호 데 델론 디카이오사이 헤아우톤 에이펜 프로스 톤 예순 카이 티스 에스틴 무 플레시온
개역개정,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새번역,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우리말성경,29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이려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가톨릭성경,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영어NIV,29 But he wanted to justify himself, so he asked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영어NASB,29 But wishing to justify himself, he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영어MSG,29 Looking for a loophole, he asked, "And just how would you define 'neighbor'?"
영어NRSV,29 But wanting to justify himself, he asked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 δε θελων δικαιουν εαυτον ειπεν προς τον ιησουν και τις εστιν μου πλησιον
라틴어Vulgate,29 ille autem volens iustificare se ipsum dixit ad Iesum et quis est meus proximus
히브리어Modern,29 והוא חפץ להצטדק ויאמר אל ישוע ומי הוא רעי׃
성 경: [눅10:29]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소위 율법사가 사람들 앞에서 제기한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자 2단계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웃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아마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이웃의 개념을 과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율법사가 생각하고 있는 이웃의 개념 속에는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이 제외된다는 것을 아셨으므로 이 사람의 질문에 대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휘폴라본 호 예수스 에이펜 안드로포스 티스 카테바이넨 아포 예루살렘 에이스 예리코 카이 레스타이스 페리에페센 호이 카이 에크뒤산테스 아우톤 카이 플레가스 에피덴테스 아펠돈 아펜테스 헤미다네
개역개정,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새번역,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우리말성경,30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들을 만나게 됐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가톨릭성경,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영어NIV,30 In reply Jesus said: "A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when he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They stripped him of his clothes, beat him and went away, leaving him half dead.
영어NASB,30 Jesus replied and said, "A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and fell among robbers, and they stripped him and beat him, and went away leaving him half dead.
영어MSG,30 Jesus answered by telling a story. "There was once a man traveling from Jerusalem to Jericho. On the way he was attacked by robbers. They took his clothes, beat him up, and went off leaving him half-dead.
영어NRSV,30 Jesus replied, "A man was going down from Jerusalem to Jericho, and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who stripped him, beat him, and went away, leaving him half dead.
헬라어신약Stephanos,30 υπολαβων δε ο ιησους ειπεν ανθρωπος τις κατεβαινεν απο ιερουσαλημ εις ιεριχω και λησταις περιεπεσεν οι και εκδυσαντες αυτον και πληγας επιθεντες απηλθον αφεντες ημιθανη τυγχανοντα
라틴어Vulgate,30 suscipiens autem Iesus dixit homo quidam descendebat ab Hierusalem in Hiericho et incidit in latrones qui etiam despoliaverunt eum et plagis inpositis abierunt semivivo relicto
히브리어Modern,30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איש אחד ירד מירושלים ליריחו ונפל בידי שדדים והם הפשיטהו וגם פצעהו ויעזבו אותו בין חיים למות וילכו להם׃
성 경: [눅10:30]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 예루살렘은 해발 760m의 고지대이며 여리고는 해면하(海面下) 250m의 저지대로 두 지역간의 거리는 약 36km정도였으며 길이 가파르고 길 옆에는 암석들이 많아 도둑들이 자주 출몰하였다. 제롬(Jerome)에 의하면 A.D.4세기말까지도 그 길에는 강도떼들이 횡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길을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것으로 예수의 말씀은 시작된다. 그 사람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유대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민족적 구분을 초월하고자 하시는 의도를 암시한다.
옷을 벗기고...거반 죽은 것을 - 길을 가던 여행자는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 심지어 강도들은 옷까지 빼앗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심한 폭행을 가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상태에서 버려두고 떠나갔다. 혹자는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는 배척당했으나 사마리아인들로부터는 영접받은 예수라고 하고 주막은 교회를 뜻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해석(Allegory)일 뿐,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의 의미는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였다고 보아도 무난하다.
카타 슁퀴리안 데 히야류스 티스 카테바이넨 엔 테 호도 에케이네 카이 이돈 아우톤 안티파렐덴
개역개정,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새번역,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우리말성경,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을 내려가는데 그 사람을 보더니 반대쪽으로 지나갔다.
가톨릭성경,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영어NIV,31 A priest happened to be going down the same road, and when he saw the man,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영어NASB,31 "And by chance a priest was going down on that road, and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영어MSG,31 Luckily, a priest was on his way down the same road, but when he saw him he angled across to the other side.
영어NRSV,31 Now by chance a priest was going down that road; and when he saw him,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
헬라어신약Stephanos,31 κατα συγκυριαν δε ιερευς τις κατεβαινεν εν τη οδω εκεινη και ιδων αυτον αντιπαρηλθεν
라틴어Vulgate,31 accidit autem ut sacerdos quidam descenderet eadem via et viso illo praeterivit
히브리어Modern,31 ויקר המקרה כי ירד כהן אחד בדרך ההוא וירא אתו ויעבר מעליו׃
성 경: [눅10:31]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마침 한 제사장이...피하여 - 여기서 '마침'(*, 카타슁퀴리안)은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우연히'라는 뜻이다. 이 말은 강도 당한 사람이 쓰러져 있던 곳이 외진 곳이며 그가 오래도록 구조를 받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이 길을 지나간 제사장의 주 임무는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성전에서의 제사장의 의무 기간을 마치고 여리고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당시 여리고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피하여 지나가고'(*, 안티파렐덴)는 반대편의 길로 돌아가는것을 말해주는 바 제사장의 '도피'를 분명하게 확인해 주는 것이다. 제사장이 피하여 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자기도 강도 떼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Marshall)이거나 (2)그 사람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시체를 만져 자기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율법 준수의 정신 때문(레 21:1-3)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사 여부를 획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제사장의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결국 이 제사장은 절실히 도움이 요청되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며, 그것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도, 백성들에게 봉사할 직무를 맡은 제사장으로서도(민 18:1-32) 용납될 수 없는 과오였다.
호모이오스 데 카이 레위테스 게노메노스 카타 톤 토폰 엘돈 카이 이돈 안티파렐덴
개역개정,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새번역,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우리말성경,32 이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더니 반대쪽으로 지나갔다.
가톨릭성경,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영어NIV,32 So too, a Levite, when he came to the place and saw him, passed by on the other side.
영어NASB,32 "Likewise a Levite also, when he came to the place and saw him, passed by on the other side.
영어MSG,32 Then a Levite religious man showed up; he also avoided the injured man.
영어NRSV,32 So likewise a Levite, when he came to the place and saw him, passed by on the other sid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ομοιως δε και λευιτης γενομενος κατα τον τοπον ελθων και ιδων αντιπαρηλθεν
라틴어Vulgate,32 similiter et Levita cum esset secus locum et videret eum pertransiit
히브리어Modern,32 וכן גם איש לוי פגע במקום ויגש וירא אתו ויעבר מעליו׃
성 경: [눅10:32]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한 레위인도 - 레위인도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성별된 지파였다(민 18:1-32). 레위인들은 제사장보다는 지위가 낮지만 유대의 종교적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인만큼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이 레위인은 앞서 지나간 제사장과는 달리 그 사람에게 다가가 보기는 하지만 역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떠나가 버린다.
사마리테스 데 티스 호듀온 엘덴 캍 아우톤 카이 이돈 에스플랑크니스데
개역개정,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새번역,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우리말성경,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가톨릭성경,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영어NIV,33 But a Samaritan, as he traveled, came where the man was; and when he saw him, he took pity on him.
영어NASB,33 "But a Samaritan, who was on a journey, came upon him; and when he saw him, he felt compassion,
영어MSG,33 "A Samaritan traveling the road came on him. When he saw the man's condition, his heart went out to him.
영어NRSV,33 But a Samaritan while traveling came near him; and when he saw him, he was moved with pity.
헬라어신약Stephanos,33 σαμαρειτης δε τις οδευων ηλθεν κατ αυτον και ιδων αυτον εσπλαγχνισθη
라틴어Vulgate,33 Samaritanus autem quidam iter faciens venit secus eum et videns eum misericordia motus est
히브리어Modern,33 ואיש שמרוני הלך בדרך ויבא עליו וירא אתו ויהמו רחמיו׃
성 경: [눅10:33]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불쌍히 여겨 - 앞의 두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세번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 더구나 앞의 두 사람은 유대인 중에도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으며 당시 사마리아인은 그들에 비하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부류에 속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킴으로써 교만하고 완악한 유대주의자들과 강한 대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반목에 대해서는 9:52,53의 주석을 참조하기 바란다.
카이 프로셀돈 카테데센 타 트라우마타 아우투 에피케온 엘라이온 카이 오이논 에피비바사스 데 아우톤 에피 토 이디온 크테노스 에가겐 아우톤 에이스 판도케이온 카이 에페멜레데 아우투
개역개정,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새번역,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우리말성경,34 가까이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바르고 싸맸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에 데려가 잘 보살펴 주었다.
가톨릭성경,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영어NIV,34 He went to him and bandaged his wounds, pouring on oil and wine. Then he put the man on his own donkey, took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영어NASB,34 and came to him and bandaged up his wounds, pouring oil and wine on them; and he put him on his own beast, and brought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영어MSG,34 He gave him first aid, disinfecting and bandaging his wounds. Then he lifted him onto his donkey, led him to an inn, and made him comfortable.
영어NRSV,34 He went to him and bandaged his wounds, having poured oil and wine on them. Then he put him on his own animal, brought him to an inn, and took care of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4 και προσελθων κατεδησεν τα τραυματα αυτου επιχεων ελαιον και οινον επιβιβασας δε αυτον επι το ιδιον κτηνος ηγαγεν αυτον εις πανδοχειον και επεμεληθη αυτου
라틴어Vulgate,34 et adpropians alligavit vulnera eius infundens oleum et vinum et inponens illum in iumentum suum duxit in stabulum et curam eius egit
히브리어Modern,34 ויגש אליו ויחבש את פצעיו ויסוכם בשמן ויין ויעלהו על בהמתו ויוליכהו אל המלון ויכלכלהו׃
성 경: [눅10:34]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 사마리아인은 먼저 응급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당시 기름과 포도주는 상처의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대개 기름은 상처의 통증을 식히고 포도주는 살균 역할을 한다(Robertson). 그는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바른 후 싸매어 주었다. 이 여행자가 비상시를 대비해 붕대를 가지고 다녔다면 다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의 옷이라도 찢어서 상처를 싸매어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 '짐승'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테노스'(*)는 타고 다니거나 짐을 실을 수 있는 짐승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이 짐승은 나귀였을 것이다(Lenski). 그리고 '주막'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도케이온'(*)은 '모든'을 뜻하는 '파스'(*)와 '영접하다'를 뜻하는 '데코마이'(*)의 합성어로 많은 사람을 유치할 수 있는 대규모의 여관을 말한다. 탈진한 환자를 자신의 나귀에 태워 여관까지 데려온 사마리아인은 계속해서 그를 돌보아 주었다. 여기서 '돌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딤전 3:5에서 교회를 돌보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는 사마리아인이 환자를 '책임적으로' 돌보아 주었음을 시사한다.
카이 에피 텐 아우리온 엨발론 에도켄 뒤오 데나리아 토 판도케이 카이 에이펜 에피멜레데티 아우투 카이 호 티 안 프로스다파네세스 에고 엔 토 에파네르케스다이 메 아포도소 소이
개역개정,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새번역,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우리말성경,35 이튿날 사마리아 사람은 여관 주인에게 2데나리온을 주며 ‘저 사람을 잘 돌봐 주시오.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와서 갚겠소’라고 말했다.
가톨릭성경,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35 The next day he took out two silver coins and gave them to the innkeeper. 'Look after him,' he said, 'and when I return, I will reimburse you for any extra expense you may have.'
영어NASB,35 "On the next day he took out two denarii and gave them to the innkeeper and said, 'Take care of him; and whatever more you spend, when I return I will repay you.'
영어MSG,35 In the morning he took out two silver coins and gave them to the innkeeper, saying, 'Take good care of him. If it costs any more, put it on my bill--I'll pay you on my way back.'
영어NRSV,35 The next day he took out two denarii, gave them to the innkeeper, and said, 'Take care of him; and when I come back, I will repay you whatever more you spend.'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επι την αυριον εξελθων εκβαλων δυο δηναρια εδωκεν τω πανδοχει και ειπεν αυτω επιμεληθητι αυτου και ο τι αν προσδαπανησης εγω εν τω επανερχεσθαι με αποδωσω σοι
라틴어Vulgate,35 et altera die protulit duos denarios et dedit stabulario et ait curam illius habe et quodcumque supererogaveris ego cum rediero reddam tibi
히브리어Modern,35 ולמחרת בנסעו הוציא שני דינרים ויתנם לבעל המלון ויאמר כלכל אותו ואת אשר תוסיף עוד להוציא עליו אני בשובי אשלמנו לך׃
성 경: [눅10:35]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튿날에 - 시리아어 시내역 본(Syraic Sinaitic)에는 "그 날 새벽에"(at dawn ofthe day)로 되어 있어 더 정확한 시점을 전해 주고있다. 이렇게 일찍 떠났다는 것은 그 여행객이 결코 제사장이나 레위인 보다 할 일이 없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돌보아 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사실 그는 새벽에 일찍 떠나야 할만큼 바쁜 사람이었으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바쁜 시간과 물질을 희생했던 것이다.
데나리온 둘 - 마 20:2에 의하면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며 역사가 폴리비우스(Polybius)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동시대 이탈리아(Italy)에서 하루 숙박비가 로마 제국 화폐로 1/32 데나리온이었다. 로마 제국 내에서 통용되던 화폐의 가치가 동일하였다고 볼 때 이 금액은 약 2개월 동안의 숙박비에 해당한다.
갚으리라 - 이 사마리아인은 완전한 이웃 사랑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되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일시적이며 충동적인 동기에 의해서 행해져서는 안되며 끝까지 완전하게 책임 의식(責任意識)을 가지고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성도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의 온전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요 13:1).
티스 투톤 톤 트리온 플레시온 도케이 소이 게고네나이 투 엠페손토스 에이스 투스 레스타스
개역개정,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새번역,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말성경,36 너는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가톨릭성경,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영어NIV,36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영어NASB,36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proved to be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robbers' hands?"
영어MSG,36 "What do you think? Which of the three became a neighbor to the man attacked by robbers?"
영어NRSV,36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the robbers?"
헬라어신약Stephanos,36 τις ουν τουτων των τριων δοκει σοι πλησιον γεγονεναι του εμπεσοντος εις τους ληστας
라틴어Vulgate,36 quis horum trium videtur tibi proximus fuisse illi qui incidit in latrones
히브리어Modern,36 ועתה מי מאלה השלשה היה בעיניך הרע לנפל בידי השדדים׃
성 경: [눅10:36]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누가...이웃이 되겠느냐 -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두 질문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전자에는 이웃의 개념을 범주적으로 제한하려는 의도(意圖)가 숨겨져 있는 반면 후자에는 전자의 제한적인 이웃 개념을 타파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예수의 질문의 의도는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자신의 이웃이 누군가를 미리 설정해 두기 보다는 스스로 이웃을 만들어 나가는 자세가 은혜받은 자들의 바른 태도이다.
호 데 에이펜 호 포이에사스 토 엘레오스 멭 아우투 에이펜 데 아우토 호 예수스 포류우 카이 쉬 포이에이 호모이오스
개역개정,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새번역,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우리말성경,37 율법학자가 대답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여라.”
가톨릭성경,37 율법 교사가 “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영어NIV,37 The expert in the law replied, "The one who had mercy on him." Jesus told him, "Go and do likewise."
영어NASB,37 And he said, "The one who showed mercy toward him." Then Jesus said to him, "Go and do the same."
영어MSG,37 "The one who treated him kindly," the religion scholar responded. Jesus said, "Go and do the same."
영어NRSV,37 He said, "The one who showed him mercy." Jesus said to him, "Go and do likewise."
헬라어신약Stephanos,37 ο δε ειπεν ο ποιησας το ελεος μετ αυτου ειπεν ουν αυτω ο ιησους πορευου και συ ποιει ομοιως
라틴어Vulgate,37 at ille dixit qui fecit misericordiam in illum et ait illi Iesus vade et tu fac similiter
히브리어Modern,37 ויאמר העשה עמו את החסד ויאמר אליו ישוע לך ועשה כן גם אתה׃
성 경: [눅10:37]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선한 사마리아 사람]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 율법사는 당연히 '사마리아인이니이다'로 대답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푼 자'라는 표현으로써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예수께서는이 비유를 통해 민족적, 인종적 제한을 두고 있는 유대인들의 이웃 개념을 타파하고 그들이 원수처럼 여기는 사마리아인도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려 하셨다. 그러나 그 율법사는 여전히 사마리아인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너도 이와같이 하라 - 이웃의 개념을 따져 묻는 율법사의 현학적(衒學的)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너무도 단순 명료하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는 예수의 권위있는 명령은 율법사의 교만과 위선을 꺾어버리는 위엄있는 말씀이다. 율법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율법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영육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당장 자비를 베푸는 사랑의 실천이다.
엔 데 토 포류에스다이 아우투스 아우토스 에이셀덴 에이스 코멘 티나 귀네 데 티스 오노마티 마르다 휘페뎈사토 아우톤
개역개정,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새번역,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우리말성경,38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한 마을에 이르시니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가톨릭성경,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영어NIV,38 As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on their way, he came to a village where a woman named Martha opened her home to him.
영어NASB,38 Now as they were traveling along, He entered a village; and a woman named Martha welcomed Him into her home.
영어MSG,38 As they continued their travel, Jesus entered a village. A woman by the name of Martha welcomed him and made him feel quite at home.
영어NRSV,38 Now as they went on their way, he entered a certain village, where a woman named Martha welcomed him into her home.
헬라어신약Stephanos,38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πορευεσθαι αυτους και αυτος εισηλθεν εις κωμην τινα γυνη δε τις ονοματι μαρθα υπεδεξατο αυτον εις τον οικον αυτης
라틴어Vulgate,38 factum est autem dum irent et ipse intravit in quoddam castellum et mulier quaedam Martha nomine excepit illum in domum suam
히브리어Modern,38 ויהי בנסעם ויבא אל כפר אחד ואשה אחת ושמה מרתא אספה אותו אל ביתה׃
성 경: [눅10:38]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마리아와 마르다]
길 갈 때에...한 촌에 - '길 갈 때에'라는 모호한 표현은 장소와 시점 그리고 앞부분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한 촌'이라는 표현 역시 누가가 장소에 대한 정확성에 집착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개괄적인 표현이다. 이 '한 촌'은 요 11:1과 12:1에 의하면 '베다니'라는 마을이며 이 마을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the Mount of Olives)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 예루살렘에서 3km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누가는 이 마을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아마 누가는 예수가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에서 사역한 것에 관해서는 이후에 언급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13:32,33; 17:11; 19:28).
마르다...영접하더라 - 마르다의 자연스러운 영접과 이어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예수와 그들이 초면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요 11:5). 이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이며 나사로의 동생이다(39절;요 11:19,20;12:2,3). 나사로는 죽었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살아난 일이 있으며(요 11, 12장) 마리아는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은 일이 있는데 그 만큼 이들 가족은 예수와 각별한 사이였다. 여기서는 예수를 영접하는 주체로 마르다가 등장하는데 우연히도 '마르다'(*)라는 이름은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아람어의 여성 명사이다. 성경에 그녀의 남편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으며 단지 마 26:6에 근거하여 그가 문둥이 시몬의 아내일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추측할수 있을 뿐이다.
카이 테데 엔 아델페 칼루메네 마리암 헤 카이 파라카데스데이사 프로스 투스 포다스 투 퀴리우 에쿠엔 톤 로곤 아우투
개역개정,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새번역,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우리말성경,39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주의 발 앞에 앉아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영어NIV,39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what he said.
영어NASB,39 She had a sister called Mary, who was seated at the Lord's feet, listening to His word.
영어MSG,39 She had a sister, Mary, who sat before the Master, hanging on every word he said.
영어NRSV,39 She had a sister nam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and listened to what he was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τηδε ην αδελφη καλουμενη μαρια η και παρακαθισασα παρα τους ποδας του ιησου ηκουεν τον λογο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39 et huic erat soror nomine Maria quae etiam sedens secus pedes Domini audiebat verbum illius
히브리어Modern,39 ולה היתה אחות ושמה מרים אשר ישבה לרגלי ישוע לשמע אל דברו׃
성 경: [눅10:39]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마리아와 마르다]
주의 발 아래 앉아...말씀을 듣더니 -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은 요 12장에서의 모습과 병행을 이룸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도 마르다는 예수를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요 12:2) 마리아는 예수 곁에서 그에게 향유를 붓는다(요 12:3). 여기서 '아래 앉아'(*, 파라카데스데이사)의 문자적 의미는 '곁에 앉다'로 제자가 스승의 발치에 앉아 교훈을 듣는 자세를 묘사하는 말이다(행 22:3). 이것은 마리아가 마치 학생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듯이 예수에게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 매우 열심이 있었음을 뜻한다. 이는 마리아의 태도를 묘사한 '듣더니'(*, 에쿠엔)가 미완료 능동태로 되어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 바 그녀는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은 채 열심히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경청하였던 것이다. 한편 마리아를 가리켜 '발 아래 여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그녀가 예수의 발 아래서 그의 말씀을 들었고(본절), 죽은 오라비를 위해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간구했고(요 11:32), 예수의 발 아래 앉아 그에게 향유(perfume, NIV)를 부었기 때문이다(요12:3).
헤 데 마르다 페리에스파토 페리 폴렌 디아코니안 에피스타사 데 에이펜 퀴리에 우 멜레이 소이 호티 헤 아델페 무 모넨 메 카텔리펜 디아코네인 에이페 운 아우테 히나 모이 쉬난틸라베타이
개역개정,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새번역,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말성경,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주여, 제 동생이 저한테만 일을 떠맡겼는데 왜 신경도 안 쓰십니까?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가톨릭성경,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40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all the preparations that had to be made. She came to him and asked, "Lord, don't you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the work by myself? Tell her to help me!"
영어NASB,40 But Martha was distracted with all her preparations; and she came up to Him and said, "Lord, do You not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all the serving alone? Then tell her to help me."
영어MSG,40 But Martha was pulled away by all she had to do in the kitchen. Later, she stepped in, interrupting them. "Master, don't you care that my sister has abandoned the kitchen to me? Tell her to lend me a hand."
영어NRSV,40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her many tasks; so she came to him and asked, "Lord, do you not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all the work by myself? Tell her then to help me."
헬라어신약Stephanos,40 η δε μαρθα περιεσπατο περι πολλην διακονιαν επιστασα δε ειπεν κυριε ου μελει σοι οτι η αδελφη μου μονην με κατελιπεν διακονειν ειπε ουν αυτη ινα μοι συναντιλαβηται
라틴어Vulgate,40 Martha autem satagebat circa frequens ministerium quae stetit et ait Domine non est tibi curae quod soror mea reliquit me solam ministrare dic ergo illi ut me adiuvet
히브리어Modern,40 ומרתא יגעה ברב שרותה ותגש ותאמר הלא תשים על לבך אדני אשר אחותי עזבתני לשרת לבדי אמר נא אליה ותעזר לי׃
성 경: [눅10:40]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마리아와 마르다]
마르다는...분주한지라 - 마르다의 바쁜 모습은 그녀가 예수께 대단한 정성을 쏟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분주한지라'(*, 페리에스파토)는 '사방에서 끌어당기다'는 의미로 그녀의 바쁜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생생하게 나타낸다. 이렇게 바쁜 마르다의 모습과 예수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조용히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마르다도 마리아처럼 예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그분이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 짐작된다.
명하사...도와주라 하소서 - 아마 마르다는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바쁘니 와서 도와 달라고 마리아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에 너무 열중인 나머지 그녀의 요청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마리아의 태도에 화가난 마르다는 마침내 예수에게 직접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마르다의 이의 제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1)자신이 그렇게 바쁜데도 불구하고 전혀 자기를 도우려 하지 않는 마리아에 대한 간접적인 책망이 있을 것이고,(2)그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예수의 무관심에 대한 원망이 있으며, (3)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 음식을 마련하는 자신의 판단과 행위가 가장 옳다고 하는 확신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만 듣고 있는 마리아에 비해 자기가 지금 얼마나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를 은연중 과시하려는 마르다의 생각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아포크리데이스 데 에이펜 아우테 호 퀴리오스 마르다 마르다 메림나스 카이 도뤼바제 페리 폴라
개역개정,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새번역,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우리말성경,41 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정신이 없구나.
가톨릭성경,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영어NIV,41 "Martha, Martha," the Lord answered, "you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영어NASB,41 But the Lord answered and said to her, " Martha, Martha, you are worried and bothered about so many things;
영어MSG,41 The Master said, "Martha, dear Martha, you're fussing far too much and getting yourself worked up over nothing.
영어NRSV,41 But the Lord answered her, "Martha, Martha, you are worried and distracted by many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41 αποκριθεις δε ειπεν αυτη ο ιησους μαρθα μαρθα μεριμνας και τυρβαζη περι πολλα
라틴어Vulgate,41 et respondens dixit illi Dominus Martha Martha sollicita es et turbaris erga plurima
히브리어Modern,41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לה מרתא מרתא את דאגת ומבהלת על הרבה׃
성 경: [눅10:41]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마리아와 마르다]
마르다야...염려하고 근심하나 -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에 걸쳐 부르는 이중 호격의 사용은 예수께서 마르다의 정성스런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염려하고'(*, 메림나스)라는 표현은 '흩어지다''나누어지다'는 의미의 헬라어 '메리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과도한 욕구로 인해 어지럽게 분열된 심적 상태를 나타낸다. 또한 '근심하나'(*, 도뤼바제)는 '문제를 야기시키다'는 뜻으로 이것 역시 자기가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께 대한 열심으로 말하면 마르다(Martha)나 마리아(Mary)가 매일반(每一般)이었다. 하지만 마르다는 육체적인 배고픔을 해소해 줄 먹을거리 보다는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생명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더 소중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했다(시 119:103-105).
헤노스 데 에스틴 크레이아 마리암 가르 텐 아가덴 메리다 엨셀렠사토 헤티스 우크 아파이레데세타이 아우테스
개역개정,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새번역,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우리말성경,42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했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영어NIV,42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and it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영어NASB,42 but only one thing is necessary, for Mary has chosen the good part, which sha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영어MSG,42 One thing only is essential, and Mary has chosen it--it's the main course, and won't be taken from her."
영어NRSV,42 there is need of only one thing. Mary has chosen the better part, which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헬라어신약Stephanos,42 ενος δε εστιν χρεια μαρια δε την αγαθην μεριδα εξελεξατο ητις ουκ αφαιρεθησεται απ αυτης
라틴어Vulgate,42 porro unum est necessarium Maria optimam partem elegit quae non auferetur ab ea
히브리어Modern,42 אבל אחת היא מן הצרך ומרים בחרה לה החלק הטוב אשר לא יקח ממנה׃
성 경: [눅10:42]
주제1: [확장되는 인자의 사역과 교훈]
주제2: [마리아와 마르다]
몇 가지만...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 본문은 해석이 난해한 구절로서 각 사본들에도 다양하게 표현되는 부분이다. 아무튼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몇 가지'와 '한가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둘 다 음식의 가지 수로 보는 견해. 이렇게 볼 때 예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즉 마르다는 너무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만들려 했기 때문에 바쁜 것이니만큼 음식의 가지 수를 몇 가지로 줄이거나 또는 한가지만 하여도 족하다는 것이다. (2)전자는 물질적인 것을, 후자는 영적인 것을 뜻한다고 본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접대 행위 자체보다는 영적인 것에 관해 가르쳤다는 디벨리우스의 견해에 따라 (2)의 견해(見解)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예수께서 물질적인 것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좋은 편을...빼앗기지 아니하리라 - 마리아로 하여금 자기를 돕도록 명하여 달라는 마르다의 요청은 거부되며 오히려 마르다가 마리아의 태도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대답이 주어진다. 예수를 섬기는 적절한 방법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물질로써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동참함으로써 섬기는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는 여인들의 위치가 가사 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자들도 복음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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