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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고린도후서 3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아르코메다 팔린 헤아우투스 쉬니스타네인 에 메 크레조멘 호스 티네스 쉬스타티콘 에피스톨론 프로스 휘마스 에 엨스 휘몬

 

개역개정,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새번역,1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치켜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장이나 여러분이 주는 추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우리말성경,1 우리가 또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가 여러분에게 추천서를 보내거나 여러분에게서 추천서를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톨릭성경,1 우리가 또 우리 자신을 내세우기 시작하려는 것처럼 들립니까? 아니면, 우리도 어떤 사람들처럼 여러분에게 내보일 추천서나 여러분이 써 주는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영어NIV,1 Are we beginning to commend ourselves again? Or do we need, like some people, letters of recommendation to you or from you?
영어NASB,1 Are we beginning to commend ourselves again? Or do we need, as some, letters of commendation to you or from you?
영어MSG,1  Does it sound like we're patting ourselves on the back, insisting on our credentials, asserting our authority? Well, we're not. Neither do we need letters of endorsement, either to you or from you.
영어NRSV,1 Are we beginning to commend ourselves again? Surely we do not need, as some do, letters of recommendation to you or from you, do we?
헬라어신약Stephanos,1 αρχομεθα παλιν εαυτους συνιστανειν ει μη χρηζομεν ως τινες συστατικων επιστολων προς υμας η εξ υμων συστατικων
라틴어Vulgate,1 incipimus iterum nosmet ipsos commendare aut numquid egemus sicut quidam commendaticiis epistulis ad vos aut ex vobis
히브리어Modern,1 הנחל עוד לשבח עצמנו האם נצטרך כמקצת אנשים לאגרות אליכם או מכם המזכירות אתנו לשבח׃


 

성 경: [고후3:1]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 본절의 `아니오'라는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의 이면에는 바울에 대한 두 가지 비난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지나치게 되풀이하여 선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이 천거서를 받지 못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바울에 대한 이런 도전은 적대자들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일에 열을 올리며 천거서도 받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비난함으로써 자기들의 거짓됨을 은폐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바울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어떤 사람 -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선교사들로서 누가 보아도 현혹당하기 쉬운, 찬사로 가득찬 추천서를 소지(所持)하고 있었고, 바울과 아무런 상관없이 고린도에 와서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였던 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 이들은 2:17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자들의 범주에 들 것이다. 혹자는 이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적인 교인들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일 것이라고 본다(Harris).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된 후에도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근본이라고 믿었던 자들로, 율법보다 믿음을 중요시했던 바울을 못마땅히 여겼을 것이다.

󰃨 천거서 - 이것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일종의 소개장으로 어떤 사람의 직분과 권한에 대한 위임장 또는 신임장 역할을 하였다(9:2;18:27;고전 16:3, 10).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바울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울이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그의 사도직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이다(26:12-18). 여하튼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가지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악선전을 하고 다녔음에 틀림없다. 바울은 이 추천서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도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서를 이용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8:16-24;16:1, 2;고전 16:3, 10,11).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칭찬과 승인과 위임보다 하나님의 승인이 훨씬 더 우위에있고 또한 한통의 추천서보다는 사도 자신의 깨끗한 양심과 성도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에 사도로서의 그의 진정성(眞正性)이 확인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어디서 추천서를 얻어다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여주거나, 그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헤 에피스톨레 헤몬 휘메이스 에스테 엥게그람메네 엔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헤몬 기노스코메네 카이 아나기노스코메네 휘포 판톤 안드로폰

 

개역개정,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새번역,2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들의'
우리말성경,2 여러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읽고 있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우리의 편지입니다. 
가톨릭성경,2 우리의 추천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이 추천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며 또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NIV,2 You yourselves are our letter, written on our hearts, known and read by everybody.
영어NASB,2 You are our letter, written in our hearts, known and read by all men;
영어MSG,2  You yourselves are all the endorsement we need. Your very lives are a letter that anyone can read by just looking at you.
영어NRSV,2 You yourselves are our letter, written on our hearts, to be known and read by all;
헬라어신약Stephanos,2 η επιστολη ημων υμεις εστε εγγεγραμμενη εν ταις καρδιαις ημων γινωσκομενη και αναγινωσκομενη υπο παντων ανθρωπων
라틴어Vulgate,2 epistula nostra vos estis scripta in cordibus nostris quae scitur et legitur ab omnibus hominibus
히브리어Modern,2 אתם אגרתנו הכתובה בלבבנו ונודעה ונקראה לכל אדם׃


 

성 경: [고후3:2]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 고전 9:2에서 이와 유사한 의미의 구절이 발견된다. 거기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무시한 자들에게 그들이 바로 자신의 전도사역의 열매임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사도권을 논증한 바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본절에서도 동일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앞절의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추천서와 자신의 마음속에 고린도 교인들로 인해 새겨진 추천서를 대조시키고 있다. 이것은 몇가지 점에서 비교된다. (1) 적대자들이 지니고 있는 추천서는 파피루스 종이에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것은 마음에 쓰여진 것이다. (2) 적대자들의 추천서는 잉크로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것이다(3). (3) 적대자들이 가진 추천서는 종이에 쓰여진 것이므로 몇몇 제한된 사람에게만 보여질 수 있으나 바울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 마음에 썼고 - 혹자는 이 구절에서 렘 31:33의 새 계약 즉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가 암시되어 있다고 본다(Barrett). 이것은 다음 절(3)'돌비''육의 심비'의 대조와 연관시켜 볼 때 적절한 제시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천거서에 대한 논쟁을 `율법과 복음', '육과 영'이라는 신학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파네루메노이 호티 에스테 에피스톨레 크리스투 디아코네데이사 휲 헤몬 앙게그람메네 우 멜라니 알라 프뉴마티 데우 존토스 우크 엔 플랔신 리디나이스 알 엔 플랔신 카르디아이스 사르키나이스

 

개역개정,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새번역,3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 여러분은 우리의 섬김을 통해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이것은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체의 마음 판에 쓴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
영어NIV,3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from Christ, the result of our ministry,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s.
영어NASB,3 being manifested that you are a letter of Christ, cared for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s.
영어MSG,3  Christ himself wrote it--not with ink, but with God's living Spirit; not chiseled into stone, but carved into human lives--and we publish it.
영어NRSV,3 and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of Christ, prepa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s.
헬라어신약Stephanos,3 φανερουμενοι οτι εστε επιστολη χριστου διακονηθεισα υφ ημων εγγεγραμμενη ου μελανι αλλα πνευματι θεου ζωντος ουκ εν πλαξιν λιθιναις αλλ εν πλαξιν καρδιας σαρκιναις
라틴어Vulgate,3 manifestati quoniam epistula estis Christi ministrata a nobis et scripta non atramento sed Spiritu Dei vivi non in tabulis lapideis sed in tabulis cordis carnalibus
히브리어Modern,3 כי בידוע שאתם אגרת המשיח ערוכה על ידי שרותנו כתובה לא בדיו כי אם ברוח אלהים חיים ולא על לוחות אבן כי אם על לוחות בשר הלב׃


 

성 경: [고후3:3]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 - 본절은 적대자들의 천거서가 사람에게서 유래한 반면 바울의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바울의 사도직이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가시적(可視的)인 증거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의 사역(事役)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으로 세움 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의 '그리스도의 편지'(*, 에피스톨레 크리스투)에서 '그리스도의'는 표면상 소유격이지만 실제로는 주격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라는 점을 말해준다(R.Martin).

󰃨 돌비...심비 -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먹으로 쓰인 천거서를 가지고 율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에 분열을 일으키지만,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추천서를 가지고 있고 복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하나님께서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수여한 옛 계명에(24:12) 매여있는 반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 즉 새 계명을 새겨 넣은 것이다(31:33;11:19;36:26). 이로써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제기된 추천장 문제는 바울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적대자들은 율법을 강요했으나 바울은 복음을 선포했다는 점과, 적대자들은 분열이라는 악한 열매를 맺었으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해진다.

 

 

페포이데신 데 토이아우텐 에코멘 디아 투 크리스투 프로스 톤 데온

 

개역개정,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새번역,4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말성경,4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대해 이와 같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4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NIV,4 Such confidence as this is ours through Christ before God.
영어NASB,4 And such confidence we have through Christ toward God.
영어MSG,4  We couldn't be more sure of ourselves in this--that you, written by Christ himself for God, are our letter of recommendation.
영어NRSV,4 Such is the confidence that we have through Christ toward God.
헬라어신약Stephanos,4 πεποιθησιν δε τοιαυτην εχομεν δια του χριστου προς τον θεον
라틴어Vulgate,4 fiduciam autem talem habemus per Christum ad Deum
히브리어Modern,4 וכזה בטחוננו באלהים על ידי המשיח׃


 

성 경: [고후3:4]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 본문은 바울이 결코 자화자찬하거나, 현상적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서 자신의 영광을 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였으나 자신의 확신의 근거가 자신의 재능이나 성결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의 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심령 속에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그것은 인간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주 대하여 말한 심정에서의 확신이요, 비판의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확신이다"고 하였다(F. G. Carver).

 

 

우크 호티 앞 헤아우톤 히카노이 에스멘 로기사스다이 티 호스 엨스 헤아우톤 알 헤 히카노테스 헤몬 에크 투 데우

 

개역개정,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새번역,5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우리말성경,5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스스로 무엇인가 해냈다고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영어NIV,5 Not that we are competent in ourselves to claim anything for ourselves, but our competence comes from God.
영어NASB,5 Not that we are adequate in ourselves to consider anything as coming from ourselves, but our adequacy is from God,
영어MSG,5  We wouldn't think of writing this kind of letter about ourselves. Only God can write such a letter.
영어NRSV,5 Not that we are competent of ourselves to claim anything as coming from us; our competence is from God,
헬라어신약Stephanos,5 ουχ οτι ικανοι εσμεν αφ εαυτων λογισασθαι τι ως εξ εαυτων αλλ η ικανοτης ημων εκ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5 non quod sufficientes simus cogitare aliquid a nobis quasi ex nobis sed sufficientia nostra ex Deo est
히브리어Modern,5 יען אשר לא נוכל אנחנו לדין דין מעצמנו כי יכלתנו מאת האלהים היא׃


 

성 경: [고후3:5]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우리의 민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 바울은 자신의 확신이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자기를 통해 일어난 모든 능력의 원천(源泉)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의식하여 자기의 겸손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4:13). 한편 혹자는 본절이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랴'(2:11)는 구약의 구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Martin). 실로 하나님 존전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며 그때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을 운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나,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전능자(1:20;21:15;1:24)이시기 때문이다.

 

 

호스 카이 히카노센 헤마스 디아코누스 카이네스 디아데케스 우 그람마토스 알라 프뉴마토스 토 가르 그람마 아포크텐네이 토 데 프뉴마 조오포이에이

 

개역개정,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새번역,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말성경,6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문자가 아니라 영으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도록 하셨습니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영어NIV,6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영어NASB,6 who also made us adequate as servants of a new covenant,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영어MSG,6  His letter authorizes us to help carry out this new plan of action. The plan wasn't written out with ink on paper, with pages and pages of legal footnotes, killing your spirit. It's written with Spirit on spirit, his life on our lives!
영어NRSV,6 who has made us competent to be ministers of a new covenant, not of letter but of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6 ος και ικανωσεν ημας διακονους καινης διαθηκης ου γραμματος αλλα πνευματος το γαρ γραμμα αποκτεινει το δε πνευμα ζωοποιει
라틴어Vulgate,6 qui et idoneos nos fecit ministros novi testamenti non litterae sed Spiritus littera enim occidit Spiritus autem vivificat
히브리어Modern,6 אשר הכשיר אתנו למשרתי ברית חדשה לא של האותיות אלא של הרוח כי האות ימית והרוח יחיה׃


 

성 경: [고후3:6]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일꾼]

󰃨 새 언약의 일군 - '돌비와 심비'의 대조(3)'율법과 복음'의 대비를 나타낸다는 것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바울은 자신을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옛 언약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적대자들과 자신을 뚜렷이 구별시키고 있다.

󰃨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 '의문'(*, 그람마)은 본래 알파벳의 '문자'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차 `기록된 것' '문서'''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되었다. 이 말이 본문에서 뜻하는 바는 '율법'이라고 할 수있다. 반면 ''(*,프뉴마)은 썩어질 육과 대비되는 `영혼', 혹은 '생명'을 뜻하며 본문에서는 `복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바울은 본문에서 '의문'''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통해 '옛 언약''새 언약'을 대비시키고 있음을 알수 있다. 우리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들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 시킬 수 있다. (1) 적응 대상에 있어서. 옛 언약은 육적 이스라엘(19:5, 6)에 적용됨로써 민족적 한계를 갖는 반면, 새 언약은 영적 이스라엘, 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됨으로써 민족적 한계를 넘어선다. (2) 언약의 성립 과정에 있어서. 옛언약은 하나님께 대해 순종을 맹세하고 피의 희생제사를 드림으로써 성립된 반면,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써 성립되었다. (3) 언약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옛 언약은 행함으로 하나 새 언약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한다(10:9, 10;10:39). (4)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언약의 결과에 있어서. 옛언약은 죽음을 낳지만 새 언약은 생명을 낳는다. 따라서 옛 언약에 대해 새 언약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시간적인 차이를 넘어 완전한 질적 차이를 가진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의문''''인간적인 것''신적(神的)인 것'의 대비로 이해하기도 한다(Barrett). 전자는 삶의 중심을 인간에 둠으로 인해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되고 후자는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생명을 얻는것이다. 또한 칼빈(Calvin)'의문'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외적인 설교'를 뜻하고, ''이란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 속에 실제로 작용하는 '생명력있는 가르침'을 뜻한다고 본다.

 

 

에이 데 헤 디아코니아 투 다나투 엔 그람마신 엔테튀포메네 리도이스 에게네데 엔 돜세 호스테 메 뒤나스다이 아테니사이 투스 휘우스 이스라엘 에이스 토 프로소폰 모위세오스 디아 텐 돜산 투 프로소푸 아우투 텐 카타르구메넨

 

개역개정,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새번역,7 돌판에다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그 광채 때문에,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직분에도 이러한 영광이 따랐는데,
우리말성경,7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돌에 새긴 문자의 직분도 영광스러워 모세 얼굴에 나타난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얼굴을 주목할 수 없었다면 
가톨릭성경,7 돌에 문자로 새겨 넣은 죽음의 직분도 영광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사라질 것이기는 하였지만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영어NIV,7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
영어NASB,7 But if the ministry of death, in letters engraved on stones, came with glory, so that the sons of Israel could not look intent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the glory of his face, fading as it was,
영어MSG,7  The Government of Death, its constitution chiseled on stone tablets, had a dazzling inaugural. Moses' face as he delivered the tablets was so bright that day (even though it would fade soon enough) that the people of Israel could no more look right at him than stare into the sun.
영어NRSV,7 Now if the ministry of death, chiseled in letters on stone tablets, came in glory so that the people of Israel could not gaze at Moses' face because of the glory of his face, a glory now set aside,
헬라어신약Stephanos,7 ει δε η διακονια του θανατου εν γραμμασιν εντετυπωμενη εν λιθοις εγενηθη εν δοξη ωστε μη δυνασθαι ατενισαι τους υιους ισραηλ εις το προσωπον μωσεως δια την δοξαν του προσωπου αυτου την καταργουμενην
라틴어Vulgate,7 quod si ministratio mortis litteris deformata in lapidibus fuit in gloria ita ut non possent intendere filii Israhel in faciem Mosi propter gloriam vultus eius quae evacuatur
히브리어Modern,7 ואם שרות המות החרות באותיות על האבן נראה בכבוד עד שלא יכלו בני ישראל להביט אל פני משה מפני כבוד פניו העמד להבטל׃



성 경: [고후3:7]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의문의 직분 없어질 영광 - 바울의 논의의 주제가 언약에 관한 것에서 직분에 관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 본절에 묘사되고 있는 장면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석판을 수여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오는 출34:29-35의 장면이다. 그 논점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율법을 선포하는 직분을 부여받은 모세도 그 직분으로 인한 영광 때문에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전파할 직분을 가진 바울의 영광은 더할 나위 없이 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돌에 새긴 것' '율법'이 본래는 선한 것이었고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으나 사람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는 설명(7:10-12)이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의문'은 곧 죽게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 고린도 교인들도 그런 정도의 전이해(前理解)는 되어 있었던 듯하다. 한편 본절의 '없어질 영광'은 바울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에 관한 유대교의 전승(Targum Ongelos)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유대교의 전승에서는 모세의 얼굴의 광채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반박하면서 그 광채는 '잠시 있다가 없어질 잠정적인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Martin).

 

 

포스 우키 말론 헤 디아코니아 투 프뉴마토스 에스타이 엔 돜세

 

개역개정,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새번역,8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우리말성경,8 하물며 영의 직분에는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가톨릭성경,8 그렇다면 성령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영어NIV,8 will not the ministry of the Spirit be even more glorious?
영어NASB,8 how shall the ministry of the Spirit fail to be even more with glory?
영어MSG,8  How much more dazzling, then, the Government of Living Spirit?
영어NRSV,8 how much more will the ministry of the Spirit come in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8 πως ουχι μαλλον η διακονια του πνευματος εσται εν δοξη
라틴어Vulgate,8 quomodo non magis ministratio Spiritus erit in gloria
히브리어Modern,8 כמה יגדל כבוד שרות הרוח׃


 

성 경: [고후3:8]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 의문의 직분에 주어지는 영광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직분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며 거기에 비취는 광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는 빛'(4:6)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빛이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빛이다. 한편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는 구절은 미래형이나 이를 시간적인 미래로 보아 주의 재림을 가리킨다고 이해해서는 안되며 다만 논리적인 미래로 보아야 한다. 영의 직분이 현재적인 것이듯이(1:22) 그 영의 영광도 현재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에이 가르 테 디아코니아 테스 카타크리세오스 돜사 폴로 말론 페리쓔에이 헤 디아코니아 테스 디카이오쉬네스 돜세

 

개역개정,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새번역,9 유죄를 선고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만일 정죄의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단죄로 이끄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
영어NIV,9 If the ministry that condemns men is glorious, how much more glorious is the ministry that brings righteousness!
영어NASB,9 For if the ministry of condemnation has glory, much more does the ministry of righteousness abound in glory.
영어MSG,9  If the Government of Condemnation was impressive, how about this Government of Affirmation?
영어NRSV,9 For if there was glory in the ministry of condemnation, much more does the ministry of justification abound in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ι γαρ η διακονια της κατακρισεως δοξα πολλω μαλλον περισσευει η διακονια της δικαιοσυνης εν δοξη
라틴어Vulgate,9 nam si ministratio damnationis gloria est multo magis abundat ministerium iustitiae in gloria
히브리어Modern,9 כי אם השרות אשר לחיב כבוד הוא כמה יעדף בכבוד השרות אשר לזכות׃


 

성 경: [고후3:9]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정죄의 직분...의의 직분 - 본절에서는 '의문의 직분'(7)'정죄의 직분'으로 '영의 직분'(8)'의의 직분'으로 대체되고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엄격한 요구 앞에 인간을 세워 율법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행위를 정죄한다(3:19, 20).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죄를 사면해 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의롭게 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정죄의 직분에 영광이 있다면, 의의 직분에 얼마만큼의 영광이 있느냐하는 것은 더말할 필요가 없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 디카이오쉬네스)의 개념은 바울이 그 말을 사용할 때의 용법에 비추어 이해해야 하는 바, 윤리적인 무죄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의 성립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에 기인한다(Barrett). 의의 직분 속에는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현존하는 것이다(Kasemann).

 

 

카이 가르 우 데돜사스타이 토 데돜사스메논 엔 투토 토 메레이 헤이네켄 테스 휘페르발루세스 돜세스

 

개역개정,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새번역,10 참으로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말성경,10 이 경우 한때 영광스럽던 것이 더 큰 영광이 나타남으로 인해 더 이상 영광스럽게 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0 사실 이 경우,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더 뛰어난 영광 때문에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영어NIV,10 For what was glorious has no glory now in comparison with the surpassing glory.
영어NASB,10 For indeed what had glory, in this case has no glory on account of the glory that surpasses it.
영어MSG,10  Bright as that old government was, it would look downright dull alongside this new one.
영어NRSV,10 Indeed, what once had glory has lost its glory because of the greater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γαρ ουδε δεδοξασται το δεδοξασμενον εν τουτω τω μερει ενεκεν της υπερβαλλουσης δοξης
라틴어Vulgate,10 nam nec glorificatum est quod claruit in hac parte propter excellentem gloriam
히브리어Modern,10 כי אף הנכבד איננו נחשב לכבוד לעמת הכבוד הנעלה הזה׃


 

성 경: [고후3:10]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더 큰 영광을 인하여 - 본절에서는 옛 언약에 대한 새 언약의 우월성이 극도로 부각되고 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르면 달의 밝기가 소멸되어 버리는 것처럼, 율법으로 말미암는 모세의 영광은 복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바울으로 인해 율법의 직능이 무효화되었다고 하는 바울의 율법 이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도들은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 아래 있게 된 것이다(8:7-13).

 

 

에이 가르 토 카타르구메논 디아 돜세스 폴로 말론 토 메논 엔 돜세

 

개역개정,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새번역,11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것도 생길 때에 영광을 입었으니, 길이 남을 것은 더욱 영광 속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사라져 버릴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영원한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곧 사라질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길이 남을 것은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영어NIV,11 And if what was fading away came with glory, how much greater is the glory of that which lasts!
영어NASB,11 For if that which fades away was with glory, much more that which remains is in glory.
영어MSG,11  If that makeshift arrangement impressed us, how much more this brightly shining government installed for eternity?
영어NRSV,11 for if what was set aside came through glory, much more has the permanent come in glory!
헬라어신약Stephanos,11 ει γαρ το καταργουμενον δια δοξης πολλω μαλλον το μενον εν δοξη
라틴어Vulgate,11 si enim quod evacuatur per gloriam est multo magis quod manet in gloria est
히브리어Modern,11 כי אם הדבר העמד להבטל יש לו כבוד הדבר הקים על אחת כמה וכמה׃


 

성 경: [고후3:11]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 율법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나간 시대에만 시한부적으로 존재 의의를 가질 뿐(10:4) 천국에는 없어질 것이었다. 그에 반해 복음은 영원한 것이고 다른 것에 의해 대체(代替)되지 않는 것이다(13:31). 이미 지나가버린 것과 이제 시작되는 영원한 것의 영광을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에콘테스 운 토이아우텐 엘피다 폴레 파르레시아 크로메다

 

개역개정,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새번역,12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우리말성경,12 우리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담대하게 말합니다. 
가톨릭성경,12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아주 담대히 행동합니다.
영어NIV,12 Therefore, since we have such a hope, we are very bold.
영어NASB,12 Having therefore such a hope, we use great boldness in our speech,
영어MSG,12  With that kind of hope to excite us, nothing holds us back.
영어NRSV,12 Since, then, we have such a hope, we act with great boldnes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εχοντες ουν τοιαυτην ελπιδα πολλη παρρησια χρωμεθα
라틴어Vulgate,12 habentes igitur talem spem multa fiducia utimur
히브리어Modern,12 על כן בהיות לנו תקוה כזאת פתחון פינו רב הוא׃


 

성 경: [고후3:12]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이같은 소망 -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새 언약의 불변성과 절대 탁월성에 근거한다.

󰃨 담대히 말하노니 - 바울의 소망의 근거가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므로 바울은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솔직하고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본문의 '담대히'로 번역된 헬라어'파르레시아'(*)는 원래 '말을 함에 있어서의 솔직함' 또는 '두려움없는 정직함'을 뜻하였으나,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의 '솔직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카이 우 카다페르 모위세스 에티데이 칼륌마 에피 토 프로소폰 아우투 프로스 토 메 아테니사이 투스 휘우스 이스라엘 에이스 토 텔로스 투 카타르구메누

 

개역개정,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새번역,1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3 모세가 없어질 것의 결과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수건을 썼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리고 우리는, 광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쳐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너울을 드리운 모세처럼 하지도 않습니다.
영어NIV,13 We are not like Moses, who would put a veil over his face to keep the Israelites from gazing at it while the radiance was fading away.
영어NASB,13 and are not as Moses, who used to put a veil over his face that the sons of Israel might not look intently at the end of what was fading away.
영어MSG,13  Unlike Moses, we have nothing to hide. Everything is out in the open with us. He wore a veil so the children of Israel wouldn't notice that the glory was fading away--
영어NRSV,13 not like Moses, who put a veil over his face to keep the people of Israel from gazing at the end of the glory that was being set aside.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ου καθαπερ μωσης ετιθει καλυμμα επι το προσωπον εαυτου προς το μη ατενισαι τους υιους ισραηλ εις το τελος του καταργουμενου
라틴어Vulgate,13 et non sicut Moses ponebat velamen super faciem suam ut non intenderent filii Israhel in faciem eius quod evacuatur
히브리어Modern,13 ולא כמשה אשר נתן מסוה על פניו פן יביטו בני ישראל אל סוף העמד להבטל׃


 

성 경: [고후3:13]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 본절은 7절부터 시작된 바, 34:29-35에 관한 바울의 미드라쉬(Midrash)적인 해석의 연속이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모세가 왜 얼굴에 수건을 썼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모세의 얼굴에 있던 광채가 사라졌을 때 그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져 그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Harris). (2)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Hughes).(3) 구속사의 비밀을 깨달은 모세는 자기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이 일시적인 것임을 알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현혹되어 거기에 영원한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랬을 것이다. 이 가운데 첫번째와 세번째 견해일 가능성이 많다. 이중에서 첫번째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경우, 모세의 떳떳치 못함과 바울 자신의 떳떳함을 비교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는데 바울이 그것을 말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바울이 모세가 하였던 것처럼 얼굴에 수건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즉 모세는 그의 백성들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할까봐 얼굴에 수건을 썼지만,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영광이 영원한 것이므로 사람들의오해를 두려워할 필요없이 당당하게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라 에포로데 타 노에마타 아우톤 아크리 가르 테스 세메론 헤메라스 토 아우토 칼륌마 에피 테 아나그노세이 테스 팔라이아스 디아데케스 메네이 메 아나칼륖토메논 호티 엔 크리스토 카타르게이타이

 

개역개정,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새번역,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들은 옛 언약을 읽을 때 오늘날까지도 수건을 벗지 못하고 계속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4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각이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옛 계약을 읽을 때에 그 너울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4 But their minds were made dull, for to this day the same veil remains when the old covenant is read. It has not been removed, because only in Christ is it taken away.
영어NASB,14 But their minds were hardened; for until this very day at the reading of the old covenant the same veil remains unlifted, because it is removed in Christ.
영어MSG,14  and they didn't notice. They didn't notice it then and they don't notice it now, don't notice that there's nothing left behind that veil.
영어NRSV,14 But their minds were hardened. Indeed, to this very day, when they hear the reading of the old covenant, that same veil is still there, since only in Christ is it set aside.
헬라어신약Stephanos,14 αλλ επωρωθη τα νοηματα αυτων αχρι γαρ της σημερον το αυτο καλυμμα επι τη αναγνωσει της παλαιας διαθηκης μενει μη ανακαλυπτομενον ο τι εν χριστω καταργειται
라틴어Vulgate,14 sed obtusi sunt sensus eorum usque in hodiernum enim diem id ipsum velamen in lectione veteris testamenti manet non revelatum quoniam in Christo evacuatur
히브리어Modern,14 אבל נטמטמו דעותיהם כי עד היום הזה בקראם הברית הישנה נשאר ולא גלה המסוה ההוא אשר לא יוסר כי אם במשיח׃


 

성 경: [고후3:14]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완고하여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 모세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의 영광 즉 율법의 영광이 곧 사라질 한시적(限時的)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에 기인하는 것이었고 이 완고함으로 인해 그들의 눈에는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수건이 씌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수건'(*, 칼륌마)은 유대인의 영적 무지와 오해,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신앙, 사랑이 상실된 편견과 엄격한 율법주의적 편견등을 상징한다.

󰃨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 유대인들의 눈을 감싸고 있어 그들로 하여금 영적 맹아 상태에 머물게 하는 그 수건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벗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실(5:17)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영적 자유를 인간에게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알 헤오스 세메론 헤니카 안 아나기노스케타이 모위세스 칼륌마 에피 텐 카르디안 아우톤 케이타이

 

개역개정,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새번역,15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5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수건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영어NIV,15 Even to this day when Moses is read, a veil covers their hearts.
영어NASB,15 But to this day whenever Moses is read, a veil lies over their heart;
영어MSG,15  Even today when the proclamations of that old, bankrupt government are read out, they can't see through it. Only Christ can get rid of the veil so they can see for themselves that there's nothing there.
영어NRSV,15 Indeed, to this very day whenever Moses is read, a veil lies over their mind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αλλ εως σημερον ηνικα αναγινωσκεται μωσης καλυμμα επι την καρδιαν αυτων κειται
라틴어Vulgate,15 sed usque in hodiernum diem cum legitur Moses velamen est positum super cor eorum
히브리어Modern,15 אבל עד היום הזה בקראם את משה מונח מסוה על לבם׃


 

성 경: [고후3:15]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모세의 글 - 바울이 앞에서는(14) '구약'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모세의 글'이라고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지금 문제삼고 있는 것이 율법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하기 위함이다.

󰃨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 본구절은 유대인들이 계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마음' (*, 카르디아)은 지적 활동의 중심이며 인간의 인격과 애정이 자리잡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수건이 덮여있으므로 여전히 옛 것만 보고 새 것은 보지 못하고 있다.

 

 

헤니카 데 에안 에피스트렢세 프로스 퀴리온 페리아이레이타이 토 칼륌마

 

개역개정,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새번역,16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우리말성경,16 그러나 주께로 돌아갈 때마다 수건은 벗겨집니다. 
가톨릭성경,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영어NIV,16 But whenever anyone turns to the Lord, the veil is taken away.
영어NASB,16 but whenever a man turns to the Lord, the veil is taken away.
영어MSG,16  Whenever, though, they turn to face God as Moses did, God removes the veil and there they are--face to face!
영어NRSV,16 but when one turns to the Lord, the veil is removed.
헬라어신약Stephanos,16 ηνικα δ αν επιστρεψη προς κυριον περιαιρειται το καλυμμα
라틴어Vulgate,16 cum autem conversus fuerit ad Deum aufertur velamen
히브리어Modern,16 וכשיפנו אל האדון יוסר המסוה׃


 

성 경: [고후3:16]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 본절은 당시 초대 교회에 자리잡은 기독론적 교리를 엿보게 한다. 왜냐하면 본절에 '주께로 돌아가면'이란 문구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먼저, ''(*, 퀴리오스)는 과거 모세가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현재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초청하시는 동일하신 주님이시다. 즉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과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Lord)로 불렸던 바, 동일하신 분이시다(Hughes). 바울은 본절에서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자유와 영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다름 아니라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음으로, '돌아가면'(*, 에피스트렙세)'돌이키다', '회개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어 회심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회심하고 주께 돌아오면 마음의 수건이 벗겨져 영적 무지와 오해, 불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으로써 없어지게 되며(10:4) 새로운 언약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음의 시대가 열려지게 된다.

 

 

호 데 퀴리오스 토 프뉴마 에스틴 후 데 토 프뉴마 퀴리우 엘류데리아

 

개역개정,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새번역,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7 주께서는 영이시며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영어NIV,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영어NASB,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영어MSG,17  They suddenly recognize that God is a living, personal presence, not a piece of chiseled stone. And when God is personally present, a living Spirit, that old, constricting legislation is recognized as obsolete. We're free of it!
영어NRSV,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 δε κυριος το πνευμα εστιν ου δε το πνευμα κυριου εκει ελευθερια
라틴어Vulgate,17 Dominus autem Spiritus est ubi autem Spiritus Domini ibi libertas
히브리어Modern,17 והאדון הוא הרוח ובאשר רוח האדון שם החרות׃


 

성 경: [고후3:17]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주는 영이시니 - 본절은 `의문(儀文)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6절 내용과 연관하여 바로 이해될 수 있다.즉 바울은 '의문''', '옛 언약''새언약', '율법'`복음'을 대조하면서 후자(後者)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않은 주석가들이 주장하듯이 본절의 내용이 삼위 일체론의 교리를 뒷받침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Bousset, Scott), 보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본절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초점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 및 대조에 있다는 사실이다(Hughes). 이렇게볼 때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빛과 생명의 원천이시므로 그분께 돌아오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바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자유함이 있느니라 - 주의 영이 있는 곳, 그리하여 마음의 수건이 벗겨지고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난 곳에는 복음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는 자유가 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옛 언약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을 '종의 자녀', 새 언약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을 '자유자의 자녀'로 비유한 적이 있다(4:24-31). 여기서의 '자유'는 율법의 지배 하에서의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리킨다. 고린도전서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던 '자비'에 대한 언급이(고전 9:1, 19;10:29) 후서에서는 이곳에서만 언급되고 있다. 자신들의 마음속에 새 언약이 영으로 새겨진 그리스도인들은 정죄와 구속의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는데 이 자유는 확신(4)과 담대함(12)을 주는 자유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이 자유의 영을 받았으므로 인간적인 추천서에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자유와 자기를 자랑하고자 하는 명예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1).

 

 

 

헤메이스 데 판테스 아나케칼륌메노 프로소포 텐 돜산 퀴리우 카톺트리조메노이 텐 아우텐 에이코나 메타모르푸메다 아포 돜세스 에이스 돜산 카다페르 아포 퀴리우 프뉴마토스

 

개역개정,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새번역,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말성경,18 우리는 다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일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 
가톨릭성경,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영어NIV,18 And we, who with unveiled faces all reflect the Lord's glory, are being transformed into his likeness with ever-increasing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영어NASB,18 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just as from the Lord, the Spirit.
영어MSG,18  All of us! Nothing between us and God, our faces shining with the brightness of his face. And so we are transfigured much like the Messiah, our lives gradually becoming brighter and more beautiful as God enters our lives and we become like him.
영어NRSV,18 And all of us, with unveiled faces, seeing the glory of the Lord as though reflected in a mirror,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one degree of glory to another; for this comes from the Lord, the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18 ημεις δε παντες ανακεκαλυμμενω προσωπω την δοξαν κυριου κατοπτριζομενοι την αυτην εικονα μεταμορφουμεθα απο δοξης εις δοξαν καθαπερ απο κυριου πνευματος
라틴어Vulgate,18 nos vero omnes revelata facie gloriam Domini speculantes in eandem imaginem transformamur a claritate in claritatem tamquam a Domini Spiritu
히브리어Modern,18 ואנחנו כלנו בפנים מגלים ראים את כבוד האדון במראה ונחלף אל עצם דמות ההיא מכבוד אל כבוד כהחלף מאת אדון הרוח׃

 

 

성 경: [고후3:18]

주제1: [새 언약의 일꾼된 바울]

주제2: [새언약의 영광]

󰃨 우리가 다 - 바울은 본장을 시작할 때는 자신의 사도직에 관한 주제를 언급하였으나 이제 본장을 마감하는 시점에서는 출 34:29-35에 대한 그의 미드라쉬적인 해석을 배경으로 하여 새 언약의 우월성을 전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 본문은 새 언약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은, 수건으로 덮인 마음(15)을 가지고 아직도 율법을 읽고 있는 유대인들과는 달리 벗은 얼굴로 복음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 이르니 -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는 주의 형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도들의 존재가 신격화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마치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광이 성도들의 얼굴에서 빛으로 나타난다고 보아서도 안된다. 본문의 의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에 대한 지식을 받고 그 내면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할때 성도들은 점점 더 높은 단계의 영광으로 진전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주의 재림이 실현될 때는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완전한 영광의 형체(形體)를 얻게 될 것이다(3:21). 그런데 이렇게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의문의 율법이 아니라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성도들의 영광은 자신들의 노력이나 업적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8: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