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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K BIBLE

헬라어 고린도후서 4장 전체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디아 투토 에콘테스 텐 디아코니안 타우텐 카도스 엘레에데멘 우크 엥카쿠멘

 

개역개정,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새번역,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이 직분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 낙심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영어NIV,1 Therefore, since through God's mercy we have this ministry, we do not lose heart.
영어NASB,1 Therefore, since we have this ministry, as we received mercy, we do not lose heart,
영어MSG,1  Since God has so generously let us in on what he is doing, we're not about to throw up our hands and walk off the job just because we run into occasional hard times.
영어NRSV,1 Therefore, since it is by God's mercy that we are engaged in this ministry, we do not lose heart.
헬라어신약Stephanos,1 δια τουτο εχοντες την διακονιαν ταυτην καθως ηλεηθημεν ουκ εκκακουμεν
라틴어Vulgate,1 ideo habentes hanc ministrationem iuxta quod misericordiam consecuti sumus non deficimus
히브리어Modern,1 על כן בהיות לנו השרות הזה כאשר חננו לא נחת׃


 

성 경: [고후4:1]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이러하므로 - 본절이 앞장에 이어짐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것이므로'라는 뜻이다(3:12-18).

󰃨 이 직분을 받아...낙심하지 아니하고 -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를 능가하는 직분을 부여받은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즉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9:1, 2). 하나님께서 그런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사 복음을 증거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직분이 정죄의 율법이 아니라 자유의 복음을 전파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이므로(3:8)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자기를 향한 모든 적대적인 비난과 시련에 대해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Bruce). 혹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을, '복음을 선포하는 직무를 태만히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한다(Barrett). 실제로 바울은그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의 직무를 이행함에 있어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바치려는 각오로 매진(邁進)하였다(20:24).

 

 

알라 아페이파메다 타 크륖타 테스 아이스퀴네스 메 페리파툰테스 엔 파누르기아 메데 돌룬테스 톤 로곤 투 데우 알라 테 파네로세이 테스 알레데이아스 쉬니스타논테스 헤아우투스 프로스 파산 쉬네이데신 안드로폰 에노피온 투 데우

 

개역개정,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새번역,2 우리는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환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우리말성경,2 오히려 우리는 숨겨진 수치스런 일들을 버렸고 간교하게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우리 스스로를 추천합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고 우리는 부끄러워 숨겨 두어야 할 것들을 버렸으며, 간교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드러내어 하느님 면전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 앞에 우리 자신을 내세웁니다.
영어NIV,2 Rather, we have renounced secret and shameful ways; we do not use deception, nor do we distort the word of God. On the contrary, by setting forth the truth plainly we commend ourselves to every man's conscience in the sight of God.
영어NASB,2 but we have renounced the things hidden because of shame, not walking in craftiness or adulterating the word of God, but by the manifestation of truth commending ourselves to every man's conscience in the sight of God.
영어MSG,2  We refuse to wear masks and play games. We don't maneuver and manipulate behind the scenes. And we don't twist God's Word to suit ourselves. Rather, we keep everything we do and say out in the open, the whole truth on display, so that those who want to can see and judge for themselves in the presence of God.
영어NRSV,2 We have renounced the shameful things that one hides; we refuse to practice cunning or to falsify God's word; but by the open statement of the truth we commend ourselves to the conscience of everyone in the sight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 αλλ απειπαμεθα τα κρυπτα της αισχυνης μη περιπατουντες εν πανουργια μηδε δολουντες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αλλα τη φανερωσει της αληθειας συνιστωντες εαυτους προς πασαν συνειδησιν ανθρωπων ενωπιο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 sed abdicamus occulta dedecoris non ambulantes in astutia neque adulterantes verbum Dei sed in manifestatione veritatis commendantes nosmet ipsos ad omnem conscientiam hominum coram Deo
히브리어Modern,2 כי אם מאסנו בסתרי הבשת שלא להתהלך בערמה ולא לזיף את דבר האלהים אלא בהראות האמת נזכיר אתנו לטוב נגד דעת כל בני אדם לפני האלהים׃


 

성 경: [고후4:2]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숨은 부끄러움의 일 - 본절은 바울과 적대자들 사이의 논쟁적 상황에서 바울이 변증한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본문의 뜻은 '드러내지 못할 창피스러운 일'(공동번역)이다. 어떤 이들이 모종의 행위를 숨어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드러날 경우 수치가 돌아온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과 논쟁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은 그런 일을 버렸다고 선언한다. '버리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아페이파메다'(*)는 부정과거로서 이미 버렸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이말을 사용하는 것은 한편으로, 그와 논쟁하는 자들이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서 그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바울더러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은밀한 곳에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적대자들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 '궤휼'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누르기아'(*)'교활', `속임수'라는 뜻이며, 11:3에서는 사단이 하와를 미혹한 근본적 의도를 묘사하는 것으로 '간계'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적대자들에 의해서 악선전을 당한 일이 있었다(12:16). 바울은 본절에서 이런 악선전에 대하여 자신은 결코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 '혼잡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돌룬테스'(*)'불순물을 섞다'는 뜻으로, 마치 약에 이물질을 섞어 약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순수한 복음에 필요없는 것을 첨가시킴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혹자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가르치지 않음으로 해서 복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Barrett). 본문은 이런 비난에 대한 바울의 답변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이 보기에 도리어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거짓 전도자들(2:17)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다.

󰃨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 바울이 여기서 '복음'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 않고, 보편적인 개념인 '진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가해졌던 또다른 비난 즉 `바울은 어떤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비교적(秘敎的)인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해명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가 본절에서 계속하여 하나님앞과 모든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자신을 천거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의도를 지지해 준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을 천거하는 대상으로서 하나님 외에 '양심'(*, 쉬네이데신)을 든 것은 주목할 만하다. A.D. 1세기경의 유대인 주석가 필로(Philo)'양심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인간의 양심은 비록 인간의 타락 이후로 무디어지고 때로는 왜곡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선한 양심은 여전히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2:15). 결국 바울이 양심에 호소하여 자신을 변증한 것은 인간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한 것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한편 바울이 '스스로 천거한다'는 말이 3:1 내용과 모순된다고 볼 수는 없다.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하여 자천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만을 증거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Harris).

 

 

에이 데 카이 에스틴 케칼륌메논 토 유앙겔리온 헤몬 엔 토이스 아폴뤼메노이스 에스틴 케칼륌메논

 

개역개정,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새번역,3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영어NIV,3 And even if our gospel is veiled, it is veiled to those who are perishing.
영어NASB,3 And even if our gospel is veiled, it is veiled to those who are perishing,
영어MSG,3  If our Message is obscure to anyone, it's not because we're holding back in any way. No, it's because these other people are looking or going the wrong way and refuse to give it serious attention.
영어NRSV,3 And even if our gospel is veiled, it is veiled to those who are perishing.
헬라어신약Stephanos,3 ει δε και εστιν κεκαλυμμενον το ευαγγελιον ημων εν τοις απολλυμενοις εστιν κεκαλυμμενον
라틴어Vulgate,3 quod si etiam opertum est evangelium nostrum in his qui pereunt est opertum
히브리어Modern,3 וגם כי נעלמה בשורתנו נעלמה היא מן האבדים׃



성 경: [고후4:3]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 여기에서도 바울이 모호한 말을 전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음이 시사된다. 즉 바울은 소수의 영적인 마음을 가진 선택된 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전한다고 비난받았던 것으로 보인다(Barrett). 바울은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만일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런 사람들은 멸망의 길을 걷는 자들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바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공개된 방식으로 설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수건이 씌워져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다(고전 1:18;2:14). 여기서 '가리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칼륌메논'(*)이 수동태로 되어있는 것은 복음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임을 시사한다(Bruce).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영광에 참여하고 직분을 부여받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듯, 그리스도의 영광을 거부하고 멸망에 이르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다는 계시의 이중적 측면을 보여준다.

 

 

엔 호이스 호 데오스 투 아이오노스 투투 에튀플로센 타 노에마타 톤 아피스톤 에이스 토 메 아우가사이 톤 포티스몬 투 유앙겔리우 테스 돜세스 투 크리스투 호스 에스틴 에이콘 투 데우

 

개역개정,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새번역,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말성경,4 그들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을 비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영어NIV,4 The god of this age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영어NASB,4 in whose case the god of this world has blinded the minds of the unbelieving, that they might 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영어MSG,4  All they have eyes for is the fashionable god of darkness. They think he can give them what they want, and that they won't have to bother believing a Truth they can't see. They're stone-blind to the dayspring brightness of the Message that shines with Christ, who gives us the best picture of God we'll ever get.
영어NRSV,4 In their case the god of this world has blinded the minds of the unbelievers, to keep them from seeing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4 εν οις ο θεος του αιωνος τουτου ετυφλωσεν τα νοηματα των απιστων εις το μη αυγασαι αυτοις τον φωτισμον του ευαγγελιου της δοξης του χριστου ος εστιν εικω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4 in quibus deus huius saeculi excaecavit mentes infidelium ut non fulgeat inluminatio evangelii gloriae Christi qui est imago Dei
히브리어Modern,4 אשר אלהי העולם הזה עור בהם את דעות הסוררים לבלתי זרח להם נגה בשורת כבוד המשיח אשר הוא צלם האלהים׃


 

성 경: [고후4:4]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이 세상 신 - `세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오노스'(*)는 고전1:20;1:4에서와 같이 '세대'의 의미이다(age, NIV). 따라서 '이 세상 신'보다는 '이시대의 신'이라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이름은 사단에 대한 별칭이다(Harris). 이외에도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12:31),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요 악한영'(6:12)으로 불린다.사단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로 천사였으나 지고하신 하나님과 동등해지려는 교만을 품었기 때문에(14:13, 14),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를 받고(14:12, 15)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4:1-12). 그런데도 사단이 계속해서 성도를 타락시키려고 애쓰며, 믿음이 없는 자들로 하여금 성도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활동을펴는 것은, 하나님께 종말까지 사단의 활동을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 '혼미케 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튀플로센'(*)'눈을 멀게 하였다'는 의미이다(has bilnded,NIV). 따라서 '마음을 혼미케 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 즉 영적인 눈을 멀게 한다'는 뜻이다. 사단은 사람들의 영안(靈眼)을 멀게 하여 영적인 어두움에 빠지게 하고 빛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게 만든다(3:19;벧전 5:8).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바울은 여기서 태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창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Bruce). 본절의 '형상'(*, 에이콘)은 원형(archetype)은 그대로 그린 초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초상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원형이시며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신 분임을 말해준다(2:6). 그러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함 자체가 아니라, 하나니의 현시(顯示)인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 가르 헤아우투스 게뤼쏘멘 알라 예순 크리스톤 퀴리온 ㅎ아우투스 데 둘루스 휘몬 디아 예순

 

개역개정,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새번역,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우리말성경,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가톨릭성경,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영어NIV,5 For we do not preach ourselves, but Jesus Christ as Lord, and ourselves as your servants for Jesus' sake.
영어NASB,5 For we do not preach ourselves but Christ Jesus as Lord, and ourselves as your bond-servants for Jesus' sake.
영어MSG,5  Remember, our Message is not about ourselves; we're proclaiming Jesus Christ, the Master. All we are is messengers, errand runners from Jesus for you.
영어NRSV,5 For we do not proclaim ourselves; we proclaim Jesus Christ as Lord and ourselves as your slaves for Jesus' sake.
헬라어신약Stephanos,5 ου γαρ εαυτους κηρυσσομεν αλλα χριστον ιησουν κυριον εαυτους δε δουλους υμων δια ιησουν
라틴어Vulgate,5 non enim nosmet ipsos praedicamus sed Iesum Christum Dominum nos autem servos vestros per Iesum
히브리어Modern,5 כי לא אתנו מכריזים אנחנו כי אם את המשיח ישוע לאמר הוא האדון ואנחנו עבדיכם למען ישוע׃



성 경: [고후4:5]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 바울이 자신을 자랑한다거나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은혜로 직분이 주어졌다는 것과(1), 그 직분의 사명이 그리스도 예수가 ''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인간적인 지위나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는 그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울은 몸소 종의 형체로 오셔서 종의 직분을 다하신 예수(2:7)의 발자취를 따랐다. 한편 본문의 ''(*, 퀴리온)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신분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주라는 진술은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오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이자 신앙 고백이다.

󰃨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 바울은 자신이 행하는 사도직의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이 가져다주는 것이 죽음인(3:7) 반면, 복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자유라고 했다(3:17). 그런데 지금 바울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나 복음의 자유로 옮기워진 것의 또다른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종이 되는 것이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했다(1:1;1:1).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을 위하여도 종이 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소비하는 것이다(12:15). 본절에서 바울은 그와 같은 사실을 기쁘게 증거하고 있다. 이는 사 40-48장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보여주듯이 비록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쁘게 여기는 것과 같다(Martin).

 

 

호티 호 데오스 호 에이폰 에크 스코투스 포스 람프세이 호스 엘람프센 엔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헤몬 프로스 포티스몬 테스 그노세오스 테스 돜세스 투 데우 엔 프로소포 예수 크리스투

 

개역개정,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새번역,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 ㉠창 1:3
우리말성경,6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 창1:3 
가톨릭성경,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영어NIV,6 For God, who said, "Let light shine out of darkness," made his light shine in our hearts to give us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
영어NASB,6 For God, who said, "Light shall shine out of darkness," is the One who has shone in our hearts to give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Christ.
영어MSG,6  It started when God said, "Light up the darkness!" and our lives filled up with light as we saw and understood God in the face of Christ, all bright and beautiful.
영어NRSV,6 For it is the God who said, "Let light shine out of darkness," who has shone in our hearts to give the light of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God in the face of Jesus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6 οτι ο θεος ο ειπων εκ σκοτους φως λαμψαι ος ελαμψεν εν ταις καρδιαις ημων προς φωτισμον της γνωσεως της δοξης του θεου εν προσωπω ιησου χριστου
라틴어Vulgate,6 quoniam Deus qui dixit de tenebris lucem splendescere qui inluxit in cordibus nostris ad inluminationem scientiae claritatis Dei in facie Christi Iesu
히브리어Modern,6 כי האלהים אשר אמר ויפע אור מחשך הוא הופיע בלבנו להפיץ אור דעת כבוד האלהים אשר בפני המשיח׃


 

성 경: [고후4:6]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사도직의 의의]

󰃨 어두운 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바울은 자신의 구원받음과 사도직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온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신 하나님의 첫번째 빛의 창조(1:3)와 인간의 영적 무지을 몰아내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에 구원의 빛을 비춘 두번째 빛의 창조를 병행(竝行)시키고 있다. 첫번째 창조의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면, 바울의 영혼에 비친 구원의 빛은(9:3, 8;22:6, 9, 11;26:13) 그를 덮었던 영적 무지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하였다. 이 지식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복음에 대한 지식이다. 이 지식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음을 아는 자이고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이다(Harris).

 

 

에코멘 데 톤 데사우론 투톤 엔 오스트라키노이스 스큐에신 히나 헤 휘페르볼레 테스 뒤나메오스 에 투 데우 카이 메 엨스 헤몬

 

개역개정,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성경,7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데 이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영어NIV,7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영어NASB,7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that the surpassing greatness of the power may be of God and not from ourselves;
영어MSG,7  If you only look at us, you might well miss the brightness. We carry this precious Message around in the unadorned clay pots of our ordinary lives. That's to prevent anyone from confusing God's incomparable power with us.
영어NRSV,7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clay jars, so that it may be made clear that this extraordinary power belongs to God and does not come from us.
헬라어신약Stephanos,7 εχομεν δε τον θησαυρον τουτον εν οστρακινοις σκευεσιν ινα η υπερβολη της δυναμεως η του θεου και μη εξ ημων
라틴어Vulgate,7 habemus autem thesaurum istum in vasis fictilibus ut sublimitas sit virtutis Dei et non ex nobis
히브리어Modern,7 אבל יש לנו האוצר הזה בכלי חרש למען אשר תהיה הגבורה היתרה לאלהים ולא מאתנו׃


 

성 경: [고후4:7]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보배 -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을 가리킨다.

󰃨 질그릇 - 성경에는 질그릇에 대한 비유가 종종 사용된다. 가령 64:8에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도공과 질그릇에 비유하면서 질그릇이 스스로를 빚을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고, 4:2에서는 질그릇의 깨어지기 쉬운 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묘사되고 있으며, 딤후 2:20, 21에는 금그릇이건, 은그릇이건, 나무그릇이건, 질그릇이건 간에 주인이 쓸 수 있도록 깨끗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것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질그릇의 가치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질그릇은 앞에서 언급된 '보배'와 극명하게 대조되어 가치없는 것으로 비유되어서 바울 자신과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육체가 갖는 한계성과 연약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육체를 부정하거나 인간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복음의 무한한 영광과 숭고함에 비교된 인간의 상대적 무가치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복음의 존귀함과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에 대한 대조는 (1) 복음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고, (2) 인간의 연약성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능력이 나타남을 보여주며, (3) 인간의 교만과 자랑을 방지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엔 탄티 들리보메노이 알 우 스테노코루메노이 아포루메노이 알 우크 엨사포루메노이

 

개역개정,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새번역,8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우리말성경,8 그러므로 우리는 사방으로 환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영어NIV,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영어NASB,8 we are afflicted in every way,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despairing;
영어MSG,8  As it is, there's not much chance of that. You know for yourselves that we're not much to look at. We've been surrounded and battered by troubles, but we're not demoralized; we're not sure what to do,
영어NRSV,8 We are afflicted in every way, but not crushed; perplexed, but not driven to despair;
헬라어신약Stephanos,8 εν παντι θλιβομενοι αλλ ου στενοχωρουμενοι απορουμενοι αλλ ουκ εξαπορουμενοι
라틴어Vulgate,8 in omnibus tribulationem patimur sed non angustiamur aporiamur sed non destituimur
히브리어Modern,8 נחלצים אנחנו בכל ולא נדכאים דאגים ולא נואשים׃
 

성 경: [고후4:8]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 '우겨쌈을 당하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들리보메노이'(*)`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다'는 뜻으로 바울을 비롯하여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성도들에게 고난이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앞절에서 언급된 대로 성도는 질그릇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그릇 안에 있는 보배, '능력의 심히 큰것'의 원천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에 질그릇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바울이 선교 활동을 하면서 자기를 지탱해 준 힘의 원천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추상적 이론이나 관념적 논리가 아니라 실제적인 그의 사역에서 전인격적으로 경험한 데서 기인한다(6:3-10;고전 4:9-13;15:30, 31). 실로 바울에게 있어 자신은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切感)하는 것이 그가 가장 강해질 수있는 비결이었다(1:8, 9).

󰃨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이 은유적 표현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투적인 표현이다. 그 의미는 대적들이 포위하여 한곳에 몰아넣는다 하더라도 결코 움직일 틈이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지는 못한다는 것이다(Tasker).

 

 

디오코메노이 알 우크 엥카탈레이포메노이 카타발로메노이 알 우크 아폴뤼메노이

 

개역개정,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새번역,9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9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어NIV,9 persecuted, but not abandoned;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영어NASB,9 persecuted, but not forsaken;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영어MSG,9  but we know that God knows what to do; we've been spiritually terrorized, but God hasn't left our side; we've been thrown down, but we haven't broken.
영어NRSV,9 persecuted, but not forsaken;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헬라어신약Stephanos,9 διωκομενοι αλλ ουκ εγκαταλειπομενοι καταβαλλομενοι αλλ ουκ απολλυμενοι
라틴어Vulgate,9 persecutionem patimur sed non derelinquimur deicimur sed non perimus
히브리어Modern,9 נרדפים ולא נטושים משלכים ולא אבדים׃

 
성 경: [고후4:9]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핍박을 받아도...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바울이 계속해서 성도들이 당하는 혹독한 육체적 고통을 사실화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혹자는 이것을 영지주의와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Barrett). 즉 바울은 영지주의자들이 육을 무시하고 영적인 것에만 의미를 두는 것에 반대하여 육이 당하는 고통을 사실화하고 도리어 육의 고통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과 앞절을(8) 통해 바울이 분명히 말하는 것은 그 어떠한 고난도 성도들을 궁극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주의 영이 있고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는 것의 또다른 표현이다(3:17).

 

 

판토테 텐 네크로신 투 예수 엔 토 소마티 페리페론테스 히나 카이 헤 조에 투 예수 엔 토 소마티 헤몬 파네로데

 

개역개정,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말성경,10 우리는 항상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NIV,10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영어NASB,10 always carrying about in the body the dying of Jesus,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body.
영어MSG,10  What they did to Jesus, they do to us--trial and torture, mockery and murder; what Jesus did among them, he does in us--he lives!
영어NRSV,10 always carrying in the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made visible in our bodies.
헬라어신약Stephanos,10 παντοτε την νεκρωσιν του κυριου ιησου εν τω σωματι περιφεροντες ινα και η ζωη του ιησου εν τω σωματι ημων φανερωθη
라틴어Vulgate,10 semper mortificationem Iesu in corpore nostro circumferentes ut et vita Iesu in corporibus nostris manifestetur
히브리어Modern,10 ונשאים בכל עת מיתת האדון ישוע בגויתנו למען יגלו גם חיי ישוע בגויתנו׃


 

성 경: [고후4:10]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예수 죽인것을 몸에 짊어짐은 - 본절과 11절은 바울이 독특하게 사용하는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양식이 십자가와 부활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고난을 통한 영광이고 죽음을 통한 생명이다. 한편 혹자는 바울이 '죽음'에 관해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헬라어 '다나토스'(*)를 사용하는데 비해 여기서는 '네크로신'(*)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이것이 단순한 죽음 외에 '죽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Barrett). 그렇다고 볼 경우 본문은 성도로서 신앙적 삶을 지켜나가고자 할 때 예수의 죽음과 같은 고난의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로 경험했고 그의 실존에는 이런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있다(6:5;고전 4:11;6:17).

󰃨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성도들에게 부활을 통한 궁극적인 구원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시가 나타나고 있다. 성도들은 주를 위한 고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함으로써 영원히 승리하게 된다(8:36;1:24).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패배의 표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승리의 표징이다(3:13).

 

 

아에이 가르 헤메이스 호이 존테스 에이스 다나톤 파라디도메다 디아 예순 히나 카이 헤 조에 투 예수 파네로데 엔 테 드네테 사르키 헤몬

 

개역개정,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11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늘 몸을 죽음에 내어 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말성경,11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NIV,11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영어NASB,11 For we who live are constantly being delivered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mortal flesh.
영어MSG,11  Our lives are at constant risk for Jesus' sake, which makes Jesus' life all the more evident in us.
영어NRSV,11 For while we live, we are always being given up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be made visible in our mortal flesh.
헬라어신약Stephanos,11 αει γαρ ημεις οι ζωντες εις θανατον παραδιδομεθα δια ιησουν ινα και η ζωη του ιησου φανερωθη εν τη θνητη σαρκι ημων
라틴어Vulgate,11 semper enim nos qui vivimus in mortem tradimur propter Iesum ut et vita Iesu manifestetur in carne nostra mortali
히브리어Modern,11 כי אנחנו החיים נמסרים תמיד למות בעבור ישוע למען יגלו גם חיי ישוע בבשרנו בשר התמותה׃



성 경: [고후4:11]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우리 산 자가...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 '우리 산 자'라는 표현은 죽음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만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음에 넘기워진다면 그것은 곧 그의 몸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증거이다. 그것은 죽을 육체가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한다(고전 15:35-49). 여기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으로 그날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육체적 생존'이 주의 재림에 확실히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주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재림에의 확실한 참여를 보장한다.

 

 

호스테 호 다나토스 엔 헤민 에네르게이타이 헤 데 조에 엔 휘민

 

개역개정,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새번역,12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우리말성경,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합니다. 
가톨릭성경,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영어NIV,12 So then, death is at work in us, but life is at work in you.
영어NASB,12 So death works in us, but life in you.
영어MSG,12  While we're going through the worst, you're getting in on the best!
영어NRSV,12 So death is at work in us, but life in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2 ωστε ο μεν θανατος εν ημιν ενεργειται η δε ζωη εν υμιν
라틴어Vulgate,12 ergo mors in nobis operatur vita autem in vobis
히브리어Modern,12 לכן בנו יאמץ המות ובכם החיים׃


 

성 경: [고후4:12]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 본절에서 바울은 '죽음 가운데서의 생명'이라는 논지를 1:6, 7에서 언급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받는 고난'과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 곧 바울이 당하는 고난이 심할수록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더 좋은 영적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Harris).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메시야적 고난을 감내(堪耐)했던 예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는 것이라고 이해했음에 틀림없다. 한편 혹자는 본문이, 바울 자신은 주의 재림 이전에 죽을 것이지만 그의 성도들은 살아서 주의 재림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고 본다(Dodd). 또 어떤 이는 바울의끝없는 고난과 시련을 보면서도 편안하고 안일한 생활에 젖어있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냉소적 비난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나(Calvin), 이 두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본문은, 예수께서 만인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감내하셨던 것처럼 바울 자신의 고난과 시련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유익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1:24).

 

 

에콘테스 데 토 아우토 프뉴마 테스 피스테오스 카타 토 게그람메논 에피스튜사 디오 엘랄레사 카이 헤메이스 피스듀오멘 디오 카이 랄루멘

 

개역개정,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새번역,13 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 / ㉡시 116:10(칠십인역)
우리말성경,13 성경에 기록되기를 “내가 믿었으므로 말했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바로 그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고 또한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116:10 
가톨릭성경,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영어NIV,13 It is written: "I believed; therefore I have spoken." With that same spirit of faith we also believe and therefore speak,
영어NASB,13 But having the same spirit of faith, according to what is written, " I BELIEVED, THEREFORE I SPOKE, "we also believe, therefore also we speak;
영어MSG,13  We're not keeping this quiet, not on your life. Just like the psalmist who wrote, "I believed it, so I said it," we say what we believe.
영어NRSV,13 But just as we have the same spirit of faith that is in accordance with scripture--"I believed, and so I spoke"--we also believe, and so we speak,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χοντες δε το αυτο πνευμα της πιστεως κατα το γεγραμμενον επιστευσα διο ελαλησα και ημεις πιστευομεν διο και λαλουμεν
라틴어Vulgate,13 habentes autem eundem spiritum fidei sicut scriptum est credidi propter quod locutus sum et nos credimus propter quod et loquimur
히브리어Modern,13 ובהיות לנו הרוח ההוא של האמונה כדבר הכתוב האמנתי כי אדבר גם אנחנו נאמין ועל כן נדבר׃


 

성 경: [고후4:13]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것같이 - 이 문구는 시 116:10의 인용이다. 그런데 시 116:10의 히브리어 본문 '헤에만티 키아답베르'(*)는 다음 세가지로 해석된다. (1) 나는 믿었다. 고로 나는 말할 것이다. (2) `나는 굉장히 고난받고 있다'고 말했을 때조차 나는 나의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3) 나는 믿는 고로 말하였다. 이상에서 바울이 의도한 것은 (3)의 해석으로 여겨진다. (3)은 본절의 맛소라 본문(Massora Text)에 해당하는 70인역(115:1)에 대한 해석으로서 '내가 믿는고로 말하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 '에피스튜사 디오 엘랄레사'(*)의 의미를 그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I be-lieved;therefore I have spoken.", NIV). 결국 바울은 본절에서 70인역의 시 115:1을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절망적인 질병과 그에 수반되는 낙담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헤아리며(116:1-11) 어떻게하면 하나님께 가장 적절하게 헌신할 수있을까를 고려하였다(116:12-19). 바울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여서도 복음을 굳게 믿었고 항상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9:16)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 복음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Harris).

󰃨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 혹자는 본문의 '같은 믿음'이 고린도 교인들과 같은 믿음을 뜻한다고 보지만(Calvin) 그보다는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편 기자가 가졌던 믿음, 즉 어떠한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구원해주신다는 믿음이 바로 바울 자신의 믿음이며 그것이그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사도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단지 바울 자신을 구원해 주신다는 개인적 차원의 믿음을 넘어 만인을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다.

 

 

데이도테스 호티 호 에게이라스 톤 퀴리온 예순 카이 헤마스 쉰 예수 에게레이 카이 파라스테세이 쉰 휘민

 

개역개정,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새번역,14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말성경,14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4 because we know that the one who raised the Lord Jesus from the dead will also raise us with Jesus and present us with you in his presence.
영어NASB,14 knowing that He who raised the Lord Jesus will raise us also with Jesus and will present us with you.
영어MSG,14  And what we believe is that the One who raised up the Master Jesus will just as certainly raise us up with you, alive.
영어NRSV,14 because we know that the one who raised the Lord Jesus will raise us also with Jesus, and will bring us with you into his presence.
헬라어신약Stephanos,14 ειδοτες οτι ο εγειρας τον κυριον ιησουν και ημας δια ιησου εγερει και παραστησει συν υμιν
라틴어Vulgate,14 scientes quoniam qui suscitavit Iesum et nos cum Iesu suscitabit et constituet vobiscum
히브리어Modern,14 באשר ידענו כי המעיר את האדון ישוע יעיר גם אתנו על יד ישוע ויעמידנו עמכם׃


 

성 경: [고후4:14]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 바울의 사도적 삶은 철저히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예수께서 대속의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바울도 십자가의 고난을 본받았다. 바울이 온갖 죽음의 위협과 시련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으켜진 것처럼 바울 자신도 죽음에서 일으켜진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11:2;5:27;1:22).

󰃨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 종말론적 구원의 날 바울과 그의 성도들은 함께 구원의 기쁨을 나누며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날 바울을 비롯하여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되겠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정죄(定罪)의 심판대가 기다리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 영광스러운 미래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열어주기 위해 온갖 비방과 오해와 육체적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바울은 이런 사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지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타 가르 판타 디 휘마스 히나 헤 카리스 플레오나사사 디아 톤 플레이오논 텐 유카리스티안 페리쓔세 에이스 텐 돜산 투 데우

 

개역개정,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15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5 모든 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해져서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어NIV,15 All this is for your benefit, so that the grace that is reaching more and more people may cause thanksgiving to overflow to the glory of God.
영어NASB,15 For all things are for your sakes, that the grace which is spreading to more and more people may cause the giving of thanks to abound to the glory of God.
영어MSG,15  Every detail works to your advantage and to God's glory: more and more grace, more and more people, more and more praise!
영어NRSV,15 Yes, everything is for your sake, so that grace, as it extends to more and more people, may increase thanksgiving, to the glory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5 τα γαρ παντα δι υμας ινα η χαρις πλεονασασα δια των πλειονων την ευχαριστιαν περισσευση εις την δοξ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5 omnia enim propter vos ut gratia abundans per multos gratiarum actione abundet in gloriam Dei
히브리어Modern,15 כי כל זאת למענכם למען אשר ירבה החסד על ידי רבים ותפרץ התודה לכבוד האלהים׃


 

성 경: [고후4:15]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질그릇에 담긴 보배]

󰃨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다시 1:6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난 뿐만 아니라 그의 믿음과 전도, 이 모든 것들이 오직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이다. 여기에는 바울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디오 우크 엥카쿠멘 알 에이 카이 호 엨소 헤몬 안드로포스 디아프데이레타이 알 호 에소 헤몬 아나카이누타이 헤메라 카이 헤메라

 

개역개정,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새번역,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말성경,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쇠할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영어NIV,16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영어NASB,16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but though our outer man is decaying, yet our inner man is being renewed day by day.
영어MSG,16  So we're not giving up. How could we! Even though on the outside it often looks like things are falling apart on us, on the inside, where God is making new life, not a day goes by without his unfolding grace.
영어NRSV,16 So we do not lose heart. Even though our outer nature is wasting away, our inner nature is being renewed day by day.
헬라어신약Stephanos,16 διο ουκ εκκακουμεν αλλ ει και ο εξω ημων ανθρωπος διαφθειρεται αλλ ο εσωθεν ανακαινουται ημερα και ημερα
라틴어Vulgate,16 propter quod non deficimus sed licet is qui foris est noster homo corrumpitur tamen is qui intus est renovatur de die in diem
히브리어Modern,16 ובעבור זאת לא נחת ואף אם יכלה בנו האדם החיצון הנה האדם הפנימי יתחדש יום יום׃


 

성 경: [고후4:16]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크고 영원한 영광]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그러므로'라는 표현은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앞에서 제시되었음을 암시한다. 바울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언약을 전하는 고귀한 직분을 받았기 때문이다(1). 둘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리라는 소망 때문이다(14). 셋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혼을 윤택(潤澤)케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15).

󰃨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여기서 '겉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이 세대의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대조되는 '속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영적 실존을 가리키는데(5:17;2:5;3:9, 10;벧전 1:3), 장차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겉사람'이 낡아져 가는 것은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생성 소멸의 원리이다. 그러나 '속사람'이 도리어 새로와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와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4:15;3:10). '새로와짐'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이미 현재화되어 있다. 바울은 이것을 '날마다 새롭도다'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은 바울 자신에게도 적절하게 적용되는 바, 그의 육체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들(1:7-9;4:8-11)과 세월의 흐름으로 하여 점점 쇠약해지지만 그의 영적 실존은 나날이 새로와지는 것이다.

 

 

토 가르 파라우티카 엘라프론 테스 들륖세오스 헤몬 칻 휘페르볼렌 에이스 휘페르볼렌 아이오니온 바로스 돜세스 카타르가제타이 헤민

 

개역개정,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새번역,17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말성경,17 우리가 잠시 당하는 가벼운 고난은 그것 모두를 능가하고도 남을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뤄 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영어NIV,17 For our light and momentary troubles are achieving for us an eternal glory that far outweighs them all.
영어NASB,17 For momentary, light affliction is producing for us an eternal weight of glory far beyond all comparison,
영어MSG,17  These hard times are small potatoes compared to the coming good times, the lavish celebration prepared for us.
영어NRSV,17 For this slight momentary affliction is preparing us for an eternal weight of glory beyond all measure,
헬라어신약Stephanos,17 το γαρ παραυτικα ελαφρον της θλιψεως ημων καθ υπερβολην εις υπερβολην αιωνιον βαρος δοξης κατεργαζεται ημιν
라틴어Vulgate,17 id enim quod in praesenti est momentaneum et leve tribulationis nostrae supra modum in sublimitatem aeternum gloriae pondus operatur nobis
히브리어Modern,17 כי לחצנו אשר הוא קל ואך לרגע יביא לנו כבוד עולמים גדול ורב עד למאד׃



성 경: [고후4:17]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크고 영원한 영광]

󰃨 환난의 경한 것이...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본절에서는 두 가지 사항이 강조된다. 하나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받을 영광에 비하면 그 환난은 오히려 가볍다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영원' 그리고 '경한 것''능한 것'의 극명(克明)한 대조로 잘 나타나고 있다.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당한 환난은 사실상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1:8에서 고백한대로 그가 당한 환난은 너무 심하여 살 소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것을 '경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하늘에서 받을 영원하고도 영광스러운 축복에 대한소망을(1:5)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 스코푼톤 헤몬 타 블레포메나 알라 타 메 블레포메나 타 가르 블레포메나 프로스카이라 타 데 메 블레포메나 아이오니아

 

개역개정,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새번역,18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영어NIV,18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For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영어NASB,18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영어MSG,18  There's far more here than meets the eye. The things we see now are here today, gone tomorrow. But the things we can't see now will last forever.
영어NRSV,18 because we look not at what can be seen but at what cannot be seen; for what can be seen is temporary, but what cannot be seen is eternal.
헬라어신약Stephanos,18 μη σκοπουντων ημων τα βλεπομενα αλλα τα μη βλεπομενα τα γαρ βλεπομενα προσκαιρα τα δε μη βλεπομενα αιωνια
라틴어Vulgate,18 non contemplantibus nobis quae videntur sed quae non videntur quae enim videntur temporalia sunt quae autem non videntur aeterna sunt
히브리어Modern,18 אשר לא נביט אל הדברים הנראים כי אם אל אשר אינם נראים כי הנראים לשעה המה ואשר אינם נראים הם לעולם׃

 

성 경: [고후4:18]

주제1: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과 영광]

주제2: [크고 영원한 영광]

󰃨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여기서 '돌아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코페오'(*)'주목하다', '소망하다'의 뜻이다. 바울과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은 이 세대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보이는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묘사하고 자신이 후자를 바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물질과 영,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이원론적(二元論的) 구별을 말하는 것으로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육체적인 것이 무의미하다면 그가 당한 육체적 고통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였다(1:6). 다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결국 없어질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종말론적 구원의 날에 도래할 그 영원한 세계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이미 보며, 미래의 종말론적인 것을 이미 현재적인 것으로 누리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11:1). 이런 바울의 모습은 유한한 육체를 입고 환난이 현존하는 이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의 한 모범이며,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과 동일한 영적 실존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