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먼저 가인을 낳습니다.
그리고 아우인 아벨을 낳지요.
2절의 말씀과 같이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습니다.
3절의 앞 부분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말이 되겠지요.
최소한 가인과 아벨이 성인이 되고 부모를 떠나 독립해서 살아갈 정도가 되었으니 꽤나 시간이 지났겠지요?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만 낳았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자녀들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요.
왜냐하면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계획, 구속사 안에서 중요한 사건만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건들도 어느 정도 추리를 해볼 수 있는 것이죠.
3절로 다시 돌아가서,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이유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
여기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제물보다 먼저 그 사람을 받지 않으셨다는 뜻이 됩니다.
가인 때문에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고 아벨 때문에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우리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신앙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신들은 그냥 많이 갖다 바치고 자주 갖다 바치면 좋아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든지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성경을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갖다 바친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시지요.
그래서 아모스서에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잖아요.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나 제물이나 시간이나 헌신이나 이런 것들 보다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물을 바치는 가인의 중심이 바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4절에도 보시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아벨이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가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분하고 억울해하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가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어떤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었을 때에, 그래서 막 억울하고 분할 때에. 우리는 이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럴 때에 마귀가 틈을 타서 우리로 죄짓게 하거든요.
가인이 이렇게 막 분하고 흥분해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6-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아, 지금 네가 분하여 하고 안색이 변함이 왠 말이냐. 네 스스로를 잘 돌아보아라. 그리고 지금 죄가 문에 엎드려 있으니까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가인은 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계속 억울해하고 분해하고 씩씩거리다가 결국 사고를 칩니다.
8절입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이 아벨에게 들로 나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그들이 함께 있을 때에 가인이 아벨을 죽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죠.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모르고 물어보셨을까요? 알면서도 가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죠. 그런데 가인은 아주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렇게 기회를 줬는데도 가인이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10-12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아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너는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심판하십니다.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하며 돌아다니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저도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혼을 하고 2년마다 이사를 다녔습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2년 동안 신촌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했는데 다음 사역지로 옮기며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교회에서는 4년 동안 사역을 했는데 거기가 또 중간에 전세가 끝나서 2년 살다가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4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두 집을 살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제 또 여기 예능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사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물론 요즘에는 이삿짐 센터에서 대부분을 도와주지만 준비하고 정리할 것이 참 많고 신경 쓸 것도 참 많지요.
그리고 제일 힘든 것은 사역지를 옮기면서 모든 생활이 바뀐다는 것이죠.
인간관계도 다 바뀌고 사는 지역도 다 바뀌고.
그러다보니 바뀐 집도 적응해야되고, 지역도 적응해야되고, 교회도 사역도 적응해야되고, 인간관계도 다 적응해야 합니다.
저도 이런데 여기 가인은 오죽하겠습니까?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리하면 일단 안정된 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주택이나 아파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천막 같은 곳에서 살면서 광야 생활을 하겠지요? 광야에는 얼마나 많은 위협들이 있겠습니까?
강도의 위협, 사나운 동물의 위협, 날씨의 위협 등등. 수많은 위협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13절-14절 말씀입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나님, 제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면 너무나 힘듭니다. 그리고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가인이 하나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약간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지금 아담과 하와와 가인과 아벨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나를 만나는 자마다는 도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설명을 드렸지만 성경에는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명히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 외에도 많은 자녀를 낳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듣고 가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가인이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또 하나님이 가인을 그냥 매몰차게 “니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하고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베푸십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즉 하나님께서는 살인자 가인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부터 보호해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가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밭을 갈아도 땅이 그 효력을 주지 않도록 하셨고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가인의 죄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신 것이죠.
가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인 다윗을 보세요.
자신의 정욕 때문에 자신의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범죄를 저지른 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을까요? 안 받았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니까 그냥 눈 감아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이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칼이 다윗의 집에서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에 대해서 책망하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에 대해서 눈을 감아 버린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은 어디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해결하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심판 중에도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땅에서 피하고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라 선포하셨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아까 말씀드린 그런 심판을 베푸셨지만 동시에 은혜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이라는 지혜로운 아들이 태어나게 하시고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실까요?
심판을 하시려면 심판을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려면 은혜를 베푸시지 왜 심판도 하시고 은혜도 베푸시는가? 헷갈리게 말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릴께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죄는 미워하시지만 우리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이 저지른 죄는 미워하시지만 가인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이 저지른 죄는 미워하시지만 다윗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저지르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우리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는 심판하시지만 우리는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멀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문 앞에 엎드려서 우리를 원하고 있는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그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모든 죄의 유혹에서 승리하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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