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죠? 육신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고, 영적으로 이야기하면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매우 훌륭한 사람이 바로 이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며 아브라함의 어떤 모습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먼저, 아브라함은 익숙한 환경을 과감하게 떠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은 반역과 죄악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이라는 아들들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형이었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더욱 급격하게 타락하고 악해집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홍수를 일으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역사를 끝내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어 주시죠.
그래서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금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다시 하나님께 반역을 하고 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바벨탑을 만든 것이죠.
사람들은 바벨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히 정반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온 땅에 흩어버리십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가히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벨탑 사건을 경험하고 온 세계로 흩어져 버린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서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겼을까요?
네, 다들 생각하시는 것과 같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섬겼던 나라나 민족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각자 또 다른 우상을 섬기며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이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을까요? 아니면 다른 신들을 섬겼을까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역시도 다른 신들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여호수아서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24:2의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런 문화적인 배경에서 성장한 아브라함은 어땠을까요?
아브라함도 아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신을 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본문 1-2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를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너를 창대하게 해주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신이 갑자기 내 삶에 개입해서 내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젊은 나이도 아닌 75세 때에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육신적으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야 합니다.
아직 아버지인 데라가 살아계신데 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동안 믿었던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신앙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것 역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통해 어떻게 아브라함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는 그동안 자신이 익숙하게 여겼던 모든 삶에서 과감하게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매우 전통적인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어떻게 변했죠?
그동안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동안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났던 것이죠.
아브라함과 같이 육적으로 영적으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 그 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이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동안 나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는 이런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나 믿음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문화가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미련 없이 벗어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복과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과감하게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행동하면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또 그 행복을 이 세상에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모로써 자식에게 가장 바라는 삶이 무엇이죠?
부모는 자식이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나요? 바로 행복한 삶이죠.
예전에 교육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엄마가 아이의 모든 스케쥴을 다 짜주면서 하루 종일 뺑글뺑글 돌립니다.
목적이 무엇일까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를 좋은 대학에 가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엄마가 정보력을 가지고 아이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죠.
그래서 피디가 그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아이를 힘들게 공부시키시나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면 아이가 행복할 것 같아서요.”
물론 그 방향은 잘못되었지만 이 어머니의 마음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신의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이유도,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잘 벌라고 하는 이유도 사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죠. 그런 것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많은 명령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0:12-13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나와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명령과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대로 살 때가 아니라,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 안에서 살아갈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과 규례를 지키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까, 불행해지기 위해서입니까?
당연히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는데 불행하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잠깐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로 인해 외부적인 핍박이 심했죠.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팔아서 함께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아 서로의 필요를 채워준 것이죠.
이들은 행복했을까요? 불행했을까요?
외부의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는 매우 행복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 더 큰 차원에서 한 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당장 천국에 데리고 가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자마자 죽어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를 당장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남겨 두시거든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엄청나게 행복할 것입니다.
옛날에 왕이 다스리던 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백성들을 정말 사랑하고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는 어질고 덕이 많은 선왕이 그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의 삶이 어떨까요?
행복합니다.
반대로 나쁘고 악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들이 어떻게 되지요?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도, 십계명을 비롯해서 수많은 율법을 주시면서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까?
자신들은 하나님이 없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평안과 행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져도 허무하게 살아갑니다.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을 과감하게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과 은혜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아브라함은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갑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무려 75세였습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왔는데 그 약속이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땅을 차지하기는커녕 그저 나그네와 같이 그 땅에서 거류하게 됩니다.
때로는 기근이 생기기도 해서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애굽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거기서 애굽 왕 바로에 의해서 아내를 빼앗길 뻔 하기도 하는 등 큰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왔는데 이게 뭡니까? 그죠?
땅 문제는 그렇다 치고 자녀들의 문제는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왜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안 생기는지!
얼마나 안 생기면 그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몸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을 생각까지 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몸종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에 대해서 믿음이 없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약속을 하신지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1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우리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여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자녀는 그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를 통해 태어난 이삭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지 25년 만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에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이삭에게도 자녀가 잘 안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랑 결혼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것이 몇 살 때일까요?
60세 때입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지 20년 만에 이삭에게 자식이 생긴 것이죠.
아브라함이 175세에 수명이 다하여 하나님 곁으로 가거든요?
그러면 아브라함이 살아 있을 때에 볼 수 있었던 약속의 자녀는 이삭과 그의 자녀인 에서와 야곱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가 300명이나 넘는 꽤나 큰 족속의 족장이었지만,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 자녀가 많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땅을 많이 차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크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매일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힘들겠죠?
사실 우리도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힘들고 지치는 시점이 바로 이 시점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모든 익숙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때에도 큰 결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때는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도 충만하여 과감하게 결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위기가 닥치나요?
그렇게 과감하게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는데 큰 변화가 없는 매일의 일상을 살아갈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못할 것이 없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내 주변에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도 별로 달라지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과 비전과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이 시간이 흘러도 전혀 이루어지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의 가족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더 잘 되어야 하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매우 지치고 힘이 빠집니다. 낙심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여정을 당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때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무려 25년을 기다려 약속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감아 하나님 곁으로 가는 그 순간까지 가나안 땅을 차지한 자신의 큰 민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몇 백년이 지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 부르실 때에 하셨던 약속,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아브라함과 같이 과감하게 나에게 익숙한, 하나님이 없는 그 곳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믿음의 여정을 끝까지 잘 이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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