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이 에스겔서는 하나님이 에스겔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예언을 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에스겔이 예언을 할 당시는 바벨론 포로기이죠.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포로 공동체를 대상으로 사역을 했던 선지자가 바로 에스겔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경우에는 BC. 721년 즈음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경우에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한 번에 멸망을 당한 것은 아니고 크게 3번에 걸쳐서 바벨론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첫 번째가 BC. 606년인데 이 때에 다니엘과 세친구와 같은 엘리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죠.
두 번째가 BC. 597년인데 이 때에 수많은 사람들과 에스겔과 같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B.C. 586년인데 이 때에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왕과 나머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지요.
에스겔은 이 중에서 두 번째인 BC. 597년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직까지 완전히 멸망하기 전이죠.
예루살렘이 아직까지 멸망하기 전이니까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여기 포로로 잡혀 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금방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셨을까요?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별로 좋지 않겠지요. 긍정적인 예언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예언을 하니까요.
그래서 사실 에스겔은 별로 환영받는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동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그런 예언자였죠.
결국 예루살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스겔의 예언과 같이 예루살렘은 멸망을 하게 됩니다.
에스겔 33장 21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즉,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온 후 열두째 해 되는 때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이후에는 에스겔이 어떤 예언을 했을까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죄악이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이후부터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의 뒷 부분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이 뒷부분에 나오고 40장부터는 이스라엘의 성전이 다시금 회복되는 환상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같은 맥락 안에서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복된 예루살렘을 주변의 나라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고 침략하러 올 것이라는 말씀도 하시죠.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38장 앞 부분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마곡 땅의 왕인 곡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연합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 10절부터 보시면, 그 마음에 악한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10-12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 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폐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주하는 땅과 여러 나라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주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이와 같이 곡이 악한 꾀를 내어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고 있다고 묘사가 되고 있는가 하면,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재미있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어떤 방어를 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이 곡이라는 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도 없으니까 참 침략하기 쉽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곡이라는 나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나라들도 거기에 동참하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과 그 부자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탈취하러 왔느냐 네가 네 무리를 모아 노략하고자 하느냐 은과 금을 빼앗으며 짐승과 재물을 빼앗으며 물건을 크게 약탈하여 가고자 하느냐 하리라”
이 부분은 곡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에 생기게 될 약탈물에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인과 그 부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이들도 어찌보면 이스라엘을 정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주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너희는 내 백성이 왜 이렇게 평안히 거주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느냐?
내가 그들을 지키기 때문에 이렇게 평안히 거주하고 있는 것인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느냐? 이런 뜻이죠.
그래서 15절부터 또다시 보시면
“네가 네 고국 땅 북쪽 끝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무리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렇게 이스라엘로 와서 그들을 치려고 할 때에 내가 이방 사람의 눈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겠다! 나를 알게 하겠다! 말씀을 하십니다.
즉,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지키고 계심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는가?
17절부터의 말씀을 보시면 그 방법이 나타납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 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이 칼로 그 형제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나님께서 지진과 칼과 전염병과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들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그들을 침략하러 온 이방 나라들은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돌이킨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신학적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방법이 창조와 섭리이다. 즉, 창조와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가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권능의 말씀으로 6일 동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뿐 아니라 타락한 우리 인간을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재창조도 그 창조 안에 포함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재창조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계속해서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망가졌잖아요, 그런데 그런 타락한 세상을 재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세상을 지금도 끊임 없이 보존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비교를 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금 이스라엘로 돌아오도록 회복시키고 그들을 재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존하시고 다른 나라들이 그들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곡과 같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뒤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죠. 결국은 곡 왕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창조되었지만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성령으로 재창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이 아닌 온갖 우상을 섬기며 내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재창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물론 외적인 모습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얼굴이 바뀌지는 않죠.
그런데 표정이 바뀌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뀌지요.
우리의 겉사람은 그대로이지만 속사람은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워집니다.
그렇게 나는 변화되었는데 나의 주변 환경은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게도 여전히 나의 주변 상황과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꼭 곡과 같은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있죠.
그래서 끊임 없이 회복되고 변화된 우리를 괴롭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지요.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그 때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창조된 우리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보존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세력을 심판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에 곡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너무나도 힘들게 만드는 존재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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