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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갈라 / 갈라내다 / 갈라디아 / 갈라디아서

갈라(Galah)

티그리스 강 동쪽 기슭에 있는 니느웨에서 동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앗수르 최고의 성이다. 이 성은 바벨론 왕 니므롯이 앗수르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창 10:11). 이곳에서 발견된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오므리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왕 예후가 바벨론에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이곳의 오늘날 이름은 '니므롯'이다. 

 

갈라내다(separate)

둘 이상으로 구별하여 나누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원어상으로 '분리시키다', '떼어 놓다', '절단하다'의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서, 즉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섞여 있는 상태에서 종류별로 각각 분리하여 떼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 결합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과 갈라내지 않겠다는 약속, 다시 말해서 이방인도 구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문맥에서 사용되었다(사 56:3). 또한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천사들이 의인과 악인을 갈라낼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마 13:49). 

 

갈라디아(Galatia)

소아시아 중앙에 있는 한 지역으로 로마에 속했으며, 이곳에 살던 켈트족으로부터 갈라디아라는 명칭에 유래하였다. B.C. 1000년부터 유럽을 전전하다가 희랍의 델피 지역으로 온 켈트족을 비두니아의 왕 니코메데스 1세가 자기 형제드로가의 전쟁에 끌어들였는데(B.C. 278), 이 전쟁에서 수훈을 거둔 켈트족은 침략군으로 변모하여 소아시아의 서쪽 지역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셀류쿠스의 왕 안티오쿠스 1세에 의해 그들의 공격이 제지당하자 이들은 소아시아의 중앙 고원지대로 몰리게 되었다.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면서부터 갈라디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북쪽으로 비두니아와 팝플라고니아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서쪽으로 프리지아, 동쪽으로 본도, 남동쪽으로 갑바도기아가 경계로 위치하고 있다. 갈라디아는 세 부족 연맹체로 시작하여 B.C. 64년까지 이르다가 B.C. 25년에 마지막 왕 아민타스가 죽으면서 로마에 병합되었다. 로마의 행정 개편에 따라 새롭게 갈라디아주가 되면서 루가오니아, 이사우리아, 비시디아 및 본도의 일부분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렇게 확장된 갈라디아주의 수도는 안키라였다. 이 수도는 오늘날의 앙키라를 말한다. 여러 지방이 통합되었지만 이들은 서로 문화적인 차이를 없애지 못하였고, 각자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A.D. 2세기말까지 유지하였다(행 14:11). 따라서 원래의 갈라디아를 북 갈라디아, 로마 통치하의 갈라디아를 남 갈라디아로 구분한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고고학적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바울이 전도 여행 중에 방문하고 편지를 보낸 갈라디아가 정확하게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행 16:6; 18:23; 고전 16:1; 갈 1:2).

 

갈라디아서(letter to the Galatians)

신약성경의 아홉번째에 있는 책이며, 바울의 주요 서신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서신은 '짧은 로마서'라고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주제와 내용면에서 로마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즉 두 서신은 바울의 '이신득의' 교리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이 서신은 종교개혁의 한 디딤돌이 되었고, 특히 루터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하여 그의 개혁 운동의 주제인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1. 저자 - 이 서신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대체로 이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서신의 문체와 교리적 내용,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분석 등이 바울의 색채를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이 이 책에서 스스로 저자임을 밝히고 있다(1:1; 5:2).

2. 기록 연대와 장소 - 이 서신을 기록한 연대와 장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이것이 북 갈라디아, 즉 로마에 속하기 전에 존재했던 지역에 보낸 서신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한 A.D. 52년 이후에 고린도나 에베소에서 이것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남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라고 보는 견해로서, 일반적으로 사도회의 직전인 A.D. 48년경에 수리아 안디옥에서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서신이 갈라디아에서 발생한 긴급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사도회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남 갈라디아설에 따라 A.D. 48년 혹은 49년에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