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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고린도 / 고린도전서 / 고린도후서

고린도(Corinth)

아테네 서쪽에 있는 그리스(헬라)의 항구도시로서, 고린도 만으로부터 약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고대로부터 '온 헬라의 빛'이라 불리운 이곳은 상업과 무역이 번성하였고, 동서 문화와 종교의 혼잡을 이룬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B.C.8세기에는 고린도시가 군사, 경제면에서 그리스에서 첫째 가는 힘을 지녔다. B.C.431-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스파르타와 함께 아테네에 대항하였고, 알렉산더 대왕이 주도했던 헬라 동맹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B.C.146년에 로마의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파괴된 후, B.C.44년에 율리우스 시저(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되어 로마의 이주민들이 정착했다. B.C.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의 마게도냐에서 분리되어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었고, 상업-무역-정치의 중심지로서 번영의 절정에 이르렀다. 동시에 여러 민족이 모이는 이 도시는 선로 전략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극장이 있었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운동 경기는 그리스, 로마, 동양 사람들까지 참석하는 올림픽 경기 다음으로 유명했다. 또한 천 명 정도의 매춘부들이 있는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여신전이 있는 곳도 이곳이었다. 

고린도는 향락 풍조가 만연되었고, 외국인들을 상대로 종교적 매춘 행위가 행해졌다. 이곳의 도덕적 타락상은 헬라어로 '코린티아조마이'('고린도인처럼 행하다'란 뜻)란 단어가 '매춘 행위를 하다'란 뜻을 가지게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린도는 타락한 도시로 유명했고, 이런 병폐가 교회 내에도 스며들어 고린도 교회의 고민도 심각하였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이곳에 들러 1년 반을 머물면서 전도 활동을 하고 교회를 세웠으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썼다(행18:1-11). 이후로 고린도는 교회 역사에서 그 중요성을 상실해 갔으며, 2세기 경에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여러 공공건물들이 건설되어 새롭게 단장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1458년 사라센에 점령되었고, 1858년에 대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

 

고린도전서(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1. 본서의 배경.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 방문하여(행18:1-8) 일년 반을 체류하면서(18:12) 이곳에 교회를 세웠고, 실루아노, 디모데와 함께 젊은 부부신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유숙하며 그들과 함께 천막 업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전했다(행18:2-3).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가 이곳에 전도하러 왔고, 유대교의 일파가 들어와 분쟁을 일으켰으며, 도시의 퇴폐풍조까지도 교회에 밀려 들어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바울은 고린도를 떠난 후 지금은 유실되고 없는 편지 한 통을 보냈으나(고전5:9) 고린도 교인들이 그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통해(7:1) 신자들 간에 불만이 커간다는 소식을 듣고 고린도전서를 보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둘러 교회를 방문하였고, 그 후 세번째로 엄한 편지를 보냈다(고후2:4). 바울은 편지를 갖고 떠난 디도를 기다리다 못해 직접 마게도냐로 가서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쁨으로 그는 네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보낸 후 마지막으로 고린도를 방문했다(행20:1-4).

2. 기록연대와 기록목적. 본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A.D.53-58) 53-55년 사이의 에베소 체류 기간 동안에 기록한 것으로, 글로에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 알게 된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여러 가지 논쟁을 해결하고 서신을 통한 고린도 교회의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3. 의의. 본서는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이자 권면으로, 초대교회의 내면 생활 및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본서는 목회 신학의 좋은 본보기가 되며, 그 문학적 가치 또한 탁월하다. 

4. 내용.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의 기반이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언급하고 정중한 인사말로 본 서신을 시작한다(고전1:1-3).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라파, 베드로파, 예수파로 나뉘어 분열과 비난, 정죄를 일삼았다(1장).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이란 인간의 지혜나 재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임을 지적하고, 십자가의 도와 성령의 계시에 대해 가르친다(2장). 또한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성행하는 분파주의는 지적 교만과 영적 미숙을 폭로할 뿐이며, 그 결과 상을 잃어버리게 된다(3장)과 말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십자가의 복음에만 의지해야 한다(4장)고 충고한다. 5장에서는 교회 내에 일어난 음행 문제, 6장에서는 소송 사건을, 7장부터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결혼생활에 대해(7장),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8-11장), 예배 시 여인들의 복장(11:2-16), 성찬식(17-29절), 영적 은사(12-14장), 부활 문제(15장)를 거론하고, 결말로서 두세 가지 점의 주의를 주고 마지막 인사로 본서를 맺고 있다(16장). 

 

고린도후서(The second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1. 기록연대와 기록목적.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후 디도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의 상태를 알아보게 하고,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 그곳에서 디도를 만나 경과를 보고받았다(고후2:13;7:5). 그 보고의 내용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바울을 간절히 사모한다는 기쁜 소식과 아울러(5:9;7:7) 바울의 사도직을 비난하고 의심하는 반바울주의자 소식도 들어 있었다. 이에 바울은 본서를 기록하기에 이르렀고, 동시에 예루살렘의 성도에 대한 연보의 일에 대해서도 기록하게 되었다. 본서는 고린도전서가 쓰여진 후 약 1,2년이 지나서, 마게도냐의 한 도시(빌립보로 추정)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2. 특징. 본서는 바울의 자서전적인 책으로,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본서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환난'이며, 자신의 사도직의 소명과 신적 기원을 변호함으로써 감정적이고 변명적인 것이 특징이다. 

3.내용. 본서에서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문안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1:1-11). 자기의 행동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비난에 대해 변명하고(1:12-2:17), 자신이 전파한 복음과 복음을 위한 그의 고난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도권과 복음의 정당성을 변호하는(3:1-6:10) 동시에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멀리하도록 권면한다(6:11-7:16). 그런 다음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로서 사람과 성별의 필요를 가르치고,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하기를 권한다(8:1-9:15). 바울은 또다시 자신의 사도직을 변명하면서 자신의 권위(10장)와 우월(11장)에 대해 자랑하고, 영적 체험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12:1-18). 끝으로 그는 세번째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밝히고 미리 회개할 것을 권하며, 마지막 권고와 송영으로 본서를 맺었다(12:19-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