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sufferance)
말없는 가운데 승인하는 것을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묵인'으로 번역된 '에아오'의 어원적인 뜻은 '내맡기다', '내버려두다' 등이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그곳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각 이방나라의 관습과 종교 생활에 대해서 책망하시거나 벌하시지 않았음을 말하였다(행 14:16, 공동 · 새번역 '내버려 두다').
묶다(bind)
새끼나 끈으로 잡아 매는 것, 또는 한 군데로 모아 합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사물이나 물건을 묶는 것 이외에 사람에게 사용될 때는 '허리를 묶다' 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할 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였으며(왕상20:32), 행동하기 위한 준비나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한 준비의 모습으로 '허리를 묶다' 라고 표현했다(욥38:3;31:17).
문(door)
구약성경에서 ‘문’으로 번역된 단어는 다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델레트'는 양쪽으로 움직이는 문, 출입구의 열고 닫는 장치, 즉 일반적으로 건물에 부착된 ‘문짝'그 자체를 가리킨다. 성경시대의 일반적인 문은 작은 널판지나 판자로 만들었으며, 청동이나 쇠붙이 등과 같은 금속 조각을 그 위에 덧붙였다. 이 단어는 비유적인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욥3:10;38:8;41:14;시78:23;아8:9). 한편 '페타흐’는 장막, 집, 성읍, 동굴, 대문 등의 '입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도 '소망의 문'(호2:15), '네 입의 문' (미7:5) 등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델레트가 문짝 자체를, 페타흐가 입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샤아르' 는 복합된 전체의 문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문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城)의 출입을 통제하는 수단이었으며, 주요 문들은 종종 바깥문과 안문으로 되어 있었다(삼하18:24). 성문은 사회 행정을 위한 백성들의 생활에 중요했으며, 물건을 사고 파는 일들은 성문 곁에서 이루어졌다. 왕들은 각성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 앞 재판석에서 치리하였으며, 거기서 선지자들이 백성들과 왕들에게 말하였다(왕상22:10). 접근하거나 출입하는 수단의 상징으로서 죽음의 문(시9:13), 여호와의 문(시 118:20), 하늘의 문(창28:17) 등을 언급하였다.
신약성경에서 '문'으로 번역된 단어들 중 '튀라'는 일반적으로 집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마6:6;눅11:7), 성전의 대문을 가리키거나, 무덤의 입구를 의미하기도 했다(마27:60).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가능성을 부여하심으로써 전도의 문을 여신 것(행14:27),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여는 것(계3:20), 돌이킬 수 없는 기회의 상실을 뜻하는 문이 닫히는 것(마25:10), 예수께서 ‘나는 문' 이라고 말씀하신 것(요10:9) 등이다. 한편 '필레' 는 도시나 성전, 감옥 등의 일반적인 '문'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히13:12). 그리고 ‘퓔론’은 성전이나 집들의 출입구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마26:71;행12:13-14).
문둥병(leprosy)
문둥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전염병으로 한센병이라고도 한다. 나균은 항산성균의 하나로 1874년 노르웨이의 A. G. H. 한센에 의해 발견되었다. 문둥병은 이미 B. C. 2400년경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에 기록되었고 페르시아에서는 B. C. 6세기에 알려졌으며 A. D. 1-2세기의 그리스 로마 의사들에 의해서도 기록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알려진 병이다. 문둥병은 원래 열대지방의 악성 전염병으로 서유럽에는 중세초기에서야 들어왔고 십자군의 이동에 의해 여러 곳으로 퍼진 것으로 보여진다. 개역성경에서 문둥병이나 문둥병 환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라'와 '차라아트' 는 일반적으로 악성 피부병을 가리킨다. 따라서 개역성경에 언급된 문둥병은 오늘날 알려진 문둥병과는 동일하지 않으며 광범위한 피부질환을 의미하므로 문둥병이라는 용어는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적절치 못하다. 성경에서는 또한 문둥병은 전염성이 있는 병으로 피부의 발진뿐 아니라 옷이나 집에 생긴 홍색점이나 청색점에 대해서도 적용되지만 이는 곰팡이나 균류에 의해 생긴 얼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경에서 문둥병에 관한 규례는 레위기 13-1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 규례는 문둥병의 임상적인 현상들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정결과 부정의 엄격한 분리를 강조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 문둥병을 진단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정치형태가 신정정치였으며 또한 문둥병이 하나님의 거룩에 위배되는 부정과 관계된 병이기 때문에 비록 의학적 지식이 짧을지라도 하나님의 대리자인 제사장만이 그 병을 진단할 수 있었다(레13:8). 만일 제사장에 의해 문둥병으로 규정되면 문둥병환자는 살이 짓무르고 털이 하얗게 탈색되어 쉽게 눈에 띠는데도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부정하다고 소리를 질러서 자신이 문둥병 환자임을 알려야 했으며 성전예식에 참여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진 밖에서 거주해야 했다(레 13:45-46). 그러나 병이 회복되면 제사장을 통한 정결의식을 거침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레 14:1-20).
문둥병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징벌로 내리기도 하시는데 모세를 시기한 미리암이나(민12:1-10), 탐심에 이끌린 게하시(왕하5:7),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하고 제사장에게 노를 발한 웃시야(대하26:16-19)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고 모든 질병이 죄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었다. 문둥병의 치유는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표징을 보이시기 위해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다가 치유하셨으며(출4:6-7),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나아만을 고치심으로 능력을 나타내셨다(왕하5:8-14).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문둥병을 고치신 뒤 모세의 율법대로 그 환자를 제사장에게 보내었으며(마8:1-4; 막1:42;눅5:13) 이런 치유의 능력은 파송되는 열두 제자들에게도 주어졌다(마10:8). 또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시다가 들른 한 촌에서도 열 문둥이를 만나 치유하시고 제사장에게 보냈는데, 그 중 사마리아 출신의 한 문둥이만 예수께 와서 감사드렸다(눅17:11-18). 신약에서 예수의 이러한 문둥병 치유기사와 제자들의 치유기사는 궁극적으로 메시야의 사역과 메시야의 구원시대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표징들이었다(마10:8;11:5).
문득(suddenly)
생각이나 느낌 따위가 갑자기 떠오르는 모양을 말한다. 개역성경에서 '문득'으로 번역된 '엑사피나'의 어원적인 뜻은 '갑자기', '즉시로', '뜻밖에' 등을 나타낸다. 예수께서 변화되신 사건을 보고 제자들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는 말로 제자들의 행동을 생동감있게 묘사했다(막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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