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The book of Zechariah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열 한번째의 책.
1. 구조. 총 14장인 스가랴서는 자연스럽게 두개의 주요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8장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재건축을 완성하도록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으며 9-14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미래와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반부에서 스가라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소개하며 백성들에게회개하여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킬 것을 요구한다.그들의 죄 가운데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성전 재건축을 마치지 못한 것도 있다. 밤에 본 일련의 여덟가지 상징적인 환상들(1:7-6:8)에서 스가랴는 이 중요한과업을 완성하도록 백성들을 격려한다. 이 환상들에이어서 대관식 장면(6:9-15)이 나오는데, 여호수아라고하는 대제사장에게 장차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면류관이 씌워진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전형적인 메시야 예언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7-8장에서는 메시아적 희망의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계속된다. 장차 오실 이는 시온, 예루살렘성에서 공의로 통치하실 것이다(8:3,15-16). 스가랴서의 후반부인 9-14장은 다가올 새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담고 있다. 9장은 통치하시는 메시야가 예루살렘 성에 오시는 방법을 놀랍게 묘사한다(9:9,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구절은 스가랴가 선포한 지 약 400년 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마태가 묘사할 때인용되었다(마21:5;막11:7-10). 미래에 대한 다른 약속들로서 이스라엘의 회복(10장), 예루살렘이 그의 대적들로부터 구원받음(12장), 또한 거룩한 도성으로 정결케 됨(13장) 등이 있다. 요한계시록처럼 스가랴서도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모든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그분의 통치를펴실 때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하여 올 것이다(14장).
2. 저자 및 연대. 많은 학자들은 스가랴서 9-14장이 스가랴의 작품이 아니라 익명의 다른 저자에 의해기록되고 첨가된 것으로 본다. 그것의 연대를 포로기이전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스가랴 이후, A. D. 160년경이라고 보기도 한다. 스가랴의 저작설을 반대하는주된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장과 9-14장 사이의 분위기가 다르다. 전자는 산문 형식으로서 희망과약속으로 가득한 반면에 후자는 시문(詩文) 형식으로서 나쁜 지도자들과 습격의 위협을 나타내주고 있다.둘째, 9:13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서 스가랴시대의 페르시아(바사)가 아닌 헬라가 언급되고 있다. 셋째, 13장에서 예언을 비하하는 듯한 언급과 14장의 묵시적인 면은 후기시대의 표지이다. 넷째, 이 밖에도 후반부에는 선지자, 예언 날짜, 성전 재건축에 대한 언급등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첫번째 반론은 후반부의 예언이 폭넓게 분리된 시대, 즉 스가랴가 늙었을 때에 주어졌을 가능성으로 답변될 수도 있다. 이것이 사실일수 있는 성경자체의 실마리는 그의 한 환상중에 두 천사가 선지자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할 때 그를 가리켜'소년' (2:4, 공동 · 새번역 '젊은이' )이라 부른 점이다.이것은 스가랴가 초기에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용기를 주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스가랴서 후반부에담겨있는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했으리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두번째 반대 이유에 대해서는 헬라가스가랴의 훨씬 이전시대에 언급되고 있으며(사66:19;겔27:13,19;욜3:6, 히브리어 '야완'으로서 스가랴서에'헬라'로 번역된 것과 동일), 스가랴 시대에는 페르시아에 있어서 헬라가 고통의 근원이었다는 것으로 답변될 수 있다. 세번째의 것은 예언의 가치하락이 아니라 참 예언이 그치고 선포되는 예언이라고는 단지 거짓 예언일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안다면 해결된다. 마지막으로 신구약 중간시대에 묵시적인 글이 많은 까닭으로서 이사야와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의 동일한 형태들이 후대에 이어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가랴서의 저자가 한 사람이라는 것(통일성)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쉽게 이것이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3. 역사적 배경. 이 책이 시작되는 배경은 학개서의 배경과 동일하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성전은 아직 폐허로 더럽혀진 채 있었으며 낙심한 백성들은 그것을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러한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세우셨고 유대인들을 북돋우어 성전을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하셨다. 두 사람의 예언은 거의 동시대에 동일한 주제로 선포되었으나(스5:1), 스가랴는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과 희망을 통한 완전한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는 하나님 율법의 본질과 당신께 신실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희망에 대해서 말하였다.
스가랴서의 후반부는 선지자 학개 (B. C. 520)와 말라기(B. C. 450)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 시기에 다리오1세(B. C. 522-486)와 아하수에로1세(B. C. 585-465)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이 기간은 예루살렘의 유대백성들이 성벽과 그들이 사랑하는 성전이 있는 새로운 땅에 정착한 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기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 총독 스룹바벨이 메시야일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필요로 하였다. 바로 이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스가랴에게 매우 극적인 방법으로 주어졌다.
4. 신학적 기여. 스가랴서의 가장 큰 공헌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과 예언자 요소들을 서로 병합시킨 것이다. 스가랴는 이들 요소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신실한 믿음으로 깨달았다. 그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에서 돌이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그는 성전과 종교가 백성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있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가라는 이 요소들을 자기 사역에 병합시킴으로써 기독공동체가 그리스도를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이해하도록 길을 예비해 주었다.
또한 스가랴는 마지막 때의 사건들에 대한 매우 상징화되고 환상적인 언어들을 사용하여 묵시적 · 예언적 형식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다니엘서, 계시록과 비슷하다. 등대와 감람나무, 말 탄 사람, 병거, 척량줄, 뿔 등은 이들 세 책을 한 부류로 묶어준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개념을 자주 무사(武士)로 말하기도 한다. 이 개념은 성경 저자들에게 정착된 상(像)이었으며 스가랴는 여호와의 날과 이 개념을 결합시킨다(참고. 욜2장). 여호와의 날에 대(大)무사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14:1-9)은 구약성경의 가장 감동적인 예언들 중 하나이다.
5. 특별한 고찰. 스가랴서 12:10은 구세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반응을 말하고 있는 놀라운 구절이다. 이것은 유대 사람들(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이 예수의 죽으심에 대한 의미를 깨달을 미래의 어떤 날을 묘사한다. 이 깨달음은 애통과 회개, 그리고 구원을 가져올 것이다(비교. 롬11:25-27).
그러나 이 구절에 관한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12:10, 새번역 “그러면 그들은,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라는 대목이다. 선지자 스가랴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찔린 분과 동일시 하셨다. 시편과 이사야 53장과 함께 이 말들은 놀라운 영감으로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예수께서 죽으신 방법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의 결과라고 묘사해 준다.
스게와 Sceva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의 한 제사장으로(헬라어 및 영역본은 다 대제사장으로 나온다), 그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다(행19:14). 이들은 바울이 전파한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 시험적으로 악귀를 쫓으려 했으나 도리어 악귀가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공격하여 저희를 이김으로써, 스케와의 아들들은 상처를 입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행19:15-16).
성경은 스게와의 직책을 제사장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였을 수도 있고 혹은 고객을 끌기 위하여 스스로 붙인 호칭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누가는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스게와와 일곱 아들들은 심지어 바울의 설교를 받아들이며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영접한다고까지 공언했을 수도 있으며 이것은 사마리아의 시몬의 태도와 비슷했을 것이다(참고, 행8:9-24).
스구디아인 Scythian
말을 타며 유목하던 무사(武士) 종족. 서부 시베리아에서 왔으며 B. C. 2000년경부터 흑해-카스피 해 지역에 거주하였다. B. C. 8세기 후반 그들은 키메르족을 서쪽으로 몰아내 북페르시아와 우랄투로 이주해 왔다. B. C.722-705년에 통치한 사르곤 2세에 의해 저지당했지만,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스구디아인들은 수많은 군사적 모험을 통하여 28년 동안 아시아를 지배했다고 한다. 그들은 B. C. 630년경 니느웨를 구조하면서 메대 사람들을 대항하여 앗시리아를 도왔다. 비록 후에 하란을 공격하고 팔레스타인을 침입했을지라도 삼메티쿠스 1세가 그들을 매수했을 때만은 이집트 침입하는 것을 멈추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사건이 예레미야(47장)와 스바냐의 예언을 설명하는 것으로 간주하나, 동시대의 본문들에는 스구디아인들(아스쿠자이, 움만-단다)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스구디아인이 시리아-팔레스타인을 침입한 연대를 밝히는데 있어서 학자들 간에 서로 이견이 있지만, B. C, 645-617년경이 적당한 것 같다. 그들이 강한 집단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스구도폴리스라 불리는 '벧스안'에 정착한 것으로 믿어진다(삿1:27, 70인역).
스구디아인들은 B. C. 110년 스룰러스 치세시 크리미아에 있는 네압폴리스에 그들의 수도를 세웠고, 그들의 통치 계층들은 그들로 하여금 러시아로부터 특히 곡물과 노예들을 거래하는 중개를 하도록 만들었다. 비록 이들이 자유 유목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포로들이었을지라도 라인들은 그들을 '스구디아인들' 이라 불렀다. 바울은 '스구디아인’을 '미개인'이나 '야만인' 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하였을 것이다(골3:11).
스굽 Segub
1.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당시에 여리고 성을 재건한 히엘의 막내 아들로, 그의 맏형인 아비람과 함께 성읍 재건 때 희생제물로 바쳐진 자이다(왕상16:34). 이런 풍습은 고대 이방인 사이에서 행해지던 풍습이었으나, 열왕기 기자는 그들의 죽음이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주를 받으리라'는 여호수아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본다(수6:26).
2. 헤스론의 아들이며, 야일의 아버지로 족장 유다의 증손자이다(대상 2:21-22).
스나아 Senaah
바벨론 포로 귀환 후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보수를 돕던 사람들 중에 나타나는 가족의 족장으로(스2:35;느7:38) 하스나아' (느3:3)로도 불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이름은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한글 개역성경에는 '스나아' 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지명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은 스나아가족이 거주하던 성읍으로, 여리고 북동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막달세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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