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낙 mind
간청하는 바를 허락하여 들어준다는 의미로 수락, 응낙과 같은 뜻이다. 이 말은 '알다, 이해하다'는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어떠한 의도나 결심, 견해를 포함하고 있다. 빌레몬서 14절에서 사용된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 오네시모를 자신의 조력자로 머물게 할 수도 있었지만 먼저 빌레몬에게 용서와 자원적인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여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어 승낙을 받게 하였다.
승리 prosper
싸우거나 겨루기를 통해서 이기는 것을 말한다. 구약에서는 보통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나타내는 데 쓰였으며(왕상22:12,15), 시편에서는 개인간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승리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시9:19;20:5;41:11). 또한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적대적인 초자연적인 권세들에 대해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는 말씀에 사용되었다(골2:15). <참조> 이기다
승인치 않다
승인은 정당하거나 사실임을 인정함, 또는 동의함을 뜻한다. 그러나 창세기 18:15에는 승인치 않는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원어 '카하쉬'는 '속이다, 거짓말하다'(새번역)로 번역하였다.
승전가 sound of victory
전쟁에서 이긴 후 의기양양하게 기쁨에 차서 부르는 노래이다(출32:18). 시편 45:4에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세워야하므로 영광스런 승리(승전)를 거두어 달라고 노래하고 있다.
승천하다 go into heaven
구약 성경에서는 두 사람의 승천 기사가 나타난다. 하나는 에녹의 승천 기사이며(창5:24), 다른 하나는 엘리야의 승천 기사(왕하2:11)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기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주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기사는 사도행전 1:4-11에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4:51에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다' 라는 말은 완벽하게 증명될 수는 없으며, 마가복음 16:19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성경의 내적인 증거만 있을 뿐이다.
부활 후 나타나심에 관한 어떠한 결론들에 대하여서도 신약성경에서 다른 제언들을 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많은 구절들에서 승천의 사실이 항상 추정되어졌다. 만일 누가가 큰 오류를 범했다거나 이처럼 중대한 사건을 창작하였고, 다른 사도들이 그 글을 참조할 만큼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승천에 대한 다른 언급들이 요6:62;히4:14;9:24;벧전3:22;계5:6 등에 보여지기 때문이다. 승천 이야기는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장소들로서의 하늘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여 반론들이 제기되었으나 그러한 반론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불합리하다.
첫째, 승천의 행동은 하늘에 대해서 이런 공간적인 개념을 가진 제자들을 위한 행동화된 비유였을 수도 있다. 예수는 부활 후의 그의 나타나심은 이제 끝났으며, 하늘로 돌아가는 그의 승천은 교회에서의 성령의 시대를 여는 성령의 취임임을 명확하게 단언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의 승천을 행동화 하는 비유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둘째, '하늘'과 '아버지의 우편' 이라는 용어는 이지상의 것과 관련지을 수 있는 몇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의미는 '위'에 대한 언급들로서 잘 표현되어질 수 있다. 예수는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하셨고(요17:1), 또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6:10)라고 하셨다. 분명한 것은 하늘은 땅에서 떨어진 어떤 곳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시공으로부터 하늘의 상태로 옮겨질 때 예수는 땅으로부터 떠나 가신 것으로 보여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 때에 땅으로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그가 있지 않은 것은 그가 영적으로 이 땅에 있을 것이라는 신약의 교리와 조화를 이룬다(마18:20;28:20;행18:10). 주의 만찬은 '그가 오실 때까지' (고전11:26) 그분께서 몸으로는 떠나 계심을 기억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마다 주께서는 영적으로 함께 하신다(마18:20).
보좌 위에 높이 계신 하나님의 개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차이점, 곧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버린 죄인들이 그분께 나아가는 접근을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승천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살펴 볼 수 있다.
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14:2).
2. 예수께서 보좌에 좌정하셨다는 것은 그의 속죄사업이 완전히 끝났다는 표징이다. 하지만 속죄 사역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에 반대하여 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자신을 아버지께 계속해서 드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은유인 왕과 제사장의 은유를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히브리서 10:11-14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드리시는 제사가 완전히 끝났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3. 비록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그가 하늘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롬8:34;히7:25). 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틴카노'는 ‘어떤 이의 이익을 보살핀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4. 주님은 그의 원수들이 정복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실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행동으로 재림하실 것이다(고전15: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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