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time
일정한 기준에 의해 구분되어진 기간이나 특정한 당시나 당대, '옛 시대' (사51:9), '이 시대' (눅12:56), '알지 못하던 시대' (행 17:30) 란 말로도 사용되었으며, '시대의 표적' (마16:3), '히스기야 시대' (렘26:18)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후기 유대인의 두 시대에 관한 교리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참조> 때
시돈1 Sidon
함의 손자이며, 가나안의 장자(창10:15;대상1:13).
시돈2 Sidon
두로와 더불어서 고대 베니게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현 레바논의 '사이다' 이다.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36km 떨어진 곳에 두로가 있고 북쪽으로 비슷한 위치에 베리투스(베이루트)가 있다. 앞바다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고 고대에는 방파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동편으로 비옥한 평야지대가 있는 등 베니게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시돈 사람들은 거의가 어업, 농업, 무역업, 식민지 개척사업 등에 종사하였다. 시돈은 당시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예술적 공예산업과 자색 채색업이 발달하였는데, B. C. 18세기 호머의 작품과 오딧세이 4권 613-619쪽에서 각각 금속공예품과 금을 입힌 유사한 그릇들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 밖에서는 B. C. 3세기경의 아마르나 문서에 시돈 왕 짐라이다가 애굽과 해안 주요지역의 주권다툼을 했다고 최초로 언급되어 있다. 애굽은 바로 라암세스 2세의 죽음 이후 시돈의 세력 팽창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이때에 시돈은 팔레스타인의 다른 점령자들과 돌(Dor)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삿1:31;10:12), 시돈은 중동의 타지역과 마찬가지로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등에 의하여 차례로 지배되었으며 전반적으로 볼 때 시돈의 역사는 베니게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단기간의 동맹체제나(렘27:3) 독립, 화해, 종속, 경솔한 반역, 파멸, 부활은 거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그 지역내 군소국가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A. D. 12-13세기에 이르러서 시돈은 십자군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성경에서 보면 시돈인은 솔로몬에 의하여 벌목을 잘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며(왕상5:6) 포로귀환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백향목을 시도에서 구입하였다(스3:7). 시돈의 우상숭배는 솔로몬시대부터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왕상11:5-7;왕하23:13) 북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가 된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에 의해서 극에 달했다(왕상16:3133;18:18,25-28,40). 이렇듯 바알과 아스다롯의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의 온상이었던 시돈을 향하여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은 각각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으며(사23:12;렘27:3,6;겔28:20-24)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였다(욜3:46).
예수께서는 자신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풀었으나 회개하지 않았던 유다 지역의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하여 지금까지 기술한 배경을 가진, 더구나 이방 지역인 시돈땅이 심판날에 그들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책망하셨다(마11:21-22;눅10:13-14). 이외에 신약의 기록을 살펴보면 나사렛에서 약 80km 떨어져 있는 시돈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자 예수께로 나아왔고(막3:8;눅6:17) 예수께서 친히 시돈 지방에 가셔서 병자를 낫게 하시기도 하였다(마15:21;막7:31),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는 제한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며 우주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헤롯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했으며 (행 12:20)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 시돈항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행27:3). <참조> 베니게
시드기야 Zedekiah
1.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 요시야 왕(B. C. 640-609)의 셋째 아들이며, 앞서서 왕위를 계승한 형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그리고 조카 여호야긴에 뒤이어 21세에 왕위에 올라 11년간 치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악함으로 인하여 예정된 바벨론 포로생활을 실행하시기 시작하셨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굴복시키고 여호야긴 왕을 바벨론으로 잡아갔으며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여 왕으로 세웠다. (왕하24:15-17;대하36:10).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을 두고 바벨론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으나(대하 36:13) 하나님보다는 친애굽 성향의 여론에 이끌려 바벨론을 배반하였다(왕하24:20;겔17:15-18). 이러한 시드기야 왕의 외교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며(렘21:3-7) 반대하였다(렘37:6-10;38:1428). 그래서 시드기야 왕은 재차 바벨론에 화친하며(참고. 렘29:3-7) 재위 4년에는 바벨론으로 직접 가서 국정을 보고하였다고 칼빈은 말한다(참고. 렘51:59).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서 에돔, 모압, 두로, 시돈 등의 군소국가들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서로간의 동맹을 꾀하였고 시드기야도 합류하도록 설득하였다. 예레미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렘27:1-12) 결국 시드기야는 애굽의 바로의 원군을 약속받고 바벨론에 반역하였다. 이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은 군대를 보내어 시드기야 9년에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으며(왕하 25:1;렘32;2;겔4:2) 이후 2년간 계속된 포위기간 중에 예루살렘 성 내부에서는 염병과 기근으로 고난을 받았다(왕하25:3; 렘 21:6-9;32: 36;34:17;겔5:10-17). 마침내 시드기야 11년에(B. C. 586)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고 (왕하25:2-4렘52:46 그날 밤 아라바 길로 도망하던 시드기야는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서 립나의 바벨론 왕에게 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아들들의 죽음을 목격하였으며 두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옥중에 있었다(왕하25:1-7;렘52:11;겔12:13), 시드기야는 평안히 죽으며 열조 선왕들처럼 분향 받을 수 있었으나(렘34:5)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셨던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렘33:17-23) 우유부단함으로써 화를 자초하였던 것이다.
2. 그나아나의 아들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통치시대에 활동한 거짓 선지자. 아합왕이 자신이 계획한 길르앗 라못 원정의 결과를 여러 궁중선지자들에게 물었을 때 시드기야는 철로 뿔을 만들어 아합의 승리를 예언했다(왕상22:11;대하18:10). 그러나 참선지자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이 패배하고 전사함으로써 그의 예언이 거짓말하는 영의 꾀임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왕상22:20-23, 참고, 겔14:9).
3. 느헤미야가 새로 세워 기록한 언약을 인치는데 참여한 높은 방백(느10:1).
4.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대상3:16).
5. 마아세야의 아들, 예레미야와 동시대 인물로서 바벨론에 포로된 백성들 가운데서 행음하며 거짓예언을 하였다. 예레미야는 그를 지목하여 공개적으로 고발하면서 불에 타서 죽을 것을 예언하였다(렘29:21-23).
6. 하나냐의 아들. 여호야김 통치시대의 유다 방백이었다(렘36:12).
시드래 Shitrai
다윗 왕의 재산을 맡아서 관리하였으며, 사론에서 다윗의 소떼를 맡았던 사론 사람(대상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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