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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식량 / 식물1 / 식물2 / 식민지 / 식사하다

식량 eating

일반적으로 먹을 양식을 가리키지만 성경에서는 '먹을 만큼의 분량을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유월절의 어린양을잡을 때 식구가 적으면 각 사람의 먹을 분량을 계산하여 이웃과 함께 잡아야 했으며(출12:4) 만나를 거둘 때도 먹을 분량만큼 거두어야 했다(출16:16,18,21). 한편욥기 38:39에서는 '식욕' 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식물1 meat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총칭한다. 초기 이스라엘에는 먹을 식물이 빈약하였는데, 농업 시대에 이르면서질과 양이 향상되었고, 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입품까지 가미되어 매우 풍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식물성(物性) 음식들만 먹도록 하셨다(창1:29). 그러다 홍수 시대가 지나면서부터 동물도음식물로 허락하셨다. 그러나 죽은 동물의 피는 먹지말도록 하셨다(창9:3), 대체로 히브리인들의 식물은식물성이었는데 때로 축제일이 되면 육식을 먹기도 하였다. 율법에 따라서 소, 송아지, 양, 새끼양, 새 알, 메뚜기 등은 식용이 가능했고, 돼지, 약대, 토끼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레 11:1-23), 지중해와 갈릴리 호수에 풍부했던 물고기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좋은 기호식품이었다.
레위기에서는 외관이 추하거나 악취를 발하는 것, 불결한 습관을 가지고 있거나 이교 제의 때 희생 제물로 쓰이는 동물은 식용에서 금지시키고 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좇아 음식의 부정과 금기를 철저히 지키며, 의인인 체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요, 마음에 있는 악한 생각이 더러운 것" (마15:17-20)이라고 말씀하셨다.

식물2 plant

생물계를 둘로 구분했을 때 그 중 하나로 동물의 반대 개념이다(시 104:14;사17:10). 성경에서는 식물에 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 문제들은 고대 팔레스타인의 생물학적 지식의 결핍, 주석적인 어려움, 잘못된 번역 등에서 비롯된다. 좀더 정확한 생물학적 분석에 의해 번역을 할 수 있다면 성경에 나타나는 식물들의 이름에서 빚어지고 있는 혼란들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성경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서식했던 대부분의 식물들이 오늘날 서식하고 있는 식물들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식민지 colony

로마가 실시한 식민 정책은 하층민에서 로마의 귀족으로 상승된 군인들과 퇴역 군인들에게 토지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마의 식민지들은 자치정부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고, 법률과 재판은 로마의 법을 따랐다. 로마의 행정관리들은 재판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에게서는 공정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전6:1). 그러나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한 피고의 경우에는 그들 임의대로 태형을 가할 수 없었다(행16:37-38).
성경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로마의 식민지들로는 안디옥, 루스드라, 드로아, 수라구사, 악고, 빌립보 등이 있는데, 바울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설명할 때 로ㆍ마의 식민지로서 빌립보가 누렸던 특권에 비유하여 표현했다(행16:12;빌3:20). 로마의 식민지에 살고 있던 자들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보장받았는데 그로 인해서인지 스스로 로마의 식민지임을 자처하는 지방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근동보다 유럽 지역이 더 강하다.

식사하다 meal

1. 성경의 자료
(1) 궁중 식사.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식사를 고대 애굽의 궁중 식사와 비교하면 섬세함이나 전문적 기술이 훨씬 뒤떨어졌다. 고분 벽이나 다른 건물들에 그려진 그림들은 요셉 시대에 궁정에서 열렸던 바로의 생일 잔치의 화려함을 웅변해 주었다(창40:20). 이런 행사 때 가발을 쓰고 향수를 뿌린 우아한 손님들은 따로 마련된 낮은 식탁(왕의 식탁과 구별됨)의 가까운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차려진 음식에는 각종 구운 새고기, 야채, 구운 쇠고기, 여러 가지 케이크와 사탕, 과자들이 즐비하였다. 고분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종들이 포도주를 담은 큰 항아리를 들고 들어와 손님들에게 구부러진 유리잔을 건네주어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손님들은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다 식사의자 가까운 마루에 쓰러졌다.
B. C. 5세기의 바사의 잔치 관습은 에스더서에 의해 보존되었다. 에스더서는 적어도 수산에서 있었던 다섯번의 잔치를 묘사하고 있다. 첫번째 잔치는 아하수에로 왕이 바사와 메대의 방백들을 위해 베풀었던 180일간이나 계속된 마라톤 잔치였다(에1:3이하). 이에 뒤이어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간의 잔치가 베풀어졌다. 바사의 왕궁을 상징하는 백색, 녹색, 청색 차일(휘장)을 쳐 손님들에게 햇빛을 가려주었으며, 손님들의 식사 의자는 금과 은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 외에도 에스더서에는 궁중 여인들을 위한 잔치에 1:9), 왕후 에스더의 혼인 잔치 (2:1618),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에게 베푼 잔치(5:4;7:1-8), 그리고 부림절로 알려진 축제기간0:1-32)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히브리의 궁중 식사는 솔로몬 이전까지는 매우 간소하였다. 사울 때에도 손님과 신하들은 많았으며 왕의 식사 초대를 거부하여 왕의 화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삼상20:6,24이하). 다윗은 요나단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도록 하는 관대함을 보였다(삼하9:7), 솔로몬은 인접국의 군주들을 모방하여 공들인 성대한 잔치상을 차렸다. 솔로몬은 아가서에서 언급된 정원에서 여름 식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마리아 왕궁에서 왕후 이세벨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왕상18:19), 포로기 이후의 유다의 빈곤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총독 느헤미야가 차린상은 진수성찬이었다. 느헤미야는 150명의 유대인과 그 밖의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였으며, 매일 양 6마리, 소 한마리, 많은 닭을 잡았고 과일과 포도주도곁들였다(느5:17-19).
(2) 노동 계급의 식사. 그러나 성경 시대에 노동 계급의 형편은 매우 비참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난 노동자들은 정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대신에 허리띠나 다른 그릇에 조그만 빵 덩어리,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 무화과, 올리브 등을 넣어 다니며 일하는 중간에 식사를 하였다. 애굽인들은 점심을 중시하였으나(창 43:16 히브리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점심을 가벼운 식사와 휴식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였다(룻2:14). 점심을 먹지 않고 금식하는 경우도 있었다(삿20:26;삼상 14:24).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인 만찬은 일을 마치고 난 후에 이루어졌다(룻3:7). 음식이 준비되면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손님이 자리를 함께 하는 수도 있었다. 잔치 때에는 여흥을 곁들이는 것이 관례였으며, 여흥으로는 수수께끼(삿14:12), 음악(사5:12), 춤을 즐겼다(마14:6; 눅15:25), 족장 시대에는 땅바닥에 무리를 지어 앉아 식사를 했으나(창18:8;37:25), 그 이후에 애굽의 유행을 본따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으며(왕상13:20;시23:5;겔23:41) 아마도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식사를 했던 것 같다(에7:8).
(3) 자리 배치. 신약 시대에는 흔히 마루에서 음식을 먹었으며, 그 아래에는 개와 같은 가축들이 자리를 차지했다(참고, 막7:28), 손님들은 예외없이 나지막한 식탁 사각 모서리 삼면에 놓여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댔다. 한 의자에는 세 사람 정도 기대어 앉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간혹 너댓 명이 앉은 경우도 있었다. 의자에는 쿠션이 갖추어져 있어 왼쪽 팔꿈치를 그것에 올려 놓은 채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당시의 헬라 - 로마 풍습이었고, 유대인들도 이에 따랐다. 손님들이 의자에 앉는 자리는 각 사람이 그 뒤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의 품 가까이에 머리를 쉬게 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다(요13:23. 참고, 눅16:22). 이런 근접한 자리는 깊은 대화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명예로운 자리 혹은 '가장 높은 의자'는 음식을 접대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는 종들 바로 오른편에 있었다. 반대로 '가장 낮은 자리' 는 종들 왼편, 곧 가장 높은 자리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각 의자에 앉은 손님은 상중하로 구분되었다. 다른 사람의 품에 기댄 손님은 언제나 그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탐내는 자리(마23:6)는 물론 '가장 높은 의자' 에 있는 '가장 높은 자리' 였다.
(4) 식사 자체. 하루 중 중심되는 식사는 일반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였다. 손님들은 같은 접시에 담은 음식을 다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다. 고기, 야채를 가득 담은 큰 도기 그릇이 여러 의자들 중앙에 자리잡은 식탁에 놓여졌다. 구약에 식사를 하기 전에 축사한 기록이 단 한번 나오기는 하지만(삼상9:13), 신약은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축사하신 여러 경우들을 언급하고 있다(마15:36;눅9:16;요6:11).
손님들은 같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이 일반적 관례였으나(마26:23) 각 손님에게 음식을 따로 대접하는 경우들도 있었다(창43:34;룻2:14;삼상1:4-5), 칼과 포크가 없을 경우에는 조그만 빵 조각을 오른손 엄지와 다음 두 손가락 사이에 집어 접시에 든 국물에 찍어먹었다(요13:26, 식사가 끝나면 신8:10의 말씀에 따라 다시 한 번 축사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축사가 끝난 후에 손님들은 다시 손을 씻었다.
곡식베는 자들과 함께 한 룻(룻2:14), 엘가나와 두아내(삼상1:4-5), 욥의 아들과 딸들의 경우(욥1:4)를 보면 여자들은 보통 남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 시중을 드는 일은 으레 여자들의 책임이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눅10:40) 여자들은 다소 불규칙한 간단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음이 분명하다.
보통 가정 식사는 음식이 한 접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한 접시 음식만 대접하면 식사를 준비한 사람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리스도가 마르다에게 한 가지만 필요하다고 꾸짖으신 이면에는 이런 뜻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눅10:42), 구약 시대에는 식사를 준비한 사람이 음식을 가져오면(삼상 9:23) 가장이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삼상1:4), 음식의 양은 가장이 모인 손님들에게 갖는 애정에 따라 다를 수도 있었다(창43:34; 삼상1:5).
(5) 특별 식사. 생일이나 결혼, 혹은 귀한 손님이 오신 때에는 잔치를 벌이는 것이 관례였다. 주인은 방문객의 입을 맞추고(눅7:45) 발을 씻겨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눅7:44). 특별한 경우에는 특별한 옷을 준비하였으며(마22:11), 손님들은 면류관(화관, 사28:1)으로 장식하였다. 중요한 축일을 기념하는 뜻으로 머리, 턱수염, 얼굴, 때로는 옷에까지 향유나 기름을 발랐다(시 23:5:암6:6;눅7:38;요12:3). 잔치 행사는 신약 시대에 연회장(요2:8)으로 알려졌던 특정인의 지시하에 거행되었다. 연회장은 각종 음식을 상에 올리기 전에 먼저 맛을 보았다.
손님들은 서열에 따라 자리를 잡았으며(창43:33;삼상9:22;막12:39;눅14:8;요13:23), 가끔 따로 음식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삼상1:45;삼하6:19;대상16:3). 귀한 손님인 경우 잔치에 참석한 다른 사람보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이 통례였다(창43:34;삼상9:24), 바울 시대에 잔치는 매우 정성들인 식사 자리로서, 일반적으로 식사 후에는 지성적 토론이 뒤따랐다. 이런 경우 대화는 심야까지 계속되는 예도 자주 있었으며 정치나 철학의 주제들이 다루어졌다.
(6) 식사에 참석한 예수. 신약은 예수가 저녁 식사의 손님이 되었던 경우들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요2:11)는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왕의 비유(마22:2-1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식 초청장을 낸 잔치자리였다. 마태가 베풀었던 연회(마9:10)는 A. D. 1세기 헬라 - 로마 식사의 보다 격식 있는 모양을 갖추었다. 식사하는 방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어 입구 가까이에 커튼을 드리워 손님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상한 시선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의 관습은 사람들이 커튼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해 쑥덕공론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관행에 따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그리스도의 품위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마9:11).
이와 비슷한 식사 자리에 계신 예수를 길을 지나가다가 본 한 여자는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되돌아와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눅7:36-50). 이 여자의 행동은 주인이 손님을 위해 베풀어야 했던 일을 대신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주인은 손님의 머리에 바를 기름도 발을 씻을 물그릇도 제공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 당시 예의 범절을 어기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예수가 여리고에서 삭개오에게 대접받은 식사(눅19:6)는 융숭했던 것 같다. 베다니에서의 가족 모임들(눅10:40;요12:2)과 첫 부활절 엠마오에서 중단된 식사(눅24:3033)는 보다 간소한 편이었다. 그리스도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전통적 관습을 때로 생략하기도 하셨다(눅11:37-42).
(7) 여행 중의 식사. 지내기가 불편한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개 물 한 가죽부대(창21:14)와 무화과나 건포도 과자, 떡과 볶은 옥수수 같은 음식을 가지고 다녔다. “떡 가져오기를 잊은 사람들의 입장(막8:19,14)은 상황에 따라서 매우 심각할 수 있었다.
2. 식사의 종교적 의미
(1) 셈족들의 경우. 식사의 공동체적 측면은 모든 셈족에 의해 종교 영역으로 옮겨졌다. 라스 샤므라(Ras Shamra)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런 식사들이 가나안의 종교 생활에 넓게 퍼졌음을 보여 주었다. 바알신전들은 여러 날에 걸친 축제와 환락 속에 헌당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겜에 남아 있는 힉소스 신전(Hyksostemple) 유적은 제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향연을 베푸는 방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히브리인들은 식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와 용서를 구하였다. 피와 기름은 하나님에게 바쳤고 제사장과 백성들에게는 각기 그 지정된 몫이 돌아갔다(레2:10;7:6). 왕국 시대에도 이와 같은 제사는 흔히 볼 수 있었으나(삼상9:11-14,25;대상29:21-22;대하7:8-10) 가나안 종교 식사의 특징인 음란한 행위나 환락은 없었다.
(2) 기독교의 경우. 기독교의 주요한 거룩한 식사는 십자가 처형 직전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주의 만찬이었다(마26:26-29;막14:22-25;눅22:1420). 초기 교회에서는 주의 만찬 이전에 신도들간의 형제적 사랑을 표시하는 공동식사인 애찬(Agape)을 먼저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