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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안드로니고 / 안디바 / 안디바드리 / 안디옥 / 안뜰

안드로니고 Andronicus

바울이 로마서 16:7에서 안부를 묻던 사람으로 유니아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이들을 '친척', '함께 갇혔던 자', '사도들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있다.

안디바 Antipas

소아시아의 버가모 교회의 교인으로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요한계시록에는 그가 '충성된 증인'으로 언급되어 있다(계2:13).

안디바드리 Antipatris

헤롯 대왕이 고대 도시인 구약의 아벡(수12:18)의 폐허 위에 건설한 도시로,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의 군용도로 중간에 위치하였으며, 오늘날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서쪽 65km 지점에 있는 '라스 델 아인' 근처이다. 로마병 470명이 바울을 죄수로 잡아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이사랴로 호송할 때 야간에 도착한 한 성읍으로(행23:31) 언급되고 있다.

안디옥 Antioch 

1. 비시디아의 안디옥. 남부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부근에 있는 한 도시로서(행13:14), 수리아 왕 셀류코스 1세 또는 안티오쿠스 1세에 의해 헬레니즘 시대에 세워졌고, 수리아 국경의 요새 도시가 되었다. 그 후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인들에게 패배한 뒤 이 도시에 자유가 선포되었으며(B. C. 188년경), B, C. 25년경에는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합병되어 로마 영토가 되었다. 이 도시는 로마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황제 예배도 행해졌다. 원주민과 헬라인, 로마의 식민지인 외에도 셀류코스 시대에는 커다란 유대인 공동체와 회당이 있었다. 바울은 제 1차 전도여행 때, 구브로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이 도시를 방문해서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에게 설교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13:1443). 그러나 두번째 집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방했고(13:4445),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에서 쫓아냈다. 이 도시에는 지금도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무너진 성벽과 '아우구스타 플라테아' (Augusta Platea)라는 광장, 우상의 신전, 극장 등이 있다. 안디옥은 비잔틴 시대에도 중요한 성읍으로 존속하였고, 십자군 전쟁 때에도 중요한 요새로 있었다고 한다.
2. 수리아의 안디옥. 수리아의 서북쪽에 위치한 그리스의 한 도시로서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그리스-로마 시대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안디옥이라는 명칭은 이 도시의 설립자인 셀류코스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기도 하다(11:26). 안디옥은 위치상 고대로부터 지중해 세계와 수리아 내륙, 동방과의 무역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소아시아와 수리아, 팔레스타인 등을 연결하기에 아주 좋은 지점에 위치해 있어 문화와 상업의 요충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안디옥에는 마게도냐인, 헬라인, 수리아인 및 셀류코스 군대에 있던 유대인 퇴역군인들이 복역의 대가로 받은 땅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교회사에서 안디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B. C. 64년 로마가 수리아를 합병했을 때, 안디옥은 수리아 새 영토의 수도이자 군사 중심지가 되었다. 도로망이 개선되고 항구가 개발되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서지중해 연안과 안디옥과의 교통이 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되었다. 이는 기독교 전도에 박차를 가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안디옥은 초기 복음전파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에 이어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 박해가 시작되자 그리스도인들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등으로 도피해 이방인에게 전도하였고, 안디옥에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설립되었다(11:19-20).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였고(11:2224),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 함께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약 1년 동안 이곳에서 복음을 가르쳤다.
한편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선교의 거점이 되었으며, 바울과 바나바도 이 교회에서 파송되어 이방인 전도에 나섰다(행13:1-3;15:36-40;18:22-23;갈2:11), A.D. 46년경 예루살렘에 기근이 일어났을 때 안디옥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도왔으며(행11:27-30),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였다(15:3031).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물러간 일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곳도 이곳이었다(갈2:11). 교부시대에는 인구 80만을 넘는 대도시가 되었고,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쌍벽을 이루며 논쟁을 벌였다. 6세기에 대지진과 페르시아군의 침입으로 대타격을 받은 뒤로 회복되지 못하고 교회도 콘스탄티노플에 밀려 그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1870년경에 외국 선교사가 들어가 열심히 전도하여 다시 교회가 설립되었고, 시리아국의 독립으로 인하여 안디옥도 개발도상에 있다.

안뜰 inner court

안채에 있는 뜰로 일반 집의 안마당, 궁정의 내부를 말한다. 성전의 안뜰은 성전 앞의 정방형의 뜰로서 그 중심에 번제단이 있었다. 성경에는 바사궁전(에4:11;5:1), 솔로몬 성전(왕상6:36;7:12), 에스겔 성전(겔8:16;10:3;40:19)의 안뜰 등이 언급되었다. 신약의 헤롯 성전에는 이방인, 이스라엘의 남녀, 그리고 제사장의 뜰 등 네 개의 안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