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출발하다 / 출번 / 출생 / 출애굽 / 출애굽기

출발하다 go out

길을 떠남, 혹은 어떤 일을 시작함을 일컫는 말인데, 성경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사 시대에 단 지파는 땅을 얻기 위해 소라와 에스다올을 출발하여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을 쳤다(삿18:11-12).

출번 go forth

교대하는 임무를 마치고 나가는 순서를 일컫는 말이다. 아달랴가 유다를 통치하던 때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작전을 지시했는데, 이 때 안식일에 출번(공동번역 '안식일 비번' 하는 두 부대에게 여호와의 전을 지켜서 왕을 보호하라고 명령한 데서(왕하 11:7) 사용된 말이다.

출생 be born

세상에 태어남을 일컫는 말.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였다고 고백하였으며(시51:5), 전도서 기자는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교훈하였다(전7:1).

출애굽 Exodus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체류를 끝낸 사건이다. 야곱(이스라엘)의 가족들은 가나안에 있었던 혹독한 기근 동안에 자발적으로 이집트에 들어갔다. 요셉은 그 형제들의 질시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갔었는데 그 후에 이집트의 대신이 되었고 그의 형제들은 고센으로 알려진 이집트의 북동 지역을 할당받았다(창42-46장).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 즉 그가 이집트를 위하여 해놓았던 일을 잊은 왕조가 일어났을 때(출1:8),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는 이들이 외국의 침략자들과 결탁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그들의 남자 어린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모세라는 아기는 갈상자에 숨겨져 바로의 딸에게 구조되었다(2:110). 왕궁에서 자라난 모세는 이집트에서의 성공된 생활을 버리고 그의 억압받는 백성들을 자유케 하기 위하여 지도자로 나서기로 했다.
1. 출애굽의 연대. 성경 학자들 간에 출애굽의 연대에 관하여 통일된 견해는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바로의 정체에 대해서조차도 서로 그 견해가 일치하지 못하고 있다. 후대의 바로들은 때로 그 이름이 명칭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지만(예. 바로 호브라, 바로 느고), 유독 출애굽 사건 설명에 나타나는 '바로' 라는 칭호는 그 이름이 명시되지 않고 있다. 어떤 성경 학자들은 왕상 6:1이 출애굽의 연대를 제공하는데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여긴다. 이 구절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진술한다. 솔로몬의 통치 연대에 대한 근접한 견해들이 있으므로 이러한 정보는 출애굽의 연대를 산정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이러한 산출 방식에 근거해 추정되는 출애굽의 연대는 대략 B. C. 1441년경으로 이 연대는 이집트 신왕조의 위대한 창건자 중의 하나인 투트모세 3세의 아들 아멘호텝 2세의 통치 시대와 맞아 떨어진다. 투트모세 3세의 대신 레크미르의 묘에 있는 벽화는 건축 계획에 따라서 노예 일꾼들로서 일하고 있는 셈족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출애굽의 연대를 상대적으로 초기로 잡는 이론(B. C. 1441년)을 따르는 학자들은 또한 아마르나 서신(1400-1366)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내세운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이들 토판들은 아크나톤의 수도에서 발견되었는데 가나안 도시국가들의 왕들로부터 온 회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회신의 내용은 하비루로 알려진 어떤 백성들로부터 바로가 구원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추측컨대, 이러한 내용은 출애굽 후에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때문에 발생한 전투 묘사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초기의 연대를 받아들이는데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이집트 역사상 18왕조 동안에(초기의 연대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지정하려고 했다) 이집트의 수도는 테베로서 델타 지역의 남부 지대였으며, 투트모세 3세의 건축 사역은 이곳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 라암셋의 시대에) 바로들은 델타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이 지역은 그들이 거대한 건축 공사들을 일으킨 곳이었다. 특히 모세가 바로를 만난 곳이 고센에 인접한 이곳 델타지역이었으며 그곳은 이스라엘 자손이 고역했다고 기록된(출1:11), 델타지역의 동부에 있던 라암셋이라는 도시(아바리스와 타니스로 알려져 있다)였다. 초기 연대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라암셋이라는 이름이 옛 이름을 근대화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출애굽의 연대를 B. C. 1441년 정도로 초기로 산출하는데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수많은 성서 학자들은 그 연대를 13세기로 잡는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트랜스요르단(요단 건너편에 대한 발굴에서 고고학자 넬슨 글뤠크(Nelson Glueck)는 B. C. 1900년경부터 1300년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에 정주한 주민들이 없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성서는 이스라엘이 동부 요단 국가들의 왕인 시혼과 옥의 강력한 적대에 부딪쳤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모압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그들이 가나안으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다고 한다. 여리고가 B. C. 1400년경에 함락되었다는 증거에 대한 초기의 가정은 캐들린 캐년(Kathleen Kenyon)의 지휘하에 이루어진 최근의 발굴 결과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가엘 야딘 Yigael Yadin)이 하조르를 발굴한 결과 또한 출애굽 연대를 13세기로 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것은 라기스와 드비르에 대한 그 이전의 발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르넵타의 비석(B. C. 1229년경)은 이집트의 기념비들에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을 보여주고 있다. 메르넵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승리하였다고 주장한다. '민족'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표의문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할 것이다. 어쨌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메르넵타의 통치기간 동안 가나안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메르넵타의 전임자는 라암셋 2세로 델타 지역에 있는 그의 수도 타니스(또는 라암셋)에서 67년간 통치하였었다.
어떤 성경 학자들은 라암셋의 아버지 세티 1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억압을 시작하였으며, 그 억압은 라암셋 하에서까지 계속되었고 출애굽은 라암셋의 통치 기간에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출애굽의 연대를 13세기로 잡는 학자들은 열왕기상 6:1에 언급된 480년이 40년을 한 세대로 본 12세대를 의미하는 어림수라고 추정한다. 한 세대가 채 40년이 못되는 경우가 자주 있으므로 출애굽과 솔로몬의 성전 건축 사이에는 아주 적은 정도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성경 본문의 완전한 영감설을 견지하는 학자들 대다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출애굽에 대한 기사에서 나타나는 비이스라엘적인 특성이 성경에서 그 정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문제에 대한 교리적인 접근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출애굽의 기사의 역사성에 대한 증거는 결정적이지만, 특정한 연대를 보여주는 증거는 아직도 결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
2. 경로 성경의 기록(출13:17)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지역을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직통의 경로를 밟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뻗어나온 북동의 대로를 가로막고 있는 이집트의 벽(성경의 수르에 해당)을 통과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 벽은 방호벽이어서 통과하려면 대단한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그 경계를 잘 통과해 지나갔더라도 블레셋의 적대라는 더 큰 난관이 그들 앞에 놓일 것이 뻔하였다. 광야에서의 이러한 훈련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공할 만한 적들과 부딪쳐 싸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손길이었다. 델타 지역에 있는 라암셋을 떠나면서(12:37) 이스라엘 자손들은 남동쪽으로 여행하여 숙곳(텔 엘-마스쿠타)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광야 끝에 있는" 에담으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된다(출13:21-22). ‘에담’ 이라는 단어는 '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집트어로부터파생된 말인데, 아마도 아시아의 유목민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집트인들이 지었던 요새들의 일부분을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들이 에담으로부터 돌이켜 비하히롯 근처에 진쳤을 때 이곳은 “믹돌과 바다 사이"로 묘사되었고, 또 바알스본 근처라고도 하였다. 이부지들의 위치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비하히롯은 이집트어로 '늪의 집'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 바알스본은 셈족 신의 이름으로 이집트에서 숭배되었고 의심할 것 없이 그 이름을 가진 도시에 위치한사당에서 그랬을 것이다.
비하히롯을 지나친 후에 이스라엘은 영어 번역으로(개역으로도) 홍해라 이름하였지만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얌 숲으로 기록된, 물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출애굽의 지리학은 얌 숲 또는 갈대 바다가 이집트와 이스라엘 자손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시나이반도 사이에 자연적인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지역의 지형은 수에즈 운하의 구조때문에 변형되었지만 얌 숲은 아마도 티므사 호수의북쪽일 것이다. B. C. 13세기의 이집트 문서는 타니스에서 멀지 않은 파피루스 호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추정 위치는 현재의 멘잘레 호수로부터남쪽으로 뻗어나온 곳이다. 이집트로부터 얌 숲을 거친 출애굽은 "강한 동풍으로 바다를 물러가게 하신"(출14:21)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서 가능하게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시나이 반도로 지나갈 수 있었다.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자손을 추격하려 했을 때 이집트인들은 다시 흐르게된 바닷물 때문에 전멸하게 되었다.
3. 이스라엘 자손의 수. 성경은 60만 명의 남자 장정이 출애굽하였다고 기술한다(출 12:37). 이로부터 일년 뒤에 20세 이상된 자로 이스라엘의 남자의 수는603,550명이었다(민1:46.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체류한 햇수 동안 이스라엘은 그 숫자가 전쟁이 일어날때 대적들 편에 설 것을 바로가 두려워할 정도로 커졌다(출1:7-10). 억압을 초래한 것은 바로 이러한 두려움때문이었다.
4. 기적. 출애굽 기간은 성경에서 기적들이 베풀어졌던 위대한 시기 중의 하나였다. 첫 아홉개의 재앙들은 이집트의 자연적인 현상들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지만, 이 재앙들이 때맞추어 발생하였고,그 정도가 훨씬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초자연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마지막 재앙 즉 장자의 죽음은출애굽을 개시한다는 신호였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유월절 식사를 급히 했다. “강한 동풍”으로 홍해가 갈라진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광야로 인도해 내시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그 광야는 40년 동안 그들이 기적을 통하여 삶을 영위한 곳이었다.

출애굽기 The Second Book of MosesCalled Exodus

출애굽기라는 책명은 출애굽이라고 알려진 사건으로부터 생긴 것으로, 이 출애굽이라는 사건은 히브리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살이로부터 모세의 영도하에얻게 된 극적인 구원 사건이다. 출애굽기 전체를 통하여 역사의 주이시며 그의 백성의 구속자이신 하나님을만나게 된다. 성서의 그 나머지 전체를 통하여 반복되는 이러한 주제 때문에 출애굽기는 성경의 근간을 이루는 책들 중의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1. 책의 구조. 출애굽기는 창세기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데 창세기서는 자신들의 땅에 있던 기근과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집트로 이동하였던 요셉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로 맺음하고 있다. 여러 해동안 히브리 백성들은 이집트 통치자의 은덕 아래 커져서 번창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는 상황이 변하였다는 단 하나의 구절로 출애굽기는 변화된 정치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분위기란 그들이 혜택을받던 위치가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다"(1:8), 히브리인들은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바로의 건축 계획 아래 중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출애굽기서는 자연스럽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1:1-12:36) (2) 광야에서의이스라엘(12:37-18:37) (3)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19:140:38).
이렇게 신속하게 사건이 전개되는 책에서 다루고있는 일부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을 노예 상태로부터 인도하도록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하여 모세를 부르시는사건 (3:1-4:17); 바로의 강퍅함 때문에 이집트인들에게내려졌던 일련의 재앙들(7:1-12:30); 구속 상태로부터의해방과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후 바로의 군대가 멸망한 것(15:1-31); 광야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 물을 준비하신 것(16:1-17:7); 십계명과 기타 다른 부분의 율법을 시내산에서 모세에게수여하신 것(20:1-23:33);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계약의 갱신(24:1-8).
이 책은 모세와 그의 감독하에 있는 일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광야에서 시내산 근경에 장막 성소를 세우는 것으로 끝난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그 장막 성소 위에 머물렀으며 그 성소가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 가득 채워졌다(36:1-40:38).
2. 저자와 연대. 출애굽기는 구약 성경의 첫 다섯권의 책 중의 하나인데, 이 다섯 권의 책들은 전통적으로 모세가 그 저자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학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편집자가 여러 가지다른 역사적 문서들을 참고로 하여 출애굽기를 편찬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왜 모세가 의심없이 이책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저자로 받아들여졌는가 하는 두 가지 합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출애굽기 자체가 모세의 저작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출애굽기 34:27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이 말씀들을 기록하라" 고 명하고 있다. 다른 구절은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세가 주의 모든 말씀을기록하였다"고 일러주고 있다(24:4), 이러한 구절들이출애굽기서에 나타나는 자료들을 모세가 저술하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모세 또한 출애굽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건들을 보았고, 그 사건들에 참여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어린 시절부터 자라나는 동안 바로의 왕실에서 교육받았으므로 이러한 경험들을 잘 기술할 수 있는 적임자이다.
모세가 출애굽기를 썼으므로, B. C. 1400년경 발생한 그의 죽음보다는 앞선 어느 때를 그 저작 연대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이 시기보다 앞선 40년간을 광야에서 방랑하며 소비하였다. 이 때가 출애굽기를 기록한 가장 그럴듯한 연대이다.
3. 역사적 배경.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갖는 초기 역사 중에서 혹독한 기간을 다루고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학자들은 히브리인들이B. C. 1400년경 이집트를 떠났다고 믿고 있다. 혹자는출애굽 사건이 훨씬 더 후대인 B. C. 1280년경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이 책의 삼분지 이 가량은 이러한 연대보다 후의 2년 동안 이스라엘이 겪은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하여 시내산으로 여행하여 그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가르침을받았다.
4. 신학적 기여. 이스라엘의 신앙은 출애굽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왔는데, 이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성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구속이라는 메시지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계약 관계로부터 태동되어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이책에서 처음으로 묘사된 것이다. 게다가 이 책 안에있는 여러 가지 주제들은 예수의 삶과 사역에 그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는데 예수도 그 산에서 설교를 베풀었다.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렸는데 예수도 자기를 믿는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들려 올려졌다.
히브리인들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하여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제정하신 유월절(출 12장)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위하여 영속되는 기념으로 삼으신 최후의 만찬을 위한기초가 되었다. 출애굽기에 대한 명철한 통찰력이 있다면 성서의 메시지와 예수의 생애의 의미를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점점 더 크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 특이 사항. 출애굽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극적인 증거들을 보여 준다. 바로의 강박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표징과 재앙들은 분명히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는데 더하여 이 표징과 재앙들은 이집트의 기짓 신들을 극적으로 무력화 시킨다. 이집트의 미약한우상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는 단지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홍해를 건넌 것은 성서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중의 하나이다. 성서의 기자들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의미 심장한 표징으로 되풀이하여 언급하였다. 아무런 도움의 손길이 없던 노예된 백성들이 그들의 적으로부터 능력이 충만한 자신들의 구속자 하나님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들은 출애굽기서의 주제를 강조하는 찬양의 노래로 자신들의 승리를 경축하였다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15:1b-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