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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히브리서/ 히스기야

히브리서 The Epistle to the Hebrews

1. 저자 문제. 저자는 히브리서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신약 서신 중에 이런 경우는 히브리서와 요한일서 뿐이다. 이 사실로 인해 A. D. 1세기 이래로 히브리서 저자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의견은 다양하였다. 지중해 동해안과 알렉산드리아 주변의 사람들은 히브리서를 바울과 연관지었다. 오리겐(A, D. 185-254)은 히브리서가 가지고 있는 사상은 바울의 것이지만, 언어와 문체로 볼 때는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북 아프리카의 터툴리안은 바나바가 히브리서를 쓴 것으로 생각하였다.히브리서는 맨 먼저 로마와 서방에 알려졌으나(A, D.95년경에 쓰여진 클레멘트의 첫번째 서신은 히브리서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200년 동안 로마와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히브리서를 쓰지 않았다는 의견으로 통일되었다. 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초기부터 불확실했던 문제에 관해 독단적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헬라어 본문을 주의깊게 연구하면 저자에 대한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난다. (1) 이 서신은수사학의 대가가 쓴 것과 같은 세련된 헬라어 문체로 되어 있다. 이러한 문체의 지속적 사용은 바울의 문체와는 다르다. (2) 어휘, 수사법, 논증 양식은 알렉산드리아인과 필로(B. C. 20- A. D. 50 또는60) 의 영향임을 보여준다. 다소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았던 바울은 이런 배경을 갖지 않았다. (3)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는 모두 구약을 자주인용하지만 인용의 방식은 매우 다르다. 바울이 인용할 때 쓰는 공식어들 - '기록된(한)바',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이르되' 등 - 이 히브리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은 인용하는 내용에 관심을 두게 하는 반면,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씀하시는 분,곧 아버지, 그리스도, 성령을 강조한다. 현재의 많은 학자들은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가능성을호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태생의 유대인으로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고 성경에도 능통하였다(행18:24). 일찍 주의 도를 배웠던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 때에도 예수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18:25). 그는 열정적인 인물이었다.바울의 친구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다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18:26). 이후 그는 아가야에 있는 믿는 자들을 돕기 위해 에베소를 떠났다(18:27),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아볼로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아볼로의 세련된 언변이 고린도 교회에 아볼로파를생기게 했던 것 같다(고전3:4-6), 아볼로의 겸양과알력을 피하려는 마음이 고린도전서 16:12에서 엿보인다. 그는 바울 선교의 말기에도 여전히 적극적인 바울의 동역자로 남았다(참고. 딛3:13).
아볼로에게서 히브리서 와 바울이 갖는 유사점과 명확한 차이점에 대하여 설명이 가능하다. 아볼로를 저자로 가정할 때 히브리서의 저작 연대는 A. D. 6870년으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오리젠이 말했듯이 히브리서의 저자는 여전히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다. 2. 처음의 수신자. 히브리서는 로마와 서방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 첫 수신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적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히13:24)는 언급으로 보아 수신자는 이탈리아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 자신이 이탈리아에 있었다면 그 정확한 장소의 이름을 밝혔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탈리아 교인들에게 이 서신을 쓸 때에는 이탈리아 밖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수신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영적 둔감성(히5:11-14), 성도들에 대한 성실한 섬김(6:9-10), 개종 후에 이들이 겪는 경험들(10:32-36)을 언급한다. 이들의 영적 지도자를 지칭하는 ‘호 헤구메노스’ (13:7,17,24)는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전문 용어로 로마와 서방계의 다른 저술들에서 사용되고 있다(참고. 클레멘트의 첫번째 서신 1:3;21:6). 이들의 처음 지도자들은 세상을 떠나고(13:7) 현재의 지도자들이 양떼를 돌보는 과제를 이어받고 있는 것 같다(13:17). 저자는 이들에게 문안하고 있다(13:24).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나 이 서신의 처음 수신자들은 이탈리아 어느 곳에 있었던 것으로 봄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로마로 통하는 길은 많았다. 이 서신을 수신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근처 어느 한 도시에 있었을 것이다. 바울 자신도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나 7일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행28:13-14). 이들은 로마나 그 근교에 있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서신을 쓸 즈음 디모데는 그를 떠나고 없었는데, 그는 교회들을 순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디모데가 속히 오면 저자는 그와 함께 수신자들을 방문할 예정이다(히13:23).
3. 내용 개관 및 요약. 히브리서를 개관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이 드러난다.
(1) 서언 : 하나님 계시의 경로 및 절정(1:1-3)

(2) 그리스도의 탁월하심(1:4-4:13)
① 천사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14-14)
② 경고: 진리를 등한시할 위험(2:1-4)

③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2:5-18)

④ 모세보다 위대하신 그리스도(3:1-6)
⑤ 경고 : 불신앙이 초래하는 현세 및 영원한 결과 (3:7-4:13)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4:14-10:18)
① 그의 제사장직의 중요성(4:14-16)

② 대제사장직의 자격(5:1-10)
③ 경고 : 연약함과 변절은 믿음, 오래 참음, 소망에 의해서만 극복된다(5:11-6:20)
④ 멜기세덱의 영원한 계승자(6:20b-7:28)

⑤ 하늘 성소와 새 언약(8:1-13)
⑥ 첫 언약과 새 언약 아래서의 제사장 직무(9:128)
⑦ 율법 시대의 제사의 불완전성은 그리스도의 제사의 최종적 효력과 대조된다(10:1-18).
(4) 그리스도인들의 인내(10:19-12:29)
① 취해야 할 태도와 피해야 할 태도(10:19-39)

② 행동하는 믿음 - 과거의 본보기들(11:1-40)

③ 현재와 미래 목표를 위한 행동의 유인(12:1-29)

(5) 후기 : 권면, 인사, 축도(13:1-25)
선조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그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서언에서 우리는 아들의 특별하심을 본다. 그는 역사보다 먼저 계시고, 역사 안에 계시고, 역사 위에 계시면서, 역사의 목표요, 역사 안에서 저질러진 죄에서 백성들을 깨끗게 해주시는 분이다.그는 신성의 본질을 나누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이다(히1:1-3).
히브리서 저자의 첫번째 주요 과제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밝히는 것이다(1:4-4:13). 그는 천사들보다 뛰어나시다. 천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본질, 하나님의 분부, 그가 이루신 일로 인하여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나시다. 그가 선포하신 위대한 구원을 등한히 하면 비극이 초래된다. 그는 만물을 인간의 발 아래 복종케 하시리라 하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시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는 모세보다 뛰어나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한 종이었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신뢰의 중단은 비극을 초래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한 세대 전체가불신앙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같은 불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려는 열심과 함께 믿음이 강조된다.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 자신이 그백성을 엄밀히 살피신다.
이 서신의 두번째 주요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두어진다(히4:14-10:18). 아론의 제사장자격, 조건, 경험들이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열거된다. 이 도식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더 높은 가르침을 받을 준비의 불충분함을 경고한다.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진지한 부지런함이 초보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할수 있다. 멜기세덱같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생명이 불멸하심으로 레위 제사장보다 뛰어나시다. 그는 제사장이며 동시에 제물도 되신다. 그의제사장직은 영원하다.그의 성소는 하늘에 있으며,그의 피는 영원한 언약이기도 한 새 언약을 유효하게 한다. 그가 죄를 위해 한번에 드린 제사는 최종적이며 유일회적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성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단번에 완전케 하셨다.
히브리서의 마지막 주요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의응답을 다룬다(10:19-12:29). 그리스도인들의 인내는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을 위한 활동, 하나님에 대한 믿음, 장차의 일에 대한 의식에서 온다. 서신을마무리하면서 저자는 기독교 제단인 십자가, 하나님의 행동을 위한 기초인 목자의 부활을 강조한다.이같은 구속사적 사건들은 믿는 자로 하여금 행동으로 나서게 한다(히13:1-25).
4. 교훈.이 서신은 그리스도에게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충분히논하였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인간이시다. 그는 창조에 참여하신 분이다. 또한본서에는 제사장이며 희생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해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제사장의 역할속에서 그는 지도자이며 안내자이시다. 그는 또한하나님의 계시자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에대한 이 모든 가르침에는 심원함이 있다. 히브리서에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다. 성령은 단 7번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구약의 영감과 관련하여 3번, 그리스도의 사업과 관련하여 1번, 변절자의 기독교 기부와 관련하여 1번, 믿는 자와 관련하여 2번언급되는 정도이다. 첫 언약(옛 언약과 새 언약이비교되며, 새 언약 혹은 영원한 언약이 우월한 이유가 제시된다.
히브리서의 죄론은 불신앙과 영원한 도성(하나님의 도성)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의 실패에 관심의 초점이 있다. 그림자와 실재가 면밀하게 대조된다. 하늘은 실재의 무대이다. 땅은 그림자와 실재모두와 관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시간과 영원을잇는 가교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시적 환경에서영원한 도성으로 이주하는 자로 간주된다. 이 이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며, 시험, 단련, 징계, 신실, 하나님의 성화시키는 활동의 문제와 연관성을 갖는다. 기독교적인 생활은 이 하늘의 순례의 테두리에서 전개된다. 종말론 혹은 마지막 일들에는 영원한 안식을 얻는 일, 하늘과 땅의 최후 진동, 그리스도의 재림, 영세 무궁한 하나님의 영광이 포함된다.

히스기야 Hezekiah

1. 유다의 제 14대 왕(B. C. 715-687)으로 아하스의 아들이자 므낫세의 아버지이다. 히스기야는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왕들 가운데 하나로 다른 왕들과는 달리 뛰어난 신앙심을 가졌으며(왕하28:5) 25세에 등극하여 29년간 치리했다(왕하18:2;대하29:1). 그의 재위기간에 관해서는 학자들사이에 여러가지 이견이 있다. 베이커(D. W. Baker)에의하면 히스기야는 B. C. 729년경부터 B. C. 716년까지는 부왕 아하스와 함께 유다를 다스렸던 것으로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B.C.722년의 사마리아 함락시기를 히스기야 6년이라고 한 것은 부왕과 공동통치년수를 계산한 것이기에 틀린 것이 아니며(왕하18:10),B. C. 701년에 일어난 산헤립의 유다침공이 히스기야왕 14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된 것은 B. C. 715년부터시작된 그의 단독통치년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왕하18:13).
그의 등극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부왕 아하스 치세 때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르신이 반앗수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침공하자 유다왕 아하스는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앗수르에 구원을 요청하였다(왕하16:5-9;사7:1-9), 이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이들을 공격하였고 이스라엘의대부분의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로인해 유다는 앗수르의 정치적인 종속국이 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우상을숭배하는 등 타락의 극치를 걷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히스기야가 왕위에 등극하였다. 그는 정치적 독립과 종교적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아하스가 죽은 후 종교개혁을 하여 산당과 우상을 제거했으며, 심지어는 이스라엘 자손이 숭배하던 모세의놋뱀까지도 부수었다(왕하18:4), 그는 정치적으로 앗수르를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블레셋을치고 가사와 그 사방의 견고한 성들을 점령하였다(18:7-8). 하지만 그는 이사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과 우호조약을 맺었다(사30:1-7:31:1-3). 그는 앗수르의 침략에 대비하여 예루살렘을 정비하여 수비를 강화하였고 식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실로암 수로를 파기도 하였다(왕하20:20;대하32:30).
히스기야 왕 14년(B. C. 701)에 앗수르의 산헤립은팔레스타인을 점령해 들어갔으며 유다의 모든 견고한성읍들도 점령하였다(왕하18:13).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굴복했으며 조공으로 여호와의 전과 왕궁곳간의은과 여호와의 전 문과 모든 기둥의 금을 벗겨 앗수르에게 바쳤다(18:15-16. 성경은 앗수르의 두번째 침공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한 근거를갖고 있지는 않다. 아무튼 이 두번째 침공으로 예루살렘은 포위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점령되지는 않았으며 역질로 인하여 곧 퇴각하고 만다(왕하19:35),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된 것이 바로 이 때였으나 면벽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생명을 15년 더 연장받았다(20:1-7), 히스기야가 죽은 후그의 아들 므낫세가 그 왕위를 이어받았다(20:21).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의 예수의 족보에 언급되어 있다(마1:9-10).
2. 솔로몬의 후손으로 느아랴의 아들이며 유다왕족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대상3:23).
3.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아델 가문의 조상인데(스2:16;느7:21), 여기서아델은 히스기야의 바벨론식 이름이다. 따라서 개역성경에서는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 이라고 기록하였다(스2:16).
4. 선지자 스바냐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