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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희색/ 희생

희색 face brighten

기뻐하는 얼굴빛, 잠언기자는 올바른 통치자의 도를 교훈하면서왕의 진노는 많은 살육을 부르지만 지혜자는 이것을가라앉히며 따라서 왕의 얼굴빛이 밝아야(새번역) 모든 백성이 살 수 있다고 하였다(잠16:14.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예루살렘이 회복되어 영광을 얻을 때 얼굴에 희색을 발한다(새번역 '기쁨이 넘치고')고 하였다(사60:5).

희생 sacrifice

히브리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대물'로서짐승의 피나 고기를 바치던 의식(제사)을 가리키는 말이나 (출3:18;5:3,8;8:26a;22:20;32:8;호4:14. 참고, 공동번역은 출8:26b;32:8;호4:14에서 제물로 번역하였다), 위의 용례들 이외에는 바쳐지는 제물 자체를 가리킨다. 한편, 신명기 12:6의 희생은 화목제물을 가리키는 것이다(참고, 공동·새번역). 신약성경에서 이 말은 보통제사, 예물 등으로 번역되었다.
I. 구약성경
1. 기원. 희생의 기원은 논란의 대상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의 인도를 받았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문제는 희생이 인간의 자연종교적 본능에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분명한 신적인 언약에서 기원한 것인지 하는 데 있다. 창세기는 가인과아벨이 드린 최초의 희생을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상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분명 이 관습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며, 구약의 율법에 받아들여지고 정교하게 발전되었다. 이 의식이 명확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견해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연납하셨음을 말해주는 창세기 4:4-5과,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음을 말해주는 히브리서 11:4 에 주로 기초하고 있다. 아벨의 믿음은 과거의 특별한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고 만일 이와 같은 신적 명령이 없었다면 그의 제사는 단지 미신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벗었음을 가리기 위해 지어주신 옷은 분명 희생된 짐승으로부터 얻어진 것이고, 이 희생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벌거벗은 인간을 입히는 그리스도 희생의 모형(type)을 얻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명백한 것은 이러한 연역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희생이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에 의한 것이든지 아니든지간에, 인간의 부족한 영적 본성(nature)을 만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인간에 의해 고안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론들을 세워 놓았다.
(1) ‘선물’이론으로서, 희생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기쁘고 고맙게 여기시면서 받아주시리라는 드리는 자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2) '식탁-관계’이론은 희생이란 근본적으로 더욱 확고한 교제 관계 속에 서로를 엮고자 하는 목적으로 예배드리는 자와 신이 함께 나누는 음식들이었다고 제안한다. (3) ‘성례적 교제’이론은 식탁-관계 이론의 변형이다. 이것은 일찍이 어떤 민족들 가운데 있던 바, 짐승들은 사람들과 함께 신적 본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예배자가 실제로 그 신(god)을 먹음으로써, 그 짐승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 육체적, 지적, 정신적인 가치를 얻는다. (4) '충성'이론은 희생이 인간의 죄의식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한 자신의 충성과 신에 대한 의존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5)‘속죄’이론은 희생이란 근본적으로 속죄하는 것, 또는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죄와 그로 인한 형벌 의식으로부터, 인간은 짐승으로 대신하여 마땅히 자신이 받아야 할 형벌을 감당시켜서 신과 더불어 화평을 이룬다는 것이다.
2. 희생의 구분. 희생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구분되어 왔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전체 회중을 대신한 것과 개인을 대신한 것.(2) 짐승(피를 흘리는)의 희생과 피흘리지 않는 제사. (3) 언약관계가 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드리는 희생과 이미 깨어진 언약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 (4) 제사장의 도움없이 드리는 희생, 제사장 홀로 드리는 것, 제사장의 도움을 받아 일반인이 드리는 것. (5) 신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희생, 속죄를 위한 것, 신과의 화목한 관계를 표현 내지는 증진시키려는 것. (6) 자기 헌신 희생, 감사희생, 속죄희생. (7) 제물이 완전히 하나님께 봉헌되는 희생, 일부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나머지는 예배자에게 성찬으로 돌려진 희생. (8) 짐승의 희생, 곡식의 희생(소제), 액체(전제)와 연기(분향)로 드리는 희생.
3. 구약 시대 희생의 역사, 가인과 아벨의 희생(창4:4-5)은 이 의식이 거의 인류의 시초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준다. 감사제였으며 또한 속죄제일 수도 있는 그들의 희생에는 제사장이 필요치 않았다. 홍수 후에 드린 노아의 희생(8:20-21)은 번제로 불리우며 창세기 9:8-17 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아브라함이 드린 몇가지 희생이 언급되어 있는데(12:7-8;13:4,18;15:4이하), 그는 스스로를 자신이 제사장인 것으로 행하여 이 하나님을 숭상함을 표현하기 위한 제사를 드렸으며 이것은 어쩌면 속죄제였을 수도 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일반적인 의식이었던 인간 희생을 원치 않으심을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셨다. 족장인 이삭과 야곱은 규칙적으로 희생을 드렸다(26:25;28:18;31:54;33:20;35:7;46:1). 욥과 그의 친구들도 희생을 드렸는데(욥1:5;42:7-9), 아마도 속죄제였던 것 같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동안에 짐승의 희생에 익숙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세가 바로에게 광야로 나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출 3:18;5:3이하;7:16), 희생(공동번역 ‘제물')과 번제물로 양떼와 소떼를 요구했던 것(10:24-25)은 바로 이와 같은 어떤 제례를 위한 것이었다. 유월절 희생(12:3-11)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사상을 강하게 나타낸다. 모세의 장인이며 제사장인 이드로는 모세와 백성들을 만나자 희생을 드렸다(18:12).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세워진 언약에는 임중한 희생이 동반되었다. 이 계약의 기초 원리는 '순종이지 희생이 아니었다(출19:4-8). 희생은 순종의 조력자로서 부수적인 것이며 순종이 없이는 가치가 없다. 사사 시대와 사울, 다윗의 통치기간 동안에 희생은 많은 곳, 특히 성막이 세워진 곳에서 드려졌다. 오직 제사장만이 희생들을 드려야 했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동안에는 가족들과 부족들의 지역마다 희생들을 드렸다(예. 삼상16:2-5;20:6,29;삼15:12,24).
사울이 드린 제사는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이다(삼상13장). 사무엘이 와서 번제를 드릴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으나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지자 사울의 용기는 약해졌다. 결국 육백명의 사람들만이 남게 되자 사울은 스스로 희생을 드렸다.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13절). 비록 군대가 흩어졌다 하더라도 사울에게는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를 무찌를 때의 숫자(삿7:7)에 비해서 아직 두 배나 많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은 정치적, 예배적 중심지였다. 다윗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제의적 책임들을 깨달았다(대상22-23장).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이곳은 요구된 절기 축제들이 열렸고 희생을 드리는 합법적인 유일한 장소였다(신12:5-6,13-14).
B. C. 931년 왕국이 분열되자, 금송아지 숭배가 제사장들, 제단들, 의식들과 함께 제정되었다(왕상 12:27-28). 산당은 그 대부분이 매우 부패해서, 비록 남왕국에서는 이따금 제거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도 남 · 북왕국 양쪽에서 모두 사용되었다. B. C. 586년 예루살렘 성전의 함락과 함께, 모든 제의는 중단되었으나 포로에서 귀환하자 제단이 세워지고 희생이 다시 드려지게 되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이집트의 엘레판틴(Elephantine)에 유대인들에 의해 세워진 성전이 존재하여 이곳에서 희생 체계가 준수되었다. A, 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이곳에서 희생이 드러졌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이사야와 다른 여러 선지자들은 희생과 사회적 관심, 그리고 예배와 도덕성 사이를 다시 연결하고자 하였다(사 1:13-17. 참고, 렘7:20-23;암5:2127;미6:6-8). 그리하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교훈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의식이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표현이어야 한다. 또한 진정한 헌신은 정의와 자비로 나타나는 삶의 모습에서 표현되는 것이다. 예배자가 하나님의 도덕성에 대한 뜻으로부터 멀어진다면 예배는 결코 열납되지 않는다.
4. 제물. 희생 제물은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취해야만 했으며(창8:20), 암소,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들도 가능했다(참고, 창15:9). 그러나 낙타 또는 나귀는 부정하기에 제물이 될 수 없었다(출13:13). <참조> 정결과 부정
이러한 규정들은 레위기 3:11;21:6;에스겔44:7로부터 제안될 수 있는 바, '신들(gods)을 위한 음식'(즉, 신들은 사람이 먹는 것을 받는다는 것)으로서의 희생 사상에까지 소급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레11:9)와 노루나사슴과 같은 야생 동물들(신12:22)은 사람이 먹을 수는 있지만 희생으로 드려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축들은 노동의 대가로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반면에(창22:13은 명백하게 드러나는 유일한 예외이다), 어떤 의미에서 야생 짐승들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시50:9이하. 참고. 사40:16 원칙적으로는 소유물 중에서 제물을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참고. 삼하24:24). 이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제물의 경우에서 더더욱 분명하다. 이것은 이마에 땀을 흘려 생산된 것이며(곡식, 가루, 기름, 포도주등), 또한 부엌의 주요 식품이기도 하였다. 불법적으로 얻은 재산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신23:18).
'하나님께 최상의 것' 이라는 원칙은 모든 부분에 걸쳐 지켜졌다. 성(性)에 대해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선호되었다(레1:3).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참고, 창15:9;레3:1;삼상6:14;16:2), 나이는 원숙한 것이 특히 가치가 있었다(삼상1:24). 육체적으로는 '흠이 없는’ 것이 계속하여 강조된다(레1:3;3:1;신 15:21:17:1;22:17-25. 참고. 말 1:6 이하; 그러나 낙헌 예물(공동번역 '마음에 우러나 바치는 예물)에 대한 예외를 주목하라), 색깔에 대한 경우, 붉은 색이 선택된 것은(민 19:2) 아마도 피를 의미하는 것 같다(참고, 선사시대 동굴의 동물 벽화들). 이스라엘과 이웃 나라들간의 차이점은 이러한 원칙이 확장되어 사람의 초태생이 논리적으로 최상의 제물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를 제물로 삼은 것은 왕국 말기에 생겨났으며(왕하21:6), 보다 이전 시대에 대한 기록에서도 경우에 따라 사람을 희생으로 드린 것을 볼 수 있다(삿11:29 이하). 이것들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선지자(렘7:31이하)와 율법(레20:4) 그리고 예증(창22장)을 통하여 책망받았다. 출애굽기 22:29b는 출애굽기 34:19-20 과 출애굽기 13:12-16에 의해 명확하게 해석될 수 있다. 대신(代身)의 원리는 사람의 초태생을 짐승의 제물로 대신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은 죄에 대한 보상으로 값이 보다 싼 비둘기를 바치도록 한 규정(레5:7)과 만일 이것도 힘에 부친다면, 곡식 가루를 제물로 드리라는 규정(레5:11)에도 나타나 있다. '그 힘이 미치는 대로' (레14:22 등)라는 말은 여기에서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기름(창28:18), 포도주(창35:14), 그리고 물(삼상 7:6)을 붓는 것은 제의의 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 율법에는 오직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것만이 언급된다(민28:7, 공동번역, 참고. 개역 '독주', 새번역 '독한 술').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누룩과 꿀 그리고 어쩌면 젖도 금했던 것은 아마도 부패하기 쉬운 것을 막기 위함일 것이다. 왜냐하면 방부제로 잘 알려진 소금은 희생제물에 첨가되었기 때문이다(레2:13; 겔43:24. 참고, 막9:49). 향(香)도 하나의 독립된 제물로서(출30:7. 참고적으로 제조방법은 34-38절), 또한 소제의 첨가물(레2장)로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Ⅱ. 신약성경
1.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약성경의 희생들. 구약성경의 희생들은 신약성경이 이루어진 실질적인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드려지고 있었다. 주요 언급들은 마태복음 5:23-24;12:3-4과 그 평행구절들과 17:24-27;23:16-20;고린도전서 9:13-14에 나와 있다. 우리 주님께서도 전례를 좇아 희생을 드리신 것(눅2:42) 이나, 마지막 유월절에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드리신 것(참고, 행8:32; 고전5:7)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추측컨대 다른 절기에도 그분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것이다. 그리스도 희생 이후, 사도들도 성전을 자주 방문했던 것을 본다. 바울은 스스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서원의 중단에 대한 희생(속죄제가 포함된)을 드렸다(행21장. 참고, 민6:10-12). 그러나 원칙적으로 이러한 희생들은 당시 필요없었다. 왜냐하면 옛 언약은 낡았고 없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히8:13). 그래서 로마가 성전을 훼파했을 때 심지어 비기독교 유대인들조차도 희생을 드리는 것을 중단했다.
히브리서의 가르침에는 희생에 대한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지만(11:4), 주된 관심은 이것이 상징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타당한 것이 없다는 바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들이 사람들로 지성소에 들어가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희생과 제사가 예배하는 사람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주지는 못하고, 단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로잡으시는 때가 올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이라는 것을 증거한다(9:6-10). 또한 단지 짐승들이 드려지고(10:4), 그것이 반복된다는 사실(10:1-2)로는 죄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영적 희생. 영적인 희생(벧전2:5, 참고, 요4:23-24;롬12:1;빌3:3)은 육체의 예법에 대한 신약성경의 대체물로서, 자주 언급된다(롬12:1;15:16-17;빌2:17;4:18;딤후4:6;히13:15-16;계5:8;6:9;8:3-4). 그러나 심지어 구약성경에서도 시편 기자들과 선지자들이 이따금 비유적으로 희생에 대한 언어를 사용하였다(시50:13-14;51:16-17;사66:20). 이들 구절에서 언급된 희생이 언제나 비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죽음을 포함할 수도 있다(예, 빌2:14). 이러한 의미에서 '영적' 이라는 것은 성령의 시대에 완전하게 속해 있다는 말이다(요4:23-24;롬15:16). 그러나 때로는 비물질적이고, 결코 규정된 의식을 갖지 않는다. 사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든 행동은 영적 희생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것도 하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물론 이것은 속죄하는 것이 아니다. 속죄하는 희생의 원형은 이것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얻어질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영적 희생은 열납될 수 없을 것이다(히 13:15:32:5).
3. 그리스도의 희생. 그리스도의 희생은 신약성경의 주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불리우고, 그의 귀중한 피는 세상의 죄를 사하셨다(요1:20,36; 벧전1:18-19; 계 5:6-10:13:8). 어린양은 여러 가지 희생의 제물로 사용된 짐승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진정한 유월절 양으로서(고전5:6-8), 속죄제물로서(롬8:3. 참고, 레5:6-7,11:9:2-3;시40:6) 일컬어지고, 히브리서 9-10장에서는 출애굽기 24장에 나오는 언약의 희생제물들과 민수기 19장의 붉은 암송아지, 그리고 속죄일의 제물들에 대한 성취로서 언급된다. 신약성경은 계속하여 우리 주님을 속건제물인 이사야 5253장의 고난받는 종과 죄악을 영속할(24절) 다니엘서 9장의 메시야와 동일시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그의 죽음(2:9,14;9:15-17,22,25-28;13:12,20)에 대한 중요성과 그의 희생은 끝이 난 것이라는 사실(1:3;7:27;9:12,2528;10:10,12-14,18)을 강조한다. 이 서신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성소를 하늘에 대한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8:1-5;9:11,24) 사실이지만, 이것이 그의 희생을 그곳에 강력히 국한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그의 영원한 제사장적 중재(7:24이하, 참고. 시99:6;욜2:17)는 한걸음 더 나아간 어떤 활동이 아니라, 그가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 시는 것이 전부이다(히9:24). 십자가에서 그가 이루신 일에 근거해서, 그리고 이제는 모두 지나버린 그분의 고난과 함께,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 존전에 있는 그대로 나타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계속되는 중재이자 우리의 죄들에 대한 계속되는 속죄 내지는 화해이다(2:10,17이하). 짐승의 몸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 아들의 몸을 얻었다(히 10:5,10). 흠없는 제물(히9:14;벧전1:19)과 향기로운 제물(엡5:2)처럼 드려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백함과 진정한 용납을 받는다. 우리들의 몸에 제물의 피를 뿌린 것처럼, 우리는 용서를 받는다(히9:13-14,19-22). 상징적인 속죄를 통하여 우리는 실제로 속죄함을 얻는다(히1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