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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Christianity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무슬림 선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슬림 선교

이규대 선교사 (현 PCK 선교사, 인도네시아)(스리위자야신학대학교, PH.D)

무슬림의 지역적 분포와 인구 현황을 구분하고 분석할 때 세계 종교에 관한 가장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한 퓨 연구센터(Pew Research Cnter)의 『세계 무슬림 인구의 미래: 2010-2031전망』를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이 연구보고서에서 세계지역의 구분을 아시아-태평양, 중동-북아프리카, 사라하-이남 아프리카, 유럽, 북 · 중·남미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지역분류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이슬람과 기독교 인구 현황과 통계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슬림 선교를 분석하고 이슬람 선교 방향과 정책을 논하고자 한다.

1.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슬림 현황과 통계 분석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동아시아의 중국에서부터 가장 서쪽으로 터키에 이르는 지역이며 중앙아시아의 북쪽 카자흐스탄에서부터 중동을 제외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61개 나라가 있는 넓은 지역이다.
퓨 연구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세계 무슬림 인구의 미래: 2010-2031 전망」을 보면 전 세계 무슬림 인구가 2030년에는 22억 명(2010년 16억 명)으로 전 세계인구의 26.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종교적 지리적 확장이라기보다는 무슬림 인구의 년 평균증가율(1.25%)이 비 무슬림(0.7%)보다 2배가량 높기 때문이다. 중국 인구의 2%가 무슬림이지만 중국 인구가 많기 때문에 2030년에는 무슬림 인구 19위 나라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 무슬림의 대다수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시아태평양 무슬림 인구는 2010년 전 세계 인구의 62.1% 약 10억 명을 차지하였다. 이슬람의 본산지이며근거지인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무슬림 인구는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19.9%(2010년)를 차지하고있다. 이러한 사실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슬림 선교가 더 중요하고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수니파 무슬림은 전 세계 무슬림의 87-90%를 차지하며 시아파 무슬림은 10-13%를 차지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수니파 무슬림이 대다수이다. 인도네시아는 99%, 방글라데시는 99%, 파키스탄은 87%가 수니파 무슬림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무슬림 다수국가 인구 중에서 무슬림 인구가 90% 이상인 무슬림 절대다수의나라는 아프가니스탄(99.8%), 이란(99.7%), 타지키스탄(99%), 터키(98.6%), 아제르바이잔(98.4%),몰디브(98.4%), 우즈베키스탄(96.5%), 파키스탄(96.4%), 투르크메니스탄(93.3%), 방글라데시(90.4%)이며, 무슬림 인구가 80% 이상인 나라는 키르기스스탄(88.8%), 인도네시아(88.1%)다. 인구중 무슬림이 과반 수 이상인 나라는 말레이시아(61.4%), 카자흐스탄(56.4%), 브루나이(51.9%)다. 인구 중 무슬림 인구가 소수지만 의미 있는 숫자가 있는 나라는 사이프러스(22.7%). 싱가폴(14.9%), 인도(14.6%), 스리랑카(8.5%), 피지(6.3%), 태국(5.8%), 필리핀(5.1%), 몽골(4.4%), 네팔(4.2%)이 있다. 무슬림이 인구 중 과반수이상 다수가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무슬림은 74.1%이며, 무슬림이 다수가 아닌 나라에서 살고 있는 무슬림은 26%이며 그 중에서 선진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의 수는 2.7%다. 이러한 통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중 4/1 이상이 무슬림이 다수가 아닌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이러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무슬림 사역이 자유롭고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곳이다. 또한 무슬림이 절대다수이지만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인 인도네시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슬림 인구가 다수이지만 오랜 기독교 역사가 있고 상당한 그리스도인이살고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인구 중 10%가 그리스도인이며(2천7백만 명)이며,북아프리카-중동의 그리스도인을 합한 수보다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이 더 많다. 동남아시아에는과반수가 무슬림이지만 상당한 수의 그리스도인이 사는 나라는 브루나이 (9.4%), 말레이시아(9.1%)가있으며, 중앙아시아에도 무슬림이 절대다수이지만 상당한 수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나라 중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리스도인이 6.3%나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그리스도인이 2.6% 존재한다. 키르기스스탄은그리스도인이 12.3%나 되며, 카자흐스탄은 과반수이상이 무슬림이지만 그리스도인이 26.2%나 살고있다. 이러한 통계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무슬림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수가 무슬림인 나라이지만 여전히 상당한 그리스도인이 존재하고 선교가 가능한 지역이기에 한국교회는 이러한 지역에선교사를 파송하는데 힘써야 한다.

2. 성서적 무슬림 선교 방향
기독교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함에 기초한다. 따라서 교회의 이슬람 선교를 위한 성서적 기초는 예수님의 선교 방식과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 밖의 사람들, 특히 이스라엘의 종교적·사회적 공동체에서 배제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공적인 죄인들과 세리와 더불어 식탁의 교제 나누었고(마9:10,눅7:31), 사회적 약자 주변인인 가난한 자들에게 “행복할 것이요, 웃을 것임”을 약속하면서 유별난 사랑과 특별한 애정을 보이셨다(눅 6:20–26). 특히 유대인에게 멸시받고 소외되었던 사마리아인들과 가부장적 사회인 유대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거리낌 없이 대하였고 그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셨다.(눅 10:25-37,7:36-50; 8:1-3, 요 4:27) 예수님의 선교 방식과 태도는 종교와 인종과 이념의 경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중세 이후 기독교 선교 패러다임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는 말씀에 기초하여 타종교와 문화를 정복하는 '강제 개종 선교'가 수 세기 동안 선교 사상을 지배해 왔다. 물론 16세기 라스 카사스(Las Casas)는 눅 14:23을 “강요가 아닌 설득”을 의미한다고 보았지만, 20세기까지 이러한 선교 패러다임은 계속해서 사용되어왔다. 그 결과 기독교회의 공식적인 신자가 되지 않으면 구원이 없으며 교회에 들어와야만 영원한 축복이 있다는 선교 개념이 16세기 이후, 극단적으로 비서구 세계에 대한 식민지화라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식민지 선교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1960년대에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개념이 등장한다. 기독교 선교는 강요나 교회의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며, "세상을 향한 자기 비움과 겸손한 섬김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다.(마20:28) 세상을 향해 선교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밑에 서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미래와 희망을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고후5:14-15, 계21:1-5).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회가 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선교적 방향과 태도를 위해,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선교신학적 입장을 가진 데이빗 보쉬의 견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근본적으로 ‘대화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입장을 희생하거나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 없는 접근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종교와 대화하려는 헌신은 우리가 진공 속으로 나아가지 않고, 우리 앞에 선행하여 그들의 문화들과 확신들의 상황 속에서 준비하신 하나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간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야만 가능하다.' 보쉬는 오늘날의 선교가 절대성에 대한 주장과 상대주의적 다원주의 사이를 넘어서는 창조적인 긴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다른 종교인들과의 공존이 그들의 일상이요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대화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포함한 서구와 보수적인 근본주의 교회는 이슬람을 향해서 '우리의 선'과 '그들의 악’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인도주의적 문화를 대표하는 반면 무슬림은 폭력과 증오를 대변하며, 이슬람 문명이 서구 문명과 완전히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이 주장하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통속적이고 환원적인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회들은 전 세계의 다양하고 혼종적인 이슬람 세계를"이슬람"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형화하여, 오늘날 전 세계 5대양 6대주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19억의 무슬림들을 향해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이슬람을 바라보고 이슬람포비아를 조장하고 확대 재생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화의 선교는 오로지 겸손의 태도 속에서만 실행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은혜의 종교이고 그 중심은 십자가에서 발견된다. 십자가의 약함과 겸손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서 타종교인과 대화와 교제의 기초가 된다. 자기 자신의 신앙을 귀하게 여기는 동시에 타종교인의 신앙이 다른 축과 구조를 가진 세계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보쉬의 타종교에 대한 선교 신학적 입장은 오늘날 기독교회의 이슬람 선교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교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의무가 있다. 대화한다고 해서 선교의 본질을 간과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소명의 중심에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에게 전해 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소유하고 있다.”(W.C.C.의 ME 6) 우리는 어떻게 선교적이면서도 대화로 나아가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을 지시할 수 없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능력에 한계를 둘 수 없다는 긴장을 해소해 나아가야 할 소명이 있다. 지금 당장 기독교회가 타종교에 대한 선교적 모범 답안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대화와 선교로의 참여를 모험으로 간주하고 모험을 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더 충만한 이해로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부분적으로 아는 동시에 참으로 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참되며 옳으며 선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기독교회는 심판자와 변호인이 아닌 증인으로서 선포하며, 군인이 아닌 평화의 사절로서 부담 주는 판매원이 아닌 주님의 대사로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해야 한다. 이것이 이슬람을 향해 기독교회가 가져야 할 선교 신학적 입장이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19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하며, 이슬람은 기독교(21억 8천명, 2010 통계) 다음으로 세계 2대 종교가 되었다. 1990년 11억 명이었던 무슬림 인구가 2030년에는 22억 명(26.4%)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62.1%,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19.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15%, 유럽에 2.7%, 북·중·남아메리카에 0.3%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무슬림 인구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지만, 통계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슬람의 성장과 확산에 대하여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12) 무슬림 인구의 빠른 성장이 이슬람 종교의 전파로 인한 확산보다 생물학적 성장과 이민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무슬림의 인구증가율은 비 무슬림 인구증가율의 2배에 이른다(무슬림 2.3%, 비 무슬림 1.2%, 1990-2000). 하지만 이러한 증가율은 향후 20-30년에 걸쳐서 점차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무슬림 1.4%, 비 무슬림 0.6%, 2020-2030). 2000년을 기점으로 북미를 제외하고 사하라이남, 중동-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슬림 인구증가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 이는 무슬림 나라들의 출생률이 낮아지고 평균연령이 점차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인구 중 무슬림의 비율은 2010년 기준 10억 5백 5십만 명(24.8%)이며, 2030년에는 12억 9천 5백 6십만 명(27.3%)을 예상한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내 인구 중 무슬림의 비율은 2010년 기준 3억 2천 1백 9십만 명(91.2%)이며 2030년에는 4억 3천 9백 5십만 명(91.4%)을 예상한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무슬림 비율은 2010년 기준 2억 4천 2백 5십만 명(29.6%), 2030년에는 3억 8천 5백9십만 명(31%)을 예상한다. 유럽의 무슬림 비율은 2010년 기준 4천 4백 1십만 명(6%)이며 2030년에는 5천 8백만 명(8%)을 예상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지난 30년 동안 중동-북아프리카 무슬림의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생물학적 인구 성장 이외 증가요인이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유럽의 무슬림 증가는 주로 무슬림의 이주와 이주민의 출생률이 높은 요인 때문이다. 전체적인 통계를 볼 때 2030년 이후의 이슬람 인구 증가는 이주와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아주 완만한 증가가 예상되며, 개종에 의한 증가는 약화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교회에서 퍼지고 있는 “얼마 있지 않아서 유럽과 북미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이슬람화 될 것”이라는 불안은 근거가 희박하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도 “이슬람이 몰려온다", "한국도 엄청난 숫자의 무슬림이 생겨날 것이다”라며 이슬람포비아를 외쳤지만 1990년에 43,000명, 2010년에 75,000명이었으며, 2030년에 76,000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3) 따라서 향후 북미나 유럽 그리고 한국에 엄청난 수의 무슬림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이슬람포비아를 조장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근·현대 시기에 이슬람은 나라나 지역을 넘어서 그리고 다른 인종으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 세계인구의 32%인 기독교 인구의 비율은 지난 백 년 동안 거의 유지되었으며, 기독교인의 인종적 · 지역적 확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유럽 기독교인이 66.3%(1910)에서 25.9%로 격감하였지만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기독교인 비율은 17배나 증가하였고 아시아-태평양 기독교인 비율은 3배나 증가하였다. 남반부( obal South) 기독교인의 비율(61%)이 북반부(Global North, 북미, 유럽, 호주, 뉴질랜드, 일본) 기독교인(39%)보다 1.5배 이상이 되었다. 14 이러한 통계로 볼 때 남반부 기독교의 활력과 성장은 이슬람 선교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북반부 기독교의 쇠퇴와 선교 약화에 따른 미래의 선교를 걱정하지만, 남반부 기독교의 성장과 남반부 기독교의 무슬림 선교의 가능성과 역량을 주목하면서 이제는 남반부 기독교회와 협력하여 선교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남반부 기독교의 선교역량을 강화하고 선교적 교회로 변화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무슬림 선교의 가장 큰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남반부 기독교 지역으로 한국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남반부 기독교회를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고 그들과 동역하여 남반부 기독교의 선교동역화에 힘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무슬림 선교가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이슬람 선교를 위해 많은 이슬람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왔다. 그중에서 합법적인 거주와 선교 활동이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경제적 활동이나 NGO 사업을 통해 제한된 선교사역을 감당해왔지만 결실은 미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의 선교를 지속함과 동시에 효과적인 이슬람 선교를 위해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선교사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남반구 무슬림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매있는 무슬림 선교를 위해서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중앙아시아 포함)이나 사하라이남 아프리카가 이슬람 선교의 최적지다. 남반구 현지의 기독교회가 무슬림에게 이웃으로 다가가서 증언하도록 한국교회가 돕고 훈련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는 공존과 협력의 바탕 위에 대화와 섬김을 통해 지속되어야 한다. 무슬림에 대한 미움과 적대감 그리고 공포는 복음의 장애 요인이 된다. 무슬림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의 이웃임을 인정하며, 무슬림이 믿는 신앙과 삶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야 한다. 그들과 함께 이 지구촌의 가난과 불의한 사회구조, 정의와 인권 그리고 환경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이 땅에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자라고 꽃피우는 일을 위해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일하게 될 때, 복음의 능력 속에서 서로의 확신과 소망을 증언하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와 선교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역이며 효과적인 이슬람 선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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