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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하용조목사님

예수 강해 3강 |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다 | 누가복음 4:14-22 | 하용조 목사님 | 온누리교회 | 설교문 녹취록

본문 : 눅 4:14-22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구약에서 메시아라는 단어를 쓸 때 무슨 의미로 쓰였을까?

그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약에서 썼을 때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에서의 메시아는 살아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구분된다, 성별된다 라는 뜻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성단, 성물을 다 구분된 것, 세상의 물건과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전을 거룩한 것으로 생각한 뜻이 그런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가 구분됐다 라는 것이죠.

구분되지 않는 사람은 거룩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과 달리 구별되게 살면 그것이 메시야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아무렇게나 기름 붓지 않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기름 부어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구약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또 한 가지 이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오실 자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는 이제 곧 오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타락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구원하고 전쟁에서 포로에서 억압에서 병에서 저주에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고 구원시킬 해방자, 구원자라는 뜻이 메시야라는 뜻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을 겪을 때마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우리를 해방 시킬 것이다, 우리를 구원 시킬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최초로 기름 부음 받은 왕의 직능을 한 사람이 사울 왕 입니다.

기름을 부어 사울 왕이 됐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울 왕은 실패한 왕입니다.

그래서 사울 대신에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다시 기름 붓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입니다.

여호와의 신, 그 기름부음 받을 때 바로 그 순간부터 여호와의 신이 감동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가 있는데, 기름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종이란 뜻이에요.

사람들의 종, 하나님의 종, 크리스챤들은 종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섬기는 것이죠.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예수님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죠.

나는 섬기러 왔다고 말했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죠.

예수님은 아무도 만나 주지 않은 창녀들, 세상에서 싫어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늘 가까이 했던 이유가 바로 메시아의 하나님의 종으로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너는 나의 택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비가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장자로 삼고 세계 열방에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구약에 자주 나오는 단어는 아닙니다.

90번 정도 나왔죠.

그러나 이 이새의 뿌리에서 유다 족속에서 메시아가 탄생 될 거라는 그런 소문이 그런 생각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 점점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메시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시 구원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 학자들은 이것을 원시 복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내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자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머리를 치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사탄의 죽음을 의미했던 것이죠.

이 구약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메시아 사상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가 동정녀 처녀에서 태어날 것이다,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말이 이사야 7장 14절에 이미 기록하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도 미리 다 이야기를 했어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요한이라는, 누군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것이다, 낮은 골짜기는 높게 만들고 높은 산은 낮게 만든다 이런 예언도 구약에 다 있습니다.

이사야 41장이죠, 또 말라기 3장이죠.

메시야는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할 것이다, 스가랴 9장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메시아는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할 것이다, 시편에 그런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은 30에 팔릴 것이다, 스가랴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메시아가 세상에 와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고난을 받을 거라는 예언이 시편의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조롱을 받을 것이고, 그는 목마를 것이고, 그는 십자가에서 가상 칠언의 말한 내용도 미리 시편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시편을 기록한 사람들, 이사야를 기록한 예언자들, 이런 분들이 그것들을 다 그렇게 신약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 그걸 알고 했느냐?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머릿속에 그 영감 속에 그 마음속에 이런 메시아는 이렇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배신을 당할 것이다, 은 30에 팔릴 것이다, 그를 처녀가 잉태할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감처럼 그런 말이 나왔고 그런 사람들이 성경에 다 그것을 기록하고 있어요.

옆구리에 창을 찔릴 것이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할 것이고, 특별히 대속의 고난, 이사야에는 집중적으로 53장에 보면은 그 메시아의 순난에 대해서 아 지금도 그 성경을 읽으면 그냥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 메시아의 고난을 직접 우리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예수란 단어를 안 썼을 뿐이지, 그런 내용, 메시아가 하셔야 할 일들을 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을 통해서 기록한 것이죠.

그리고 부활할 것이다, 시편 16편.

메시아에게는 3가지 직무가 있다.

첫째는 그가 선지자이며 충실한 제사장이며 왕일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왕에 대한 기대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이 제사장은 이 제사장을 통해서 앞으로 오실 영원한 대제사장, 제사를 매년마다 드리는 제사장이 아니라 단번에 제사를 드리는, 온 인류를 그의 피로 구속하는 그 어떤 분이 어떤 누군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메시아를 그들을 기다리면서 살아왔어요.

따라서 이 메시아는 그들에게 뭐가 되냐면 희망이 되는 거에요.

 

희망이 끊어졌을 때, 절망이 되었을 때, 죽을 병이 걸렸을 때, 적군에게 포로를 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흩어지고 부인이 강간을 당하고 이런 기가 막힌 현실 속에서도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라는 희망, 기대감을 그들은 구약 전체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메시아는 다니엘서와 스가랴에서 보면 재림할 것이다, 그가 다시 와서 구원자로서 이러할 것이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메시아에 대한 얘기는 메시아가 와서 무슨 일을 할 거냐 라는 그 기대감, 기능에 관한 이야기 였어요.

이제 구약 전체를 보면 기능에 관한 얘기만 쓴 것이 아니라 또 곳곳에 메시아의 이름, 그 이름이 주는 의미, 그 메시아의 역할, 이런 것들이 또 많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모세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하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메시아가 씨가 될 것이다, 씨.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나오는 말이에요.

이 메시아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말해주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 메시아는 노아를 통해서는 무지개로 나타났던 것이죠.

그것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이에요.

그래서 메시아를 보면 그 약속이 있고 예언이 있고 희망이 있고 그런 거예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제일 중요한 특징이 뭐에요? 약속에 대한 성취, 예언에 대한 완성, 그리고 희망이 불타는,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환영하는 것이 뭐에요? 죽음이에요.

이 죽음의 문을 열고 나가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이 환희, 이 예루살렘에 입성, 새 예루살렘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믿음, 이런 것이 순간적으로 이 세상에 살면서 짧은 고난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희망을 갖는 거예요.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상상할 수 없는 그런 희망,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그런 생각들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크리스찬들의 얼굴은 찡그릴 수가 없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계명이 아니고 크리스찬이 누리는 자유에요, 특권이에요.

우리는 누가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어떤 누구도 우리를 절망시킬 수 없어요.

절망이 깊을수록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우리는 마음에 늘 이런 긍정적인 희망적인 그런 아주 밝고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이죠.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건 아브라함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요, 먼 훗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바로 이 복의 축복을 주신다는 얘기에요.

나는 여러분들이 다 복 받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으로도 복을 받고 정신적으로도 복을 받고 영적으로도 복을 받고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마귀의 유혹, 첫 아담과 이브를 타락하게 했던 그 마귀를 발로 밟는 거 아니에요?

시험에서 이기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사역이 시작이 되는 거에요.

 

욥기게 보면은 네 가지 정도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판결자, 재판자, 증인, 그는 구속자 그는 중보자, 이런 단어를 썼어요.

욥은 고난이 너무나 심할 때 그리고 고난이 이해되지 않을 때 왜 내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 그러나 현실은 고난이 와서 기와장으로 자기 피부를 뼈를 긁을 때, 내가 나의 구속자를 보오니 이런 단어를 써요.

누군가 와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가 고난 중에 그의 구속자 그의 중보자,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이런 단어를 씁니다.

다윗 시대에는 시편에 5가지, 또 사무엘상하에는 말이 있어요.

그는 기름부음 받은 자일 것이다, 그는 충실한 제사장일 것이다, 그는 다윗의 집에서 나올 것이다, 다윗의 위에서 나올 것이다, 다윗의 나라에서 나올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사모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그게 딱 잡아서 몰랐던 뭐예요.

시편은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찬양시가 나오죠, 그는 정복자요 통치자일 것이다.

그는 거절당한 코너스톤, 기초석일 것이다, 배반당한 메시아일 것이다, 그는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섭리자요 신랑이다, 승리의 왕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이러한 메시아 사상 때문에 구약을 읽으면 율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거예요.

희망과 용기와 믿음을 갖는 것이죠.

선지서에는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나타나서 야단도 치고 경고도 하고 예언을 합니다.

여기 제일 많이 나타나요.

9세기에 나타난 요엘서는 예수님은 선생일 것이다, 선생으로서의 메시아.

8세기에 나타난 호세아 아모스 미가 선지자들을 통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제 2의 다윗으로서 다윗의 집을 세울자이시며 길을 여는자시며 오실 통치자이실 것이다.

고난이 깊을수록 이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은 컸던 것이죠.

 

주전 8세기에는 특별히 이사야가 활동하는데 이사야에는 아주 집중적으로 이 메시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14번 이 메시아의 다른 이름을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의 싹이다, 싹 같은 존재다.

이사야 7장 14절에는 메시아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그는 기묘자다 그는 통치자다 그는 우주적 승리자다 그는 코너스톤, 기초석이다, 선생이시다, 여호와의 종이다, 메시야는 왕으로서의 메시아이시만 동시에 인간의 종으로, 섬기는 자로 오신 분이시다.

메시아는 선교적 열방을 구원하는 분이시다.

모든 열방의 이방 백성들이 그에게로 몰려올 것이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속죄자일 것이다.

다윗에게 약속한 불가항력적 은혜가 있다, 그는 복음의 선포자다.

그는 정복자 메시아로서 세상에 오셨다.

이 이사야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은 하나님의 종의 사상과 연결되는데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좀 몇몇 성경 구절을 좀 같이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이사야를 찾으십시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요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래가지고 이 처녀를 아줌마 비슷하게 그 의미를 바꿔 놨어요.

여러분 예수가 물위로 걸었다든지 부활 했다든지 귀신이 나갔다든지 병이 고쳐졌다는거 의심하지 마세요.

성경을 그대로 믿으세요.

왜냐하면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못할게 뭐가 있어요.

그가 인간이라면 은 못하는 일이지만 처녀가 잉태해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것이 뭐가 의심스러워요?

그가 하나님이 있었는데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이신데 못하실 게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요?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 믿으니까 이게 문제가 있는거고 그냥 인간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고.

인간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 인간이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도 똑같은 우리 죄 지은 인간같이 자꾸 만들려고 하고, 예수와 마리아가 연애했다, 뭐 그런 인간적인 발상법.

예수가 뭐 인도로 갔다 뭐 이런 얘기들.

그런 책들 여러분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럴듯 하게 그런걸 만드는 거죠.

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나같이 예수도 죄를 지었을 것이다.

예수도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템테이션.

딱 그런거예요.

거기에 아주 교활한 사탄의 속임수가 숨어 있는 거예요.

 

이사야 9장을 보세요.

제가 설교 하기보다는 그냥 성경을 읽는게 메시아를 더 빨리 이해를 해요.

1절부터 7절까지 "그러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둠은 이제 사라졌다 전에는 그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모욕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이후로는 바닷길과 요단 강 저편의 땅과 이방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어둠 속에서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족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 위에 빛이 비쳤다. 주께서 이 백성을 번성케 하셨고 기쁨을 키워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추수할 때 기뻐하고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 앞에서 기뻐합니다. 그들을 짓누르던 멍에와 어깨를 내리치던 회초리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꺾으시던 날처럼 주께서 부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쿵쿵거리며 짓밟았던 모든 군화와 피범벅이 된 모든 군복이 땔감으로 불에 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어깨에는 주권이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그분의 넘치는 주권과 평화는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견고히 세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실 메시아, 구약의 사람들은 예수라는 분을 몰랐지만 그분의 속성, 그분의 이름, 그분의 기능,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실 이런 비전들을 그들이 기도할 때 왕을 통해서 제사장을 통해서 예언자를 통해서 그 메시지를 다 받았어요.

그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정말 그 기준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죠.

11장을 보시면 이사야에 집중적으로 썼어요.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그는 여호와를 즐겨 경외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귀에 들리는 대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약한 사람들을 공의로 판결하고 세상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정직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는 그 입의 몽둥이로 세상을 치고 그 입술의 바람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그는 정의로 그의 허리띠를 띠고 신실함으로 그의 몸 띠를 삼을 것이다.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고 다닐 것이다. 암소와 곰이 함께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어린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그들은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치거나 다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세상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절에도 계속 그런 얘기가 나와요.

"그날의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

뭐 이것 주석 하려면 다시 설교 또 해야 돼요.

이렇게만 읽어도 우리 가슴이 뜨겁잖아요.

9세기 예언자 예레미야는 메시아를 설명했어요.

여호와는 우리의 의요 제사장이며 왕이며 변함없는 약속이며.

6세기에 가서는 에스겔과 다니엘이 나오는데, 연한 가지, 의로운 왕, 선한 목자, 나라의 통일을 이루시는 분, 인자, 다시 오실 자 이렇게 표현했어요.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예언했던 주전 5세기에는 만국의 보좌, 여호와의 인,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 열방의 왕적 제사장, 왕, 메시아, 거기에 네 가지 말이 있어요, 모퉁이 돌, 천막의 말뚝, 활 같은 사람, 다스리는 사람.

그는 거절당한 선한 목자, 찔림 당한 자, 고통 받은 자, 연약한 사자, 의로운 태양.

구약 전체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아 사상.

거기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 드디어 어떤 예언이 있던지 어떤 사람이 있든지 이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우리를 치료 할 것이다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 시킬 것이다 우리를 포로와 압제에서 우리를 감옥에서 우리를 건져 내실 분이다라는 예언이 구약을 띄엄띄엄 읽은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요.

일관적으로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이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읽어 보는 사람들은 이 메시아 사상이 잠점점점 내 믿음에서 자라나기 시작해요.

 

그런데 우리가 굉장히 놀라운 말씀은 누가복음 4장 16절이에요.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실 때 바로 이 부분을 누가복음 4장에서 한마디로 요약을 하신 거예요.

누가복음 4장 16절.

"예수께서 자신이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읽었는데 어떤 성경을 읽었느냐? 이사야 61장 1절 2절의 말씀을 가지고 읽었어요.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인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나?

그래서 크리스찬 유대인들의 예배당 회당에 가 봤어요.

아이고 이상하더라구요.

그 랍비 옷을 다 입어요, 머리에도 이거 하고, 옷도 가운 같은거 입고, 찬양을 부르고 그리고 쉐마를,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까지 그것을 읽고 그리고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 낭독을 하는 데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리같이 이런 성경을 읽는 게 아니고요 두루마기, 두루마기가 두 사람이 들어야 돼, 키가 한 1미터 좀 넘는 정도의 양피지를 두 사람이 헌금 할 때 헌금 위원이 들어오듯이 그걸 두 사람이 들고 들어와 가지고 양쪽으로 펴요. 

그래가지고 말씀을 읽더라구요.

그리고 해석을 해요.

그리고 축도하고 끝나는데 아주 저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오늘 예수님께서 이 두루마기를 펴서 이사야 61장 1절 2절의 말씀을 읽은 거에요.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17절에는 예수가 두루마기를 펴서 읽었다라는 얘기구요.

누가복음 4장 18절에는 그 읽은 내용이 기록돼 있어요.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못 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내용의 메시지를 다시 정리하면 주의 영이, 성령이 임하면 기름부으심이 나타난다는 거에요.

기름 부으심이 나타나면 4가지가 일어나는데 첫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크리스찬들 주변에는 항상 가난한 자를 돌보는 그런 모습이 있어요.

부유한 사람들은 예수 잘 안 믿습니다.

너무 부유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 뭐 좀 안다는 사람들은요 그렇게 복음을 쉽게 못 받아들여요.

가난한 자들은 돈도 없고 마음도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분들은 하나님을 빨리 믿어요.

메시아를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거에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여러분, 감옥에 평생 있는 사람들, 사형수들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전도했던 살인자가 하나 있었어요.

그 사람은 나이트클럽에서 칼을 써 가지고 여러 사람을 죽였어요.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그는 계속해서 지금 나한테 편지를 써요, 지금의 몇 십 년 동안.

나 무죄 석방 좀 하게 해주세요, 그는 결혼도 했어요, 아이도 있어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못보는 자에게 보게함을, 치유에요, 자유선언이에요.

가난과 복음이에요.

억눌린 사람에게 해방을, 해방 선언이에요.

이것이 희년이에요.

이것이 메시아에게 있다는 거에요.

20절에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자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회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일제히 예수를 주시했습니다."

 

자, 한 사람도 조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의 눈이 반짝 반짝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했다는 거에요.

21절에 보면 이 말씀을 읽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을 해석을 했어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아멘.

이 말씀이 오늘 바로 너희가 듣는 이 순간에 구약에서 기다리는 그 메시아가 여기 오셨다, 이루어졌다. 말씀이 성취됐다, 메시아가 오셨다, 이게 성탄이에요.

메시아가 오셨다,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목사님들이 설교 하실때 성경 읽고 그 성경 본문을 해석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적용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뭐예요? 이 성경의 말씀이 오늘 성령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들려졌다, 이루어졌다, 하는 뜻이에요.

그런데 성경을 설교듣다가 에이~ 공갈, 그럴 수 있어? 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에요.

설교자는 이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는 거고, 듣는 사람은 오늘 말씀이 내 뒤에 들렸다, 말씀이 내 눈에 보였다, 말씀이 내 가슴에 사무쳤다, 이게 예수님의 해석이었어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났습나까? 22절 "그러자 모든 사람이 감탄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가지의 충격을 우리에게 주는 거예요.

그가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오셨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그가 죄없는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도 아니, 저 요셉의 아들인데 어떻게 저런 신적인 메시지를? 하나님이라고 그가 말하는가? 나와 하나님은 하나라고 말하는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을 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탄절 예배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십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던 구약의 사람들이 그리워하던 사모하던, 눈물을 쏟으면 피눈물을 쏟으며 고난을 겪으며 포로생활을 하며 그렇게 수난을 받으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태어난거에요.

오늘 성탄이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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