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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하용조목사님

예수 강해 2강 |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셨다 | 창세기 1:26-31, 요한복음 1:14 | 하용조 목사님 | 온누리교회 | 설교문 녹취록

본문 : 창 1:26-31, 요 1:14

 

오늘 메세지는 하나님이 본래가 하나님이셨다면 어떻게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간은 물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처음과 나중이 쓰지만 인간은 태어난 날이 있고 죽는 날이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육으로 물질로 입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성령이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여자의 배를 아프게 하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러면 더 쉬울 거예요, 무슨 박혁거세나 뭐 이런 같이 이렇게 신비적으로 태어났다고 그러면 우리가 그분이 하나님이셨다는 말을 더 이해하기 쉬울텐데 인간과 똑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하나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또 질문 하나가 더 생기는 것이죠.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면 우리와 똑같은 죄성을 가진 인간인가? 하는 질문이에요.

우리와 다름이 없다면 그도 피곤하셨고 그도 주무셨고 그도 식사를 하셨고 그도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화도 내셨고, 그건 인간이라면 우리와 다를 바가 뭐가 있는가, 그가 어떻게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예수님이 인간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면서 인간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질문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 오셨는가?

아니면 아담이 죄 짓기 이전에 하나님이 최초로 인간을 창조한 그 창조의 원형으로서 오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난 이후에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에 죄의 본성, 원죄의 굴레를 쓰고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원죄가 없는 인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상상을 할 뿐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느껴본 적도 없고.

우리 인간이 짐승 같기도 하고.

인간이 사탄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그런 것은 잘 이해해요.
신문이나 티비나 소설이나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책들 다 보면은 추악한 인간의 모습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하는 모습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많이 세뇌됐어요.

 

우리가 로마서 7장에 있는 말씀처럼 선을 행하고 싶지만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내 자신의 모습,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아무리 잘해보고 싶어도 죄짓는 인간의 모습, 겉으로 아무리 위장을 해도 질투하고, 모함하고 그리고 시기하고 그리고 남의 것을 착취하려고 하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서 적이 되는 그런 우리들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질문을 하게 되요.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지옥처럼 살다가 죽어가는 존재인가?

요즘 모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인간이 인간을 싫어해요.

인간이 이렇게 잔인하고.

오죽했으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못살게 됐잖아요.

그러니깐 인간이 인간을 볼때는 너무나 추악한거에요.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고 말씀 하실 때 과연 그 분이 어떤 인간으로 오셨는가? 하는 문제가 돼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고 동시에 우리와 다른,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한 그분, 저는 요즘에 그분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생각을 많이 하면서 최초로 태어난, 하나님의 창조한 그 인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 인간, 하나님이 창조한 그 인간은 어떻게 우리와 다른 것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해요.

 

가끔 사람을 보면요, 참 예쁘고 잘 생겼어요.

또 어떤 때 사람을 보면요, 추악한 짐승보다 더 아주 추악한 인간의 모습, 인간의 본성을 가진, 그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을 보게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이 본래의 창조하신 그 인간으로 예수님이 오셨다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고도 남아요.

그 인간을 보면 죄를 지은 우리 인간은 죄악을 짓지 않는 인간을 보면 굉장한 충격을 받을 거에요.

우리가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요.

우리가 경험하고 본 인간은 추악한 인간, 감추어진, 냄새나는 그런 인간 뿐이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발견하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의 진실, 인간의 본질이 드러날까봐 우리는 얼마나 긍긍전전해요?

그래서 그런 것이 나타나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또 위장하고 위장하고 또 위장해서 내가 그런 짐승보다 못한 그 인간, 요즘에 어린이 성추행하는 인간들을 보면 그런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자기 부모를 살해하는 인간, 연쇄 살인 사건, 그런 것은 지극히 작은 한 단면이죠.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인간은 분노를 하고 복수를 하고 화를 내는 우리 인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셨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인류를 대표해서 요한복음 3장 2절에 나오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정확하게 우리의 갈등과 양심을 표현 해 줬어요.

요한복음 3장 2절에 니고데모의 질문을 한 번 다시 읽겠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선생님께 행하신 모든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니고데모의 양심이었어요.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예수라는 젊은이가 태어나서 돌아다니면서 얘기하고 병 고치는 것을 소문도 듣고 얘기를 꾸준히 들으면서 그 마음속에 생긴 질문은 그거에요.

당신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얼굴을 보고 온 사람들은 다 충격을 받은 거예요.

여러문 사람이 사람을 보고 그렇게 충격을 받겠어요?

사람은 몇 마디 좋은 말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이 신약에 보면 다들 충격을 받았어요.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아니 그런 얼굴이 어디 있을까? 그런 눈이 어디 있을까? 그런 말씀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 갑자기 자기가 더러워진 걸 느낀거에요.

죄인인걸 알게 된 거에요.

그 중에 한 사람이 니고데모였어요.

오죽 고민했으면 밤에 예수께 찾아 왔겠어요?

그리고 내 병 고쳐 주십시오 뭐 이런 질문을 한거 아니에요.

자기의 고민을 얘기한 거에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설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죠.

우리가 믿는 그 분인데 우리는 설명 안 하고 잘 살고 있거든요.

그러나 사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충격에 빠지는 거예요.

인간의 하나님을 보면 충격을 받듯이 하나님을 경험하면.

그래서 지극히 영적인 작은 사건, 방언 하나만 해도 자기가 놀래잖아요.

환상만 봐도 자기가 놀래 잖아요.

예언을 들어도 자기가 놀래잖아요.

그러나 그런 무슨 예언이나 방언이나 은사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봤다면 하나님을 직접 봤다면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원죄의 굴레에 속한 우리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느냐는 것이죠.

그래요, 성탄을 이 충격을 받는 거에요.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경험하는 것이죠, 만나는 것이죠.

그러면요 며칠 동안 정신없이 살아요.

이 말도 하고 저 말도 하고, 그러고 못 살아요.

왜? 진짜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우리가 경험했다면 말이죠.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믿건 믿지 않건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불가지론자 이건 간에 동의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완전한 예수의 인격이에요.

하나님 안 믿는다고 하자, 못 믿겠다고 하자, 나는 하나님 믿는데 의심이 많다, 그럼 말을 하는 사람, 아니 반 기독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래서 요즘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예수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내가 증명하고 말겠다 이러고 덤벼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끝장을 못보고 도중에 무릎꿇고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라고 믿게 되요.

나는 그 리스트로베리, 우리 두란노에서 나온 책인데요, 예수 사건이라는 책을 여러분이 한번 다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 왜 인간은 하나님을 안 믿으려고 하는가? 왜 인간을 예수님을 자꾸 기피하려고 하는가 하는 얘기들이 잘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 는 문제를 이 성탄절에 어떻게 우리가 생각해야 할까?

그것은 대답은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최초의 인간은 어떻게 만들었느냐?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단지 창세기의 천지창조 할 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그 기록을 의지 할 수 밖에 없어요.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해와 달과 별과 이 우주와 이런 걸 다 만드셨어요.

여러분 천국이 얼마나 크냐?

어떤 사람은 요즘 하두 죄인이 많아서 지옥도 만원일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여러분 천국이 있기 때문에 땅에 있는 거예요.

천국의 원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존재하는 거에요.

우주라는 것은 천국의 카피에요.

 

어떤 과학자들이 추측하기를 이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이 있고 그 은하계가 2,000억개가 있다는 말, 이거는 무한대라는 말이죠.

파스칼이 그런 말 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이나 우주의 크기에 대해서 상상할 때 우리의 상상력이 피곤할 뿐이지 그걸 다 추측을 못 한다는 거에요.

밤마다 뜨는 하늘의 별들을 보세요.

이 별들은 담고 있는 이 우주의 공간을 보세요.

이것이 얼마나 광활하고 얼마나 큰 것입니까.

결국 무한대죠,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저녁에 눈을 뜨면 우주가 존재하고 그 우주 안에 지구라는 별이 하나 있는거고, 은하계 안에.

그 지구라는 별 속에 서울이 있는거고 지구가 있는 거고 수많은 사람이 거기 살고 있는거고.

하나님의 세계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크고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기절할만큼 놀라는 게 시편 8편을 보면 다윗은 3000년 전에 그 하나님의 세계를 봤어요.

그래서 시를 쓴게 시편 8편이에요.

인간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그는 영감을 받고 그걸 짧은 몇 성경 구절로 다 표현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편을 보면서 내가 기절할 것만 같애요.

어떻게 다윗도 죄인인데 다윗은 그걸 알았나? 하나님의 세계를 알았나?

인간인 일존재하고 있는 이 우주의 비밀을 어떻게 그가 영감으로 시로 그걸 다 표현했어요.

 

창세기 1장 27절에 보면 최초 인간을 창조한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느냐?

인간을 진흙덩이를 가지고 여기도 빚고 여기도 빚고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 두 가지 단어가 나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죄를 짓지 않는 원래 인간은 누구하고 같아요?

하나님하고 같아요.

그니까 죄지은 인간이 죄 안지은 인간을 보면 기절을 하죠.

왜? 그런 인간은 우리가 본 적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최초에 우리를 만들땐 완벽한 인간, 흠도 티도 부족함도 없는 100% 완벽한 인간.

나는 보고싶어요 그가 얼마나 잘 생겼을까.

그 몸은 얼마나 완벽했을까.

그의 두뇌는 그의 품성은 그의 표정은, 하나님과 맨날 만나서 동행했다, 대화했다, 교제했다, 하나님이 교제 할 만큼 동행을 만큼 예배를 받으실 만큼 하나님과 대화를 할 만큼 인간은 완벽한 신적 존재였다, 신의 성품에 참여했다.

우리같이 이렇게 지저분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죠.

 

우리가 거울을 보며 나를 봐요, 그렇잖아요? 내 모습 그대로 비치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했을 때 내가 거울을 보면 하나님을 보는 거나 똑같아요.

나는 여기 있고 거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만큼 최초의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은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나서, 인류가 죄를 짓고 나서 지금까지 오죽했으면 여러분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 인류를 쓸어 버리려고 했을까요?

홍수로 다 심판하지 않았어요? 한번 다 쓸어 버렸어요.

그 후로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지구는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한 그 지구가 아니에요.

다 한번 버림 받은, 죄로 물든 자연이에요 이게 다.

제대로가 아니에요.

지금 우리를 보면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 그대로 우리가 아니에요.

그 흔적만 몇개 가지고 있을 뿐이지.

사탄과 죄로 한번 다 오염된 그런 인간들이에요.

그래서 아프고 병들고 싸우고 마귀처럼 살고 귀신처럼 살고 짐승처럼 사는 인간으로 변한 것 뿐이에요.

지금 우리가 돌아가야 할 데가 있어요 돌아가야 할 데가.

그것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을 만들어 놓은 자연 그대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이미지와 폼이에요.

두 가지 단어에요.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신 그 최초의 인간.

그 최초의 인간은 우리가 육에 머물러 있고 이 세상에 살다가 죽고 나면 천국에서 다시 회복될 나예요 회복될 나에요. 회복될 나.

최초로 하나님이 만드신 그 인간으로 우리는, 구원이라는게 그런 것입니다, 다 회복 될 거예요.

나는 그 생각을 하면 아주 전율을 느껴요.

현재 있는 나를 봐도 전율을 느껴요, 너무 더러우니까.

인간이 이렇게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사특할 수가 있을까.

누가 그랬죠, 사자는 인간을 왕하고 물어찢어 죽이는데,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는 찢어 죽일 것도 없어요, 씩 웃으면 죽어요.

귀에 못을 박아 죽이고 고문에서 죽이고.

인간이 인간을 고문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 그 유태인을 죽인 기록을 보세요.

그 누군가 또 그런 말을 했지요, 유태인을 그렇게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죽인 사람, 독일에서 베토벤이 나왔고 모짜르트가 나왔고 괴테가 나왔고, 어떻게 지성이 가능하냐?

그런 사람들이 또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문학을 만들고 그랬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는 바로 원죄의 경험이 없는 최초의 그런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그 당시에 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저런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느냐? 예수를 보기만해도 그 옆에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그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죠.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해 땅에 가득하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제일 불쌍한 인간이, 얼짱몸짱 다 좋은데 사명이 없는 바보 같은 인간들, 폼만 잡고 사는 사람들, 돈만 벌고 사는 인간들, 짐승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고.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그런 인간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하나님이 복 주신 인간이에요.

하나님의 복과 인간의 복을 착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 상상할 수 없는 이 우주의 주인으로, 우주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그렇게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우리는 가끔 인간의 비참함을 말할 때 티끌과 같다, 쓰레기와 같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죄지은 인간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본래의 모습은 이 수천 억개 별이 있는 은하계가 있는 이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그런 주인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존심, 그런 우리의 정체성을 인간은 기억하지 못하고 벌레 같이 살아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인간으로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 온 우주를 다스시고, 다스리고 지배하는 그런 주인으로 그런 기가막한 우리를 조금만 몸뚱이를 가지고 살지만 이 상상할 수 없는 이 우주와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그런 인간으로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인간으로 기가막힌 미션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어요.

이제 우리가 죄인이었지만 다시 예수를 믿고 의로워져서 구원을 받고 다시 뭘 회복해야 되요? 이 미션을, 이 사명을,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돼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면서도 계속 비굴하게 살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모르고 사는 인간들도 너무 많아요.

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죄의 껍질을 뒤집어 씌운 채 산다 말이죠.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 이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주체자로 미션, 사명을 주셨다.

한번 그래보세요, 와 당신은 참 위대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그리고 가끔 거울을 보고 그렇게 하세요, 야 너 참 위대하다, 엄청나다, 이렇게 보배롭고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내가 세상에 태어났구나.

 

28절에서 발견한 것은 3가지.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그리고 땅을 정복하라.

29절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 위의 씨 맺는 온갖 식물과 씨가 든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너희에게 주니 이것이 너희가 먹을 양식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이 인간에게 양식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여기에다 보면 동물은 하나도 없고 다 채식이에요.

땅의 씨 맺는 온갖 식물과 씨가 든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다.

30절 보세요.

"그리고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것들, 곧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내가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됐습니다"

또 새, 짐승, 땅에 기는 모든 것들, 동물들에게도 식물을 음식으로 주었다, 제가 지금 이거 읽고 고기를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이 생겼어요.

하나님은 여기 보니까 다 채소를 음식으로 주셨지 동물을 음식으로 주셨다는 말이 여기는 없어요.

결론 31절.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참 좋았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누가? 내가.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심묘막측하게 인간을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동원해서 만든게 나에요, 여러분이라구요.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이게 전부 다 파괴되어서 그럴 뿐이지.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오리지날 그 원상을 다 회복시켜 주신 거예요.

이게 성탄절이에요.

이번에 성탄절에 여러분이 그 회복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다 회복시켜 주셨어요.

예수님 그 인간으로 오셨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회복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에게 주셨다 말이죠.

그걸 믿으세요.

그리고 우리가 천국가면 그런 삶을 살 거예요.

최초로 만들어진 그 인간,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인간으로 우리를 만들었단 말이죠.

나는 여러분의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력이 다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죄의 상상력 사탄의 상상력 짐승의 상상력 원죄의 상상력은 다 사라지고 최초로 창조했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래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좋냐면요, 보면 기분 좋은 사람, 참 좋아요.

어떤 사람은 보면 기분이 나뻐, 더러워 기분이 아주.

근데 어떤 사람은 보면 그 사람 보면 내가 깨끗해지는거 같애, 순결해지는 것 같고. 그런 인간.

성탄절은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존재했어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그분은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3절에 보면 모든 것이 그 분을 통해 지음을 받았으며 그 분이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이 4절 사이에 있는 말씀은 하늘의 음악 같지요.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거에요.

영광은요 영광 자체를 볼수가 없어요. 영광의 광채를 보는 거예요. 영광의 빛을.

그 빛에 접근되는 사람들은 다 변하는 거예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의 영광의 그 빛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고 그 빛을 본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영광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의 영광을, 빛을 본 거에요.

여러분 이 강렬한 햇빛을 보면 눈을 못 뜨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 이러고 살아요.

그 영광의 빛이 너무나 강해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 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메시아 이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에게 사명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오리지날 인간의 기준을 회복하게 해주시고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다시 미래의 천국을, 믿음의 약속을 보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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