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데 안드로포스 에크 톤 파리사이온 니코데모스 오노마 아우토 아르콘 톤 유다이온
개역개정,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새번역,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우리말성경,1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 공회 지도자였습니다.
가톨릭성경,1 바리사이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의회 의원이었다.
영어NIV,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영어NASB,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ruler of the Jews;
영어MSG,1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 sect, Nicodemus, a prominent leader among the Jews.
영어NRSV,1 Now there was a Pharisee named Nicodemus, a leader of the Jews.
헬라어신약Stephanos,1 ην δε ανθρωπος εκ των φαρισαιων νικοδημος ονομα αυτω αρχων των ιουδαιων
라틴어Vulgate,1 erat autem homo ex Pharisaeis Nicodemus nomine princeps Iudaeorum
히브리어Modern,1 ויהי איש אחד בתוך הפרושים ושמו נקדימון שר ליהודים׃
성 경: [요3:1]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니고데모 - 헬라식 이름의 뜻은 `백성의 정복자'로서, 공관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나 본서에서는 세 번에 걸쳐 나타난다(7:50;19:39).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멸되던 당시 나퀴드몬(Naqidmon)이라고 하는 부유하고 관대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혹시 40년 전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Moutefiore, Loewe). 요한이 전해 주는 바에 의하면 니고데모는 (1) 예수의 시체에 바르도록 `몰약과 침향을 섞은 백 근'(19:39) 정도를 선뜻 내놓는 부유한 사람이었다.(2) 엄격한 유대교를 신봉(信奉)하는 종파인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바리새인으로서의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백성되는 자격이 아브라함을 통해 계승되는 자연적, 육적 출생에 있음을 강조한데 반해, 예수는 영적 중생을 강조하셨다. (3)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다. 관원의 뜻은 `아르콘'(*)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을 가리키는데, 산헤드린은 그 당시 유대인의 최고 종교 회의 기관으로 그 구성원의 수는 71인으로 알려졌으며 고위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다른 말로 하면 백성의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편 니고데모가 그러한 사회적 고위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친히 예수를 방문한 사실은, 매사에 편견(偏見)이 없고 사리가 깊었음을 보여준다. (4) 그는 조상들의 율법에 정통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율법 교사들 중의 한 명이었다. 율법 학자가 된 사람은 종교법과 의식(儀式)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임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며(Sanh), 형사 소송 때에는 재판관으로서 참여할 수 있었으며, 민사 소송 때에는 여러 재판관들과 함께 판결을 내리거나 아니면 단독 재판으로서 판결을 내릴 수 있었고 또한 랍비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다(Jeremias).
후토스 엘덴 프로스 아우톤 뉰토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랍비 오이다멘 호티 아포 데우 엘렐뤼다스 디다스칼로스 우데이스 가르 뒤나타이 타우타 타 세메이아 포이에인 하 쉬 포이에이스 에안 메 에 호 데오스 멭 아우투
개역개정,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새번역,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 ㉠그, '그에게'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기적(그리스어 세메이온)
우리말성경,2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님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행하신 그런 표적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스승님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 He came to Jesus at night and said, "Rabbi, we know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ould perform the miraculous signs you are doing if God were not with him."
영어NASB,2 this man came to Him by night and said to Him, "Rabbi, we know that You have come from God as a teacher; for no one can do these signs that You do unless God is with him."
영어MSG,2 Late one night he visited Jesus and said, "Rabbi, we all know you're a teacher straight from God. No one could do all the God-pointing, God-revealing acts you do if God weren't in on it."
영어NRSV,2 He came to Jesus by night and said to him, "Rabbi, we know that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an do these signs that you do apart from the presence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 ουτος ηλθεν προς τον ιησουν νυκτος και ειπεν αυτω ραββι οιδαμεν οτι απο θεου εληλυθας διδασκαλος ουδεις γαρ ταυτα τα σημεια δυναται ποιειν α συ ποιεις εαν μη η ο θεος μετ αυτου
라틴어Vulgate,2 hic venit ad eum nocte et dixit ei rabbi scimus quia a Deo venisti magister nemo enim potest haec signa facere quae tu facis nisi fuerit Deus cum eo
히브리어Modern,2 ויבא אל ישוע לילה ויאמר אליו רבי ידענו כי אתה מורה מאת אלהים באת כי לא יוכל איש לעשות האתות אשר אתה עשה בלתי אם האלהים עמו׃
성 경: [요3:2]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밤에 예수께 와서 - 니고데모가 굳이 밤에 예수를 방문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1)타인의 이목이 두려워서 (2)분주한 낮시간을 피해 예수와 예수와 친밀한 대화를 오래도록 나누기 위해 혹은 (3)밤늦게까지 연구하고 논쟁하였던 당시 랍비들의 관례에 따라서 등 여러 견해가 있으나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는 니고데모의 신중성을 보여줌과 아울러 예수께서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요한은 19:39에서 다시 한번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사실을 언급한다. 요한의 사상(思想)에서 '밤'은 악과 거짓과 무지의 실재(reality)로서 상징되고 있다(11:10). 그리고 13:30에서 유다는 '밤'에 예수를 떠남으로써 빛이신 예수에게로 나아온 셈이다(the Anchor Bible).
랍비여 - 니고데모는 안드레와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과 마찬가지로(1:38, 49) 예수를 '랍비'라 부름으로써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서품(敍品)을 받아 율법학자단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 년 동안의 정규적인 연구 과정을 마쳐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모든 전승 자료와 할라카의 해석 방법을 통달하게 되고, 비로소 종교법과 형법(刑法)의 문제들에 대해 독자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서품을 받은 율법학자가 되려면 40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와 같이 '랍비'가 되기 위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서품을 받은 율법학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Jeremias). 한편 니고데모가 사용한 이 '랍비'라는 말이 예수에 의해서 부정되거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예수는 이미 그의 제자들이나 일반 대중들로부터 '랍비'라고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니고데모가 예수를 '랍비'라고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니고데모가 예수를 '랍비'라고 부른 것은 유대의 상층 계급에 속한 사람으로는 처음 있었던 일이요 따라서 예수가 이미 그러한 계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우리 - 본절에서 말하는 '우리'는 뒤따르고 있는 말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수가 행한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 곧 2:23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봄이 무난하다.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 - 니고데모는 이 말을 강조하는 위치에 첨가함으로써, 예수를 선생 이상의 존재 즉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모세, 예레미야, 세례 요한 등과 같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표현은 예수의 산적 본성을 나타내고 있다고까지는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이 예수가 과연 대망의 메시야인가 하는 의문을 담고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니고데모의 방문의 주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니고데모가 예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바로 표적을 통해서이다(2:23). 공관복음서 기자들보다 요한이 즐겨 사용한 이 '표적'이라는 헬라어 '세메이온'(*)은 신적 권위와 위엄의 증거를 보여주는 이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표적은 그것을 목격한 자의 주의(注意)를 그 행위 자체 보다는 그 일을 행하신 이에게로 이끄는 것이 그 특징이다. 표적 자체로서는 참된 구원의 신앙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표적들을 통해 당신의 교훈들을 확증하셨다. 본문에서 니고데모가 예수의 표적들을 통해 예수의 탁월하신 교훈 능력을 인정하였던 것은 중요한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예수의 교훈보다는 표적 자체에 더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페크리데 예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아멘 아멘 레고 소이 에안 메 티스 겐네데 아노덴 우 뒤나타이 이데인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개역개정,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새번역,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또는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가톨릭성경,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영어NIV,3 In reply Jesus decla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again."
영어NASB,3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영어MSG,3 Jesus said, "You're absolutely right. Take it from me: Unless a person is born from above, it's not possible to see what I'm pointing to--to God's kingdom."
영어NRSV,3 Jesus answered him,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without being born from above."
헬라어신약Stephanos,3 απεκριθη ο ιησους και ειπεν αυτω αμην αμην λεγω σοι εαν μη τις γεννηθη ανωθεν ου δυναται ιδειν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3 respondit Iesus et dixit ei amen amen dico tibi nisi quis natus fuerit denuo non potest videre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3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אליו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ך אם לא יולד איש מלמעלה לא יוכל לראות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요3:3]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거듭나지 아니하면 - '거듭'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노덴'(*)은 (1)'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의 뜻과 (2) '다시', '두번째'의 뜻 그리고 (3)'위에서부터' 곧 '하나님께로부터'의 뜻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기도, 제사, 세례로써 유대교에 개종하면 그를 중생한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혜서, 어느 한 부분만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성이 새롭게 되는 사건(Calvin)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중생이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적 생명을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살리는(고후 5:17) 성령의 역사로서(엡 2:5), 성령 혹은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생은 육에 속한 자연인의 지(知), 의(意), 정(情)을 항상, 계발(啓發)하는 것이라기보다 근본적이며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병든 자가 회복(回復)하는 것과 같이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변화이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보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에이돈'(*)은 단순히 어떤 물체나 형상을 바라본다고 하는 '블레포'(*)와는 달리, '경험하다'(experience) '참여 하다'(participate) 또는 '인식하다'(perceive)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것을 뜻한다(눅 9:27).
레게이 프로스 아우톤 호 니코데모스 포스 뒤나타이 안드로포스 겐네데나이 게론 온 메 뒤나타이 에이스 텐 코일리안 테스 메트로스 아우투 듀테론 에이셀데인 카이 겐네데나이
개역개정,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새번역,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우리말성경,4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습니까? 태어나려고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가톨릭성경,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영어NIV,4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Nicodemus asked. "Surely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영어NASB,4 Nicodemus said to Him,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can he?"
영어MSG,4 "How can anyone," said Nicodemus, "be born who has already been born and grown up? You can't re-enter your mother's womb and be born again. What are you saying with this 'born-from-above' talk?"
영어NRSV,4 Nicodemus said to him, "How can anyone be born after having grown old? Can one enter a second time into the mother's womb and be born?"
헬라어신약Stephanos,4 λεγει προς αυτον ο νικοδημος πως δυναται ανθρωπος γεννηθηναι γερων ων μη δυναται εις την κοιλιαν της μητρος αυτου δευτερον εισελθειν και γεννηθηναι
라틴어Vulgate,4 dicit ad eum Nicodemus quomodo potest homo nasci cum senex sit numquid potest in ventrem matris suae iterato introire et nasci
히브리어Modern,4 ויאמר אליו נקדימון איך יולד אדם והוא זקן הכי שוב ישוב אל בטן אמו ויולד׃
성 경: [요3:4]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사람이...날 수 있삽나이까 - 이러한 니고데모의 대답은 일견 매우 아둔해 보인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씀에 반대 주장을 제기하거나 반항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다만 그는 예수의 말씀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난점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답은 니고데모가 둔감해서가 아니라 깊은 생각 끝에 나온 것이라 할수 있다. 아울러 이 질문 속에는 '사람이 다시 모친(母親)의 배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인간 본질의 재창조라고 하는 고차적 이적 또한 어찌 가능 하겠는가'라고 하는 강한 의문이 내포되어 있을 법하다. 어쨌든 니고데모는 중생에 관한 예수의 말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깊은 의문에 휩싸였던 것이다.
아페크리데 예수스 아멘 아멘 레고 소이 에안 메 티스 겐네데 엨스 휘다토스 카이 프뉴마토스 우 뒤나타이 에이셀데인 에이스 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
개역개정,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새번역,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그, '영'
우리말성경,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가톨릭성경,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영어NIV,5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영어NASB,5 Jesus answered,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영어MSG,5 Jesus said, "You're not listening. Let me say it again. Unless a person submits to this original creation--the 'wind hovering over the water' creation, the invisible moving the visible, a baptism into a new life--it's not possible to enter God's kingdom.
영어NRSV,5 Jesus answered,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without being born of water and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5 απεκριθη ο ιησους αμην αμην λεγω σοι εαν μη τις γεννηθη εξ υδατος και πνευματος ου δυναται εισελθειν εις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5 respondit Iesus amen amen dico tibi nisi quis renatus fuerit ex aqua et Spiritu non potest introire in regnum Dei
히브리어Modern,5 ויען ישוע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ך אם לא יולד איש מן המים והרוח לא יוכל לבוא אל מלכות האלהים׃
성 경: [요3:5]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물과 성령으로 - '거듭난다'고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여기서 '성령'에 대해서는 해석상에 별반 어려움이 없으나 '물' 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로 엇갈린다. 즉 혹자는 이를 '세례 요한의 세례' 혹은 '기독교의 세례' 와 관련시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연적 출생'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본 구절의 강조점은 어디까지나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아야 무방할 것이다. 1:26, 31; 마 3:11;막 1:8;눅 3:16에서는 물과 성령이 세례와 관련해서 나란히 언급되고 있다. 물은 깨끗하게 하는 상징으로 유대인들에게는 희생 제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특별히 제사장은 몸을 씻지 않고서는 언약의 피를 갖고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엣세네파(Essenes)에서도 개종자를 받아들일 경우 물세례를 행하던 관습이 있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를 촉구하였고 이러한 촉구롤 받아들여 죄를 회개한 자에게는 물로 세례룰 주었다. 한편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은 물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성령의 선물을 받았으며(행 10:47, 48) 에디오피아의 내시도 또한 그러했던 것으로 추측해 불 수 있다(행 8:26-39). 결국 '물'이 무엇을 나타내든간에 본절의 의미에는 큰 변화가 없다. 물을 자연적 출생으로 볼 경우에는, 사람은 육적 출생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출생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참여케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를 세례 요한의 세례와 관련시킬 경우에는, 세례 요한의 세례가 증거하고자 했던 성령 세례를 통해 중생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끝으로 이를 기독교의 세례와 연관시킨다면, 본문은 중생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곧 성령 세례를 통해 이루어지며 물세례는 이 사실에 대한 공적 선포(宣布)이자 상징적 의식으로서의 의의를 지님을 가르치는 것이다.
토 게겐네메논 에크 테스 사르코스 사릌스 에스틴 카이 토 게겐네메논 에크 투 프뉴마토스 프뉴마 에스틴
개역개정,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새번역,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우리말성경,6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가톨릭성경,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영어NIV,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영어NASB,6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영어MSG,6 When you look at a baby, it's just that: a body you can look at and touch. But the person who takes shape within is formed by something you can't see and touch--the Spirit--and becomes a living spirit.
영어NRSV,6 What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what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6 το γεγεννημενον εκ της σαρκος σαρξ εστιν και το γεγεννημενον εκ του πνευματος πνευμα εστιν
라틴어Vulgate,6 quod natum est ex carne caro est et quod natum est ex Spiritu spiritus est
히브리어Modern,6 הנולד מן הבשר בשר הוא והנולד מן הרוח רוח הוא׃
성 경: [요3:6]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육으로...영이니 - 사도 바울은 '육'에 해당하는 '사르크스'(*) 라는 헬라어를 타락한 인생의 죄악되고 부패한 본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했다(롬 8:3-9). 그러나 여기서는 이 땅에 속한 존재 곧 연약하고 사라져 갈 인생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따라서 여기서 육(flesh, NIV)과 영(spirit, NIV)은 인간 본성의 보다 높은 차원(영적)과 보다 낮은 차원(신체적)을 구분한 것으로 이해된다.
메 다우마세스 호티 에이폰 소이 데이 휘마스 겐네데나이 아노덴
개역개정,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새번역,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 ㉤또는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우리말성경,7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
가톨릭성경,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하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영어NIV,7 You should not be surprised at my saying, 'You must be born again.'
영어NASB,7 "Do not be amazed that I said to you, 'You must be born again.'
영어MSG,7 "So don't be so surprised when I tell you that you have to be 'born from above'--out of this world, so to speak.
영어NRSV,7 Do not be astonished that I said to you, 'You must be born from above.'
헬라어신약Stephanos,7 μη θαυμασης οτι ειπον σοι δει υμας γεννηθηναι ανωθεν
라틴어Vulgate,7 non mireris quia dixi tibi oportet vos nasci denuo
히브리어Modern,7 אל תתמה על אמרי לך כי עליכם להולד מלמעלה׃
성 경: [요3:7]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기이히 여기지 말라 - '기이히 여기지'로 번역된 헬라어 '다우마조'(*)는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결여된 놀라움'을 의미 한다. 니고데모가 놀란 것은 중생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예수는 어떤 민족적. 신분적 구분도 없이 모든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3절). 따라서 이 원칙은 율법의 준수자요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에게도 물론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하였을 것이며 또 향편으로는 이 중생의 방법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혹(疑惑)에 잠겼을 것으로 보인다.
토 프뉴마 호푸 델레이 프네이 카이 텐 포넨 아우투 아쿠에이스 알 우크 오이다스 포덴 에르케타이 카이 푸 휘파게이 후토스 에스틴 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에크 투 프뉴마토스
개역개정,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새번역,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 ㉥'프뉴마'는 '영'을 뜻하기도 하고(6절), '바람'을 뜻하기도 함(8절) ㉦그, '영'
우리말성경,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
가톨릭성경,8 바람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영어NIV,8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영어NASB,8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the sound of it, but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and where it is going; so is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영어MSG,8 You know well enough how the wind blows this way and that. You hear it rustling through the trees, but you have no idea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s headed next. That's the way it is with everyone 'born from above' by the wind of God, the Spirit of God."
영어NRSV,8 The wind blows where it chooses, and you hear the sound of it,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헬라어신약Stephanos,8 το πνευμα οπου θελει πνει και την φωνην αυτου ακουεις αλλ ουκ οιδας ποθεν ερχεται και που υπαγει ουτως εστιν πας ο γεγεννημενος εκ του πνευματος
라틴어Vulgate,8 Spiritus ubi vult spirat et vocem eius audis sed non scis unde veniat et quo vadat sic est omnis qui natus est ex Spiritu
히브리어Modern,8 הרוח באשר יחפץ שם הוא נשב ואתה תשמע את קולו אך לא תדע מאין בא ואנה הוא הולך כן כל הנולד מן הרוח׃
성 경: [요3:8]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거듭남의 교훈]
바람이 임의(任意)로 불매 - '성령'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아호'(*)와 이에 대한 헬라어 '프뉴마'(*)는 둘 다 '바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신약성경에서만 370회 정도 사용된 이 '프뉴마'는 대부분 영(靈) 또는 성령의 뜻으로 사용되고 '바람'이라는 의미로는 구약성경(시 104:4)의 인용 구절인 히 1:7에서 한 번 사용되었다. 이 '프뉴마'가 본문에서는 '바람'의 뜻으로 '성령의 역사'를 적절하게 비유하는 것으로서 사용되었다. (1)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리를 통해 그리고 그 결과에 의해 그 실재성(reality))을 보여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존재 또한 거듭난 사람의 구체적 행실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변화들을 통해 인식되어질 수 있다. 폘돈(Fenton)에 의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원(起源)과 운명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두고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서 평범한 이성으로써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결과만을 알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은 이전의 죄악된 습성들을 자연히 버리게 되며 갈 5:22, 23에 기록된 바와 같은 소위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2) 현대의 과학을 총동원 해도 바람이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향하는지를 정확히 규정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 또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기원을 헤아릴 수 없으며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께서 곧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분임을 알 따름이다.
아페크리데 니코데모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포스 뒤나타이 타우타 게네스다이
개역개정,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새번역,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말성경,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톨릭성경,9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영어NIV,9 "How can this be?" Nicodemus asked.
영어NASB,9 Nicodemus said to Him, "How can these things be?"
영어MSG,9 Nicodemus asked, "What do you mean by this? How does this happen?"
영어NRSV,9 Nicodemus said to him, "How can these things be?"
헬라어신약Stephanos,9 απεκριθη νικοδημος και ειπεν αυτω πως δυναται ταυτα γενεσθαι
라틴어Vulgate,9 respondit Nicodemus et dixit ei quomodo possunt haec fieri
히브리어Modern,9 ויען נקדימון ויאמר אליו איכה תהיה כזאת׃
성 경: [요3:9]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어찌...있을 수 있나이까 - 회의심(懷疑心)을 나타내는 질문인지 아니면 보다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간청인지 명확치는 않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그러한 사건이 어떻지 경험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4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교훈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는 가능성 자체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반면 본절에서는 일단 그 가능성만은 인정한 상태에서 그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여 재차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대교에서 이러한 영적 거듭남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겔 36:25-28 등에 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과 중생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유대교의 간과(看過)와 무시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로부터 책망을 받게 된다(10절). 사실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은 하나의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창 17 :1-8) 자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거듭남에 대한 예수의 교훈을 지극히 생소하다고 여긴 것이다.
아페크리데 예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쉬 에이 호 디다스칼로스 투 이스라엘 카이 타우타 우 기노스케이스
개역개정,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새번역,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우리말성경,1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가톨릭성경,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들을 모르느냐?
영어NIV,10 "You are Israel's teacher," said Jesus, "and do you not understand these things?
영어NASB,10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Are you the teacher of Israel and do not understand these things?
영어MSG,10 Jesus said, "You're a respected teacher of Israel and you don't know these basics?
영어NRSV,10 Jesus answered him, "Are you a teacher of Israel, and yet you do not understand these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απεκριθη ο ιησους και ειπεν αυτω συ ει ο διδασκαλος του ισραηλ και ταυτα ου γινωσκεις
라틴어Vulgate,10 respondit Iesus et dixit ei tu es magister Israhel et haec ignoras
히브리어Modern,10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אליו רבן של ישראל אתה וזאת לא ידעת׃
성 경: [요3:10]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 우선 예수는 니고데모 개인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시고 이어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유대인들을 책망 하신다(11절).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층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지만 헬라어 본문에 `호'(*)라는 정관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쇠트겐(Schottgen)과 뤼케(Lucke)는 여기서 사용된 `관사'가 산헤드린의 의장 또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현자(賢者)등 어떤 특수한 직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요,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의회원으로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리고 공식적인 선생의 위체에 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 자신이 성령의 의미와 위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구약성경의 연구를 통해 좀더 잘 알고 있어야만 했다고 하는 점을 이 칭호(이스라엘의 선생)를 사용하여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Farrar). 더구나 니고데모 자신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진리와 거짓을 가리고 판별해 내는 일을 맡고 있던 산헤드린의 한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멘 아멘 레고 소이 호티 호 오이다멘 랄루멘 카이 호 헤오라카멘 마르튀루멘 카이 텐 마르튀리안 헤몬 우 람바네테
개역개정,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새번역,1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말성경,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는데 너희는 우리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가톨릭성경,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어NIV,11 I tell you the truth, we speak of what we know, and we testify to what we have seen, but still you people do not accept our testimony.
영어NASB,11 "Truly, truly, I say to you, we speak of what we know and testify of what we have seen, and you do not accept our testimy.
영어MSG,11 Listen carefully. I'm speaking sober truth to you. I speak only of what I know by experience; I give witness only to what I have seen with my own eyes. There is nothing secondhand here, no hearsay. Yet instead of facing the evidence and accepting it, you procrastinate with questions.
영어NRSV,11 "Very truly, I tell you, we speak of what we know and testify to what we have seen; yet you do not receive our testimony.
헬라어신약Stephanos,11 αμην αμην λεγω σοι οτι ο οιδαμεν λαλουμεν και ο εωρακαμεν μαρτυρουμεν και την μαρτυριαν ημων ου λαμβανετε
라틴어Vulgate,11 amen amen dico tibi quia quod scimus loquimur et quod vidimus testamur et testimonium nostrum non accipitis
히브리어Modern,11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ך כי את אשר ידענו נדבר ואת אשר ראינו נעיד ואתם לא תקבלו עדותנו׃
성 경: [요3:11]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우리 - 이들이 누구를 뜻하는가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1) 메이어 (Meyer)는, 주님께서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가리켜 `권위의 복수'(pluralis majestaticus) 즉 `경어적 복수'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2) 바이스(Weiss)와 루타르트(Luthardt)는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을, (3) 벴겔(Bengel)과 스티어(Stier)는 `삼위 일체로서의 그리스도'를, (4) 루터(Luther)는 `그리스도와 선지자들 전체'를, (5) 고데(Godet)와 웨스트콧(Westcott)과 행스텐베르그(Hengstenberg) 등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중 두번째와 다섯번째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아는 것...본 것 - 니고데모를 비롯한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와 그 활동을 가리킨다.
너희 - 니고데모를 위시해서 예수가 행한 표적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예수를 믿는 참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무지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와 구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예수 당시의 유대 사람들 역시 예수의 교훈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두움은 빛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1:5). 여기서 예수는 영생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이 단순한 추상적 지식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진리임을 분명히 하고서 이를 선포적 차원에서 증거하고 있다. 기실 이러한 신령한 지식은 성령의 조명을 통한 믿음의 눈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비밀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에이 타 에피게이아 에이폰 휘민 카이 우 피스튜에테 포스 에안 에이포 휘민 타 에푸라니아 피스튜세테
개역개정,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새번역,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우리말성경,12 내가 땅의 것을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것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가톨릭성경,12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늘,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영어NIV,12 I have spoken to you of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then will you believe if I speak of heavenly things?
영어NASB,12 "If I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will you believe if I tell you heavenly things?
영어MSG,12 If I tell you things that are plain as the hand before your face and you don't believe me, what use is there in telling you of things you can't see, the things of God?
영어NRSV,12 If I have told you about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can you believe if I tell you about heavenly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ει τα επιγεια ειπον υμιν και ου πιστευετε πως εαν ειπω υμιν τα επουρανια πιστευσετε
라틴어Vulgate,12 si terrena dixi vobis et non creditis quomodo si dixero vobis caelestia credetis
히브리어Modern,12 אם אמרתי אליכם דברי הארץ ואינכם מאמינים איך תאמינו באמרי אליכם דברי השמים׃
성 경: [요3:12]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땅의 일...하늘 일 - 이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헌터(A. M. Hunter)에 의하면 `땅의 일'이란 물, 바람, 탄생 등과 같은 지상적인 현상이나 사건들인 반면 `하늘의 일'이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는 것과 같은 초월적 사건들이라고 하였다. (2) `땅의 일'이란 니고데모가 결국 이해하지 못했던 영적 거듭남을 포함한 하나님 나라의 사업이며, `하늘 일'이란 14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은 것 즉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 등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3) 전자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 안에 거하게 되신 것으로 그리고 후자를 그리스도가 그의 사역을 모두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장차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한 처소를 제공하실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4) 마지막 견해로서, `땅의 일'을 예수께서 실례로 드신 바람부는 현상으로 이해 하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 자연 현상인 땅의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 다면 `하늘 일' 곧 영적 실재를 직접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는 말씀이다. 이중 네 번째 견해가 무난하리라 짐작된다.
카이 우데이스 아나베베켄 에이스 톤 우라논 에이 메 호 에크 투 우라누 카타바스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개역개정,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새번역,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우리말성경,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곧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없다.
가톨릭성경,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영어NIV,13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영어NASB,13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영어MSG,13 "No one has ever gone up into the presence of God except the One who came down from that Presence, the Son of Man.
영어NRSV,13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descended from heaven, the Son of Man.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ουδεις αναβεβηκεν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ει μη ο εκ του ουρανου καταβας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ο ων εν τω ουρανω
라틴어Vulgate,13 et nemo ascendit in caelum nisi qui descendit de caelo Filius hominis qui est in caelo
히브리어Modern,13 ואיש לא עלה השמימה בלתי אם אשר ירד מן השמים בן האדם אשר הוא בשמים׃
성 경: [요3:13]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하늘에 올라간 자(*, 아나베베켄 에이스톤 우라논) - 직역하면 이 말은 `하늘에 계신 자'란 뜻이다. 그리고 여기 사용된 동사는 현재 완료형으로 미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상반절의 의미를 이어 받아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人者) 외에는' 그 누구도 하늘에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하늘 일을 말할 수 있는 분은 인자 자신 뿐이라고 하는 자기 증거가 된다. 물론 구약의 두 인물 에녹(창 5:24)과 엘리야(왕하 2:9-11)가 승천(昇天)했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그들은 땅에 살던 자로 하늘에 올라갔으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던 자로 땅으로 내려와 하늘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여기서 우리는 성육신하신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상고해 볼 수 있다. 본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와 `인자' 그리고 `하늘에 올가간 자'는 모두 동격이다. 다시 말해서 인자(人者)로 계신 예수는 원래 하늘에 계셨던 성자(聖子) 하나님으로서 인간 구원과 새창조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일체의 모든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분이다. 바울의 말대로 사람들은 모두 땅에서 났고 흙에 속한 자이지만(고전 15:47)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신 분이다. 이러한 성육신의 신비 또한 인간의 유한한 이성(理性)으로서는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비밀이다.
카이 카도스 모위세스 휖소센 톤 오핀 엔 테 에레모 후토스 휲소데나이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개역개정,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새번역,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늘에 있는 인자도'
우리말성경,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가톨릭성경,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올려져야 한다.
영어NIV,14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desert,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영어NASB,14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영어MSG,14 In the same way that Moses lifted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people could have something to see and then believe, it is necessary for the Son of Man to be lifted up--
영어NRSV,14 And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καθως μωσης υψωσεν τον οφιν εν τη ερημω ουτως υψωθηναι δει τον υιον του ανθρωπου
라틴어Vulgate,14 et sicut Moses exaltavit serpentem in deserto ita exaltari oportet Filium hominis
히브리어Modern,14 וכאשר הגביה משה את הנחש במדבר כן צריך בן האדם להנשא׃
성 경: [요3:14]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모세가...인자도 들려야 - 예수는 민 21:4-9의 내용을 들어 자신의 구속 사업 즉 하늘의 일을 설명하셨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으나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달아 놓은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아날 수 있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십자자에서 돌아가실 것과 그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예표(豫標)하는 것이다. 이는 놋뱀 자체가 어떤 치유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이끌므로써 구원을 받게 하였던 것이다. 유대 학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을 공부하거나 오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의 말씀을 외우는 열로 보내었으므로, 니고데모는 오경에서 인용한 이 말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뱀은 마귀 또는 사단이라고 불리는 `옛 뱀'(계 20:2)을 상징하며, 이 구리 뱀은 사단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한 예수의 회생을 예표한다. 따라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그들의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고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한편 `들려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휴소오'(*)는 아람어 `제캅'에 해당하는 말로 추측되기도 하는데 이 아람어는 `들어 올리다' 혹은 `교수대에 처형되다'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말에는 (1) 십자가에 달리심(8:28;12:23) (2) 승천하실 때 영광 속에서 들어 올려지실 것(행 2:33;5:31;빌 2:9) 등의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문맥상으로 볼 때 직접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
히나 파스 호 피스튜온 엔 아우토 에케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번역,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해석자에 따라 15절에서 인용을 끝내기도 함
우리말성경,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15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영어NASB,15 so that whoever believes will in Him have eternal life.
영어MSG,15 and everyone who looks up to him, trusting and expectant, will gain a real life, eternal life.
영어NRSV,15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5 ινα πας ο πιστευων εις αυτον μη αποληται αλλ εχη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15 ut omnis qui credit in ipso non pereat sed habeat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15 למען לא יאבד כל המאמין בו כי אם יחיה חיי עולמים׃
성 경: [요3:15]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예수의 자기 증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목적을 설명하는 본절은 구원론(救援論)의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 본절에 나오는 `영생'은 본서 전체에 걸쳐 요한이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주제이며, 이 영생에 이르기 위한 기본 전제로서 예수께 대한 믿음이 지적 되고 있는 것이다. `저를 믿는 자'란 예수의 대속하심을 받아들이고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를 뜻한다. 특히 `믿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온'(*)은 현재 분사형으로서 신앙의 행위가 계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영생 - 요한의 애용어(愛用語)로서 문자적으로는 `영원의 생명' 또는 `올 세대의 생명'의 의미이다. 요한이 사용한 영생은 공관복음서의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인 요소와 하나님의 현재적인 선물이라고 하는 두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한편 요한은 `생명'과 `영생'이라는 말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외 복음서에서 생명은 19번, 영생은 17번 나온다. 17:3에 의하면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 곧 인간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14:6에 의하면 영생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참 길이요, 살아있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이러한 앎과 교제는 현재 이 땅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처소에서 이루어진다(14:3).
후토스 가르 에가페센 호 데오스 톤 코스몬 호스테 톤 휘온 톤 모노게네 에도켄 히나 파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메 아폴레타이 알 에케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영어NI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NASB,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MSG,16 "This is how much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Son, his one and only Son. And this is why: so that no one need be destroyed; by believing in him, anyone can have a whole and lasting life.
영어NRS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not perish but may ha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τως γαρ ηγαπησεν ο θεος τον κοσμον ωστε τον υι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εδωκεν ινα πας ο πιστευων εις αυτον μη αποληται αλλ εχη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16 sic enim dilexit Deus mundum ut Filium suum unigenitum daret ut omnis qui credit in eum non pereat sed habeat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16 כי ככה אהב האלהים את העולם עד אשר נתן את בנו את יחידו למען לא יאבד כל המאמין בו כי אם יחיה חיי עולמים׃
성 경: [요3:16]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이 구절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the Gospel within the Gospels) 혹은 `작은 복음서'(Little Gospel)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 대표할 수 있는 요절인 본절은 복음의 진수(眞髓)로서, 복음이 담고 있는 모든 계시의 말씀을 사랑의 개념에서 천명(天命)한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세상'을 뜻하는 헬라어 `코스모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가리킨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선민 이스라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민족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곧 복음의 보편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개방되어 있지만 그 은혜틀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동기가된 것임이 밝혀져있다. 특별히 `사랑'의 헬라어 `아가페'(*)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 편에서 선수권(先手權)과 주도권(主導權)을 가지고 인생의 연약함과 죄성을 끝없이 감싸 안으신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라 하겠으며(요일 4:8)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랑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며 막연한 이론이나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분(應分)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생자'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의 특수함을 강조하는 말이며, 루터의 말을 빌리면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결국 예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독생자로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이었다는 점에서 유일 무이한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생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노게네스'(*)는 `외아들'이란 뜻 외에 `그 속성과 성품에 있어서 유일 무이하신 분'이란 의미도 내표한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아들'의 뜻인 `휘오스'(*)를 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16, 36;5:20, 23;8:36 등). 한편 `주셨으니'의 헬라어 `디도미'(*)는 `보내다'(send)와 `넘겨주다'(hand over), `값을 지불하다'(pay) 등의 뜻이 있는데 본절에서도 이 말은 성육신(Incarnation)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crucifixion)까지도 의미하고 있다. 웨스트콧(Westcott)은 이 낱말이 재물을 바치는 일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창 22:2 주석 참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믿는 자의 구원에 있음을 15절에 이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멸망'과 `영생' 사이에 어떠한 중립적인 선택은 없으며 그것은 절대적인 양자 택일의 문제이다. `멸망하다'의 뜻인 `아폴뤼미'(*) 또한 요한이 자주 사용한(10번 정도) 단어로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 이 말은 `잃다', `상실하다'(to be lost)의 뜻과 둘째, `없어지다', `파괴되다'(to perish, be destroyed)의 뜻이 그것이다. 또한 이 동사는 구원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며,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을 나타낼 때(막 3:6), 존속되는 것과 반대되는 `멸망'을 나타낼 때 (고전 1:19), 그리고 무엇을 얻거나 받는 것과는 반대되는 `상실'을 나타낼 때 등의 경우 에도(요이 8절) 사용되었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아가는 자들은 필경 절망과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됨을 암시한다. 그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교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멸망을 뜻한다.
우 가르 아페스테일렌 호 데오스 톤 휘온 에이스 톤 코스몬 히나 크리네 톤 코스몬 알 히나 소데 호 코스모스 디 아우투
개역개정,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7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17 For 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to save the world through him.
영어NASB,17 "For God did not send the Son into the world to judge the world, but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영어MSG,17 God didn't go to all the trouble of sending his Son merely to point an accusing finger, telling the world how bad it was. He came to help, to put the world right again.
영어NRSV,17 "Indeed, God did not send the Son into the world to condemn the world, but in order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υ γαρ απεστειλεν ο θεος τον υιον αυτου εις τον κοσμον ινα κρινη τον κοσμον αλλ ινα σωθη ο κοσμος δ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7 non enim misit Deus Filium suum in mundum ut iudicet mundum sed ut salvetur mundus per ipsum
히브리어Modern,17 כי האלהים לא שלח את בנו אל העולם לדין את העולם כי אם למען יושע בו העולם׃
성 경: [요3:17]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심판하려 하심이...구원을 받게 하려 - 목적을 나타내는 접속사인 `하나'(*)에 의해 이끌리는 두 문장이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not..., but...식의 영어 문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요한은 심판하시는 그리스도(5:30;8:16)에 관해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사람들을 심판하시며(12:48) 하나님이 일체의 심판을 그리스도께 위임하셨다고(5:22) 증거 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에는 분명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의로운 재판장으로 나타나실 것이다(딤후 4:1, 8). 그러나 적어도 예수의 초림 목적을 말할진대는 심판보다는 구원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함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자비로운 용서와 구원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로되, 이 양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론 결과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항상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롤 원하시며(딤전 2:4) 이 일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히시게까지 하셨지만 인간의 불순종과 완악함이 끝내 구원의 문을 막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심판이 주목적이라면 하나님은 굳이 독생자를 보내지 않고서 물이나 불 혹은 기타 천재 지변(天災地變)을 통해서도 심판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적극적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겠다. `심판하다'의 뜻인 `크리노'(*)는 `선과 악을 분별하다'(discriminate), `분리하다'(separate)의 의미와 `정죄하다'(condemn)의 의미가 있는데 본절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을 받게'란 말은 본절에서 `영생을 얻는 것'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는데 `구원'의 뜻인 `소테리아'(*)란 본래 아주 무서운 멸망의 위기 속에 빠진 자,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를 구출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본 구절의 의미는 죄악된 불의의 삶으로부터 야기되는 모든 불안과 죄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벗어나며 또한 죄사함과 의롭다하심(justification)을 받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아울러 장래에 하나님 앞에서의 평강과 희락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임을 말한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우 크리네타이 호 데 메 피스튜온 에데 케크리타이 호티 메 페피스튜켄 에이스 토 오노마 투 모노게누스 휘우 투 데우
개역개정,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새번역,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또는 '정죄'
우리말성경,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NIV,18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영어NASB,18 "He who believes in Him is not judged; he who does not believe has been judg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영어MSG,18 Anyone who trusts in him is acquitted; anyone who refuses to trust him has long since been under the death sentence without knowing it. And why? Because of that person's failure to believe in the one-of-a-kind Son of God when introduced to him.
영어NRSV,18 Those who believe in him are not condemned; but those who do not believe are condemned already, because they have not 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Son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8 ο πιστευων εις αυτον ου κρινεται ο δε μη πιστευων ηδη κεκριται οτι μη πεπιστευκεν εις το ονομα του μονογενους υιου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18 qui credit in eum non iudicatur qui autem non credit iam iudicatus est quia non credidit in nomine unigeniti Filii Dei
히브리어Modern,18 המאמין בו לא ידון ואשר לא יאמין בו כבר נדון כי לא האמין בשם בן האלהים היחיד׃
성 경: [요3:18]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저를 맏는 자는...벌써 - 앞의 두 절에서 요한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독생자 예수의 초림 목적이 바로 구원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제 본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하고 무서운 심판이 불가피하게 될 것임을 설명한다. 그는 이 진리를 즐겨 사용하는 논리 전개 방식인 부정과 긍정의 연결을 통해 변증하고 있다. 심판 가운데 처해 있으므로 마지막 대심판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예(後裔)로서 원죄와 자범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구속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자연히 멸망과 정죄 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볼 때 예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구원과 멸망 이 두 편으로 확연히 구분되었다.
심판을 받은 - 완료 시제 `케크리타이'(*)는 심판은 이미 과거에 시작되어졌고 그 판결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임을 나타낸다. 불신자들은 장차 있을 종말론적인 대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죄인으로서의 삶(즉 정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죄에 얽매여 죄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다.
하우테 데 에스틴 헤 크리시스 호티 토 포스 엘렐뤼덴 에이스 톤 코스몬 카이 에가페산 호이 안드로토이 말론 토 스코토스 에 토 포스 엔 가르 아우톤 포네라 타 에르가
개역개정,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새번역,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성경,19 그 심판은 이것인데, 곧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 대신 어둠을 사랑한 것이다.
가톨릭성경,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영어NIV,19 This is the verdict: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but men loved darkness instead of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영어NASB,19 "This is the judgment, that 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the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for their deeds were evil.
영어MSG,19 "This is the crisis we're in: God-light streamed into the world, but men and women everywhere ran for the darkness. They went for the darkness because they were not really interested in pleasing God.
영어NRSV,19 And this is the judgment, that 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people loved darkness rath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헬라어신약Stephanos,19 αυτη δε εστιν η κρισις οτι το φως εληλυθεν εις τον κοσμον και ηγαπησαν οι ανθρωποι μαλλον το σκοτος η το φως ην γαρ πονηρα αυτων τα εργα
라틴어Vulgate,19 hoc est autem iudicium quia lux venit in mundum et dilexerunt homines magis tenebras quam lucem erant enim eorum mala opera
히브리어Modern,19 וזה הוא הדין כי האור בא אל העולם ובני האדם אהבו החשך מן האור כי רעים מעשיהם׃
성 경: [요3:19]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이것이니 - 논리 전개를 더 강화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된 요한의 독톡한 표현을 반영하는 어구이다(15:12;17:3;요일 1:5;5:11, 14).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 - 여기 사용된 '빛'의 헬라어 '포스'(*)는 달빛이나 별빛, 불빛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태양 빛'을 의미하는 말로, 본서에서는 주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유일한 빛'(the one light), '참 빛'(1:9)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어두움의 뜻인 헬라어 '스코토스'(*)는 빛과 반대되는 완전한 어두움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단순히 어두운 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Westcott). 따라서 어두움은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어두움 속에 처해 있는 자는 빛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다만 외부로부터 빛이 적극적으로 비춰들 때 비로소 그 빛을 인정한다. 그러나 빛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그 빛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하는 표현이 믿지 않는 자들이 빛도 어느 정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뤼케(Lucke)는 말하기를,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말론'(*)이라는 단어가 '오히려'의 뜻 보다는 '더 많이'란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빛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랑을 인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말론'이 사용된 다른 많은 구문에서는 그 뜻이 '비교급'으로 보다는 부정 적인 의미에서의 '...보다 도리어'(rather)의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43;마 10:6;딤후 3:4). 따라서 본 구절은 빛보다는 어두움 즉 하나님과의 영생의 교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을 사랑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파스 가르 호 파울라 프라쏜 미세이 토 포스 카이 우크 에르케타이 프로스 토 포스 히나 메 엘렝크데 타 에르가 아우투
개역개정,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새번역,20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20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빛을 미워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해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가톨릭성경,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 행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20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will not come in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영어NASB,20 "For everyone who does evil hates the Light, and does not come to the Light for fear that his deeds will be exposed.
영어MSG,20 Everyone who makes a practice of doing evil, addicted to denial and illusion, hates God-light and won't come near it, fearing a painful exposure.
영어NRSV,20 For all who do evil hate the light and do not come to the light, so that their deeds may not be exposed.
헬라어신약Stephanos,20 πας γαρ ο φαυλα πρασσων μισει το φως και ουκ ερχεται προς το φως ινα μη ελεγχθη τα εργ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20 omnis enim qui mala agit odit lucem et non venit ad lucem ut non arguantur opera eius
히브리어Modern,20 כי כל פעל עולה ישנא את האור ולא יבא לאור פן יוכחו מעשיו׃
성 경: [요3:20]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19절과 마찬가지로 본절에서도 원인을 나타내는 전치사 '가르'(*)가 사용되었다. 19절에서 이 전치사는 사람들이 죄악된 길을 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해 주며 본절에서는 19절에서 밝혀진 원인을 보층 설명한다. 앞절에서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하는 소극적 어투로 설명했으나 여기서는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악행'을 지적한다. 특히 본절은 더욱 더 죄악으로 치닫는 인간의 성향에 대해 도덕적 이유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악하므로 빛보다는 어두움을 택하며 더 나아가 죄로 점점 오염될수록 악행으로 나아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드러날까 - 헬라어 '엘렝코'(*)는 '죄를 깨닫게 하다'(convince) '밝히 드러나다', '혐의를 두다', '교정하다'(correct) 등의 뜻을 지니는 바 악을 행하는 자가 죄를 감출 뿐만 아니라, 이미 지은 그 죄에 대해서 회개조차 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호 데 포이온 텐 알레데이안 에르케타이 프로스 토 포스 히나 파네로데 아우투 타 에르가 호티 엔 데오 에스틴 에이르가스메나
개역개정,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새번역,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 행실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영어NIV,21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영어NASB,21 "But he who practices the truth comes to the Light, so that his deeds may be manifested as having been wrought in God."
영어MSG,21 But anyone working and living in truth and reality welcomes God-light so the work can be seen for the God-work it is."
영어NRSV,21 But those who do what is true come 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clearly seen that their deeds have been done in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δε ποιων την αληθειαν ερχεται προς το φως ινα φανερωθη αυτου τα εργα οτι εν θεω εστιν ειργασμενα
라틴어Vulgate,21 qui autem facit veritatem venit ad lucem ut manifestentur eius opera quia in Deo sunt facta
히브리어Modern,21 אבל עשה האמת יבא לאור למען יגלו מעשיו כי נעשו באלהים׃
성 경: [요3:21]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믿음으로 얻는 영생]
진리를 좇는 자 -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 곧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아니라, 그 신앙의 열매(마 3:8, 10)를 맺는 자'(A. M. Hunter) 즉 참된 기독교적인 신앙과 삶을 실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진리'의 의미나 본성에 대해서는 폭넓게 논의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연합 관계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즉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 이 진리의 빛이 죄악으로 인해 어두워진 인간의 심령을 뚫고 들어 오면 회개와 전인적 삶의 변화가 수반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빛으로 오나니 - '에르케타이 프로스 토 포스'(*)는 '빛에게로 나아오다'란 뜻이다. 사람이 빛되신 하나님에게로 나아오는 것은 원래의 자기 자신의 기원(起源)에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charlesworth).
메타 타우타 엘덴 호 예수스 카이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에이스 텐 유다이안 겐 카이 에케이 디에트리벤 멭 아우톤 카이 에밮티젠
개역개정,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새번역,22 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2 그 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2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침례를 주셨다.
영어NIV,22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out into the Judean countryside, where he spent some time with them, and baptized.
영어NASB,22 After these things Jesus and His disciples came into the land of Judea, and there He was spending time with them and baptizing.
영어MSG,22 After this conversation, Jesus went on with his disciples into the Judean countryside and relaxed with them there. He was also baptizing.
영어NRSV,22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into the Judean countryside, and he spent some time there with them and baptize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μετα ταυτα ηλθεν ο ιησους και οι μαθηται αυτου εις την ιουδαιαν γην και εκει διετριβεν μετ αυτων και εβαπτιζεν
라틴어Vulgate,22 post haec venit Iesus et discipuli eius in iudaeam terram et illic demorabatur cum eis et baptizabat
히브리어Modern,22 ויהי אחרי הדברים האלה ויבא ישוע ותלמידיו אל ארץ יהודה ויגר שם עמהם ויטבל׃
성 경: [요3:22]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이 후에...유대 땅으로 가서 - 많은 학자들은 22-30절을 현재의 위치에서 옮겨서 2:12 뒤에 놓아야 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Barrett, Senders). 왜냐하면 '유대 땅으로'라고 하는 표현이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왔다고 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시야에 대해 냉담한 예루살렘 도시를 떠나 유대 지경 내의 변두리 마을로 물러가신 것을 나타 낸다고 볼 수도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이 요단 강 근처의 평야이거나 아니면 여리고 근접한 지점일 것으로 추정된다.
세례를 주시더라 - 예수께서 세례(baptizing, NIV)를 베푸셨다는 기록은 사복음서를 통틀어 여기에만 나오고 또 4:2로 미루어 보건대 실제로 세례를 베푼 자는 예수의 제자를이었을 것이다. 이 세례를 기독교의 세례전(洗禮典)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그 보다는 세례 요한의 세례와 동일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수께서는 친히 세례 요한의 증거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으며 또 세례 요한의 제자들 중에 예수를 열렬히 따르는 자들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러운 과도기적 수단으로서 세례 요한식 세례를 긍정적으로 허용하셨으리라 이해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의 첫 메시지도 세례 요한의 주된 강조 사항인 '회개하라'는 내용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마 3:2;4:17). 한편 예수께서 몸소 세례를 베풀지 않고 제자 들에게 대행시킨 이유 중의 하나는 역시 제자화 훈련(弟子化 訓練)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제자들은 훗날에 오순절(the day of Pentecost, NIV)의 성령 세례를 체험하고 난 후 죄사함을 얻게 하는 세례를 베풀어야 할 것이었다(행 2:1-4, 37-41).
엔 데 카이 호 요안네스 밮티존 엔 아이논 엥귀스 투 살레임 호티 휘다타 폴라 엔 에케이 카이 파레기논토 카이 에밮티존토
개역개정,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새번역,23 살렘 근처에 있는 애논에는 물이 많아서, 요한도 거기서 ㉬세례를 주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를 받았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3 요한도 살렘 가까이에 있는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침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침례를 받았다.
영어NIV,23 Now John also was baptizing at Aenon near Salim, because there was plenty of water, and people were constantly coming to be baptized.
영어NASB,23 John also was baptizing in Aenon near Salim, because there was much water there; and people were coming and were being baptized--
영어MSG,23 At the same time, John was baptizing over at Aenon near Salim, where water was abundant.
영어NRSV,23 John also was baptizing at Aenon near Salim because water was abundant there; and people kept coming and were being baptized
헬라어신약Stephanos,23 ην δε και ιωαννης βαπτιζων εν αινων εγγυς του σαλειμ οτι υδατα πολλα ην εκει και παρεγινοντο και εβαπτιζοντο
라틴어Vulgate,23 erat autem et Iohannes baptizans in Aenon iuxta Salim quia aquae multae erant illic et adveniebant et baptizabantur
히브리어Modern,23 וגם יוחנן היה טבל בעינון קרוב לשלם כי שמה מים לרב ויבאו ויטבלו׃
성 경: [요3:23]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살렘 가까운 애논 - 이 두 지명이 현재의 어느 위치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지 않다. '살렘'(Salim)은 '평화'라고 하는 셈어적 기원을 갖고 있는 지명이며, '애논'(Aenon)은 '샘'이라고 하는 아람어의 복수형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 지명들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다. (1) 베레아 지역 요단강 건너편으로 보는 견해. 우리가 알다시피 세례 요한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1:28). (2)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 남방 8마일 지점 즉 요단 계곡의 동쪽으로 보는 견해(4세기의 유세비우스). (3) 세겜으로부터 동서쪽으로 4마일 떨어진 곳에 옛부터 알려졌던 '살림'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8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현재 '아이눈'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애논'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 비록 현재 이곳은 물이 전혀 없지만 과거에는 많은 샘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Albright) (4) 또한 1세기 초기에는 '살렘'이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Cheyne). 이 중에 세번째 견해는 그곳이 유대 지역이 아니라 완전히 사마리아 지역이라고 하는 점에서 본문과 다소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크리거(Krieger)는 저자의 확실치 않은 지리적 보고(報告)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는데 즉 요한의 세례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평화에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지만 그러한 평화를 제공하지는 못하는 반면 예수의 세례는 구원과 평화(살렘)의 샘(애논)이 펑펑 솟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트만(Bultmann)도 역시 살렘과 애논, 이 두 지명이 실재적인 것이지만 복음서 저자에 의해 상징적인 의미로써 사용된 것일 수 있다고 믿었다(the Anchor Bible).
우포 가르 엔 베블레메노스 에이스 텐 퓔라켄 호 요안네스
개역개정,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새번역,24 그 때는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우리말성경,24 이때는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4 그 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영어NIV,24 (This was before John was put in prison.)
영어NASB,24 for John had not yet been thrown into prison.
영어MSG,24 This was before John was thrown into jail.
영어NRSV,24 --John, of course, had not yet been thrown into prison.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υπω γαρ ην βεβλημενος εις την φυλακην ο ιωαννης
라틴어Vulgate,24 nondum enim missus fuerat in carcerem Iohannes
히브리어Modern,24 כי עוד לא נתן יוחנן אל בית הסהר׃
성 경: [요3:24]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 '옥에'에 해당하는 원문은 '그 감옥에'(*, 에이스 텐 퓔라켄)이다. 이는 저자와 당시의 직접적 독자들이 세례 요한의 투옥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세례 요한의 투옥에 관해서는 눅 3:19이하를 참조하라. 저자가 세례 요한의 투옥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공관복음서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 및 요한의 관심사가 예수의 사역에 보다 밀도있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본서에서 셰례 요한이 등장하는 유일한 의의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한편 요한은 공관복옴서 저자들이 서술하고 있지 않는 내용 즉 세례 요한과 예수의 동시적 사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이후에 요한이 투옥되고 갈릴리에서의 공적인 등장이 있기 이전에 초기에 유대 지방에서 전도 사역을 행하셨던 셈이다.
에게네토 운 제테시스 에크 톤 마데톤 요안누 메타 유다이우 페리 카다리스무
개역개정,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새번역,25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예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유대 사람들'
우리말성경,25 요한의 제자들 중 몇 사람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의식과 관련해 논쟁이 붙었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영어NIV,25 An argument developed between some of John's disciples and a certain Jew over the matter of ceremonial washing.
영어NASB,25 Therefore there arose a discussion on the part of John's disciples with a Jew about purification.
영어MSG,25 John's disciples got into an argument with the establishment Jews over the nature of baptism.
영어NRSV,25 Now a discussion about purification arose between John's disciples and a Jew.
헬라어신약Stephanos,25 εγενετο ουν ζητησις εκ των μαθητων ιωαννου μετα ιουδαιων περι καθαρισμου
라틴어Vulgate,25 facta est ergo quaestio ex discipulis Iohannis cum Iudaeis de purificatione
히브리어Modern,25 ויהי ריב בין תלמידי יוחנן ובין היהודים על דבר הטהרה׃
성 경: [요3:25]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 요한의 제자들은 어떤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淨潔)에 관한 논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논쟁(argument, NIV)이 유대인들이 행하는 일반적인 정결 예식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정결 예식에 반대하여 요한과 예수가 행하는 세례에 관한 것인지 또는 요한과 예수가 각자 따로 행하는 세례에 관한 것인지 명확지 않다. 본문에서는 '결례'(ceremonial washing, NIV)의 뜻인 헬라어 '카다리스모스'(*)가 '세례'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한편 '변론'의 뜻인 헬라어 '제테시스'(*)에 대해 바울은 '위험하고 쓸데 없으며 분노에 찬 논쟁'(딤전 6:4; 딤후 2:23; 딛 3:9)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요한의 제자는 유대인과 더불어 세례 요한이 주는 세례의 의의와 효력에 대해서 바리새파와 엣세네파 그리고 예수가 행하시는 세례와 비교하여 변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어지는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세례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제자들의) 세례 중 어느 것이 더 확실한 근거를 가질 것인가에 관한 변론이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카이 엘돈 프로스 톤 요안넨 카이 에이판 아우토 랍비 호스 엔 메타 수 페란 투 요르다누 호 쉬 메마르튀레카스 이데 후토스 밮티제이 카이 판테스 에르콘타이 프로스 아우톤
개역개정,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새번역,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6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전에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선생님이 증거하셨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침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영어NIV,26 They came to John and said to him, "Rabbi, that man who was with you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the one you testified about--well, he is baptizing, and everyone is going to him."
영어NASB,26 And they came to John and said to him, "Rabbi, He who was with you beyond the Jordan, to whom you have testified, behold, He is baptizing and all are coming to Him."
영어MSG,26 They came to John and said, "Rabbi, you know the one who was with you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The one you authorized with your witness? Well, he's now competing with us. He's baptizing, too, and everyone's going to him instead of us."
영어NRSV,26 They came to John and said to him, "Rabbi, the one who was with you across the Jordan, to whom you testified, here he is baptizing, and all are going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ηλθον προς τον ιωαννην και ειπον αυτω ραββι ος ην μετα σου περαν του ιορδανου ω συ μεμαρτυρηκας ιδε ουτος βαπτιζει και παντες ερχονται προ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26 et venerunt ad Iohannem et dixerunt ei rabbi qui erat tecum trans Iordanen cui tu testimonium perhibuisti ecce hic baptizat et omnes veniunt ad eum
히브리어Modern,26 ויבאו אל יוחנן ויאמרו אליו רבי האיש אשר היה עמך בעבר הירדן ואשר העידת לו הנו טבל וכלם באים אליו׃
성 경: [요3:26]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라고 하는 정확한 호칭으로 부르지 않은 것은 예수를 깎아 내리고자하는 그들의 의도를 반영한다. 요단강 저편인 베다니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의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였고(1:19-28) 또한 예수께 세례를 베풀었다 (마 3:13).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 빚을 진 자요, 감사해야 할 자였지만 도리어 세례 요한의 명성을 떨어 뜨리는 경쟁자로 나선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결례(缺禮)에 대한 논쟁을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가져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논쟁 거리가 아니라 예수께 대한 불평과 비난으로 변화되었다.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 - 역시 예수의 이름을 피하고 있다. '증거하다'의 뜻인 헬라어 '메마르튀레카스'(*)는 현재 완료로서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된 세례 요한의 예수에 대한 증거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세례 요한은 줄곧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해 왔으나 그의 제자들은 그러한 증거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례를 주매 - 원문에는 이 말 앞에 '보라', '보옵소서'의 뜻인 헬라어 감탄사 '이데'(*)가 붙어 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혹은 그의 제자들이)가 세례를 베푸는 행위에 대해서 상당히 흥분하고 분노를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더이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콘타이'(*)는 연속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 '그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뜻을 나타낸다. 막 1:45;3:7은 갈릴리 사역 동안의 예수의 호소(呼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본서에서도 잘 나타난다(11:48).
아페크리데 요안네스 카이 에이펜 우 뒤나타이 안드로포스 람바네인 우데 헨 에안 메 에 데도메논 아우토 에크 투 우라누
개역개정,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새번역,27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우리말성경,27 이 말에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가톨릭성경,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영어NIV,27 To this John replied, "A man can receive only what is given him from heaven.
영어NASB,27 John answered and said, "A man can receive nothing unless it has been given him from heaven.
영어MSG,27 John answered, "It's not possible for a person to succeed--I'm talking about eternal success--without heaven's help.
영어NRSV,27 John answered, "No one can receive anything except what has been given from heaven.
헬라어신약Stephanos,27 απεκριθη ιωαννης και ειπεν ου δυναται ανθρωπος λαμβανειν ουδεν εαν μη η δεδομενον αυτω εκ του ουρανου
라틴어Vulgate,27 respondit Iohannes et dixit non potest homo accipere quicquam nisi fuerit ei datum de caelo
히브리어Modern,27 ויען יוחנן לא יוכל איש לקחת דבר בלתי אם נתן לו מן השמים׃
성 경: [요3:27]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 목적어가 생략된 문장이다. 본문에 있어서는 대화의 내 용상 세례를 베푸는 자의 자격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하늘'은 하나님을 지시하는 완곡어로서 사용됨) 세례를 베풀도록 허락받은 사람은 (1) 요한 자신(Bengel, Calvin)이나 (2) 예수 그리스도(Godet, Meyer)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3) 그 일을 행하도록 허락된 많은 선지자, 예수의 제자들 등도 포함된다(Lange, Lucke, Moulton). 여기서 세례 요한은 높아가는 예수의 명성에 대해 시기하는 마음을 갖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의 모든 사역이 바로 하나님께 그 기욍을 두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아우토이 휘메이스 모이 마르튀레이테 호티 에이폰 호티 우크 에이미 에고 호 크리스토스 알 호티 마페스탈메노스 에이미 엠프로스덴 에케이누
개역개정,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새번역,28 너희야말로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한 말을 증언할 사람들이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어 그리스도와 히브리어 메시아는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8 내가 전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한 말을 증거할 사람들은 바로 너희다.
가톨릭성경,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영어NIV,28 You yourselves can testify that I said, 'I am not the Christ but am sent ahead of him.'
영어NASB,28 "You yourselves are my witnesses that I said, 'I am not the Christ,' but,' I have been sent ahead of Him. '
영어MSG,28 You yourselves were there when I made it public that I was not the Messiah but simply the one sent ahead of him to get things ready.
영어NRSV,28 You yourselves are my witnesses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I have been sent ahead of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8 αυτοι υμεις μοι μαρτυρειτε οτι ειπον ουκ ειμι εγω ο χριστος αλλ οτι απεσταλμενος ειμι εμπροσθεν εκεινου
라틴어Vulgate,28 ipsi vos mihi testimonium perhibetis quod dixerim ego non sum Christus sed quia missus sum ante illum
히브리어Modern,28 ואתם עדי כי אמרתי אנכי אינני המשיח רק שלוח אני לפניו׃
성 경: [요3:28]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 1:20에서 산헤드린(Sanhedrin)에서 파견된 대표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한번 천명(闡明)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 자신을 메시야로 오해하는 데서 발생되는 모든 혼란을 없애기 위하여 자신의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확언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말한 바'는 세례 요한이 예수께 대해 이미 여러번 증거하였던 사실을 나타낸다.
너희니라 - 이 말은 원문상 강조법으로서 '너희가 내 설교를 귀담아 듣고 그 의미를 헤아렸다면 이미 너희들 스스로(yourselves) 답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을 시사한다. 한편 세례 요한의 우려대로 그의 가르침과 세례를 고지식 하게 추종하는 인물이 1세기 중엽까지도 상당히 존재했음에 분명하다. 예컨대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아볼로의 경우가 그러하다(행 18:24-26). 그 후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도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바 있다(행 19:1-7).
호 에콘 텐 뉨펜 뉨피오스 에스틴 호 데 필로스 투 뉨피우 호 헤스테코스 카이 아쿠온 아우투 카라 카이레이 디아 텐 포넨 투 뉨피우 하우테 운 헤 카라 헤 에메 페플레로타이
개역개정,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새번역,29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크게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말성경,29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가톨릭성경,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영어NIV,29 The bride belongs to the bridegroom. The friend who attends the bridegroom waits and listens for him, and is full of joy when he hears the bridegroom's voice. That joy is mine, and it is now complete.
영어NASB,29 "He who has the bride is the bridegroom; but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who stands and hears him rejoices greatly because of the bridegroom's voice So this joy of mine has been made full.
영어MSG,29 The one who gets the bride is, by definition, the bridegroom. And the bridegroom's friend, his 'best man'--that's me--in place at his side where he can hear every word, is genuinely happy. How could he be jealous when he knows that the wedding is finished and the marriage is off to a good start? "That's why my cup is running over.
영어NRSV,29 He who has the bride is the bridegroom.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who stands and hears him, rejoices greatly at the bridegroom's voice. For this reason my joy has been fulfilled.
헬라어신약Stephanos,29 ο εχων την νυμφην νυμφιος εστιν ο δε φιλος του νυμφιου ο εστηκως και ακουων αυτου χαρα χαιρει δια την φωνην του νυμφιου αυτη ουν η χαρα η εμη πεπληρωται
라틴어Vulgate,29 qui habet sponsam sponsus est amicus autem sponsi qui stat et audit eum gaudio gaudet propter vocem sponsi hoc ergo gaudium meum impletum est
히브리어Modern,29 אשר לו הכלה הוא החתן ורע החתן העמד ושמע אתו שמוח ישמח לקול החתן הנה שמחתי זאת עתה שלמה׃
성 경: [요3:29]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 신부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이며, 신랑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종종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신부로 상징하였고(사54:5;렘 3:20; 호 2:7;말 2:11) 신약성경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상징되었다(엡 5:32;계 19:7). 본절에서의 강조점은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보다는 신랑인 예수와 그 친구인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그긔스도가 새 이스라엘의 주인이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C.K. Barrett).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 - 히브리어에서 '쇼쉐벤'(*)은 신랑의 친구로서, 신랑과 신부 사이를 중매하는 역할과 신부를 신랑에게 무사히 인도 하는 역할과 결혼식에서의 신랑의 들러리 역할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혼 잔치를 주관하는 역할까지도 담당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 잔치에 있어서 그 중매자 역할을 담당하였고(출 19:17) 바울도 역시 자기 자신이 정결한 처녀인 성도들을 남편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올 담당하는 자라고 표현하였다(고후 11:2).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등장했던 연회장(2:9)도 신랑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그 잔치를 주관하였을 것이 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또한 세례 요한은 신랑의 친구는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함으로써, 그 친구가 마치 종과 같은 태도로 혼인 예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돕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 '페플레로타이'(*)는 완료 수동태형으로 마치 물이 컵의 끝까지 가득 차 있는 상태처럼 세례 요한의 기쁨이 가득 차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의 기쁨은 완벽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했던 일 곧 메시야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며 또한 그토록 바라던 메시야를 친히 목격하고 증거했기 때문이다(A. M. Hunter).
에케이논 데이 아웈사네인 에메 데 에랕투스다이
개역개정,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새번역,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 ㉣해석자에 따라 36절에서 인용을 끝내기도 함
우리말성경,30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가톨릭성경,30 그분께서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영어NIV,30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영어NASB,30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영어MSG,30 This is the assigned moment for him to move into the center, while I slip off to the sidelines.
영어NRSV,30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헬라어신약Stephanos,30 εκεινον δει αυξανειν εμε δε ελαττουσθαι
라틴어Vulgate,30 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
히브리어Modern,30 הוא יגדל הלוך וגדל ואני אחסר הלוך וחסור׃
성 경: [요3:30]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그는 흥하여야...나는 쇠하여야 - 이 말은 본서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마지막 진술로서 그의 선지자적 위대성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구절이다. 위대한 이상이나 목표를 내걸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일 자체도 크고 힘든 일이거니와, 그의 주변에 모여든 열렬한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한계성(限界性)을 분명히 주지시키고 그들의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게 하는 일에 이토록 적극성을 보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세례 요한은 '...해야 한다'는 표현으로써 자신의 주장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히 필연성과 당의성을 확고히 천명 하고 있다. 실제로 세례 요한의 삶은 오직 그 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위해 온전히 바쳐졌으며, 예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헤롯의 핍박을 받아 참수형(斬首刑)을 당함으로써 '주의 길을 곧게하는 자'로서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막 1:14; 눅 3:18-20).
호 아노덴 에르코메노스 에파노 판톤 에스틴 호 온 에크 테스 게스 에크 테스 게스 에스틴 카이 에크 테스 게스 랄레이 호 에크 투 우라누 에르코메노스 에파노 판톤 에스틴
개역개정,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새번역,31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우리말성경,31 위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해 땅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가톨릭성경,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세상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속하고 세상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영어NIV,31 "The one who comes from above is above all; the one who is from the earth belongs to the earth, and speaks as one from the earth. The on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영어NASB,31 "He who comes from above is above all, he who is of the earth is from the earth and speaks of the earth H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영어MSG,31 "The One who comes from above is head and shoulders over other messengers from God. The earthborn is earthbound and speaks earth language; the heavenborn is in a league of his own.
영어NRSV,31 The one who comes from above is above all; the one who is of the earth belongs to the earth and speaks about earthly things. The on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 ανωθεν ερχομενος επανω παντων εστιν ο ων εκ της γης εκ της γης εστιν και εκ της γης λαλει ο εκ του ουρανου ερχομενος επανω παντων εστιν
라틴어Vulgate,31 qui desursum venit supra omnes est qui est de terra de terra est et de terra loquitur qui de caelo venit supra omnes est
히브리어Modern,31 הבא ממעל נעלה על כל ואשר מארץ מארץ הוא ומארץ ידבר הבא משמים נעלה על כל׃
성 경: [요3:31]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위로부터 오시는 이...땅에서 난 이 - 본격적으로 예수와 세례 요한과의 대조와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의 우월성이 증거되고 있는 31-36절까지의 본문은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 내용과 유사한 일면이 있다(12, 13절). 본서를 기록한 요한의 근본 의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신적 탁월성(卓越性)을 드러내는 데 있었기 때문에(20:31),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제가 일간되게 부각되어 있다. 여기서 저가가 강조하는 바는 세레 요한에 대한 예수의 상대적 우위의 개념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탁월성에 대해서이다.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위대한 자'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눅 7:28) 여전히 '땅에서 난 이'라는 점에서 감히 예수의 신적 존재와 비길 상대가 못되는 것이다. 한편 '땅에서 난 이'란 직접적으로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인 측면으로 확대해서 생각 하면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오시나 이'라는 표현은 대망의 메시야에 대한 또 다른 칭호로서 세례 요한에 의해 사용되곤 했다(1:30;마 11:3;눅 7:19). 그리고 위로부터 오시는 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적 초월성과 유일성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에 여기서 '땅'(the earth, NIV)이란 표현이 '세상'이라는 표현 속에 들어 있는 '악한 것', '속한 것'을 의미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하나님께 향하는 어떤 요소를 지녔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요한의 표현에 있어서 '땅'은 초자연적이고 신성한 것과는 대조적인 의미에서의 인간 실존의 자연 상태 즉 창조주와는 구별되는 피조물을 지칭한다. 즉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 말이다(창 2:7).
땅에 속한 것 - 이 구절 또한 앞에서 설명한 '땅'의 개념에 근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직접적으로는 세례 요한의 모든 사역 즉 회개에의 권유와 회개한 자들에게 행한 물세례 등등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을 위시한 모든 선지자의 사역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것일 뿐 직접 영생(eternal life)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예수가 오시기 이전의 모든 선지자의 사역은 예수의 오심을 알리기 위한 '전령(傳令)'에 해당하는 것이고, 예수가 세상에 오셔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신 이후의 모든 제자들의 사역도 결코 예수에 대한 '증언'(testimony, NIV)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
호 헤오라켄 카이 에쿠센 투토 마르튀레이 카이 텐 마르튀리안 아우투 우데이스 람바네이
개역개정,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새번역,32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말성경,32 그분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톨릭성경,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어NIV,32 He testifies to what he has seen and heard, but no one accepts his testimony.
영어NASB,32 "What He has seen and heard, of that He bears witness; and no man receives His witness.
영어MSG,32 He sets out the evidence of what he saw and heard in heaven. No one wants to deal with these facts.
영어NRSV,32 He testifies to what he has seen and heard, yet no one accepts his testimony.
헬라어신약Stephanos,32 και ο εωρακεν και ηκουσεν τουτο μαρτυρει και την μαρτυριαν αυτου ουδεις λαμβανει
라틴어Vulgate,32 et quod vidit et audivit hoc testatur et testimonium eius nemo accipit
히브리어Modern,32 ואת אשר ראה ושמע את זאת יעיד ואין מקבל עדותו׃
성 경: [요3:32]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보고 들은 것 - 이 표현 역시 앞서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유사하며 (11절), 헬라어 '보고'에 해당하는 동사는 현재 완료형이고, '들은'에 해당하는 동사는 부정 과거형이라고 하는 점에서 다소 문제시 된다. 어떤 학자는 전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존재성과 관련시키며 후자를 공생애 동안의 사역과 관련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시제상의 차이로 인해 '보는 것'에 더 강조점이 있다고 하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요일 1:3에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동일하게 강조되어 있다. 보고 들은 바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하늘로부터 난 자가 알고 있는 사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신령하고 비밀스러운 일들이나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 그리고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사실, 그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다고 하는 사실 등을 두루 포함한다.
받는 - '받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람바노'(*)는 '능동적으로 취하다'(take), '영접하다'(receive), '깨닫다'(apprehend) 등의 뜻으로 복음에 대한 성도의 합당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호 라본 아우투 텐 마르튀리안 에스프라기센 호티 호 데오스 알레데스 에스틴
개역개정,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새번역,33 그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말성경,33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톨릭성경,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영어NIV,33 The man who has accepted it has certified that God is truthful.
영어NASB,33 "He who has received His testimony has set his seal to this, that God is true.
영어MSG,33 But anyone who examines this evidence will come to stake his life on this: that God himself is the truth.
영어NRSV,33 Whoever has accepted his testimony has certified this, that God is true.
헬라어신약Stephanos,33 ο λαβων αυτου την μαρτυριαν εσφραγισεν οτι ο θεος αληθη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33 qui accipit eius testimonium signavit quia Deus verax est
히브리어Modern,33 ואשר קבל עדותו חתום חתם כי האלהים אמת׃
성 경: [요3:33]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하나님을...인쳤느니라 -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을 전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12:44-50;요일 5:10). 반면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의 기원이 하늘로부터임과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를 통해 밝히 드러났다는 사실 및 하나님의 성품과 그 모든 약속이 진실되고 참되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증거하게 되는 셈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하나님의 진실성은 인간의 인정이나 증거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실하심에 대한 인침(certification)은 하나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인치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프라기조'(*)는 본래의 뜻인 '밀봉하다'의 의미보다는 '재가(裁可)하다', '증명하다'(certify) 등으로 잘 사용되고 있는데 본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다.
혼 가르 아페스테일렌 호 데오스 타 레마타 투 데우 랄레이 우 가르 에크 메트루 디도신 토 프뉴마
개역개정,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새번역,34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 ㉤그, '영'
우리말성경,34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한없이 주셨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 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영어NIV,34 For the on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Spirit without limit.
영어NASB,34 "For H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He gives the Spirit without measure.
영어MSG,34 "The One that God sent speaks God's words. And don't think he rations out the Spirit in bits and pieces.
영어NRSV,34 H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he gives the Spirit without measure.
헬라어신약Stephanos,34 ον γαρ απεστειλεν ο θεος τα ρηματα του θεου λαλει ου γαρ εκ μετρου διδωσιν ο θεος το πνευμα
라틴어Vulgate,34 quem enim misit Deus verba Dei loquitur non enim ad mensuram dat Deus Spiritum
히브리어Modern,34 כי את אשר שלחו אלהים דברי אלהים ידבר כי לא במדה נתן אלהים את הרוח׃
성 경: [요3:34]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이 구절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1) 하나님이 메시야의 증거자인 세례 요한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셨다고 보는 견해(R. C. H. Lenski). 렌스키에 의하면 '주심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도신'(*)은 '계속적인 수여'를 뜻하는 현재 시제로 사용되었으므로 예수께 적용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해야 할 근거는 없다. (2)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심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 성도들이 성령 충만한 은사를 받을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엠 4:7)라는 말씀이 있듯이, 성도들에게 무제한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보기는 어렵다. (3) 하나님이 예수께 성령을 한없이 (without limit, NIV) 부어주셨음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 전후의 문맥으로나 사용된 어휘의 용례 등으로 볼 때 이 세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예수는 곧 성자(聖子)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모든 신성(神性)을 지니셨고 성령과도 하나이셨던 것이다.
오 파테르 아가파 톤 휘온 카이 판타 데도켄 엔 테 케이리 아우투
개역개정,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새번역,35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셨다.
우리말성경,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안에 맡기셨다.
가톨릭성경,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영어NIV,35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placed everything in his hands.
영어NASB,35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
영어MSG,35 The Father loves the Son extravagantly. He turned everything over to him so he could give it away--a lavish distribution of gifts.
영어NRSV,35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placed all things in his hands.
헬라어신약Stephanos,35 ο πατηρ αγαπα τον υιον και παντα δεδωκεν εν τη χει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35 Pater diligit Filium et omnia dedit in manu eius
히브리어Modern,35 האב אהב את בנו ואת כל נתן בידו׃
성 경: [요3:35]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1) 사랑으로 연합된 아버지와 아들 간의 상호 관계 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고전 15:27;계 1:18)의 표현과 유사한 본 구절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과 그 권세로써, 만물 즉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뜻대로 지배하시고 명령하실 수 있는 완전한 권위를 부여받으신 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각각 예수와의 관계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어 있다. (2) 인간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께 의존하시는 모습이다. 전능성(全能性)은 삼위(三位) 하나님 모두에게 속한 것이며 어느 쯤에서 다른 쪽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신성과 아울러 진정한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셨고 바로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세를 수여받으셨던 것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의 '낮아지심' 과 인생의 완전한 모범을 보게 된다.
호 피스튜온 에이스 톤 휘온 에케이 조엔 아이오니온 호 데 아페이돈 토 휘오 우크 옾세타이 조엔 알 헤 오르게 투 데우 메네이 엪 아우톤
개역개정,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새번역,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우리말성경,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가톨릭성경,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영어NIV,36 Whoever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whoever rejects the Son will not see life, for God's wrath remains on him."
영어NASB,36 "He who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he who does not obey the Son wi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abides on him."
영어MSG,36 That is why whoever accepts and trusts the Son gets in on everything, life complete and forever! And that is also why the person who avoids and distrusts the Son is in the dark and doesn't see life. All he experiences of God is darkness, and an angry darkness at that."
영어NRSV,36 Whoever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whoever disobeys the Son will not see life, but must endure God's wrath.
헬라어신약Stephanos,36 ο πιστευων εις τον υιον εχει ζωην αιωνιον ο δε απειθων τω υιω ουκ οψεται ζωην αλλ η οργη του θεου μενει επ αυτον
라틴어Vulgate,36 qui credit in Filium habet vitam aeternam qui autem incredulus est Filio non videbit vitam sed ira Dei manet super eum
히브리어Modern,36 כל המאמין בבן יש לו חיי עולמים ואשר לא יאמין בבן לא יראה חיים כי אם חרון אלהים ישכן עליו׃
성 경: [요3:36]
주제1: [중생에 대한 하나님 아들의 교훈]
주제2: [하나님의 아들 예수]
본절은 사람들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 택일을 권고한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영생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불순종 가운데서 멸망에 처하든지 둘 중 하나가 앞에 놓여 있을 뿐 그 중간 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영생이 있고 - 아버지가 그 아들이신 예수를 사랑하고 만물의 지배권을 주셨다는 앞절의 말씀이 결코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영생이야말로 성도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적용되고 주어질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영생이 현재적 소유의 측면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성도둘 또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육체적 죽음을 경험해야 하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사건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발생하였으므로 그는 영원한 삶에로 들어간 것이다.
영생을 보지 못하고 - 요한에게 있어서 '영생'과 '하나님 나라'는 매우 유사한 단어이다. 본절에서 영생은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 또는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나눔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을 이미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머물러 있느니라 -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구약 성경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는(출 22:24;32:11;신 13:17; 스 10:14) 이 표현은 인간의 일시적인 성냄이나 분노를 의미하는 헬라어 '뒤모스'(*)와는 달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패역한 세대에게 내리시는 일관된 '심판', '벌' 등의 뜻인 '오르게'(*)를 의미한다. '머물러 있느니라'로 번역된 '메노'(*)를 직역하면 '남아 있다'(remain)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새롭게 부여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하나님의 진노(God's wrath, NIV) 아래서 살아가던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롬 1:24). 예수의 증거를 용납하지 않는 자는 죄와 사망과 악의 권세에서 결코 해방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악의 세력 속에 그대로 방치(放置)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처벌은 이미 시작되었고 장래에 끝마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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