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형성사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도입
우리 기독교는 경전인 성경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런 형태로 완성이 되었을까요?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어느 날 갑자기 이 성경책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 아니고 오늘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고 그것이 책으로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한 분이시지만, 무려 1,600년이라는 시간동안 40여 명의 저자를 통해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 본문
구약성경의 형성
자, 먼저 구약성경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구약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원어 성경의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일단 먼저 우리 한글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한글 성경은 구약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글 성경의 구약 구분 | |
율법서 - 5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역사서 - 12권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시가서 – 5권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
예언서 - 17권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원어 성경은 어떨까요? 우리 한글 성경과 약간 순서가 다릅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구약 구분 | |
율법서(토라) - 5권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예언서(느비임) - 8권 | 전기 예언서 :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
후기 예언서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
성문서(크투빔) - 11권 |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예레미야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상하) |
왜 이렇게 한글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과 순서가 다르게 되어 있을까요? B.C. 250년경에 이집트의 왕 톨레미 2세 필라텔푸스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그가 자랑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을 택하여 율법 두루마리와 함께 이집트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마련된 72방에서, 72일간 자기가 맡은 율법서를 번역했고 이것을 하나로 모았는데, 이것을 '70인역'이라 부릅니다. 70인역은 그 후도 계속 번역되어 B.C.130년경 아퀼라(Aquila)에 의하여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헬라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이 70인역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한글 성경은 이 70인역의 순서를 따랐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구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서만 다를 뿐 성경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이런 순서로 구약성경이 구성되어 있을까요? 바로 정경으로 채택된 순서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즉,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고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 율법서 5권이고, 그 다음이 예언서 8권,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록되고 정경이 된 것이 바로 성문서 11권입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은 그 중요성도 다르게 생각합니다. 즉, 성문서를 성전의 바깥 뜰에, 예언서를 성소에, 율법서를 지성소에 비유합니다. 율법서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언서와 성문서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율법서에 대한 전승, 설명, 해설에 불과한 것이라 여깁니다. 자 그렇다면 구약성경 각각의 책이 언제 정경으로 채택이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➀ 율법서(토라)의 형성
먼저 율법서(토라)입니다. 율법서(토라)는 언제 정경으로 채택되었을까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이 토라를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아 기록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율법서 내용을 모세가 기록하였고, 모세의 죽음과 같이 모세가 기록할 수 없는 부분들이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한다면, 늦어도 B.C. 400년 경에는 율법서 5권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전히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➁ 예언서(느비임)의 형성
다음으로 예언서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란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는 예언자를 ‘나비’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 것이죠.
그렇다면 왜 우리가 역사서로 구분하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를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전기 예언서로 구분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인 예언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입장에서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하여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전기 예언서의 경우,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여호수아 자신이 여호수아기를 썼고, 사무엘이 사무엘서와 사사기를 썼고, 예레미야가 열왕기를 썼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수아와 사무엘도 예언자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이 책들을 예언서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전기 예언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의 영향이 제일 컸던 시대 곧 B.C. 650-550년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언자의 시대가 학개, 스가랴, 말라기로 끝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후기 예언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들도 그들의 사역이 끝난 후인 B.C. 5세기 이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예언서들이 지금과 같이 완성되어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언제일까요? 다니엘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B.C. 167년경에 나타난 책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다니엘서는 확실히 예언적 성격을 가진 것이어서 예언서와 같이 나열되어야 할 책인데 그것이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언제나 성문서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나타날 무렵에는 이미 예언서들이 정경으로 확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언서는 적어도 B.C. 167년 이전에는 모두 구약성경으로 채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➂ 성문서(크투빔)의 형성
구약성경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에 속한 여러 책들은 오랫동안 종교 문학으로 간주되었고 율법과 예언서에 대한 비공식 부록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문서가 2차적인 성격의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구약성경을 보통 '율법과 예언자'란 말로 호칭했던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회당 공중 예배에서 낭독하는 것은 주로 율법과 예언서였으며, 율법과 예언서는 곧 구약성경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문서가 율법이나 예언서와 같은 수준에 서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문서에 속하는 11권의 책이 어떻게 해서 구약성경의 일부분이 되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성문서에 속한 책들의 절대적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거나 읽혀지지 않는 책은 금방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문서는 일반 백성들이 널리 읽던 인기 있는 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리로 사람들을 감화 감동시켰기 때문에 계속해서 보존될 수 있었고 결국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물론 이 성문서가 공식적인 구약성경으로 채택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A.D. 1세기 말에는 성문서를 비롯하여 구약성경 전체가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➃ 구약성경의 확정
A.D. 90년경 현재의 얍파(Jaffa)에서 멀지 않은 해안 도시 얌니아(Jamnia)에서 유대 랍비들과 학자들의 권위 있는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에서 구약성경의 책들이 최종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구약성경과 똑같이 결정되었습니다. 그 후 여기저기서 한두 학자가 구약 책 중 어떤 것들에 대하여, 특히 성문서에 속하는 몇 책에 대해서 의심을 표시한 일이 있었지만, 구약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를 삼거나 논란을 일으킨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근 천 년의 긴 역사를 거쳐서 한 권의 거룩한 총서로, 그리고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약성경에 속하는 책들이 성경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 어떤 교회의 회의나 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은 그 책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역사와 경험이 명백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증명해 주었기 때문에 성경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얌니아 회의나 그 밖의 어떤 회의가 구약성경의 책을 결정할 때에는 이미 성경책 스스로가 자신의 권위를 증명해 놓은 것을 단순히 확인하는데 불과하였습니다. 그러한 회의가 이 책들을 성경이 되게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그것들을 그렇게 믿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수락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성경의 권위보다 그 성경을 결정한 교회의 전통이나 권위를 더 높이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2. 신약성경의 형성
자, 이제 신약성경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도 여러 저자에 의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된 책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서 집성되어 이루어졌습니다. 본래 신약의 교회는 신약성경을 가지지 않았고, 구약성경만을 그들의 경전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신약성경을 기록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왜 신약성경을 기록하게 되었을까요?
첫째, A.D. 70년경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살아서 직접 증거하던 것이 잊혀지기 전에 문서로 남길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둘째, 초대 교회의 선교 운동이 급속히 전개되어 갈 때 기록된 말씀의 가치는 매우 컸습니다. 기독교가 불길처럼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어 갈 때, 조급한 심정으로 땅끝까지 가서 증거 하려는 선교사와 전도자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제일 좋은 방법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글로 적어서 남겨두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혹은 어떤 사정으로 전도자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는 경우에도 문서로 된 복음을 전해줌으로써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수십 년간 지연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열렬한 재림 신앙을 가지고 구전으로만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앞으로 미래의 교회를 위하여 문서로 된 말씀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넷째, 이단들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활발한 교회였기에 복음 전파에 열광적이었지만 또 반면에 복음을 오해하고, 곡해하고,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사로운 계시를 주창하고, 자기들 나름의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짓 복음들과 왜곡된 신학과 비윤리적 삶을 판단하고 가려내기 위해서 표준적이고도 공적인 복음 문서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성문화된 문헌들이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신약 문헌의 대부분은 어떤 개별적 교회 혹은 교회의 작은 단체를 위해서 기록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은 이 편지들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생활의 여러 가지 위기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가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읽혀지고, 라오디게아를 통하여 오는 편지를 골로새에서 읽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골 4:16).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생긴 수많은 문서들 중에 어떤 책이 정경으로 채택될 수 있었을까요?
초대 교회가 정경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도적 저작권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목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글이나 그들과 관련된 사람의 글이 교회에서 널리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리에 유용한 것으로 인정되고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사용되었다면 그 글은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정경으로 채택될 수 있었습니다.
➀ 바울서신의 형성
이제 구체적으로 신약성경의 형성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약문서들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되고 한 책으로 수집된 것은 바울의 서신들입니다. A.D. 100년경에는 이미 바울 서신들이 한 책으로 수집되어 널리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거의 모든 경우에 어떤 지방의 구체적인 형편을 다루어 취급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무지하고 위험한 이단 사상들이 대두하거나, 교회 안에서 실제적인 문제들이 일어나 어떤 교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경우가 생길 때, 바울은 자신이 모든 곳에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편지를 썼습니다. 즉, 바울의 편지들은 어떤 특정 시간에 어떤 특정 교회가 당면한 정황을 취급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들이며 초대 교회의 매우 소중한 문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서신들은 점차적으로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➁ 복음서의 형성
예수님의 사건과 그에 대한 가르침은 우선 구두로 전달되었고, 전도자들과 교사들에 의해서 직접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복음서들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4복음서 외에도 수많은 복음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떻게 해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4복음서만 남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과정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4복음서는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이 깃들인 책들이어서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독자들에게는 무언중에 감화를 주고 따라서 자연히 진정한 복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어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복음서 자체가 지닌 그 진리성과 권위가 독자들을 압도하고 변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그렇지 못한 문서들은 자연히 도태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A.D. 200년 이전에 이미 4복음서는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교회의 매우 중요한 기본 문서가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 교회에는 네 복음서가 있음으로 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타시안이라는 사람은 ‘디아테사론’이라는 책을 만들어 복음서를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실패했고 결국 교회는 복음서를 하나로 만들려는 운동을 배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 무엇보다 사도적 증언을 존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네 복음서들이 모두 사도적 권위를 가진 책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수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➂ 그 밖의 책의 수집
4복음서와 바울 서신 외에는 그만큼 일찍 신약성경으로 수집된 책들은 없었습니다. 사도행전도 누가가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으로 인정을 받는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공동서신이 한 그룹으로 모인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었고 그 과정이 오래 걸렸습니다. 어쨌든 초기에는 그런 수집체가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2세기 말까지도 베드로전서와 요한1서만이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처음에 널리 알려졌고 인정받았지만 일부의 반대를 받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책이 정경으로 채택되어 상당히 견고한 위치를 얻기까지는 200년 이상이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책들은 A.D. 4세기에 이르러서야 정경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➃ 신약성경의 확정
초대 교회에 나타나 유포되던 수많은 그리스도교 문서들 중에 4복음서, 바울 서신, 사도행전 등 국한된 책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제 멋대로 어떤 책을 영감된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인정해서가 아니라, 그 책 자체가 사도적 저작인 동시에,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말씀의 능력이 독자들에게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책 그 자체가 지닌 거룩한 권위와 가치가 아니었다면,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채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책이 사도적 권위를 가질 뿐 아니라, 먼저 채택된 다른 책들과 내용적으로 조화가 잘 되어서, 교회가 일시적으로만이 아니라 계속 그것을 예배에 사용하게 될 때, 마침내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좀 더 명확하게 어느 책은 성경이고 어느 책은 성경이 될 수 없는지 확실한 한계를 그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였습니다. 여러 이단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자신들 나름의 성경 목록을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서방의 교회에서는 힙포 레기우스(Hippo Regius)에서 393년에, 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age)에서 397년에 각각 대회로 모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을 신약성경으로 정식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제롬(Jerome)의 라틴어 번역(Vulgata)을 통하여 전 서방 교회에 유포,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방에서는 일부가 계시록의 정경성을 계속 의심하였지만 대부분의 동방 교회도 결국은 서방 교회의 정경과 동일한 정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A.D. 397년 이후에 지금과 같이 완성된 신구약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성경의 원본과 사본
자, 그렇다면 이렇게 완성된 성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보존되었을까요? 성경이 문서화되었지만 그 재료들은 파피루스나 가죽종이여서 그 원본들을 오래 보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새로운 사본들을 만들어 보관하고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성경의 원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사본들만 남아 있습니다.
➀ 구약의 사본들
구약성경의 사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1947년까지는 구약성경 사본 중 제일 오래된 것이 기원후 9세기 말에 필사된 맛소라 사본이었습니다. 이 사본은 A.D. 5세기와 6세기에 맛소라(Massora-‘전통’이라는 뜻)학자라고 하는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서 편찬된 것입니다. 그들은 띄어쓰기도 없고 모음이나 억양 기호나 구두점도 없었던 히브리어 성경에 고정된 띄어쓰기를 적용하고, 모음, 억양, 구두점 등을 붙여서 맛소라 사본을 만들었습니다.
이 맛소라 사본은 크게 두 개 정도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알렙포(Aleppo) 사본입니다. 이 알렙포 사본은 맛소라 사본 중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 A.D. 930년경에 슐로모 벤 부야(Shelomo ben buya)에 의해 쓰여졌고, 아론 벤 모세 벤 아세르(Aron ben Mosses ben Asher)가 수정을 가하고 모음 기호를 조정하고 마소라 주기 등을 고쳐서 만든 것입니다. 이 사본은 매우 귀중하게 보관되어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만 예배용으로 사용되었고, 학자들이 성경본문에 대해 의견을 달리할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이 사본은 원래 구약 전체를 다 포함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760면 중 588면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교에서 1965년부터 이 알렙포 사본을 대본으로 성경을 출판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레닌그라드 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현존하는 맛소라 사본 중에서 유일하게 구약 성경 본문을 모두 수록하고 있는 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맛소라 사본 중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것으로 약 A.D. 1008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본 본문으로 삼고 다른 히브리어 사본들을 비교 검토해서 비평을 첨가하여 엮은 것이 지금 구약학계에서 쓰고 있는 인쇄본 히브리어 성경입니다. 키텔(독일의 학자)이 레닌그라드 사본을 기본 원문으로 하고 비평 작업을 해서 만든 히브리어 성경을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키텔”(BHK)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공동번역 성경이 이 성경을 원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신판 히브리어 성경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제4판인데 이 성경은 그 출판지역 이름을 따라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라고 부릅니다. 우리 나라의 개역한글판은 이 BHS를 참고해서 개정했습니다. 이 성경은 키텔의 “비블리아 헤브라이카”를 40년 만에 수정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은 것으로, BHK의 오기를 많이 수정했고, 또 맛소라 주기 표기에 있어서도 BHK보다 더 상세합니다.
맛소라 사본 이외에도 구약에 관련된 사본이 몇 가지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내산 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1859년에 독일 학자 티센도르프가 시내산에 있는 성 케서린 수도원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4세기의 것으로 훌륭한 양피에 기록된 헬라어 성경 사본입니다. 여기에는 신구약 성경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구약은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이 수록되어 있고 신약 27권과 바나바 서신, 헤르메스의 목자가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947년 이후 이스라엘의 사해 서북 연안의 쿰란이란 곳에 있는 동굴들 속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입니다. 학자들은 이 사본들이 B.C. 2세기-A.D. 1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알려진 9세기 사본보다 무려 1000년이나 더 오래된 사본인 것입니다. 이 사해 사본에는 이사야, 하박국, 신명기, 사무엘, 예레미야, 소선지서, 출애굽기, 민수기 시편 등의 자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파손된 것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낡은 사본들이 맛소라 사본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얼마나 원문 그대로 잘 보존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➁ 신약의 사본들
신약성경의 사본은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약 사본학자 브루스 메츠거 박사의 말에 의하면 신약 사본이 대략 24,000개나 존재하며 그 중에 여러 사본들이 원본과의 거리가 다른 고대문서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의 원문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6대 자료는 파피루스 사본,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성구집, 교부들의 인용문, 그리고 고대 번역본들입니다. 이 중에서 처음 다섯 종류는 책 재료, 글씨체, 용도 등에 따라 분류된 것인데, 모두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신약성경 사본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헬라어 사본이 5,746개, 라틴어 사본이 약 10,000개, 여타 언어로 된 사본은 8,000여 개 정도 남아 있습니다. 헬라어 사본은 구체적으로 파피루스 사본이 총 118개, 대문자 사본이 318개, 소문자 사본이 2,877개, 성구집이 2,433개입니다. 헬라어로 된 사본 중에서 신약성경 거의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60개, 요한계시록만 없고 신약이 다 있는 사본은 149개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만 거의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약 1,950여 개, 사도행전과 일반서신만 포함하는 사본은 400여 개, 바울서신만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500여 개, 그리고 계시록만을 포함하는 사본은 220여 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본은 파피루스 사본과 대문자 사본입니다. 왜냐하면 파피루스 사본은 그 연대가 2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있고, 대문자로 필사되었습니다. 즉, 원본에서 가장 가까운 사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파피루스 사본들은 거의 조각들입니다.
주로 양피지에 기록된 대문자 사본은 현재 약 300여 개 남아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사본은 독일의 사본학자 티센도르프에 의하여 시내 산의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1844년에 처음 발견된 시내산 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우여곡절 끝에 1859년 성 페테스부르그의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에게 증정되었다가, 대영 박물관이 정부의 도움으로 1933년에 10만 파운드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본은 4세기경(360년 이전)의 양질의 가죽 사본이며 신약 전부와 구약의 대부분, 그리고 바나바서, 헤르메스의 목자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시내산 사본은 대문자 사본 중에서 유일하게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본인데, 사복음서, 바울서신(데살로니가 후서 다음에 히브리서를 포함하고 있다), 사도행전, 공동서신, 계시록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1) 5세기경의 사본으로 신구약의 대부분과 신약 끝에 클레멘트 1서와 2서가 포함되어 있는 알렉산드리아 사본, (2) 4세기경의 사본으로 마카비서를 제외한 구약 외경 전부와 신구약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나 히브리서 일부와 목회서신, 빌레몬서, 요한계시록이 누락되어 있는 바티칸 사본, (3) 5세기경에 필사되고 12세기경에 지워진 사본으로 추정되며, 신약에서 데살로니가후서와 요한이서만 제외하고 다 남아 있지만 각 책에서 결손된 부분이 많은 에프라임 사본, (4) 종교개혁가 칼빈의 친구인 베자가 캠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1581년 기증한 베자사본, (5) 6세기경에 이중 언어(왼편에 헬라어, 오른편에 라틴어)로 필사되고 바울서신과 히브리서가 포함되어 있는 클라로몬트 사본, (6) 4세기말이나 5세기 초에 기록된 사복음서 사본인 워싱턴 사본, (7) 9세기경의 후기 대문자체로 필사된 사복음서 사본인 코리데티 사본 등이 대표적인 대문자 사본입니다.
➂ 인쇄 본문과 한글 성경
15세기 중엽에 인쇄술이 발명되면서부터 사본 시대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처음으로 인쇄본으로 나온 것은 1456년 마인츠(Mainz)의 요한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에 의해서 출판된 라틴어 성경(불가타)이었습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1488년 롬바르디(Lombardy)에 있는 송키노(Soncino) 출판사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판된 것은 그 보다 한참 후인 1516년의 일입니다.
인쇄되어 최초로 시중에 판매된 헬라어 신약성경은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에 의한 것으로 1516년의 일입니다. 이 성경은 스테파누스, 베자, 보나벤투어, 아브라함 형제 등의 작업을 통하여 후속 판들이 나왔습니다. 이 에라스무스의 후속 판들은 라틴어로 소위 Textus Receptus(수용된 본문)라고 합니다. 이렇게 30여 판이나 재판되어 대중적으로 유럽 전역에 알려지고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된 헬라어 신약성경인 에라스무스의 본문은, 사실 급하게 수집된 12-13세기의 3-4개 소문자 사본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즉, 신약성경의 원문에 충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에라스무스 성경은 19세기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킹 제임스 버전(KJV)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번역 성경의 대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이래 많은 성경 사본들이 발견되고, 성경 원문 비평학이 발달함에 따라 더 원문에 가까운 신약 원어 성경들이 나타나자 Textus Receptus의 영향력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라흐만(Charles Lachmann)이 1831년에 출판한 헬라어 신약성경을 필두로 계속해서 많은 비평판 신약 원어 성경이 나타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웨스트코트(Westcott)와 호르트(Hort)의 공저인 1881년 판 성경, 폰 조덴(Hermann von Soden)의 것(1902-1913), 수터(A. Souter, 1910), 포겔즈(H. J. Vogels, 1920), 네슬과 알란트의 공저인 네슬-알란트 판 성경(Nestle-Aland, 1950-현재) 등입니다.
이 중에 네슬-알란트 판 신약성경은 신약성경 본문비평 분야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연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표준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등과 기존 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였으며 현재 28판까지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한글 성경의 대본은 비평판 신약 원어 성경인 네슬-알란트 판 헬라어 성경입니다. 따라서 예전의 성경들보다 훨씬 더 원본에 가까운 원문을 대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의 많은 학자들의 정성스러운 노고의 결과로서 성경 원본에 최대한 가까운 본문을 가졌고, 또 그것을 양심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성실하게 번역하려는 성경 번역자들의 손을 거쳐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글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있는 성경책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4. 성경묵상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성경을 우리는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고 묵상해야 할까요? 성경묵상의 방법에는 크게 6가지가 있습니다.
개인 | 소그룹 | 리더(지도자)-청중 | |
해석중심 | 개인 성경 공부 | 그룹 성경 공부 | 성경 강의 |
적용중심 | 큐티 | 큐티 나눔 | 설교 |
이것은 성경 읽기를 두 가지 관점, 세 가지의 주체로 나눈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성경 읽기가 골고루 이루어져야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보통 초신자는 성경 내용을 잘 모르고, 다른 성도들과 만나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도 어색하기 때문에 설교와 성경 강의를 통해서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이 사람들은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여 그룹 성경 공부나 큐티 나눔에도 함께하여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경을 묵상하는 경험을 하고, 어떻게 개인적으로 성경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개개인이 스스로 성경 본문을 숙고하고 곱씹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개인이 스스로 성경 공부와 큐티를 잘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묵상 내용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전에는 수혜자의 측면으로 소모임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기여자의 측면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면 성경 강의나 설교까지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혼자 성경을 공부하고 큐티를 한 것이 풍성해져서 이제는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강의 | → | 그룹 성경 공부 | - 수혜자의 측면 | |
설교 | 큐티 나눔 | |||
↘ | ||||
개인 성경 공부 | ||||
큐티 | ||||
성경 강의 | ← | 그룹 성경 공부 | ↙ | 기여자의 측면 |
설교 | 큐티 나눔 |
따라서 개인 성경 공부와 큐티는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우리가 함께 나눈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냥 장식용이 아니라 보관용이 아니라 읽고 실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읽으시길 바랍니다. 묵상하고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유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끼치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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