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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조직신학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22. 성화 (22/52)

질문35. 성화가 무엇입니까?

답. 성화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 이로써 우리의 전인격이 하나님이 형상을 따라 갱신되고, 죄에 대해서 더욱 죽고 의에 대해서 더욱 살게 됩니다.

 

 

해설.

 

성화의 주된 은혜

성화에는 거룩한 용도로 구별했다는 의미(요 10:36)와 정결하고 순수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고전 6:11; 히 13:12)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중생과 성화 모두 하나님이 거져 주시는 은혜이지만, 성화는 점진적인 사역이다(고후 3:18). 이는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성화는 구원의 은혜의 주된 원리인데, 이로써 마음이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후 우리는 본질상 오염되어 있다. 지성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정서는 탐욕과 욕망을 추구하고, 의지는 거룩한 것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부패되고 더러운 심령을 정결하게 씻으시고, 그 가운데 거룩한 성질을 심으시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화는 주로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에 깊이 심기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과 정서와 의지에 영향을 주어서 전인격에 변화가 일어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골 3:10).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갱신되는 것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의 효과는 전인격이 갱신되는 것이다. 이것은 몸과 마음 모두 우주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갱신된다는 것은 그 기능들이 새로워져서 새롭고 변화된 삶이 영적인 습관 속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 역시 갱신되어서 주께 굴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갱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것은 지식과 의와 거룩함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말한다(골 3:10).

 

성화의 수단

성화의 내적인 수단은 믿음이다. 믿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도구이지만 이로써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진리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내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어서 성령의 교통하심 속에서 더욱 거룩해지는 것이다. 

성화의 외적인 수단은 성경에 계시된 진리이다(요 17:17, 19; 벧전 1:22, 2:2).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어야 한다. 또 다른 외적인 수단으로는 성례(마 3:11)와 기도(요 14:13)가 있다.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이러한 수단들이 효과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은혜로운 징계도 성화의 외적인 수단이다(히 12:5-11). 징계를 통해서 죄를 버리고 더욱 거룩함을 추구하게 된다.

 

성화의 효과들

성화의 효과 혹은 구성 요소는 먼저 옛 사람이 죽는 것이다. 즉 옛 사람의 습관과 정서, 정욕적인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갈 5:24). 그리고 은혜의 원리들이 심령 속에서 더욱 강화되어서 영혼의 모든 기능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게 된다. 그래서 더욱 순종하고 의에 대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비록 하나님 앞에 공로의 근거는 될 수 없지만 선행이 나오게 된다(엡 2:10; 요 14:21).

성화는 전인격에 영향을 준다. 즉 지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과 의지적인 면 모두에 영향을 준다(엡 1:17-18; 고후 4:6; 살전 5:23). 그래서 성화의 표식들은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것과 교만과 정욕을 죽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리고 거룩한 것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모습이다. 기도의 의무를 다하며, 모든 신앙적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 즐거워한다. 그리고 대화나 삶 속에서 질서 있는 삶을 추구한다.

성화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완전한 것에 이르게 하지는 않지만 완전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거짓 성화들

때로는 도덕적인 덕을 성화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성품이 정직하더라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가 없다면 그것은 성화가 될 수 없다.

거짓 성화로서 위선적인 성화가 있다. 심령은 거룩하지 않지만 거룩한 척하는 경우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는 경우이다(딤후 3:5). 때로 성령 충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아서 그 속에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죄에 대해서 죽지 않고 교만하다면 거짓 성화이다. 그 판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의를 생각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화가 필요한 이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거룩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살전 4:7). 칭의가 있다면 삶 속에서 성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화가 없다는 것은 칭의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거룩함이 없다면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히 12:14). 즉 성화는 구원의 부분으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칭의가 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부족한 말이다. 오히려 삶 속에 성화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더욱이 성화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엡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