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문서설이 성서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그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종종 나타나기는 하지만 학술 강연이나 논문을 통하여 문서설과 직접 정면 대결하는 일은 사실상 주저하거나 기피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문서설에 반대할 뿐 문서설의 취약점과 그 내막에 대해 어둡기 때문에 대항할 수 있는 학술적 이론과 자신감을 결여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서설은 아무런 제동도 받지 않은 채 전진을 거듭하여 신학 출판계는 물론 교계 까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몇 해 전에는 주일공과에까지 문서설에 바탕을 둔 단원이 소개된 일이 있었다. 문서설이란 세 글자는 신학지식의 유무를 판가름하는 척도인 양 되었으며, 문서설을 아는 것이 곧 신학을 아는 것으로 풀이되어 그에 반대하는 이는 곧 전근대적인 사상을 가진 이로 간주되게끔 된 것이다. 때가 너무 늦어 이미 문서설의 전진을 멈추게 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문서설이 지니고 있는 취약점과 허구를 문서와 강의와 설교를 통해 꾸준히 밝혀낸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문서설이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추측(guess)에서 출발된 하나의 가설(hypothesis)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을 만분의 일이라도 충족시켜 보려는 심정에서 본서를 내놓게 되었다. 미약하나마 본서를 통하여 보다 논리적으로 문서설을 분석, 비판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977년 6월 서울 광장동 장로회 신학대학 연구실에서 베제민
머리말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는 이 글은 본래 1940년 여름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교사들의 대학원 과정을 위하여 써진 것입니다. 이 과정이 끝났을 때에 많은 교사들이 저에게 달려와서, 이 강의 내용을 처음부터 끌까지 다 출판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원할 때에 쉽게 그 과목을 재정리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저의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들도 책을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함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어떠한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출판이 지연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년 이상이 경과한 후에야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오경, 특히 창세기를 강의하려고 준비할 때였습니다. 창세기는 제가 플로렌스 주립 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던 1925∼26년과 그 후에도 강의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학설들로는 성서 원문을 연구할 때에 발생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견이 없고 정확한 원문 연구에 근거하여 어려운 문제점들을 다시 조사해보았습니다.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이태리어와 히브리어와 독일어로 일련의 논평을 썼는데, 마침내는 1934년에 이태리 아카데미의 원조를 얻어 플로렌스 대학의 주관 하에 이태리어로 된 방대한 작품이 출판되었습니다. 이제는 히브리어로 그 책의 제 2판을 내려고 편집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료들을 재정리하자면 아마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그마한 책을 출판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책엔 이태리어로 써진 책이 요약되어 있고 여기저기에 새로운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일련의 강의로서 요약했기 때문에 그대로 출판하고자 합니다. 이 책의 본래적인 성격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가했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자세한 연구를 전문적인 학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주제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단순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적인만큼 이런 종류의 책에 가장 적합한 강의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대중들에게 내놓는 동시에 작년에 교사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해 주는 셈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 참고 문헌이나 자세한 주(註)나, 흔히 사용되는 어떤 학적인 도구를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태리어로 된 책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라도 빠뜨리지는 않았습니다. 내용이 학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학적인 도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저의 논문 전체는 학문적인 도구를 기초로 엮어진 것입니다. 이 책엔 주(註)를 생략했으나, 이 과목을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로서 짧은 참고 문헌을 뒤에 첨가시켰습니다. 이 책은 방대하게 학적으로 써진 책을 대중적으로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논의된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진술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해하기가 곤란한 점을 발견하신 독자는 가능하다면, 이태리어로 써진 저의 책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대학 출판국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이 책을 시리즈로 출판하도록 해 주신 출판국장 J. L. Magnes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대학 출판국 간사인 A.lbn- Sahav씨와 A.Po.znanski씨께서 책을 인쇄하는 일체의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바이며 또한 성실하게 일해 주신 모든 'Ha-Ivri' 인쇄사 직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책이 중요한 주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Yishuv(Palestine Jewish community)가 더 큰 의욕을 품고, 아무 편견 없이 다만 성서 원문을 완전히 이해하며 진리를 찾고자하는 목표를 가지고 성서의 학적인 연구에 몰두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삼가 바라는 바입니다.
1941년, 예루살렘에서 U. Cassuto
제 1장 문서설과 그 표준
학문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끊임없는 불안정성(restlessness)이다. 학문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그 양상을 달리하며 형태를 변경시키고 새롭게 하며 끊임없이 확장되고 진보한다. 그 승리와 정복은 새로운 승리를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성취는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준비 단계를 형성할 뿐이다. 분석하여 찾아내고, 종합하여 건축학적으로 정리된 돌들로 학문이 스스로 건축한 건물들은 인간의 지력으로 지어진 찬란한 궁전인데도 영원히 지속되기를 운명 지워진 것은 아니다. 그 건물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지붕 꼭대기로부터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건물 앞에 펼쳐져 있는 영역과 앞으로 뻗어나간 대로를 보게 하여, 우리 앞에 있는 오솔길을 비춰 주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 건물들 중 어떤 한 건물은, 한동안 바람과 폭풍우를 이겨 낼만한 힘을 가진 견고하고 안정된 건물로 이름이 났었는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흔들거리며 쓰러지려고 하기 시작한다. 이유인 즉, 그 건물의 기초가 견고하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고, 벽과 기둥을 쌓은 돌들이 본래 약한 돌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건축자들이 공사를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 모든 원인들이 다 합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응당 그 건물을 버리고 옛 건물 대신에 새 건물을 세울 적절한 장소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런 경우는 학문의 역사상 비일비재하게 있는 일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할 강의를 시작함에 있어서 성서학의 분야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겠다.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영구히 변치 않는 학문적 성취이며 결코 변치 않는 결론이라고 인정되었던 개념들이, 이제 와서는 그 비판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으며 일부는 모호한 채 남아있고 일부는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아주 자명한 학문의 공리인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사고 체계도 붕괴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설계사들과 건물들을 세운 건축자들의 세계에서도 건물이 미래에 지속될 것인가에 관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성서학은 현재 오경의 기원과 저작에 관련된 성서의 근본적인 문제들 속에서 가장 심각한 질문을 받고 있다. 최근까지 문서설이라는 학설은 가장 유력한 학문적 체계로 생각되었다. 문서설은 그 학설이 형성될 당시처럼 아직까지도 하나의 '이론'(theory)으로 지목되었지만, 그 본래의 성격을 잊어버렸다. 다른 학문적 가설들은 사멸되는데도 문서설은 운이 좋게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율법(Torah)이 제 2성전(the Second Temple) 당시에 여러 가지 문서와 자료를 가지고 편집되었다는 것을 의심한 학자는 하나도 없었다. 첫 번째 자료는 J(Jahwist)였는데, 여기에 창조이야기의 시작부터 야웨(YHWH)가 사용되었다. 두 번째 자료는 E(Elohist)였는데, 여기에 나타나는 네 자로 된 신명(Tetragrammaton)은 처음에 모세에게 계시되었다. 그래서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보다 앞에 있는 모든 이야기 부분(narratives)에는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썼다. 세 번째 자료는 P(Priestly Code)였는데, 이것은 제사적인 테두리 안에서 나온 것이고, 모세 시대 이전엔 야웨(YHWH)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네 번째 자료는 D인데, 이것은 신명기의 주요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떤 해석자는 이 자료가 더 먼저 된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학자는 다른 자료가 더 먼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일정한 부분이나 성경 구절을 어떤 문서에 소속시키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다른 문서에 소속시킨다. 어떤 학자들은 여러 자료들 중에서 한 부분이나 한 구절을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분류시키며, 다른 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분류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문서 자체를 다른 계층들로 분류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문서에다가 새로운 자료를 첨가시키기도 하는 등 의견이 구구하다. 어느 두 학자도 완전히 동일한 견해를 제시해본 적이 없다. 이런 견해의 다양성은 문서설 전체적인 면에 어떤 약점을 주기도 했지만 가설의 근본적인 원리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해석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문서설을 반대하고 아주 다른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했던 사람들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은 고립되어서 다른 탐구자들로 하여금 문서설을 버리도록 권고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이다. 즉, 반대자들 대부분이 정확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비판을 능가할 만한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한 사람들도 수용력이 있는 해석을 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떻든 문서설은 학문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주도권을 잡고 행세할 수 있었다. 이미 1924년에 독일에서, 성서연구를 위한 권위 있는 잡지의 편집자였던 H. Gressmann은 <구약학술잡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오늘날 육경(Hexateuch : 오경에 여호수아서를 첨가한 것) 안에 있는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토대를 두지 않은 성서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그리고 그 자료들과 그에 따른 결론에 의거한 원문의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만일 우리의 학문적 과업에 협력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지금까지 되어진 모든 연구가 헛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분명히 성서비평에 있어서 새로운 혼란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하여도 문서설에 전적으로 동조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학자들은 문서설에 질문을 던지고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편집자의 말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전에 문서설을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인 W. Staerk는 그 자료들의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관하여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같은 해에 M. Lohr도 <창세기의 제사법전>이라는 팜플렛을 출판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그전까지 자기가 지지했던 문서설을 반대하고, 창세기는 P자료로 분류될 만한 부분이나 구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1933년에, 문서설의 지지자였던 P.Volz와 W. Rudolph는, <작가로서의 E기자, 오경비판의 미로>라는 글을 썼는데, 그 책에서 이들은 오경 안에서, E자료와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 부분은 없고, 그러나 만약 있다고 한다면 E는 기껏해야 J자료를 새로 증보해서 편집한 편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학자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학파의 해석에 비해서 굉장히 과감한 해석을 했지만 이들의 연구방법론은 아직도 상투적인 냄새가 나며, 이들은 성서의 기원성을 밝혀 주는데 그렇게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그들의 관점은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Yehezkel Kaufman과 같은 학자는 성서를 문서설적으로 해석하는 학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종교사>라는 귀중한 연구에서 그랬듯이 그는 문서설적인 해석의 어떤 한 부분을 멋있게 논박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자료에 따라 원문을 분류한다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의 관점은 거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오늘날 풍미하고 있는 정신적 흐름을 지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일의 어느 잡지에 문서설과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혹평을 했던 편집자의 글이 발표된 지 11년 후에 그 잡지의 새 편집자가 된 Hempel 교수가 앞에서 말한 나의 책에 대한 평론을 썼다. 여기에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그는 나의 글에 찬사를 보냈다. 자기 의견에는 나의 글이, 창세기의 기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서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문서설적인 해석을 주장하고 그런 학파의 거물급에 속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때까지 성서 해석자들이 받아들인 문제 해결하는 방법과는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의 가능성이 시사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준다. 그러므로 최근까지는 지배적이었던 그 학설이 건전한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주의를 집중시켜볼 필요가 있다. 그 기초가 든든하고 타당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그 기초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계속되는 강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했는가에 대한 역사에 관하여 몇 가지를 예비적으로 관찰하여 보고자 한다. 그 역사 자체에서도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경의 기원과 저작 문제에 관련하여 종종 발표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어떻게 발전되었느냐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여러분들은 적어도 중요한 문제거리에 관한 역사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어떻든 흥미가 있는 사람들은 성서에 관한 개론적인 논문들을 통하여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
이 글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연구하다가 설정한 과정과, 호머의 작품인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라는 두 시의 기원 문제에 관한 헬라 문학에서의 유사한 문제점을 연구하다가 설정된 과정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간단히 지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인디언들의 서사시에 관한 연구와 지중해 연안의 유럽인들의 시에 대한 연구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주제로 너무 지나치게 긴 논의는 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호머의 시에 관련된 자료들을 몇 개만 참조하도록 하겠다. 호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관한 역사와 성서의 문제점에 대한 역사 사이의 관련성은 아직까지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단계에서도 두 분야의 연구에서 나온 견해와 이론들을 비교하여 보면 놀랄 만한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때나 호머와 성서에 관한 문제점들 사이에는 비슷한 개념들과 가설들이 남아 있다. 각각의 경우에, 산발적으로 의문점이 제기된 뒤에는 조직적인 비판의 소리가 들려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17세기였다. 그 문제는 두 분야의 연구에서 동시에 제기되었다. 두 분야는 모두 거의 동시에 학문의 세계에서 주름잡던 해석학적 체계의 발달을 위해서 첫 발을 디뎠다.
오경 안에 있는 자료들을 분석하는 일은, 1711년에 힐데스하임(Hildesheim)에서 출판된 어떤 책에서 Witter가 처음으로 시도하였다. 창세기 1장을 연구한 결과 Witter는 율법 이전에 모세에게 자료를 제공했던 고대의 작품들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Witter의 논문은 여러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한동안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비슷한 견해를 말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그 책은 불란서의 의사인 Astruc의 저작으로서 <모세가 창세기를 썼다는 원래의 문서에 관한 추측>이라는 제목으로 1753년에 브루셀(Brussels)에서 출판되었다. Astruc은 이런 일에 있어서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았다.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 초반부를 연구한 후에, 모세가 두 개의 주된 문서와 몇 개의 보조 자료를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린 이 논문은, 새로운 성서 해석의 바탕으로 인정되었고, Astruc은 ‘문서설의 아버지’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호머의 작품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하다. 새로운 개념에 대한 최초의 토대를 놓은 사람은 불란서의 아마추어 평론가였던 Abbe d’Aubignac였는데, 그는 ‘호머 연구의 아버지’라고 불려졌다. <일리아드에 관한 학문적인 추측 또는 논문>이라는 제목을 가진 그의 책은 1715년 그가 죽은 후에 출판되었는데, 그는 호머의 시들은 한 저작이 아니라 본래는 아무 상관이 없던 시들이 모여서 엮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Astruc의 작품과 d’Aubignac의 작품은, 제목을 ‘Conjectures’라고 한 점에 있어서 서로 유사하다. 여러분은 아마, 그 때 그곳에서는 그런 문체로 글을 썼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런 논법이 그 당시의 학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Astruc 이후에 독일의 전문적인 학자가 나타나서 Astruc의 견해를 완전히 체계화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Eichhorn은 1780∼83년에, <구약 서론>이라는 그의 책 초판을 출판했고, Wolf는 1795년에, <호머 서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경우에도 두 작품의 명칭이 ‘서론’이라는 점에서 상호관계가 있다. 저서명의 유사점은 단순히 우연한 일치라기보다는 원문에 대한 접근과 연구 방법론의 유사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비슷한 결론에서 나온 접근 방법의 유사성 말이다. 호머의 시는 물론 오경에 있어서도 독립된 자료의 문서들이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이 두 이론들은 어떤 면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율법(Torah)의 경우엔, 그 가설은 제한된 몇몇 개의 문서에 관련되어 있다. 방대한 각 문서에서 발췌된 다양한 문단은 현재의 오경 안에 통합되어 있다. 그런데 호머의 서사시는 기원이 다르고 서로 관계있는 수많은 작은 시들이 혼합해서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 1802∼5년에 출판된 Vater의 <창세기 주석>에서는 이런 차이점마저도 없어졌는데 이것은 다른 학자들이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간 후에 완전히 형성된, ‘단편이론’(Theory of Fragments)이라는 새 논문이 ‘최초의 문서설’(The First Documentary Hypothesis)이 나온 다음에 성서해석학계에 발표되었을 때였다. 이 이론에 의하면 율법은 처음에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많은 두루마리 책들로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1830년 초기에는 Stahelin과 Ewald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추가된 문서설이 나와서 연구 분야의 폭을 넓혔다. 그들은 고대의 기본적인 한 문서를 가정했는데, 그것은 후대에 와서 많은 편집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가 첨가된 것이다. 바로 이 때에 K. F. Herman은 1832년에 출판된, <호머의 첨가문에 관하여>라는 그의 논문에서 호머에 관하여 비슷한 견해를 진술했다. 원래 기초가 되는 작품으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가 있었는데, 이것은 점점 여러 가지로 첨가되고 교정되었기 때문에 크게 확장된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학설은 오경이나 호머의 시에 오랫동안 적용되지 못했다. 그의 책, <호머의 일리아드에 관한 고찰>(1837-41)에서 Lachmann은 그 서사시가 써진 문서에 관한 견해를 한 번 더 합법화시켰고, 이 자료 문서들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그는 분석학적 방법을 발전시켰는데 이 방법은 Wilamowitz의 지도하에 그 목표가 성취될 때까지 그의 계승자들에 의하여 계속되고 완성되었다. 같은 방법으로 Hupfeld는 Lachmann의 논문이 나온 지 몇 년 후에 성서학의 분야에서 문서설을 새롭게 통합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P자료에 근거를 두고 분석적 방법의 도움을 받아, Graf가 확장시켰고, Wilamowitz의 대학 친구였던 Wellhausen이 최고로 완성시킨, ‘새문서설’(the New Documentary Hypothesis)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의 구체적인 검사에 관하여 우리의 관점을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분석적 방법은 비슷한 두 계열의 연구 분야에서, 특히 반복과 중복(duplications), 축약과 모순과, 언어적 다양성 및 문체의 다양성 등의 연구 방법을 발달시켰다. 구절마다 면밀한 탐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두 연구 분야에 있어서 분석적 방법은 근소한 차이점만을 지닌 채 계속 음미되었다. 결국 호머의 연구에 있어서는 물론 성서 연구에 있어서도 지나친 분석 과정에 대한 반작용이 생기게 되었다. 그 반작용은 아마도 헬라 문학에서 더욱 넓고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두 영역 속에서 합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되는 이런 유사성에서 무엇을 추론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상호간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이며, 한 편으로는 모든 인본주의적인 연구에 공통되는 것으로 결국 이 모든 연구 분야를 똑같이 발전시키는 연구의 방법과 기교가 일반적으로 발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여러 가지 견해와 개념과 추세와 성격 및 각 세대의 특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대 서적에서 실지로 발견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없고, 다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인상의 결과만을 알고 있다. 만약 서로 그토록 다른 사람들 중에서(이미 지적한 바가 있거니와 인디언들과 중세 유럽 여러 나라의 서사시에 관하여 학자들의 견해를 설명할 수가 있었다) 학자들이 그처럼 복잡하면서도 유사하게, 그리고 어떤 세대에서는 어떤 추세로, 다른 세대에서는 다른 추세로, 또 다른 세대에서는 또 다른 추세로, 정확하게 문학적인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자연히 연구자들의 개념이 순전히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주관적인 특성이 동기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런 의심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해답을 찾기 원한다면 모든 문제를 새롭게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학파의 관점이나 또 다른 학파의 견해를 따르는 편견을 버리고 완전한 객관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탐구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율법의 신성에 관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은 문학적인 문제들을 초월한다. 이들은 오경의 핵심적인 내용에 속하며, 문학적인 질문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학적인 질문들은 외부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랍비의 말을 인용하기 위하여 율법에 사용된 ‘인간의 언어’(the language of men)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편견을 없애고 불안감을 갖는 대신에 원문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하며 율법이 써질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문화적 환경 속에서 고대 근동에 관한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학적이고 심미적인 표준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근동에서 보편적으로 얻을 수 있는,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준을 성경 해석에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수년 동안 이 연구에 종사해 왔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나의 방대한 서적에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나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만이 아는 언어로 이 책을 썼다. 이 과정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이 논문의 내용과 차후의 출판에 따른 저자의 연구에 관한 것이다. 물론 윤곽만을 언급하겠다. 저자의 연구과정을 함께 훑어보고, 저자의 자료들을 조사해 보고, 저자의 연구 주제를 같이 연구해보고, 이 조사 연구의 결과를 정당하고 올바른지 같이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사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문서설(The Documentary Hypothesis)이라는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 속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건물은 유럽의 학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튼튼하다는 건물인데, 이것은 뛰어난 일꾼들이 오랫동안 부지런히 일하여 세운 것이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저와 함께 이 건물에 들어가서 그 기둥들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시험하여 보기로 하자. 모든 영예는 그 건물을 지어 완공한 사랑들에게 돌린다. 우리는 그들과 그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기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기둥들을 흔들어 보고 그들이 사용한 재료와 설계법을 시험하여 볼 권한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보다 성서의 정신에 더 가깝고 그 건물이 세워질 때보다 오늘날 더욱 더 고대 근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며, 그들이 풀어보려고 쓸데없이 허둥지둥하던 수수께끼를 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서설은 오경의 ‘이야기’부분 특히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및 창세기와 관련된 문제점들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야 한다. 한 독립된 주제를 형성하는 율례에 대한 질문이나, 자체적으로 특별한 연구를 요구하는 신명기에 관한 문제들은 여기서 취급하지 않기로 한다. 만약 창세기에 관하여 그토록 지배적인 견해가 과연 옳은 것이라면 그 이론은 건전하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옳지 않다면 창세기에 관한 부정적인 결론으로 말미암아 문서설 전체를 부정하게 된다. 문서설이라는 건물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창세기에 있는 여러 가지 문서의 차이점에 관한 논쟁거리가 되는데 이 기둥들은 다섯 개이다.
1) 신의 명칭을 다르게 사용한 것.
2) 언어와 문체의 다양성.
3) 모순과 견해차.
4) 중복(duplication)과 반복(repetitions).
5) 문단의 혼합적 구조.
이 다섯 개의 기둥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보겠다. 이 기둥들이 단단한 기초 위에 서 있는지, 단단한 바위로 된 기둥인지, 그리고 그 건물을 지탱할 만큼 강한 것인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연구의 결과에 의하여, 우리는 이 건물이 아직도 견고하다고 생각해도 좋은지, 아니면 영영 기울어진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장 신의 명칭
전에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성서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론적 체계는 다섯 개의 기둥에 의존하고 있다.
‘문서설’(the Documentary Hypothesis)이라는 이론은 오경(Pentateuch)이 J,E,P,D라는 독립된 4개의 자료에서 나온 문단들의 혼합체로 엮어졌다고 한다. 우리의 과제는 이 기둥들을 더욱 잘 알아보고, 시험해 보아,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기둥들이 단단하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하여 보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것을 탐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건물에 들어가서, 기둥들 앞에 다가가서는, 기둥들과 기둥을 구성하고 있는 자료를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검사하여 볼 것이다. 저자가 근년에 썼던 작품들을 요약해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창세기에 관한 이태리어 논문에 묘사되어 있다. 여러분이 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저는 여러분의 안내자가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얼마 안 되는 강의를 통해서 주제를 모두 다양한 국면으로 충분히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심적인 논제와 가장 중요한 실례가 될 수 있는 본문 몇 개를 검토할 수만 있다면, 당분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문제에 관하여 더욱 깊게 연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언어의 장벽이 없다면 전에 언급한 책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 여기에 지면 관계로 언급하지 못하는 것들이 그 책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첫 번째의 기둥부터 시작해 보자. 이 기둥은, 신에 대하여 다른 명칭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경(Pentateuch)에 보면 신의 명칭이 다양하다. 즉 오경 어느 곳에는 ‘야웨’(YHWH)로 되어 있고, 어떤 곳에는, ‘엘로힘’(Elohim)으로 되어 있다. YHWH는 전통적인 발음인 ‘아도나이’에 근거해서 ‘Lord’로 번역되고, Elohim은 ‘God’으로 번역된다. 가끔 나타나는 엘(God)이라든가, 엘 엘욘(God Most high)이라든가, 샤다이(Almighty), 엘 샤다이(God Almighty)와 같은 말은 제외한다고 할지라도, 신의 명칭은 이처럼 크게 두 가지로 다르게 나타난다. Witter와 Astruc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바로 이것을 문제 삼아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의 명칭이 다르다는 이 사실은 얼마 동안 문서설을 지지하는 중요한 예증이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성서 연구가 다방면으로 구체화되어 완성된 분석적 방법(analytical method)에 따라 크게 확장되고 분화된 후에는, 신의 명칭에 대한 이런 논의는 처음에 가졌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잃어버렸고, 때로는 문서설을 증명하는 주된 자료로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논쟁점들을 주로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은 신의 명칭을 여러 가지로 사용하는 것에 관한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신명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 권위가 있는 사람들까지도 신명의 차이로 문서설을 설명하려는 일을 꺼려한다. 그 이유는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명의 문제는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더 이상 특별히 강조할 만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문서설에 궁극적인 기초가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이 난문제의 성격은 아주 분명하다. 이에 대한 실례로서 우리는 창세기의 처음 부분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태초에 하나님(Elohim)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Elohim)은 수면에 운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Elohim)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조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즉, Elohim께서 창조하시기까지는(2:3) Elohim 이외의 다른 신명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에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온다. “야웨 엘로힘(YHWH Elohim)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에 하늘과 땅의 창조된 역사가 이러하다”(2:4). “YHWH Elohim”은 에덴동산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즉, 3장 마지막 절까지 거의 항상 인용되었다. ‘거의 항상’(almost always)이라고 말한 것은 이 부분에 Elohim이란 말이 3장 1,3,5절에만도 세 번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4장 초반부에 가서는, “내가 야웨(YHWH)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 부분에서는 YHWH란 명칭이 몇 번 더 사용되었다. 그러나 뒷부분에 가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하나님(Elohim)께서 나에게 다른 아이를 주셨다”(4:25). 그 다음 부분에도 신의 명칭은 역시 교차되었다. 홍수 이야기에서도 어떤 곳에는 YHWH가 나오고 어떤 곳에는 Elohim이 나온다.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쪼개는 연약’ 부분에는 YHWH가 나오고, 17장 9, 10절에 나오는 ‘할례’에 대한 이야기에는 Elohim이 나온다. 이에 대하여는 더 이상의 실례를 들 필요가 없다.
이제 독자들은 자연히 마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왜 신의 명칭이 이렇게 교차되었느냐?” 이에 대한 문서설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 다른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첫 번째 문서는 J라는 자료에서 나온 것으로서 YHWH를 사용했고, 두 번째 문서는 E자료에서 온 것인데, 여기엔 Elohim이 사용되었다. 세 번째 문서는 P자료에서 온 것인데 역시 Elohim을 사용했다(D자료는 창세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관계에서 한 편집자(redactor)가 나타나, 이 자료로부터는 이런 부분을 뽑아내고 저 자료로부터는 저런 부분을 뽑아내었으며, 제 3의 자료에서는 제 3의 부분을 뽑아내었다. 그 편집자(redactor)는 뽑아낸 부분을 나란히 놓거나 서로 융합시켰다. 그러나 각각의 최초의 모양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러므로 신의 명칭까지도 거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은 혼합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인, 신명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가 있거니와 이런 신명의 다양성 때문에 율법은 여러 문서에서 뽑아낸 것으로 이루어졌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으며, 이런 개념은 문서설의 중심적인 기둥이 되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명의 다양성을 해결해 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이 못되었고, 신명의 다양성을 완전히 설명해 주지 못했다. 신명의 다양성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실험적인 것들로 남게 되었고 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문서설이 제시한 해결책의 답변에 대하여 피상적으로만 반대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만약 우리의 연구가 믿을 만한 결론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문서설은 피상적으로만 검토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의 기원을 발단부터 재검토하여 보고, 특히 성경 구절의 가장 깊은 의미를 캐내어 보고 원문 자체에서 우리들이 알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면서 그 이론을 자세히 파헤쳐 보아야 하겠다. 의심할 여지없이, 신의 명칭을 택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차이가 있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거기엔 어떤 의도적인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YHWH와 Elohim이라는 두 가지 명칭은 그 의미가 절대적으로 동등한 것이며, 독자는 이해할 수 없는 필자의 주관적인 어떤 이유 때문에 신의 명칭이 교차되었다는 견해가 최근에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율법(Torah)은 그 주요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주(Lord)의 지식에 이르게 하고 주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율법에 마치 어떤 부주의한 서기관이 기분 나는 대로 쓴 것처럼 무분별하게 신의 명칭이 사용되지는 않았음이 틀림없다. 율법의 언어는 항상 아주 면밀하다. 율법의 용어가 세심하게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의 명칭이 변경된 곳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 문제를 풀기 전에 먼저 두 명칭의 특성을 알아야 하겠다. 이 두 명칭은 같은 유형의 것이 아니다. Elohim이란 명칭은 본래 보통명사이며, 총칭명사(appellative)로서 이스라엘의 유일신(One God)에게도 적용되고, 이방의 여러 신들(gods)에게도 적용되었다(El이라는 이름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한편 YHWH라는 명칭은 고유명사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이름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주의 통치자로서의 신이요,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신 신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거나 그냥 ‘도시’라고도 부른다. ‘도시’라는 보통명사는 예루살렘에 대해서나 다른 도시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만 적용된다. 유다 백성의 선조들이 유일신(One God)만이 존재하며, “YHWH, 그 분만이 Elohim이시다”(왕상 18:39)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보통명사인 Elohim은 또한 고유명사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래서 YHWH와 Elohim은 동의어가 되었다. 만약 예루살렘이 히브리말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유일한 도시였다면, 물론 ‘도시’라는 단어는, ‘예루살렘’과 동의어로서 고유명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실지로 과거에 예루살렘이 그 나라의 유일한 도시였을 때 그러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의어는 서로 그 뜻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실례에서도 마찬가지다. Elohim이란 명사 속에 본래 함축되어 있던 총칭명사로서의 의미는 완전히 배제될 수가 없다. 히브리어를 말하거나 쓰는 사람이, YHWH라는 이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특수한 인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히브리어를 말하고 쓰는 사람은 이방인들의 신들도 역시 Elohim으로 지칭되었다는 것과, 이스라엘처럼 모든 나라가 “YHWH 그 분만이 Elohim이시다”라는 것을 알 때에만, “YHWH는 한 분이시고 그의 이름도 하나”(슥 14:9)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다의 수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다의 수도를 그저 ‘도시’라고 불렀을 때에 세상엔 다른 도시들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지 않았다. 한편, ‘예루살렘’이라는 명칭만이 독자나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 이스라엘 역사는 오직 이 이름(예루살렘)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회상케 하고 가슴깊이 느끼게 하고 동경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원리를 파악했으므로 두 가지 신명이 어떤 방법으로 사용 되었는가 조사해보고, 우리가 위에서 만들어낸 법칙에 근거하여 신명의 사용법을 설명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오경(Pentateuch)안에 있는 두 가지 신명의 중심 되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안에서의 다른 책들 즉, 예언서(the Prophets)와 성문서(the Hagiographa)에 두 가지 신명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연구해 보자. 우리는 또한 본 연구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Elohim이 YHWH와의 동의어로서 또 YHWH를 대신한 말로서 고유명사의 기능으로 사용된 경우만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러므로 다음의 경우는 이 연구에서 제외시키기로 한다.
a) Elohim이 단순한 하나의 총칭명사로 사용된 경우다. 예를 들면, 열왕기하 1장 3,6,16절에 보면, “이스라엘에는 신(Elohim)이 없기 때문인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제외시킨다.b) Elohim이 이교의 신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을 때다. 호세아 12장 4절에는 “그의 힘으로 그는 신과 같은 존재(a Godlike Being : Elohim)와 함께 싸웠다”가 나온다. 이와 같이 ‘다른 신들’(Elohim) 혹은, 어떤 ‘신적 실재’(divine entity)와 같은 말은 제외시킨다. c) Elohim이 소유관계 구문에(in the construct state) 나오는 경우다. 예를 들면, ‘the God of (Elohe) Israel’이나, ‘the God of (Elohe) our fathers’ 등의 경우에 나오는 것은 제외시킨다.d) Elohim이 소유격 접미(possessive suffix)를 가진 경우 즉, ‘your God’('Elohekha : ekha = your)이나, ‘our God’(Elohenu: enu=our) 등은 제외시킨다.e) Elohim이 복합된 문구에 나오는 경우, 즉 ‘man of God(Elohim)’에서의 Elohim, ‘visions of God(Elohim)’에서의 Elohim, ‘wrestlings of God’(Elohlm; E.V. ‘mighty wrestlings’)에서의 Elohim 등은 제외시킨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a godly man), ‘거룩한 환상’(divine vision), ‘힘 있는 씨름’(godlike wrestlings) 등에서처럼 주제를 신적으로 언급할 때에 사용된 표현의 경우에서도 제외시킨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Elohim이라는 이름은 문장의 형태를 변경시키지 않고 YHWH로 대치할 수 있는 경우에서만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첫 절이 이 경우에 속한다. “태초에 Elohim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이 경우에, “태초에 YHWH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대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에 따라서 예언서, 이야기 문서, 법문서, 시문서, 지혜문서 등 성서 문학의 여러 형태 안에서의 신명의 사용 상황을 검토하여 보자. 예언서(prophetic writings)에서는 Elohim 대신에 YHWH가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신의 명칭은 언제나 YHWH 뿐이다. 요나서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요나서에는 Elohim이 이스라엘의 신의 명칭으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위의 법칙에 대한 예외이다. 요나서는 성서의 분류에서 예언서에 들어가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을 본다면 예언서에 속하지 않고 이야기체 문학(narrative literature)이다. 이사야서 둘째 부분에서도 우리는 이 법칙에 대한 또 하나의 예외를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보면 YHWH 대신에 Elohim이라는 보통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El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언급하겠다. 법 문학(legal literature)에서는, 즉, 오경과 에스겔서 중 법령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신의 명칭으로 YHWH만 나타난다. 시 문서(poetic writings)에서는,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에 속하는 시와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시를 제외하고는 YHWH 이외에 다른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혜문학에서는 그 위치가 모두 달라진다. 욥기의 시부분에는 YHWH라는 명칭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욥 12:9). 그러나 이 부분은 원문 상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많은 사본에는 YHWH 대신 Elohim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욥기 12장 9절 이외의 구절에서는에서는 YHWH 대신에 El, Eloah, Elohim, Shadday 등의 본래 총칭 명사인 명칭들이 나타난다. 전도서(Ecclesiastes)에 보면 신의 명칭은 모두 Elohim으로 나타난다. YHWH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잠언에도 Elohim과 Eloah가 가끔 발견된다. 구약 외경의 전도서(Ecclesiasticus)는 자주 El과 Elohim을 사용한다. 많은 시편들, 특히 시편 제 2권과 3권에서 El과 Elohim이 지배적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 볼 많은 시들은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았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지혜문학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l과 Elohim은, “다윗의 마지막 말”(삼하 23:1~7)에서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지혜문학에 속한다. 오경의 이야기 부분과 전기 예언서(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 후서까지), 요나서와 욥기의 이야기 부분 등에 있는 이야기체 문학에서는, YHWH와 Elohim이 둘 다 비슷하게 사용되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에 있어서 지혜문학은 문학의 모든 다른 형식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고, 지혜의 범주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보편적인 형식이며, 그 여러 가지 특징들이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들의 이런 종류의 작품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의 지혜문학도 역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이스라엘의 민족정신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혜서적들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서적들은 이스라엘 밖에서 써진 지혜의 작품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그러므로 지혜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몇 가지 영역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특이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고대 근동의 지혜 서적들은 이 작품들을 낸 국민들이나 이 책들이 써진 언어에 관계없이, 여러 가지 신들의 고유명사로서가 아니라, 항상 총칭명사로서의 신과 관련시켰다. 이집트 사람들의 지혜의 글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ntr’이라는 보통명사였다. 그런데 이것은 히브리어 등의 Eloah나 Elohim과 상통한다. 이런 것은 대부분의 고대문서에서 발견된다. ‘Papyrus Prisse’(ii, 2)에는, “그 신의 길들은 알려지지 않는다”(the ways of the god are not known)라고 되어 있고, ‘Merikare 왕의 교훈’(61과 130)에는, “그 신은 모든 이름을 아신다”(The god knows all the names)라고 되어있다. 이런 것은 히브리 문학의 개화기까지 몇 백년 동안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AmenemOpet의 잠언’(18)에는, “신은 완전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The god in his perfection and man in his imperfection)라고 되어 있고, ‘Ani의 잠언’(35)에는, “진리의 계시가 그에게 속한 그 신”(The god - to him belongs the revelation of truth)이라고 되어있다. 다른 신들의 명칭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에 가끔 나타날 뿐이다.
a) 저자가 일정한 형식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격언을 인용할 때이다. 예를 들면, “Re(태양신)의 도움은 멀리로부터 온다”(The help of Re is from afar)는 말이 ‘Amen-em-Opet의 잠언’(26)에 나온다.b) 저자가 어떤 일정한 신(god)의 특성을 암시해 줄 때이다. 예를 들면 “그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멸시하지 말아라. 그는 그대 보다 먼저 Re를 보았느니라”(Despise not one who is older than you; he saw Re before you)는 말이 ‘Amen-em-Opet의 잠언’(27)에 나온다.
바빌론 사람들도 이와 흡사하게, ‘ilu’라는 총칭명사를 사용했다. ilu란 el(god)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바빌론 전도서>(the Babyloni an Ecclesiastes)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ilu는 부 대신에 가난을 몰고 왔다”(In place of riches ilu brought poverty. 75). “네가 ilu의 꾀를 구하지 않는다면 너의 운명은 어찌 되겠느냐?” (Since you seek not the counsel of ilu, what shall your fate be? 217) 그러나 바빌론의 현자들(sages)은 특별히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고유명사를 사용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책(235)에서, “Aruru의 손으로 만든 작품”(The work of the hands of Aruru)이라는 구절은 ‘사람’을 설명한 것이다. 바빌론 사람들이 지녀온 전통에 의하면 사람을 창조한 것은 Aruru라는 여신이었다. 이런 경우는, ‘the Romance of Ahiqar’의 아람어판에도 있다. Elahin이나, Elahayya'라는 말이 몇 번 나타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숫자를 나타내는 복수라고 생각하여, ‘gods’나, ‘the gods’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그것과 관련된 동사가 단수형이다(col. viii, 1.115). 이것은 마치 히브리어에서 Elohim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용되는 동사는 단수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나 마찬가지다.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은 단수형인 Elaha로 고쳐 읽을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도 그렇고 다른 구절에서도 복수형은 단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것은 Elohim의 경우와 꼭 같다.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입증된다.
‘Hananiah의 편지’는 ‘Romance of Ahiqar’의 아람어 교정판 단편이 소속되어 있는 ‘파피루스 전집’ (Collection of Papyri)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 속에서 복수 형태인 Elahayya가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서 이것이 수를 나타내는 복수라고 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 저자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아람어로 써진 지혜문학에서 이집트 문서(Egyptian writings)와 아카드 문서(Akkadian writings)에서 관찰한바 동일한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아람어에 있어서도 신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는 이따금 여기저기 나타날 뿐이다(예를 들면, Shamash, ibid., col. vi, 11. 92, 93). 요컨대 지혜문학의 모든 부문에서 이방인들은 신에 대한 이름으로서 여러 가지 신에 대한 고유명사를 습관적으로 붙였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이름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적한다는 것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므로 여기서 다룰 수가 없다. 아마도 지혜문서의 국제적 성격은, 각 나라에 독특한 신들의 특별한 개념보다는 모든 주민들에게 공통이 되는 신성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우리의 주제에 대하여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검토하여 본 것만으로 족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해온 것을 근거로 해서 히브리 문학의 여러 범주 안에서, 그 위치를 분명히 하여 두자. 순수하게 이스라엘적인 특성을 가진 범주 안에는 YHWH만 나타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독점적인 신의 인격적 개념을 설명하는 신의 국가적 명칭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이 이웃나라 사람들의 사상을 전적으로 반대하고 나온 사실이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추상적인 신이 아닌 이스라엘의 하나님 자신의 대변자라는 확신 등의 성서적 예언의 국가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예언문학에서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의 명칭인 YHWH가 독점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지혜문학과 관련된 시편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이사야 둘째 부분만이 때때로 El을 고유명사로 사용했다. 그러나 전에 언급한 것처럼, 이런 특성에 대한 특별한 요인에 관하여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고자 한다. 예언서에 있는 신명의 용법에 대한 설명은 법문학에서도 적용된다. 법문학에서는 YHWH만이 언급된다. 왜냐하면, 법령은 본래 자기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신 YHWH의 실제적인 뜻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시(Biblical poetry)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서의 시는 그들의 하나님에 대하여 개별적인 용어를 써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직접적이고도 자발적인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라기스 문서(Lachish texts)에서 알고 있듯이, YHWH는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인사를 할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이 신의 명칭을 사용했다. “야웨께서 나의 주로 하여금 평안의 소식을 듣도록 해 주시길”(May YHWH cause my lord to hear tidings peace)등의 말을 사용했다. 그가 맹세를 할 때에는, YHWH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고, 다른 상투적인 표현은 다 집어치우고 YHWH 만을 언급하기도 했다. 라기스 문서에는 Elohim이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가장 권위 있는 성서의 인사 부분에도 잘 나타나 있다(삿 6:12; 시 129:8; 룻 2:4). 이와 같은 전제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의 친구와 인사할 때에 랍비의 법령에 따라 신의 명칭을 사용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대하여는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한편 우리의 지혜문학(our wisdom literature)은 일반적인 지혜의 글(general sapiential writings)의 전통에 의하여 상당히 영향을 받았다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이스라엘에 살던 지혜의 스승들은 이방 현자들이 사용하던 El이라는 특수화되지 않은 용어를 그들의 유일신에 적용시켰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현자들이 문학적 훈련을 쌓는 것을 본받아서 이스라엘의 스승들도 역시, El, Eloah, Elohim 등의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곤 하였다. 이스라엘의 스승들은 지혜문학에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신의 명칭인 YHWH보다도, El, Eloah, Elohim 등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단지 잠언만이 예외가 된다. 아마도 편집자들은 보편적인 자료에 이스라엘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는 아니지만 신에 대한 국가적인 명칭인 YHWH를 주로 사용한다.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 시편에서는 신의 일반적인 영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YHWH 보다는 El, Elohim을 도입했는데, 이것은 위에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엘로힘 시(the Elohistic Psalms)에 나오는 Elohim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후대에 가서 서기관들이 맨 처음으로 YHWH 대신 Elohim을 집어넣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는데, 이 견해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가 없다. 어떤 시들은 그런 경우와 일치한다고 추측되지만, 다른 시들은 Elohim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썼음이 분명하다. 시인이 신의 일반적인 관념을 묘사하려고 한다거나, 모든 세계의 신으로서, 전 우주를 창조한 신으로서, 모든 백성들의 신으로서 그 신이 전능하다는 것을 묘사하고자 할 때에, 그 시인은 일반적인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몇 편의 시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시편 47편은 온 땅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인데,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모든 백성들아 손뼉을 치라! 큰 소리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Elohim께 외칠지어다.” YHWH를 모르는 모든 나라들도 적어도 Elohim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Elohim은 신에 대한 보편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YHWH를 알았다면 그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시인은 모든 나라로 하여금 Elohim께 손뼉을 치면서 외치라고 하며 초청한다. 그 뒤에도 시인은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YHWH는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서 영위하시고 온 땅 위에 위대하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의 의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예배드리는 신이신 YHWH는 이스라엘만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땅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데 있었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계속된다. “Elohim은 즐거이 부르짖는 가운데 올라가시고, YHWH는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올라가시는도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이름은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진술한 바대로, YHWH와 Elohim이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시편 68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다른 많은 시들도 그러하다. 이것은 다른 민족들의 지혜문학에서 발견되는 것과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한 점이 있다. 그들은 신의 일반적인 개념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했으며, 신들(gods)의 특성이나 속성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는 고유명사를 사용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하다”고 말한 것은 실지로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 형식상으로는 서로 유사한 점이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이방인들의 글은 신에 대하여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어떤 특별한 신을 강조한 데 대하여, 히브리 문학에서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하나님의 개념을 온 땅을 지배하는 신으로서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시키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큰 혁신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그 앞에서 예배드리는 YHWH는, Elohim과 다름이 없는 분이다. Elohim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소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Elohim은 그들이 앞으로 알아야 할 분이었다. 이것은 탁월한 사상인데, 성서와 시인들은 신에 대한 다양한 명칭을 통해서 이런 사상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시인들은 한 가지 특별한 이유로, Elohim과 El을 언급하는 습관이 있어 이런 신의 명칭들은 시편의 보편적인 이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시인들은 특별한 의도가 없이 그냥 이런 이름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지혜문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흔적이 없으며, 신의 일반적인 관념에 대하여 특별한 강조점을 두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 같은 시편에서도 그런 신의 명칭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시편에 대하여 다른 것을 또 한 가지 관찰해 보아야 하겠다. 조금 전에 언급한 대로 엘로힘 시들(the Elohistic psalms)은 모두 YHWH를 포함하고 있는데 후대의 편집에서 서기관들에 의해서 Elohim이란 말이 YHWH 대신에 쓰여졌다는 견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시들 중에 여러 가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그런 변화가 실지로 있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시편 53편과 14편을 비교해 본다든지, “하나님 우리들의 하나님” 등과 같은 표현을 보면 이런 사실이 분명하게 증명된다. 그렇지만 신의 명칭이 바뀐 것은 습관적으로 생각되는 이유 때문에, 즉, 경건이라는 이유로 YHWH 사용을 회피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서기관들의 목적이 여기에 있었다면 그들은 Elohim을 YHWH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통적으로 YHWH 대신에 Adhonay로 발음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이 원문을 변경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또한 이에 정반대되는 경향이 있다. 즉 YHWH 보다 Elohim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해동포주의적인 사조를 받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신에 대하여 고유명사 사용하기를 회피하고 보편적인 명칭에 우선권을 두었다. 그들은 이것이 진보적이고 더욱 고차원의 종교적 관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새 엘로힘 시편들’을 썼을 뿐 아니라, 오래된 시들 중 어떤 것은 이런 추세에 따라 수정된 것으로 본다. YHWH와 Elohim을 둘 다 사용하는 이야기체 문학은 어떤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논의하도록 한다.
제 3 장 신(神)의 명칭(II)
제 2장에서는 신의 명칭이 사용된 양식에 대하여 성경 구절을 들어 설명한 바가 있다. 한 편에서는 YHWH가 사용되었고, 한 편에서는 Elohim이 사용되었으며, Elohim과 비슷한 말인 Eloah와 El 등도 나왔다. 그리고 히브리 문학의 모든 분야에 순전히 이스라엘적인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예언서(prophetic writings), 법 부분(legal sections), 국가적 혹은 민족적 성격을 띠고 있는 시문학 등은 순전히 이스라엘적인 것이다. 신의 인격적인 명칭은 YHWH이고, 그밖에 다른 명칭들은 총칭명사의 역할을 한다. 이와 반대로, 지혜문학의 영향을 다소 받은 시는 그 주제가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든다면, 욥기의 시 부분과 전도서 등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하나님으로서의 주를 찬양하기 위한 시들과,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함께 그를 알고 섬기도록 초청하는 시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부류의 시 속에서 가장 잘 쓰인 명칭은 Eloah, El, 등과 같은 총칭명사로 시작되는 명사나 Elohim이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신의 명칭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한 편으로는 그런 신의 명칭들의 보편적인 의미에서 나온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근동의 문학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야기체 문학(narrative literature)으로 돌아가 보겠다. 이야기체 문학은 신의 명칭에 있어서 YHWH만을 사용하는 문학의 범주와 Elohim이나 이와 비슷한 총칭명사를 사용하는 문학의 범주 사이에 중간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 주제를 적절히 다루기 전에, 먼저 우리는 다른 것을 예비적으로 고찰하여 보아야 하겠다. 즉, 신의 명칭의 사용법을 지배하는 원리들 안에서 우리가 설정해 놓은 차이점은 후기 성서 시대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사용법에 있어서와 문학적 전통에서와 민족정신 속에서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가를 보여준다. 유다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신의 명칭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관하여 자세히 연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이 주제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중요한 요지를 지적해보자.
첫째 요지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학자들에겐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인사할 때에는 신의 이름을 언급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는 지난번의 강의에서 암시를 준 적이 있다. 이런 법을 제정하게 된 시기와 원인과 목적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견해로 설명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에 있는 여러 가지 당파들이 신에 관한 다양한 명칭에 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그것과 관련시켜 생각해 보면 된다고 본다.
당파심이 강한 소수파, 즉 사두개인들은 귀족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 국제적 지혜(international wisdom) 특히 헬라 사상을 많이 받았는데, 고대의 보편적인 지혜(universal wisdom)처럼, 헬라 사상은 보통명사로 신을 지칭하는 습관이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YHWH라는 고유명사만을 사용하는 국가적 전통에 반하여, 보통명사로 신을 지칭하는 태도를 진보적인 태도로 간주하여 총칭적인(generic) 총칭명사를 더 잘 사용하였다. 이것은 근거가 없는 추측이 아니라, Solomon Schechter에 의해서 출판된 <다마스커스 공동체의 계약서> (the Book of the Covenant of the Damascus Community)에 보면, 신을 지칭할 때 항상 El이 나온다. 이 책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든지 어쨌든 이 책의 신학은 사두개인들의 신학에 매우 가깝다. 이 책을 보면, 본래 YHWH가 나타나는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는 항상 그 읽는 법을 바꾸어 YHWH대신 El을 사용했는데, 이보다 앞 시대의 서기관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고대의 시편(psalms)을 수정하여 작자가 YHWH라는 신명을 사용한 곳에 Elohim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아래 계급에 속하였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들의 국가관을 고수하고 그들의 국가적 신앙 형태를 지나치게 고수하려 했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위와 같은 학설, 즉 국가의 전승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백성의 마음속에 그들의 하나님 YHWH와의 직접적인 접촉감을 약화시키는 교리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그들의 매일의 사회생활에서, 심지어는 친구간의 인사에서까지도 YHWH를 부르도록 규정하였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바리새파 현자들(sages)의 입장에서 볼 때 혁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성서에 언급된 라기스 문서(Lachish letters)나 인사 공식에서 일찍부터 대중 풍속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랍비들은 공공연하게 자기들이 이런 풍속의 제정과 승인을 했다고 공포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사두개 분파의 교훈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요지는 첫 번째 것과 상관된 것이다. 독자들은 탈무드와 미드라쉬 문학(Talmudic and Midrashic literature)에서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칭호와 묘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예로서 ‘거룩한 자’(the Holy One), ‘우주의 주인’(Master of Universe),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our Father in heaven), ‘무소부재하신 자’(the Omnipresent), 기타 많은 비슷한 용어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El이나 Eloah, 또는 Elohim의 칭호가 YHWH와 같은 뜻의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Elohe Israel) 같은 관용구적 표현이나 인칭접미가 붙어 변화된 비슷한 형태의 ‘너의 하나님’[Elohekha(남성단수)], ‘그의 하나님’(Elohaw) 같은 칭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 실례들은 연계형에서나 소유격 접미가 첨가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물론 순수한 보통명사이다. 그러므로 Elohim hayyim[살아계시는 하나님(the living god)] 같은 어귀 또한 일반적인 용어일 뿐이다. 단수 단어로서 성서에 나오는 El, Eloah, Elohim의 칭호는 마치 랍비들이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YHWH 대신 그런 칭호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려 했다는 듯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상관된 탈무드 문학(Talmudic literature)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칭호들은 이방신들이나 일반적인 총칭의 신성을 의미할 때만 사용되었다. 유일신의 개념으로는 - 이것은 규칙을 입증하는 하나의 예외인데 - 오직 이방인들과의 대화에서만 이런 칭호가 발견된다.
랍비학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아람역 성서에 있어서는 우리가 Onkelos의 Targum 가운데서와 다른 Targum 문서 가운데서 전적으로 YHWH가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는 본래 Elohim이란 칭호가 있는 구절에서까지도 YHWH로 번역하였다. 랍비학파에서 생긴 의식문에 있어서도 고유명사는 항상 YHWH(발음은 물론 Adhonay라 했음)가 사용되었는데 반하여 Elohim의 칭호나 그와 비슷한 묘사는 순전히 보통명사로서 연계형이나 소유격 접미, 또는 형용사에서만 사용되었다.
세 번째 요지는 다음과 같다. Elohim이란 칭호는 중세의 철학적인 문학, 즉 당대의 국제문학의 영향 아래 들어온 학자들의 기록들 가운데 고유명사로서 한 번 더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당시의 이들 중세학자들은 신에 대한 철학적 개념에 적당한 용어로서 이 칭호를 사용하려 했다. 고대에도 있었던 비슷한 상황은 이들에게 비슷한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가 단어의 선택에 틀림이 없는 한 현대의 히브리어에 있어서도 또한 우리가 유대인의 전통적인 신의 관념을 말할 때는 YHWH를 사용하며 철학적인, 또는 일반적인 신의 관념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Elohim이란 칭호를 사용한다. 이 모든 것으로 판단하여 볼 때, YHWH와 Elohim(Elohim과 동족어인 El과 Eloah도 포함하여) 사이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전제를 출발점으로 하여 이제 우리는 핵심적인 문제에 접근해 보자. 즉 이야기체 문학 특히 율법의 이야기 부분에 나타난 여러 가지 신명의 사용에 대한 질문에 접근해 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명기해야 할 것은 이야기체 문학의 주제는 전부가 이스라엘의 국가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체 문학의 주제는 고대 근동의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자료와 지혜문학의 자료에서 나온 요소나, 지혜문학의 채널을 통과한 요소를 구체화시키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과 이방 사람들의 생각이 혼합되어 얽혀진 세계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첫 번째의 결론을 인출할 수가 있다. 신의 명칭에 관한한 이야기체의 글들은 YHWH만을 사용하는 국가적인 범주의 문학과 본래 보통명사였던 이름들을 사용하는 지혜문학 사이에 중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전자에 가까운 문학적 형태와 후자에 가까운 문학적 형태를 다 포함하는 내용이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더욱 깊이 들어가서 우리의 당면 과제인 오경과 관련을 시켜, 개괄적으로 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 위치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여, 어떤 곳에서는 율법의 이야기 부분에 왜 YHWH를 사용했고, 다른 곳에서는 Elohim을 사용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의 경우에 맞는 신명을 사용한 것에 대한 규칙을 공식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가 언급한 것을 기초로 해서, 각각의 경우에 율법이 상황(context)과 의도(intention)에 따라서 두 가지 신의 명칭 중 하나를 선택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연하게 단정할 수 있다.
본문이 YHWH의 모습 속에서 구체화된 이스라엘적인 신 개념을 반영할 때,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YHWH에 해당하는 속성, 특히 YHWH의 윤리적 특성에 나타난 표현을 발견할 때에 YHWH라는 이름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 부분이 현자들의 국제적 테두리 안에서 유행하던 신의 추상적 관념을 말하고자 할 때 즉, 물질적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하나님, 자연계의 지배자로서의 하나님,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낼 때는 Elohim을 사용했다.
대중들의 단순한 신앙이나 예언자적인 정신이 불타오르는 직접적이고도 직관적인 신 관념을 나타낼 때에는 YHWH가 사용되었고, 세계와 인간의 존재에 관한 고상한 문제들을 묵상하는 사상가들의 관념을 나타내고자 할 때에는 Elohim이 사용되었다. 그 문맥이 비교적 명확하게 잘 알 수 있는 용어로 신의 속성이 분명히 묘사될 때에는 YHWH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양상이 더욱 일반적이고, 피상적이며 희미하고 애매한 인상을 줄 때에는 Elohim이 사용되었다. 율법이 독자들이나 청취자들의 마음속에 존엄하고 영광 중에 계신 신의 임재에 대한 장엄성을 느끼게 하고자 할 때는 YHWH가 사용되었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신을 언급하기 원할 때에나, 경외심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이름(the holiest name)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어 사상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한 때에는 Elohim이 사용되었다.
신이 자기의 개인적인 특성으로나 백성이나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성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YHWH가 사용되었고, 물질적 세계를 초월해서 완전히 물질적 세계 밖에 존재 하는 초월적 존재로서 신이 묘사될 때에는 Elohim이 적용되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이나 자기들의 선조들과 관련 되었을 때에는 YHWH가 사용되었고, 신이 선택된 민족의 일원이 아닌 사람과 관련하여 언급될 때에는 Elohim이 적용되었다. 주제가 이스라엘이 전통과 관련이 있을 때에는 YHWH가 쓰였고 주제가 일반적인 전통에 관련되었을 때에는 Elohim이 쓰였다. 물론 때때로 두 개의 반대되는 규칙이 함께 적용되어서 서로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논리적으로 따져서 그 문구에서 제일 중요한 목적에 적합한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조사한 결과 얻은 법칙과 본문이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하겠다. 만약 본문이 이 법칙과 일치한다면, 이 일치성은 우리의 결론에 대한 정확성을 확증해 줄 것이고, 신명이 다르게 쓰여진 데 대하여 강조점을 두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신명의 교차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장에서 오경의 이야기 부분을 모두 검토할 수는 없다. 창세기마저도 모두 검토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개의 본문을 뽑아 연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서 본문을 산발적으로 뽑아서는 안 되겠다. 창세기 처음부터 시작하여 빠뜨리지 않고 본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합당한 결론에 대한 근거가 되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다고 생각되도록 해야 하겠다.
창조의 이야기 속에서 신은 물질적 세계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세상의 주로 나타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형성되었다. 하나님과 자연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얻은 법칙에 의하면, 성서는 여기서 Elohim이라는 명칭만을 사용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 전체에는 Elohim이 나타나고 있다. Elohim이란 명칭을 사용한 데 대한 또 하나의 이유는, 창조에 대한 묘사가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전통 및 지혜 문학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들어온 사해동포주의적 사상과 연결 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부분의 마지막 문단은 안식일(Sabbath)에 관하여 언급되고 있는데, 안식일은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던 계율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적인 신의 명칭이 필요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마음과 같이 대답할지도 모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안식일의 거룩성은 우주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며, 이스라엘 이전에 있었고 세계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율법의 특별한 목적이다. 후에 율법에 규정된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에 관한 명령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의무로써 주어진 것이라 하여도, 안식일은 세계가 존재한 당시부터 스스로(per se) 거룩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식일의 거룩성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는 이런 견해는, 시내산 계시(the Revelation at Mount Sinai)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 명령을 받았다는 데서 확고해졌다. “세상에는 하나의 안식일이 있음을 알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안식일(바빌로니아 사람들은 Shapattu 혹은 Shabattu)의 거룩성이 성서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바빌로니아 사람들과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7이라는 숫자에 거룩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다른 한편 에덴동산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도덕적인 지배자로 묘사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후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종교적인 명령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사람으로부터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많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모습이 언급되고 있다. 이런 것은 인간 및 다른 피조물들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계성 속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YHWH라는 명칭이 필요했다. 그러나 악을 대표하는 뱀의 말 속에서 여자와 뱀과의 대화 속에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YHWH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야기 중에 어떤 부분은 비이스라엘적 전통(non-Israelite tradition)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도덕적인 내용이며, 이것이 신의 명칭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 부분에는 YHWH가 Elohim과 연결되어 나타났다. YHWH Elohim이라는 복합적인 말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언급된 YHWH는 앞에서 언급된 Elohim과 완전히 동일시된다는 것을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YHWH와 Elohim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윤리적 세계의 신(the God of ethical world)은 물질적 세계의 신(the God of physical world)과 다름없으며, 이스라엘의 신은 우주 전체의 신이며, YHWH와 Elohim이라는 명칭은 신의 활동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국면을 지적할 뿐이며,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것을 지적하였으므로 이에 관하여 뒤에서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 그러므로 그 다음 장에서 성서는 상황(context)에 따라서 YHWH와 Elohim 중 하나만을 사용한다.
창조(the Creation)에 관한 부분과 에덴 동산에 관한 부분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시편 19편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관련성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런데 시편 19편은 많은 현대 주석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평행되는 문단들이 한 사상에 의하여 결합된 것이다. 이 사상은 유대인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개념인 ‘아침 쉐마’(a morning Shema : 이에 대하여는 Singer's Prayer Book, pp. 37f를 참조)를 읽기 전에 드렸던 두 가지 감사기도(benedictions)를 하나로 연결하는 사상과 비슷한 것이다. 시편 19편 처음 부분에서 그 시인은 ‘물질적인 빛’(physical light)의 창조자로서의 신을 찬양하면서 El을 사용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율법의 ‘도덕적 빛’(moral light)의 근원으로서의 신을 찬양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YHWH를 사용한다.
인류의 첫아들을 낳자마나 창조 역사에 있어서 전능자(the Almighty)와 파트너가 되었다는 기쁨을 노래하며, 하나님이 파트너가 되었으므로 자기와 개인적으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느끼고 YHWH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기쁨으로 외친다. “내가 야웨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 반면에 그녀가 셋째 아들을 낳았을 때에는 하루에 두 아들을 빼앗아간 액운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진실로 자기의 피조물들을 번성케 하는 창조주의 능력을 의식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두 아들을 인하여 아직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고 그 일이 자꾸 기억 속에 되살아나서 그녀의 영혼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동참할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때에 그녀는 자기 아들의 출생을 YHWH와 함께 자기가 이룬 새로운 창조의 행위로 보지 않고 생명의 신께서 그에게 주신 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묘사했다 - “Elohim은 아벨 대신에 또 하나의 아들을 나에게 주셨다. 왜냐 하면,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기 때문이다”(창 4:25). 이것은 초상집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하여 아모스(6:10)에 묘사된 것과 별 다름 없는 것이다 - “조용히! 우리는 YHWH의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아담과 하와가 손자들을 보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대대로 생명이 연장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는데 그 때에야 그들은 위안을 얻고 YHWH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 “그때에야, 사람들은 다시 YHWH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4:26).
가인과 아벨의 제사(4:3, 4)에 관련하여 YHWH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왜냐하면, 헌물은 한 인격적인 신에게만 바쳐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율법에 언급된 제사에는, Elohim이나 Elohekha(your God)나, Shadday(Almighty)나, Sebhaoth(Hosts) 등은 언급되지 않고 YHWH라는 특수 명칭만 나타났다’는 것이다(Sifre Num 143. 유사한 대목). 출애굽기 18장 12절은 예외가 되는데 이것은 왜냐하면, 제물을 가져온 것이 외인(stranger)이었으며, 그 전 절에 언급되기는 했지만, 그가 아직까지 YHWH께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중(4:6-16) 신은 윤리적인 역할을 하고 나타나시며 마침내는 필연적으로 YHWH사 사용되어야만 했는데 실지로 그렇게 되었다.
“엘로힘의 형상대로”(in the likeness of Elohim)와 “엘로힘과 동행했다”(walked with Elohim)와 같은 표현들(5:1, 22, 24)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때에 더욱 더 분명해진다. 즉, “야웨의 형상대로”(in the likeness of YHWH)나, “야웨와 동행했다”(walked with YHWH)는 표현들은 경건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YHWH라는 말과 관련이 될 때에 성서는 “walked with” 보다는 “walked before”라는 말을 더 잘 쓴다. 예를 들면 창세기 24:40에 보면 “YHWH, before whom I walk”라는 말이 나온다. 만약, “YHWH, with whom I walk”라고 썼다면 적절한 표현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24절은 Elohim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역시 그 이름으로 끝을 맺었다.
YHWH라는 명칭은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의 말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라멕은 YHWH께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왜냐하면, 전에 언급한 대로(3:14에서 언급된 YHWH Elohim은 3:17에서도 주어가 되었다) YHWH께서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한 저주적인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엘로힘의 아들들”(the sons of Elohim; 6:2, 4)에 관한한, 이 표현이 무엇을 뜻하든지 간에, YHWH가 ‘아들들’과 결합되어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일신의 개인적인 이름이 3절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Elohim의 아들들”에 대한 대귀법 안에서만 그렇다.
창조의 이야기(the account of Creation)와 관련시켜 우리가 열거한 이러한 모든 요인들이 같은 방법으로, 홍수의 이야기(the story of the Flood)에서도 Elohim을 사용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이름은 거의 모든 이야기 부분에서 율법에 실제적으로 쓰여졌다. YHWH가 이따금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얼마 후에 설명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의 원조인 아담과의 언약(the covenant made with Adam)과 대홍수(the Deluge)후에 인류를 다시 부흥시킨 노아와의 언약(the covenant made with Noah)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앞에서 언급한 요인들에다가 첨가시켜야 할 것이다. 인류의 시조 이야기에서 언급된 신의 명칭은 노아의 이야기에서도 필요한 명칭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 두 번째의 계약은 첫 번째 계약의 계속이며 갱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Elohim의 이름으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축복은 아담과 그의 아들들에게 Elohim의 이름으로 드린 축복기도의 성취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YHWH가 나타나는 홍수 이야기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법칙에 꼭 일치한다. YHWH라는 이름은, 이야기 전체에 흐르고 있는 도덕적 동기(the moral motive)가 사악한 자들은 자기의 악한 행실 때문에 형벌을 받고, 노아처럼 의로운 자들은 의롭기 때문에(6:5-8; 7:1) 번영하는 것 같은 특별한 강조점과 일치할 때에 나타난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일을 강조할 때나, 홍수 후에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동물들을 노아와 함께 방주에 집어넣도록 명령을 받은 정결한 동물들을 언급할 때에는 YHWH가 쓰여졌다(7:5; 8:20, 21). 또한 하나님과 노아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 즉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와 아끼는 자기 아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할 때도 YHWH가 나타난다(7:16에서 YHWH가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YHWH를 사용하는 단원에서 언급한 것처럼, 땅위에 내린 저주(8:21)를 회상할 때에는 YHWH가 쓰였다. 이런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YHWH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대홍수의 이야기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미 말한 이유 때문에 Elohim이 나타났다. 노아가 셈과 야벳을 축복할 때에 셈에 관계된 곳(9:26)에서는 YHWH를 언급하고 야벳에 관련된 곳(9:27)에서는 Elohim을 언급한다. 이것은 YHWH에 관한 지식이 셈의 자손을 통해서 보존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에도 랍비문학에 기록된 후대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야웨의 율법에 노아의 아들 셈의 의로움과 박식함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 야벳의 아들들 중에서 인습적인 이교도의 제의를 넘어서는데 성공하였던 사람들까지도 신의 일반적인 개념밖에 알지 못했다.
니므롯(Nimrod)에 대한 기록(10:9)에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그는 YHWH 앞에서 힘이 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과 같이 YHWH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라는 속담도 있다.” ‘그래서 속담도 있다’라는 말은 여기에 유명한 격언이 인용되었음을 말해 준다. 어떤 사람이 힘센 사냥꾼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야웨 앞에서 힘센 사냥꾼인 니므롯”에 비유하곤 했다. 니므롯에 관한 전승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경구 자체는 이스라엘의 속담이었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서기관들과는 달리 평민들은 일상 생활에서 YHWH를 사용하곤 하였다. 율법에는 이 격언이 정확하게 인용되었다. 이 격언과 관련된 귀절의 전반부에 관하여 말하자면 YHWH를 포함한 독특한 말이 쓰여졌어야 한다.
바벨탑 이야기(11:1-9)에서도 YHWH가 나타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이야기 속에서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이스라엘 땅 밖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순전히 이스라엘적인 성격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외국적인 자료가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다. 창조의 이야기와 홍수의 이야기와는 달리 바벨탑의 이야기는 사해동포주의적인 전통(cosmopolitan tradition)이 전혀 없다. 그 배경이 율법의 모습(the Torah's portrayal)을 잘 나타내어 주는 것으로 보아서 그렇다. 창조의 이야기나 홍수의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바벨탑의 이야기에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방 백성들의 거만한 태도와 정신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스라엘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와 같이 해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이스라엘적인 개념이 신의 이스라엘적인 명칭에 의해서 부각된다.
12장 초반부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창시자인 족장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이스라엘적인 명칭은 정규적으로 여기서부터 사용되어야 옳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는 이스라엘을 복 있는 민족으로 선택한 첫 단계였다. 그 때 아브라함은 시련을 겪고 있었다. 그는 이 하나님께 헌신한 데 대하여 아버지의 섭리 안에서 하늘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때 YHWH라는 말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특별한 성격이 나타난다. 이 사실과 일치하게도 12장 처음부터 16장 끝까지에 걸쳐 있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 전체에는 YHWH라는 명칭이 나타난다.
할례(the Circumision)에 관한 부분(17장) 역시 YHWH로 시작되지만 뒤에 가서는 Elohim이 나타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이 부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Elohim이 인용된 첫 번째 말씀(17:4-8)에서는 아브라함은 많은 나라의 아버지가 된다는 약속을 받는다.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첫 세 구절에서 그 약속으로 돌아가게 됨으로써 신의 약속을 계속 강조한다.
“너는 많은 나라의 아버지가 되리라”(4). “나는 너를 많은 나라의 아버지로 만들었다”(5). “나는 많은 나라를 너의 것으로 만들겠다”(6).
이로써 분명히 Elohim은 이스라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명칭이었다. 두 번째의 말씀(17:9-14)에서는 할례에 대한 것이 취급되고 있다. 여기서도 역시 Elohim이라는 명칭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케투라(Keturah)의 자손들과 에돔(Edom)의 자손들을 포함하여 아브라함의 자손 전체에게 주어진 명령이었다. 세 번째의 말씀(17:15, 16)에서도 Elohim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사래(Sarai)가 사라(Sarah)로 되었다는 것을 관련시켜 볼 때에 Elohim이라는 명칭은 정당화된다.
“그녀는 열국의 어머니가 되겠고 백성들의 왕이 그녀에게서 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과 이스마엘로부터 나올 나라에 관한 주제에 이어지는 대화(18-21)에서도 Elohim이 정확하게 사용되었다. 이와 꼭 같은 원리가 마지막 두 절(22, 23)에서도 적용된다. 이 두 절은 앞 부분과 관련을 맺어,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스마엘과 그의 집에서 난 노예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는가 하는 것을 연결시켜 주었다.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그 구절은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Elohim이 나타난다. 7절에 보면 “너희에게 Elohim이 된다”라고 되어 있고, 8절에는 “나는 그들의 Elohim이 되리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Elohim이 사용된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여기에 모순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 표현된 것을 보면 Elohim이라는 이름은 순전히 하나의 보통명사이며 이 사상은 1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었고, 다른 나라와 관련되었을 때에 Elohim이라고 불려진 YHWH가 이스라엘의 특별한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절에서는 선지자들도 Elohim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에스겔 37장 2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나는 그들의 Elohim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여기서 ‘백성’과 평행을 이룬 'Elohim이라는 명칭은 확실히 실질명사(substantive)와 같다.
할례에 관한 기록에서 Elohim이라는 이름은 아브라함과 노아와 아담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인류의 시조 이후 10대만에 노아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아주 의로운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로 사악해진 시대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래서 노아의 의로운 행실 때문에 노아는 온 세상에 임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홍수 후에 모든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다. 노아 이후 10대만에 아브라함이 나왔는데 그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세대 속에서 홀로 창조주를 기억했다. 그래서 그의 의로움 때문에 그는 축복받은 민족의 육신적인 조상이 되었고, 모든 인류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너는 내 앞에서 전심으로 행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노아가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그와 맺어진 언약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은 아담에게 주어진 계약과 축복의 완성이요 면류관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글귀들도 비슷하다. 그리고 문체의 일치는 내용의 유사성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그리고 땅에 충만하라”(1:28).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여라”(9:7).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심히’ 라는 부사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심히 번성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심히 번성케 하리니”(17:2, 6)
그 후에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다.
“생육하고 심히 번성하였다”(47:27). 그리고 다시 출애굽기 1장 7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크게 증가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번성하여 심히 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땅을 채웠다.”
그들은 생육했을 뿐 아니라 크게 증가했다. 그들은 번성하였을 뿐 아니라 매우 강하게 되었다. 아담과 노아에게 약속되고 아브라함에게 말해진 것처럼 “그들은 그 땅을 채웠다.” 노아에게 ‘언약의 표징’이 주어졌고(9:12, 13, 17), 그 ‘언약의 표징’은 아브라함에게 요청되었다. 17장 11절에서는, “그것은 나와 너 사이에 한 언약의 표징이 되리라”고 했다. 9장 13절에서는, “그것은 나와 세상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표징”이라고 기록되었다. 그 앞 부분에는, “보라 내가 네 자손과 함께 내 언약을 세운다”고 기록되었고, 17장 7절에는 “그리고 나는 너와 네 자손들 사이에 나의 언약을 세울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9장 16절에서나, 17장 7, 13, 19절에서나 다 같이, ‘하나의 영원한 언약’을 강조하고 있다. 7장 13절에도, ‘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7장 23, 26절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었다. 9장 11절에는,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언약이 성취될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17장 14절에는, “그런 사람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누구라도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에 받을 형벌을 언급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요약을 하여 보고 이런 종류의 것이 암시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평행법은 문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무체적인 평행법과 언어적인 평행법과는 전혀 다르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이런 평행법을 랍비 현자들이 주석을 붙이던 것과 비슷한 것으로서 대부분 교훈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때때로는 본문의 실제적인 의미를 깊이 파헤치는 데도 사용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분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나머지 부분을 쉽게 분석하여, Elohim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예시할 수 있을 것이다. 모압과 암몬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창세기 19장 29이라든지, 창세기 21장 8-21절에서, 이스마엘이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자기 가정을 이룬 이야기에서처럼, 이야기가 이방 백성들을 언급하고 있을 때에는, Elohim이 사용되었다. 혹은 창세기 20장 3절과 6절에서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라든지 31장 24절에서 라반에게 나타내신 것 같이 이방 나라에 자기 자신을 나타낼 때에, Elohim이 사용되었다. 혹은 이방인들과의 대화(20:11, 13; 21:22, 23 등)에서도 Elohim이 사용되었고, 우리가 지적했던 바 어떤 다른 이유들 때문에도 Elohim이 사용되었다.
한편, 전에 언급했던 규칙에 따라서 YHWH가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이외의 사람들도 족장들이 예배했던 특별한 신을 염두에 둘 때에는 YHWH를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창세기 26장 28, 29절, 30장 27절의 경우가 그렇다. 이에 대한 인용문을 쭉 나열하기는 쉬운 일이다. 쉽게 나열할 수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만약 여러분이 나머지 부분을 검토한다면 YHWH와 Elohim의 명칭이 왜 다양하게 사용되었느냐는 것을 우리가 제시한 법칙에 의해서 항상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신의 명칭이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놀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만약 신의 명칭이 다양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것 때문에 놀라야 할 것이다. 신의 명칭이 사용된 위치는 꼭 그 자리에 그렇게 사용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은 문서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가 아니고, 별개의 원문들이 기계적으로 혼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모든 히브리의 저자들은 이와 같이 신의 명칭을 구분해서 써야 했으며, 이런 방법으로 명칭을 사용해야 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주된 관심사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문학적 전통과 히브리 문학의 모든 영역을 통하여 신의 명칭의 사용법에 대한 규칙이 이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뒤따른다. 즉 문서설이라는 우뚝 솟은 건물이 의지하고 서 있는 다섯 개의 기둥들 중에서 첫째 기둥은 가장 중심이 되는 기둥인데, 이것은 그 재료와 견고성에 대하여 면밀히 조사한 결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검사의 손길이 그 기둥에 닿자마자, 그 기둥은 산산조각이 나서 먼지로 변해버린다. 이제 우리는 나머지 기둥들을 시험해 보아야 하겠다. 다음 장에서부터 나머지 기둥들을 시험하여 보기로 하자.
제 4장 언어와 문체
본장에서는, ‘언어와 문체에 있어서의 다양성’이라는 두 번째의 기둥을 주목하여 보자. 일반적으로 어휘와 문법적 형태와 어법에 있어서 두 단락 간에 서로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기둥의 성질을 명확히 알아보고 그 가치를 면밀히 측정하여 보자.
첫 장에서 시도한 것처럼, 오경의 기초가 되는 주요한 문서들을 추측하려는 Witter의 시도는 대중의 인정을 크게 받지 못하여 곧 잊혀지고 말았다. Witter 보다 약 40년 뒤에 살았던 Astruc은 Witter와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으므로 Astruc은 선구자가 되어, ‘문서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독일의 학자 Eichhorn은 Astruc의 의견을 지지하였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Astruc의 이론을 전개시켜 더욱 깊게 연구하고, 뛰어난 학적 재간에 전문적인 학식의 도움을 받아 Astruc의 이론을 완성시켰다. Astruc이 성공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Eichhorn은 어떤 문단이 각각의 중요한 문서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는 특히 언어적인 측면에서 문서를 자세히 확인하려고 했다. Eichhorn은 각각의 문서는 그 자신의 언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언어적인 특성은 사전적인 자료의 특별한 면에서와, 문법적인 구조 속에서와, 문체적인 특성 속에서 설명될 수 있었다. Eichhorn 이후에도 학자들은 역시 이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많이 했으며,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아주 세밀하게 그것을 계속 검토했으며, 거기에서 비판적인 법칙을 많이 추론하였다. 각각의 주요 자료에 독특한 언어와 문법적 형태의 목록을 방대하게 작성했다.
비록 이 분야에 대한 후대의 작업이 전과 똑같은 정도로 더 이상 학자들을 점유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새 추세에 비추어 그 가치를 잃은 연구형태를 지양하려는 학자들의 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 이와는 반대로 이것은 마치 이런 방향으로 될 수 있었던 모든 일은 이미 성공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오늘날 우리는 아무 할 일이 없고, 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 적어도 가장 그럴싸하게 보이는 결론은 학문의 견고한 기초로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처럼, 그 전의 연구자들이 성취해 놓은 것에 대한 일종의 동의를 의미한다고 본다.
사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급된 그런 종류의 차이점은 실지로 주어진 문단 사이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 차이점들은 하나의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제기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문단에서는, 홀리드(낳다의 Hiphil)가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야라드(낳다의 Qal)가 나온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에 대한 문서설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
만약 어떤 곳에서는 Holidh가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Yaladh가 나온다면, 이 사실은 여러 가지 문서에서 취한 단편들(fragments)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여러 가지 문서들은 동사의 사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어떤 자료는 Hiphil형으로 쓰고 어떤 자료는 Qal 형으로 썼다. 그들은 또 첨가하여 말하기를 이 결론은 다시 두 개의 다른 방향을 모색하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a) 이것은 여러 가지 자료들이 있었다는 가설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b) 이것은 그렇지 않았으면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문장들의 출처를 걱정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우리가 Qal형 Yaladh를 쓰는 자료를 J라고 결정짓고, Hiphil형 Holidh를 쓰는 자료를 P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발생한다. 즉 Hiphil의 의미로 Qal이 발견되는 모든 본문은 J자료에서 나왔고, Hiphil이 나타나는 모든 문단은 P자료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만한 논의가 되는 것 같다. 다양한 문서가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여 준다는 첫째 요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규칙상 같은 저자가 저술 과정에서 매 장마다 언어 사용법을 달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두 번째의 요지는 주어진 문단의 자료가 언어적인 양상을 근거로 하여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정확하다. 동일한 어체(phraseology)를 사용했다는 것은 기원이 같은 자료에서 나왔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원리에서 볼 때에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일을 더욱 더 면밀히 검토하여 본다면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 번째 문제를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성급히 하다가 실수투성이의 추론을 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예증된 차이점들 때문에 언어의 교차가 생긴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앞의 예로 돌아가서, Hiphil형 Holidh와, Qal형 Yaladh는 두 개의 독특한 언어적 계통에 속한다는 것을 확증해야 한다. 그리고 Holidh와 Yaladh가 함께 사용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증해야 한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하여 생각하여 보자. 첫 번째 문제에 관하여 우리가 언급한 증거를 뒷받침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세 가지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a) 우리가 나중에 자료들의 언어적 특성을 판별하기 위하여 사용하게 될 문단들의 기원을 추적하려고 구태여 언어의 차이점에 꼭 의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에 우리는 순환논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리고 말기 때문이다.
(b) 본문이 우리의 이론에 맞도록 하기 위해서 본문을 수정해서는 안 된다.
(c) 단어와 형태를 기계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마치 단어나 형태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context)과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고 형태와 용법이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곧 살펴보겠지만, 문서설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런 함정들을 피하는 데 주의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일반적인 원리들에 관한 질문에 집착하지 않겠다. 이 주제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무 편견 없이 문단을 자세히 연구하고, 해당되는 낱말과 형태에 대하여 정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제점>(La Questione)이라는 책 제 2부를 할애해서 바로 이 문제를 취급했다.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본장에서 이 책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길게 다루었던 문제들을 자세히 검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지면이 허락되지 않고, 이 강의의 목적상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방법론과, 그 방법론에 따라 나오는 일반적인 결론들을 명시할 수 있는 몇 가지 실례를 간결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에 관하여 더 이상 깊게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의 저서를 직접 참고해 주기 바란다. 오늘날까지도 문서설에서 가장 명확하고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들 중에서 몇 개의 실례를 선택하겠다.
무엇보다도 먼저 본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특성을 생각해 보자. 즉, Qal 형태로 Yaladh와 Hiphil 형태로 Holidh의 사용법 상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문서설의 지지자들이 만든 규칙은 다음과 같다. Qal 형태인 Yaladh라는 동사는 주로 어머니와 관련되어 사용되었고 아버지와 관련되어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즉, J자료에서만은 예외가 되지만 Holodh의 의미로 Yaladh가 사용되지 않았다. 한편 P문서는 이런 의미에서 Holidh만 사용되었다. 이것은 가인의 계보(창 4:18)에 나타난다.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Yaladh),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Yaladh)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Yaladh).” 나홀의 계보에는,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았다(Yaladh)”(창 22:23)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은 모두 J에 속한다. 그리고 창세기 10장에 있는 70개 나라 족보도 역시 그러하다. 거기에도 Qal형 Yaladh가 나와 있다. 한편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이르는 10세대의 목록과(창 5) 노아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10세대의 목록은(창 1:10-26) 둘 다 P에 속한다. 여기에선 항상 Hiphil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보자. “아담이 셋을 낳은(Holidho)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wayyoledh)(창 5:4). 그렇다면 여기서 두 부분으로 구분이 된다. 한 편은 J이고 한편은 P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법은 반론을 받게 되어 있다. 틀림없이 J자료를 나타내는 YHWH라는 명칭은 가인의 계보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그 앞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만 YHWH가 나타난다. 그래서 문서설의 추종자들은 그들 나름의 추론 방법에 따라서 마구 문단을 분리시켜 놓았다. 그들은 무슨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가인의 계보는 그 전의 이야기와 동일한 자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은 계보를 그 이야기 부분과 연결시키고, Yaladh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포함한 그들 자신의 이유를 대면서, J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나홀의 가계를 J에 소속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70나라의 계보에서 전에 언급한 구절의 경우처럼 이것은 실지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이렇게 볼 때에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순환론법적인 추론 속에 빠져 있는 실례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 이 구절들은 J에 속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기엔 Yaladh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Yaladh가 J에 독특한 표현이라고 추론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Qal형의 Yaladh라는 동사는 Holidh의 의미로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신명기 32장 18절에는 “너를 낳은(Yaladhkha) 반석은 생각지 않고”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오경 밖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호세아 5장 7절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신실하게 대하지 아니했다. 그들은 사생자를 낳았다”(yaladhu)고 되어 있다. 이것은 시편 2장 7절, 잠언 17장 21절, 23장 22, 24절, 욥기 38장 29절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Yaladh와 Holidh가 어떤 특수한 부류에만 제한되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Hiphil형의 Holidh는 어떤 특별한 어어 집단의 특성으로 생각 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에서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모든 곳에서 ‘낳는다’(begetting)는 것을 뜻하는 정상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히브리어를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문서설을 Yaladh를 사용하는 문단과 Holidh를 사용하는 문단의 차이점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까? 실로 그것은 가능하다.
Yaladh라는 동사가 Holidh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완결형(perfect)과 분사(participle)의 경우에서만 그렇다. 우리는 완결형 남성단수로써, ‘누가 누구를 낳았다’(Yaladh)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분사형 남성 단수로써, ‘낳고 있다’(Yoledh)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미완결형(imperfect)으로, ‘누가 누구를 낳을 것이다’(Yeledh)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혹은 바브연속법 미완결형(Imperfect with Waw Consecutive)인, ‘그리고 그가 낳았다’(wayyeledh)는 말은 쓰지 않는다. 미완결형에서 Qal은 어머니와 관계되어 있을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누가 누구를 낳을 것이다’(Teledh), 혹은, ‘그리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watteledh)에서와 같다. 아버지와 관계되어 있을 때에는, ‘그는 낳게 할 것이다’(yolidh : 미완결 Hiphil), 혹은 ‘그리고 그는 낳게 했다’(wayyoledh : 미완결형 Hiphil 바브연속법)와 같이만 말할 수 있다. 잠언 27장 1절에서,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What a day may bring forth)에서 Qal 미완결형인 yeledh가 나오는데, 그 동사가 ‘begetting’의 뜻으로 쓰이지 아니하고 실지로는 ‘giving birth’의 뜻으로 쓰였기는 하지만…마찬가지로 우리는 부정사(infinitive)를 사용하여, ‘after his begetting’ (ahare lidhto)라고 말하지 않고, ‘after her giving birth’(agare lidhtah)라고 말한다. 아버지와 관련되어서는, ‘after his begetting’(agare holidho)만을 사용해야 한다. 히브리어 숙어에 민감한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그리고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계보에서는 wayyoledh(and he begot)와 ahare holidho(after his begetting) 이외의 말은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히브리 저자들은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료의 문제가 아니고 히브리어의 일반적인 용법의 문제다.
과거 시제의 경우에 Yaladh와 Holidh를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모든 것은 그 구절의 순서에 달려 있다. 어떤 글이 Qal과 흡사한 Niphal형 wayyiwwaledh(and he was born)으로 시작될 때, 혹은 어머니와 관련된 채, 시초부터 Qal이 나올 경우, 예를 들면, Yaldha(she gave birth)와 같은 경우에는 본문이 wayyoledh(and he begot)와 같은 Hiphil형의 동사와 함께 시작될 때에, 혹은 Hiphil에 관련된 실질명사 toldhoth와 같은 말과 함께 시작될 경우에는 holidh를 사용하면서 과거 시제에서도 Hiphil이 계속된다. 이 주제와 관련된 성경 구절을 더 이상 인용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여러분 스스로가 검토해 보라. 이와 같이 해서 모든 위치는 분명해진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자료에 독특한 언어적 특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저자와 모든 책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언어의 일반적인 법칙을 취급하고 있다.
두 번째의 실례를 들어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을 맺는(making a covenant) 개념은, 문서설에 의하면 P자료에서는 heqim brith(He established a covenanat)라는 용어로 설명되고, 때로는 nathan brith(He gave a covenant)라는 말로 표현 되었으며, 그리고 다른 자료에서는 흔히 쓰이는 문구인 karath brith(He cut a covenant)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이 논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틀림없는 사실로 채택되었다. 그래서 성서 연구에 몰두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여 이것이 과연 원문과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를 분별할 생각도 못하고 이 학설을 그저 반복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이런 시험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문장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heqim brith와 karath brith의 의미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언약을 자른다’(to cut a covenant)라는 말에는 어떤 확신을 주는 의미가 있고, ‘언약을 세운다’(to establish a covenant)라는 말은 언약을 맺을 당시에 주어졌던 확신을 실제로 성취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두 가지의 다른 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동일한 사상에 대하여 다른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할례에 관한 글에서(창 17장), “보라, 나의 언약이 너와 함께 있다”(4절)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리고 나는 나와 너 사이에, 나와 너와 네 대대손손에 세우리라”(7절)고 했다. Wahaqimothi(and I will establish)는 완결형과 바브연속법이 합쳐진 것으로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에 이미 언약이 존재한다면(4절) 미래에 다른 언약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음이 분명하다. “나는 너와 네 후손 대대로 나의 언약을 성취하리라.” 같은 문단에 있는 그 다음의 말은 더욱 뚜렷하다. 사라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한 아들이 주어지리라는 약속을 아브라함은 근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하갈을 통해서 난 첫 아들인 이스마엘을 인하여 근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18절)고 아브라함이 말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대답하신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한 아이를 낳아 줄 것이다. 너는 그를 이삭이라고 부르라, 나는 그와 함께 내 언약을 세우이라”(wahaqimothi: I will establish). 이것은, “이삭 안에서 내가 네게 준 약속이 성취되리라”는 뜻이다. “이스마엘에 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다. 보라, 내가 그를 복 주어…그로 하여금 큰 나라를 세우도록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삭과 함께 나의 계약을 세우리라”(aqim: 20, 21절) 즉, 이스마엘에게도 축복은 주겠지만 대대로 있을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을 통하여 성취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구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더 이상 인용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이번 경우에도 역시 우리는 한 가지 사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다양한 자료들의 단편(fragments of various sources)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별개의 개념들을 각각의 고유한 용어로 설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약속이 주어졌다고 말할 때에는 karath brith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약속에 대한 확신이 성취된다는 것을 표현하려면 heqim brith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세 번째의 실례를 들어 보자. 문서설의 추종자들은, E자료로는 ‘to bring up from Egypt’라는 표현을 쓰고, J자료는 ‘to bring forth from Egypt’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이 차이점을 검토하여 보자. 이 두 가지 술어는 그 뜻이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주께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데리고 오셨다”(brought up). 즉, “그가 나일 계곡으로부터 이스라엘 산악지대로 그들을 데리고 올라왔다”고 말할 때에 마음속에는, 그 땅(the Land)으로 들어가는 것이 떠오른다.
즉,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도달해야 할 마지막 목표인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한편, “주께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끌어내었다”(brought forth)고 말할 때에는, 주께서 그들을 굴레의 집으로부터 끌어냈다(going forth)는 개념을 전달할 뿐이다. 이집트의 국경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이다. 최후의 운명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만을 표현했을 뿐이다. 첫 번째의 표현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두 번째의 표현을 사용하느냐는 주제가 요구하는 바에 달려 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가려고 했을 때에, 그는 미래에 그 땅을 소유하는 것에 관하여 걱정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가족들과 함께 그 땅을 버리고 떠나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으로 위로하고 확신을 주었다. “나는 너를 틀림없이 다시 데리고 오리라”(bring you up)(창 46:4). 이 말은 곧, “나는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리고 오겠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그 땅의 소유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는 야곱에게 적절한 대답이 되었다.
자기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말도 이와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주께서는 여러분을 이 땅에서 불러내어(bring you up) 주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창 50:24). 여기에서 그 나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 특별히 언급되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 이런 내용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한다. “여러분은 나의 유골을 여기에서 가지고 갈 것입니다”(bring up from). 여기서 요셉의 관심사는 이집트의 영토에서 자기 유골을 가지고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자기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가지고 가라는 것이다(bring up to).
역으로, 아브라함이 짐승들을 쪼개어 맺은 언약(Covenant of the Pieces)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또한 그들이 섬길 그 나라를 내가 다스리겠고, 그 후에는 그들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오리라”(창 15:14). 여기에서는 그들이 겪어야 할 노예생활과 해방을 대조시키는 것이 그 요점이다. 비록 그들이 너희 자녀들을 노예화 할 것이지만 후에는 너희 자녀들이 거기서 나와(go forth) 압박자의 멍에를 벗어버린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는 데 대하여는 그 뒤에 언급되었다. “그들은 4대 만에 돌아올 것이다”(16절) 등과 같은 표현은 뒤에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성경 구절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기를 지양하고, 그 깊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중요한 원리들이 분명히 부각될 것이다.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성경 구절을 더 이상 인용할 필요가 없다.
네 번째의 실례를 들어보자.
‘나’(I)라는 인칭 대명사 ‘아니’와 ‘아키’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문서설의 추종자들에 의하면 J자료와 E자료는 ‘아노키’를 사용했고, P자료는 ‘아니’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P자료에서 ‘아니’는 약 130번이나 발견되는가 하면, ‘아노키’는 한 번 밖에 안 나온다. “나(아노키)는 당신들 가운데 나그네요 체류자이다”(창 23:4)에서 아노키가 한 번 나올 따름이다. 그렇지만 자료들 간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서 작성된 그 모든 통계표와 숫자들은 이것을 증명해 줄 수가 없다. 이 통계표에서 이들 대명사가 상황(context)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인 양 인용되었고, 다양한 문자론적 형태와 이 대명사들이 들어 있는 특별한 관용에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나는 야웨다”(ani YHWH)라는 표현은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형태를 바꾸지 않는 상투적인 문구이기 때문에 이 모든 범례들은 거의 일치한다. 더우기 anokhi라는 단어는 세 음절로 구성되어 있고, ani는 한 음절로 구성되었다는 견지에서 본다면 문장의 리듬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이런 구분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ani를 사용했고 어떤 경우에는 anokhi를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성서의 본문을 검토해 보면 좋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이런 목적으로 이 두 가지 대명사 중에 하나를 포함하고 있는 창세기의 성경 구절을 모두 검토하여 보았다. 그 결과 위의 추론이 꼭 들어맞았던 것이다. 다음에 보면 연구 결과가 다 나타나있다.
(a) 만약 그 대명사가 동사절(verbal clause), 즉 완결형이나 미완결형의 동사를 포함하고 있는 절의 주어가 된다면 그 대명사가 동사의 앞에 오든 뒤에 오든 상관없이 anokhi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anokhi)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습니다”(I gave my maid to your embrace; 16:5). “나는(anokhi) 그녀를 통해서 자녀를 가질 것이다”(I may have children through her; 30:3). 이것은 변치 않는 법칙이다. 그러나, “나는(ani) 아브라함을 부하게 만들었다”(I have made Abraham rich; 14:23)의 경우에는 예외가 된다. 이 문장은 단어의 리듬이 불규칙하다. 동사의 첫 음절에 메덱(Metheg)이 있다(heesirti; I made rich).
(b) 그 대명사가, ‘다른 사람들과 나’(others and I)에서와 같이 복합주어의 일부이며 그 동사 뒤에 올 때에는 항상 ani이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나와 너의 어머니와 너의 형제들이 진실로 갈 것이다”(habho nabho ani wimmlha wahekha; 37:10).
(c) 그 대명사가 문장 앞부분에서 nominativus pendens이며, 그 문장의 주어가 화자(the speaker)에 관련될 때에는 항상 ani가 사용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보라, 나는 나의 언약을 너에게 둔다”(as for me <ani> behold my covenant is with you; 17:4).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이 주어가 될 경우에는 anpkhi라는 대명사가 사용된다. “나로 말하자면, 주께서 그 길로 나를 인도하셨다”(as for me <anokhi>, the Lord has led me in the way. ; 24:27).
(d) 대명사가 주어가 아니고, 그 앞에 있는 동사의 대명사접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올 때에는 항상 ani이다. “나에게도 축복하소서”(Bless me <ani> also; 27:34, 38)가 그 예이다.
(e) 명사절에서, 즉 완결형이나 미완결형에서 동사가 하나도 없는 절에서 만약 주어를 강조하려고 했을 경우에는 anokhi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Fear not, Abraham, I <anokhi> am your shield; 15:1). 여기서 동사 ‘이다’(am)는 본래 생략된 것을 보충해서 표현했다. 그러나 만약 주어를 강조하지 않는다거나, 목적어를 아주 강조하려고 할 때에는 ani를 사용하였다. “나는 오늘 나의 허물을 기억한다”(I <ani> remember my faults today; 41:9).
두 대명사의 사용법은 창세기 전체에 해당되는 규칙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 대명사들이 소속해 있는 자료가 무엇이든지 간에, 명칭의 다양한 사용은 자료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언어학적 이유 때문임이 분명하다.
terem이라는 말과, bterem이라는 말에서 하나의 재미있는 실례를 발견할 수 있다. E자료는 bterem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J자료는 beth가 없이 그냥 terem이라는 표현을 썼다고들 한다. 그러므로 bterem이 나오는 모든 구절은 E자료 소속이고 terem이 나오는 모든 구절은 J자료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동일한 의미를 마음대로 바꾸어서 두 가지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bterem과 terem은 뜻이 서로 다르다. terem은 부사(adverb)로서, ‘아직 아니’(not yet)를 뜻한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Do you not yet<terem> understand that Egypt is ruined?; 출 10:7) 한편 beterem은, ‘앞에’(before)를 의미하는 접속사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도록”(that I may bless you before(beterem) I die; 27:4) 두 단어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단어는 그 뜻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자료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질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히브리 작가들과 히브리 서적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칙에 관한 것이다. 누구든지 다음과 같이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이집트가 망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Do you not yet understand that Egypt is ruined?)라는 말을 나타내기 위해서, “habheterem tedha that Egypt is ruined?”라고 쓸 수는 없다. 또, “내가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도록”(that I may bless you before I die)를 나타내기 위해서, “that I may bless you terem amuth”라고 쓰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숫자를 배열하는 순서가 다르다는 문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어는 합성수(compound numerals)를 두 가지로 배열할 수 있다. 어떤 때는 1단위가 10단위보다 앞에 나오고, 10단위가 100단위 보다 앞에 나오고 100단위가 1000단위 보다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고, 반면에 어떤 때는, 1000단위가 맨 앞에 나오고, 그 다음에 100단위, 그 다음에 10단위, 그 다음에 1단위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20이라는 숫자를 나타낼 때에, a hundred and twenty와 같이, 내림차순(descending order)으로 배열할 수 있고, twenty and a hundred와 같이 오름차순(ascending order)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45를 나타낼 경우, forty and five로도 배열할 수가 있고, five and forty로 배열할 수도 있다. 문서설의 견해에 따르면, 내림차순으로 배열하는 경우와 오름차순으로 배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자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J문서와 E문서와 D문서는 거의 항상 내림차순으로 썼고, P문서는 정규적으로 오름차순으로 썼다고 한다. 사실 P에 속한다는 부분은 규칙적으로 오름차순이 나타나 있는가 하면 다른 부분은 거의 항상 내림차순이 나타난다. 이것은 얼핏 보면 놀라운 특징이다. 어디까지나 얼핏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문장을 검토해 보면 일반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성경에 있는 모든 합성수를 조사해 본 결과 오름차순과 내림차순은 성경의 모든 책들을 잘 뒷받침하여 주는 명확한 법칙에 따라 사용되었음을 발견하였다.
주요한 법칙은 다음과 같다. 성서가 우리에게 기술적인 자료나 통계적인 자료(statitical data)를 제시하려고 할 때에 성서는 집중적으로 오름차순을 사용한다. 왜냐 하면 이런 경우엔 정확성을 기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작은 숫자를 먼저 쓰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이야기 부분이나 시나 연설 등에서 하나의 숫자만 단독적으로 나타날 경우에는, 특별한 환경요인이 작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숫자가 더욱 자연스러운 순서인 내림차순으로 일정하게 배열된다. 이것은 히브리서에서 숫자 사용법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법칙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과, ‘인간의 딸들’(the daughters of men)이라는 이야기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러나 그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창 6:3).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연설을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제 120살(a hundred and twenty)이 된다”(신 31:2). 뒤에도 이와 비슷하게 연결된다. “모세가 죽을 때에 120세(a hundred and twenty)였다”(신 34:7). 열왕기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히람(Hiram)은 그 왕에게 금 120(one hundred and twenty) 달란트를 보냈다”(왕상 9:14). 그러나 족장들이 드린 제물에 관한 통계적 자료의 목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그 대접의 모든 금은 120(twenty and a hundred) 세겔이다”(민 7:86). 이처럼 각 족장에 관하여도 다음과 같은 말이 언급되어 있다. “그의 예물은 130(thirty and a hundred) 세겔 나가는 은반 하나였다”(7:13f). 마지막으로 한 가지 실례만 더 들겠다. 이것은 솔로몬이 거느리고 있던 고관들에 관한 통계적 정보이다. “솔로몬의 사업을 감독하는 고관들은 550명(fifty and five hundred)이었는데, 이들은 백성을 다스렸다”(왕상 9:23). 물론 이런 제1의 법칙 이외에 제2의 법칙이 있는데 이것들은 말하자면 제1의 법칙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 법칙들은 내가 언급했던 특수한 경우들을 해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이에 관해서 지나치게 세밀히 취급하지는 않겠다. 그렇게 되면 독자가 아주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더욱 자세히 연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문제점>(La Questione)을 참조하면 된다. 이 책에서, 오름차순으로 배열된 실례들이 내가 예시한 원리에 따라 어떻게 설명되는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숫자 배열의 체계는 성서 어느 책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가 여러 가지의 자료들로 구성되었다는 가설이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P에 속하는 부분에서만 오름차순(ascending order)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질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모든 연대기적인 도표와, 통계적인 기록과, 제사에 관한 기술적 설명들은 P자료의 특징이라고 가정한 그 가정을 근거로 하여 P에 속한다고 했다. 그 결과 이런 형태의 경우에 특별한 숫자의 배열은 P에 더욱 많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P에 속하는 몇 개의 이야기 부분에서는 모든 다른 이야기 부분에서도 그렇듯이 내림차순이 따라온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이 그 장피를 벤 때는 99세(ninety and nine)였다”(창 17:24).
지금까지 우리는 어휘와 문법적 구조에 관한 실례를 충분히 들었다고 본다. 이제 남은 것은 문체(style)에 관한 것뿐이다. 이에 관해서도 역시 자세한 부분까지는 들어가지 않겠고 P문서와 다른 문서들 사이의 큰 차이를 간단히 지적해 보겠다. 보통 다른 문서들 사이의 큰 차이를 간단히 지적해 보겠다. 보통 다른 문서들의 문체와는 대조적으로 P의 문체는 차갑고, 메마르고, 무미건조하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P의 문체는 아주 면밀하고, 같은 형태로 계속 일정하게 반복하는 상투적인 문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P에 속하는 글들이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J와 E문서에 속하는 부분의 문체는 명료하고, 생생하고, 다채롭고, 생명력이 넘친다. 그것은 자체에 항상 뚜렷한 멋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그냥 피상적으로 다루다가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되겠다. P에 속한다는 부분은 성질상 필연적으로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예를 들어, ‘아담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라든지, 셈의 자손들의 명단 등과 같은 계보적인 기록에다가 어떻게 생명력이 넘치고 아주 멋있는 문체를 쓸 수 있었겠는가? 한편, 습관적으로 P문서에 집어넣고 있는 몇몇 개의 이야기 부분은 J문서와 E문서에 속한 이야기 부분의 특징인 어체의 생동감과 우아성을 보여 주고 있다. 역으로, J문서에 속하는 몇몇의 계보에서는, P문서 계보의 특징인 냉냉하고, 흥미없고 딱딱한 문체가 나타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문체의 교차(change of style)는 자료의 차이(difference of sources)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주제(subject-matter)가 바뀌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더 이상 논의를 계속하지 않겠다. 지금까지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논의한 모든 차이점은 J, E, P 등 별 개의 문서들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언어의 법칙은 모든 히브리 저자들과 모든 히브리 서적에 꼭 들어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의 기둥(the second pillar)도 검토하여 본 결과 허물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두 번째 기둥은 화강암이 쪼개어진 것처럼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 기둥에 가까이 가서 손가락으로 만져보았을 때에, 이 돌은 첫째 기둥의 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첫째 기둥처럼 둘째 기둥도 한 손가락을 대니 저절로 붕괴되고 말았다. 두 번째 기둥도 역시 넘어지고 말았다!
제 5장 모순과 견해차
이제 세 번째 기둥을 조사해 보자. 본문의 내용에 있어서의 차이점, 즉 여러 문단간의 모순(contradictions)과 상위점(divergences)을 알아보자. 제 4 장에서는 형태의 다양성, 즉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불일치(disparities)에 관하여 연구했지만, 여기에서는 내부적으로 깔려 있는 모순에 대하여 알아보자. 문서설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 종교와 윤리적 차원에서의 모순성, 예배의 양태나 국가적, 정치적 문제들에 관한 견해차, 공동생활에 나타나는 다양한 풍속, 두 개의 대립되는 문단 사이에 나타나는 모순점 등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문서설의 주창자들은 그들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본문의 자료를 결정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이런 차이점들을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서설이라는 건물이 의지하고 있는 중요한 기둥들 중 하나가 된다. 이제 우리는 이 기둥을 만져보고, 그 견고성을 시험하여 보자.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기둥을 구성 하고 있는 자료들은 그 성격이 아주 다르고 수가 많기 때문에, 본장에서 그들 모두 다 취급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문제점>(La Questione)이라는 책에서 몇 가지 실례를 뽑아 보고자 한다. 그러니, 누구든지 더욱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위에서 언급된 학자들이 지적한 바, 자료들 간의 내적 불일치의 범주들(categories)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the Deity)의 개념에 대한 것과 신과 인간의 관련성의 개념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이것을 주목해 보아야 하겠다. 특별히 창세기에 나타나는 이런 불일치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J문서에서 YHWH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국가적인 신이며 세계의 신으로서 취급되었다. J문서는 YHWH를 하늘과 땅의 창조주요, 모든 민족의 주요, 인간의 섭리자요, 심판자이며, 인간의 행위에 따라 인간을 의롭게 판단하시며, 자기를 알고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을 특별히 도와주는 분으로 생각했다. J자료는 YHWH를 물질적 세계에서 완전히 초월한 하나의 추상적 존재(an abstract Being)로 나타내지 않고, 인격(personality)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으며 존재하는 분으로 나타냈다. 특히 YHWH를 성실하게 따르는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으신다. YHWH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떤 때는 백주에도 육체적 형태로 그들에게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천사들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기도 하셨다. 그런데 E자료는 J와 입장이 아주 다르다. 여기에는 높은 차원의 신학적 개념이 나타나 있다. 인간과 신의 간격이 J의 경우보다 E카 더 크다. E에서는 신의 현현(theophanies)이 육체적인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E자료는 전혀 육체적인 현현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모세의 시대에 가서야 대낮에 자기를 나타내셨고, 밤에는 환상과 꿈속에서만 나타내셨다. 사람이 깨어 있을 때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in person) 나타내지 않으시고 천사를 통해서 나타났다. 그것도 땅 위에 나타나지 않고 하늘에서 말씀하셨다.
P는 E가 J와 차이가 있는 것보다도 더 차이가 크다. P는 완전히 초월적 개념이 있다. 피조물과 무한의 신(the Infinite God) 사이에는 어떤 물질적인 다리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깊은 심연(a deep gulf)이 있어서 서로 분리되어 있다. 사람은 그 심연을 영적인 능력으로만 건너뛸 수 있다. P자료에서 육체적인 암시가 나타나는 것은 다만 이따금씩 신의 개념을 인간의 말로 설명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그랬다. P에서 신은 육체적 형태로나(in bodily form) 환상으로나 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지 않는다. 신이 어떤 사람과 대화를 했다는 진술 정도만 나타날 뿐이다. P는 신이 어떤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한다거나 혹은 말을 한 다음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경우에 따라 첨가시키기는 하지만, P는 이런 일반적인 표현에서 맴돌며, 신의 현현에 대한 묘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J문서와 E문서와 P문서는 신의 개념과 신이 인간들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방법에 있어서 보통 이런 차이가 있다. 사실 말할 것도 없이 신의 개념에 대하여 여기 저기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 신의 현현에 대한 것은 후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신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확실히 이 차이점들은 여러 가지 문단에 포함되어 있는 전승(tradition)이 서로 다른 형태(different types)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준다. 그러나 이 차이점들은, J와 E와 P등의 문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차이점들 속에는 하나의 동질적인 책(a homogeneous book)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못한다. J에 속하는 부분에는 YHWH라는 명칭이 나오고 신은 더욱 인격적인 면으로 나타나며, 위에서 언급한 특별한 속성이 주어졌고, E와 P에 속한 부분에서는 Elohim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더욱 추상적인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 장에서 우리가 신의 두 가지 명칭에 관하여 설정해 놓은 법칙을 근거로 해서 얼마든지 설명될 수 있다. E에 속하는 부분과 P에 속하는 부분의 불일치성은 이처럼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생동적으로 다채롭게 써진 이야기가 E부분에 많이 나오고, P에는 대부분이 더욱 교리적인 문단들(doctrinal passages)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된다.
만약 독자들이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고 하자. 즉, ‘그렇지만 여러 곳에서 신에 관한 개념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속에 회의심을 조장할 따름이다’라고. 그렇다면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실례로 들어 나의 이론을 설명하겠다. 만약 어떤 저자가 자기 아버지의 전기를 쓰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유명한 학자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저자는 이 책에다 자기 아버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모습을 그려놓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모습이라든지, 대학에서의 학생들과의 관계라든지, 학문적인 업적 등을 묘사할 것이다. 저자는 어떤 한 가지 특별한 부분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모습에 각각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연대기적인 순서로 배열하여 이 세 가지 주제에 관한 문단들을 섞어서 이 책의 각 부분이 이들 하나하나에 관련된 어떤 것을 포함하도록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 이 학자의 제자들과 이 학자를 존경하는 사람들과 이 학자가 소속한 학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습관적으로 ‘교수’(the professor)라고 불렀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세상엔 않은 교수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학자는 ‘교수’였다. 이 작가가 이 책을 써 내려 갈 때에, 자기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아버지의 생활을 묘사할 때에는, ‘아버지’(Father)라고 언급할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다음과 같이 쓸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러이러하게 말씀하셨다.’ 또는, ‘그 날 아버지는 힘없이 집에 돌아오셨다. 그러나 좋아하며 그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에게서 그는 위안을 느꼈다.’ 한편 대학에, 그의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를 묘사할 때에 저자는,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불리는 명칭인 ‘교수’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이다. 또한 그의 학문적 활동, 연구, 발명, 발견 등을 다루는 글에서도 역시 ‘교수’라고 부를 것이다.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후에 한 학자가 나타나서, 이 책의 저자가 누구냐는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이 학자가 문서설의 방법론을 채택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어떤 곳에는 ‘아버지’라고 되어 있고, 어떤 곳에는 ‘교수’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까, 이 책은 여러 작가들이 쓴 글이 단편적으로 엮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부분(narrative sections)과 학문적인 부분(scientific sections)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여러 사람이 쓴 것을 단편적으로 엮은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이 글의 원문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 범주의 원문은 각각 별개의 자료(a separate source)에서 나온 것이다. ‘아버지’라는 명칭을 사용한 글은 모두 제 1의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교수’라는 총칭명사를 사용한 글과 이야기체의 글은 제 2의 자료에서 나온 것이며, ‘교수’라고 지칭하지만 특별한 내용을 가진 글은 “제 3의 자료에 속한다”고 말하고 나서, 그 문서설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세 저자들은 그들의 주인공을 다르게 묘사한다. 제 1자료의 저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기 부인과 아들들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자기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맴돌고 가족의 복지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제 2자료의 저자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는 제자를 가르치는 일과 학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일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제자들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두고 학생들 앞에 나타난다. 제 3의 자료의 저자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는 가정생활에는 무슨 일이든 관심이 없고 항상 실험실 속에 들어 앉아 책과 기구들을 만지며 학적인 연구 이외엔 아무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 문서설 학자는 세밀하게 분석은 했지만 그는 잘못을 범했다. 왜냐 하면, 전에 우리가 전제한 바에 의하여 그 책을 지은 사람은 한 사람이며, 그 작품 전체는 동질의 작문(a homogeneous composition)이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세 가지 다른 사람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한 개인에 대하여 세 가지의 다른 양상을 묘사했을 따름이다. 한 인격(a single personality)에서 세 가지의 다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이 세 가지 양상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도 이와 같은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이방의 하나님이신 그 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이 율법에 나타나 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자연을 초월하고 그는 사람의 마음에 가까이 계시며 마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돌보듯 사람을 돌보신다. 그는 모든 유형적인 것을 초월하고 계시지만, 택한 백성들에게 자기를 계시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음성을 듣게 하신다. 믿음을 가진 사람의 양심은 이런 다양한 신의 모습을 보고도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마음을 둔 사람들은, ‘변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His Acts)’이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변하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관점이 그럴 뿐이다. 철학적인 기초 위에 자기 신앙을 확립하려는 사상가들이 보기엔 이런 것은 간단히 이해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율법은 철학적인 글이 아니다. 율법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의 마음에 말을 하며 마음속에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하여 의심이 되며 한 작가의 작품 속에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의 신 개념이 함께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성서문학 밖에서 한 가지 실례를 들어 주겠다.
Dante Alighieri의 <신곡>(Divina Commedia)에는, 인간의 생활에 신이 직접적으로 순간순간 개입하는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며 가장 영감적이고 다채로운 대목 다음 부분에는 교리적인 글이 있다. 그런데 이 교리적인 글은 신의 성격이나 개념이 P자료에 속한다는 글과 상통한다. 영감적이고 다채로운 글이 나오는 대목을 J와 E에 비교한다면 교리적인 대목은 P로 비교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는 한 사람이고 그의 <신곡>도 하나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바는 신의 개념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어떤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문서설의 이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신의 개념에 대해서 주목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신의 현현(theophany)을 경험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차이점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할지도 모른다.
“고등비평가들(the Higher Critics)의 견해는 우리가 성서에서 발견한 것과 일치하는가?” 이 일에 대하여 조사해 보자.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신의 현현에 대하여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 가지 입장은 각각 세 가지 자료들의 특징에 속한다고 한다. 만약 신이 육체적으로 나타나면 그 대목은 J이고, 밤에 꿈과 환상 중에 나타나면 E에 속하고, 말로만 나타나면 P에 속한다는 것이다. 신이 꿈이나 환상 중에 나타나는 것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모세 시대 이전에는 이런 형태의 실례가 일곱 가지가 있다. 처음 경우는 ‘쪼개는 언약’(the Covenant of the Pieces)이 맺어질 때(창 15장)를 들 수 있다. 거기에 무어라고 되어 있었던가? “이 일이 있은 후에 주의 말씀이 환상 중에(in a vision)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주의 말씀’에서 ‘주’(the Lord:YHWH)라는 말에 주목하라. 여기서 YHWH가 나왔다. 그런데 환상(vision)은, Elohim을 쓰는 문서에서만 특별히 나타난다는 견해에 어긋난다. YHWH를 쓰는 문서에도 환상이 나오지 않는가! 고등비평에서는 이런 궁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학설 자체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는 근거 때문에 환상이란 말을 삭제해 버린다. Gunkel 같은 사람은 원문수정(the textual emendation)을 정당화했다. 왜냐 하면, 꿈과 환상 중에 신이 나타나는 것은 E의 특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 장에서 이미 여러분에게 언급한 바 있는 논쟁의 한 실례이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이삭에게 있었던 신의 현현(the Divine manifestation to Isaac) 문제이다. 이것은 창세기 26장 24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주(YHWH)께서 그날 밤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여기서도 역시 YHWH라는 명칭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YHWH라는 명칭이 나타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이론에 위배가 된다. 이 경우에 그들은 한 절 전체를 생략해 버린다. 왜냐 하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등비평의 과오는 이와 같이 반복되고 있다.
세 번째의 경우는 야곱에게 있었던 신의 현현이다. 땅에서 하늘까지 사닥다리가 놓인 것을 보았던 그 유명한 꿈속에서 야곱에게 신이 나타났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YHWH가 나온다. “보라, 주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주(the Lord:YHWH)라’”(창 28:13). 이 경우에도 고등 비평가들은 재빨리 손을 써서 이 대목을 전부 잘라버렸다. 그 결과 남은 부분들은 두 개의 유사한 내용으로 재구성되었다. 한 가지는 꿈을 포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형태로 YHWH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이야기는 E에 속하고 두 번째의 이야기는 J에 속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말하기 위해서 원문을 멋대로 변경시키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마음대로 쓴 것에 기초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판단한다면, 혹은 우리의 선입관에 맞추기 위해서, 문단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곱 가지 경우 중에서 세 가지 경우는 문서설의 견해와 완전히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제 4가지 실례만 남아 있다. 네 가지 중 두 가지는 이미 언급된 바 있다. 그랄(Gerar)의 왕 아비멜렉의 꿈에 관한 것과 아람 사람 라반의 꿈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Elohim)이 밤에 꿈속에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창 20:3). “하나님(Elohim)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밤에 꿈속에서 임하셔서 말씀하시기를…”(창 31:24). 이미 제 3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는 Elohim이라는 이름을 써야 했다. 왜냐 하면, 아비멜렉과 라반은 외인들(Strangers)이었고 YHWH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문에는 YHWH대신에 Elohim을 쓴다는 특별한 자료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 모든 히브리 저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보통 Elohim을 썼던 것이다.
일곱 가지 경우 중에서 이제 두 가지만 남아 있다. 이 경우들에 대하여 반대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 실례는 YHWH와 관련된 처음 세 가지 경우와 별 다름이 없다. 이 문제들 역시 어려움을 면할 길이 없다. 그 중 하나가 창세기 31장 10,11절에 나오는 신의 현현이다.
“그 양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 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Elohim)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하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기에도 역시 그 이야기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Elohim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 이런 일을 알려 주려고 YHWH 자신이 나타난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 못된다. 이런 일을 알려 주기 위해서는 한 천사로 만족했다. 가장 신성한 이름인 YHWH라는 명칭을 이런 문제에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그 천사는, ‘야웨의 천사’(an angel of YHWH)라고 하지 아니하고, ‘엘로힘의 천사’(an angel of Elohim)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신이 나타난 것은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고 있었을 때였다.
“하나님(Elohim)이 그날 밤 환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서, ‘야곱아, 야곱아’하고 부르셨다. 이에 야곱이, ‘제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했다”(창 46:2).
이 경우에도 Elohim이 사용된 것에 관하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대목에서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 관계되는 모든 곳에서 Elohim이 사용되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이야기에 관한 대목, 야곱과 그 아들들이 어떻게 가나안을 떠났으며,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어떻게 이집트에 정착했으며, 거기에서 노예가 되었는가 하는 글에서 YHWH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나중에 호렙산에서 YHWH 자신이 모세에게 나타나실 뿐이다(출 3장). 화자(the speaker)가 이집트 사람이었을 때나, 이집트 사람으로 취급 되었을 때나, 화자의 말이 이집트에 관계된 곳에서나, 요셉이 독백할 때에나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자신을 폭로하고 말을 할 때에나, 형제들이 서로 이야기할 때에나, 야곱이 요셉이나 그 아들들에게 말을 할 때에도 Elohim이 사용되었다. 보디발의 아내의 이야기(창 39장)에서 YHWH가 여러 번 사용되었다. 이 후에도 화자들의 말 속에서가 아니고 율법의 객관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YHWH라는 명칭은 나타나지 않는다. 창세기의 결론 부분에서는 전혀 YHWH가 나타나지 않는다. 출애굽기 초반부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경의 비인격적인 말(impersonal statements)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창세기 49장 18절에 있는 야곱의 축복에서 한 번 나오는데, 이 부분은 시(poem)이며, 히브리시의 법칙에 따라 시가 전개된다. 이에 대하여는 제3장에서 언급한 바 있다. YHWH라는 명칭은 잊혀졌고 이 대목은 전부 Elohim이 나온다. YHWH께서 주시는 땅에서 선조들이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을 때, YHWH를 잘 몰랐던 것처럼, 이 부분에는 Elohim만이 나온다. 그들은 일반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했지 YHWH에 대하여는 명확하고도 완전히 지식이 없었다. 다만 그 후에 모세에게 YHWH 자신이 영광 중에 나타난 것뿐이다. 이런 이유로 야곱이 신의 현현을 증거 했을 때 그에게 나타나서, “나는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창 46:4)고 말씀하신 것은 Elohim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내려갈 때에 Elohim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YHWH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Elohim)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야웨(YHWH)다’”(출 6:2). 이 성경 구절이 말해 주는 것처럼 이때까지 그들은 YHWH를 잘 몰랐다. 브엘세바(Beer-Sheba)에서 야곱이 환상을 본 이야기에서도 Elohim이 이런 이유 때문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자료를 사용했다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환상(vision)과 꿈(dream)은 E자료의 특성이라는 개념은 전부가 공상적으로 조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신의 현현에 대하여 써진 다른 대목에서도 자세히 연구하여 보면, 결국 우리는 J와 P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의 현현에 대한 양상에 관련된 상투적인 주장은 공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런 것을 분석하지 않겠다. 시간을 너무 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문제로 넘어가 보자. 어쨌든 문서설 학자들이 속단을 내려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그리고 이들 차이점을 내세우고 문서설을 주장하는 것은 그것을 더 깊이 연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윤리적인 측면에서 자료들 간의 차이를 아직도 지적하는데 이것은 상투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문서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J자료와 E자료는 족장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들에게 나타내려고,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요셉의 의로움과 같은 고상한 도덕적 실례를 제공해 주지만, 족장들은 윤리적으로 반박을 받을만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야곱이 자기의 늙은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은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J와 E의 도덕관념에는 결함이 있고 이에 반하여 P의 윤리적 이해는 대단히 민감하여 결코 비난을 받을 수 없는 고차원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만약 우리가 이 견해의 정확성을 시험해 보고 어떤 대목의 도덕적 수준은 다른 부분의 도덕적 수준과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를 확인하기 원한다면 가장 크게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야곱이 자기 어머니의 지도를 받아 교활하게도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일이다(창 27장). 야곱과 리브가는 확실히 큰 죄를 범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점이 될 수는 없다. 율법이 그 행위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했으며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가 문제이다. 이에 따라서 이야기의 도덕적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이제 성서 원문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이런 성격의 이야기에서 주관적으로 명확하게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연결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우주의 심판자(the Judge of the universe)의 뜻에 따라서 사건이 전개되는 것을 보고 도덕성을 배우라는 여지를 남겨둔다. 확실히 암시적인 교훈은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에서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챈 야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야곱은 추방을 당했는데 그것 자체가 죄의 대가로 오는 형벌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같은 수단으로 보복을 내리신 것이다. 야곱은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형 대신에 아버지 앞에 나왔다. 야곱이 7년 동안 종살이를 한 후에 자기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자를 달라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 라반은 그 밤의 어두움을 이용하여 라반의 딸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야곱을 속였다. 라헬이 들어갈 자리에 레아가 들어갔다. 이것은 야곱이 자기 형 대신에 자기가 이삭의 장막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형벌은 분명히 나타났다. 율법이 내린 판결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튿날 아침에 야곱이 불평을 하니까 라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지방에서는 첫 딸보다 둘째 딸을 먼저 줄 수 없다”(창 29:26). 이 말을 듣고 야곱과 독자들은 큰 아들에 앞서 작은 아들이 먼저 유산을 받았을 때 아버지의 미음이 어떠하였겠느냐는 것을 생각하여 볼 것이다. 리브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녀도 역시 대가를 받았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축복을 가로채라고 할 때에 그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나의 아들아, 이제 내가 명하는 바대로 나의 말을 들으라”(창 27:8). 그런데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이 멀리 떠나갈 때에도 이와 꼭 같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나의 말을 들으라”(창 27:43). 이것이 리브가가 받은 보복이었다. 그 암시하는 바가 분명히 나타난다. 이야기 자체에 도덕적인 성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고상한 도덕적 교훈을 준다. 즉 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는 야곱이나 리브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행하면 벌을 받으며 자기 죄에 해당되는 보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다른 이야기들도 이런 식으로 검토하여 보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에서의 아브람과 사래의 이야기(창 12:10-20) 및 이와 비슷한 내용(창 20장, 27:7-11)이다.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는 이야기(창 25:29-34),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특히 창 3:25-43) 등등이다. 지면 관계로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누구든지 나의 저서 <문제점> (La Questione)을 참조하여 보면 재료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급하게 대강대강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면, 공상적으로 꾸며서 일치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전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면이 부족하지만 이 단계에서 우리가 잠깐 동안 주목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다음과 같이 논쟁을 벌이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 5장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한다면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즉 J와 E의 윤리적 수준(ethical standards)에 대하여는 비판할 이유가 없다. 주의 깊은 독자는 여기서 고상한 윤리적 교훈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지만 왜 P에는, P의 도덕성을 배우기 위하여 면밀한 조사를 요하는 대목이 하나도 없는가? 만약 J와 E가, 족장들이 죄를 지었고 그 결과 처벌을 받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왜 P는 족장들이 범죄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죄를 짓고 처벌을 받는 사람과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족장들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대목은 하나도 P에 속하지 않는다. 막벨라굴(the Cave of Machpelah)에 대한 이야기와 할례(the Circumcision)에 대한 이야기는 예외이다. P자료에는 건조하고 단편적인 기록과, 계보와 연대기적인 글 및 그밖에 다른 것들이 조금 있다. 일반적으로 P문서에는 이야기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예를 제외하고는 P에서 어떤 종류의 이야기도 찾아 볼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형태의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신앙이나 요셉의 덕을 예증하는 이야기들이 P에는 거의 없다.
다른 문제로 넘어가자. 가족의 풍속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자. 이번 경우에도 역시 가장 전형적이며 가장 결정적인 실례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연구해 보자. 보통 말하기를 P자료는 새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지어 주었고, J와 E자료는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검토해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선배들의 주장을 반복하기만 한다. 이처럼, P의 경우와 J와 E의 경우가 다르다는 것은 여러 가지 풍습이 유행하던 별다른 환경에서 문서들이 나왔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P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줄 권리를 아버지에게 준 곳에서 그런 시대에 써진 것이고, 다른 자료들은 아이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어 주는 곳에서 그런 시대에 씌어졌다는 것이다.
J와 E에 속한다는 대목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어린 아이의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상당수에 달한다. 이 법칙에 맞는 것은 19개 내지 20개이고 맞지 않는 것은 14개이다. 이와 같이 예외가 많다는 것은 일단 의심을 하여 보아야 한다. 야곱의 아들들과 관련된 실례들은 모두가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다만 한 가지 실례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가 한 대목 안에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그 반대 경우이다. P에 언급된 경우,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경우가 모두 4번 이하이다. 이 4가지 경우가 논박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처럼 불과 몇몇 곳에 기반을 둔 이 법칙에 중점을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넓게 본다면 여기에 반론이 제기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네 가지 경우 중에서 두 가지는 P에 속한다고 한다. 왜냐 하면, 거기에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즉 이 대목에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기초로 하여 증명해 보았지만 물론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세 번째의 경우를 보면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준 것이 실지로 아버지였는가가 의심스럽다. 그러므로 이 경우도 확증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한 가지 경우만 남았는데 이것은 숫자적으로 무가치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자료의 차이(difference of sources)도 없고 풍습의 차이(variations of custom)도 없다. 그 다양성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 대목을 조심스럽게 연구해 보면 그 이유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고 당연하다. 율법이 출생 후에 아이에게 지어진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할 때에 대부분 출생전이나 출생시의 환경을 암시하는 언어학적인 설명을 도입시킨다. 이름의 기원이 아버지와 관련되었을 때에는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보고,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어머니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어 준 것이다. 이 법칙은 어떤 경우에나 논리 정연하고 타당하게 적용된다. 예외가 하나도 없다. 그 환경이 그 아들 자신에게 관련이 되어 있거나 언어학적인 설명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물론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들 중에서 하나는 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다고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가 지었다고 하며, 그 나머지 경우에는 일정하지 않게, ‘어떤 사람이 이름 지었다’(one named) 혹은, ‘그들이 이름을 지었다’(they named) 등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잡다한 모든 불일치성들이 다 증명될 수는 없고, 공공연하게 대립되는 대목만 증명될 것이라는 논의가 있을 것이다. 그럼 이것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원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창세기에 나타나는 가장 큰 모순성은 에서의 세 아내의 이름들에 관한 두 가지 기록의 차이점이다. 이삭의 ‘역사’를 다루는 글에서는(창 26:34; 28:9) 에서가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디트와,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과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취했다고 써진 곳이 있는가 하면, 에서의 ‘역사’에 의하면(창 36:2-3) 에서의 아내는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와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이었다. 이것은 자명한 모순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것을 잘 조화시켜 보려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창세기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많이 있다. 중복되는 이야기의 일부분인데 이에 대하여는 제목을 따로 붙여 연구해야 되기 때문에 다음 장에서 논하기로 한다. 에서의 부인들의 이름처럼 동떨어진 자료들(isolated data)간의 모순을 지니고 있는 소수의 대립적인 원문들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냐 하면, 지금 조사하고 있는 것은 다른 모순점들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문서설로서 우리는 이런 모든 모순을 조금도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순되는 대목 중에서 어떤 것은 어떤 한 자료(one source)에서 나왔고, 다른 대목은 다른 자료(another source)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식의 설명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왜냐 하면, 모순점과 저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편집자(redactor)에게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문제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데 불과하다. 양심적으로 편집한 편집자는 저자 못지않게 모순을 피해야 할 책임이 있다. 편집자가 불일치(disparity)를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자료를 수정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편집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지우고 생략하고 번경시키고 첨가시켰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에서의 아내들의 경우에 편집자는 자료를 주의 깊게 다루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자료의 배열에 관한 일반적 견해에 의하면 이삭의 역사에 나오는 에서의 아내들의 명단이나 에서의 역사에 나오는 에서의 아내들의 명단은 다 P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 비평가들은 편집자가 P에서 발견한 것을 에서의 역사에서 삭제해 버리고 그 대신에 다른 자료에서 나온 데이터를 대치시켰다고 가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이런 모순점을 자기의 편집물 속에 소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그렇게 한 목적이 무엇일까? 이 질문은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모순성의 문제는 문서설로 해결될 수 없다.
문서설의 도움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에서의 아내들의 이름에 대한 것과 대립적인 번역에 이와 비슷하게 나타나는 다른 문제들에 관한 두 가지 다른 전승(traditions)이 있다. 그러나 율법은 어떤 하나를 중요시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 다 그 원문 속에 존재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두 가지 번역물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도록 하거나, 그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한다. 탈무드 문학에서는 이런 예가 아주 많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세 번째 기둥을 시험해 보니, 이 기둥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는 전에 살펴 본 바 두 가지 기둥의 재료와 마찬가지로 견고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기둥도 역시 시험에 견디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제 6장 중복과 반복
네 번째의 기둥은 중복(duplications)과 반복(repetitions)을 기초로 하여 세워졌다. 창세기를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많은 이야기들이 두 번이나 나오고, 어떤 이야기들은 세 번이나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더욱 면밀하게 연구한 사람은 두 번 나오는 것과 세 번 나오는 것은 두 가지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때에는 유사한 부분이(혹은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한 가지 주제에 관련되어 있는데, 이 주제는 여러 가지 유사한 글 속에 형태가 다르게 자세한 부분까지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든다면, 이것은 항상 인용되는 실례인데, 창세기의 첫째 대목이다. 즉 세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두 번째 대목의 첫 부분인데 이것은 에덴동산에 관한 것으로서 창조 이야기(the story of Creation)의 두 번째 기록으로 취급된다. 이런 실례를 ‘중복’(duplications)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한편 유사한 문단들(the parallel sections)이 어떤 사건들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 그 사건들은 서로 서로 관계가 없지만 주된 골자(principal motifs)가 아주 비슷하여, 이 사건들은 단지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발전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게 된다. 어떤 대목에서는 성서가 다른 곳에서 주어진 제목으로 되돌아가는데 이것을 ‘반복’(repetitions)이라고 한다. 반복의 예로 늘 많이 이용하는 것은 이집트 궁전과 그랄 궁전에서 사라와 리브가가 겪은 일에 대한 기록들이다. 사라의 이야기는 이집트와 그랄에서 나타나고(창 12:10-20; 20장) 리브가의 이야기도 그랄에서 나타난다(창 26:7-11). 중복과 반복이 나타난다는 것은 문서설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이다. 편집자는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법으로 말해주거나, 한 가지 고대 전승을 여러 가지로 번역한 여러 가지 자료(various sources)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 편집자는 각각의 자료들 중에서 그가 발견한 것을 발췌하여 자기의 편집물 속에 하나로 병합시켜버렸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한 가지 제목을 두세 번 반복한다거나 두개의 모순되는 형태의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견해이다. 그러면 이제 그 타당성을 진단해 보아야 하겠다.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일반적인 것만 관찰하고 마는 데서 그치고 싶지는 않다. 왜냐 하면, 그런 일반적인 관찰은 주제를 분류하는 데 있어서 그리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제를 분류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일반화(generalization)는 반일반화(counter-generalization)와 마주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문을 완벽하게 검토하여 보는 일이다. 유사한 부분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해석하는데 대해서 제기된 일반적인 반론을 강조하지도 않겠고 다른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관찰한 것을 다루지도 않겠다. 그런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성경을 직접 검토하여 보겠다. 매 장에서 거기에 해당되는 논리를 전개시켰던 것처럼, 본장에서도 몇 개의 실례를 들어 논리를 전개시켜 보기로 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고전적 실례들을 정확하게 뽑아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즉, 창조 이야기의 중복(duplication)과, 여가장(Matriarchs) 사건의 반복(repetition)에 대하여 연구해 보자. 이 실례들과 관계된 것을 설명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문제의 핵심이 잘 설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창조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율법의 첫 부분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부터,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만드셨다”(창 2:3)까지에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엿새 동안에 모든 우주를 다 창조했다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제 7일의 거룩성이 묘사되었다. 그런데 제 7일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쉬시고 만드신 세계 속에서 기쁨을 누리신 날이다. 여기엔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뒤따라온다. 에덴동산의 이야기에는 아담과 그의 아내의 창조에 관한 것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그런데 현대 학자들은 이것을 다른 또 하나의 창조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처음 창조와는 달리 이것은 두 번째의 우주형성(cosmogony)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처음 이야기는 Elohim이라는 신명을 사용했고, 이것은 P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YHWH Elohim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J에 속한다는 것이다. 문서설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 모두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비평가들은 두 가지 이야기의 내부적인 구조에 있어서만 의견을 달리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문제를 검토하지는 않겠다. 왜냐 하면, 우리가 연구하는 제목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두 부분은 성격적으로 볼 때 상당히 다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우리가 편견 없이 본문을 연구한다면 분명히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총체적으로 창조의 광경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끝없이 변하는 존재의 범주(categories)를 모두 방대한 질서 속으로 통합하는 종합적인 힘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높은 곳에 왕관을 쓰고 있는 신(the Idea)이 우연한 것과 시간적인 것과 유한한 것들을 초월해 있는 광대한 우주를 아주 단순하게 묘사해 준다. 신은 피조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도 않고 초월적인 세계에 거주하면서 초월적인 존재(a transcendental Being)로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 한편, 두 번째 부분에서는 생생하고 극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이야기는 세밀한 부분에까지 마음을 움직인다. 왜냐 하면, 이런 것들은 동양적인 상상 속에 매력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모습을 가지고 종교적, 윤리적 교훈을 묘사하며, 독자의 지식보다는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언급한 바가 있거니와 여기에 YHWH가 나타나서 그의 피조물인 사랑과 그 밖의 모든 피조물들과 직접적으로 접촉을 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차이가 난다. 분명히 이런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눈감아 버리는 사람만이 이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써는 두 가지 다른 문서에서 두 단락(two passages)을 뽑아 후대의 편집자가 기계적으로 혼합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율법(Torah)이 기록되었을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세계 창조와 인간의 지상 생활의 시작에 관한 전승들(traditions)이 이미 많이 있었다. 고대의 모든 동방 민족들은 이런 중요한 화제들(topics)을 많은 사화(Sagas)의 주제로 만들었다. 이 사화 속에는 그들의 신앙과 사고 개념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초기에 살던 사람들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제를 다시 설명해 주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틀림없이 거기엔 여러 가지 전승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신비를 깊이 연구한 현자들(sages)과 철학자들(philosophers)의 세계에서 전해 내려오기도 했고, 한편 국민 대중들 속에 떠돌던 민속담(folk-tales)과, 겸손한 목자의 단순한 마음에 심각한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다채롭고 생생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즉시 공명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율법이 인간과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할 때에는 이러한 전승들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본다. 율법이 이러한 전승들에 대하여 한 가지 태도를 취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전승들의 핵심(husk)을 어떻게 뽑아내며, 껍질을 어떻게 벗겨내며, 전승을 어떻게 해석하며, 좋고 진실한 것들을 어떻게 걸러내며,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 양심에 잘 들어맞도록 전승들을 어떻게 순화하며 그리고 오는 세대에 어떻게 유익이 되게 할 수 있을까를 당연히 고려하게 되었다. 사실 율법이 그 일을 잘해내었다. 우리가 비이스라엘적인 문서들(non Israelite documents)로부터와, 성서적 예언과 시에서 비이스라엘적인 자료들에 대한 암시로부터와, 유대 백성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랍비 현자들의 미드라쉼(Midrashim) 안에서 통합된 전설들(legends)로부터 고대 전승들(the ancient traditions)에 관하여 배운 것을 율법의 처음 부분과 비교한다면, 이 전승들은 율법 자체의 구조를 이루는 생생한 재료의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음을 안다. 율법은 전승들 속에서 적절한 것을 골라내었으며 전승의 내용을 정화시키고 세련시켰고, 율법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이교적인 신앙(the pagan beliefs)이 남아 있다거나, 그런 곳에서 들어온 요소는 제거했다. 율법의 교육목적에 유익한 것만을 강조했다. 앞에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전승들, 즉, 현자들(sages)의 전승과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인 전승은 모두 다 성서의 목적에 이바지했다. 전자의 전승은 창세기 첫 부분에서 성서의 목적에 이바지했다. 하늘과 땅이 한 하나님의 명령(the fiat of the One God)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이방 백성들의 경우처럼 신들(gods)이 서로 서로 전쟁을 해서 그 결과로 된 것이 아니다. 혹은 이스라엘의 시인들이 말한 것처럼, 야웨(YHWH)가 자연의 반항에 대항하여 승리한 영웅적인 행위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그의 말씀(His word)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왜냐 하면, 그의 의지(His will)는 어떤 반대에도 굽혀지지 않으며 그는 자기의 소원을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소원을 묵살시켜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범주의 전승은 창세기의 두 번째 부분에서 율법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율법은 이 두 번째 부분에서 아담과 이브의 초기 역사를 도덕적 교훈의 자료로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왜냐 하면, 선조들의 경험은 자손들에 대한 신호(a sign)이며, 종교적, 윤리적 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부과된 책임을 잘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처음 부분에 지혜전승(the wisdom tradition)의 특성이 반영되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에는 대중 속에 흐르는 전승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론으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두 부분의 불일치(disparities)를 아주 명백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개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을지도 모른다 - 그러지만 일반적인 차이점들은 별 문제로 삼고, 창세기 첫 부분에 있는 이야기의 세세한 내용들은 둘째 부분에 있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서로 내용이 다르지 않는가? 고등 비평가들은 이미 이들 사이에 모순이 되거나 대조(antithesis)가 되는 것을 지적해 왔다. 이 차이점들의 성격과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단을 검토해야 한다. 여기에 대하여는 다섯 가지 요점이 있는데 순서에 따라 생각해 보자. 첫째 - 6일(the six days)은 첫째 부분에서도 언급되었고, 두 번째 부분의 초반(2:4)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여기에는 모순(contradiction)이 있다. “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 날에”라는 구절에서, 하늘과 땅은 하루에 창조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이것은 길게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히브리어 용법에 둔감하지 않은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것이다 -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날에”(In 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라는 표현은 단순히 “주께서 만드신 그 때에”(At the time that He made)라는 뜻이지, 12시간을 말하는 낮(a day)이라든지, 24시간을 말하는 날(a day)은 아니다. 예를 들면, “주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와 함께 말씀하시던 그 날에”(민 3:1)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주께서 모세와 함께 한 대화는 그 날(the day) 하루가 아니라 40주 40야(forty days and forty nights)였다.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주께서 그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내시던 그 날에”(시 18:1; 삼하 22:1 참조), 그러나 사실 다윗이 그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냄을 받은 것은 하루(one day)가 아니었다. 또한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하는 그 시간에”(in the hour that)라고 말할 때 그것은 60분으로서의 한 시간이 아니라 단순히 때(when)를 뜻하는 것이다. 둘째 문제도 첫 번째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창세기 첫째 부분에 의하면 창조는 깊은 물 즉 처음의 바닷물(the waters of the Primordial Ocean)로부터 시작된다(창 1:2). 그런데, 둘째 부분의 처음 몇 절(창 2:5f)에서는 창조가 마른 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논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타당하다. 즉 만약 우리 가 이 본문의 단일성(the unity of the text)을 무시하고 두 이야기를 독립된 이야기로 취급할 때, 다시 말하자면, 아직도 증명될 것들이 남아 있는데 이미 증명된 것처럼 생각할 때에만 위의 논박이 타당성을 가진다. 만약 결합된 부분들이 연속적으로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의 이야기에서 볼 때에 창조는 처음에 언급된 깊은 물로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세 번째 문제도 역시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처음 부분에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창 1:27)고 되어 있다. 즉, 그들은 둘 다 함께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고(2:7) 여자는 그 다음에 창조되었다(2:21, 22). 여기에는 모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실상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많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아무튼 피조물들 중의 한 피조물이며 인간의 기원은 창조행위에 연결된다고 할 때에 인간을 창조한 방법은 일반적인 용어로 간단히 묘사되었다 - “그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하는 창조의 방법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되었다고 말하지도 않고 어느 한 쪽이 먼저 창조되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막연히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다고 표현되었다. 그 뒤에 가서야 인간의 기원에 관해서 언급할 때에 구체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모순의 실례가 아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언급(a general statement)이며, 그 뒤에 가서야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율법에 흔히 나타나는 문학적 표현이다. 두 가지 문제가 실지로 어려운 문제인데 이에 관하여는 좀 길게 언급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의 모순점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 첫 부분에 보면, 제 3일에 식물이 있었고 제 6일에 사람이 있었다. 한편 창세기 둘째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 “인간이 창조될 때까지 땅에는 아직 관목이 없었고, 밭에는 아직 풀이 나지 아니했다”(2:5). 그 후에 사람이 창조하고 난 다음에는, “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2:9)라고 했다.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문제가 된다. 오경의 이야기들(the Pentateuchal narratives)을 재료(material)로써 뒷받침해 준 고대의 전승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인다. 어떤 전승에는 식물이 나오고, 어떤 전승에는 인간이 앞에 나온다. 본래적인 모순점의 율법이 설명 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이것은 그럴 듯한 것이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율법 자체에 모순이 있는가?” 인간의 창조시에 언급되지 않았던 식물들(plants)은 단지 관목이나 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식물은 모든 식물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모순점을 찾아내려는 주석가들은 항상 이런 표현들의 의미를 과장한다. 예를 들면, Dillmann같은 사람은, “관목과 풀은 식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식물들을 대표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선입견이 없이 이 사실을 관찰하는 사람이면 다 관목과 풀이 식물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종류이며 식물계를 가장 잘 대표한다는 견해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꼭 이런 식물이 그 때까지 자라나지 아니했었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면 다른 식물은 아니고 다만 이런 종류의 식물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으로, 부정은 또한 하나의 긍정을 의미한다. 즉 다른 식물들을 이미 지상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종류의 식물이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심각한 문제가 된단 말인가? 이 문단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에덴동산 이야기의 결론 부분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너에게 가시(thorns)와 엉겅퀴(thistles)가 나겠으며, 너는 ‘밭의 풀’을 먹으리라”(3:18). ‘밭의 풀’은 처음에 나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가시와 엉겅퀴’(thorns and thistles)는 처음에 언급된 ‘들의 관목’이나 같은 말이다.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의 처음과 끝이 연결된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나중에 창조된 이런 식물들은 처음엔 없었다. ‘들의 관목’ 즉, ‘가시와 엉겅퀴’는 벌로써 주어진 것이며, ‘밭의 풀’은 밀과 보리 및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의미한다. 왜냐 하면, 인간은 쫓겨났기 때문에 에덴동산의 과실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아직까지도 반대 의견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종류의 식물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식물들이 제 3일에 다 창조되지 않았는가?”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문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처음 부분에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채소를 내며, 식물은 씨앗을 내며(yielding seed), 과수는 그 종류를 따라 과실을 맺으며, 땅 위에서 씨앗(seed)이 과실 속에 있을지어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땅은 채소를 내었고, 식물은 그 종류에 따라 씨앗을 맺었으며, 나무는 그 종류에 따라 씨 있는 과실을 맺었다”(1:11, 12). 여기에서 율법이, ‘씨’(seed)라는 개념과 ‘씨를 맺음’(yielding seed)에 대하여 반복해서 강조점을 두는 것은 처음 보기엔 좀 이상하다. 그런데 이런 강조점은 뒤에 또 나온다. “보라,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yielding seed) 모든 식물과 ‘씨’(seed) 가진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29). 이렇게 자주 반복되는 언급에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다.
목적은 다음과 같다. 즉, 여기에 언급되는 것과 뒤에 두 번째 부분에 언급되는 내용 사이에는 아무 모순점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 주기 위한 것이다. 제 3일에 창조된 식물들은 씨에 의해서 재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식물들이었다. 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식물을 제외한다. 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식물들은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 아직 세상에 없는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하다. ‘들의 관목’과 ‘밭의 풀’에 관계된 이야기가 있다 - “땅에는 아직 들의 관목과 밭의 풀이 아직 자라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주 하나님께서 비가 오도록 하시지 않았고,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서 아직 비를 땅에 내리도록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들의 관목이 없었고, 사람이 없어서 땅을 경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밭의 풀이 아직 자라나지 않았다. 매 년 여름에 우리가 보는 일이지만, 가시와 엉겅퀴의 씨는 땅에 많이 뿌려졌다고 할지라도 비가 안 오면 자라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오면 곧 땅엔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난다. ‘밭의 풀’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밀과 보리와 같이 특별한 식물은 자연적인 상태로 존재하지만 어느 곳에나 많이 자라나지는 않는다. 곡식밭(fields of grain)은 사람이 경작해야 한다. 이에 관한 구절이 몇 개 더 있다. “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2:9) 이 말은 전후 문맥과 떨어져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주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의 동산을 창설하시고”(2:8)라고 그 전 절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 나무들이 어떻게 심어졌느냐 하는 것이 설명되어 있다. 즉, 일반적인 언급이 있고 난 다음에는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정원사가 정원을 새로 꾸밀 때에 그는 무슨 일을 하는가? 그가 정원에서 새 나무들을 길러 내지만(produces) 그가 새로운 종류의 나무를 창조한다(create)고는 할 수 없다. 주 하나님도 그러했다. 정원을 꾸미기 위해서 주 하나님은 좋은 나무가 그 땅에서 자라도록 했다. 주 하나님께서 이미 제 3일에 창조하셨던 종류(species)의 나무 중에서 정원의 나무를 자라게 했다. 다섯 번째 문제도 비슷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간단히 취급해도 된다. 창세기의 두 번째 부분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짐승(beasts)과 나는 짐승(flying creatures)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다(2:19). 그런데 첫째 부분에는 짐승과 나는 짐승이 사람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은 전후 문맥과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주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그와 맞는 조력자를 찾아내라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아담 앞으로 지나가게 하셨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고려되어야 했던 그 가축들(the cattle)은 주 하나님께서 그 때 만드신 여러 가지 동물 중에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보면 아담이 그 가축들과 짐승들과 날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20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 가축들은 그 성격상 첫째 부분에서처럼 이미 에덴동산에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각종의 짐승들과 날짐승들이 대표적으로 아담이 사는 곳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주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흙으로 전에 창조되었던 모든 종류의 짐승들과 날짐승들을 창조하셔서 아담 앞에 데리고 오셨다. 일반적으로 이 둘째 부분에는 어떤 종류의 우주론적인 설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는 일월성신(the hosts of heaven)에 관한 것이라든지 바다와 고기에 관한 것에 대하여는 아무 언급도 없다. 이에 대하여는 몇몇 학자들이 다시 지적한 바가 있다. 여기에는 하늘과 땅의 창조에 관한 것도 부수적으로만 언급될 뿐이다. 한편 가축을(the domestic animals)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생략되었고 식물계에 대한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나무와 사람의 죄와 관련된 종류만 언급된다. 짐승들과 날짐승들의 창조에 대하여는 아담 앞에서 아담이 이름을 짓도록 한 것들에 대하여만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창조에 관해서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자세한 묘사는 일반적인 용어로 그 앞부분에서 암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설명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자세한 내용이 나오는 문학적인 방법에 맞게 써진 것인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율법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관찰하여 보건대, 두 부분 간에는 모순이 전혀 없으며, 두 부분이 저작될 당시에 서로 연관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더욱 깊이 연구해 보니 두 부분의 연결성을 자체 안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두 부분의 내용을 더욱 면밀히 검토한다면 우리는 이 두 부분이 서로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말썽 많은 문제인 세상에 악이 들어온 것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율법이 주는 답변을 고려해 본다면 두 부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은 전능자(Almighty)요 선하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세상인데 어떻게 그리 많은 고통과 액운과 여러 가지 악이 우리에게 임한단 말인가? 두 부분이 하나로 연결되어 우리에게 해결점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다 - 세상 자체는 창조주(the Creator)의 손에 있었기 때문에, 아주 선했다(1:31). 그러나 인간의 범죄가 모든 종류의 악을 끌어들여 오는 원인이 되었다(3:16-19). 우리가 이 두 부분을 계속적인 전체(a continuous whole)로 연구한다면 이런 대답을 얻을 수 있지만, 두 부분을 서로 떼어 놓으면 각 부분에서 반쪽의 답변밖에 못 얻는다.
그러면 이제 반복(repetitions)의 문제로 넘어가서 이 분야에서 옛날부터 대두되는 실례, 즉,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여가장(matriarchs)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검토하여 보자. 문서설에 의하면 첫 번째 이야기는 J에서 나온 것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E에서 나온 것이며, 세 번째의 이야기도 역시 다른 계층의 J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검토하여 보자. 첫 번째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있었던 아브람(Abram)과 사래(Sarai)의 알화(episode)에 관한 것인데(창 12:10-20), 이것은 얼핏 보면 그 뒤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에 있었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연결된 유사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지 않는 말은 거의 한 구절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사실이다. 랍비 현자들이 교훈적인 목적으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표현들(Bereshith Rabba 40:8)도 사실이고, 두 부분 전체의 내용과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사실이다. 첫 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 그 땅의 기근은 매우 심했다.” 또, “이제 기근이 그 땅에 극심했다”(43:1)라고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했으므로”(47:4)라고 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람은 체류하기 위해서(to sojourn) 이집트로 향해 내려갔고, 그 뒤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은 바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체류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47:4). 아브람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자기도 죽지 않고 아내도 죽이지 않으려고 걱정하는 것은(11-13절) 출애굽기에 기록된 바로의 명령과 상통한다. “만약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면 살리라”(출 1:16). 그리고 그 뒤에는, “태어난 모든 아들은 나일강에 던지되 딸은 살리라”(출 1:22)고 했다. 사래를 이집트 왕궁에 불러들여 바로의 시녀(handmaid)가 되게 하려는 것은(창 14, 15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의 노예가 되도록 한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창세기 12장의 이야기 속에서는 아브람에게 주어진 선물이 강조되었다. 12장 16절에서 “사래 때문에 아브람은 후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에 “그는 가축과 금과 은이 대단히 많았다”(창 13:2)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출애굽 이야기에서 은과 금과 옷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에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주께서 압박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재앙(plagues)을 내려 바로를 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도록 해 주셨다는 것을 율법은 이 두 부분에서 다 강조하고 있다. 재앙이라는 말은 창세기 12장 17절에도 나오고 출애굽기 11장 1절에도 나온다. 해방의 첫 단계는 두 가지 경우가 다 비슷한 용어로 표현되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말하기를”(창 12:18)이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에는,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출 12:31)라고 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바로는, “데리고 가라”(take and be gone, 19절)고 아브람에게 말했다. 여기에 나오는 동사는 단수이다. 그리고 출애굽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의 말대로 가지고 가라”(Take … as you have said, and be gone; 출 12:32). 70인역에는 창세기에 있는 것이나 똑같이, “데리고 가라”(take and be gone)고 되어 있으며 동사만은 복수이다. 창세기 12장에는, “그래서 그들은 아내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아브람을 가게 했다”고 하여, “가게 하다”(let go)라는 뜻의 동사인 silah를 사용했는데, 이 동사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자녀들과 관련되어 자주 나온다. 여기서, “그래서 그들이 그를 가게 했다”(And they set him on the way)라는 말은 wayyesallehu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직역한다면, “And they sent away, let go”이다. 이집트를 떠난 후 아브람이 남방(Negeb)으로 올라갔는데(창 13:1)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하여 보낸 정탐꾼들이 남방으로 올라간 것이나 비슷하다. 민수기 13장 17절에는, “거기 남방으로 올라가라”(Go up in to the Negeb yonder)라고 되어 있고, 22절에는, “그들은 남방으로 올라갔다”(They went up into the Negeb)로 되어 있다. 창세기 13장 3절에도 아브람에 대하여 같은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아브람은 여행길에 올랐다”(And he went on his journeys.)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그 노정대로 여행을 떠났다”(All the congregation of the poeple of Israel journeyed…by stages; 출 17:1). 여기서 stages는 직역하면, “their journeys”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표현이 오경의 다른 부분에 많이 나타난다(출 40:36, 38; 민 10:6,12; 33:1,2). 마침내 아브람은 벧엘과 아이 사이로 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는데 이 곳은 아브람의 자손들이 요단 서편의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적과 싸워야 했던 곳이다.
분명히 이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틀림없이 율법은 그 유사성을 고의적으로 강조했다. 율법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올라갔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앞부분(창 12:1-9)과, 후에 그의 자손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가 하는 이야기 사이에 놓여 있는 유사성을 주목해야 한다. 아브람은 북쪽에서 와서 가나안 땅을 두루 다녔는데 이것은 세 단계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여행에서 아브람은 세겜으로 갔는데 그는 그곳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다. 이것은 주의 이름으로 그 땅을 정복할 것을 상징한다(6,7절). 두 번째 여행에서 그는 벧엘 동쪽에 도착해서 그곳에 장막을 쳤다. 동쪽에는 아이(Ai)가 있었고 서쪽에는 벧엘이 있었다. 여기에서 아브람은 또 제단을 쌓았는데 이것은 그의 신의 이름으로 그 땅을 정복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8절). 세 번째 여행에서 그는 점점 남방(Negeb)으로 갔으며, 헤브론에서는 막벨라의 밭과 그곳에 있는 굴을 구했다(23:17-20).
이와 비슷한 여행기가 있다. 야곱이 밧단아람(Paddan-Aram)으로부터 돌아온 것도 이와 비슷하다. 야곱은 북동쪽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세겜까지 갔다. 그는 많은 값을 치루고 땅을 사서 그 곳에 장막을 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El-Elohe-Israel)께 제단을 쌓았다(창 33:18-20). 야곱은 그의 아들들이 세겜성을 점령할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창 34:25-29). 그리고 야곱은 그 곳을 떠나기 전에 자기집 사람들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명하여 벧엘로 올라갈 준비를 하게 했다. “너희들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라”(35:2). 그리고 야곱이 그들에게 받은 신상들을 세겜 근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숨겼다(35:4). 그 후에 야곱은 ‘벧엘’까지 가서 그도 역시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마침내 그는 ‘남방’으로 여행을 계속하여 ‘헤브론’에 도착했다(35:27).
아브람과 야곱의 여행 중에 있었던 중요한 이정표들(milestones)은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것과 매우 비슷한 점을 시사해 준다. 군대를 통해서 점령할 처음의 도시는 벧엘 동편에 있는 아이(Ai)였다(수 7:2). 그리고 아이성을 점령하려고 준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아이 사이 즉, 아이 서편에 있었다(수 8:9,12를 비교). 아이성을 정복하는 이야기 바로 그 다음에, 여호수아서에는 여호수아가 세겜 근처에 있는 에발 산(Mount Ebal)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수 8:30).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중심부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남쪽으로는 아이-벧엘 북쪽으로는 세겜 사이에 있는 그 땅을 얻은 것이다. 이곳은 아브람과 야곱의 여행 중간 단계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으로부터 두 지역으로 흩어졌다. 아이-벧엘의 남쪽 지방과(수 10장), 세겜의 북쪽지방(수 11장)으로 흩어졌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아브람과 야곱의 경우에서 살펴 본 대로 가나안 땅을 셋으로 나누는 것이다. 세겜에서 여호수아는 야곱이 사용했던 말을 사용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상을 다 버리라”(수 24:23). 거기에서 여호수아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었다. 그는 큰 돌을 취하여 주의 거룩한 장소(sanctuary)였던 상수리나무 밑에다 그 돌을 세웠다(수 24:25,26).
이 모든 유사성은 분명히 우연한 일은 아니다. 전에 아브람과 야곱의 이야기에서 사용되었던 반복적인 표현들은 결국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언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목적은 분명히, 조상들의 행동이 자손들에게 한 가지 암시(a sign)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가나안 땅은 이미 족장 시대에 상징적으로 점령된 것이다. 또한 족장들은 그 땅의 일부를 사고 그들의 칼과 활로 세겜성을 정복함으로써 실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께서 족장들에게 주신 암시적인 약속(an implicit promise)인데, 이 약속은 후에 자손들에 의해서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완전히 성취되었다.
이런 원리는, 이집트에서의 아브람과 사래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운명에 대하여 말해 주는 유사성에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도 역시 선조들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예시해 준다. 이 일화에도 역시 아브람과 사래에게 주어지고 자손들에게 실현될 암시적인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도 역시 교훈이 담겨져 있다. 즉, 주의 말씀은 영원하며, 주의 도움이 아브람과 그의 아내에게 주어졌고, 자손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손들에게 새롭게 부각되었던 것처럼, 자손들이 필요한 때면 언제라도 주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대대손손에게 희망과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의미를 파악했으므로 유사한 이야기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세 이야기가 왜 서로 연결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율법이 기록될 당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족장들의 전승이 많이 유포되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창조의 사역(the work of Creation)에 대한 사화(sagas)가 많이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율법은 여러 가지 전승 중에서 율법의 목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을 골랐다. 세 가지의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이집트에서의 아브람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그랄(Gerar)에서의 아브람의 아내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랄에서의 이삭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모두 다 하나의 고대 사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고대 사화는 이 주제의 기록 이전에(pre-history) 있었던 것이며, 우리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이 세 이야기가 율법의 목적과 잘 어울리며 그 목적을 잘 나타내었다면 이 이야기들을 배제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로마의 역사가 Livius는, 두 영웅에 관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이 두 영웅은 아버지 Decius와 아들 Mus라는 영웅들인데, 로마 군대의 승리를 확인 받기 위해서 전장에서 그들의 생명을 그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아버지에 대하여 쓴 이야기와 아들에 대하여 쓴 비슷한 이야기가 둘이나 있지만, Livius는 이 이야기들을 다 채택해서 역사를 썼다. 그렇다고 Livius 저작의 단일성을 침해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 율법으로 하여금 세 가지 전승을 받아들이도록 한 이유는, 두 번이나 세 번 반복된 것은 무엇이나 확고하고 완벽한 것이라는 개념에서였다. 아브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가나안 땅에 대한 상징적인 정복 이야기는,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되었고, 이것은 마침내 여호수아 시대에 가서 실현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바로의 궁전에 머물러 있던 사래의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에게 준 교훈과 약속은 그 다음에 아비멜렉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확증되고 확고하게 되었으며, 리브가의 이야기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고 굳혀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손들에 의하여 성취되고 대대손손을 위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확인을 위한 목적으로 이야기를 총괄하는 방법은 셈족에서 나온 것인데, 셈족들은 하나의 사상을 강조하고 부각시키기 위해서 평행법(parallelism)을 사용했다. 오경의 이야기 부분에 나오는 이런 반복(repetitions)은 요셉이 바로에게 한 말에서 언급되었다. 그 때 요셉은 다음과 같이 꿈을 해석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니라 속히 행하시리니”(창 41:32). 여기에서 율법은 우리에게 반복의 의미를 분명히 말해 주며, 어떤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확정되고 하나님이 속히 행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할 때에는 반복해서 교훈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도적인 반복이지, 후기의 편집자(redactor)의 편집 과정 속에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위에서 든 실례들 속에서 증거가 충분히 제시되었으므로 문서설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네 번째의 기둥도 그 기둥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를 실지로 점검해 보는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제 7장 혼합된 문단
아직도 시험해 볼 기둥이 한 개 더 있는데 그것은 혼합된 문단(the Composite Sections)이라는 기둥이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여러 문단 속에서 절과 절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런 유사성을 필요 없는 중복으로 취급하거나 자명한 모순이라고 못을 박는다. 문단들 하나하나는 다른 요소들(different elements)에서 떨어져 나와 함께 결합된 것이라는 가설 즉, 모두 한 주제에 속하는 두세 가지의 본래적인 문단에서 뽑은 구절을 혼합하거나 그 단편들로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근거로 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편집자가 이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두 개의 이야기를 뽑았다. 하나는 J자료로부터 뽑고, 다른 하나는 E자료로부터 뽑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야기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첫번째 이야기에서 몇 개의 단어나 한 문장 전체, 혹은 몇 개의 문장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두 번째 이야기에서 몇 개의 단어나 한 문장 전체, 혹은 몇 개의 문장을 계속하여 복사했다. 그래서 마침내는 자기 기분에 맞는 대로 재료를 다 사용해서 두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잘 혼합되었다. 어떤 때에는 그에게 유용한 이야기가 세 개나 나온다. 그럴 때에는 세 번째 자료에서 뽑아낸 재료(material)를 자기 편집물 속에 여기 저기 섞어 넣는다. 어떤 때에는 설명문이나 관련된 구절이나 일반적인 각주를 자기 자신의 말로 고쳐 써넣는다. 이 모든 것은 별 문제로 하고라도 우리는 때때로 원자료 자체 속에서도 내적 종합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다른 계층에서 나온 재료들이 결합되고, 그 문서의 특정한 편집인이 함께 연결시킨 자료가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이 학설의 정확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는 일반적 고찰을 지양하고, 전보다 더욱 면밀하게 성서 본문을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다른 학자들이 이미 길게 이야기한 문제는 다루지 않겠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편집자가 그런 식으로 편집을 했다는 설명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문제는 취급하지 않겠다. 곧 성서로 돌아가서 성서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더 좋다.
본장에서 우리가 몰두해야 할 주제의 성격상 논쟁을 위해서 여기 저기서 자료를 뽑아내면 안 되겠다. 특별히 한 곳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절 및 구(half-verses) 사이에 있는 논리적, 문법적 관련성에 대한 미묘한 문제들에 대하여 그리고 문단의 내적 구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단숨에 쭉 훑어보는 것 보다는 깊이 연구해보는 것이 더 좋을 줄 안다. 혼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특별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을 선택하여 자세히 조사해 보자.
이렇게 볼 때에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준 이야기 부분(창 27장)에 대하여 고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장에서 다른 각도로 연구해본 적이 있다. 자료분석은 문서설이 이룩해 놓은 것 중에서 가장 타당한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내적 구성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원문분류(textual divisions)의 성격과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말하기를 이 문단의 절들이 나온 자료는 한 편은 J이고 다른 한 편은 E라고 한다. 어떤 절이나 어떤 절의 일부가 J에 해당되고 어떤 것이 E에 해당되느냐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그 문단은 편집자가 이 두 문서에서 나온 요소를 배합하여 만든 하나의 교직물(a tapestry)이라고 한다. 이 학자들은 좋고도 예리한 분석적 기교로써 편집자의 과정 전체를 추적해 나가며, 이 문단을 원래의 부분으로 분석하고, 자료들에 따라 원문의 두 가지 형태를 분리시키고, 이 단편적인 문장들로부터 편집자가 사용되었던 원래의 두 이야기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Hermann Gunkel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이런 연구 방법을 잘 사용했다. 15절과 16절에는 야곱이 자기 형 대신에 자기가 아버지 앞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변장했는지에 대한 것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Gunkel은 분석의 출발점을 삼았다. 첫 절에 의하면 야곱이 자기 형의 옷을 입는다. 둘째 절에 의하면 야곱은 염소 가죽으로 자기 손과 목의 부드러운 부분을 덮어버린다. Gunkel의 의견은 이 두 가지 비슷한 계략 즉, 에서의 옷과 염소새끼 가죽은 각각 다른 자료에 속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Gunkel은 그 문단 전체를 다시 세분했다. 에서의 옷에 대해서 언급하는 모든 절(verse)이나 마디(fragments of a verse) 그리고 에서의 복장을 언급하는 절과 관련된 모든 절이나 마디, 혹은 그에게 그렇다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다 제 1의 자료에 속한다고 했다. 반대로 염소 새끼의 가죽과 관련된 것이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다 제 2의 자료에 속한다고 했다. 신의 명칭과 언어의 문체의 독특성을 들어서 Gunkel은 제 1의 자료는 J이고 제 2의 자료는 E라고 결정했다.
Gunkel의 주석을 검토한다거나 다른 주석가들의 주석을 더 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본문의 귀절들을 순차적으로 연구하여 보고 앞에서 언급한 학자들의 분석 특히 Gunkel의 분석에 주의를 집중시켜 그것이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를 확인하면 된다.
여러분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야곱과 에서 두 형제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이 축복은 선택된 아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인데 그 아들은 자기 형제를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 아들들의 어머니가 아들을 잉태하고 있었을 때에 주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할 것이요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 25:23). 두 민족 중에서 어떤 민족이 더 강하게 될지 모른다. 어떤 자가 형이며 어떤 자가 동생인지 모른다. 왜냐 하면, 두 아이는 어머니 뱃 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고(22절) 이들이 싸우다가 서로 위치가 바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태어날 때에 야곱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26절). 이것은 두 아이가 장차 상속권(primogeniture)을 얻으려고 서로 다투고 있음을 나타낸다. 만약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 위치가 바뀌어졌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의 명령은 “동생이 형을 섬기리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 말씀에는, “에서는 능란한 사냥꾼이었고 들 사람이었으며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서 장막에 거했다”(27절)고 기록되어 있다.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전통을 계승할 만한 아들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율법의 의도였다. 이 사실을 이 문단 전체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이 가계(family circle)는 형과 동생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28절) 에서에 대하여 마음이 약했다. 그래서 이처럼 약한 성격 때문에 이삭은 정신적 안목이 근시안으로 되어 버렸다. 이런 정신적 근시안은 사실 육신적으로 소경인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다만 어머니인 리브가의 현명한 통찰력으로 만이 누가 장자의 명분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지만 리브가는 순수한 동기로 야곱을 사랑했다(28절). 리브가는 두 아들의 성품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야곱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이다. 리브가에게 어떤 고질적인 심리적 질환이 있었기 때문에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한 것은 아니다. 두 아들에 관하여 말한다면 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주의 말씀을 해석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야곱은 자기 생각대로 하면 상속권이 자기에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법적으로 안전하게 해놓기 위해서 에서로 하여금 장자의 명분을 팔도록 했다(29-3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을 때 두 형제 사이에는 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축복은 에서가 받아야 한다는 이삭의 견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에서는 그 때, 축복기도는 나중에 있는 것이고 당장에는 눈앞에 붉은 죽이 있으니 그 죽을 먹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죽은 옛날 것이 되어버리고 당장 축복기도를 받아야 될 터이므로 축복 기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 문단의 첫째 부분(창 27:-14)에는 이삭은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와서 축복기도를 받으라고 초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삭이 늙고 눈이 어두워서 앞을 보지 못할 때에 그는 장자 에서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들아’라고 부르니,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고 에서가 대답했다”(1절). 이 밑줄 친 부분은 삭제하고 말았다. 왜냐 하면, 이 귀절은 J에 속하는데 대화를 시작할 때에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E의 특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견해에 찬성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간단한 몇 마디의 말을 어떤 저자의 특징으로만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작가들은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서 이런 형태가, E에 의해서 사용되었지 J에 의해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Elohim이라는 명칭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런 형태의 말은 신명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곳에서도 나타나며, J의 특징이라는 YHWH라는 명칭과 함께도 나타난다. 창세기 22장 1절의 예를 들어보자. “그러나 YHWH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를 불렀다. 그리고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제가 여기 있나이다’고 대답했다.” 문서설의 주창자들은 이 귀절에서 YHWH를 생략하고 Elohim을 대치시킨다. 이것은 자기들이 미리 정해 놓은 법칙에다가 원문을 교정하여 일치시키려는 아주 안이한 방법이다. 신명이 있는 문구에 이런 서론적 형태가 나타날 때에는 언제나 E에 속한다고 한다. 왜냐 하면,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은 E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법칙에 근거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 구절의 둘째 부분을 삭제해야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을 잠깐 동안 받아들여 보기로 하자. 그러면 남는 것은 다음 문구 뿐이다 - “이삭이 장자 에서를 불렀다. 그리고 말하기를 ‘보라, 나는 늙었다.’” ‘그리고 말하기를’(and said)이라고 했는데 누구에게(to whom) 말을 했는가? 본문에 보면, “그에게”라고 되어 있다. 2절에서 elaw라는 말이 없는 것은 2절의 문장이 대화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1절에 기록된 대화의 첫 부분을 생략할 수가 없다. 만약 시작하는 말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충했어야 했을 것이다.
2절에서 4절까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 “이삭이 말하기를,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무기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멀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게 하라.’” ‘그리고 나에게 별미를 만들어…먹게 하라’라는 말은 이런 식으로 해서 삭제된다. 이것은 E에 속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유사한 것 같지만 두 가지 서로 다른 주제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냥고기’(game)라는 주제와 ‘별미’(savoury food)라는 주제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야기를 두 명의 교정자가 고쳤다는 것이다. ‘별미’는 염소새끼의 가죽(the skins of the kids)과 관련이 있으며 E에 속하고, ‘사냥고기’는 J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한 것인가? 이제 두 문서대로 나눠놓고 난 후에 무엇이 남는가 보기로 하자. J에 속한다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런즉 네 무기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나로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게 하라.” 본문에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 에서가 아버지 집에서 멀리 멀리 떨어진 장소에 가서 사냥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에서가 사냥고기를 집으로 가지고 오고 아버지를 위하여 사냥고기로 음식을 만들고 아버지에게 고기를 갖다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E에 속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들아’고 부르니, ‘제가 여기 있나이다’고 에서가 대답했다. 이삭이 말하기를,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라.’” 이것은 더욱 기괴한 일이다. 에서는 들 사람이었으며 능란한 사냥꾼이었고 용맹스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요리용 스토브에 별미 접시를 차려 놓는 주부로 변해버리지 않는가? 원문에 있는 그대로 보면 앞 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독자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료에 따라 나눠 놓는다면 이 글은 머리와 손발이 없는 흉상(torso)이 되고 말며, 의미도 감각도 없게 된다.
에서는 즉시 허둥지둥 들로 나가서, 사냥을 하여가지고 사냥한 것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리브가는 남편이 에서에게 명한 내용을 듣고 걱정을 하다가 남편이 저지른 과오를 시정하려고 그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이삭은 노인이요 완고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설득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게다가 에서에게는 통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리브가가 생각하기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꾀를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삭이 즐기는 진미를 리브가가 요리하고 야곱이 그것을 눈 먼 아버지에게 갖다 주며 그가 바로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라고 말하여 에서 대신에 축복을 받는다.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것이다. 축복기도는 마땅히 야곱이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속임수를 쓰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주께 맡기고 주께서 역사하시도록 해야 했다.
둘째 문단(27:5-10) 역시 두 문서로 분류한다. “나에게 사냥한 것을 가져오라”는 말과 관련이 있거나 그런 말을 포함한 것은 다 J에 속하고, “나를 위해서 별미를 만들라”는 말로 시작되고, “그가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도록”이라는 말로 끝나는 것(10절 마지막 부분)은 모두 E에 속한다고 한다. ‘사냥고기’(game)는 J 소속이고, ‘별미’(savoury food)는 E의 소속이라고 한다. 그런데 E의 부분에 YHWH가 나타난다(7절). 그렇다면 원문이 이 이론에 반대가 되는데 이 어찌 하란 말인가? 그러나 문서설 학자들은 즉시 돌파구를 찾는다. 7절에서 ‘YHWH 앞에서’라는 말을 삭제해 버린 다음 모든 것을 재정리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재정리한 것은 오히려 질서 정연하지 못하다. 한 번만 잘 관찰해 보면 그런 시도는 여지 없이 실패하고 만다. J에 속한다는 부분에서 리브가의 말은, “보라(Behold : hinne), 내가 너의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6절)로 시작된다. 그리고 계속하여 E에 속한다는 부분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now therefore : weatta) 나의 말을 들으라”(8절)고 되어 있다. hinne와 weatta라는 말은 히브리어 구조상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쌍의 말(a pair of words), 즉, 상관어(correlatives)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분리될 수가 없다. hinne는 전제(premise)가 되는 말이고 weatta는 hinne로부터 나온 결론(conclusion)이 되는 말이다. 결론이 없이 전제가 있을 수 없고, 역으로 전제가 없이 결론이 있을 수 없다. 만약 이런 용법에 대해서 확증적인 설명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이 대목에서 증명할 수가 있다 - “보라(Behold:hinne), 나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Now then : weatta) 너의 무기를 들고…”(2,3절).
그러므로 리브가가 한 말은 처음과 끝이 분리될 수가 없다. 마치 한 쌍의 가위가 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분리된다면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셋째 문단(11-17절)을 살펴보자. 야곱은 망설인다. 그는 축복의 영광이 당연히 자기의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는 속임수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이것이 야곱의 큰 잘못이다. 그가 단지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알아차리고, 자기가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조롱하는 자(mocker)처럼 보일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12절). 자기가 조롱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조롱하는 자처럼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 표현은 롯(Lot)에 관한 언급과 비슷하다 - “그러나 그는 자기 사위들에게 농담하는 것처럼 보였다.” ‘농담하는 것처럼’은 직역하면, ‘농담하는 사람처럼’(as one who jests)이다(창 19:14). 이 때 사실 롯은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리브가가 야곱을 시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은 사실 조롱하는 행위였다고 야곱은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끝까지 분석해 보면 야곱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을 취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야곱의 행위를 바르게 판단했다. 이에 관하여는 전에 언급한 바가 있다. 목적(the end)은 수단(the means)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마침내 리브가가 야곱을 충동하여 야곱은 허둥지둥 어머니의 명령을 듣는다. 13, 14절에서 짧은 단어가 연속하여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서 나에게 그것들을 가져 오라(and go fetch me them). 그래서 그는 가서 그것들을 가져다가 그것들을 그의 어머니에게 가지고 갔다”(So he went and fetched themand brought them to his mother). 또한 동사가 반복되어 나오는데(go fetch - so he went and fetched) 이것은 리브가의 지시가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삭이 야곱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히고 그의 손과 목의 부드러운 부분을 염소 새끼 가죽으로 덮어서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이 두 가지 계략 즉 에서의 옷을 입히는 것과 가죽으로 덮는 것에 관하여 전에도 언급한 바 있거니와 문서설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이것은 틀림 없이 두 가지 설이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서설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이 부분(11-17절)을 두 가지 문서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전략(stratagems)은 서로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서로 보충적인 관계에 있다. 눈이 먼 사람은 보통 시력이 약한 대신에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모든 감각을 동원시킨다. 에서의 몸에 나 있는 털과 에서의 옷에 배어 있는 들 냄새(the odour of the fields)가 야곱과 다른 이상, 이삭이 만져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는 데서 오는 위험성에 대하여 야곱과 리브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게다가 촉각과 취각 이외에 또 두 가지 감각이 작용되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인 염소 새끼의 고기가 야생동물의 고기와 비슷하다고 리브가가 특별한 방법으로 요리했음에 틀림 없는 별미(the savoury food)로 보건대 이삭은 미각(sense of taste)도 발달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다”(22절)라고 말한 이삭의 말을 보건대 이삭은 청각(sense of hearing)도 동원시켰다. 이 말을 듣고 야곱은 즉시 에서의 음성을 흉내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본문에 언급된 감각에 따라서 이 대목을 분류시킨다면 두 가지 자료 뿐만 아니라 네 가지 자료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문단을 이렇게 딱 잘라 나누는데 대하여 반론이 제기된다. 16절에 보면, “그리고 염소새끼의 가죽을 그녀가 야곱의 손에 덮었다”(and the skins of the kids she put upon his hands, etc.)고 되어 있다. she put는 hilbisa이다. 왜 여기에 나오는 동사는 문장 처음에 나오지 않으며, 통상 성서의 이야기체 문장(Scriptural narratives)에서 나오는 대로 왜 바브연속법과 미완결형이 합쳐진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and she put(wattalves) the skins of the kids upon his hands, etc:”라고 해야 되지 않겠는가? 성서 이야기체의 산문에서 이와 비슷한 실례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쉽게 이 구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동사가 비슷하게 계속해서 두 번 나올 때는 성경에서 보통 그 시제와 위치가 바뀐다. 동사가 과거 미완결형(the imperfect converted to the past)으로 나타나고 그 후에 완결형(the perfect)으로 나오면 첫 번에는 동사가 문장 제일 처음에 오고 그 다음에는 동사가 몇몇 개의 낱말 뒤에 온다. 다음과 같은 예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광명을 낮이라고 부르고 어두움을 밤이라고 불렀다” - And God called(wayyoqra)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qara) Night(창 1:5). 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다” - “Now Abel was(wayehi) a keeper of sheep, and Cain was(haya) a tiller of the ground”(창 4:2). 그리고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가인이 땅에서 난 열매를 가져다가 주께 드리고, 아벨도 가져다가…” - “Cain Brought(wayyabhe)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d offering to the Lord, and Abel, too, brought(hebhi), etc” (3,4절). 그리고 또 이렇게 나온다. “주께서 아벨과 그 제사는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사는 받지 아니하셨다.” - “And the Lord had regard(wayyisa) for Abel and his offering, but for Cain and his offering he had no regard(saa)”(4,5절). 바벨탑 이야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그리고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 “And they had(wattehi) brick for stone, and bitumen had(haya) they for mortar”(11:3).
이런 실례를 더 들 수 있으나 더 이상 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실례에서도 역시 wattalbes가 나오지 않고 hilbisa가 나온다. 이 동사는 문두에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맥과 분리되고 다른 자료(another source)에 속한다고 한 절에 wattalbes가 나오기 때문이다. wattalbes와 hilbisa의 관계는 wayyiqra와 qara, wayehi와 haya, wayyabhe와 hebhi, wayyisa와 saa, wattehi와 haya의 관계와 꼭 같다. 그러므로 분명히, 두 개의 동사가 처음에 쓰였으면 이 두 동사는 이미 서로 연결되어서 분리될 수가 없다.
넷째 문단(18-20절)에 보면 리브가가 별미를 만든 후에 야곱은 그 별미를 받아 허둥지둥 아버지께 가지고 간다. 처음에 이삭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들이 에서인지 의심했으나 자기가 질문하는 말에 하는 대답을 들어보고 털이 난 손을 만져본 후에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들이 에서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에게 축복을 하여 주었다. 이 대목은 우리가 취급하고 있는 문단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대목도 전의 대목들처럼 J와 E라는 두 문서로 분류했다. 누구든지 이 대목을 그저 피상적으로 쭉 읽어 내려가면 여기저기에서 특히 이삭과 야곱의 대화가 나오는 절에서 쓸데없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는 사람이면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말은 무게가 있으며 대화의 모든 요소는 옳고 적절하게 구성되었다.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이삭과 에서 사이에 있었던 그전의 대화를 상기시키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에게 갔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여’라고 부르니, ‘내가 여기에 있다’고 대답했다”(so he went to his father, and said ‘my father’, and he said, ‘Here I am’ : 18절). 이삭이 에서에게, ‘나의 아들아’고 말하니,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말했다. 이 때 이삭이 어떤 해결책을 관망한 것은 아니다. 말의 유사성과 사건의 대조(antithesis)로부터 우리는 상황이 비극적으로 될 것을 알아차린다. 이삭의 본래의 의도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지 않는가! 밝은 대낮인데도 어둠 속에 있는 이 늙은 아버지는 이런 속임수를 알아차릴 방도가 없으니 참으로 곤경에 빠져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그것은 분명히 두 아들 중 하나이며, 그의 음성으로 보아서 쌍둥이 중 하나이다. 그런데 두 아들 중 누구란 말인가? 에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음성은 야곱의 음성과 가깝다. 그러면 그것이 누구인가? 두 아들과 후손의 생애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그 순간에 이삭의 마음속에는 비참한 의심(tragic doubt)이 떠올랐다. 이 의심을 몰아내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꼭 같이 있기 때문에, 이삭은, “나의 아들아, 너는 누구냐?”(who are you, my son?: 18절)라고 애매한 형태로(in non-committal form) 질문을 한다.
야곱은 이 질문에 놀라지 않고 대답한다. “나(anokhi)는 아버지의 장남 에서입니다.”(19절). 대명사 ani와 anokhi의 차이에 대해서 논의한 바가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술어(predicate)가 동사가 아니고 명사일 때에 주어에 더 강조점을 두려면 anokhi가 사용되었다. 반면에 술어를 강조할 경우에는 ani가 나온다. 그러므로 어떤 화자(the speaker)가 자기 이름을 대면서 자기를 소개하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에는 법칙에 따라서 그 대명사는, ani가 쓰였다. 왜냐하면 술어에 강조점이 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ani)는 요셉이다.” “나(ani)는 전능한 신이다.” “나(ani)는 주다”고 할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야곱이, 자기가 에서라고 하는 주장이 거짓이기 때문에 에서라는 이름을 강조할 수가 없다. 에서라는 이름은 야곱의 입술에 무감각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anokhi라는 대명사를 쓴다. 그러나 후에 진짜 에서가 아버지에게 들어가서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나타낼 때에는, “나(ani)는 아버지의 아들 장남 에서입니다”(32절)고 말한다. 에서는 규칙대로 ani라는 대명사를 쓸 수 있었다.
자기가 에서라고 말한 후에 야곱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19절). 이것은 막연한 말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전에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야곱은, 자꾸 캐어물으면 결국 탄로가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야곱은 자기가 해야 할 나머지 말을 다하고 난 다음에야 안심하고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말한다. “이제 일어나셔서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축복을 하여 주십시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안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자기 앞에 있는 아들이 야곱인지 에서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이 장자 에서라고 말하는데 이해가 갈 만큼 분명히 말하지를 못했다. 그의 음성은 아직까지도 에서의 음성이 아니라 야곱의 음성이지 않은가. 게다가 에서가 어떻게 그리 빨리 사냥을 해왔단 말인가? 이삭의 마음속에는 강한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삭은 자기의 의심을 풀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질문해 본다. 이제 이삭은 처음보다 더욱 특별한 방법으로 질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제가 아버지의 장남 에서인데, 저에게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렇게 했습니다”고 말했을 때에, 이 대답은 에서인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삭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이 에서라고 전제하고는, “내 아들아, 어떻게 그렇게 속히 잡았단 말이냐?”(20절)고 묻는다. 이삭은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마음속에 있는 의심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이렇게 질문함으로써 이삭은 그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돌아왔느냐는 것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고 아들의 말의 억양을 통해서 에서인지 야곱인지 알아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사실 야곱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적절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야곱은 ‘능란한 사냥꾼’(a skilful hunter)도 아니고 사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데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야곱은 다시 한 번 일반적인 용어로(in general terms)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 “아버지의 주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속히 잡도록 해 주셨습니다”(20절). 아마도 이 말 속에는 결국,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사건을 그토록 진행시킨 신의 섭리(providence)였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이 엿보이고 아직도 에서의 음성이라기보다는 야곱의 음성을 닮은 그런 답변으로는 이삭의 마음이 안정될 수가 없었다. 상황은 점점 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편에서 자기를 가로막고 있는 베일(veil)을 찢어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광경이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는, 곤경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자기의 거짓말 때문에 자기 주변으로부터 점점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아들의 광경은 정말 극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이삭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다른 방법 즉, 촉각을 통해서 알아보는 방법을 취한다. 이삭은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 손으로 만져보겠다”(21절). 이제 긴장이 절정(climax)에 달한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갔고 이삭은 야곱을 만져보았다”(22절).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 때 율법(Tarah)은 우리의 마음이 극도로 긴장되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우리의 긴장을 완화시켜준다 -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왜냐 하면 야곱의 손이 그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다”(23절).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삭이 야곱을 어떻게 축복했다고 성경이 말해 주는가? 긴장은 해소된다. 이 글의 중심적인 제목 중에서 나머지 부분 즉, 축복의 내용이 전개된다. 첫째 부분은 서문인데,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은 실지로 에서라고 이삭이 선언한다(24절). 이렇게 말을 한 이유는 이삭이 자기 마음속에 끈덕지게 남아 있는 의심을 추방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자기 아들로부터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이 긍정적인 대답은 ani라는 짧은 말 속에서 초인간적인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서(Esau)라는 서술어(predicative)는 명백히 언급되지 않고 전에 언급된 것에서 유추해낸 것이다. 따라서 그 대답은 대명사만 나올 따름이다. 거짓을 강조하여 대답할 수 없는 야곱은 대명사형(pronominal form)을 사용했다. 대명사 형태는 강조할 의도가 없는 곳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이삭이 자기 아들의 손에서 별미를 받아먹는 광경이 나온다(25절). 셋째 단계는 아들을 불러 가까이 오라하고, 입을 맞추라고 한 후에 자기의 축복을 받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26절). 마지막 단계는 축복을 주는 말이 나온다.
이삭이 아들에게,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26절)고 한 것은, 대부분의 현대 해석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삭이 취각(sense of smell)으로 에서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제 와서 이런 일을 시도한다는 것은 너무 늦은 일이다. 이삭이 이제야 이런 일을 시도했을 리가 없다. 이삭은 이미 그 별미를 받아먹지 않았는가. 이삭은 아들이 가까이 와서 손을 얹도록 해야 했다. 멀리서는 축복기도를 해 줄 수가 없었다. 에서의 옷 냄새가 이삭에게 풍겨졌다. 그런데 이삭은 이것을 목적으로 아들을 가까이 오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에서의 옷 냄새는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확신, 즉 자기 앞에 있는 것은 장남이라는 확증이 되었다. 이 확증은 쓸데없는 것 같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성서는 우리에게 에서의 옷을 상기시켜 주며, 미묘하게 이야기 과정과 연결시켜 준다. 동시에 옷 냄새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축복의 말을 시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 “내 아들의 향취는 주께서 복 주신 들의 향취로다”(27절).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23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또 축복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까 이것은 중복된 것이며, 본문이 혼합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혼합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기교의 한 실례에 불과하다. 처음엔 일반적인 것을 언급하고 뒤에 가서는 그것을 특별하게 묘사하는 방법인데, 전에 언급한 바도 있거니와, 이것은 오경(Pentateuch)의 이야기 부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서가 언급하는 바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정중하게 진행되게 하기 위해서 축복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축도(benediction) 자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축도의 단일성(unity)을 뒷받침해 주고 두 문서로 분류된다는 의견을 반박하는 예증을 많이 들 수 있다. 여기에서 그 모든 것을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을 간단히 언급하겠다.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12:2,3)과 이삭에게 주어진 축복의 말(26:3,4)처럼 축복의 내용이 일곱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28절에 한 가지가 있고 29절에 여섯 가지가 있다.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이다. 세 족장들은 각각 완전한 축복을 받았다. 일곱 가지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넷째 문단에서도 쓸데없는 말이나 일치되지 않는 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것은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체 문학의 고전적인 실례가 될 수 있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문학 작품을 파괴할 뿐이다.
이런 것을 더 이상 조사할 필요성이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혼합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문단들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가 연구한 것 이외의 문단들에 대해서 이미 이 책을 써 낸 바 있는 것들을 여러분에게 되풀이하여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문서설의 분석적 방법의 성격과 실상에 대하여 충분히 알 수 있고, 문서설의 방법을 대치하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적 방법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기둥도 다른 네 개의 기둥들처럼,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 8장 결론
여러분과 함께 이 과정을 검토하여보는 일이 끝났다. 이제 우리가 밟아온 단계를 추적해보면서 연구 과정에서 얻은 결과를 다시 살펴보자. 제 8장에서는 연구 결과를 재검토해보고 이 연구과정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우리 앞에는 문서설이라는 우뚝 솟은 건물이 있었는데, 이것은 가장 중요하고 견고하다는 학설 중 하나였다. 이 건물을 지어 완성한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현관을 장식하고 탑을 완성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이들은 이 건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타나 그 건물에 대하여 낱낱이 비판을 가했다. 이 사람들은 현관의 디자인을 바꾸고 탑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은 어떤 창문은 아주 봉해버리고 그 곳에 새 창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요한 부분은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이 건물은 아직도 세 세대나 더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언 9장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헐었다.” 문서설이라는 건물은 다섯 개의 기둥에 의존하고 서 있다. 예전의 ‘지혜’(wisdom)처럼 일곱 개의 기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다섯 개의 기둥만으로도 그 건물을 든든히 세우고 있기 때문에 그 영광을 자랑하고 있다.
문서설은 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화려한 그 건물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그윽한 인상을 주어 미혹케 하려는 것을 우리는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는 눈을 크게 떠서 그 건물의 견고성을 시험해 보고, 그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다섯 개의 기둥의 성격과 가치를 검토해 보기 위해서 그 건물 속에 들어가 보려고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우리는 첫 번째 기둥부터 살펴보았다. 신의 명칭이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보니까 신의 명칭이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된 것은 신명의 중요한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생활과 문학에서 신명이 사용되는 법칙에 따라 그처럼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성서문학 전체에 적용되는 법칙이요 후기 성서 히브리 문서(post-Biblica Hebrew writings)에도 적용되는 법칙이요, 고대 근동의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되는 문학적 전통(literary traditions) 속에 뿌리박은 법칙에 의하여 신의 명칭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신의 명칭이 다양하게 사용된 것에 대한 문제가 충분히 해결됨을 알았다. 이런 해결방법은 문서설의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첫째 기둥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다음에 두 번째의 기둥을 시험해 보았다. 이것은 언어와 문체가 다르다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가장 중요한 실례를 들어서 검토해 보았다. 이 검토 결과 이들 언어적 불일치성은, 그런 불일치가 정말 있다고 한다면, 극히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그것은 언어의 일반법칙, 언어의 문법적 구조, 사전적 용법(lexical usages), 문학적 관습 등 모든 히브리 저자와 히브리 서적에 한결같이 적용되는 일반적 법칙에 근거하여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보아 문서(documents)가 다르기 때문에 언어와 문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두 번째의 기둥도 역시 공허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세 번째 기둥을 조사하여 보았는데, 이것은 문단의 주제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다양성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전형적인 실례를 골라 연구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았다. 즉, 문단 간에 실제적으로 불일치가 있었던 곳에서도, 그 불일치점들은 동질의 작품 속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다양한 성격의 재료들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관점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그런 복합적인 모습을 지닌 책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불일치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번째의 기둥도 비판을 모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중복과 반복이라는 네 번째의 기둥을 검토해 보았다. 우리는 이 범주에 속하는 고전적인 실례를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우리가 명백히 파악한 것은 중복과 반복이 성경에 있는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특별한 의도는 그 문단의 최종적 편집 속에서 뿐만 아니라, 본래의 작품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네 번째 기둥도 그 전의 세 기둥들보다 더 강한 것은 못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는 다섯 번째 기둥을 살펴보았는데, 이것은 문단이 혼합되었다는 것이었다. 문단을 자료에 따라 나누는 그런 상투적인 이론을 조사해 보기 위해 우리는 이런 분석의 가장 특징적인 실례 중 하나를 자세히 검토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이 가설(hypothesis)은 사실상 혼합되지 않은 본문을 증거로 삼아, 그 거짓 증거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았다. 면밀히 연구해본 결과, 다른 자료들에 속한다고 생각되었던 문단(section) 속에 있는 부분과 부분(parts) 사이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모든 것으로 보아서 마지막 기둥도 역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과정에서 함께 관찰한 것 이외에도, 이런 문제를 다룬 나의 이태리어 저서 <창세기의 문제점>이라는 책을 연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적절한 자료를 택하여 더욱 자세히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을 첨가하여 언급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중요한 결론이 충분히 설명된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이런 결론에서 무슨 원리가 나오는가?
우리는 제1장에서, 문서설의 전체 구조가, 열거된 다섯 개의 기둥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 이 모든 기둥들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토록 당당하고 화려한 건물은 실상 그것을 떠받칠 기둥이 없는 것이며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의 주장이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못된다고 나의 책을 비판했다. 왜냐하면, 문서설이라는 건물은 각각의 기둥이 떨어져서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합되어서 건물을 지탱하고 있으며, 문서설의 추종자들의 견해는 그 모든 증거를 하나로 묶어서 이룩된 결과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 대한 답변은 아주 쉽다. 만약 내가 그 기둥들은 연약했고 그 중에 하나도 튼튼한 것이 없다고 말했더라면, 이런 논박이 타당성을 갖는다. 이런 주장은 과거에 문서설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비판한 부분적인 비판에 대하여, 문서설의 추종자들이 편리하게 반박을 하던 주장이다. 각각의 기둥들이 홀로는 지탱할 수 없으나 함께 연합되어서는 건물 전체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예증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나는 문서설에 근거하여 해결점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서설의 기둥이 약하다거나 기둥 하나하나로는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문서설의 기둥은 사실상 전혀 기둥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기둥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상상(imaginarty)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로 보건대 문서설이 아무 효과가 없는 이론이라는 나의 마지막 결론은 정당화된다. 만약 당신이 한 가닥의 끈으로 무거운 수레를 끌려고 하는데 당신이 가진 끈은 그 수레를 끌기에 너무 약하다고 한다면, 비슷한 끈을 두 가닥으로 함께 꼬면 수레를 끌기에 충분할 만큼 강한 끈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겐 진짜 끈이 없고 상상력으로 그려낸 허구의 끈만 있다면, 그 끈을 천 겹으로 꼰다 해도 그 수레를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영(nought)을 무한히(ad infinitum) 더한다고 하여도 결국 영이 될 따름이다.
그러나 만약 성서학에서, 어떤 종류의 구조가, 우리의 비판에 견디어내지 못한 문서설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고 당신이 묻는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는 연속적인 강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강의를 다 마쳐도 대답이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게다가 이 새로운 건물(the new edifice)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묘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것을 통해서 이미 내가 보고 있는 새로운 건물의 설계도에서 어떤 모양의 건물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율법이 기록되기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세계 역사의 시작과 초기 역사 및 히브리 민족의 조상들과 그들에게 있었던 일에 관련된 많은 전승(traditions)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의심할 것 없이 이 전승들은 율법에서 실질적으로 구체화된 전승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전승들이었다. 성서 자체에서 우리는 특별하게 언급되니 않은 일에 관해서 잠깐잠깐 암시만 주고 넘어가는 것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에덴동산 동편에 하나님이 그룹들(the cherubim)과 두루도는 화염검(the sword-flame)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4).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에는 정관사(definite article)가 들어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그룹들과 화염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창 5:24)라는 에녹에 관한 언급에서도 역시 이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요, 이스가의 아버지로 묘사되었다(창 11:29). 이스가는 성경 어느 다른 구절에서 찾아 볼 수가 없고, 밀가는 다만 몇몇의 계보에서만 언급되었지만, 밀가와 이스가는 잘 알려져 있던 사람들이었음을 말해 준다. 다음의 암시는 이 점을 더욱 명확하게 말해 준다.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다”(창 36:24). 이 일에 관한 연구를 확대시켜서, 율법이 기록되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많은 사화(sagas)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성경 구절을 더 많이 인용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언급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한 가지 더 첨부하고 싶은 것은, 랍비 현자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지배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두루마리(scrolls)를 가지고 있었고 안식일마다 두루마리를 읽고 기쁨을 찾았다(Shemoth Rabba 5:2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것과는 기원(origin)과 성질(nature)과 특성이 다른 전승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 전승들 중에 어떤 것들은 고대의 사건들을 말해 주고, 어떤 것들은 민족 전설의 범주에 속했다. 어떤 것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 산물이고, 어떤 것들은 이교도 문화(pagan culture)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 중 다수가 일반 백성들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고, 어떤 것들은 지혜문학(the wisdom literature)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세밀하게 연구되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시적(poetic)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정된 형태로 나타났고 어떤 이야기들은 산문 형태로 되었는데, 이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변화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중에는 단순한 이야기도 있고 복잡한 이야기도 있으며 차분한 것도 있고 매우 호화로운 것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율법은 그 목적에 맞는 전승만을 골라서 정화시키고 순화시켰으며, 정돈 통합하고 문체와 구절을 다시 배열해서 본래의 것에 새로운 양상을 부각시켜 결국 하나의 것으로 밀착되었다.
채택되지 않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점점 망각되어 결국엔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몇 세대 동안 지속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태가 상당히 바뀌기는 했다. 정교하게 되었거나 약화되었고, 많은 새로운 재료가 융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민족전승에 늦게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이 전승의 물줄기는 길게 흐르는 크고 넓은 강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흐르는 동안에 강물의 일부가 없어지기도 한다. 땅에 흡수되기도 하고 태양열 때문에 물이 공중에 증발되기도 하며 또한 지류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점점 불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강물이 수 백 마일을 흘러갔지만 그 강물 속에는 강의 상류에서 처음부터 흘러 내려오던 물도 있다. 높은 산맥 사이로 흐르는 강 상류의 물은 신성한 못(a Divine pool)이 되어 놀랍도록 신비스러워 푸른 하늘이 비추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창세기이다. 그러다가 강 하류에 오면 평원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강물은 다른 멋있는 못이 되는데 이를테면, the Book of Jubilees나 Bereshith Zuta가 있으며 더 내려가면 Bereshith Rabba같은 것도 있다.
이런 이론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율법의 이야기 부분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신의 법칙(statutes)에 관한 질문을 해결하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이 책을 끝맺는 현 단계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취급하지 않은 형태의 문제에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은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오경의 이야기들에 관련된 새로운 가설의 결과는, 마치 오경 이야기 부분에 관한 문서설의 결론이 그랬듯이, 법적인 방면(the legal sphere)을 연구하는 데 기초가 되고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자세히 말할 시간이 없으니 대강 언급해본다. 현 단계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것을 첨가시켜 볼 수 있다. 이미 붕괴된 옛 건물 대신에 세워질 새 건물은 두 가지의 중요한 면에 있어서 옛 건물과 다른데, 이 건물의 일반적인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 건물이 옛 건물과 첫째로 다른 점은, 율법의 단일성을 인정하려는 경향이다. 이 단일성이란 사실 전에 언급한 대로, 재료의 다양성을 배제하지는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원문 속에서 반사된 것까지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하나의 단일성(a unity)이 있다. 유대 민족은 그들이 속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공동체와 거주지와 단체에 따라 구성원이 다르지만, 유대 민족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원리가 성서에도 적용된다. 이태리 문학작품인 Dante의 <신곡>을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단테는 기독교 전승과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히브리 성경과 신약 성경, 그리고 고전적인 시인들과 사상가들의 작품에서와, 당대의 과학과 민족 건설 및 철학적인 사고와 대중적인 개념, 그리고 역사적인 기록과 자기 주위에 떠도는 것들과 국가(states)간의 대립 및 당파 싸움, 그리고 자연에 대한 묵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오묘한 영상(reflection)으로부터 재료(material)를 끌어 왔다. Dante가 재료를 끌어온 자료(sources)의 다양한 성격은 그의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의 시에 보면, 지옥편(Inferno)엔 극적이고 생생한 묘사가 있고, 연옥편(Paradiso)엔 교리적인 강론(doctrinal discources)이 있다. 그리고 주제가 바뀜에 따라서 문체와 어체가 문단에 따라 다르며, 필요한 경우에는 거친 말과 감미로운 음조를 썼으며, 문장은 좌우에 날선 검처럼 날카롭게 썼고 어떤 것은 꿀보다 더 달게 묘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ante는 이 모든 재료 속에서 자기의 탁월한 정신을 그대로 반영시켜 놓았다. 그리고 자료가 섞여 혼돈된 것을 완전하고 오묘한 조화를 이루도록 해놓았고, 이 모든 분리된 요소들을 동질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위대한 책의 특성이기도 하다. 자료에서 취한 것을 새로운 형태로 받아 들였다. 이것은 저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통합한 것인데 함께 묶여져 있고 통일되어 있다.
어떤 학자라도 첨가된 요소에 주목하지 않고는 그 자료들의(their sources)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료들에서 끌어낸 재료(material)를 무시해버리고 지나쳐버리면, 거기엔 어떤 학자도 밝혀낼 수 없는 저자가 의도한 바에 대한 수수께끼(enigma)와, 저자의 문학작품이 나온 것에 대한 신비만이 남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특징은, 오경과 예언서 사이의 상관적 연대기(the relative chronology)의 결정이라 할 것이다. 이것에 관해서도 몇 마디만 언급하면 족하다. 왜냐하면, 7년 전에 히브리어로 쓴 논평에서 이것을 주제로 깊게 논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예언서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처럼 율법보다 먼저 된 것이 아니고 율법보다 늦게 된 것이다. 오경은 예언서보다 먼저 씌어졌지만 오경과 예언서는 극적으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이라고 Yehezkel Kaufman이 생각하듯이, 그 선재성은 단지 연대기적인 것은 아니다. 나의 견해로는, 오경과 예언서는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차이는 이들의 내용과 목적과 방향에 있어서의 차이점에 근거해서 설명될 수 있다. 어떤 협회의 법과 규칙은, 독자들에게 선전하려고 써진 글이나, 구성원들의 회합에서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과는 성격상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다 같은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율법과 예언(prophecy)도 다 한 가지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예언 문학은 오경문학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거기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 ‘문학적 예언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들인 아모스와 호세아는 공의와 사랑의 예언자들이었는데, 이들 마저도 새로운 관념(new ideals)이나 새로운 개념(new concepts)이나 새로운 신앙(new beliefs)을 결코 외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 뒤에 온 사람들의 더욱 강한 교설(a fortiori)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원리를 따라 그들의 관념이나 개념이나 신앙을 말했다.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동포가 교리(tenets)에 따라 행하지 않거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교리에서 잘못된 결론을 끄집어내기 때문에 그들을 책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와 같은 관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이해하며, 필요한 결론을 어떻게 끌어내는가를 가르쳤다.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교리(new doctrines)나 법률(laws)을 창안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선지자들의 예언을 보아 확실히 알 수 있는 바는, 선지자들에게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으며 듣는 자들이 그런 사상을 듣고 좋아할 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아무 선입견이 없이 선지자들의 말을 시험해 본다면 우리는 그들의 언어가 다음의 전제하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는데 그 전제라는 것은 곧 율법서의 기초 위에서 예언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우리 세대의 성서 학자들이 세우도록 부름받은 새로운 건물의 골자는 바로 이런 것들일 것이다.
부 록
제 1장 오경에 대한 문서설의 역사
18세기에 이신론적 철학(deistic philosophy)이 대두되기 전까지는 오경(Pentateuch)이 저작된 것은 주전 15세기에 역사적 인물인 모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기독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몇몇 유대계 학자들은 적어도 율법(the Torah) 중 일부는 후대에 저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가능성을 주장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유대계 스페인 사람 Benedict Spinoza였다. 그는 범신론자였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유럽의 학계에서 대부분 무시를 당했다. 그러다가 자연신교운동(the deistic movement)이 일어나서 역사적 회의주의(historical skepticism)에 기울어졌으며 초자연적인 것(the supernatural)을 배제하게 됨에 따라 Spinoza의 주장이 주목되었다.
Spinoza는 1670년에 그의 저서, <신학적-정치적 논증>에서 주장하기를 오경은 모세에 의해서 기록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모세는 ‘나’(I)라는 1인칭 대명사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3인칭 대명사인 ‘그’(He)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명기 34장에 나오는 것처럼 모세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기록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Spinoza는 Ezra를 최후의 율법 저작자라고 주장했다. 비록 이 주장이 당대에는 대부분 무시를 당했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Graf, Kuenen, Wellhausen 등이 19세기 후반기에 문서설(the Documentary Hypothesis)을 형성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초기의 발달(Early Development)
문서설이란, 오경은 모세 훨씬 이후에 5세기에 걸쳐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저작된 여러 가지 다른 문서를 선정하여 편집된 것이라는 이론으로서, 창세기를 문학적으로 분석하는데 흥미를 가졌던 불란서 의사 Jean Astruc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가 흥미를 느낀 것은 창세기 1장에는 신(God)이 Elohim으로만 나오고 2장에서는 거의가 다 YHWH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모세가 창세기를 썼다는 원래의 문서에 관한 추측>이라는 불어로 된 그의 책에서 그는 이 현황을 모세가 두 가지 다른 자료(sources)를 사용하였다는 추측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자료에는 두 가지 다른 창조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쓰는데 있어서 모세는 두 저자의 작품을 인용했는데, 한 저자는 신(God)을 Elohim이라는 이름으로만 알았는데 이것이 아마도 첫 번째의 저자였다. 그리고 두 번째의 저자는 신을 단지 YHWH로만 언급했다는 것이다. Astruc의 주장은 즉시 좋은 반응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료 분류의 기준이 되었는데, 이 자료 분류에 대해서는 오래지 않아서 학계의 호응을 받았으며 이것은 “신명의 기준”(the criterion of divine names)이라는 문서설의 제일 기초가 되는 가정(assumption)을 세우도록 해 주었다. 그 당시 학계에서는 Homer의 서사시(epics)가 여러 가지 다른 자료들로 나눠진다는 것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제 2의 단계는, 1780년에서 1783년 사이에 출판된 Johann Gotfried Eichhorn의 저서, <구약 성서 입문>이라는 책과 관련되어 발전되었다. Eichhorn은 창세기 전체와 불타는 숲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까지, 즉 출애굽기 1장과 2장을 J와 E로 나누었다. 그는 여러 가지 “유사한 이야기”(parallel account)와 “중복”(doublets) 즉, 홍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two accounts of the Flood) 등을 이 두 자료(two sources)와 관련짓고, 각각의 특성을 뽑아내려고 했다. 처음에 Eichhorn은, 모세 이전(pre-Mosaic)에 쓰여진 재료들(materials)을 서로 결합시켜 편집한 것이 모세라고 했으나, 후에 내놓은 <구약 성서 입문>에서는, 오경은 모세 시대 이후에 저작되었다는 그 당시의 지배적인 견해에 따라가고 말았다.
제 3의 단계는 De Wette의 신명기에 관한 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글 <논설>(Dissertation)과 <구약성서 입문에 대한 기고>(Beitraege zur Einleitung)는 각각 1805년과 1806년대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오경 중에서 어떤 책도 다윗 시대보다 더 먼저 된 것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명기(Deuteronomy)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요시아 왕의 개혁 시대에 발견한 법문서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왕하 22장에 따라). 요시아 왕도 힐기야 제사장도 모두 하나가 되어 예루살렘 밖에서는 예배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예배의식을 중앙에 집중시킴으로써 나라 전체를 정치적으로 통일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경건한 사람들(the pious)로부터 들어온 수익을 예루살렘 제사장 기금에 넣는데 용이하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치적인 운동을 벌이는 일에 날조되었다. 이 책의 발견은 심리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저작 연대가 주전 621년이나 조금 전이라고 지적해 준다. 요시아 왕이 종교개혁을 한 때가 바로 주전 621년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위 D문서라는 것이 생겼는데, 이것은 J나 E와는 그 기원이 다르며, “야웨가 선택할 도시”에 관계시킴으로써 정부의 시책을 지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세 문서를 포함하는 오경에 자료의 명부(the roster of sources)가 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세 자료란, 제1의 자료인 E자료와, J자료 및 7세기 후엽에 발견된 D문서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한다면 De Wette는 문서설학파에 속한다고 하기 보다는 단편론자들(the Fragmentay Theorists)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오경의 기원에 대한 단편이론(The Fragmentary Theory)은 Alexander Geddes라는 이름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로마 천주교 신부가 쓴, <오경과 여호수아 입문>이라는 책에서 1792년에 처음으로 제창되었다. Geddes는 주장하기를, 율법은 여러 개의 분리된 단편들(fragments)로부터 솔로몬 시대에 저작된 것인데, 어떤 것은 모세 시대의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그 보다 더 오래 전 것도 있다는 것이었다.
Geddes의 견해는 Johann Vater에 의해서 채택되었는데, Johann Vater는 1802년에 <오경 주석>을 썼다. Vater는 이 책에서 창세기를 자그마치 39개의 단편으로 분석하였다. 물론 이 단편 속에는 E가 다양한 요소로 분류되었다. 어떤 단편들은 모세 시대(the Mosaic age)에 된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결합시키고 정돈한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주전 587-538) 이후의 일이다. De Wette는 이런 형태의 자료 분석에 동조하면서, 사사기-사무엘-열왕기의 역사적인 기록은 오경의 법령(Pentateuchal legislation)이 존재한다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모세의 법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늘 무시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기 유대 군주국(the later Jewish monarchy) 당시까지 그와 같은 법률이 있을 수 없었다.
De Wette와 Hupfeld 사이에는 문서설의 발달에 있어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에는 오경의 저작에 대한 어떤 다른 학설들에 대하여 유력한 지지자들이 있었다. Bleek와 Ewald와 Delitzsch에 의하여 주창된 보충설(the Supplementary Theory)은 하나의 기본적인 문서나 전승(tradition)의 골자(E)가 있어서 모든 다른 것들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것은 주전 1050년에서 950년 사이에 나온 것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J의 후대 저작자에 의해서 첨가되고 보충되었는데, 이 저자는 자기 자신의 저작물과 E를 병합시킬 때에 처음 자료인 E재료를 대부분 그대로 남겨 두었다.
Heinrih Ewald는 1823년에 그의 저서 <창세기의 저작>에서 강조하기를 창세기의 기원은 모세시대까지는 소급하지 않지만 아주 일찍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가 다양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Eichhorn은 히브리 원문에서 반복(repetitions)과 서문(headings)을 이용했는데, Ewald는 이를 무시하였다. 왜냐하면 Ewald는, 초기의 아랍 작품은, 저작의 단일성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셈족 문체의 특성으로서 비슷한 기교를 썼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Ewald의 저작,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1840년에 그는 모세가 개인적으로 십계명(the Decalogue : 출 20장)을 저작했으며 가장 오래된 법률 중 몇몇 개도 모세가 저작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창세기 14장과 민수가 33장은 역시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초기 재료들은 계약의 책(a Book of Covenant)에 의해서 보충이 되었고 사사 시대에 한 무명의 유대인에 의하여 저작되었다. 솔로몬 시대에 무명의 레위인에 의해서 기원에 관한 한 권의 책(a Book of Origins)이 나왔는데, 이 책에는 E문서의 많은 재료(material)가 포함되어 있었다. 엘리야의 시대인 주전 9세기에 모세의 자서전 형태로 된 것이 나와 세 번째의 보충 재료가 되었다. 그 후에 예언적으로 말하는 사람(a prophetic narrator)이 나왔고, 마지막으로는 주전 9세기 중엽 웃시아 시대에 한 유대인이 나타나서 여러 곳에서 YHWH라는 명칭을 소개했고 마지막 편집자로서 전집(the whole corpus)을 다시 만들어 냈다. Ewald가 쓴 1840년의 작품은 사실상 보충설에서 결정설(the Crystallization Theory)로 옮겨졌다. 결정설이란 모세전집(the Mosaic corpus)에 재료를 첨가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자신들의 재료를 단순히 첨가시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료 전체를 재구성했다고 간주하는 설이다. 조그마한 것들이 계속 모여서 결국 문학적인 결정체가 되었다. 결정설을 주창했던 그밖의 사람들은 August Knobel(1861)과 Eberhard Schrader(1869)였는데 이들은 오경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장 과정을 단순화시켰다.
제2의 보충설 주장자들은 Friedrich Bleek였는데, 그는 1822년에 여호수아서에 대한 문학적 자료 분석(literary source analysis)을 부연하고 나왔다. 그래서 육경(Hexateuch)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다. 단지 다섯 권으로 된 오경의 형태라기보다는 육경 속에 모세의 전승이 마지막으로 써진 형태를 찾게 된 것이다. 그는 1836년에 <창세기 고찰>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가 인정하기를 어떤 문단들은 순전히 모세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최초의 보충 자료가 나온 것은 주전 10세기 통일 왕국 시대였는데, 이 때 무명의 편집자가 나타나서 창세기의 최초의 형태를 함께 묶었다. 두 번째로 중요한 편집은 요시아 왕 때 되어졌는데(주전 630-620년경) 이것은 무명의 신명기 편집자에 의해서 된 것이다. 그는 육경을 만들기 위하여 여호수아서를 오경에다 첨가시켰던 것이다. Bleek은 후에 <구약 서론>을 출판하였는데 1865년에 나온 제 2판은 즉시 영어로 번역되었다(1869). 그는 그의 작품에서 그 당시에 유행하던 가장 극단적인 문학비평(the literary criticism)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혜롭지 못하고 부당하게도 많은 것을 문서설적인 접근에 양보하고 말았다.
Franz Delitzsch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바 세 번째의 보충설 학자였는데, 그는 Ewald나 Bleek 보다 훨씬 보수적인 경향을 띤 사람이었다. 1852년에 출판된 <창세기 주석>에서 그는 원문에서 모세의 저작이라고 한 오경의 모든 부분은 순전히 모세의 저서라는 견해를 전개했다. 그 나머지 법들(The remaining laws)은 확실한 모세의 전승이었다. 그러나 이 법들은 가나안 정복 이후까지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성문화되지 않았다. E문서에 나오는 비모세적인 부분(non-Mosaic parts)은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에 의해서 자작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엘르아살은 언약의 책(출 20:23-23:33)을 통합했던 사람이었다. 후에 이 작품은 신명기를 포함시켜서 더 보충되었다. Delitzsch는 구약 성서 대부분을 뛰어나게 잘 주석하여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주석들 중에 어떤 것들은 Hengstenberg의 제자 Karl Friedrich Keil과 공동으로 낸 것이다. 그의 학적 활동의 후반부에(1880) Delitzsch는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여 그 당시에 유행하던 문서설의 변형된 형태를 따랐다. Franz Delitzsch를 그의 아들 Friedrich Delitzsch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Friedrich Delitzsch는 앗시리아학(Assyriology)에 특별히 두각을 나타냈는데, 구약 비평(Old Testment criticism)에 있어서 자기 아버지보다 더욱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주장했다.
바로 앞 대목에서, Ernst Wilhelm Hengstenberg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는데, 그는 독일 성서학계의 보수파 지도자였다. 그는 모세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라고 유력하게 방어했다. 그리고 그는 Astruc과 Eichhorn 이후에 학계에 널리 알려졌던 다양한 자료(diverse sources)의 표준이 되는 주장을 멋있게 공박했다. 그의 가장 영향력이 있던 작품이 1847년에 <오경의 순수성>이라고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보수적인 위치를 잘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Hengstenberg는 Friedrich Keil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Friedrich Keil은 19세기 후반기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구약학자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학자들인 Joseph Addison Alexander와 William Henry Green 등이 Hengstenberg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문서설 학파를 강력하게 비판하여 누르고 말았는데, 이런 강력한 비판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띤 학자들은 한번도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1853년에 신기원을 이루는 작품이 나왔는데, 이 작품은 Hermann Hupfeld의 작품으로서 <창세기의 자료>라는 책이었다. 그의 작품으로 말미암아 문서설의 역사에 소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Copernican Revolution)를 이루었다. 첫 번째로 그는 E문서를 철저하게 재검토하여 그것을 두 가지의 독특한 자료로 분류했다. E2라는 자료는 E기자의 것으로 대부분 구성되는데, 이것은 문체(style)와 어휘(vocabulary)와 주제의 형태 등이 J의 것을 아주 닮았다. 그리고 때로는 후대의 J에서 발견되는 암시가 들어있는 듯도 했다. 만약에 Elohim이라는 신의 명칭이 없었다면 J와 구분하기에 정말 힘들 것이다. 이런 문구가 존재한다고 승인함으로써 Elohim과 YHWH라는 신의 명칭을 자료 분류의 기준으로서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 건전성을 침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Hupfeld는 창세기 20장부터 시작되는 이런 부분들을 E전집(E corpus)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시켰는데, 그는 나중에 이것을 최초의 것으로 판정했고, “기본 문서”(Grundschrift)라고 불렀으며 E1으로 표시했다. E1이라는 문서는 뒤에 비평가들이 다시 이름 지어 준 “P”나 “제사법전”(the priestly code)과 대개 일치한다. 그 후에 나온 E2는 나중엔 그냥 E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J보다 약간 먼저 된 것이다. D(신명기 작품)는 물론 요시아 시대에 나온 것으로서 최후의 것이다. 그래서 Hupfeld가 정리한 “문서들”의 정확한 순서는 PEJD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Hupfeld가 E분류를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Jena의 Karl David Ilgen이라는 사람은 Hupfeld보다 먼저 1798년에 한 작품을 출판했는데, 그 작품에 의하면 창세기는 17개의 다른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세기 저자들 중에는 두 명의 E기자와 한 명의 J기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은 단편설 학파의 산물로서 그렇게 널리 오랫동안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Hupfeld는 <창세기의 자료>에서 E1과 E2와 J라는 문서들의 연속성을 강조했고 각각의 문서들이 분리되어 있을 때에 세 문서가 각각 들어있는 창세기의 문단들(sections)은 의미를 가졌으며 분리된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Hupfeld는 마지막 편집자(a hypothetical redactor)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 가상적인 편집자는 창세기로부터 민수기까지 전체를 재정리하고 보충했으며 모든 실례들을 설명했다. 여기에서 J문단은 E의 특징이라고 생각되는 낱말 및 구절과 함께 오고 반대로, E문단은 J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낱말 및 구절과 함께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이론이 사실과 어긋나거나, 원문 자체의 실질적인 데이터에 위배되는 곳에서는 어느 곳이나, 무명의 편집자인 R(the anonymous redactor)이 그 상황을 설명할 때에 서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Hupfeld의 글은 학계에서 문서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Hupfeld의 “기본문서” 즉, E1이라는 문서에 특별한 주의가 집중되었다. 맨 먼저 1866년에 Karl Heinrich Graf의 글이 나왔다. 그의 스승 Eduard Reuss처럼 Graf는, 오경 안에 있는 제사법전은 신명기(주전 621) 자체보다 기원이 늦은 법령(legislation)이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다. 왜냐하면, D는 J와 E의 법들(laws)을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P(the Priestly Code)의 법률 부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P의 법률이 포로시대(B.C. 587-539)에 나타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P의 역사 부분은 틀림없이 아주 오래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Graf는 문서들(documents)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역사적인 것 - P, E, J, D.
법적인 것 - P
E는 J에 의해서 보충되고, 요시아 시대에 E, J는 D의 저자에 의해서 편집되었다고 Graf는 생각했다.
그러나 P는 Graf가 그랬던 대로 분열된 상태로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았다. 네덜란드 학자 Abraham Kuenen은 1869년에 <이스라엘의 종교>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는 P문서의 역사 부분은 법 부분과 합법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P의 단일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Graf는 제사 법령(the Priestly legislation)을 포로시대나 포로 후기(the post Exilic)라고 증명했었기 때문에 P문서 전체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Hupfeld가 오경의 제일 첫 번째에 나타났던 부분 즉, “기본문서”라고 결정했던 것은 모두가 제일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최후의 결정적인 형태를 도입했는데, 이 때 에스라는 느헤미야 8장에 언급된 바 공동으로 성서를 읽은 예식에 맞추어 오경전집(Pentateuchal Corpus) 전체를 모았다는 것이다. 이제 문서들(documents)의 새로운 순서가 정해졌는데, 그것은 J, E, D, P의 순서였다. J는 율법의 기초가 되는 문서였고 E는 후에 J에 통합되었다. D는 유대 왕국의 마지막 시대 직전 요시아왕 때에 첨가되었다. 포로시대에 에스겔이 사역할 때에, 레위기 17장부터 26장까지에 있는 법전인 “신성법전”(the Holiness Code)이 P중에서 제일 처음 된 부분으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P의 나머지 부분은 주전 6세기 후엽에 되기도 하고, 모세가 죽은 지 1000년 후인 주전 5세기 초반기에 형성되었다.
Hupfeld와 Granf와 Kuenen 이후에 더욱 새로운 문서설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이 시대는 Julius Wellhausen에 의해서 개막되었다. Wellhasen의 가장 중요한 기고(contribution)는, <육경의 저작>과, <이스라엘의 역사 개론>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1876년과 1878년에 출판되었다. Wellhousen은 비록 내세울만한 혁신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아주 기술적이고 설득력이 있게 문서설을 재진술하고, 진화론적 기초(an evolutionary basis) 위에다가 JEDP를 계열적으로 열거했다. 이 때에는 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 학문과 과학 세계를 풍미하고 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Wellhausen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설명된, 원시 물활론(Primitive animism)에서 세련된 단일신론(sophisticated monotheism)에 이르기까지의 발전 이론(the theory of development)은 헤겔의 변증법(Hegelian dialecricism)과 다윈의 진화론(Darwinian evolutionism)에 놀랄 만큼 잘 맞아들어갔다. 시대는 문서설을 향하여 무르익어가고, Wellhausen의 이름은, 문서설의 고전적 추종자들처럼, 항상 문서설에 붙어 다녔다. 그의 글의 영향력은 곧 독일 전체에 퍼져나갔고 영국과 미국에서도 점점 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벨하우젠의 학설(Wellhausianism)을 대중에게 소개한 것은 William Robertson Smith였다. Samuel R. Driver는 비록 문서설의 개척자들보다 더 보수적인 신학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어를 말하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Wellhausen의 학설을 고전적으로 공식화했다. 그는 1891년에 <구약 문학 서론>을 내놓았다. 미국의 George Adam Smith도 이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 그는 자기를 복음주의 신학자라고 했지만, 구약 선지자들에 대하여 문서설적인 형태의 접근 방법을 대중화하는데 재능을 발휘했다. 특히 이사야와 소선지자들(the Minor Prophets)에 대한 해설을 썼는데, 이것은 W. R. Nicoll이 편집한 The Expositor's Bible에 나와 있다. 미국에서 이런 새 학파를 가장 잘 옹호하던 사람은 유니온 신학교의 Charles Augustus Briggs였는데, 그는 1893년에 <육경의 고등비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의 옹호자는 Briggs의 유능한 조력자였던 Henry Preserved Smith였다.
20세기는 Wellhausen과 문서설에 대하여 강하게 반작용이 일어났던 때이며, 문서설에 대한 일반적인 신임이 떨어졌던 때이다. 심지어는 자유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도 문서설을 의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조직적인 설명이 하나도 없어서 명확하고 수긍이 갈 정도의 학설이 공식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학계의 일반적인 지지를 요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좋은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보수적인 학교에서는 1880년 이후에 구약 성서학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던 것처럼 적어도 일반적인 요점만이라도 Wellhausen의 이론을 계속 가르쳤다. 영국에서는 W. O. E. Oesterley와 T. H. Robinson이 1934년에 <구약 성서 개론>을 썼는데 이들은 근본적으로 Wellhausen 학파들과 일치했다. 그러나 문서들의 기원에 관한 비교 연구에서는 불확실한 표현들이 있었다. 즉, JE는 D와 동시대의 것이고 H는 D보다 약간 먼저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pp. 52,53). 미국에서는 1922년에 Julius A. Bewer의 <구약문학>이 나왔고, 1941년에는 Robert H. Pfeiffer의 <구약개론>이 나왔는데 이들은 고전적인 벨하우젠 학설(Classical Wellhausianism)에 아주 충실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Pfeiffer는 S라는 새로운 문서를 독립시켰는데, 이것은 염세적인 에돔의 자료(a pessimistic Edomite source)라는 것이다. 그리고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은 E문서의 일부분이라기 보다는, D보다도 늦게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는 양식비평(form criticism)의 영향으로 Gunkel과 Gressmann의 양식비평적인 방법론을 Wellhausen의 문서주의(documentarianism)와 종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런 종합(synthesis)은 Otto Eissfeldt의 저서, <구약개론>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1948년에 Copenhagen 사람 Aage Bentzen이 <구약개론>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Eissfeldt가 시도했던 종합의 형태를 지지했다. 그러나 Sigmund Mowinckel과 스웨덴의 웁살라 사람 Ivan Engnell은 물론 그의 초기 동국인(compatriot) Johannes Pedersen까지도, 벨하우젠의 자료비평(Wellhausian source criticism)에 보다도 양식비평적인 접근이나 전승사적 접근(History of Tradition approach)에 훨씬 더 기울어졌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 Wellhausen의 이 법칙이 비보수적인 학교에 다소간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유럽 대륙에서 자유주의적인 학문이 거의 모든 기초를 흔들어 놓았지만, 아직까지도 문서설은 하나의 문제(issue)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서설의 네 문서에 대한 설명
다음 자료는 Driver의 책, <구약 문학 개론> 초판 pp.111-123에서 뽑은 것이다.
J 문서 - J는 주전 850년경에 남왕국 유대에서 미상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는 개인의 전기(biography)를 쓰는데 특별히 흥미가 있었는데,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자주자주 신인동형동성설적인 용어(anthropomorphic terms)로 신을 묘사했다. 예를 들면 신은 인간의 몸과 지체를 가졌고 인간의 격정(passions)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는 또한 윤리적, 신학적인 면을 반영하는데 있어서 예언자적인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E 문서 - E는 주전 750년경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미상의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는 J보다 이야기 부분의 문체에 있어서는 더 객관적이었고, 윤리적, 신학적 반영은 의식적으로 더 적게 나타났다. 그는 세밀한 부분에 특별히 유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주전 650년경에 미상의 편집자(redactor)가 J와 E를 결합하여 JE라고 했다.
D 문서 - D는 주전 621년의 부흥기에 요시아 왕의 후원을 받은 개혁파를 위한 사무적인 프로그램으로, 대제사장 힐기야의 지도를 받아 저작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 목적은 유다 왕국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높은 곳”(high places)에 있는 지방의 성역(local sanctuaries)을 버리고, 그들의 모든 제물들과 종교적인 헌물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고 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D문서는 예언적 운동(the prophetic movement) 특히 예레미야 예언운동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동일한 신명기학파의 구성원들은 나중에 여호수아, 사무엘, 열왕기에 기록된 역사적인 설명을 다시 구성했다.
P 문서 - P는 여러 단계를 걸쳐서 저작되었다. 주전 570년경에, 신성법전(Holiness Code : 레 17-26)을 쓴 에스겔로부터 에스라까지의 단계를 거쳤다. 에스라는 “모세의 법에 능통한 학사”(the ready scribe in the Law of Moses)였고 그의 지도하에 최종의 제사적인 문단(the latest priestly sections)이 율법에 첨가되었다. P는 이스라엘 신정(theocracy)의 기원과 창립에 대한 조직적인 설명을 했다. P는 기원(origin)과 족보목록(genealogical lists)과 제물 및 제사의식에 대하여 특별한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문서설의 변증적 발전에 대한 개요
1. Astruc : 신명의 차이는 자료(source)의 차이를 말한다. J와 E로 구분된다. 그런데 Eichhorn에 의해서 더욱 철저하게 설명되었다. E가 J보다 먼저다.
2. De Wette : D를 요시아 시대의 작품이라고 정의했다(B.C. 621).
3. Hupfeld : E를 둘로 나누어서 먼저 된 것을 E1(혹은 P)이라고 하고, 나중에 된 것을 E2라고 했는데, E2는 J와 더욱 가깝다. 문서의 순서는 PEJD라 했다.
4. Graf : P의 법부분(the legal portions)은 가장 늦게 된 것으로서 포로시대(Exilic)의 것이다. 그러나 역사부분(historical portions)은 초기에 된 것이다. 문서의 순서는 P1EJDP2이다.
5. Kuenen : P의 역사부분도 법부분과 같이 늦게 된 것이다. 문서의 순서는 JEDP이다.
6. Wellhausen : 고전적인 표현으로 문서설을 설명했다. 조직적인 진화론적 패턴 위에다가 JEDP라는 계열을 확립시켰다.
이제 문서설의 발달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모순(contradictions)과 전도(reversals)에 관하여 관찰해 보자.
(1) 저자마다 신명에 차이가 있다(Astruc, Eichhorn). 동일한 계열에서도 관심사와 문체와 어휘가 각각 다르다.
(2) Elohim이라는 동일한 신명인데도 저자는 다르다(Hupfeld). 한편, 어떤 E자료의 문단들은 관심사와 문체와 어휘에 있어서 J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3) 관심사(interest)와, 문체(style)가 J와 아주 다른 E(P)는 최초의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YHWH는 Elohim보다 후에 있던 신명이기 때문이다.
(4) 아니다. 반대로, P는 제일 초기에 된 것이 아니라 제일 나중에 된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여야 히브리 종교가 원시적 다신론(the primitive polytheistic)에서 제사장 중심의 유일신론(the priest ridden monotheistic)으로 발전했다는 진화론적 이론에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5) 물론 J는 E보다 늦은 것이다(Graf까지의 모든 비평가들의 주장). 그러나 그렇지 않다. J는 사실 E보다 먼저 된 것이다(Kuenen과 Wellhausen의 경우).
Wellhausen의 가설에 대한 가장 철저한 논박은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대두되었는데, 프린스턴의 William Henry Green이, 그의 작품, <창세기의 단일성>과 <오경의 고등비평>을 출판함으로써 그런 비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아주 재치 있고 박식하게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Wellhausen의 가설은 성서 원문의 실제적인 자료(actual data)를 아주 부당하게 설명했고, 비판의 기준이 비논리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것에 근거를 두었다고 지적하였다.
문서설의 오류(fallacies)에 대한 토론은 제2장에서 하게 될 터인데, 이런 토론을 하면 문서설이 논리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 2장 오경의 저자 문제
제 1장에서 우리는 오경의 저자에 관련된 자유주의 신학 이론들의 발달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1790년대에 이신론(deism)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이어서 19세기엔 헤겔의 변증법(Hegelian dialecticism)과 다윈의 진화론(Darwinian evolutionism)이 판을 치던 시대가 되자, 모세 저작설에 반론이 제기되었다. 모세의 책이라고 알려진 문학적 혼합물 중에서 최초에 기록된 부분들도 주전 9세기나 8세기를 앞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어떤 오래된 전승(tradition)은 모세가 쓴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여러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어 타협이 되었다. 그러나 구전이 아니고 기록된 형태의 글(the written form)에 관하여 말하자면, 오경 전체는 포로 후기(post-Exilic)에 된 것이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모세의 저작권(Mosaic authorship)은 20세기 자유주의 학계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런 논란의 결과 1800년대 초기의 경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된 것은 주로 문서설의 지지자들에 의한 것인데 이들은 모세를 구전(oral tradition)이라는 희미한 안개 속에 숨겨버리고 말았다. 앞에서 우리는 문서설이 시작된 것에 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기초로 하여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즉, 벨하우젠의 접근 방법은 모두가 그 초기부터 약점과 착오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벨하우젠 이론의 약점과 착오
1. 문서설은 순환론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문서설은 그 결론(성서는 결코 초자연적인 계시가 아니다)을 문서설의 대전제(초자연적 계시는 있을 수가 없다)로써 가정하려 한다. 물론 이런 대전제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서양의 모든 지식층들이 가지고 있던 신조였다. 그 당시에 성행하고 있던 이신론(deism)의 철학에서 볼 때에 이것은 절대적이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신조는 성서의 초자연적 계시가 던져 주는 증거에 대해서 조금도 고려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더욱이 이런 신조는 성서 본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신비에 대한 모습과 그 이야기를 이성적(rationalistic)으로 그리고 인본주의적(humanistic)으로 설명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에 반대되는 편견을 가지고 문자적인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취급하려는 이런 시도는 결국 실패하기로 미리 운명지워진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색맹(color blind)인 사람들이 Turner나 Gainsborough의 걸작들(masterpieces)을 비판하려는 태도와 마찬가지다. 그 첫 번째 착오는 “기원에 대한 공격”(petitio principii)이었다.
2.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벨하우젠의 이론은 원문 그 자체의 증거에 기초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하우젠 이론에 반대가 되는 원문이 나타날 때면 언제나 원문의 증거를 회피시켰다. 예를 든다면, 문서설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구약의 역사서들은 포로 후기까지 P법전이나 성문화된 모세 법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모세의 법과 P조항에 관련된 참고 문헌이 역사서에서 많이 발견되자 문서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 이 모든 참고 문헌은 제사장과 같은 서기관들(priestly scribes)이 후대에 첨가한 것인데, 이들은 포로 후기의 책들을 다시 조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문서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의존한 동일한 증명체제는 문서설과 모순될 때에 버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다른 방법으로 한다면, 문서설이 설명되어져야 할 자료와 모순될 때에는 언제나 편집자(redactor)와 개편자(interpolator)가 서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책략으로는 건전한 결론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정당한 확신을 주지 못한다.
3. 문서설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히브리 저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한 가지 이상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학의 역사상에 알려진 다른 모든 저자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 저자들은 한 가지 이상의 문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주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이상의 문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사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능한 몇 개의 동의어도 사용하지 않고 하나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관심사의 테두리나 주제 형태가 하나 이상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론가들에 의하면(영문학에서 한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Milton과 같은 한 저자는 L'Allegro와 같은 경쾌한 시나 Paradise Lost와 같은 고아한 서사시나, Areopagitica와 같은 빛나는 산문은 쓸 수가 없어야 했다. 적어도 밀턴이 만약 고대 히브리의 저자였다면, 그는 속히 기초적인 다양한 자료에 대한 가설로 분할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자료를 분류하는 전체적인 구조는 다른 나라나 다른 세대에서는 나타낼 수 없는 배타적인 가정에 근거를 두고 세워졌다.
4. 히브리 성서를 고고학적인 증거로써 다루는 데에는 주관적인 편견이 나타난다. 구약은 고대의 책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고고학적인 문서로 취급해도 될지 모르지만, 그들은 대부분 성서의 언급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 하나의 이교도적인 문서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후대의 문서라고 할지라도, 이교도적인 자료는 자동적으로 역사적 근거를 삼는데 있어서 우선권이 주어졌다. 비이스라엘적(non-Israelite) 자료나 어떤 고고학적인 발견물로부터 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 만약 그것이 문서설과 차이가 생기면 성서적인 언급(the Biblical Statement)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19세기의 학자들이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버린 성서적 언급은, 벨사살과 헷족속과 호리족속 등의 역사성과 같은 후대의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서 굳혀졌다고 할지라도, 문서설 학자들은 막무가내로 성서에 대하여 회의적인 편견을 취하고 있다. 어떤 논리적인 정당성도 없이 그냥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히브리 성서의 고상한 윤리적 수준에 대하여 이집트와 바빌론과 앗시리아와 같은 이교적인 기록들은 선포적인 경향이나 당파적인 편견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고 생각하는 것은 고지식한 일일 것이다. W. F. Albright의 학적인 모든 열정은 구약을 과거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으로 복구시키는데 집중되었다. 많은 서적과 논문에서 W. F. Albright는 성서적인 기록은 현대 고고학적 발견물에 의해서 그 비판자들에 대하여 옹호되었다고 계속 강조하였다.
5. 벨하우젠 학파(The Wellhausen School)는 이스라엘의 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순전히 인간적인 기원(merely human origin)에서 나온 것이며 단순한 진화의 산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가정(assumption) 하에 출발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가정을 거리낌 없이 주장하였다. 히브리적 신앙과 다른 종교들은 순수한 유일신론(monotheism)에서 발생되지 않았다는 데 대하여 이들은 관심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역시 모든 고대의 문화에서처럼 물활론(animism)과 조잡한 다신론(polytheism)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종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일신론적(monotheistic)이었다는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의 압도적인 증거를 선입견적인 독단으로 숨겨버렸다. 즉,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종교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의 경험과 관련된 율법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은 냉소적인 재분석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것은 소위 “신명기 기자”나 후기 제사학파들이 고대의 다신론적인 인물들에게 유일신론적 겉치레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6. 본문을 능란하게 조작하고 그 콘텍스트에서 나온 하나의 문단을 해석함으로써 하나의 “불일치”가 증명될 수 있을 때는 언제나 상호 절충적인 설명을 하지 말고 상상된 불일치를 자료의 다양성을 증명하는데 이용해야 한다.
7. 비록 다른 고대 셈족의 문학이 화술(narrative technique)에 있어서 동일한 저자에 의해서 확장된 반복(repetition)과 중복(duplication)의 실례가 있다고 할지라도, 히브리 문학만은, 저자가 다양하다고 주장하지를 않는 한, 반복이나 중복이 있을 수가 없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종파 문학(the sectarian literature)을 연구하여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조를 목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을 적용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예를 들면, ‘훈련 안내서’(Manual of Discipline) 제 1장과 제 4장을 비교해 보면, 은둔사회(the monastic community)로 들어가는데 필요한 요구 조항들은 문서설 자료분석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식의 글이 전개된다.
8. 벨하우젠 학파(Wellhausen School)가 아주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바는, 현대 유럽의 비평가들은 비교할 만한 다른 히브리 고대 문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과학적인 신빙성을 가지고 각 문서의 저작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주어진 콘텍스트에서 기대하지 않는 말이 나오면 그 대신에 더욱 일반적인 용어를 대치시킴으로써 자유롭게 원문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와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일치성이나 문체에 대한 서양적 개념이 침해를 받을 때면 언제나 성경 구절을 삭제하거나 고칠 수 있다고 느꼈다.
9. 그들은 또한 생각하기를, 사건이 일어난 지 3,400여 년 후에 살고 있는 학자들은 고대의 저자들보다 더 잘 실지로 일어난 사건을 재조립할 수 있다고 했다. 주로 철학적인 이론들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벨하우젠의 가설이 학적으로 존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지 없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거기에는 증명할 수 없는 대전제에서 나온 어떤 특별한 변호나 순환론법적인 추론이나 의심스러운 추론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 방법론이 법정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 문서설을 만든 사람들은 법적인 행위에서 인정된 어떤 법의 확증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변호사이든 간에 오경의 자료비평이라는 무책임하고도 기괴한 모습에 있어서 한 개의 유서(a will)나 법령이나 양도행위(deed of conveyance)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이 법정에서 즉시 취소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하나의 새 교회를 병합하는 법규에 관한 글을 비교해 보자. 이것은 캘리포니아 Pasadena의 William Dixon 판사에 의한 것이다. “성문화된 계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전체와 관련시켜서 함께 읽어야 하고, 전체와 관련시켜서 모든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개의 조항이 그 계약의 전체적인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 원리는 분명히 모세 작품의 비법률적인 부분에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오경의 분석에 이 원리를 적용한다면 JEDP 가설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모세 저작에 대한 실제적 증거
오경 본문의 자료(data)를 모두 주의 깊게 검토해 보고, 내적 증거이든 외적 증거이든 이 모든 증거가 모두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모세의 저작설이 가장 적합한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아주 세심한 표현이나 설명을 빌리지 않고도 전체적인 것을 편리하게 살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결론을 지적해 주는 여러 면에 있어서의 증거를 열거해 보기로 하자.
A. 모세 저작에 대한 성서적 증거.
1. 오경 자체는 모세가 오경을 저작했다고 증거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증거해 주는 구절을 찾아낼 수 있다. 출애굽기 17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한 책에 써서 기념하도록 하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출애굽기 24장 4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라고 되어 있으며 7절에 보면, “그가 언약서를 취하여 백성들에게 낭독하였다…”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 34장 2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고, 민수가 33장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여정은 이러하니라…그리고 모세는 그들의 여정에 따라서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다”고 되어 있으며, 신명기 31장 9절에 보면, “모세가 이 율법을 기록하여 제사장들에게 주었다…”고 되어 있으며, 11절에는, “모든 이스라엘이 너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나타날 때면…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듣는 가운데 이 율법을 읽도록 하라”고 되어 있다.
2. 구약의 다른 책에서도 이와 같은 참조 성경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다. 네가 형통하리라”고 되어 있고, 여호수아 8장 31절에 보면,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고 되어 있으며(출 20:25 참조), 32절에는,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책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라고 되어 있고 열왕기상 2장 3절에는, “…그 율법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되어 있고, 열왕기하 14장 6절에 보면,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었다. 열왕기하 21장 8절에 보면 므낫세의 통치(696-642)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의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이런 참고 성경 구절은 요시아왕 때와 그 후에 기록된 구약 서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 때는 신명기가 나왔었고, 벨하우젠이 가설(Wellhausen hypothesis)에 의하면 또한 JE가 나왔던 때이다. 율법의 저작은 모세 개인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성경 구절은, 에스라 6장 18절, 느헤미야 13장 1절, 다니엘 9장 11-13절, 말라기 4장 4절이다.
3. 또한 신약 성서가 모세의 저작을 증거해 준다. “모세”라는 이름과 함께 나오는 율법에 대한 많은 성경 구절은 그만두고라도 역사적인 모세의 인격을 강조하는 인용문을 선택하여 보자. 마태복음 19장 8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되어 있다. 요한복음 5장 46,47절에 보면,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지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요한복음 7장 19절에 보면,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율법을 행하지 않느냐?”고 기록되었고, 사도행전 3장 22절에 보면,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라고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신명기 18장 15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로마서 10장 5절에 보면,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레위기 18장 5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거짓말을 했고,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는, 모세가 전혀 율법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문서설을 지지하기 어려운 일이다.
B. 그밖의 내적 증거들
위에서는 오경의 모세 저작에 대한 성경 구절을 직접 인용하였지만, 이제는 간접적인 증명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데,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어떤 기록된 문서의 저작 문제를 결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은 그 문서의 내적증거를 검토하여 보는 일이다. 즉, 당대의 역사적 사건과, 당대의 문제점들 및 지리적, 기후적 조건과 그 당시에 많이 나타난 식물상(flora)과 동물상(fauna) 등에 대한 우연한 암시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저작의 장소와 시기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경 원문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판단하여 보건대 오경의 저자는 팔레스틴 사람이 아니었고 이집트에 살던 사람으로서 출애굽과 광야생활을 목격한 사람이었으며 대단히 높은 교육을 받고 학식과 문학적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결론짓게 된다. 이런 기준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모세 이외에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증거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1. 출애굽 이야기 속에는 아주 자세하게 기록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 사건들에 실지로 참여한 사람을 암시해 준다. 예를 든다면 출애굽기 15장 27절에 보면 이야기하는 자는 엘림에 있는 샘이 12개이고, 종려나무 수가 70그루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민수기 11장 7,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먹이신 만나가 나타나고 만나의 맛이 어떤가 하는 설명이 나온다.
2.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자는 출애굽에 실지로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집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1) 그는 다음과 같은 이집트의 명칭을 잘 알고 있었다.
(a) 그는 Heliopolis를 가리키는 본토명(the narive name)인 hieroglyphic 'wnw.
(b) 하나의 신(a god)인 “Atum의 집”(The House of Atum)을 뜻하는 Pr-tm(pithom).
(c) 태양신(the sun-god)인 “Ra의 선물”을 뜻하는 P-d'-p-R(potiphera).
(d) 여신(a goddess)인 “Neith의 은총”을 뜻하는 Ns-n't(Asenath).
(e) 바다의 아들(Water-son)을 뜻하는 Mw-s(Moses), 혹은 Thutmose나 Ahmose(이집트의 신하들은 집권하고 있는 왕인 Pharaoh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곤 하였다).
(f) Pharaoh가 요셉에게 준 특별한 존칭인 Zaphenath-pa'neah(창 41:45). 이것은 “살아있는 자(pharaoh)의 나라의 공급자(Nourisher)”라는 뜻으로서 이집트 글자로는, dfwnt;p;'nh이다.
(2) 저자는 구약 어느 부분보다도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이집트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 창세기 41장 43절에 'abrek란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무릎을 꿇다”(bow the knee)이다. 이것은 분명히 이집트어 'brk를 말한다. 'brk란, “아, 엎드려라”(O heart, bow down!)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있기도 하다.
(b) 중량 단위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다. drt(손)이라는 말로부터 Zeret(한 뼘)이 나오고, 'pt라는 말에서 'ephah(10분지 1호멜)이 나오고, hnw에서 hin이 나왔다.
(c) kmyt에서 gome(파피루스)가 나왔다.
(d) kmhw(빵의 일종)에서 qemah(밀가루)가 나왔다.
(e) sss(아마포)에서 ses(좋은 아마포)가 나왔따.
(f) 'trw에서 ye'or(Nile, 강)이 나왔는데, 이것은 곱틱어(Coptic)로서 eioor가 되었다.
이집트에서 요셉과 모세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오경 부분에 대하여 그 이집트적인 배경을 논하는 작품 중에서 가장 야심적인 현대 작품 중에 하나가 Abraha S. Yahuda의, <이집트인에게 관련된 오경의 언어>이다. Yahuda는 단지 외래어에 몰두하지 않고, 많은 수의 관용어와 언어의 경향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이런 것들은 히브리어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이집트 사람들에게 고유하고 독특한 것들이었다. 창세기 41장 40절에 보면 이상한 표현이 나오는데, 킹제임스판(AV)엔, “너의 말에 따라서 나의 모든 백성은 통치를 받을 것이다”고 번역되었는데,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너의 말에 따라서 나의 모든 백성은 입을 맞출 것이다(shall kiss)”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히브리어 동사 nasaq이다. Yahuda는 sn(to kiss)의 이집트적 사용법에 있어서 어떤 분명한 것을 발견하였다. sn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을 지적할 때 음식(food) 앞에서 사용된 말이다. 궁정 관리들의 칭호와 바로와 만날 때에 사용되는 경어 등은 모두가 이집트적 용법에 일치했다.
Garrow Duncan이라는 사람은, <히브리 기원에 대한 새 전망>이라는 그의 저서 73페이지부터 179페이지까지에서, 율법(Torah)의 저자에 대하여 아주 정확하고 믿을 만한 특색을 지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이야기의 저자는 이집트의 언어와 풍속과 신앙과 궁정 생활과 에티켓과 관리의 세계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이집트의 풍물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p. 176).
벨하우젠의 추종자 중에 어떤 유명한 이집트 학자들은 히브리 이야기가 나중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집트적인 증거를 내세웠다. 예를 든다면, Steindorff는 그의 저서, <이스라엘의 체재>에서 더욱 현대적인 한 저자가 여러 이집트 왕들의 이름을 알았고 강조했음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Yahuda는 히브리 기록에는 솔로몬과 그 후의 시대까지는 바로의 명칭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사는 동안, 그들은 이집트 신왕조의 공용어를 이집트인들의 습관을 따라 그냥 사용했다. 왕은 단순히 pr--(pharaoh)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위대한 집”(Great House)의 뜻이다. 한편 그들은 왕의 이름을 부를 때 특별한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증거 대신에 주전 18세기의 이집트 왕조에서 사용한 용어에 대한 일치성에 비추어 볼 때 모세의 저작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그 후대에, 예를 들면 주전 10세기에 이집트 왕의 이름은 그 이름 앞에 바로(Pharaoh)라는 명칭이 붙지 않고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이집트에서 통용되는 용법이다. 열왕기상 11장 40절에 나오는 “시삭”(Shishak:이집트어로는 Sheshonq)에 대한 언급을 실례로 들 수가 있다. 주전 7세기 후반과 6세기 초까지 히브리의 역사가는 “바로”라는 칭호에다가 왕의 실제적인 이름을 붙인 것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열왕기하 23장 29절에는 “바로느고”(Pharaoh-necho)라는 말이 나오고 예레미야 44장 30절에는 “바로호브라”(Pharaoh-hophra)라는 이름이 나온다.
3. 율법의 저자는 가나안 땅에 관한한 팔레스틴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1) 이야기 속에 언급된 계절과 날씨에는 이집트적인 것이 나타나고 팔레스틴적인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2) 언급된 식물상(flora)과 동물상(fauna)은 이집트적이거나 시내적인(Sinaitic) 것이지 팔레스틴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이처럼 싯딤(shittim)나무나 아카시아나무는 이집트와 시내반도(Sinai peninsula)에만 있고 팔레스틴에는 없는 것이다. 단 사해(the Dead Sea)의 저변은 예외다. 그것은 특수한 나무로서 사막에 나는 것이다. 장막의 나무 기구들은 이런 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든 것이다. 장막의 윗덮개는 물돼지의 가죽(tahash)이 사용되었다(출 25:5; 36:19). 물돼지는 이집트와 시내(Sinai) 부근의 바다에서 발견되는 듀공(dugong:해우류)이다. 이것은 팔레스틴 부근에는 없는 것이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나오는 정결하고 부정한 동물과 새들의 목록은 시내에 특징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신명기 14장 5절에 나오는 영양(pygarg) 등과, 레위기 11장 16절에 나오는 타조(ostrich)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동물들은 하나도 가나안 땅에서 사는 동물이 아니다. 신명기 14장 5절에 나오는 들소(wild ox)나 영양(antelope:히브리어로는 teo)은 이집트 북부(Upper Egypt)와 아라비아에서 나는 것이지 팔레스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연관되어서, 레위기 11장 6,7절에 보면, 토끼(coney)나 오소리(rock badger)가 나오는데, rock badger는 히브리말로 사반(shapha)이다. 이런 동물들은 시내와 아라비아에 특별히 살고 있는 동물로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H.B. Tristram은 반박을 가했는데, 이유인즉, 이런 동물들은 북부 갈릴리와 페니키아 일대에도 살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특수한 실례들 속에서 기억해야 될 것은 동물들의 분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한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사자는 고대엔 근동에서 많이 살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인도(India)와 아프리카에 제한되어 살고 있다.
(3) 지리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 저자는 이집트와 시내(Sinai)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출애굽의 통로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지방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지리는 창세기의 이야기 부분에 나오는 족장의 전승(patriarchal tradition)에 의하지 않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창세기 13장에서도 요단 들(the Jordan plain)의 푸르름을 설명하고자 할 때에는 이집트 땅과 비교했다(10절). 또한 소위 P문서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창세기 23장 2절에도, 헤브론이라는 명칭은 기럇아르바라는 전이스라엘적 명칭(pre-Israelite name)을 들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헤브론을 창설한 연대는, 민수기 13장 22절에 보면, 이집트의 소안(Zoan)과 관련지어서 대중들에게 설명이 되었다. 가나안 땅의 세겜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창 33:18). 만약 저자가, 이스라엘이 이미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던 주전 9세기경이 지난 다음, 즉, 포로후기 시대에 살던 사람이라면, 이것이 설명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오경의 저자는 팔레스틴을 하나의 새롭고 비교적 알지 못하는 생소한 지역으로 생각한다. 그 새로운 지역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4. 민수기를 통해서 볼 때에 출애굽적인 분위기는 광야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조상들이 100년 동안 소유하고 살던 땅에 정착한 사람들의 농경생활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예배의 장소로서 장막(tabernacle)이나 커다란 텐트에 대한 강조점을 둔 것을 보면,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진 이후에 살던 저자들이 살던 곳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기구들은 광야를 통과하던 유목민들과 적절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이런 기구들을 만든 자료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 잘 언급되어 있다. 장막을 쳤던 중심지와 장막 사방에 배치되었던 열두 지파의 정확한 위치는 모두 모세시대에 해당되는 것이다. 후대에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민 2:1-31). 광야에 대한 언급이 어느 곳에나 나타난다. “속죄를 위한 염소(scapegoat)는 광야로 보낼지니”라는 말이 레위기 16장 10절에 나타나고, 신명기 23장 12,13절에 보면 광야 생활을 위한 위생적인 교훈이 나오고 있다. 행렬(march)의 정확한 순서는 민수기 10장 14-20절에 나오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의 큰 무리를 이루어 행진을 하는 과저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5. 특히 창세기에는 주전 2천년 경의 상황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풍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주전 1천년 동안의 것은 나타내 주는 것이 없다. 분명히 누지(Nuzi)에서 발견된 법문서와 15세기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면, 마치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듯이, 여종을 통해서 법적으로 어린 아이를 갖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이삭이 야곱에게 그랬듯이 임종시의 유언은 타당성이 있었고 가족의 드라빔(teraphim)은 상속권을 갖는 것이므로 중요하였다. 창세기 31장에 라반의 드라빔을 라헬이 훔쳐간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다른 근거에서도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문헌의 역사적 정확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거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막벨라굴을 산 기록이 나온다.
6. 여기엔 또한 중요한 고어(archaisms in language)가 있다. 예를 든다면, 그녀(she)라는 대명사는 HY'대신에 HW'라고 쓰여지곤 했다. 그리고 또한 “어린 소녀”(young girl)에 대한 말로써 여성 형태인 N'RH대신에 N'R이 쓰였음을 볼 수 있다. 가끔(창세기에는 두 번), 사사들과 사무엘 및 그 후에 사용되었던 형태인 hallaz 대신에 “that”라는 지시사로서 HLZH(hallazeh)가 나타난다. “웃다”(laugh)라는 동사는 SHQ대신에 SHQ라고 나온다. “어린 양”(lamb)은 후대에 사용된 KBS(kebes) 대신에 KSB가 사용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율법에 나오는 히브리어와 아모스와 같은 주전 8세기의 히브리어와는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5세기 이전의 문구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발음의 형태상 일어날 수 있는 변화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던 알파벳 때문에 아주 모호해진다. 마소라 시대(Masoretic times)까지 구약 성서는 이런 상태로 보존되었다. 만약 고전 영어와 엘리자벳 시대의 영어가 자음으로만 쓰여졌다면, 고전 영어도 엘리자벳 시대의 영어와 그렇게 다름이 없이 보이지 않겠는가!
(2) 모세 후기(post-Mosaic) 시대의 젊은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율법(Torah)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마치 13세기에 코란(Koran)이 아라비아 문학에 영향을 미쳤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 모든 고전적인 문서는 독특하고 신성한 계기와 광범위한 구조를 이루도록 했는데, 이것을 토대로 모든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적 용어가 극단적인 보수적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모세 시대는 정관사 ha-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너무 이른감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셈족어 가운데, 어떤 말도 모세 기대쯤 되어서 정관사를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loquent Peasant와 같은 텍스트들이 주전 12세기 왕조에 드문드문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정관사 p;, t;, n;이 문학적인 텍스트에도 나타난 것은 이집트의 제 18왕조 때였다. 분명히, 모세시대에 구어체 이집트어가 관습적으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은 그들도 그들 자신의 언어로 비슷한 관사를 사용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율법의 산문부분에 관사가 가지런히 사용된 것을 보고 놀랄 필요가 없다고 본다.
1번부터 6번까지 이 모든 것들은 모세의 저작설과 잘 연결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전 9세기부터 5세기까지 단계적으로 오경을 기록했다는 벨하우젠의 이론과는 조화될 수가 없다. 증거 법칙들로 보아서 문서설은 실제적인 자료(actual data)를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배격되어야 한다.
C. 모세에게 자격이 있음(Moses' Qualifications)
모세 자신에 대한 모든 기록을 볼 때에도 모세야말로 오경과 같은 작품을 쓴 사람이라고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
(1) 모세는 오경을 저작한데 대한 배경이 있다. 그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모세는 멀리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전해내려온 구전법(the oral law)을 조상으로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에서 궁정의 가정교사로부터 당시에 고대 세계를 지배했던 이집트 18왕조 때에 학문적 수련을 닦은 사람이다.
(2) 모세는 그의 선조들로부터, 족장들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구전(oral tradition)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계시에 대한 것을 받았었음에 틀림없다.
(3) 모세는 이집트와 시내 반도의 기후, 농업, 지리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경의 저자답게 묘사했다.
(4) 모세가 이 불후의 명작인 오경을 썼음이 틀림없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창설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꿈을 성취한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종교적 기초 위에서였다.
(5) 모세는 율법과 같은 책을 쓸 만한 시간과 여유를 충분히 가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내 광야(the Sinai desert)를 배회하면서 서서히 이동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세는, 쓰는 기술이 대단히 발달되어 집에서 여자들이 사용하는 변기(toilet articles)에도 알맞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만큼 고도의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형문자(hieroglyphic)로 쓰는 법과 성직자들이 쓰는 서식이 모세 당시의 이집트에 널리 성행하고 있었으므로,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론은 믿을 수 없다. 그때 모세는, 아주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맡고 있었다. 즉, 모든 인간문학 속에서 추구되어야 할 기록인 것이다. Serabit el-Khadim에 있는 이집트의 구슬 광산(turquoise mines)에 고용된 무식한 광부들까지도 광산 굴의 벽에다 기록을 남겼는데, 하물며 배경이 있고 교육을 받은 모세가 글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현대의 이론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담을 줄 따름이다.
제 3장 선지 전시대와 선지 시대에 있어서 벨하우젠의 히브리 역사 개편
19세기에 문서설 학자들에 의해서 발달된 히브리 종교사의 재해석에 대한 제1장의 짤막한 서술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기서 그것을 자세히 재검토하고 그 약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벨하우젠 학파에서는 오경이 기록된 제일 처음 부분으로서 J는 850년, E는 750년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무엘 시대에 말로만 전하던 선지자들은 별도로 한다고 하더라도, 선지시대(the Prophetic period)의 국면이 묘사되었다. 벨하우젠의 이론에 의하면, 사사시대와 모세시대 및 족장시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바는, 다만 수 세기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구전된(garbled) 전승만이 남아 있다가 마침내는 J와 E에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구전(oral traditions)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분류되어 원래의 사실(the original fact)을 전설적으로 전해내려와서 그 원래의 사실을 감싸고 있는 증가된 복합적 사실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을까? 문서설 학자들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용이한 방법을 헤겔의 철학과 다윈의 진화론(evolutionism)적 방법론에서 발견했다. 당시 헤겔의 철학과 다윈의 진화론은 철학계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Utrecht의 A.Noordzy는 <구약의 문제점>이라는 책에서 지적하기를, 19세기는 인간중심적인 견해(anthropocentric viewpoint)가 판을 치던 시대라고 하였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의 목적적인 존재로 취급되었고, 신은 단지 인간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되었다. 진화의 사상은 당시의 사고를 사로잡았으며, 자연의 이해는 물론 역사의 이해에 있어서 가장 좋은 열쇠가 된다고 생각되었다. 종교는 다만 인간의 편리를 위한다는 점에서만 논의되었다. 한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의 특별 계시에 대한 모든 가능성이 약화되었다. 인간의 종교적 측면은, 인간의 문화 행위(cultural activity)의 표현으로서 발달의 자연적 과정으로만 설명되었다. 종교의 연구 결과 일정한 진보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원시적 물활론(animism)이나 배물교(fetishism)에서 여러 가지 귀신을 섬기는 잡신 신앙(polydemonism)으로 발전되고 그 다음에는 다신론(polytheism)과 일신숭배(monolatry)로 발전되고 마지막에는 일신교(monotheism)로 발달되었다고 생각하여 결론을 내리기를, 이스라엘의 종교도 이와 비슷한 계통으로 발전했다고 하였다. 율법(Torah)의 히브리 원문의 현재 형태는 유일신론적 관점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포로 후기의 제사 학파(the Priestly school)에 의해서 고대 전승을 재구성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들은 아주 진보된 유일신론적 견해를 고대 전승에 부과시켰던 것이다. J와 E도 주전 8세기의 선지자들이 군림하던 시대에 속하며, 원래적 물활론과 족장들의 다신론은 이와 같이 해서 후대의 신학에 맞는 것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비교 종교학의 변호자는 유일신론적인 첨가물을 제거시킴으로써 더욱 원시적인 신앙의 자취를 찾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E. B. Taylor, Schultze, W. Robertson Smith와 같은 분석자들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추측을 발전시켜, 반유일신론적 신앙(a submonotheistic faith)을 지적하기 위해서 재해석되어야 할 고대의 기록을 자세히 검토했다.
고대 근동의 비이스라엘적인 국가의 종교적 발전에 대한 상상적인 유추에 많은 것들이 의존되었다. 예를 들면 이집트에서는 혼합주의(syncretism)의 과정에 의하여 고대의 다양한 다신론(polytheism)에서 제 18왕조에 의해서 일신숭배(monolatry)에 아주 가까운 고도의 단계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 때에 Amon-Re는 제 2의 위치에 있는 군소 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Akhnaton 왕(B.C. 1387-1366)의 유사 일신교(quasimonotheism)를 세우는 길을 예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집트 종교의 고차원적인 면을 나타내었다. 바빌론에서도 비슷한 발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Marduk 신을 최고의 신으로 높여 놓고 그 밑에 모든 다른 신들을 포섭하는 식으로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호머의 다채로운 다신론인 후대에 Xenophanes와 Plato의 일신론적 철학과 연결되어 되었다. Plato는 “그 신”(the god)을 자주 언급했다. 일신론(monotheism)에로의 진보는 이스라엘이 겪어야 하는 일반적인 진화적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교종교의 실제적인 데이터에 의하면 이런 유추(analogy)로부터 나온 논의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나라도 그 백성의 전체적인 충절을 요구하는 진정한 유일신론적인 종교를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Akhnaton과 Xenophanes처럼 동떨어진 양상이 지적될 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집트 사람들이나 바벨론 사람들이나 그리스 사람들은 국가적인 기초 위에서 일신론적 신앙을 고수해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와 사도들 당시에 그 땅의 주민들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많은 신들(gods)과 여신들(goddesses)을 믿는 신앙이 확고해졌었다. 그들은 천상의 정부의 만신전(a pantheon of celestial government)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선조들이 수천 년 전에 믿었던 것처럼, 천신(sky-gods), 수신(water-gods), 목신(tree-gods), 지신(earth-gods) 그밖에 수많은 신들을 믿었다. 철학파들(philosophic schools)은 신들(gods)을 비인격적인 요소로 만들어버리고(스토익 학파), 혹은 한 하나님(God)의 존재를 부정했다(에피큐리안 학파). 그러는가 하면, 불가지론(agnosticism)의 중간적 기반을 점유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대부분의 시민 대중은 아직까지도, 그들의 종교에 외국적인 색채를 가미하여 이집트나 아시아로부터 들여온 외국신들과 함께 조상들의 신을 믿는 데 열중했다.
역사적 판단은 다음과 같이 내려진다. 이스라엘만이 국가적인 기초 위에서 유일신론적 종교를 가지고 역사상에 대두되었다. 히브리 나라가 고대의 다른 인접국에 대하여 아주 대조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한 다신론적 기원을 저당잡힌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다면 다만 이스라엘에서 다신론이 어떻게 일신론으로 넘어갔는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문제를 크게 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논리적 근거는 희박하다. 이 사실은 다만 구약 성서 자체에서만이 설명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해서 이런 일신론적 신앙을 부여 받은 것이다. 이런 일신론적 신앙은 히브리인들이 본래부터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천재적인 기질이 있어서 발전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서의 기록을 보면 본래 히브리 사람들은 비종교(irreligion)적이며 배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웨와 맺은 언약적 관련성을 버리고 이방 나라들의 다신론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적어도 포로시대(주전 587년)까지는 히브리 성서 자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처음에 북쪽의 열 지파와 그 다음에 남왕국의 두 지파는 계속해서 퇴폐적인 이방신을 섬기는 일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끊어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구히 버림을 당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총의 힘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끊임없는 메시지의 덕분이다.
벨하우젠에 따른 선지 전시대
비교종교학의 주된 원리에 따르면 문서설의 개척자들이 원시 이스라엘의 신앙에 있어서 저차원적인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창세기 28장 18절에 나오는 벧엘에서의 야곱의 돌베개 잠은 물활론(animism)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이 돌은 Mecca에 있는 Kaabah의 신성한 검은 돌과 같은 어떤 제의적인 대상물(a cult object)이었다. 길르앗에서 야곱과 라반이 쌓은 돌무덤(cairn)에 대한 이야기 뒤에는 돌을 숭배하는 신앙이 깔려 있다(창 31:47). 우상을 숭배하던 가나안 사람들도, 그 지역의 바알(the local Baal)이 그 돌에 살고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높은 곳에 있는 제단 옆에 돌을 쌓았으며 그들의 희생 제물 앞에 나아가지 않았던가?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높은 지역을 빼앗았을 때에 우상을 숭배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꼭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분열 왕국 마지막 시기에까지도 그들이 돌을 숭배하는 것(stone worship)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나타내어 준다.
나무숭배(tree worship)에 관해서 말한다면, 만약 아브라함이 실존적인 인물이었다고 하여도 그는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는 신앙을 가졌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모레의 상수리 나무” 옆을 지나갈 때에 찾아 볼 수 있다(창 12:6). 이 경우에 “모레”(Moreh)는 “선생”(teacher)을 의미하는데 horah에서 온 말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나뭇잎이 내는 소리를 통해서 나무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Dodona에서 Zeus의 상수리나무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뒤에 창세기 14장 13절에서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 옆을 그의 본부로 삼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는 이런 나무들도 숭배했다. 모세 후기 시대에 우리는 또 하나의 의미 깊은 실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여선지 드보라의 경우이다. 그녀는 신성한 종려나무 옆을 자기의 본부로 삼았다(삿 4:5). 모세에게 속하는 법부분에서도 물활론(animism)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0장 25절에서 야웨께 쌓는 제단은 어떤 것이든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야 한다. 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야만 하는가? 제단 위에 제의적인 상징물을 조각해 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가? 혹은 수호신(daemon)을 성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는가? 수호신은 다듬지 않은 자연스런 상태에서 거주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비교종교학자들은 후자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또한 레위기 19장 9절에 나오는 금지법(injunction)에 보면, 밀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이삭도 줍지 말라고 되어 있다. 이 이유는 서 있는 곡식 속에 거주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식물의 영(the vegetable spirit)을 노엽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P에 주어진 표면상의 이유는 후대에 세련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상숭배(idolatry)에 관해서 말하자면 히브리 역사의 문서적 재건에서 초기 이스라엘 종교가 우상 숭배적인 것이었다고 다신론적인 것이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평가들에 의하면, 금송아지의 숭배는(출 32장) 모세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특히 그런 상(image)이 야웨 자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취급될 때 그렇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가 송아지상들을 벧엘과 단에 세웠을 때에 즉 주전 930년에 큰 반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만약 모세의 법이 우상을 금했더라면 여로보암 1세는 결코 그런 것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전승이 자주 변경되어서 모세가 이런 송아지 숭배를 반대하도록 한 것은 E시대의 새 일신론적 선지학파의 영향으로 후대에 된 것이다. 엘리야는 여로보암이 만든 송아지들을 저주하지 않았다. 우상을 통해서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것에 관하여 분개하지 않았다. 아모스도 역시 송아지들을 저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모스 3장 14절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 여기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린다”고 되어 있다. 모세의 구리뱀(민 21:8, 9)에 관해서 말하자면, 히스기야 시대까지 국가의 성역(the national sanctuary)에 보존되었다(왕하 18:4 참조). 이에 대하여 벨하우젠 학파에서는, 뱀신(the Serpent god)은 레위 지파의 수호신으로서 아주 존경을 받던 우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주전 8세기까지, 즉, 일신론적 선지학파가 유다에서 군림하고 히스기야가 그것을 파괴시키기까지였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이런 비판자들은 유아 희생제물(infant sacrifice)이 초기 이스라엘의 원시적 신앙에서 인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출애굽기 22장 29절에 있는 바와 같이(JE), 첫 아들(the first-born son)은 특별한 헌신을 통하여 속죄된다는 것을 보건대, 가축의 첫 새끼들처럼 원래 장자들은 제단에 드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D 이후부터야 이 두 가지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생기게 되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P문서인 출애굽기 13장 1,2절에 보면 장자들과 첫 새끼들(firstlings) 사이에 출애굽기 22장 29절에서 보다 더 뚜렷한 구분이 나오지 않는다. 히브리 원문에 나타난 아주 합리적인 원리 즉,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밤에 히브리의 모든 장자를 보호하셨기 때문에 첫아들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을 하셨는데, 이것은 단지 제사적인 합리화(pristly rationalization)로서 완전히 무시된다.
이런 비평가들에 의하면, 초기 이스라엘에는 성문화된 법률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수메르, 바빌론, 앗시리아, 헷 사람들은 모세 시대나 그 이전에도 성문법이 있었으나 이스라엘엔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 안에 보존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법률은 출애굽기 34장 11-26절에 나오는 소위 J의 “제의적인 십계명”(ritual decalogue)이라는 것이었다. 위의 구절들이 십계명(a decalogue)으로서 서론적인 형식이 없이 시작된다는 것과 사실은 10가지 계명이 아니라 8가지 계명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히브리 백성의 근본적인 성문법(c. 850 B.C.)은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과, 사기와,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에 대한 처벌을 모두 생략해야 한다는 사실이 남게 된다. 이런 처벌에 관한 규정은 소위 10계명에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B.C. 약 1700년경)이나 헷 족속의 법전이나 수메르 사람들의 법전에는 이런 잘못에 대한 엄한 처벌 규정이 나와 있다. 이집트의 “죽음의 책”(Book of the Dead) 125장에 보면, 부정적인 고백으로 이 모든 죄악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고백으로 이 모든 죄악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고백은 병든 사람이 지옥의 재판신들 앞에서 고백해야 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의 인접국인 이방나라 사람들은 거의 1500년 이전에 법률적, 종교적인 문학 속에 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히브리 사람들만이 뒤떨어져서 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다는 주장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문서설 학자들은 선지 전시대(the pre-Prophetic period)에, 족장 시대의 조잡한 다신론(polytheism)에서 일신 숭배(monolatry)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히브리 족속들은 그들의 국가적 신으로서 차차 야웨만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신의 복수적인 배경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Elohim이란 말의 복수적 형태와 차이가 난다. 'Elohim은 -im이라는 복수형 어미를 가지고 있다. 사사 시대에는 입다가 이런 용어들을 써서 암몬인들과 협정을 맺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삿 11: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야웨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사무엘 상 26장 19절에서 다윗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벨하우젠 학파들은 또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호세아 3장 4절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우상적인 주상(idolatrous pillars)과 드라빔을 호세아는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과 제사 등은 이 구절에서 각각 한 쌍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후 문맥을 잘 살펴보면 이 구절에 기록된 제의적인 모든 것은 저자가 생각할 때에 비합법적이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 다시 말하면, 허락되지 않은 이스라엘의 왕조라든가,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이 제사직을 맡는 일이라든가, 예루살렘 제단에 드려지지 않은 제사라든가 그밖에 용납되지 못할 것들이 있었다. 이 구절에서는 아무 합법성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다음 절에 보면 후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참된 하나님께 돌아가고, 그들에게 꼭 맞는 왕 다윗에게 돌아가서 순전하고 거룩하게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글로 기록했던 예언자들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 종교사의 고등 비평적 재건을 위한 원문적인 기반은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논쟁들은 아브라함 후기 시대에 원시주의(primitivism)의 이론과 다신론(polytheism)을 위한 약간의 뒷받침이 되었을 뿐이며 모든 확실한 원문들은 훨씬 다른 해석을 하도록 했는데 이 해석은 그밖의 증거들과 더욱 잘 일치한다.
벨하우젠에 의한 선지 시대
벨하우젠 학파의 비평가들은 아모스가 글로 쓰던 선지자들 중에서 최초의 선지자라고 생각하는데, 이 아모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혁신적인 새로운 방향 전환이 생겨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고가 바뀌어졌다고 했다. 유다 지방의 산골에서 온 이 독창적인 사색가는 새로운 신기원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그것은 일신론(monotheism)이다. 여호와 하나님 이외엔 신이 없다. 이방 신들은 다만 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모스를 따른 선지자들은 호세아, 이사야, 미가 등이었는데 이들은 일신론에 크게 강조점을 두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에 궁극적인 승리를 부여하는데 공헌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런 운동을 통해서 신명기서에 고전적인 성명서(classical manifesto)가 나왔고, 거기에는 여호와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예언자적인 열정을 가지고 주장되었다. 그 다음에, 이런 여호와의 우월성과 독특성은 모세의 영광스런 모습에 나타나게 된다.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이런 비판가들에 따르면, 예언자 시대(B.C. 760-587)는 가장 높고 순수한 이스라엘 종교를 나타내 주고 있다. 19세기 자유주의가 해석하고 삭제한 대로, 이 히브리 예언자들은 자유주의적 복음을 고수했다. 이들은 선행과 고상한 인격으로 사회정의(social justice)와 사회구원(social salvation)에 강조점을 두었다. 이런 입장에서 선지 후기의 이런 운동은 에스겔과 제사학파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 의식주의(ritualism)와 형식주의(formalism)로 퇴보된 것을 나타내어 주며 속죄제와 같은 제사적 기능에 강조점을 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선지 전시대와, 선지 시대 사이에서 일어난 과격한 변화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읽어보면 아주 흥미가 있다. 이에 대해서 Lewis Brown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세기의 선지자들은, “화산의 분화구로부터 불을 뿜는 악마를 초월적인 사랑의 신으로 변형시켰다. 그들은 버려진 사람들 중에서 하나의 잔인한 보호자를 택하여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를 모든 인류의 자비로운 아버지로 변형시켰다. 결국 그들은 야웨(YHWH)를 파괴시키고 하나님(God)을 창조했다!” 이것은 확실히 거짓과 허위 진술의 걸작이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허위(fallacies)로 가득차 있다. 이것은 벨하우젠의 가설이 유행함에 따라 오늘날 여러 방면에서 가르쳐진 히브리 종교의 잘못된 부분을 표현해 주고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과격한 새 개념을 소개한 사람들도, 또 그들이 그런 개념을 소개한 사람들도 역시 거기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선지자들 자신도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청중들도 모두가 그들이 전달하고 있던 것은 모세의 하나님의 메시지였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시골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조상들의 하나님께 소환시키려고 했다. 어떤 새로운 신에게가 아니라 바로 시내산의 하나님이요 출애굽의 하나님께 소환시키려 했다. Lewis Browne은 만약 그가 더욱 새롭고 개화된 혁신적인 선지자들에 의해서 뇌성과 연기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부터 거두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사야 24장, 34장, 63장 등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사를 선지자들이 강조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기 위해서 문서설 학자들은 두세 개의 본문을 인용하고, 그들 나름의 특수한 방법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전 8세기 및 7세기의 대선지자들은 어떤 종류의 피 제사(blood sacrifice)이든 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께 접근하는 어떤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그런 제사가 모세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문단은 다음과 같이 4개의 문단이 있다.
아모스 5장 21-2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40년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문서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이 질문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출애굽 하여 방랑하던 중 하나님께 희생과 제물을 드리지 아니했습니다”라는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라고 해석한다. 더욱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아모스의 질문은 액면 그대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그때에 나에게 희생 제물을 드렸느냐? 너희는 부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제사를 드렸다. 모세 시대에도 비밀히 우상을 섬기지 않았느냐!” 이것은 아모스 5장에서 아모스가 전개하는 논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해석이다.
미가 6장 6-8절에 보면 다음과 같다 -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1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미가가 모든 제사의 원리를 부정하며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덕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현대의 자유주의적은 사상을 그 옛날 선지자의 가르침 속에 슬그머니 속여서 집어넣으려는 짓이다. 전후 문맥으로 보건대 분명히 미가는 유대의 예배자들(the Jewish worshiper)에게 있었던 불경건하고 비도덕적인 삶에 따라다니는 종교적 형식주의(religious formalism)를 다루고 있다고 본다. 제단에 바쳐진 풍성한 희생 제물도 마음속의 복종의 결핍을 보충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실지 생활의 윤리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려는 성실한 목적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순종하는 삶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런 제사의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 대신에 위선적인 것을 집어넣는 데 대한 반대이다.
이사야 1장 11-17절은 위와 동일한 종류의 예언이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에 배불렀고 나는 숫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에 대하여 벨하우젠학파 사람들은 피 제사는 허튼 수작(folderol)이니 없애버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가치있는 선행을 하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 해석이 잘못된 것임은 15절에 있는 언급에서 나타난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만약 그 앞에 있는 말이 피 제사를 부인한다는 뜻이라면, 기도도 역시 부인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두 경우에서 꼭 같은 형태로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개화된 현대 자유주의자도 이사야가 기도를 반대했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도는 주관적인 치료법의 입장에서 볼 때만 유익하고 찬양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기도의 타당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손에 피가 묻어 있는 회개하지 않은 악인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악인들은 그들이 기도하는 바로 그 기도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되고 살아 있는 신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와 성일에 관한 이사야의 변명에도 꼭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그런 것들이 모세의 율법에 하나님이 명하신 것들이라는 것을 이사야는 부인하지 않는다.
예레미야 7장 22,23절,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비판자는 또 이렇게 질문한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희생 제물에 대하여 언급하셨음을 부인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P자료는 J,E,D의 보조물로서 기록되지 않았었거나, 혹은 예레미야가 그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단에서 예레미야가 실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분석한다면, 인용된 말들은 출애굽기 19장에서 온 것임을 알 것이다. 이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율법의 첫 부분이 나오기 이전이며, 십계명이 선포되기도 전이다.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아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희생이나 번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유월절 양까지도 제단에 바쳐지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계약의 조건으로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계약에 근거하여 그들과 타협했다. 그 후에 가서야 희생에 관한 규정이 모세에게 주어졌다. 예레미야 당대 사람들은 순수한 경건, 대신에 의식을 대치시켰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희생제단의 속죄의 피에서 죄에 대한 규정을 주기도 전에 하나님의 도덕법(His moral law)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의 예언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희생 제사제도(the sacrificial system)를 정말 시인했음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매우 교훈적인 것이다(17:19-27; 31:14; 33:11,18 참조).
이렇게 해서 문서설을 지지하는 비평가들은 실제적으로 모든 제의적인 조항들을 포로 후기의 제사학파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의 비제의적 법조항들(the non cultic legal provisions of the Torah)을 계약의 책(출 21-23) E 혹은 JE와 함께 나타난 것으로 취급했다. 이런 법적 체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업고 이후 4,5세기에 걸쳐서 경험한 데서부터 발달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이런 법전은 하나의 중앙 성역의 합법성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출애굽기 20장 24절에 의하면 몇 개의 지방의 성역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그러나 더욱 면밀히 검토하여 보면, 이 구절은 많은 제단들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장막(tabernacle)을 위한 청동 제단이 성행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사용된 제단의 형태에 관한 것일 뿐이다. 출애굽기 40장에 기록된 대로 장막은 그 후까지도 완성되지 않았고 거룩하게 지어진 제단이 사용되었다. 중앙 성역에서 제단을 쌓는 것이 곤란한 곳에서는 형편에 따라서 제단을 쌓는 원칙이 있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갈멜산상에 제단을 쌓았다(왕상 18:31). Allis는 그의 저서, <모세의 오경>에서 말하기를, 출애굽기 20장 24절을 번역할 때에, “내가 나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이라고 했는데 이보다는, “모든 곳에서”, 즉, 팔레스틴 모든 장소에서라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뻔하였다. 그렇다면 그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도록 하는 거룩한 땅이면 그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그들을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이 된다.
일반적으로 문서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요시아왕이 집권하기 이전에 많은 지방 성역들이 이스라엘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들을 금지하는 모세의 법이 없었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고 한다. 그와 같은 법이 있었다면 물론 그들은 지켜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주전 621년 요시아의 개혁 이후까지도 우상을 섬기는 높은 지역이 유다에 계속 남아 있었다는 부정 못할 사실 때문에 침해를 당하지는 않는다(겔 6:3 참조). 비평가들은 그 지방의 성역 이외에 모든 다른 성역들을 금지하는 모세의 법이 요시아 통치 시대에 엄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아의 세 번째 계승자인 시드기야 시대에 높은 지역(the high place)이 이용되었다. 이 경우에, 벨하우젠 학파 사람들은 이 법은 그 조항이 제정된 이후에도 적용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되고 난 다음에도 지방의 성역들이 계속 사용되었는가? 그 전의 몇 세기 동안은 이와 같은 경우와 달랐어야만 했는가? 대체로 말해서 법들이 단순히 경시되었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은 모두가 너무 나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을 기초로 하여 논리를 전개한다면, 오늘날 미국에서 간음을 막기 위한 법이 현존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방의 성역에 대한 모세의 금지법이 관한 한 다음과 같은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신명기조차도 그곳에서만 희생물을 드려야 한다는 하나의 거룩한 수도를 선택하는데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실 때까지 여호와에 대하여 지방 제단을 쌓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명기 12장 10,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 주위에 있는 모든 적들로부터 안식을 주신 후에는(그런데 이런 일은 다윗의 통치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예배처소를 선택해주셔서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제의적인 목적으로 그곳에 모이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E(출 20:24)와 D(신 12:10,11)는 서로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상을 섬기던 높은 장소나 혹은 여호와를 섬기던 높은 장소까지라도,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된 후에 히브리 기록에 언급된 곳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이와 같은 장소는 항상 모세의 율법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말해지고 있으며, 유다의 왕들은 모두가 높은 장소를 철거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서 판단을 받고 있다. 한편, 출애굽 시대에 예배의 중심지에 대한 언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23장 17절에 보면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여호와 앞에 나타나야 했다. 즉, 유월절(Passover)과 오순절(Pentecost)과 장막절(Tabernacles)엔 여호와 앞에 나타나야 했다. 이런 이론에 대해서는 J마저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제시해 준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사람 자신의 지방 산당에 나타나야 한다면 이런 규정에 대한 것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JEDP가설에 의하면 오경의 최초의 계층(stratum)마저도 여호와께서 예배의 중심지점을 지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시켜 주목해야 할 것은 벨하우젠 학파는 모세의 장막을 제사학파가 꾸며낸 공상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장막과 같은 구조는 전혀 없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단지 그 장막이란 제사학파에 의해서 고안된 것인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모세의 승인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장막에 대한 모든 언급은 자연히 오경에서 P에 해당되고, 도한 여호수아, 사사기와 사무엘서에서 장막에 대하여 언급한 성경구절들 역시 P에 해당한다. 장막에 대한 모든 언급은 제사학파에 해당되는 것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에, 이런 비평가들이 포로 이전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장막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만만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그 증거를 객관적으로 다룬다고 하기 보다는 단지 절차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요시아 시대까지 중앙의 성역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는 이론에 대하여 더욱 집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열왕기에 포함되어 있는 요시아 전 시대의 기록을 긍정적으로 지적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분명히 솔로몬의 헌신적인 기도는(특히 왕상 8:29,30), 이 성전과 성전의 제단에 대한 독특한 타당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솔로몬 시대에 신앙심이 깊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예배처로서 합법적이고 적절한 장소였던 것처럼 보인다. 히스기야 시대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 시대는 요시아의 개혁 전의 황금 세기로서, 히브리 기록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자기가 통치하는 지역 전반에 걸쳐 지방 산등에서 희생과 예배를 드리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의 독특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히스기야의 개혁을 요시아 부흥의 가공적 원형(a fictitious prototype)으로 취급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어떤 비평가들도 이와 같이 취급한다. 예루살렘을 위협과 담판으로써 정복하려고 시도한 산헤립에 대한 기록은 그 역사성에 있어서 대단히 상세하고 수긍이 갈 만한 것이다. 유대의 사신과 담판을 할 때에 앗시리아의 사령관은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기대하지 못하도록 애를 쓰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왕하 18:22) 예루살렘 성전을 독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히스기야의 강제적인 의도에 부수되는 것으로서 나타나는 바는 하나의 극히 높은 질서를 확실히 증거해 주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산헤립의 침략에 대한 이야기의 진실성을 다른 방법으로는 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제사적인 장식으로 설명해 버리기는 힘들다.
이런 견지에서, 주전 850년과 600년 사이의 JE와 D안에 있는 법조항의 연대를 결정하는 방법에 있어서 대단히 난해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이에 관하여 George Mendenghall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계약 법전(출 21-23-JE)에서 보다 가나안 문화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을 더 많이 알려 주는 어떤 법전을 생각하기는 힘든 일이다…가나안의 도시들은 대부분 사회 계층이 엄하게 분리되어 있었다…계약법전은 사회 계층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언급된 노예들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amah)나 ‘부인노예’로서 팔리는 딸의 경우이다. 이 딸은 법적인 보호를 강력하게 받았다…계약법전의 법률들은 관습과, 도덕성과 군주정체 하에서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의무를 반영한다. 그것은 경우에 따른 법률과 필연적인 법률이 섞여 있는데 이것은 헷 자료의 계약에서와 메소포타미아 법전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본래 독립된 문학적 자료들로부터 후대에 인위적으로 저작된 것이라고 가정을 하는 연구에 의하면 역사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솜씨(rational ingenuity)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Mendenhall은 오경의 법들(Pentateuchal laws)은 가나안 정복 이후에 계속적으로 생기게 되었음이 틀림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야의 유목 생활보다는 정착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모세 법전에 분명하고도 확실히 나타난 모세 법전의 목적을 간과하고 있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이 약속받은 땅을 정복하고 정착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침서였다.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를 통과하는 도중에 지침서가 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세의 법은 J문서와 E문서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전 시대(the pre-Prophetic era)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문서설의 주창자들의 견해에 대해서 Mendenhall은 다른 각도로 흥미있는 관찰을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고대 셈족의 성문 법전은 실제적인 재판 절차에서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대 바빌론의 법문서는 함무라비 법전이 기록되고 난 다음에 생긴 것인데, 이것은 한 번도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믿는 바 대로 이스라엘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면, 예언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역사적인 작품에 있는 법전으로 편찬된 법(the codified law)에 관한 언급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법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1-23장과 같은 계약의 책(the Book of the Covenant)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와 같은 주장은 자연히 명백한 거짓말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함무라비 법전이 함무라비 당시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보존되어 내려왔다고 할지라도, 함무라비 법전의 선재적 존재를 반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J도 E도 모두 다 이스라엘의 군주정체에 대한 것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는다. 거기에 보면 어느 곳에나 열 두 지파가 한 왕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한 민간의 지배는 창세기 49장 10절(J)에서 발견된다는 예언자적 암시가 있을 뿐이다. “홀(the scepter)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것은 J가 기록된 형태의 글을 발견하기 전에 3세기 동안 그 나라가 군주국으로 존재했었다는 가정과 일치하기 대단히 힘들다. D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미래에 나타나리라는 것에 관한 구절이 두세 개 있을 따름이다(신 17:14-20). 그러나 여기에서도 한 왕이 정해진다는 것은 희미한 우연성이라는 인상을 준다. 포로 후기의 문서인 P는 왕실 제도에 대한 암시가 없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400년 이상 선택된 다윗의 계통이 통치했다는 가정과 부합하기 힘든 일인 것처럼 보인 분명히 제사직(priesthood)의 설립에 대한 모세의 권위를 다루는 저자는 누구나 왕직(kingship)에 대해서도 모세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다윗 왕조의 신적이 권위를 믿은 애국적인 유대의 저자는 누구나 그것을 조용히 간과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군주에 의해서 지배된 고대 근동의 다른 여러 나라의 법전에는 모두 그 나라의 왕의 책임과 대권(prerogatives)에 관하여 언급할 것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P와 E가 히브리 왕실에 대하여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은, P와 E가 기록되었을 때에는 아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어떤 왕도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J와 D안에 있는 독립된 예언도 이와 비슷한 결론과 연결된다. 즉, 문서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군주시대에 씌어졌다면, 왕권을 포함하는 규정들은 필연적으로 이들 “문서들”의 천(fabric)을 통해서 짜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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