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말씀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만큼 믿음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카 롯은 어떨까요?
롯은 별로 믿음이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말씀하실 때에도 뭔가 빨리빨리 수습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저주저하고 느릿느릿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면, 분명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 땅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하고 롯에게 빨리 여기를 떠나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롯은 지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5-16절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천사가 롯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아예 손을 잡아서 강제로 롯과 그의 가족들을 성 밖으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천사가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빨리 도망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또 롯이 아이고 내 주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저 산은 너무 머니까 가다가 재앙을 만날 수 있으니 여기 가까이 있는 성읍으로 가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천사가 알겠다고, 거기로 가도 괜찮으니 빨리 도망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롯이 들어가게 된 곳이 바로 오늘 본문 23절에 나오는 소알이라는 성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신 말씀과 같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향해서 심판을 내리십니다.
23-25절의 말씀입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롯의 아내는 그렇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뒤를 돌아봅니다.
그래서 결국 소금 기둥이 되지요.
26절의 말씀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왜 롯의 아내가 돌아봤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좋은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직 그 땅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금기둥이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자, 이러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경험한 사람은 롯만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삼촌인 아브라함도 역시 이 사건을 목격하게 되지요.
27-28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 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그대로 성취되었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으로만, 약속으로만 하고 계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러한 사건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계속해서 29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자, 여기서 롯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죠?
롯 자신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잘 되고 성공을 하면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잘 안되면 남들 탓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우리의 속담 중에는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롯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자신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덕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덕분이었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어른들이 흔히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 키워 놓으면 자기들 스스로 컸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저도 저희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혼자 큰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헌신과 도움이 있었기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까지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누군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었고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하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자, 롯이 별로 믿음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30절부터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30절 말씀입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롯이 소알에 거주하려고 하다가 두려워하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두려워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롯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롯을 두려움에 몰아넣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그리고 그 성읍의 사람들에게 당했던 핍박, 아내의 죽음, 그리고 또다시 소알에서 이방인으로 정착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 등등.
이 모든 상황이 롯에게 두려움을 줬을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처음에 천사가 이야기 했던 대로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거기서 말도 안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롯의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자녀들을 낳게 된 것이죠.
막장도 막장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지요.
31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어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롯의 딸들이 결혼할 사람이 진짜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롯의 삼촌이 되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있죠.
그러니까 그 집안과 통혼을 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왜 롯이 아브라함을 찾아가지 않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롯의 딸들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롯의 딸들은 이런 것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당연히 소돔과 고모라겠지요.
롯의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면서 그들의 악한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대로 행동하는 것이죠.
이들을 통해 모압과 벤암미라는 자녀들이 태어나는데 결국 이들은 역사에서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됩니다.
이와 같이 롯은 뭔가 신앙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영향이 아내의 죽음, 자녀들의 타락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조카가 되는 롯은 왜 이렇게 신앙이 좋지 못했을까?
그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인데 말이죠.
그 이유는 롯이 신앙 안에서 홀로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롯의 개인 신앙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헤어진 후가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롯이 살았던 땅이 어딥니까? 죄악과 타락이 극에 달한 소돔과 고모라 아닙니까?
그러니까 신앙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충분히 하나님 안에서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절대로 이겨낼 수 없는 그런 곳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롯은 신앙의 홀로서기에 실패하여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홀로서기를 잘 해야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요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합니다.
우리랑 많이 다르지요. 우리는 성인이 돼서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데요.
유대인들은 13세 이후에는 성인으로 취급을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부모가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들이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은 딱 13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부모들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말씀 교육을 시킵니다.
이 때에 말씀 안에서 신앙으로 홀로서기를 해야지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도 신앙의 홀로서기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부모님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좋은 교회에 소속이 되어 있다고 내 믿음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해서 내 믿음이 그들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공동체를 떠나 혼자 있을 때에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이것이 바로 나의 신앙의 수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연단하고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하나님을 선택하여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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