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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말문 / 말미 / 말석 / 말세

말문(the horse gate)
예루살렘 성전 성벽에 속한 문으로 밖으로는 기드론 시내에, 안으로는 궁정 지역에 이르게 되어 있다. 성전 지역 동남쪽 모퉁이를 향해 나 있는 예루살렘 성문으로(렘31:40) 느헤미야에 의해 복구되었다(느3:28). 왕후 아달랴가 살해된 곳으로 여겨진다. '마문'(공동번역 '군마 출입문')으로도 번역되었다(왕하11:16;대하23:15). <참조> 마문

말미(permission)
직업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 휴가를 뜻하는 말로, 요청과 부탁의 의미를 갖는다. 느헤미야가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에게 말미를 청하고(공동번역 '허락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내용에 사용되었다(느13:6).

말석(lowest room)
맨 끝자리, 일터나 모임에서의 지위의 끝, 자신을 낮추어서 말하는 자리를 가리킨다. 유대인의 연회석은 ㄷ자형으로 뱅려되어 있고 상좌는 그 세면의 중앙 부분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와 잔치를 베푼 자에게 주신 교훈에서 이 말을 사용하셨는데, 여기서 말석에 낮는 것은 겸손을 의미하였다(눅14:9-10).

말세(last days)
1. 원어적 고찰. 히브리어 '아하리트'는 체제하다, 지연되다는 의미의 '아하르'에서 파생된 말로 뒷부분이나 끝 또는 시간적인 미래를 가리킨다. '말세'는 이 말에다가 날을 나타내는 '야밈'이 합쳐진 하나의 구를 이루고 있는데 이 때는 일반적인 미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히 종말적인 최후의 날을 가리킨다.
말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헬라어는 크게 세가지인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에스카토스'이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인 마지막을 가리킨다. 그러나 종말론적으로 이 단어가 사용될 때는 예언서에 언급된 주의 날 개념에서 파생된 시간적인 마지막을 가리킨다. 그 외에도 결정적인 시점이나 가장 적절할 때 그리고 최후의 심판의 때를 나타낼 때 사용된 '카이로스'나 종말론적 결과나 마지막을 의미하는 '텔로스'가 있다.
2. 성경적 고찰. 개역성경 구약에서는 말세라는 말이 신명기 31:29에서 단 한번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종말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미래를 가리킨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대부분이 종말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약5:3;벧전1:5,20), 바울은 말세에 나타날 징조로서 도덕적인 타락과 종교적인 타락 그리고 개인적인 패악을 비롯한 세상의 부패상을 언급하고 있으며 베드로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웃과 불신한다고 하였다(벧후3:3-4). 한편 사도행전 2:17에 언급된 말세는 요엘서에 나타난 사상의 반영으로 메시야 시대를 의미한다.
3. 말세론(종말론, ESCHATOLOGY) :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에 대한 학문의 한 분야를 가리키는 말.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된 역사의 마지막 때에 관심을 갖는다. 영어 단어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는 헬라어 에스카토스와 로고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지막에 일어날 일에 관한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 저주.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응답하셨다. 이 죄악과 불의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 세계를 저주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 22:3은 더 이상 심판이 없으리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창세기 3장과 계시록 22장 사이에 있는 내용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미 내리셨던 저주를 뒤엎으시며, 그의 피조물을 구속하시려 했던 애타는 노력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종말론이 구원론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종말론은 역사의 마지막이 어떨지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분리하심으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던 생각을 왜 바꾸셨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 때문에 이 땅에 오랜 기간 동안 갈등이 있었다. 결국 하나님이 최종적인 행동을 하시게 될, 갈등으로 가득차 있는 이 과정은 에덴의 동산으로부터 계시록까지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홀로 피조물들을 저주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그 저주로부터 피조물들을 회복시키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날이라고 하는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저주와 저주로 말미암은 갈등을 해결하시기로 이미 결심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의 역사 속에는 주의 날이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 날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놓이게 될 날이기도 하다(암5:18-20;욜2: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마지막 준비 작업이다(시110:1;행2:34-35).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원수들을 패배시키시고 지상에서 다스리게 되실 날을 기다리며, 그리스도께서 영적 통치를 하시는 가운데 살고 있다.
(2) 후손 사이의 갈등. 이 과정은 궁극적으로 성경의 처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하나님의 대적들이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창3:15). 두 후손 사이의 갈등은 성경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안내서와 같은 구실을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지침을 준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있게 될 장래 모든 갈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요일3:10-11;갈4:28-29;빌2:5-8). 이 갈등은 육체와 영혼 사이의 갈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갈5:16-17;고후11:3,14;롬16:20). 마지막 때에 있을 전투는 선과 악의 세력들 사이에서 태초부터 시작되어서 긴 시간동안 계속 될 전투의 결정이 될 것이다.
(3) 홍수. 전 지구상에 걸친 노아시대의 홍수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심판이 표현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조물을, 깊음을 덮고 있는 물들의 혼돈과 어둠 속이라는 창조 이전의 원래 상태에 몰아넣으셨다(창7:17-24).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된 그의 종 노아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다. 비록 이런 특별한 하나님의 분노가 반복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억은 무지개와, 피조물들이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두려움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다(창9:1-17). 홍수는 장차 있을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표시가 되었는데, 그것은 불로 대치될 것이다(벧후3:5-9). 첫 하늘과 땅은 결국 다 없어질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은 온 우주가 불타오르는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이다(벧후3:10-13).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마지막 때 따시 오셔서 하실 심판을 홍수와 노아의 세대라는 용어로 설명하셨다(마24:36-44).
(4)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 역사의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브라함의 계약은 성경에 나타나는 갈등이 주의 날이 되면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고 후손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다(창12:1-3). 이 두가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결과로서, 히브리인들에게 약속된 고유한 축복이기도 하다. 작은 민족(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의 경계 안에서 시작된 사건이, 전 인종과 전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되었다(행3:25-26). 종말론은 아브라함의 땅이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며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새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를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며 그를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12:3,17). 이것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축복과 저주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에 대한 응답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된다. 지옥은 궁극적인 저주이며 천국은 궁극적인 축복이다.
(5) 아브라함의 후손.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개념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관련되었던 많은 사건들 속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께서 이집트에게 내리신 역병(창12:17)은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에 내리신 역병의 전조가 되었으며(출7-12장), 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역병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계8-9장).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나 롯을 사로 잡아 갔다가 아브라함에게 패배한 사람들은(창14:1-17),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던 시기의 마지막에 앗시리아와 바벨론을 파멸시키신 사건의 전조가 되며(사13-14장;단5:13-31),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마지막 때의 이교도들이 멸망하는 것의 전조가 된다(계17-19장).
주의 날에 있을 분노의 다른 전조가 되는 것은 언약궤 위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일곱번 나팔을 불자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수6:13)과, 계시록에 있는 일곱 나팔소리와 함께 나타날 심판이다(계8:2-9:21;11:15-19).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이처럼 다양하게 멸망당한 것을 볼 때 주의 날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원수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막5:19;눅8:31)도 역시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실 것의 전조가 되었는데(유6절;벧후2:4;계20:10), 그 타락한 천사들은 주의 날이 되면 전부 무저갱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6) 마지막 심판. 마지막 때가 되면, 심판의 질서 아래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던 갈등은 끝날 것이다. 큰 박해의 때가 있은 후에(마24:4-6), 재림이 있을 것이며(24:27-30), 열방들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될 것이다(25:31-46;고전15:20-24). 주의 날 모든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에게 심판이 내려짐으로써 세상에 주어졌던 저주가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불로 심판될 것이며(사66:16), 모든 나라들이 이 심판에 포함될 것이다(암1:3-2:3;겔25:1-17). 주님께서는 그가 오실 때까지 살아 있던 자들에게 주어질 심판에 대하여(마25:31-46) 설명하셨을 때, 인간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될 양과 같은 사람들과 영원한 벌을 받게 될 염소와 같은 사람들로 구분하셨다. 이런 구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수 비유에도 표현되었으며(마13:38,43;계14:14-20), 물고기 그물에 걸린 좋은 생선과 좋지 않은 생선의 비유에도 나타나고 있다(마13:47-50).
일반적으로 '크고 흰 보좌'라고 불리는 또 다른 심판이 계시록 20:11-15에 그려지고 있다. 이 심판은 두번째 죽음으로 불리운다(계20:14). 심판을 받게 될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다면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있게 될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운 자들(눅14:13-14;계20:6)과 불의한 자들(요5:29;계20:5)이 부활한 뒤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부활이 모두 성경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이 부활 사이에는 1,000년의 기간이 있게 될 것이다(단12:2-3;계20:4-6).
(7) 구세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사람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구원사건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구원사건에는 여인의 후손이라고 막연하게 정의되어 있는데(창3:15), 이 사건은 긴 갈등이 끝난 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구세주를 보내 주심으로 시작되었다. 종말론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가 이 반역의 땅에 그의 나라를 어떻게 세워 나갈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를 섬기게 하셨던 긴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다"(마1:23). 이사야 7:14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인류를 구원하고 심판하기 위하여 예수 안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말하고 있다(사9:6-7).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으며(막10:45) 그의 재림은 근본적으로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오심으로 신실하게 남은 그의 백성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종말론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계21:3)에 거하시게 될 예수의 재림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8) 십자가. 십자가야말로 결정적인 종말론적 사건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의 본노가 바뀌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점차 하늘과 땅의 사악한 세력들을 심판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시편 110:1은 종말론의 구원론적인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왕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원수를 패배시키실 때까지 다스라실 것이다. 그는 다시 재림으로 통치하기 위한 최종적인 준비를 시작하실 것이며, 선택한 자들을 자기에게 모으실 것이다. 주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을 높이 드실 것이며(롬14:10;고전3:14-15),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대가를 얻게 될 것이다. 저주가 바뀔 것이며, 아브라함의 계약이 성취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의 모든 차별은 철폐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교제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종말론의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마24:13;고전15:58). 종말론에는 쓸데없는 사변이나 논쟁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서 그를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참조> 하나님의 나라,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