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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성경사전

(성경사전) 에셀나무 / 에셀바위 / 에셈 / 에스겔 / 에스겔서

에셀나무 tamarisk tree

깃으로 덮인 듯이 보이는 길고 가는 가지에 비닐 같은 잎이 착 달라붙어 있는 위성류(渭城柳)의 관목으로서, 봄이 되면 나무에 백색 혹은 분홍색 꽃이 핀다. 아라비아어 명칭으로 '아틀' 또는 '타르파'로 불리우는 것이 팔레스타인에 8종 이상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주로 시내 사막 모래 언덕이나 연안평원, 요단 유역 등지에서 자라고 있다.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은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21:33), 다윗을 쫓던 사울은 기브아에서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삼상22:6, 한편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벧산 성벽에 못박혀 있던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의 시체를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이 취하여 가지고 와서 야베스의 이 이 나무 아래 매장하였다(삼상31:13), 역대상 10:12에서는 이 나무의 이름을 상수리 나무로 기록하고 있는데, 아마도 단단하고 수명이 긴 이 상록수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상징하는 거룩한나무로 간주된 것 같다(창21:33). 이 나무는 주로 성소,분묘, 회의소 같은 장소와 함께 등장한다.

에셀바위 stone Ezel

사울로 인하여 죽을 고비를 여섯번씩이나 넘긴 다윗이 월삭 축제에 즈음하여 또다시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요나단이 사울의 심중을 정확히 알고 난 후에 소식을 전해 줄 때까지 다윗에게 숨어 있으라고 지정했던 궁정 근처 들판에 있던 바위 이름이다(삼상20:17-24).

에셈 Ezem 

유다 지파가 영토 분배시얻었던 기업이었으나, 후에 시므온 지파에게 재분배된 에돔 국경 근처의 성읍이다(수15:29;19:3;대상4:29).이곳은 브엘세바에서 북쪽으로 4km 지점에 있는 '보웨이다'에서 '에르-레므타'로 가는 길의 북동쪽 작은산에 위치한 '움 엘-아셈' 으로 추정된다.

에스겔 Ezekiel

바벨론 포로초기에 활동했던 대선지자로 에스겔서의 저자이다.사독 가문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었다(겔1:3). 그는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B. C. 597년, 느부갓네살 제8년에 있었던 바벨론 포로 때에 다른 귀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이송되어(왕하24:1417;겔1:2;33:21) 바벨론의닙푸르근처 델아빕에서 살았다(3:15). 그곳은 사로잡힌 사람의 대부분이 정착했던 곳으로 납푸르를 지나에렉으로 흐르는, 느부갓네살 왕의 수로로 확인된 그발 강변에 위치한다. 스가랴(슥1:1;느12:12,16)나 예레미야(렘1:1)와 마찬가지로 에스겔도 제사장임과 동시에 예언자였다.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제5년, 즉그의 포로 생활 5년째 되던 해에(B. C. 592) 포로된 땅바벨론에서 소명을 받고, 이후 약 22년 동안 예언 활동을 하였다(겔1:2;29:17;33:22;40:1).
에스겔의 사역 기간은 크게 두 기간으로 나뉜다. 그첫번째 기간은 B. C. 592-586년 사이로 예루살렘을 향해제시되었던 이 기간 동안의 메시지는 유다의 멸망과예루살렘의 붕괴, 솔로몬 성전의 파괴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유다를 회개시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반복적인 경고와 상징적인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한 해 (B. C. 586)로부터 시작되는 두번째 기간은B. C. 570년까지(겔 29:17)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진하였다. 이 두 사역 기간에는 13년의 시차가 있는데, 그는 B. C. 585년 4월(겔32:17) 이후부터 그의 두번째사역이 시작되는 B. C. 572년 4월까지 하나님으로부터말씀을 받지 못하였다(겔40:1). 그 사이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리라는 설이 있기도 하나 이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는 예루살렘이함락될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겔33:21-22).

에스겔서 The Book of Ezekiel

구약성경 가운데 26번째 책이며, 히브리 원전에서는 후기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선지서)의 세번째에 해당되는 책이다. 에스겔이 받은 계시와 이상(異像)들이 기록된 책으로 기록한 선지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 역사적 배경. 본서의 역사적 배경, 즉 에스겔의사역 기간은 유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참혹한 시기였다. 에스겔 당시의 사건들이 에스겔에게 끼친 깊은인상 때문에 에스겔서에는 역사적 상황이 생생하게묘사되고 있다. B. C. 722년, 당시 근동 지방의 패권을장악했던 앗수르의 사르곤이 북왕국을 멸망시키던 해에 앗수르는 유다도 함께 침공하였다. 유다에 대한앗수르의 지배 기간은 실제적으로 이때부터 시작된셈이다. 비록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유다는 앗수르인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당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B. C. 605년 유브라데 강변의 갈그미스 전투를 통하여 느부갓네살 치하의 바벨론 세력이 우세해진 반면 유다의 위치는 급격히 약화되었다. 같은 해에 다니엘과 일단의 무리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 이는 첫번째 바벨론 유수였으며, B. C. 597년에 두번째 유수가뒤따랐다. 그때에는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재침공하여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많은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데려갔다(왕하20:10-17), 이때잡혀간 사람들 가운데 에스겔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느부갓네살에 의한 세번째 유다 포로 사건은B. C. 586년 예루살렘 성과 성전 및 남유다 전체가 파괴당했던 해에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에스겔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급한 시대와 관련되어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에스겔은 연대를 바벨론 포로 생활의 햇수에 근거하여 적어가면서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다. 에스겔은 그가 바벨론에서 포로되었던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멸망 및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본서의 저술지에 대해서는 에스겔이 활동한 장소로 보기도 하나 학자들 사이에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 에스겔서 자체에 근거한 전통적 견해는 에스겔의 활동 장소가 바벨론의 델아빕(겔1:1)이라고 한다. 하늘이 열리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던 곳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몇몇 비평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은 에스겔이 예루살렘에서 예언했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이들은 에스겔의 사역지가 바벨론과 예루살렘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예루살렘에 관한 본서의 묘사들이 너무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기록자가 책에 묘사된 사건과 장면들의 인적 목격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겔11:1-13). 그러나 이것은 영적 활동의 실제성을 무시한 태도이다(겔8:1-3:11:24;24:1-2), 더 나아가 에스겔의 전(全) 예언 활동이 바벨론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가능한 일이다. 바벨론 포로인들과 예루살렘 공동체 사이에는 밀접한 연락이 있었다(렘 29장). 따라서 바벨론에 있는 어떤 예언자가 유다에 있는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예언을 전달하고 상징적인 행동들을 연기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2. 주제. 에스겔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초월성'이다. 포로 중에 있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고,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는 데 의로우시며, 팔레스타인 안에서의 신적 사역에 충실하실 뿐 아니라 멀리 이방인들에게서 멸시받는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왜당신의 백성을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는지에 대하여 증거하려 하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온 집과 열방들이 자신을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는 데' (겔 6:7-39:28에서 30회 이상 거듭되어 나온다) 있었다.
3. 내용. 이 책은 두 개의 중요한 내용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소식에 근거한다(겔24:1-2;33:21), 1-32장은 주로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악행에 대한 책망과 주변 국가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며, 33-48장은 미래에 '남은 자'에 대한 약속이다.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 1:1-3:27
(2) 유다의 죄에 대한 예언(예루살렘 함락 전, B. C. 592-588) 4:1-24:27
(3) 인근 백성의 형벌에 대한 예언(B. C. 587-585. 단 29:17-21은 B. C. 571년에 기록) 25:1-32:32
①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에 대한 예언 25:1-17

② 두로와 시돈에 대한 예언 26:1-28:26
③ 애굽에 대한 예언 29:1-32:32
(4) 그들의 땅에서 회복될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과 이상(B. C. 585-573. 예루살렘 몰락 후) 33:1-48:35
① 그 땅과 백성의 회복과 영적 갱신의 여러 단계 33:1-39:29
② 영광스러운 땅에서의 미래의 성전과 예배의 이상 40:1-48:35
에스겔서는 다른 예언서들과 비교하여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특색이 발견된다. 첫째, '죄책의 개인성' 이다. 에스겔은 개개인의 책임 내용을 제시한 첫번째 예언자였다(18:1-32;33:1-20). 그는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보는 잘못된 죄책감에 대하여 죄의 심판은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둘째, '묵시적 계시 표현' 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 또는 종말론적 시대에 대한 강조와 잦은 환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요한계시록의 상징과 개념의 상당수는 에스겔서에 의존하고 있다(계1:15-겔1:22-28;계20:8-겔38-39장). 셋째, 표현이나 논리의 전개가 제사주의(祭司적으로 치밀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대순(겔1:1-2;8:1;20:1;24:1;26:1;29:1;31:1;32:1;40:1), 숫자, 양, 미터법까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제사적 규정 등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넷째, 에스겔서가 율법을 중시하는 회당 제도의 기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와 바벨론 포로라는 현실은 성전 예배에 대치할 만한 예배 형식을 필요로 하였다. 포로된 땅에서 백성들은 에스겔의 휘하에 모여 율법을 접하게 되었고, 이방 땅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후기 유대교의 회당 제도의 발단이라고 생각되는 종교 사상에 감화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