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긍휼
예수님 당시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나약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약자들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긍휼을 베푸는 것을 영혼의 질병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로마의 철학자는 '긍휼은 영혼의 질병'이라며, 약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설명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인간을 '살아있는 연장'으로 보며, 노예나 약자를 인간으로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는 일할 수 없게 되면 가차없이 버려졌고, 심지어 변이 없는 노예는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냉혹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살아가셨습니다.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긍휼 부족
로마인들의 경우, 콜로세움은 많은 이들에게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그곳은 또한 인간이 짐승처럼 죽어가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당시의 사회는 극히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듯,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유대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약자들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태도를 보였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비난하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와 긍휼
오늘날의 사회도 예수님이 살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냉정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고, 우리는 종종 그러한 세상에 동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팔복에서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은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르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팔복의 정신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은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의 정신과 공감 능력
팔복의 다섯 번째 구절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긍휼의 정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긍휼이란 단순히 감정적인 동정심을 넘어서, 약자와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공감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낄 때, 긍휼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약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계속되는 긍휼의 행진이었고, 그분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들을 돕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행위로 나타나는 긍휼
긍휼은 단순히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며, 긍휼이란 마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치료하고,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으로 긍휼을 느끼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긍휼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긍휼이 바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긍휼의 정신을 회복하고, 그것을 마음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냉정하고 이기적인 면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긍휼을 실천하는 삶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길이며,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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