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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모음/송태근목사님

[누가복음 강해 시리즈] 52강 예수님의 눈물 | 누가복음 19장 41-48절 | 송태근 목사님 | 삼일교회 | 설교문 강해 녹취록 요약 정리

누가복음 19장에 대한 깊은 이해

누가복음 19장이 끝났습니다. 사실 19장은 다소 어려운 장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설교 후, 여러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중 예수님이 나기를 타고 입성한 의미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나귀 입성을 겸손한 모습으로만 이해하는데, 그 의미는 단순히 겸손함만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나귀 입성의 진정한 의미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는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고, 옷을 깔아 왕을 맞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겸손의 표상이지만, 단순히 겸손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나귀 입성은 스가랴 9장 9절에서 예언된 대로, 왕으로서의 입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은 단지 겸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로마 정권과 바리새인들의 반응

로마 정권은 예수님의 입성을 어떻게 봤을까요? 로마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왕으로서의 위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권력을 상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로마 정부가 보기에 웃음을 자아낼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자로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왕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를 반역자로 몰지 못하고 결국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성들의 기대와 실망

예수님의 입성 당시 백성들은 그를 구세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해방과 사회적 억압의 해결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바라바는 당시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백성들은 그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소망을 이루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과 통곡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곧 겪게 될 참혹한 멸망을 예고하시며 그들을 위해 통곡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그들의 불행한 선택에 대한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눈물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들이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교회는 이제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나누고, 세상을 향한 깊은 공감과 기도의 자세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결론: 평화의 의미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대해 ‘평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었던 평화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해결을 바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평화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의 평화가 아닌,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평화는 세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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