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서의 첫 번째 대형 연구 과제
교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부에서 발주한 대형 연구 과제가 있었습니다. 이 과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과 함께 컨소시엄을 만들어 진행하는 프로젝트였죠. 저는 이 과제의 연구 책임자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아 매우 열정적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지지와 기대 속에서 지원서를 제출했죠. 심사 과정이 1차, 2차, 3차로 나누어져 있었고, 3차 심사에서는 외국 교수님들과 직접 인터뷰가 필요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부탁드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 첫 번째 탈락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리 1차 심사에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아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주변 교수님들이 기대했던 만큼, 이 실패가 제게는 매우 창피하고 무거운 감정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실패의 원인을 '수도권 대학에 있다 보니 떨어진 것 같다'고 스스로 변명하며 그 감정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아들이 놀아 달라고 했습니다. 장난감을 조립하며 함께 놀던 중, 제 아들이 '아빠 바보야'라고 말하자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 순간, 그 감정이 수치심을 숨기기 위한 분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 감정의 미묘한 차이
그 후, 상담 학자로서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수치심'은 'Shame', '죄책감'은 'Guilt'라고 표현됩니다. 이 두 감정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그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죄책감은 주로 과거의 행동에 대한 후회나 자신을 탓하는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죄책감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수치심을 표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릭슨의 발달 이론과 수치심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분하는 중요한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죄책감을 '청각적 경험'으로, 수치심은 '시각적 경험'으로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죄책감은 잘못한 행동에 대한 후회나 내적 비판이 나타나는 반면, 수치심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님이 창피를 주기 위해 다른 사람 앞에 내보냈던 경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수치심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내담자들이 수치심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첫 만남에서 내담자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향적인 성격 때문만은 아니며, 어린 시절 부모에게 심한 체벌을 받거나 사랑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기에 수치심을 숨기기 위한 방어 기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담자들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눈을 피합니다.
수치심을 꺼내는 방법: 안전한 관계 만들기
수치심을 효과적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안전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이 관계는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주는 신뢰 기반의 관계여야 합니다. 만약 내가 수치심을 표현했을 때 상대방이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한다면, 그 감정을 다시 숨기게 될 것입니다. 상담이든, 다른 사람과의 대화든,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함께 공감해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결론: 감정을 숨기지 말고 나누는 것
수치심은 숨기고 싶은 감정이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원심력 감정인 분노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그 내면에 수치심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상대와의 관계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상담사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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