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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Gospel

사도행전 7장 설교 -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다릅니다

 

본문 : 사도행전 7장

제목 :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시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대교회의 집사님, 스데반이라는 분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순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탁월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역사 특강을 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일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예수님까지 자신들의 역사 이야기를 쭉 설명합니다.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땅도 없었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열 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열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시고 나중에는 야곱의 모든 가족들이 애굽에 가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왕이 왕위에 올랐고 우리 민족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태어났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세를 통해 우리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들은 때로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리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도록 하셨고 우리 조상들은 그 성막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윗 때까지 성막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이런 성전에 계실 수 없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렇게 성전에 집착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과 같이 성령을 거역하십니까? 왜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메시야 예수님을 죽이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매우 날카롭고도 비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이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마음이 찔렸는데, 회개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참 안타까운 장면이죠.

왜냐하면 이 스데반 집사님은 정말로 훌륭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사도들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집사님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갈릴리 촌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별로 유식하지 못하지요.

반면에 집사님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엄청나게 부흥을 해서 3000명 이상이 되었을 때에, 그 중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뽑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인재 중의 인재인 것이죠.

그런데 이런 훌륭한 스데반 집사님이 너무나도 빨리 순교를 해버렸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스데반 집사님을 이렇게 빨리 데리고 가셨을까요?

 

아니, 앞에 나오는 베드로 사도와 비교를 좀 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스데반이 설교를 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분노해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베드로를 편애하십니까? 

베드로를 더 사랑해서 그럴까요?

아니면 스데반을 더 사랑해서 그럴까요?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하는 것마다 잘되고 복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처럼 말이죠.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하는 것마다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스데반처럼 말이죠. 그러면 스데반 같은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덜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더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 스데반에게 주신 사명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명을 주신 것이고 스데반에게는 순교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이 이 스데반에게 엄청난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바울이 이 스데반의 모습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죠. 바울이 이렇게 날뛴 이유는 사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다 무너져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강하게 부정을 하는 것이죠.

자, 이와 같이 순교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스데반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각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켜가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퍼즐의 조각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꽃 그림이 있는 아름다운 퍼즐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줄기와 같이 덜 아름다운 퍼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퍼즐을 완성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응답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명과 우리의 사명을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왜 저 사람에게 저렇게 하고 나에게는 이렇게 하시느냐?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사명도 다 다르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베드로처럼 열매를 거두는 것이 사명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신나겠지요. 그런데 또 누구는 스데반과 같이 수고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씨를 뿌리는 것이 사명일 수 있습니다. 우리 중의 누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더 많이 받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우리 중의 누구는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기억하시고 하늘에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묵묵하게 잘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