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하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영상인데 어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위한 계획을 다 세웁니다.
기상 시간부터 시작해서 밥 먹는 시간, 그리고 학교 등하교 시간, 학원 가는 시간, 분 단위로 모든 계획을 세워서 아이를 계속 그 스케쥴에 맞춰서 돌립니다.
아이를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부모님들에게는 이런 전설이 떠돈다고 합니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할아버지의 경제력은 아직 부모가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서 필요한 것이고, 아빠의 무관심은 엄마가 이것저것 시킬 때에 따지지 말라는 것이고, 엄마의 정보력은 여기저기서 많은 것을 엄마가 듣고 와서 아이에게 가장 좋은 학원과 선생님들을 붙여주라는 것이지요.
나중에 부모님과 인터뷰한 영상도 있는데요, 왜 이렇게까지 경제적으로 무리하면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시키느냐?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한다고. 혹시나 아이가 여기서 뒤처지면 좋은학교를 가지 못하고 결국 불행하게 살게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아이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부모를 보며 비판을 했는데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공부에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요 제가 그 영상을 봤을 때에는 아이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부모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행복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나중에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본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죠.
자, 우리가 오늘 이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나 혼자 행복해도 될까? 하는 착한 마음에서이고 또 하나는 이런 식의 간증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에 오셔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원래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다 막으시고 사업도 망하게 하시고 건강도 나빠지게 하셔서 저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간증이죠.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목회자가 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의 간증이긴 하지만,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신 10:12-13절 말씀입니다.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죠?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고, 네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라!
저는 옛날에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방금 읽은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보면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 20:5-7절 말씀입니다.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자,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어야, 무엇을 회복해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있을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본론
자, 먼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 행복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당장 내일 이 세상의 모든 믿음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먼저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운전하시는 분들이 음주운전을 하는지, 제대로 운전을 하는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비행기도 당연히 탈 수 없겠지요.
친구를 사귈 수도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의도로 나에게 접근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당연히 결혼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먹는 것?
꿈도 못꾸죠.
음식에 어떤 것을 넣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못갈 것입니다.
의사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희 아내와 함께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진통이 와서 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이가 나올 시간이 안 되어서 밤을 꼬박 새고 아침에 촉진제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간호사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아내가 너무 아파하는데 혹시 뭐 잘못된 것 아니냐고! 이대로 놔둬둬 괜찮은거냐고 막 따져 물었더니 그 간호사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꺼에요."
그 때에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하고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뛰쳐나왔을까요?
아니죠. 그냥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왜요? 제가 그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그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면 당장 뛰쳐나왔겠지요!
그리고 제가 집에 가서 제 아이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병원도 절대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일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현재 일상적인 생활을 지금처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에게는 조금이나마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죠?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은 할 수 없는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빽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떨까요? 아주 든든하겠지요.
만약에 내가 대통령이랑 친분이 있어서 내 어려움을 들어준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든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삶에 어려움이 와도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요? 든든한 빽이 있잖아요. 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통령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빽이 된다면 이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빚을 졌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거든요.
그러면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떨까요?
물론 사업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엎드러지거나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맡길 수 있는 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진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 어떻게 하지요?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안함을 얻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맡길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부족하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나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이라면 더욱 상대방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방을 믿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신뢰가 커질 때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믿어주셨습니다.
베드로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배신한다고 해도 자신은 절대로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믿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자신의 사랑하는 귀한 양떼들을 베드로에게 믿고 맡기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믿어줄 때에 그 사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다른 사람을 믿을 때에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 다음으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은 행복할 수 없겠지요.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일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자꾸 나빠진다면 우리는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데 계속 취업이 안 된다면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데 계속 건강이 나빠진다면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2011년에 삼포세대라는 말이 처음 나왔습니다.
불안정한 일자리, 학자금 대출 상환, 기약 없는 취업 준비, 치솟은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청년층을 이야기합니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소망이 없으니까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요?
처음에 삼포로 시작한 세대가 오포, 칠포, 구포까지 나가다가 지금은 N포 세대라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3포에서 집과 경력을 더 포기하면 5포 세대가 되고
여기에 취미와 인간관계를 더 포기하면 7포 세대가 되고
여기에 신체적 건강과 외모를 더 포기하면 9포 세대가 됩니다.
이게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으니까 그냥 N가지를 포기하면 N포 세대라고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참 서글픈 이야기죠.
우리의 청년들이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소망을 잃어버리고 삶을 포기해버린다는 뜻입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자, 이와 같이 내일을 향한 소망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포기해버리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망해야 할까요?
일단 헛되거나 가치가 없는 것을 소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성취한다고 해도 금방 허무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하고 가치가 있는 것을 소망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확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뭐죠?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천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통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의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미국의 법으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지요.
즉, 그들의 몸은 한국에 있지만 미국 법의 통치를 받는 미국의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이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 것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초대교회가 처음에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굉장히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함께 나누어 썼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모든 재산을 함께 공유하며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주변의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요 정의와 공평과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즐겨 듣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사랑 노래들, 가요들은 대부분 다 사라질 것입니다.
남녀간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부모자식, 친구관계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다 끊어질 것입니다.
당연히 자녀들이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혹시나 태어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신들을 희생하며 자녀들을 키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방치된 채 자라게 될 것이고 온갖 악한 일과 범죄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모두 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불행을 넘어 끔찍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금방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시는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막 12:28-30절 말씀입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받기 원하신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첫째 되는 계명으로 딱!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막 12:31절 말씀입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단순히 옆에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천지만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적 신비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도 존재 자체가 공동체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도 공동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천지만물과도 교제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 회복되어야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하고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삶에서 회복이 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을 회복하십시오.
소망을 회복하십시오.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우리 주님의 뜻을 따라 행복을 누리며 또한 그 행복을 이 세상에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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