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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LL CHURCH/Gospel

6/25 금성설교

 

믿음으로 기도할 때

3:1-6

 

1. 도입

 

오늘은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자기를 보고 죄인이라고 이야기하니까요.

전도를 하면서도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죄인인 증거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왜 죽을까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산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딱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으십니다.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죠. 물론 잠깐 사망의 지배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그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말고 우리는 모두 다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인 피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죄인이 되었을까요?

 

 

2. 본론

 

오늘 본문의 말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두셨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되 딱 한가지 제약만 두셨습니다. 그게 뭐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셔서 이렇게 인간을 죄에 빠뜨리시는 걸까요? 차라리 만들지 마시지.

그런데요,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우리 인간에게 선악과는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매우 교만해졌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가진 능력과 지혜가 엄청나거든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하나님이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도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딱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하나님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이 모든 능력을 주신 하나님,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 이 세상의 진짜 통치자이신 하나님. 선악과를 보는 순간 그 하나님이 생각나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도 인식하게 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청지기이지 하나님이 아니야.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야! 이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선악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선악과가 없었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전혀 거역을 할 수 없는, 시키는대로만 해야 하는 로봇이 되어버립니다.

인형 중에 이렇게 손으로 누르면 달링 알러뷰~ 라고 이야기하는 인형이 있습니다. 내가 너무 외로워서 이 인형을 하나 사서 집에 두고 매일 누르고 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약간의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관계는 전혀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로봇적인 관계를 사람에게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것이 진짜 인격적인 관계이며 사랑의 관계인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런 관계를 원하신 것입니다.

 

, 이렇게 선악과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고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버립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그 죄의 대가로 죽음이 들어오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선악과를 먹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그거 하나 먹었다고 죽음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그냥 좀 넘어가면 안되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게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이 선악과를 먹을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반역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에 ! 너희들은 나를 섬겨라! 나에게 절해라! 나를 숭배해라!’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 너희가 하나님이 되라고 이야기한 것이죠.

,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되면 하나님은 뭐가 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옛날에 왕들이 이 세상을 통치하던 시절에 가장 큰 죄 중의 하나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반역죄입니다.

현재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왕을 몰아내고 내가 왕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반역죄는 어떤 것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보면, 이러한 반역죄를 일으킨 사람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가 이런 죄입니다.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자신들이 왕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받을 수가 없는 죄이죠.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 죄의 형벌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 죽음은 단순히 우리 육체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음 이후에 불못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값을 치르고 나면 깔끔하게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면 죄의 값이 얼마일까요? 좀 비쌉니다.

아니 많이 비쌉니다.

바로 생명 값입니다.

우리의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그냥 다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죽어주면 그것도 인정이 됩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동물 제사가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우리에게 있는 이 죄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동물제사는 어떻게 하죠?

계속 드려야 합니다.

만약에 동물 제사가 우리의 죄에 대한 완벽한 제사라고 한다면 한번 드리고 끝나야지 계속 드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혈압약이나 당뇨약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약은 한번 먹으면 보통 계속 먹습니다.

왜요?

완전한 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혈압약이나 당뇨약이 완전히 병을 치료해주는 약이라고 한다면 한번 먹고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안 먹어도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약을 계속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은 그 약 자체가 완전한 약이 아니라 불완전한 약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러한 약들은 건강이 더 악화 되는 것을 막아줄 뿐이지 완전히 치료를 해주는 약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물제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제사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완전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왜 동물제사가 불완전한 제사일까요?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간 이상의 존재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하게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동물 제사는 우리 죄에 대한 원금은 못 값고 이자만 값는 정도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조건이 더 있습니다.

흠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인간 이상의 흠 없는 존재가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져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그런 완전한 제물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가 있는 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죄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완전한 제사를 드릴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흠 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한 완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신 것이죠.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동물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면 예수님 이후에는 새로운 산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뭐냐?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뭐죠?

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구세주라는 것을 아는 것인가요?

그런 정도의 지식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여 예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어떤 혈루증 걸린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딱한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았는데 그동안 많은 의사를 만났으나 아무도 고치지 못하였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절망에 빠진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하루는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왔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 병이 나았습니다.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상담을 받았다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제가요 12년 동안이나 이 혈루병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좋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서 만나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를 고쳐주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돈도 치료비로 다 날려버렸습니다. 제가 이제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요, 소문을 들어보니 선생님이라면 제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만 믿습니다! 제발 저를 고쳐주십시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와 이 세상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할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죄와 사망의 문제에서도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우리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와 사망의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도 우리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 가정의 문제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왜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건강의 문제 등등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삶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반쪽짜리 신앙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은 믿는데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은 잘 못믿는거죠.

그래서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을 믿든지 돈을 믿든지 다른 것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더니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잘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까지 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과 같이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만 믿고 따르게 되면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며 지금도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가 말씀대장정을 통해 얼마 전에 읽은 요한계시록에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왜 이런 메시지를 주셨을까요?

초대교회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의해 2차 대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1차 박해는 로마의 네로황제 때에 있었는데 로마에서 일어났던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나게 핍박을 당하고 대부분의 사도들이 순교를 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박해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 2차 박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1차 박해가 더 힘들까요? 2차 박해가 더 힘들까요?

당연히 2차 박해가 더 힘듭니다.

왜냐하면 경험이 있으니까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죠? 왜요? 뒤에 남아 있으면 앞에 사람들이 맞는 것을 보면서 더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2차 대박해가 닥치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극심한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래서 당장 요한계시록 1장에서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그 환상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면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십니다.

일곱 금 촛대는 무엇일까요? 바로 현재의 터키 땅인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일곱 교회입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죠.

 

그렇다면 일곱 별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 일곱 교회의 사자입니다. 영적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면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로마의 대박해가 찾아왔을 때에 그들을 그저 하늘에서 방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며 일곱 교회와 그 교회의 사자들을 지키시고 계신다는 말씀이죠. 그리고 이렇게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두루마리에 있는 일곱 인을 떼고 이 세상을 정의와 공의로 심판할 것이며 나를 믿는 자들을 내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박해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도 너희와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지금도 너희를 지키고 있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3. 결론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 그리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건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관계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직장과 사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나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