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를 그 윤리나 강한 철학적 속성 때문에 종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내릴 때, 존재론적 접근이나 기능적 접근을 통한 결과에 의하면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한다. 유교는 그 종교적인 가르침의 성격,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 너머에 있는 것을 동원하여 설명하는 것을 볼 때 종교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교에서 '하늘', '태극', '이'가 계속적으로 동원될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영혼을 숭배하는 제사라는 종교 의식을 볼 때 그러하다. 그리고 유교에 초월적인 근거 도입이 있는 점을 보더라도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라고 부인할 수가 없다.
유교는 중국의 여러 사상 학파들 가운데 최초의 학파이며, 중국적 전통에서 가장 정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요순 황제와 하, 상, 주의 설립자와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 '천명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주나라 때는 '하늘' 개념이나 '천자'의 개념이 더욱 구체화된다. 주의 통치 말기에 춘추 시대가 일어나고, 계속하여 전국 시대가 일어난다. 이때 공자(B.C. 5세기)와 맹자(B.C. 4섹기)가 나타나서 유교의 내용을 확고히 다져놓는다.
B.C. 221년 중국은 진나라에 의해서 역사상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진시황의 분서갱유의 탄압 정책으로 인해서, 유교는 일시적이나마 정체기를 맞이하였다. 전국 시대가 지난 후 한나라는 봉건 제도 대신 중앙집권적 정치 제도를 실시하였고, 유가는 법가나 도가와 같은 타사상과의 투쟁을 거쳐서 국가의 정통 사상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한나라의 멸망 이후 도교와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이 곧 유교의 쇠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교 경전들은 여전히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고 정치 생활 양식도 여전히 유교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송나라 때에는 과거 주나라와 한나라 시대의 경전들 가운데서 발견된 정치적 지혜가 담긴 전통적인 자료들을 기초로 하여 그것을 재해석하는 신유학이 성행하였다. 송대의 신유학 사상가로는 주돈이, 소용, 장재, 정호, 정이 그리고 신유학의 위대한 집대성자인 주희가 있다. 주희의 사상 체계는 [대학]에서 말하고 있는 격물치지에 기초하고 있다. 이 사상은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었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불교를 거의 멸절시키다시피 만든 성리학의 전성기가 있었다.
중국 역사상 관리 등용을 위한 과거 제도에 유교의 사서가 처음으로 채택된 것은 1279년부터 1368년까지 중원을 통치했던 몽골에 의해서였다. 유교의 학문적 전통은 한나라의 훈고학, 송대의 성리학, 명대의 양명학, 청대의 고증학 등을 들 수 있다.
유교 경전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에서 공자는 "귀신의 덕 됨은 성하기도 하여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귀신의 존재를 인정은 하나 만물의 본체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유교의 최고의 신개념은 "하늘"을 인격으로 표현한 천신 사상이다. 유교 사상의 근간이 되는 사단 사상, 곧 인은 내적 근원이요, 의는 외적 명분이고, 예는 상호 질서 개념이고, 지는 분석, 종합, 비교 연구의 인식 개념인데, 공자는 살아 있는 인격 상호간의 관계로서의 예도 중요시해야 핮지만 죽은 자에 대한 예도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제사를 중요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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